2009년 2월 21일 / 22일

<요요상, ‘결혼제도 반대’강연 참석 / 공동농장>

토요일 일정은 세 팀으로 나뉘어서 가기로 했다. 나는 바로 오후에 있을 ‘결혼제도를 알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훈코 씨가 강연하는 곳에 요요상과 같이 가기 위해서 코엔지로 향했다. 코엔지에서 요요상을 만나 함께 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선 그동안 우리 네 명이 한꺼번에 갔을 때 보았던 요요상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우선 요요상 또한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오늘 있을 강연은 자유롭게 40명 정도의 인원이 선착순으로 들어와 무료로 하는 강연이었는데 강연자가 오늘 강연내용과 관련한 내용을 자비로 조그만 책자를 냈는데 이를 읽은 요요상이 관심이 있어 오늘 강연을 참석한다고 했다. 오늘 강연자인 훈코씨는 현재 ‘싱글맘’인데 자신이 경험한(사실 못하는 일본말로 들은 거라 신뢰성이 없지만) 결혼제도가 얼마나 억압적인 제도인지를 이야기했다.

사실 오늘은 촬영 그 자체 내용보다도 일본에서의 촬영이 정말 녹록치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낀 날이었다. 필리핀에서도 말라야 로라스의 할머니들을 찾아온 일본 학생들이나 이날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요요상이 참석한 강연’이라기 보다 강연의 기록촬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촬영 그 자체보다 촬영인물과 더 가까워진 것에 더 의의를 두었다. 강연 촬영 내내 스텝들에게 우리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촬영할 수 있도록 요요상이 도와주었다.

22일 일요일, 도쿄의 동부쪽에 있는 타치가와立川 역 근처에 있는 공동농장에 오늘 요요상과 같이 가기로 했다. 요요상은 사짱(시로우토의 난에서 봤던 머리 긴 분)의 소개로 이번 공동농장에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타치가와는 원래 예전에 미군기지가 있었던 곳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미군이 철수해 있는 상태이다. 경찰이나 자위대가 있는 훈련장에서 헬리콥터를 띄우는 등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도 여전히 소음 때문에 이날 만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쨌든 미군이 떠나기까지 그동안 지역 사람들의 많은 노력이 있어왔다고 한다. 한국의 평택에서도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이 한창 있어왔듯이 타치가와의 미군비행장 근처에 있었던 작은 마을에서 주한미군 재배치라는 문제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무려 5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오늘 방문한 공동농장도 이 무렵부터 시작된 것인데, 과거 미군기지가 확장하려는 것에 저항으로 그 땅을 미군기지가 들어설 수 없게 그 땅에 농사를 지은 것이 그 일환이라고 한다.

오늘 공동농장에 온 사람들은 이제 타치가와에 있던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을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반전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고 전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나이대도 성별도 지금 하는 일도 너무나도 달랐는데 각자 관심이 있는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도 이렇게 함께 한 땅에 같이 농사를 짓게 됐다고 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분이 말했다. 오늘은 따뜻해진 날씨에 맞추어 미리 만들어놓은 비료를 오전동안 뿌리고 흙을 갈고, 그날 모인 사람 중 음식을 싸오신 분이 있어 일이 끝나고 나눠 먹었다. 한동안 파고 여전히 땅에 남아 있는 채소 몇 가지를 각자 나눠가지고 가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밭에서의 일이 끝난 뒤 요요상과 오오구라상과 함께 예전에 미군기지가 있었던 자리에 가보기로 했다. 옛날에 있었던 미군기지 안의 사택들은 현재 사유재산처럼 이용되고 있고 또 일부의 땅은 미군이 살던 사택들을 빌리거나 사는 등 사유재산으로 이용되고 있고 일부는 현재 소년원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요요상이 전했다.

아침부터 요요상과 함께 있으면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날이다. 무엇보다도 그 점이 오늘 촬영하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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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상 일정 in 코엔지: 시로우토의 난 12호점 이벤트 / 수요 베지식당 / 면생리대 모임 >

‘시로우토의 난(아마추어의 난)’ 12호점에 이벤트가 열리는 코엔지로 다시 향했다. 이곳에서 오늘 각자 손수 만든 옷이나, 액세서리, 잡지, 케잌 등을 작은 규모로 만들어 놓고 판매하는 등의 행사를 했는데, 요요상은 여기서 음식을 만드는 등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았다. 정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도 많이 찾아왔는데,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다. 이날은 한국에서도 손님 두 분이 찾아왔었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만 족히 50명이 훌쩍 넘을 듯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알아서 돈을 내고 맥주나 케잌을 먹는 등 자유로워 보였다. 주로 인디음악이 흐르고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홍대 어딘가의 가게와 같은 분위기였다.

이날 요요상의 첫 촬영을 하고 요요상의 일정을 좇아 다음 주에 열리는 수요일 베지식당(채식 식단을 주主로 한 식당)을 촬영하면서 요요상을 이어 촬영하기로 했다. 베지식당은 코엔지에 있는데 특히 코엔지의 분위기 자체가 조그맣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가게들이 많았고, 외국인들도 상대적으로 많이 보이는 동네였다. 특히 시로우토의 난素人の 亂이라고 이름 지은 가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구제 옷을 파는 가게이거나 중고물품 등을 파는 가게가 그것인데 베지식당 근처에 다 모여 있었다. 이벤트가 열린 곳은 이 이름을 딴 12번째 가게인 셈이다.  재밌었던 것은 베지식당은 원래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인데 수요일마다 쉬는 날을 이용해서 요요 상이 가게를 빌려 베지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를 빌린 돈을 이날 베지식당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내는 데 남을 때도 있지만 주로 그 돈이 그 돈인 경우가 많단다. 이날 일본의 공휴일이었는데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오늘따라 일이 더 늦게 끝났다고 하는데 시간을 보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어있었고 정리까지 마치다 보니 2시가 넘어서야 요요상이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요요상의 방은 고시원처럼 각 층에 얇은 벽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어제 찾아가 본 도쿄 외곽에 있는 부모님 집은 좋은 집이지만 자신의 집은 작고 지저분하다며 방을 안내해주었다. 자신의 주방을 딱히 같고 있는 형편도 아니고 자신의 집도 이렇기 때문에 부모님 집을 전전하며 베지식당에서 쓸 음식재료를 준비한다고 했다. 12호점에는 평소에도 요요상의 친구인 오오쿠라 상이 살면서 지내고 있는 곳인데 요요상이 잠들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오니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늦어졌으니 오늘은 시로우토의 난 12호점에서 잠을 청하기로 하고 늦은 새벽에서야 촬영을 마쳤다.

20일 시로우토의 난 12호점에서 이날 면생리대 만들기 모임이 있었다. 노라의 이치무라 상이 와서 면생리대를 소개하고 한국의 피자매 연대에서 제작된 면생리대 만들기 동영상을 보며 15여 명 정도가 모여 면생리대를 만들었다. 그 중에는 자리에 앉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있는 아저씨도 있었고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도 있고 한국에서 'W' 프로그램을 찍으러 온 사람도 있었다. 이날 W 제작팀은 이치무라상을 찍고 있었다.

역시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있는 자리임에도 허물없이 이야기 나누고 진지하게 면생리대를 만들며 웃고 음식들을 먹었다. 중간 중간 만들어진 면생리대 모양 또한 다양했다. 중간에 어떤 분은 일본사람보다 한국 사람들이 더 몸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에 면생리대를 쓰는 사람이 더 많지 않느냐며 물어왔다.

이날도 코엔지에서는 늦게까지 면생리대를 만들고 새벽이 되어서야 모임이 끝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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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3일 금요일

<전노련 비정규직 노조 집회 및 거리행진>

전노련(전국노동조합총연합) 산하 비정규직 노조의 2․13 중앙 집회가 히비야hibiya 공원 안에서 열렸다. (참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이 672만6천명,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 공산당계)이 97만8천명, 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가 16만 명이고, 주요단체별 노동조합원수가 점하는 비율은 연합 65.2%, 전노련9.5%, 전노협 1.6%이다) 공무원 파트, 여성 파트 등 몇 개의 파트별로 나뉘어져 전체 비정규직 노조원이 수천 명이 참여한 큰 집회였다. 이날의 주요 이슈는 마찬가지로 파견노동이나 비정규직 노동 문제였다.

중소기업들의 사장들이 나와서 발언을 하고 양복차림의 공무원들이 앉아 있거나 생활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의 참여, 비정규직 노조 그 자체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민주노총의 최대 주력 조직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해에 비정규직을 똑같은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 변경을 부결시켰다. 최근에 있었던 민주노총 내 성폭력 문제도 한국 노조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중 하나인데 비단이러한 한계나 문제점은 비단 한국 노조만의 문제점만이 아닐 것이다. 일본에서의 노조들이 조직 확대에 더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노동조합원총수가 정점이었던 10여 전에 비해 계속해서 노조원의 수는 하락세를 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에서의 여성노동자의 위치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우리들의 삶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신문의 발표가 보도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고, 일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비정규직과 여성노동 이슈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주변화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날 참석했던 여성노동자들(특히 생협에서 나온 노동자들이 많았다. 일본은 생협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데, 생협 의 운영진은 따로 구성되어 있어서 비정규직 문제가 나오고 있다고 집회 참석자 중 한 생협 여성분이 말씀해 주셨다)이 가장 눈에 띄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준비해왔었는데 빨간 망토를 두르고 젖소무늬 옷을 입는 등 즐거워 보이는 모습은 나에게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중앙 집회가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공원 정문에서 출발하여 긴자ginza의 거리를 걸어 거리 행진이 있었다. 거리행진이 있고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 한국의 전경련에 상당) 건물을 시위대들이 포위하고 앞에서 30분간 발언을 한 뒤 이날 집회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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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1일~12일

<코엔지/요요기 공원에서 하룻밤>

드디어 일본에서의 3번째 촬영인물이 섭외됐다. 요요 씨를 만난 것은 코엔지에 위치한 작은 가게에서였는데, 그 가게는 요요 씨의 소유가 아니라 공휴일에 맞춰 쉬는 가게들에서 식사와 차를 파는 가게를 잠시 빌린 것이라고 할 때 무척 흥미로웠다. 아마추어의 난(素人の乱)이라는 이름의 가게는 지금 요요 씨가 일하는 형태의 가게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과 형태로 12개가 있다고 했다. 요요 씨가 하고 있는 가게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차를 파는 곳이었다. 빵을 만드는 것이나 요리를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요요 씨의 가게에 이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마찬가지로 공휴일이라서 평소보다 손님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요요 씨는 말했다. 특히 이 가게를 찾아온 사람들은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요요 씨는 이런 가게와 같은 활동에 많은 관심이 있어 알바는 최소한으로 하고 나머지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늘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는 어떤 도움이 될지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요요 씨를 촬영하는 것에 더욱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는 요요 씨가 늘 예술이나 독립적인 문화 활동을 해오던 사람이라기보다 어떤 시점에서 이런 문화를 접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활동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요요 씨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그날 저녁 요요기 공원에서 하룻밤 자기로 이치무라 상과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곧 만날 것을 기약하고 가게 12호점(素人の乱 12戶店 -이 곳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물건들이나 헌 옷을 이용해 만든 옷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오는 토요일에 이 곳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다)에 들러 그 곳에 있는 사람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뒤 요요기 공원으로 향했다.

요요기 공원으로 갔을 때는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공원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평소 조용한 낮보다도 훨씬(!) 더 조용한 밤인데다 날씨도 찼다. 경은과 경순은 요요기 밤풍경 스케치를 하고 늦게 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공원 관리 사무소에서 텐트촌과 주변에 거주하는 노숙인들을 점검하러 나온다고 했다. 특히 텐트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텐트를 일시적으로 철거해야 했는데 계속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 체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촬영이 허가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관리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촬영하는 것 때문에 이리 저리 망을 보고 피해 있다가 다시 촬영을 해야 했다.  관리소의 점검이 끝난 뒤 사람들은 다시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짐을 몇 개 빼놓고 텐트의 지지대를 빼놓았기 때문에 텐트를 철거했던 것만큼 세우는 것도 금방 끝났다.

목요일은 '노라'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것까지 촬영하고 가기로 했었는데 이곳에 있던 몇몇 분들이 불편해 하셨기 때문에 생각보다 촬영을 금방 접어야 했다. 늘 나 스스로도 간과하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한데 블루텐트촌은 공공장소인 요요기 공원 안에 있지만 엄연히 말해서는 또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곳에서 촬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게 많다. 다른 일본인들이 자신의 집안을 촬영하는 것을 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것만큼 이치무라 상과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불편하게 여겨졌을 일이다. 이날 이치무라 상은 메디아르(MediR) 사람들과 함께하는 촬영자와 피촬영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모임을 제안했다. 그리고 우리도 21일 날 있을 모임에 참석하기로 하고 일찍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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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9일 월요일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 다과회의(이치무라 상)>

한 달에 한번 페민 사무실에서 열리는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가 9일에 다시 열렸다. 7시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20여 명 정도가 작은 사무실에 꽉 차게 들어왔다. 네트워크 모임이라기에 딱딱한 회의 분위기를 상상했던 우리는 한쪽에서는 음식을 준비하고 한참 서로들 이야기를 하느라 부산한 모습들에 놀라웠다. 사람들이 다 모였을 즈음 우리는 우리들의 영화를 소개하고 촬영허가를 받았다.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승낙해주었다.

변호사, NGO 활동가, 싱글맘, 가나에서 이주한 여성, 레즈비언, 파견노동자, 교수, 홈리스. 다양한 위치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모인 자리였다. 이날은 도쿄에서 먼 지방에서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 전날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나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위치에서 참석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으며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이날 자리에서 ‘여성의 빈곤화’에 대한 이슈는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던 문제의식이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어서 각자 자리를 만들어 또 다시 시끌벅적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사실 일본에서의 어떤 모임이라고 하면 정리된 조용한 모습만 그동안 봐와서 이런 시끌벅적한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이치무라 상의 홈리스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에서 노라의 면생리대를 팔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입했고 네트워크 모임을 위한 기부금을 모을 때 조그만 비닐봉지를 돌리자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빈곤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여성에게는 특히나 현재 신자유주의의 흐름 이전부터의 구조적인 문제가 작용해왔다. 그것은 여성의 빈곤화를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이는 우리가 첫날 찍었던 ‘일하는 여성의 전국 네트워크 모임’ 때부터도 이어져왔던 이야기이다.

이날 쿠리타 상으로부터 취재정보를 듣고, 영란이 오랜만에 만났다던 영화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 번역 테입을 부탁하고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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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8일 금요일

<KAFIN 사무실 방문/시부야 246키친>

전날 코리야마에서 오후 무렵 기자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내일 있을 촬영을 위해 미리 도쿄로 왔다. 실은 다음날, 그러니 오늘 KAFIN에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갔을 때도 조금 늦었다 싶어 서둘러서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사무실에서 지내고 있는 필리피나인 메이 씨와 미쉘 씨는 오오타 상으로부터 우리 일행만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많은 필리피나를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것을 기대하고 갔던지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과 전에 와서 짧은 간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메이 씨는 힘들어 하는 와중에도 영어와 일어와 따갈로그어와 비사야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던지라 기분이 묘함을 느꼈다.

메이 씨는 2000년도에 일본에 와서 스낵바에서 일하는 중에 일본인 남자를 만나 같이 살게 지내게 되었는데, 이후에 비자 만료일에 맞춰 몇 번, 일본과 필리핀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 필리핀에 있는 부모와 가족에게 일본인 남자를 소개시켰고, 그간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필리핀에 있는 도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일본에 가 있었던 남자에게 연락했고, 한동안 연락을 자주 했고, 적은 액수였지만 남자는 아이를 위한 돈을 부치기도 했다고 했다. 이후 애가 태어났고 남자에게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남자의 형제가 다니는 회사에 전화도 해봤지만 남자가 집을 떠났다는 말밖에 전해 듣지 못했다. 남자에게 섭섭함을 느꼈지만, 지금 일본에 와 있는 이유가 남자 때문이 아닌 자신의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란다. 지금 현재 메이 씨는 같은 베이비 시터로 일하고 있는데 아는 필리피나가 저녁부터 새벽까지 클럽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은 그녀의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월급이 6만円으로 생활하는데 너무 적은 돈이지만 비자 연장이 되고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단다. 어쨌든 그녀는 이렇게 예전부터 지금 일본에 와 있는 이유까지를 설명하기를 자신의 러브 스토리라고 이야기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촬영인물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수다를 떨고 KAFIN 사무실을 나왔다. 저녁에 246 키친을 가보기로 했는데, 이날 문화연대 활동가분들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이번에 이치무라 상이 최근에 낸 책을 번역했다는 분이 참석하신 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갔을 때는 이미 문화연대 분들이 와서 청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리 저리 처음 보는 홈리스 분들(역시나 남자분들만 있어 아쉬웠지만) 일일이 (안되는 일본어로) 촬영 허가를 받고 촬영했다. 역시나 오랜만에 혼자 촬영한다는 것, 상황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혼자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덧붙여 더 어려운 것은 여전히 카메라 스킬이 늘지 않는다는 것(;).

이날 요리의 테마는 한국식 지지미였는데 한 홈리스 아저씨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열심히 요리를 해, 책을 번역하신 지영 씨는 연신 ‘어딜 가나 남자들은 요리를 잘 안하는데, 아저씨는...’ 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지미 위에 김이며 겨자를 올리는 등 다양한 요리를 아저씨는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눈치셨다. 문화연대 분들도 처음 참여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함께 했고, 모두들 능숙하진 않지만 일본어로 열심히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도 사람들이 1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이날은 전보다는 일찍 끝나 9시쯤 모임이 파했다.

(예전에는 4명이서 움직이다가 혼자 집에 돌아가려니, 문득 ‘여기가 일본이군’하고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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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현 코오리야마 시 사토 씨 캠페인 및 집회

지난 2월 1일, 이토 미도리 씨를 따라 갔던 코오리야마에서 만났던 사토 씨를 다시 한 번 찾아 갔다. 사토 씨는 파나소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분이다. 18년 동안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그것도 매일매일 장시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파견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하루 아침에 계약 해지를 당하자 어렵게 싸움의 결심을 하신 것이다. 그것이 지난 해 9월의 일이었는데, 이런 사토 씨를 지지하는 모임의 부대표인 쿠로다 씨 말씀처럼 파견 노동자 계의 잔 다르크처럼, 현재 일본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가장 중대한 이슈인 파견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는 경순과 나 둘이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모든 스텝들이 버스를 타고서 4시간 거리를 달려 코오리야마에 도착하였다. 가장 빨리 출발한 버스가 아침 8시로, 캠페인이 이미 시작한 뒤에 도착하여 그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역 근처에서 열 명쯤의 사람들이 모여 리플렛을 뿌리고 마이크를 대고 발언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것이 끝나고는 ‘코오리야마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명패가 걸린 사무실 - 그 지역의 이런저런 시민 단체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로 이동, 내일의 집회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조금 찍고, 사토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사토 씨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것도, 레드마리아에서 만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아람이는 그 다음날 필리핀 여성들의 모임 KAFIN 방문 및 이치무라 씨의 246 키친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캠페인만 참가하고 도쿄로 돌아갔다)

이날 밤은 쿠로다 씨 - 이 분은 지난번에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아주 좋은 분이다 - 가 안내한 친구가 운영하는 찻집 겸 산장으로 가서 잠을 잤다. 쿠로다 씨는 나이 이야기를 하다가 순식간의 경은의 ‘오까상’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나이가 엄마뻘이라는 이유였지만 경은의 서투른 일본어 발음의 ‘오까상’이 재미있으셨는지 매우 그 호칭을 즐겨 들으셨다.

그리고 2월 8일. 처음에 집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당연히 길거리에서 하겠지라고 예상을 하기도 했었으나, 사실은 노동회관에서 진행되는 집회였다. 일본은 거리 집회를 하는 것이 엄격하기도 하고 또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강연회 및 지지 모임 출범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예상은 백 명 정도 오겠지 했던 것이 250명이나 모여들어서 주최 측 분들이 매우 감동스러워하며 성공적이라 자평하였다. 특히 그 중 일부 2, 30대인 사람들이 꽤 눈에 띄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였는데. 사실 일본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나이가 많아서 세대가 이어지지 않은 건가, 하는 아쉬움을 우리들도 그리고 일본의 활동가들도 아쉬워하였는데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강화되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젊은 세대들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어 가는 추세가 아닌가 하는 전망도 조금씩 만나게 된다. 아무튼 일본의 파견 노동의 현실은, 파견노동법이 악법으로 작용하여 법제도적으로 압박이 많고, 그에 더해 파견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암울함이 있는 것이다. 다만, 사토 씨처럼 여성 혼자서 분연히 일어서서 싸움이 시작되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진다. 또 그 분과 함께 활동을 벌여 가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도. 일본의 노조가 싸우지 않는 노조가 되어버렸다는 많은 노동자들의 아쉬움으로부터 시작된 활동들이 가진 가능성에서 새로운 운동 방식을 고민하는 장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부터 침해 당하는 인간 존엄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함께 하면서 모여서 이어 가는 이야기들을 계속 해서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날 일정을 마치고 6시 쯤 역에 도착했지만 도쿄로 돌아가는 버스가 밤 12시에 있었기 때문에 역 근처를 배회하며 일하는 여성들의 사진들을 조금 찍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야간 버스를 타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토 씨는 2월 중에 다시 한 번 만나서 일상 생활을 찍고, 그 다음에는 2월 28일 - 3월 1일 쿄토, 오사카 등지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만날 예정이 있다고 하니 또 거기에 참가해볼까 하는 구상을 가지고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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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로스트 제너레이션' 주최 ‘여성과 빈곤’ 토론회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진 후, 더 이상 안정된 직장과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할 수 없게 된 젊은 세대들 (25세 ~ 35세)을 일컬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 것을 잡지 이름으로 차용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작년에 창간, 최근에 2호 째 책을 낸 후 ‘여성과 빈곤’ 토론회를 열었다. 시작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잡지는 젊은 세대들의 삶의 고민을 녹여내고자 하고, ‘신좌익’이라고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토론회가 열린 곳은 도쿄의 아사가야라는 동네의 ‘loft’라는 라이브 카페였다. 공연도 하고 오늘과 같은 토론회도 곧잘 열리는 일종의 대안 공간이다.

패널에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가 요즘 아주 자주 만나고 있는, 요요기 공원의 텐트촌에서 살고 있는 이치무라 미사코 씨, 그리고 예전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도 만난 적 있는 쿠리타 류코 씨를 비롯하여 로스트 제너레이션 편집진 및 ‘프리타's free’라는 잡지의 편집인이었다.

꽉 짜여진 토론회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분위기였던지라 딱 여성과 빈곤이라는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각각 나름의 포지션에서 발언을 하는 자리였다. 이치무라 씨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쿠리타 씨는 일하는 게 ‘무서운’ ‘독신 프리타 여성’으로서, 주최자는 ‘일하는 엄마’로서 각각의 이야기를 개진하였다. 주제는 여성과 빈곤이지만 패널에 남성도 2명이 참가하였고 이 이벤트를 보러 온 사람들의 상당수 역시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처럼 여자들끼리 빈곤 이슈를 놓고 이야기 할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이기도 했다. 여성의 빈곤 이슈가 어떻게 소통 가능한 이슈가 될 것인가는 또한 두고 볼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한편 들었다. 늘 느끼는 것은 이럴 때는 항상 일종의 ‘번역 작업’이 필요해서, 이야기가 깊숙이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것.

그렇지만 작년에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비롯, ‘프리타's free', 'pev' 등, 젊은층의 목소리를 담은 잡지들이 창간되는 등, 변화한 일본의 경제 상황에서 그 동안 기성세대에게 ‘패기가 없고 나약하다’고 지적당해 온 일본의 젊은이들이 당사자로서 발언하기 시작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만나가야 할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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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5일 목요일

<요요기 공원 교회 집회/ 이치무라 상 일상생활>

11시쯤 공원에서 빵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다고 하여 요요기 공원을 찾았다. 가서 보니 일전에 일렬로 늘어선 홈리스 분들과 앞에서 열심히 설교를 하던 교회집회와 흡사한 모습이길래 설마 했더니, 역시나 그것도 다름 아닌 한국교회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나눠주는 리플렛에 각각 일본어와 한국어로 된 성경 구절이 쓰여 있었다. 이 모습을 가까이 있던 육교 위에서 찍고 있는데 이를 본 한 분이 고함을 빽 질렀다. 다른 것은 괜찮았지만 서도 이치무라 상이 불편해할지도 모를 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그 일이 있고 해서 그 근처에서의 촬영은 바로 접고, 이치무라 상의 블루 텐트촌으로 갔다. 곧 면 생리대를 만들고 나누는 ‘노라’가 있을 예정이기도 하다.

노라에는 두 여자 분이 함께 했는데 이치무라 상이 만들어 놓은 생리대를 받아 갔다. 이 생리대는 각각 천円씩 했는데 이것을 팔고 일부 금액을 판매자들이 받아가기도 한다. 또 어떤 분은 천을 받아가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서 갖고 오기도 한다.  이 중 한분은 홈리스 생활에도 계속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결국 가족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홈리스 생활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촬영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부득이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가려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요요기 공원에서 이치무라 상이 공원 안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도 찍었다. 벌써 공원 한  켠에는 매화와 홍매화가 예쁘게도 피었다. 이날도 간간히 이치무라 상의 일상생활을 찍고, 노라에 찾아온 두 분과의 대화를 촬영했다. 저녁 무렵 노라 모임이 끝나고 다들 돌아간 다음, 저녁에 이치무라 상이 시부야에 있는 넷카페(인터넷카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하기에 그 곳까지 가는 길을 촬영했다. 우리들이 촬영을 한다고 해서 이치무라 상은 늘상 타고 가던 자전거를 타지 않고 갔다. 요요기공원에서 시부야까지 걸어서 도착하여 좁은 넷카페 내부를 잠시 찍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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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일 월요일

<단체 KAFIN 방문/ MediR 방문>

원래는 점심때쯤 목욕하러 가려다가 갑자기 잡힌 일정에 갑자기 챙겨서 나가게 됐다. 일본으로 이주해 온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단체인 KAFIN의 대표인 아겔린 씨가 내일 두바이와 필리핀을 방문하기 위해 떠난다고 한 것이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니시가와구치 역 근처에서 마중나와 있던 오오타 씨이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냐며 아는 체를 해왔다. 오오타 상은 KAFIN에서 (일본인으로서 필리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자원 봉사자이며, 영상물을 만드는 활동도 하고 있다.

도착해서 본 사무실 안은 작고 소박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KAFIN을 만든 아겔린 씨와 친구 네리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아겔린 씨는 오사카대에서 연구원들이 조사차 두바이에 가고, 일본 사진기자가 필리핀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방문하는데 통역하는 일로 동행한다고 했다. 오오타씨와 아겔린 씨는 우리에게 현재 개호사로 일하고 있고 저녁에는 스낵바에서 엔터테이너로 일한다는 베이비 메이 씨와 역시 개호사로 일하고 있는 메리안 콘노 씨를 알려주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 중 등록된 필리핀 여성들만 240000명이 있으며 요코하마, 나고야, 사이타마 등지에서 필리핀인 중 70% 여성이 일본 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일본인과 결혼했다가 싱글맘으로 지내거나 가정폭력을 경험했으며 개호사, 엔터테이너,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무실에서 현재 일본인 아이 아버지를 찾으러 온 메이라는 필리피나를 만났는데, 이미 일본에서 지낼 수 있는 첫 비자 세 달을 보낼 동안 아직 애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를 찾고 아이 아버지가 이를 알아야지 일본의 국적 취득이 가능하고 아이가 보육원이나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메이 씨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뿐이었다. 일본 국적법은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혼외 자녀’라도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알고 있었으면 국적 취득이 가능하지만 생후 인지했을 경우 일본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에 대한 국적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국적법에 의해 그 동안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인구는 필리핀에만 해도 수만 명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요즘 이러한 일본인 남성과 일본 국외의 여성이 결혼했을 경우 비교적 엄마보다 아이가 비자를 얻기가 더 쉬우므로 이를 이용해서 그 아이가 엔터테이너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필리핀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JFC 라는 단체는 일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는 모임이다.

필리핀 현지에서는 일자리를 얻기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던 사람이 외국으로 나가 가정교사나 가정부로 일하는 사례가 흔히 있다. 홍콩으로 수많은 가정부로, 한국으로는 공장 노동자, 이탈리아로 베이비시터로, 일본으로 엔터테이너로 많은 필리피나들이 이주해가고 있다. 필리핀에는 미국과 같은 영어권 나라로 나가기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아시아의 미국인 일본 또한 많이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현재 KAFIN의 사무실에서 거주하는 필리피나는 3명이 있는데 그 중에는 동생이 가정폭력을 겪었는데 이유인즉슨 일본인 남편이 그 사람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서 현재 병원에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은 필리핀에서 가정이 있는 일본인 남자를 만났는데 이 일본인 남자가 일본에 돌아가서도 자신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힘들게 생활하는 중에 결국 일본으로 남자를 찾으러 왔었고 결국엔 남자를 찾았으나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현재 사무실에는 살지 않지만 이 사무실을 왔다갔다 방문하는 사람은 25명 정도가 되며 명부에는 50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서둘러 자리를 떠야했던 아겔린 상을 보내고 우리도 사무실을 나왔다. 역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잠깐 역 근처에 스낵바와 같이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상점을 둘러보기로 했다(일본에는 유리집이 없다고 한다). 생각보다 곳곳에, 많은 스낵바들이 있었고, 또 많은 외국인들도 볼 수 있었다. 이중에는 눈에 띄게 중국인이나 필리핀인들도 보였다.

이날 오랜만에 만난 필리핀 사람들 때문에 느낀 (의외의)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너무나도 한꺼번에 많은 이슈들이 필리핀 이주 여성들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복잡한 생각도 한꺼번에 들었다. 

저녁에는 MediR이라고 하는 일본에 있는 미디어센터를 들렀다. 그곳에 있는 분들에게 우리의 영화를 소개했고 프리뷰를 도와줄 분들을 만나 테입을 드렸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