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광화문 KT빌딩 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독립영화인과 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로 독립영화인 긴급 기자회견 '박근혜 정부-국정원-문체부-영진위' 조직적으로 자행된 독립영화 지원배제를 강력히 규탄한다! 가 열렸다. 발언을 하는 김일란 감독의 모습.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일란 감독, 이혁상 감독, 김정근 감독, 김철민 감독, 문정현 감독, 서동일 감독, 이영 감독, 홍형숙 감독이 참석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독립영화 지원배제를 강력규탄하고 입장을 발표했다. 광화문=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8.02.07/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불온한 당신'을 연출한 이영 감독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영 감독은 7일 오후 광화문 KT 빌딩 12층에서 열린 독립영화인 긴급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가 독립영화에도 적용됐고 블랙리스트에 드러났다"고 입을 뗐다. 이어 "'불온한 당신'은 제작되니 3년에 지난 2017년에 개봉됐다. 2015년에 세월호 이슈를 다루고 있어서 영진위가 지원하는 영화관을 개봉할 수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며 "사상검열이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존재했다는 걸 알고 경악스러웠다. 국정원의 개입과 영화의 검열이 있었다는게 충격적이었다. 독립영화를 지원해야하는 영진위가 적극가담했다는 점, 그럼에도 양심고백이나 내부폭로가 없었다는것에 대해 참담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영 감독은 "이는 독립영화 말살 정책이었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표현의 자유 침해를 넘은 정치적 탄압이었다. 블랙리스트는 우리에게 와야할 영화가 오지 못하도록 했다. 많은 영화인들은 영화의 힘을 믿었고 독립영화의 가치를 ?굶駭? 앞으로도 그러할 거다. 영화인의 한사람으로 블랙리스트의 가담자 문체부 영진위 국정원은 책임자를 처벌하고 공적 장치를 마련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사회 참여적 독립다큐영화들이 박근혜 정부 시기, '문제영화'로 분류되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지원사업에서 배제된 사실을 발표했다.
앞서 특검 수사 및 감사원 기관운영감사에서 외압 사실이 밝혀진 '다이빙벨, 천안함프로젝트, 자가당착'에 이어 독립다큐영화에 대한 배제 사건 20여건이 추가로 확인됨으로써, 그동안 알려진 영화계 블랙리스트 사례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 바 있다.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80여명이 자발적으로 텔레그램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대화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화의 내용은 새 정부의 영화정책에 대한 제언이었다. 이에 앞서 감독, 평론가 등 작가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는 인디포럼도 올해 영화제 기간 중 ‘#독립영화 #창작자 #대나무숲’이라는 특별포럼을 열었다. 인디포럼은 홈페이지에 포럼 내용을 정리해 공개했고 후속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게시판을 신설했다. 영화계 각 단위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 본격화된 새 정부 영화산업 로드맵 구상에 의견을 제기하는 흐름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이런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독립영화가 뿌리째 흔들리다 못해 고사 상태에 처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이 전제됐다. 창작자 스스로 자신들의 현재 상황을 타개할 독립영화 진흥책을 생각해보려는 건설적인 행보이기도 하다. 향후 독립영화 감독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창작자의 의견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7월 12일 독립영화 감독들이 대담을 위해 다시 만났다. 참석자는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등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김숙현감독, <24>를 연출하고 신진 여성감독으로서 동료 감독들과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이하 두영찍)라는 기획단을 만든명소희감독, <5월의 봄> 등을 연출한박홍준인디포럼 의장, 홍대 두리반 강제 철거 반대 투쟁을 담은 <파티51>의정용택감독,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독립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며 <변방에서 중심으로> <경계도시> 등을 연출한홍형숙감독이다.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독립영화 진흥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그들 각자가 경험한 영화 현장을 바탕으로 문제점과 대안 논의 등 전방위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독립영화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새 정부의 영화정책 방향에 목소리를 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먼저 짚어보면 좋겠다.
=박홍준_올해 인디포럼영화제를 준비하던 때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이라 영화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인디포럼은 작가 중심으로 운영하므로 플랫폼으로서 논의 테이블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제 기간에 특별포럼을 열었고 이후 패널로 참석한 <거미의 땅>(2012)의김동령감독님과 우리의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기존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독립영화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정부쪽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회원인 감독들은 논의 진행 사항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형태로 작업하는 신진 감독도 많은 상황이다. 창작자의 목소리를 좀더 분명히 낼 필요가 생겼다.
=정용택_지난 9년간 영화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료 감독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계속 주변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도 크지만 지금 재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기 힘들겠다는 우려가 커졌다. 나도 한독협 회원이지만 창작자들이 교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도 있다. 독립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정부, 영진위 등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정보 등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 지난 6월 21일에 열린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독립영화계의 간담회만 해도 그렇다.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는데 그 내용을 사전에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극장, 배급 관계자들은 있는데 내가 아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한분도 안 계시더라. 창작자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홍형숙_1998년 한독협이 생겼으니 내년이면 20주년이다. 협회 회원인 나는 그간 한독협이 세대교체가 되고, 미디액트나 인디스페이스 등 유관 단위들과 보조를 맞추며 논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조직력 있는 협회가 정부와 대화에 나서 협상력을 발휘해온 부분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한독협쪽도 간담회 전날 연락을 받았고 혹여 들러리 서는 게 아닐까 염려했지만 만나서 독립영화계의 상황을 정확히 전하고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와중에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모인 것이다. 그동안 창작자들이 한독협 내 다큐멘터리분과라는 한정된 형태로 만났다면 이젠 훨씬 많은 개별 창작자를 흡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는 한편으로 창작자들이 자신의 말로 문제의식을 전하려는 건강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명소희_신진 여성감독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텔레그램 단체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배 감독들과 신진 감독인 내가 느끼는 고민의 결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선배 감독 중 많은 분이 신진 감독의 멘토이다보니 더욱 그렇다. 정책 토론방이 생긴 뒤 신진 감독들은 ‘우리도 움직여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김숙현_실험영화, 다큐멘터리, 예술영화의 중간 지대에서 작업하는 이들의 미학적 고민은 상당하다. 독립영화가 계속 변화해오면서 미학적 가치도 분화됐다. 지금의 젊은 관객은 관심의 영역이 다양해 기존 독립영화의 미학적 준거로는 다 담아낼 수가 없다.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런 변화가 기존의 독립영화라는 기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화 가능할까. 사실상 지난 정부에서 실험영화는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원 분야가 극영화, 다큐멘터리로만 구분돼 있다. 다큐멘터리 부문에 지원해 ‘제 영화는 실험영화입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최근 몇년간 영화제 상영작을 장르별로 분석해봤다. 장르별 편수를 공지하는 곳은 서울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뿐이다. 실험영화가 5~6% 이상이다. 그에 합당한 제작지원이 따라야 한다. 올해 영진위 제작지원 개편안을 보면 4억원에서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독립영화는 사업자등록증까지 있어야 한다더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데도 반대한다. 정권에 따라 그런 카테고리는 계속 바뀔 테고 특히 실험영화는 시장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제든 어디로든 이동 가능하다. 독립영화라는 큰 틀 아래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박홍준 감독. 단편 <5월의 봄>(2010), <소년 마부>(2009), <러너스 하이>(2007) 등 연출. 인디포럼 의장.
홍형숙 감독.(2011), <경계도시2>(2009), <경계도시>(2002),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 등 연출.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6월 22일 영진위는 ‘영화발전기금 2018년도 기금 사업 설명 자료’를 발표했다. 2018년 총예산은 2017년 대비 5% 감액됐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영화에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가족영화 제작지원은 폐지했다.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 대상에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없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은 2017년 대비 동결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좀더 얘기해봤으면 한다.
박홍준_한번 물어보자. 저예산영화가 독립영화인가. 영진위는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비상업영화 제작지원 등으로 이름만 바꾸어왔다. 고영재 한독협 대표도 “독립영화 제작지원으로 바꾸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홍형숙_영진위야말로 적폐 청산의 대상인데 말이다. 시장 중심의 논리로 독립영화를 말하는 현재의 좌표에서 이동해야 한다. 시장 질서 안에 있는 영화는 정책 방향을 그 질서대로 잡으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시장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다. 특히 한국의 독립영화는 태동부터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이 분명했다. 저예산영화는 상업영화 내에서 비교적 예산이 적은 영화를 퉁쳐 말하는 게 아닌가. 끼워 넣기다.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영진위 집행 예산 총액의 20%는 반드시 독립영화 예산으로 확보해야 한다.
정용택_<워낭소리>(2008) 이후 독립영화계에서 이른바 ‘대박 영화’를 향한 욕망이 생겨났다. 그걸 또 적절히 상품화해 CGV아트하우스 등이 독립영화를 배급하면서 독립영화라는 개념에 혼란이 생긴 측면이 있다. 그 이전 독립영화는 20~30개 상영관에서 관객 1만명 정도만 들어도 대박이라고 했다. P&A(Print & Advertisement)비용만 겨우 맞췄을 뿐 제작비조차 회수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하는 독립영화는 개봉 전부터 시사를 수십회 해 개봉일에 이미 상당한 관객수를 기록하곤 한다. 실험영화를 포함해 애초에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영화는 아예 배급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극장 개봉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가 전무하다.
김숙현_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비평이 살아나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감독에게는 적어도 인정 욕구라는 상징 자본이라도 있어야 한다. ‘네 영화는 가치 있다. 네 작품이 더 많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하는 평가 말이다. 최소한의 인정을 위한 창구, 담론화해줄 수 있는 비평계의 흐름이 필요하다. 작가를 위한 정책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독립영화 한편을 만들면 관심 갖고 말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 가치를 느끼고 다음 영화를 만들 방편을 강구할 힘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씨네21>에만 기대고 있다. (웃음) 비평가들도 ‘관객이 비평을 워낙 안 보니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영화장(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이 꼭 필요하다.
명소희_상당히 공감한다. 이와 함께 얘기하고 싶은 건 멘토링 시스템이다. 신진 감독에게 멘토링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멘토-멘티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선후배간 위계와 권력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멘토가 아닌 신진 감독의 영화를 새롭게 끊임없이 읽어내고 발견해주고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돼주는 게 비평이다.
박홍준_<씨네21>에서 독립장편극영화 비평도 많이 해주면 좋겠다. 감독들은 정확한 비평을 원할 거다. 어떤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이 과연 독립영화인가 하는 문제제기도 해주면 좋겠고. 물론 정부가 독립영화 비평이나 비평 잡지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제 수상작 중심의 발굴이 아니라 영화를 많이 보는 비평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이 있어야 한다.
명소희 감독. 단편 <24>(2015) 연출,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 기획단.
정용택 감독. 단편 <통영생선구이블루스>(2016), <파티51>(2013), <뉴타운 컬쳐 파티>(2011), 단편 <2000년대 한국문학속 불안한 청춘들>(2009) 등 연출.
단계별로 최적화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명소희_신진 감독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정책이 상당히 부족하다. 신진 감독들은 멘토링, 피칭, 제작지원 등 상업적 시스템 안에서 제작지원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부터 경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립다큐멘터리라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규모가 큰 제작지원 정책을 갖춘 것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영진위 정도고 그외에는 규모가 작거나 멘토링 시스템에 기댄다. 신진 감독도 영화를 만드는 한명의 감독이다. 제작지원을 받을 때마다 매번 다른 멘토에게 다른 코멘트를 받는 게 과연 효과적일까. 멘토링 여부를 신진 감독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멘티가 멘토를 선택하는 매칭 방식이어야 한다. 멘토링의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다. 멘토-멘티가 서로 맞지 않거나 남성 멘토와 여성 멘티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경력 차에서 오는 부당함 등을 개별 감독이 풀어야 한다.
박홍준_독립영화는 창작권 보호가 기본이다. 그렇다면 멘토링은 왜 필요한 것인가. 제작지원을 위한 방편이라면 신진 감독을 기존 감독과 동등한 위치에서 봐줘야 한다. 지원하고 싶은 부분에서 신진일 뿐이다. 멘토-멘티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일이 벌어지면 그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해버린다. 공적 자금이 투자한 지원제도에서 멘토링은 없어져야 한다.
홍형숙_제작지원제도도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등 단계별로 최적화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컨대 제작 기획 단계에서도 사전 취재가 필요해 스탭을 꾸린다. 그런데 감독 본인과 스탭 인건비는 제작지원비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e나라도움(기획재정부가 국고보조금의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의 전 과정을 전자화해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이다.-편집자)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 피칭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이 있어야 가능한데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가 시장이 있나. 공공의 채널인 방송이 다큐멘터리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국내외 방송과 영화의 펀딩 플랫폼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특화해야 한다. 창작자들이 작품마다 어떤 형태의 피칭에 참여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전체 파이가 커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용택_방송국 외주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국에 납품하고 일정 제작비를 받으면 끝이다. 제작권은 방송국에 귀속된다. 유럽은 방영하고 다른 편집본으로 극장 개봉도 하는 선순환 구조다.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다.
명소희_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멘토링과 피칭이 결합돼 있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 4주간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 피칭 멘토링을 받았다. 엄연히 노동력을 들였는데도 창작자에겐 아무런 보수가 없더라. 사실 나는 아이를 지방의 친정에 맡기고 왔고,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오는 이도 있었다. 1500만원을 두고 다섯팀이 경쟁했는데 극장을 빼곡히 메운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극장 어딘가에 앉아 있을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피칭을 해야 했다. 어떤 경우는 피칭으로 발표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 나처럼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우는 작품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문제제기성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웃음) 중견 감독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피칭이 있는 제작지원에는 지원하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항상 고민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현장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과연 맞는지 이제는 얘기를 해봐야 할 때다.
박홍준_유통 관계자들이 오는 마켓에서야 피칭이 가능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관객 앞에서 피칭하는 건 아이템 유출이라는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 인터뷰 심사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주체측에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꽤 많다.
김숙현 감독. 단편 <너는, 어디에도 없을거야>(2016),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2014), <홀드 미>(2013) 등 연출.
창작자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도종환 장관은 취임 전인 지난해 11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 6월 3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 방안’ 간담회를 마련해 한국영화의 독과점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대기업 규제와 함께 또는 별개로 독립영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정용택_배급과 상영 분리는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독립영화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는 없다. CGV아트하우스의 독립영화 배급도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단관 예술관 등에서 <옥자>(2017)를 배급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산업적 욕망에 따라 각자의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하는 건 제작지원제도만이 아니다. 배급제도도 마찬가지다. 멀티플렉스마다 한 관 정도는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만든다든지 독립영화전용관, 예술영화전용관 등에서 한 작품의 최소 상영일수를 보장하는 등 보다 세심하고 현실적인 방안이 따라야 한다.
박홍준_콘텐츠가 없으면 이 모든 논의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창작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더욱 중요하다. 창작자의 복지를 얘기하는 이유도 제작지원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 생태계만이라도 보호된다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파이는 커져야겠지만 원칙이 없으면 또다시 나눠 먹기 식밖에는 안 된다. 도종환 장관도 “문체부 예산을 확정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할 수 있게 영화계가 힘을 모아달라”고 하는데 문화예술진흥기금 등이 기획재정부 통제하에 있는 것도 문제다. 국고 지원이 가능하려면 독립영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공론의 장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김숙현_정부 정책이 불필요하게 세분화되고 개념 혼용으로 복잡해져 창작자들이 좇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창작자가 많아진 만큼 각자의 욕망도, 지향하는 영화적 실천 방식도 다 달라졌다. 하나의 창구로 모이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파편화돼 작업하는 실험영화 창작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창구는 있어야 하지 않나.
홍형숙_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난 한 관객이 이렇게 묻더라. “의미 있는 작품 만들어줘 고맙다. 근데 무척 궁금하다. 이렇게 해서 먹고살 수는 있는 거냐.”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 지난해 서울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에 신청해 제작비를 받았다. 후배 감독들에게 많이 미안했고 가슴 아팠다. 경력이 쌓인 만큼 제작환경도 개선돼야 한다. 영화정책이 정권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만큼은 제발 벗어나길 바란다.
명소희_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 모든 게 당장은 내 일이 아닌 것 같아도 결국에는 내가 맞닥뜨려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다 같이 다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 건강한 제작 기반에서 우리의 얘기를 영화로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부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이 다음에 좀더 쉽게 얘기하고 나보다는 좀더 나은 제작환경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디포럼2017이 영화제 기간 중인 5월 29일에 특별포럼을 열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존폐 위기에 놓인 독립영화 제작의 현실을 독립영화감독을 비롯한 창작자들이 패널과 토론자로 참석하여 직접 말하는 자리였다. 이름하여 ‘#독립영화 #창작자 #대나무숲’. 이 자리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을 중심으로 그 맹점을 살피고 대안적 논의를 이었다.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문화예술계 단위별로 정책 제안을 요청했지만 정작 많은 독립영화 창작자들은 이 사실조차 모르거나 뒤늦게 알았다. 이번 포럼을 통해 영진위의 제작지원사업에 창작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극, 실험, 애니메이션 등의 영역에서 활동 중인 <거미의 땅>의 김동령 감독, <그들이 죽었다>의 백재호감독, <가현이들>의 윤가현 감독,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의 정재훈 감독, <미쎄스 로맨스>의 한병아 감독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날의 논의를 핵심 쟁점별로 정리해 살펴봤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의 정책방향과 심사기준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지원 규모부터 언급됐다. 김동령 감독은 “영진위 영화 제작지원사업은 2012년 50억원에서 2016년 160억원으로 늘었다. 그 가운데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12억원으로 동결된 상태다. 이는 영화 제작지원사업 전체의 7.4%로, 영진위 전체 사업 규모의 1.8%에 불과하다. 독립영화인들은 이 작은 파이를 두고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구조에 놓인 것이다.” 백재호 감독도 같은 지적이다. “2017년 영진위 예산은 총748억4700만원, 그중 독립영화제작지원 예산은 28억2천만원이다. 지난해 예산 11억4천만원에 비해 늘었다지만 이는 영진위 전체 예산의 약 3.8%에 해당한다. 지원 편수도 50여편에 불과하다. 올해 인디포럼에만 1041편이 지원한 걸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다. 상업적 영화와 영화산업 지원은 콘텐츠진흥원 등 타 기관이나 민간에 맡기고 그로부터 얻은 예산을 독립영화제작지원에 사용”하길 제안했다.
영진위의 제작지원 심사 기준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동령 감독은 “지난 8년간 공개된 심사위원 구성을 보면 감독 비율이 40% 이상이다. 하지만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임에도 상업 극영화 감독들 위주다. 여기에 여성 심사위원 비율은 20% 정도에 그친다”고 하면서 “‘상업성을 고려해 독립영화를 뽑았다ʼ는 심사평만 봐도 독립영화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말했다. “현재의 독립영화 제작 시스템이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인가, 수익이 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지원을 하고 있는가”도 되묻는다. 김 감독은 A4 한장도 채 안 되는 분량에 심사위원 명단조차 없는 2016년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평과, A4 3장 분량에 심사위원 명단 및 출품작들의 경향까지도 언급해둔 2005년 독립 디지털장편 및 상반기 독립영화 제작지원 선정 결과서를 비교해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정재훈 감독은 “시나리오나 기획 구성안 등 문서 형식으로만 된 제작지원 시스템의 획일화를 탈피하고 이미지와 사운드 등을 기반으로 하는 제작지원 시스템의 신설”을 말한다. 그에 걸맞게 심사위원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고 성별 동일 구성도 요구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 지원금의 현실성
백재호 감독은 “영진위 제작지원을 받은 신청자(창작자)는 본인 임금을 제작지원금 내에서 집행할 수 없게 돼 있다. 영화 제작은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간 지속되기에 수익을 내기 어렵다. 작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제작지원뿐 아니라 창작자가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지원제도 마련이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편 극영화에 스탭 인건비 우선 집행 및 최저임금 준수 의무조항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편 극영화나 장·단편 다큐멘터리도 스탭의 인건비가 현실화돼야 함을 덧붙인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한병아 감독은 단편애니메이션 창작자 대부분이 개인 작업자인데 사업자 등록을 해야만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개인사업자는 지원금에서 창작자 인건비를 책정할 수 없는 점도 문제다. 한 감독은 “복잡한 세무 회계 처리 과정”으로 지원의 문턱을 높이고 회계 처리를 위해 되레 비용을 발생시키는 e나라도움(기획재정부가 국고보조금의 예산편성·교부·집행·정산 등의 전 과정을 전자화해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이다.-편집자)의 전면 재검토도 주장한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재호 감독은 “미개봉 영화, 영화제 미수상작, 단편영화 등은 수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영화들을 국가에서 구매해 학교,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상영하면 어떨까. 제작지원 외에도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영화로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재훈 감독은 “영진위는 공공 라이브러리 기능을 강화하고 한국영상자료원은 독립영화 아카이브를 재개해야 한다. 아카이빙 전문 인원의 배치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 멘토링 시스템 진단 및 성폭력/위계폭력/관계 폭력에 관하여
윤가현 감독은 독립영화계의 위계적 문화를 정확히 비판했다. 윤 감독은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이하 ‘두영찍’, ‘#000_내_성폭력’이 쟁점이 된 이후 2016서울독립영화제의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포럼이 열렸다. 그 후 다큐멘터리 신진 여성감독들이 2017인디다큐페스티발 때 영화제, 영진위와 함께 두영찍 포럼을 열었다.-편집자)포럼을 준비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신에는 선후배 문화가 있다. 이는 멘토, 멘티 시스템과 만나 위계질서를 더욱 강화한다. 신진 감독은 제작지원금을 받기 위해 멘토인 감독과 함께하며 어디까지가 내 영화인지도 모를 영화를 만든다. 조연출만 하다가 자기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그저 ‘감독 지망생’, ‘후배’로 일컬어지기 일쑤다.” 토론자로 참석한 ‘찍는 페미’의 정다솔씨는 “우리 세대 신진 여성 작가들은 영화를 만드는 것도 힘든데 성폭력, 성차별의 고통으로부터 생존 투쟁까지 해야 하는 이중, 삼중고를 겪는다”고 일침한다.
영화제 피칭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윤 감독은 “돈을 받아야 하는 마켓이다 보니 심사위원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더라. 최근 또래의 신진 다큐멘터리 여성감독들끼리 ‘왜 우리가 관객과의 대화 등의 자리에서 두려움 없이 대답을 잘하게 됐을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이 ‘마켓 피칭이나 면접을 너무 많이 봐서 그 어떤 순간에도 내 영화를 지키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훈련된 게 아니겠느냐’고 하더라.” 김동령 감독도 덧붙였다. “피칭은 창작자가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나 소재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자리다. 아이디어만 훔쳐가는 경우가 많은데 제어 장치도 없다. 신진 감독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보고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경만 감독은 제안을 하나 했다. “피칭 제도가 제작지원으로 바뀌길 바란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피칭 예심을 하며 영화제 피칭의 문제점을 생각했고 공개 서한을 발표할 계획이다. 함께해줄 분들의 경험과 의견을 기다리겠다.”
독립영화인 실태조사의 필요성
패널들과 토론자들은 한목소리로 독립영화인들의 실태조사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동령 감독 말대로 “독립영화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통한 문제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찍는 페미’의 임지영씨는 “크레딧 전수조사 등을 통해 여성 노동자 실태조사도 진행돼야 함”도 강조했다. 스탭 구성의 젠더 평등성 지향이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이빙벨>부터 <나쁜 나라> <업사이드 다운>까지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세 편 배급하다 보니, 공적인 지원이 전부 끊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배급사 시네마달)도 앞으로 향방이 난망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개봉을 위해 펀딩에 의존하게 되면서 배급하는 다큐들이 양극화되고 있다.
펀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스타성 있는 감독이나 영향력 있는 분들이 언급할 수 있는 다큐나 세월호 다큐처럼 전국적인 이슈가 있는 작품들 위주로 배급이 편향되고 있다. <자백>이나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흥행도 하고 있지만, 통상 다른 다큐들은 2~3천 명을 동원하는 게 기본이다. 사회적인 이슈가 덜한 작품을 어떻게 배급할 것인가가 제일 고민이다."
<다이빙벨>을 배급한 시네마달의 오보라 홍보팀장이 말하는 '세월호 다큐' 배급 이후 악화된 회사 상황이다. 시네마달은 <다이빙벨> 개봉으로 인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지시로 세무조사 등 내사를 지목당한 배급사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의 개봉 지원 등 예산 지원 선정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내부 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개봉 비용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2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 중 '다이빙벨 상영-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실체 폭로' 등의 대응 방안 등이 포함된 '청와대의 언론 통제ㆍ문화 검열 주요 내용 분석 결과'를 공개한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광부)를 농단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독립영화계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독립영화제2016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CGV아트하우스에서 토크 포럼 '독립영화 배급과 마케팅, 오늘을 진단하다'를 개최했다. 이날 토크 포럼은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가 진행을 맡고, 영화 제작자이자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연출자인 김조광수 감독과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건재 감독, 인디스토리 김화범 이사, 무브먼트 진명현 대표, 시네마달 오보라 팀장 등이 참석했다.
"영진위 싫지만..."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없으면 어려운 독립영화 현실
▲서울독립영화제2016 토크포럼'독립영화 배급과 마케팅, 오늘을 진단하다'가 5일 오후 서울 CGV아트하우스에서 열렸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업영화를 해보니, 상업영화 관련 영진위 예산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상업영화도 흥행 성공이 어렵지만, 산업적인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굴러갈 수 있다. 상업영화에 지원하는 예산만 독립영화로 돌려도 예산 규모가 엄청 늘어날 것이다." (김조광수 감독)
"우리 시대의 공적 지원 제도는 몇 개 지원 제도를 만들어서 그 안으로 들어와라, 이 개념이 아니다. 이 시대의 공적 지원 제도는 네트워크다. 네트워크가, 영진위가 해야 할 일을 사적 기업이나 개개인에게 떠넘기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진보적인 시장들이나 도지사들이 독립영화인들을 만나 '얼마 주면 돼요?' 라고 물을 때면 화가 난다." (고영재 대표)
"영진위 싫지만, 영진위의 개봉 지원이 없으면 당장 독립영화들은 개봉을 못 한다. 상·하반기 두 번 개봉 지원을 해 주는데, 몇십 편이 지원하면 실제로 단 몇 편만 지원을 받는다. 사실 개봉 준비 과정에서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인데 그 지원금이 없으면 개봉을 못 한다. 사비를 들이는 것도 그렇고, 실제로 불가능에 가까운 행위다." (진명현 대표)
상업영화 연출과 제작을 병행하는 김조광수 감독을 제외하고, 토크 포럼 참석자들은 모두 현재 독립영화 제작/배급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독립영화인들의 대표 격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책을 성토하고 나섰다.
대안적인 독립영화 배급과 마케팅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지만, 현재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책이 퇴행한 현실과 그 지원책에 대한 수정과 보완이 필수라는데 다들 공감하고 있었다. 더욱이 MB 정부 이후 정권 차원의 '영화계 좌파 척결'이란 허황된 주장이 계속되면서,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지원 철폐를 비롯해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개봉 지원책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의 <다이빙벨> 내사나 부산국제영화제 압박 역시 연장 선상이라 볼 수 있다.
"상업영화 지원금을 포함한 수백억 원의 영진위 예산을 독립영화에 다 쓰면 해결될 일"이란 고영재 대표의 주장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김세훈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가 주로 3D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렌더팜' 사업에 138억을 쏟아부으면서 지난 국정감사에서 '차은택-김종덕 전 장관과의 커넥션'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진위의 예산 운용이 방만함을 넘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던 이유다. 이와 관련, 독립영화인들은 지난달 21일 시국선언을 통해 영진위와 문체부에 공식적으로 강력한 항의를 제기한 바 있다.
한편, 이날 토크 포럼은 독립영화의 생존과 직결된 배급 환경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인디스토리 김화범 이사는 "대부분 독립영화나 마케팅 비용 없는 영화들에 다양성 개봉배급 지원이 이뤄지는데, 이천에서 삼천만 원이 보통이고 대부분의 독립영화 마케팅 비용이 여기서 결정된다"며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을 해도 비용 자체의 애매함이 있어서 대부분 배급툴이 같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우회적으로 제작사나 배급사 차원의 지원을 병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진명현 대표는 "창작자들도 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한 뒤, "부가판권이 중요해지는 게 먼저 판권을 팔아서 개봉 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서다"며 "오프라인 홍보사가 너무 고생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여타 온라인 홍보사나 인쇄, 포스터 디자인 등 마케팅 시 다른 분야 업체와 비교해 비용은 엇비슷하나 드는 품이 너무 고생스럽다"고 토로했다.
오보라 팀장은 "개봉 라인업을 잡아야 하는데, 영진위 지원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야 잡을 수 있는 현실이다'며 "최근 배급한 <그림자들 섬>처럼 몇 년을 묵혀뒀다 개봉하는 사례도 생긴다. 그런 경우엔 극장을 잡기도 난감하고 홍보마케팅도 단기간에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작은 규모로 개봉해도 오천 명 정도의 관객은 들었었는데, 점점 더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평균 이삼천 명으로 줄었다. 그런 상황을 돌파하는 소위 '중박' 작품이 나와야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사실, CGV아트하우스 등 대기업 계열 배급사는 물론 각종 재개봉 외화들과의 경쟁까지 벌여야 하는 현실에서 한국 독립영화들은 점점 더 힘겨운 배급 환경과의 싸움을 벌여 나가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참석자들은 "영진위의 구조개선"에서부터 "극장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배급 시스템의 도모", "배급/마케팅 영역의 아이디어 개발" 등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참석자들은 독립영화가 어떤 영화로, 어떻게 관객을 만나느냐는 '기본'을 강조했다.
"제작이나 연출과 다르게 배급마케팅 하는 사람들은 관객이 제일 중요하다. 올해 독립영화 진영 잘됐던 영화를 보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들>이나 <최악의 하루>, <연애담>이 그런 경우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분들은 20~30대 여성들이 많고, 7대3의 비율이라고 보면 맞는데, 우리가 무언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여성 관객들이 남자 배우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올해 너무 잘 알게 됐다.
또 관객들에게 부담이 되지 말자는 생각도 있다. 독립영화도 봐야 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선택하는 건데, 왜 자꾸 봐달라고 피곤하게 만드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독립영화들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편안하게 산책 나온 것 같은 느낌의 영화들도 많이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진명현 대표)
"독립영화를 CGV아트하우스가 걸어주느냐 안 걸어주느냐가 중요해졌다. 공감한다. 하지만 거기서 개봉을 안 해도 성공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임무고, 어렵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CGV가 안 틀어줘도 어떻게 관객 만날까 고민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해야 한다. 또 화제성을 갖춘 사람들이 홍보 면에서 도와주면 좋지만, 그러면 그렇지 않은 영화는 만들지도 말고, 개봉은 안 해야 하나? 결국 그런 장점을 포함해서 아이디어를 더 짜내서 관객을 만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김조광수 감독)
이번 대담은 지난 5월, 서울영상집단 김청승감독이 한독협 회원내부 SNS에 올린 “No Competition! No Capitalism!! Boycott the pitching!!! 보이콧에 뜻 모아주실 분들은 아래 메일로 이름과 연락처 남겨주세요.”라는 게시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올해부터 한독협 뉴스레터를 재개한 사무국은 서울영상집단 회원탐방 기사를 통해 김청승감독의 문제의식을 나누고자 기획했다.
관련하여 김청승감독, 이진우감독과의 기획회의를 통해
‘피칭제도는 한독협이 찬반을 나누어 공식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러함에도 비판적 의견에 대해 공론화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의 필요성, 변화된 제도와 환경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의견 공유’를 목표로 단체탐방이 아닌 ‘피칭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의 대담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이야기의 출발은 ‘피칭’에서 시작되었으나 대담의 내용은 독립영화제작환경 변화 가운데 새롭게 출연한 제도를 바라보는 태도, 정부기관의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의 문제점과 독립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지향점 그리고 신진작가들을 위한 환경에 대한 고민까지, 현재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문제와 고민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대안을 찾기 위해 모색해야할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대화하길 제안하고 있다. 장시간 솔직하고 다양하게 나눈 그날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한다.
경순 : 지난 인디다큐페스티발 포럼 때(※참고 : 인디다큐페스티발2015 포럼 '다큐멘터리 피칭을 논하다' http://www.sidof.org/1200) 우리, 반대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에 대한 의견제시는 됐잖아. 오늘 자리는 기존의 문제에서 어떤 식으로 개선되어야 할지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김청승 : 저는 문제점이 공유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디다큐포럼만 해도 직접 와서 본 사람이 몇 안 되고 녹취록이 충분히 읽혔는지도 모르겠고. 피칭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충분히 고민되고 공유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김경만 : 기성 감독들은 참여 경험이 있어서 제작지원과 피칭의 차이를 알아. 하지만 이제 막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피칭제도밖에 못 들어본 사람도 있어.
박경태 : 피칭은 시장을 만들겠다는 거잖아.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 문제는 여긴 시장이 없어. 그래서 외국에서 디시전메이커라고 데리고 오잖아요. 판매자와 공급자를 허허벌판에 던져두고 여기서 시장을 만들어봐라 이런 건데. 수요와 공급을 억지로 만드는 거야. 시장이라는 게 자유경제학에서는 자연발생적이라고 설명을 하잖아. 그런데 한국의 피칭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 ‘쇼’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여러 상황이 맞물려 제작지원이란 이름 자체도 피칭으로 변하고 있는 거지.
김청승 : 통칭 피칭이라고 하면 단순 제작지원의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제작 전반에 걸친 시스템으로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 지원에 선택되기 위해서 기획 단계부터 영향을 받고 배급까지 통으로 휩쓸리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공적자금으로 제작지원 받던 거랑 지금 상황은 달라진 거잖아요. 제작자들과 수요자들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는가, 봤을 때 저는 없었다고 느껴요. 어느 날 새로운 시스템(피칭)이 생겼는데 갑자기 다들 따라가고 있는 거잖아요. 하자 말자를 떠나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검증과정이 필요한건 아닐까, 그래서 운을 띄워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김경만 : 단순히 명칭만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죠. 왜냐면 제작지원 제도 자체가 많지가 않았고, 피칭이 제작지원보다 초과해서 많이 생겼는데, 시장에서 선택하고 싶은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단 말이에요. 시장이 선택하지 않는 영화들이야말로 독립다큐멘터리의 정체성과 굉장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지원제도는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건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로 생각할거냐, 라는 근본적인 질문인 거고. 피칭으로 바꿔지면서 ‘좋은 영화가 뭔가’란 질문을 할 여지가 많지가 않아요. 좋은 영화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건 피칭 제도에 들어가서 뽑는 구매자들의 몫인 거죠. 자본을 회수할 수 있을 만한 영화들. 그러면 그게 과연 좋은 영화냐, 라고 물어봐야 되는 거죠.
박경태 : 현재 한국의 독립피디 같은 경우 생존권이 걸려있어요. 이들은 피칭을 해야 할 이유가 있어. 방송국의 외주제작으로 인한 노예계약 문제 등. 피칭이란 제도 속에서 자율성을 얻을 수 있는 게 여기밖에 없다는 거죠.
김경만 : 내가 반대하는 건 피칭제도 자체가 아니에요. 영화의 스펙트럼이 넓은데 피칭이 맞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어. 그런 상황에 제작지원 제도를 피칭제도로 바꾸지 말라는 거야. 더불어 제작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거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래요.
경순 : 우리는 제작을 해야 하는 거고 독립영화를 한다는 거지. 이 전제로 어떻게 지원을 받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고 배급하는가, 환경인 거야.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야지. 모든 영화를 다 포괄할 수는 없고. 그런데 이전처럼 독립영화진영내에서 독립영화 지원정책에 대해 우리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해왔어. 정권 바뀌고 한독협이 감사를 받고 독립영화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교류나 논의가 없어진 거지. 그러면서 독립영화 활성화도 없어져버린 거지. 이 상황에서 경만의견에 공감해. 다양한 독립영화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에 포커스를 두는 지원이 아니라는 거지, 피칭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일단 피칭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 내가 보기엔 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거야. 독립영화에서 다들 글로벌만 지향하는 건 아니거든, 로컬에서 이야기도 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그게 때로는 역사가 될 수도 있고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해외 디시전메이커들은 대부분 보편적인 정서를 얘기해. 이게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드는 존재 이유를 갉아먹고 있는 건데. 이런 문제의식이 공유가 안 된다는 거야. 나는 그런 면에서 피칭이 문제라는 거야, 피칭제도 자체라기보다는. 영진위의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우리가 계속 의견을 못 내고 지적을 못 해왔다고 생각해.
김청승 : 영진위의 지원제도에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피칭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개인이 거기에 맹목적으로 휘말리고 있다는 게 제 가장 큰 문제의식 이예요. 비슷하게 영화를 시작한 감독들 신다모 내에서, 경험이 적은 감독들과 제작지원관련 워크숍을 해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다른 제작자들의 작업과정을 지켜보기도 했어요. 처음 기획안으로 시작해서 시나리오 수준의 구성안, 그 뒤에 자료들, 촬영목록, 별도로 PPT 자료가 들어가고, 점점 분량 경쟁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상하잖아요, 이게. 이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느끼는 와중에 피칭은 기본 서류에 공개발표까지 요구하고 있으니까. 다큐는 영상을 통한 말하기인데, 기획 단계에서 과도한 글쓰기 능력이 필요해지고, 과장해서 말하면 피칭장에서 배우로서의 자질까지 요구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한명의 제작자에게 돈을 미끼로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진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해 아무도 말을 안 해.
경순 : 하나 물어볼게. 청승은 자기가 벌어서 만들지 않는 이상, 제작지원과정에서 서류심사도 기획안심사도 아니라면 어떤 방법이 공정하다고 생각해?
김청승 : 솔직히 모르겠어요. 서류의 질과 양도 아니고. 그럼 발표로 가능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순 : 잠깐, 청승 생각으로는 제작지원을 다 없애야겠네, 그럼?
김청승 : 사실 저는 피칭뿐만 아니라 제작지원까지도 반대하는 입장이긴 해요. 지난 인디다큐포럼때 강석필PD의 얘기를 듣고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 서류심사로 충분하지 않느냐 라고 했을 때, 강석필PD의 입장은 피칭은 안 되고 서류심사는 된다면 그 기준은 뭔가, 둘이 기본적으로 다른 게 뭐냐, 역질문을 했었어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아요. 제작지원과 피칭이 각각 문제점이 있죠. 하지만 공통의 문제는 선별심사라는 것.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선별심사의 과정. 요즘 TV에서 유행처럼 많아진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다들 불편함을 느끼면서 우리도 비슷한 심사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죠. 저는 단체 운영을 하든 개인적으로 영화를 만들던 간에 지원이라는 게 사람을 의존적, 타성적으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제작지원까지 반대를 하는 거구요.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제작지원까지 다 보이콧 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경순 : 피칭이란 제도 자체는 프로덕션이라는 시스템을 요하는 거란 말이지. 해외처럼 프로듀서가 기획해서 감독을 섭외하는 체제로 일하지 않았던 한국독립영화 환경에서 감독 일인에게 과부하가 일어나고 있어. 또 하나는 피칭을 준비하면서 나의 작품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뛰어들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거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독립영화 환경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김경만 : 피칭을 통해서 좀 더 변별력 있게 고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근데 사실 피칭 제도가 영화를 고르는데 있어 제작지원보다 더 도움이 될까? 난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 굳이 피칭 형식을 만들어 내는 건 제작자를 위한 게 아니라 영화제나 판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느껴져. 그걸 맞춰서 따라가다 보니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거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거지. 제작지원을 가지고 충분히 이 영화가 어떤 건지 얘기할 수 있어. 제작지원을 모든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선별이나 선택이 불가피한 거지만. 피칭이 선호하는 건 그거랑 스펙트럼이 다르다는 거야. 좁다는 거야. 소재 중심의 영화만 선택되기가 쉬워진다는 거야. 물론 선택된 영화들 중에 좋은 영화도 있겠지. 그걸 부인하지 않아. 내가 말하는 건 전체적인 경향성과 중력장, 끌어당기는 힘이야. 그런 식으로 독립영화 판이 시장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거지. 피칭제도 없애라 마라 얘기하기 전에 피칭은 제작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영화예술에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다른 화법을 하는 영화가 있어. 피칭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사실 많이 있다고. 그런 영화들을 어떻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겠어. 제작지원 제도라고 해서 그 영화의 예술성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피칭이란 제도가 깎아먹는 건 피할 수 있다는 거야.
경순 : 백 프로 동의해. 네 사례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구체적인 얘기들이 사례로 나와야지.
김경만 : 내 사례를 얘기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게 선거 때 찍은 촬영분량이 많이 들어가. 그런데 선거 다큐멘터리냐 하면 그건 아니야. 하지만 이번 정권 얘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 소재지. 제작지원 사업은 촬영기간이 제작지원 기간에 포함돼야 하는데 나는 선거 기간 동안만 촬영할 수 있을 뿐이잖아. 그게 맞지가 않아서 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어. 제작지원을 몇 군데 냈는데 제작지원이 안됐지. 안된 이유는 준비를 안했기 때문일 수 있어. 하지만 피칭을 참여하면서 내가 느낀 문제는, 영화제에서 해외 디시전메이커들을 초청하는데 이들이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얼마나 이해가 있냐는 거야. 피칭때 내가 발표한 걸 듣고 해외 디시전 한 명이 질문을 했어, 내레이션을 넣어보지 않겠냐. 이건 몰이해인거지. 이건 내 발표가 그 심사위원들한테 전혀 무용했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이 과정 자체가 영화 만드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안 된다는 하나의 사례인 거지.
김청승 : 예전에 부산영화제에서 제작지원 받고 여러 해외 감독들과 프로듀서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었다. 해외에서는 다큐멘터리는 정확하게 상품으로서 규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1-2명이어야 한다. 이 주인공은 캐릭터가 특별해야 된다. 인물이 재미없으면 사건 자체라도 스펙터클하고 자극적이고 재밌어야 한다.’ 등의 형식이 있는거 같아요.
박경태 : 형식이라는 게 외국이라고 다 일반화시킬 수도 없지만, 문제는 아시아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매년 관심사는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누가 됐다더라, 그들과 얘기하다보면 피칭에 대한 하등의 의심이 없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자기를 발표한다는 거지. 나도 DMZ에서 발표를 했지만 내 아이디어를 노출하는 거잖아. 사람 모아놓고 내 개념, 아이템, 다 말해야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돼. 게다가 청승감독이 지적했듯이 짧은 시간 구매자들에게 모든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형식은 쉽고 소재는 자극적이어야 하는거죠. 하나 더 얘기 해보면 정권이 바뀌든, 정책이 바뀌든 피칭으로 인해서 성과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성과도 없는데 왜 여기에 돈을 쓰냐, 하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는 신기루 같다고 생각해. 영진위, 서영위 제작지원은 성과가 있었단 말이야. 이걸 없애는 건 상당히 부담이 될 거라고. 피칭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돼.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 중 하나야.
경순 : 나 같은 경우,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내가 학생들 피칭준비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여기에만 목매지 마라 하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도전의 기회이고 피칭 하면서 자기 것이 업그레이드 됐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어. 피칭이 이미 우리에게 많이 스며들어 있어.
김청승: 영화제에서 상영관보다 피칭행사장에 사람이 더 몰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제는 영화제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피칭을 어떻게 하는가가 먼저인 거예요.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의 페북 글을 봤는데 이 친구도 막연히 피칭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피칭을 하는 자기 친구를 보면서, 나도 저기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피칭이 유행하는 이유는, 피칭제도를 운영하는 영화제 운영진의 필요성도 있지만 좀 더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을 하고 싶은 감독들의 욕망도 투영된 거고 인정받고자 하는 신진 감독들의 욕구도 투영된 거죠.
박경태 : 정부의 문화정책이 굉장히 신자유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이 신자유주의 문화정책이 피칭하고 유사성이 있다는 거야. 문화정책에서 상업적 성과가 주요 기준이 되다 보니 판단을 민간 자본에게 맡기고... 그것이 서양이면 더 좋잖아요? 국제행사를 저렴하게 치를 수도 있고.. 그래서 피칭이 민영화 같은 거죠, 물론 기간 시설을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 아니기에 억측이 있지만 의료민영화를 보면 유사하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피칭은 사실 규모가 작아. 다른 정책사업에 비해 푼돈도 안 되는데 정부의 주요정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공적자금 때문에 독립영화가 휘청휘청하는, 독립영화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게 비극적인거지.
김경만 : 이 자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비교적 신진작가들이 이것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처음 시작하는 신진작가들에겐 애초에 이런 고민이 없을 수 있잖아.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세상이 그런 식으로 바뀌고 있으니까.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독립영화 판에 들어와서 독립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왜 독립영화가 필요한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 문제가 피칭문제랑 같이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박경태 : 피칭은 공개된 자리에서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문제는, 신진작가들이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기획개발 단계에서 모든 것을 오픈해야 돼, 상품이 되기 위해서. 여기서 저작권 침해 사례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거야. 만들어진 걸 가지고 가서 판매하는 거라면 침해받을 위험이 없이. 그런데 신진작가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얻고 싶고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자기 것을 홍보할 수밖에 없다고. 신진작가들이 굉장히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거지. 피칭이 소재사냥터가 돼서 사냥꾼하고 먹잇감만 남는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영화정책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발언을 해야 해.
경순 : 시장을 전제로 한 피칭은 인천다큐포트 외에 거의 없어. 현재 DMZ국제영화제 피칭은 여러 차례 형식이 바뀌면서 제작지원에 가깝고. 현재 피칭에 참여하는 이들은 신진 독립영화감독과 비교적 경험이 있는 독립피디들이 많고. 피칭을 할 때는 적어도 제작이 50%이상 진행이 돼서 말 그대로 상품으로 만들어질 때 어떻게 배급할지 투자를 받는 거야. 사전제작의 의미에서는 방식을 다르게 가야되는 거고. 이 부분에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봐.
박경태 : 독립피디들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해. 방송에서 외주제작 시스템 말고 저작권 보호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해. 지금 한국의 방송국은 독점 구조잖아. 해외 CBS, BBC, PBS 같은 경우 마케터들이 나와서 찾으러 다닌다고. 그런데 KBS, MBC 그럴 이유가 없거든. 독립피디들이 저작권 보호 받으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제작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힘든 상황에서 저작권을 보호받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영화가 된 거지. 이들은 여기에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야.
경순 : 물론 처음 생겨날 때 문제의식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봐. 독립다큐라는 게 대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걸 고민하면서 지금 방식이 된걸 텐데, 그게 나빴다고는 보지 않지만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가면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거지. 나는 사전 기획 단계에서 저작권 문제나 신진감독들의 피해 문제를 제외하면, 공개 발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봐. 특히 다큐는 사회적 의제가 많기 때문에 관련분야 사람들과 정보공유를 위한 공개발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게 어떻게 보면 배급과도 관련이 있고 홍보를 할 수 있는 거지. 이건 대안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들어줘.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영화제에서 제작지원 작품 공개발표가 있다고 했을 때, 투자할 사람에 한정된 게 아니라 작품과 관련 있는 학교, 단체, 기자들을 초청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지. 이러면 좀 생산적인 공개발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거야.
김경만 : 피칭이건 아니건 명칭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공개적인 발표라는 형식을 통해 경쟁을 시켜서 돈을 주는 거 자체가, 거기서 골라지는 선택지가 협소하다는 게 문제지. 그래서 계속 얘기를 하는 건데. 사람을 뽑아서 발표를 하는 건 알아서 선택할 문제야. 하지만 흐름이나 제도가 새로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해 볼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모두 알고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양성의 문제거든. 결국 독립영화가 기대고 있는 게 다양성이란 측면인데, 그걸 깎아 먹고 있는 게 시장의 확대니까 시장에서 선택되는 게 항상 팔기 쉬운 거잖아. 물론 독립다큐 중에도 거기에 선택될 수 있는 사람들 있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앞으로 많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 영화는 앞으로 더 만들어지기가 힘들어질 거라고. 그랬을 때 우리가 보지 못할 영화들은 어떤 걸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새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다른 형식의 영화를 많이 봐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수가 없겠지. 그 정도만 공유되어도 나는 좋겠다고 생각해. 그 정도도 공유되어있지 않다고 나는 보는 거야. 특히나 신진에게는 워낙 생존의 길이 좁으니까 피칭이라도 해서 영화를 만들고 지속 하는 게 중요하겠지. 피칭을 없애자는 얘기도 아니야. 전체적인 흐름과 경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거야. 특히나 이런 마이너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한테는 정체성 측면에서.
김청승 :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들, 완전 신진작가들이 아닌 이상 알고는 있을 거예요. 자기모순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자기 작업의 방향과 작업을 하는 방식이 충돌할 거예요. 근데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건데, 언제까지 이걸 참고만 있을 거냐는 질문을 하고 싶어요. 다들 너무 바로 코앞만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영화가 다양해지는 게 독립영 화의 가치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 영화가 자본을 얻어내는 방식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이걸 누가 해요. 다들 내 영화 만들어야 된다고 코앞만 보고 있는데. 저는 내가 만드는 영화가 대중영화나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영화란 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 피칭 시스템은 불특정다수를 위한 영화를 지향하고 있고 참여자들도 그런 방향으로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독립피디들이 지향하는 바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금 이게 섞여 있는 거잖아요. 적어도 독립영화를 한다면 독립다큐멘터리스트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것 아니냐, 가끔 그런 질문을 해요. 그럴 때 꼭 ‘독립’이라고 해야 해? 나는 그냥 ‘다큐멘터리스트’야, 이런 식으로 대답한단 말이죠. 특정 단어를 떼어내버리는 것이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버리는 거죠. 이게 쌓여갈 때 제작환경이나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경순 : 많이 걱정되지. 그게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인거지,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문제들, 피칭이 만들어낸 문화열풍 때문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게 다 피칭 때문일까는 생각해봐야 해.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 특히 독립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풀이 너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봐. 옛날에는 한독협의 다큐분과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독립다큐가 한독협 다큐분과로만 묶이진 않거든. 이런 의견이나 분위기를 모아낼 수 있는 풀이 없어.
김청승 : 한예종 친구들, 신다모, 한독협 다큐분과 등 풀이 없다기보다는 풀이 너무 다양해진 거 아닐까요? 요즘 영화제나 뒷풀이 자리 가면 그룹별로 앉아 있잖아요. 각 그룹별로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닌데 따로따로 교류하고 있다는 거, 그게 이전과 달라진 지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경순 : 그게 환경이 달라졌다는 걸로 볼 수도 있어. 예전에는 혼자 영화를 만들었다면, 2000년대 전후로 영화가 흥행하면서 중고등학교까지 영화과가 생겨났잖아.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거지,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내가 말하는 풀이란 건, 달라진 환경에서 우리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흐름을 공유할 틀이 없다는 거야, 각자 얘기들은 되게 많으면서도.
김청승 :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거 같아요. 반면에 제작지원 정보, 피칭 정보는 활발하게 주고받는다는 거죠.
박경태: 나는 워낙 고립되어 있어서 잘 모르지만, 김청승 감독이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 우르르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웃음). 지니고 있는 생각들을 좀 더 공개적으로 나눴으면 좋겠어. 여러 단위가 다양하게 생겨나는 상황에서 각 단위의 요구들로 전파진흥원이나 콘텐츠진흥원, BCPF 등등 기관과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외부에 있다는 거야. 전략적으로 우리가 지닌 문제들에 대해 노력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토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를 모으고 실태조사도 하고. 독립다큐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고 처한 위치나 상태도 다 모르잖아. 비판을 뒤에서만하지 않고 구체적인 팩트와 대안, 전략을 위한 공론화가 중요해.
경순 : 경만이 얘기했던 영화의 다양성이 없어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이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이 협소해지는 것이 큰 문제의식이야. 기존에 작업하던 이들은 힘들다고 해도 각자 만들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신진들은 다르다는 거지. 이 문제가 우리가 짚어야 할 문제들 중에 정말 중요한 문제다, 피칭을 없애냐 마냐가 아니라. 우리랑 똑같은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라는 게 아니고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고민을 파고들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환경을 만들 것인가, 그러려면 우리가 모여야 하는 거지. 모여서 논의를 깊이있게 해야하는 거지.
김청승 :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되는데 없잖아요, 자생력이. 상대가 기업이 됐건 정부가 됐건 다 기대고 있으니까. 우리가 가진 게 너무 없고 한정적이다 보니까, 피칭이건 뭐건 쇼를 하라 그러면 할 수밖에 없고.
경순 : 제도가 없어서 영향 받는 것도 있지만 제도와 무관하게 우리가 만들어낼 건 없는가도 고민해야 돼. 지원에만 의존하면 만날 휩쓸릴 수밖에 없고. 우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할 건지. 다들 힘든 상황이지만, 아이디어를 모으고 서로 조금씩 투자해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거지. 지금 영진위, 문제가 많아. 그렇다고 계속 영진위하고 싸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거야. 빈틈에서 정책적으로 대안을 만드는 게 필요해. 생각들을 모으면 아주 방법이 없지 않다고. 우리가 네트워크를 안 만들어서 그런 거지. 시작을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이게 문제지. 경태가 이야기하는 것도 아이디어가 좋은 게 많단 말이야. 오늘 멤버가, 사실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었던 멤버야. 우리가 당장 어떤 대안을 만들지는 못해도 어떤 환경과 어떤 분위기로 할 수 있는지 느슨한 대화모임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조직,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공식, 수다, 이런 식으로 생각 있는 사람들 먼저 모여서. 다들 그런 고민 있잖아?
뚜껑을 열기까지는 그누구도 관심이 없다가 개봉이 되어서야 그것도 개봉된 몇편의 영화들 중 좀 뜬다하는
영화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비평이든 호평이든 반응이 있다.
그러니 그런 반응은 고사하고 이런 영화가 있었는지도 모르는체
제작을 묵묵히 하는 수많은 감독들은 외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해야하는 이 구조는
그래서 치열하고 고통스럽고 눈물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독립영화라는건 그래서 또 참 재밌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만큼 힘들다는 건 그만큼 리얼하다는 이야기고
몸빵해야 하는게 많다는건 애정도 미움도 상처도 열받는 일도 많아
그만큼 뜨거운 현장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그속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아쉬운건 별거 아닌 상업영화 제작현장이야기는
별 사소한 이야기까지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이런 독립영화의 제작과정과 현장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그래서 <산다>제작팀이 제작발표회를 생각했고
소박하게 각자의 장기를 모아 제작과정을 관심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마지막까지 제작이 잘 끝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실분을 찾기위한 거였다.
한달전부터 이것저것 후원엽서를 비롯해서 준비를 시작했고
재주 많은 양미피디는 술과 잡채와 김치를
황혜림 피디와 조연출 아람은 열심히 홍보와 노가다를
KT의 왕언니 미영피디는 사람들을 조직 했다.
미례감독은 조용히 뒤에서 빠진 것들을 체크하고
나는 각자 맡은 일을 너무도 잘하는 그들을 지켜보는 재미에 빠졌었다.
그리고 당일 몇명이나 올지 가슴설레며 공간을 셋팅하고 준비하는 사이
불쑥 불쑥 빠진것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홀라당 나가버렸음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날때마다 에너지가 조금씩 채워짐을 느꼈었다.
전화로 초대한 사람들보다 알아서 찾아와준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 모두 작품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느껴져 제작팀의 책임감도 당근 더해진다.
물론 가장 힘받고 가장 책임감을 느낄 사람은 누구보다 <산다>의 김미례 감독이겠지만
이런 제작발표회가 독립영화를 만드는 모든 친구들에게
그리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친근한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KT노동자들의 이야기지만 주인공들의 민감한 사안을 고려해서
영화의 주요내용은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왜 이시대에 귀기울일 이야기인지는
고정갑희 선생님이나 조돈문선생님의 이야기와 더블어 풍성해 졌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사회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한편의 영화로 이야기되고 발견되는 많은 것들은
관심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풍성한 이야기로 재탄생되리라 믿는다.
다시한번 <산다>제작발표회에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김미례 감독이<산다>를 완성하는 날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도 부탁드린다.
친환경으로 음식을 만드는 유선에게 특별히 주문한 브라우니와 주먹밥 그리고 발효빵이 주 메뉴였고 양미피디가 전날 뚝딱 만든 콩나물잡채와 김치 그리고 직접만든 맥주와 국화주,허니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을 보고 흐믓해 하는 김미례 감독.^^
이날 사회를 맡아준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 김동현.
프로젝트와 컴퓨터 연결을 준비하는 황혜림 피디.
KT새노조위원장 이해관. 이해관 위원장은 거의 감독처럼 일하고 김미례 감독은 위원장처럼 일한다는 소문이...ㅎ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고정갑희선생님과 이대 사회학과 조순경선생님, 카톨릭대 조돈문선생님,다양성포럼의 양기환사무국장,재일교포 김임만 감독,안해룡 감독,강석필 감독,홍형숙 감독,아오리 감독,인디플러스 허경 등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었다.
지구지역 행동네트워크의 대표이자 한신대교수 고정갑희 선생님의 노동을 새롭게 봐야한다는 말씀.
옆모습의 이 남자는 4월에 있을 마지막 촬영을 해줄 최정순 촬영 감독.
김미례감독의 전작 외박의 주인공이자 현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눈물많은 애정녀 이경옥 전 홈에버노조 부위원장님.
<산다>를 제작중인 이날의 주인공 김미례 감독. 열심히 제작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김미례 화이링!!ㅎ
<산다> 제작팀의 황혜림 피디와 강양미 피디.
<산다> 제작팀의 인물관계도를 재밌게 피티로 준비를 해서 설명을 하는 양미. 전날 이거 준비한다고 밤을 꼴딱새고 비몽사몽...ㅋ
<산다>제작팀의 김미영피디. KT의 노동자이면서 <산다>의 프로듀서를 함께 맡아 제작팀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이쁜이.
이날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준 KT의 노동자들. 지방에서 오신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산다>의 음악감독 김병오의 추천으로 축하공연을 해준 판소리 전문 노래패 바닥소리의 최용석님과 고수 조정희님.
나의 싸움은 지지않았다를 만든 안해룡감독의 응원메세지를 보내며 자신도빨리 새작업을 해야겠다는 다짐도.안해룡 화이팅!!
문화다양성 포럼의 양기환 사무국장,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먼저 가려고 하는걸 붙잡아 끝내 한말씀 해주셨다.
동네친구이자 잼다큐 강정을 함께 만든 홍형숙 감독.이날도 동네차림으로 어슬렁 찾아와 결국 마지막 응원메세지와 함께 건배제의까지 많은걸 해주었다는. 홍형숙 감독은 현재 낭군 강석필 감독이 만든 <춤추는 숲>개봉을 위해 프로듀서로 열심히 뛰고 있다.<춤추는 숲>도 화이팅!!!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짐을 날라다 준 사람들이 다시 김미례 감독의 집에서 일잔. 제작발표회에서 남은 음식이 이시간 작살이 났다.양미피디가 만든 술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주문제작 가능하니 양미피디에게 연락하기 바람.^^ 제작팀들 모두모두 수고 많았습니다.<산다>가 멋지게 나올때까지 화이팅팅팅!!!
언제뵈도 귀여운 테라와키 켄 선생님. 핑크영화제와 일본영화제로 한국에 자주 오시는데 요즘 부쩍 더 자주뵙게 되네.ㅎ
종이그림으로 작품활동을 많이 하고있는 이승오 작가의 그림이 개관식에 맞추어 전시되고 있다.
제품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나질 않는다.우자지간 졸라 퀄리티 좋다는 사운드와 영사시스템.ㅋ
개관작으로 선정한 더 헌트. 영화는 너무 좋았고 하두 펑펑 울어서 옆에 앉은 혜란이 울보라고 놀렸다.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할말이 많아 추후로 넘겨야 할듯.안보면 후회될거란말만.^^
중앙대영화과 주진숙 교수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
저 무리안에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계셨다.ㅎ
드디어 개막식.앞에 걸려있는 스크린으로 야외상영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축하공연을 해준 음악가 송솔나무.드라마 주제곡을 많이 연주했다고 한다.이날 그가 소장한 피리중 10개를 선물로 기증했다.
아이쿠 귀여운 군밤장수아재 납시었네. 송환의 김동원 감독.
테라와키 선생님과 일본의 감독들 축하인사.테라와키 선생님이 나에게 사카모토 준이치 감독을 인사시켜 줬는데 그가 누군지 몰라 그냥 하지메마시떼 했다는...가운데 안경쓴 사람이 사카모토 준이치 감독.
정상진 대표의 인사말. 그는 개관식 중간 스피커가 나가자 잽싸게 뛰어가 응급처치를 할만큼 마당쇠형 대표다.그니까 이쁘다는 이야기.ㅎ
아트나인의 또다른 주역 주희 이사. 일본통이기도 한 그녀는 정상진대표의 오른팔? 왼팔? 우자지간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적인간. 이날 경품 추첨이 있었는데 내가 계속 안되자 주희는 남은 번호표를 다섯개나 밀어줬는데도 안됐다. 결국 그날 경품중 아웃도어잠바가 있었는데 자기가 받은걸 나에게 넘기겠다는 이쁜 말을 했다.강탈 아님.ㅋ
영화관에서 기념품으로 준 컵에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말이 적혀 있었다. 영화관주의. 헐...그래 영화관주의가 널리 퍼지기를 진심으로 바람.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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