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6. 3. 10. 02:39

몇주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있는 순옥언니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소공인을 알릴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조언을 좀 해달라는 거였다.

소공인이라니....내머리속에 없는 단어여서 뭔가 싶었다.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는 검색을 하기 시작했겠지.

소공인에 대한 것보다는 사실 언니가 4년간 국회에서 뭔일을 했는지 궁금해서 였다.

10년전 창신동에서 수다공방을 할때 퍠션쇼에 상영할 영상을 만들어줄때 보고

몇년전 이소선어머님이 돌아가신후 장례식장에서 잠시 보고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거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그런가보다 했고 사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사실 속으로는 국회에 왜 들어갔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나의 무심함만큼이나 그녀의 활동을 알만한 기사도 별로 없었다.

그녀의 트윗은 조용했고 그녀의 블러그는 소박하다못해 촌스러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언니를 만났다.

막상 간만에 언니를 만나니 왜케 반가운지 우리는 한동안 정신없이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니의 4년간의 의원생활이야기로 넘어갔고 소공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헉...웬일이니...모든게 너무 놀라웠다.

소공인은 10인 이하의 소규모제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창신동의 봉제공장부터 문래동의 철공소 그리고 가방,신발 등 손기술로 수제작업을 하는 사람들.

한때는 수출역군으로 한국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3D업종으로 몰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곳.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의 80%를 차지함에도 단군이래 그들을 위한 법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곳.

사람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공돌이 공순이 미싱사 기술자의 연장선으로만 생각되는 곳.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그곳을 위해 순옥언니는 4년간을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돌이 공순이가 아닌 소공인이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선사했고

그 이름으로 소공인을 위한 특별법까지 만들어냈다.

그뿐이 아니었다.2015년에 소공인 특별법 시행령이 떨어지면서 전국의 688개의 소공인 집적지를 분류하고

집적지마다 소공인특화센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소공인들의 전문화된 손기술을 장인정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들을

국회의원이 된 첫해부터 매해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데 난 왜 이걸 여태 몰랐던거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왜 알려지지 않았던거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즈음 언니가 그랬다.

4년동안 숨가쁘게 달려오며 일단 법은 만들었지만 정작 할일은 이제부터야.

그런데 사람들이 아직 소공인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고 인식도 여전한거 같아.

나는 제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일자리도 해결되고 경제도 산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소공인을 좀 알렸으면 하는거고 뭔가 영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나는 간만에 가장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 국회가 입법기관이었지 하는 새삼스런 생각도 했다.

그저 정치판이 짜증나고 민주당이고 국민의당이고 국회와 관련된 기사는 대충 패스했던 이유도

그들에게서 단한번도 정책다운 정책에 대한 희망을 본적이 없어서였던거 같았다.

그런데 소공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신선했고

심지어 그녀의 국회 생활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약간의 미안함과 함께 그녀의 뚝심과 비전에 감동까지 먹었다.

젠장...조언이 아니라 내가 직접 영상을 만들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언니에게 거꾸로 제안을 했다.

내가 보기에 언니가 뭔일을 했는지를 알리는게 더 필요한거 같아.

언니는 웃으며 수긍했고 나는 바로 영상제작에 돌입했다.

그리고 2주만에 뚝딱 8분짜리 작은 영상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소공인을 만났고

순옥언니에게 말로만 듣던 소공인들의 현실도 보다 구체적으로 보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전순옥이 어떤의미인지를 새삼 알게되었다.

물론 그말은 거꾸로 전순옥에게 소공인이 어떤 의미인가를 알게되는 과정이기도 했고.

58년간 양복재단사로 살아온 한 장인이 나에게 그런말을 했다.

자기는 처음에 전순옥을 믿지 않았다고.

전태일의 동생이라고 해서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시다를 했다고 해서

영국에서 노동학박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소공인을 위한 입바른소리를 한다고해서 믿음이 가는건 아니라고.

근데 전순옥을 만나면 만날 수록 이 사람이 장난이 아닌거야.

이바닥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더 이바닥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바닥에서 고민하는 사람들보다 더 문제들을 잘알고

심지어 새누리당을 지지할 만큼 보수적인 사람들도 움직이게 만드는데

어떻게 전순옥을 안믿을 수가 있나.

전태일은 모든 노동자들의 정신이고

이소선은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잖아.

그래서 내가 전순옥의원한테 이름을 붙여줬어.

모든 소공인들의 친구라고.


우자지간 흐믓했다.

그리고 언니가 기특했다.

그래 내가 보고 싶었던 국회의원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해내야 하는 곳인지도 새삼.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정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정말 정말 여성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소수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이

무엇보다도 예술가로 살아도 그리고 수입이 적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가 현실이 되는 정책들이 

그리고 제발 대기업중심의 천만영화보다 작은영화 천만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들이 마구마구 나오기를....

젠장 이 나라는 만들어야 할 정책들이 너무 많구나.

우자지간 이번 총선에 그런 국회의원들이 많이 발굴되기를 간만에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혹시 소공인과 전순옥이 궁금하다면 영상도 한번 봐주시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OaKWMDZxAbQ


영상물을 전해주러 갔다가 보좌관에게 전순옥의원 블러그 사진 좀 멋지게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보좌관이 그런다. 의원님이 그런 사진 따로 찍는걸 너무 싫어한다고.

그래도 나 있을때 한번 넌즈시 말해보라고 했다.내가 훈수를 보태주겠다고...

보좌관이 슬쩍 말을 디민다.의원님 이번에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소공인들과 사진한번 찍으시는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원님 버럭 하신다.

있는 사진으로 쓰면되지 뭘 그런곳에 시간을 써.

그래 사람들에게 안알려지는게 이유가 있지.암...하면서 의원회관을 나왔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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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7. 17. 11:32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매춘부,창녀,성매매여성이라는 말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성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확연히 다른 의미가 있다.

마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되면서 노동자가 노예가 아닌 한사람의 인간으로

권리가 있는 노동자로 인식됐을때처럼

성노동자들도 한사람의 주권자로 인간으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 할 수 있게됐다는 사실이다.

어떤 주체로 이땅에서 사느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예우가 달라지는 문제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라는 말은 바로 그 주체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성노동자권리 모임 지지의 활동은 척박한 이사회의 무지함에

참 신선한 자극이고 힘이다.

아직도 현장의 성노동자들이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입과 몸이 되어 목소리를 전하는 다양한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노동과 관련된 주제로 다양한 토론회를 열고

현장의 성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작년부터는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연극공연을 시작했다.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만23/169/73>을 첫공연으로 올렸고

성노동자를 피해자나 사회악으로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사고를 유쾌하게 비판하는 

<똑바로 나를보라>를 두번째 공연으로 작년에 했었다.

그리고 변방연극제에서 며칠후 하게될 새로운 연극 <똑바로 나를 보라2>는 

관객참여 형식의 오픈공연이라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된다.

출연진 모두 지지의 회원들이고

그들모두 각자의 직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을 위해 뭉쳤고 조만간 관객들과 만난다.


내가 알고 있는 성노동자에 대한 지식이나 인식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똑바로 나를 보라2>를 통해 생생하게 경험해 보기를 강추한다.

우리는 정말 성노동자를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사회는 똑바로 보는 일조차 종종 대단한 사건이 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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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5. 30. 16:21

사실 1차 편집본이 일찍 나왔다.

이번에도 해외 촬영분이 많아서 번역이 골치기는 했지만

전작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겪었던 말과의 전쟁에 대한 혹독한 경험이 피와 살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좀 효율적으로 수월하게 넘어간거 같다.

물론 그 과정엔 단지 지난 경험이 반면교사가 된 것도 있지만 

사전제작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전작을 찍을때는 사전제작비 없이 시작해서 여러곳에 지원서를 넣어 하나가 되면 필리핀 찍고 

다시 여러군데 지원을 해서 또 하나가 되면 국내를 찍고 더이상 안될거 같으니 

제작위원을 조직해가면서 일본 촬영을 찍곤 했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도 충분하지 않다보니 스텝들이 온몸을 불사르며 스스로 통역하고 

스스로 재정을 관리해 가면서 모든 일을 자체 해결해야 했었다.

그만큼 기간이 늘어나고 누수되는 시간이 많았지만

모든걸 함께 논의하고 모든걸 함께 공유했던 시스템.

그게 내가 원하는 제작시스템이었고 그걸 즐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래야 결과물에 대한 자양분이 좋은 것이든 안좋은 것이든 모두에게 흡수될테니 말이다.

돈보고 일한 것도 아닌데 그거라도 챙겨야 남는거 아닐까 하는 나름 독립영화제작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노력을 포기하고 많은 부분 인건비로 대체를 했다.

첫째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래서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셋째는 누수되는 시간을 줄여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프러덕션을 생각했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스텝들과 일을 하게 됐다.

스텝들에게 각자의 역할 이외에 모든것을 나누거나 요구하려 하지 않고

나는 내일에만 신경쓰며 감정소모를 줄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지통역과 번역에 많은 돈이 들어갔고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결했음에도 여러나라를 찍다보니 촬영비도 솔찬이 들어갔다.

물론 많이 들어갔다 함은 쓸 수 있는 제작비의 기준에서다.


우자지간 그런덕에 나는 이번 작업에서 스텝들과 처음부터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부담하는

모든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좀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후반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충분한 제작비를 마련하지는 못한덕에 

결국 사무실을 빼고 마무리는 혼자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가 되긴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정산을 비롯한 번역이 어느정도 되었기에

혼자서 편집을 해도 견딜만은 하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면에서는 혼자라는게 편하기도 하다.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감정이 참 묘하다.

각기 다른 프로덕션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다르기 때문인데

무엇이 더 좋은 것일까는 쉽게 단정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전작과는 다른 프로덕션을 가동하면서 누수되는 시간은 벌었지만

전작과는 또 다른 감정소모가 분명 있었고 해결하는 방식도 달랐다.

돈을 받는 만큼이라는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관계가 분명 있었고

그 기준이 일을 하는 기간과 방식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프러덕션이 주는 스텝들과의 성취감과는 다르게

이번 작업의 스텝들이 주는 새로운 면도 있었다.

받고 준 만큼 이외에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움이랄까.

물론 이 말은 좀 씁쓸하기는 하다.

영화가 너무 감독 중심으로 사고되는 이기적인 면이 강조됨으로.


그러니 무엇이 더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그 작업에 맞는 프로덕션이 있는 것 뿐일터.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독립영화제작에 필요한 프로덕션이 어때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험임은 분명했던거 같다.

2차편집본을 이틀만에 뚝딱 해치우고는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경써야 할 것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 잘 조절하면 참 많은 시간을 벌어준다는 사실.

물론 그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눈 딱 감고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고.

대표적인게 역시 누적되는 제작비의 빚을 모른체 지나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3차 편집본은 편집감독과 함께 하기로 했다.

누구보다도 이번 작업을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친구라 기분이 좋다.

2차 편집본을 어떻게 다듬어 놓을지 기대된다.

기다림은 지루하니 내일은 간만에 암벽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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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4. 16. 22:59

몇주전 안과를 다녀왔다.

1차 가편본이 나올즈음 왼쪽눈에 이상이 왔기 때문이다.

다른곳이 아프다면 병원가기를 미루었을텐데

한참 편집을 하는중에 모니터가 안보이니 나도모르게 바로 달려가게 되었던 것.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만 의사가 그런다.

눈에 구멍이 났어요

헉...


망막뒤에 있는 일종의 필름역할을 하는 막에 구멍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세혈관의 피가 새고있어서 눈이 뿌옇게 된거라고.

레이저로 간단히 수술을 할 수 있으니 오늘 하고 가라했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제는 별걸 다 한다 싶었다.

대체 내가 모르는 몸의 불상사는 또 무엇이 남았을지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공을 확장시키고 마취제를 뿌리고

전기고문 하는것 같은 레이저빛을 수십번 쏴대더니 일단 봉합이 됐다.


봉합은 되어 더이상의 피가 새지는 않지만 수술부위의 상처가 남았는지

렌즈에 낀 커다란 먼지처럼 앞을 볼때마다 커다란 돌멩이가 왔다갔다 한다.

레드마리아를 촬영하다 일본에서 오른쪽 눈을다쳐 각막이 찢어졌었는데

레드마리아2를 만들면서는 왼쪽눈에 빵꾸라니.

우자지간 그후 나는 땜질해 놓은 뿌연눈으로 모니터와 싸우고 있다.

몇일전 촬영을 나갔다가 안그래도 초점 맞추기가 힘든판에

땜질한 눈으로 초점을 맞추느라 똥을 뺐다.


젠장...사는게 뭐 이렇게 코메디인지.

그런 코메디같은 일에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더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오....이건 아니지.

그렇게까지 손해보며 살 순 없지 하고 생각을 바꿨다.

세상의 구멍난 곳을 보다못해 내눈에 구멍까지 생긴거라고.

그러니 내눈에 구멍은 더 많은 구멍을 대비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근데 역시 그런 딸딸이는 안 통하나보다.


일이란게 엎친데 겹친다고 사무실도 4월말에 빼야하는데

오늘 집주인이 집을 빼달라고 하고

돌아가신 능곡엄마집도 빨리 짐을 빼달라고 독촉이 동시에 온다.

도무지 계획적으로 살 수가 없다.

원래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상은 좀 질서가 있어야하지 않나?ㅎ

여기저기 생각지 않은 구멍들이 점점 쌓이는데

이러다 맨홀붕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집을 빼줘야 한다고 수림에게 메세지를 보냈더니

이 친구가 더 난리다.

엄마 그럼 우리 어떻게....훌쩍훌쩍

엄마 9월안에 영화 완성해야 한다믄서...훌쩍훌쩍

그냥 버티면 안되나....훌쩍훌쩍

....

이친구 아직 산전수전을 한참이나 더 겪어야 할판.

아니 뭐 이정도를 가지고 훌쩍이기까지.

이런건 껌이야 수림아.

니가 진짜 힘든일을 못겪었구나 고주알메주알....


엄마답게 몇마디 씨부렁 거려줬더니

웬지 뿌듯.

근데 왜케 마음이 편한거냐.

이것도 좀 문제는 문젤세.

정작 머리 아픈건 편집 할 시간을 졸라 빼앗기겠구나 하는 것.

젠장 고관절이나 빨리 낳았으면 좋겠구나.

암벽이나 실컷 다니고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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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1. 15. 02:34

아직 완벽하게 번역과 프리뷰가 끝난건 아니지만 지난 연말 

정확히 12월 27일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촬영내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구성 방향이 프리뷰를 하면서 조금씩 수정이 되고

일단 느슨하지만 편집 방향이 좀 잡혔다.

그리고 직접 내용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좋은 그림이 많구나 새삼 놀라기도...ㅎ


우자지간 그렇게 연말과 연초를 보내면서 한달전에 올린 후원금통장은 뒷전이 됐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보겠다고 했지만 이 한겨울 떨어질 감이 어디 있겠나 싶기도 했고.

세명의 후원자가 보내준 후원금이 바닥을 치게 되어서야 

혹시나 싶어 통장을 찍어보았다.

허걱.......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50만원짜리 감이.ㅎ

이미 통장에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후원금을 넣어준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후다닥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제서야 친구가 줄줄이 후원금을 보내게 된 이야기를 말해준다.

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이제사 놀이방에 좀 다니게 되서

일주일에 한번 동네에 있는 콘도 청소 알바를 했다고.

그리고 12월 한달간 일주일에 한번씩 5일 일해서 번돈.

그돈을 후원금으로 투척해서 너무 마음이 좋다고.


젠장 이 지지배는 늘 이렇게 사람을 놀래킨다.

순간 눈물이 쭉...

아 썅...너무 행복해서 미치겠다.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를 더 흐믓하게 만들어 주는건

이친구가 요즘 돌이 겨우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아이가 생겨서 다채로운 삶을 느끼는건 좋지만 벌써 아기는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좀 허전하다고.


'....

아이한테서 새삼스럽게 인생을 배우고 있어. 

멈추어 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될 때까지 수백번을 다시 시도하고,  
마치 오늘 하루가 끝인 것처럼 미칠 듯이 놀고, 늘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해하고, 아기의 삶에서 인생의 비밀을 보는데, 난 아직 그걸 내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네.
여튼, 오늘 두시간 넘게 낮잠을 잘 자고 있는 아기가 얼마나 예쁜지. ㅋㅋㅋ
그리고 영화 잘 만들어야 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명료하게!! 
나 요즘 정말이지, 너무 단순하게 살아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거든
.....'

하하하..어찌나 재밌고 실감나는 글인지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서 키득거리며 몇번을 읽었다.
아기가 벌써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는 그 말이며
그걸 벌써 알아 챈(?) 친구의 허전함이며...크크크
갑자기 며칠전 남대문시장에 등산용품 구입하러 갔다가
주인할머니로 부터 뜬끔없이 염색 좀 하고 다니라고 충고아닌 충고를 들었던 생각이 겹친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에게 들었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대충 넘어갔을텐데
칠십은 족히 넘은듯 보이는 어르신이 그런말을 나에게 하니....하하하
그 날도 비슷하게 혼자서 계속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오늘도 역시 비슷한 감정이 계속 나를 웃게 만든다.
대체 이건 무슨 화학반응인지...ㅎ
그날도 그 웃음이 묘하게도 나를 참 오래 흐믓하게 했는데
오늘 이 웃음도 오래동안 나를 설레게 할거 같다.

우자지간 중요한건 감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를 위해 쉽고 명료하게 영화를 잘 편집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하하하

요즘 자기 삶을 찾아간다는 이 친구를 보니 에너지가 듬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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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2014. 12. 9. 17:23

요즘 사무실이 온통 컴퓨터 자판소리로 뒤덮혀있다.

각자 헤드폰을 끼고 한사람은 번역을 하느라

한사람은 프리뷰를 하느라

그리고 나는 촬영본을 보면서 편집구성을 한다고

손들이 바쁘게 자판위에서 논다.

사이사이 촬영도 나갔다가

서둘러 들어와 우리는 또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판이 눌러지는 만큼 영화의 내용이 풍성해 지면 얼마나 좋을까.


몇달전부터 제작비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고민만 하고

후원회며 제작위원이며 꾸려볼까도 생각만 하고

친구가 알려준 여성재단 지원금도 지원해 볼까 마음만 잠깐 써보다가

결국 버틸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현금서비스와 대출만 늘리고 있다.

영화제작만큼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야 모을 수 있는 돈이기에

예전처럼 남아도는 에너지가 부족한 나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을 하게된다.


그렇게 조금만 더 제작에 집중하자고 마음이 쏠리는데로 가자니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당장 해결해야 할 밥값조차

이제는 더이상 빼먹을 대출이 없다.

마이너스통장 만든다고 설친게 불과 한달도 안된거 같은데

그놈의 마이너스 통장도 이미 받은 대출금에 연봉도 2500만원이 안되는 부류라고

겨우 500만원 밖에 안됐는데 

그동안 쌓인 현금서비스 막고 카드를 막고나니 

순식간에 마이너스 500이 통장에 써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으자니 그 시간만큼 제작에 누수가 생기고

제작에만 몰두하자니 후반작업과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식비조차 흔들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을까를 고민하다 일단 덜컥 후원금 통장 하나를 만들었다.

당분간 더 집중하자고 지금 고갈된 에너지를 그나마 제작에 집중하자고.

그래서 아주 게으른 방법으로 후원금통장 하나 만들어 놓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보자고.

지난달 일본촬영때 자신의 강연료를 후원금으로 건네주었던 야마시다 영애 선생님의 마음을 쌈지돈으로

통장에 넣었더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아는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 선생님도 후원을 해주셨다.

그렇게 12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음악,색보정,파이널 편집,사운드,번역 등등 후반작업과 남은 촬영 진행비까지 최소한 4천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그 큰 돈이 '감'으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작은'감'을 기대해 본다.

앞으로 두세달 제작에 더 집중을 하고 그렇게 '감'이 되어준 분들을 모시고

중간제작발표회를 준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블러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서 누가 이글을 읽을지 잘모르겠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감'이 쌓이기를 욕심내며...다시 편집기를 켠다.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우리은행 1002-352-635167 예금주 김해진

연락처 redmaria@tistory.com


* 김해진은 레드마리아2 제작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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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10. 28. 12:43

며칠전 일본에 사는 레드마리아2 주인공 중 한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 촬영을 위해 하루종일 빡세게 몸을 좀 굴렸더니 지금까지 후유증이 심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날 하루가 아니라 나는 이미 도쿄에서 그 분을 찍고 있어야 했고

한국에 같이 들어와 그의 일과를 찍고 나서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오사카와 도쿄의 일정

카메라에 담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니까 그건 지난 여름에 세워진 계획이었고 나의 10월의 스케줄은 그렇게 10일간을 

비워 두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여름부터 시작된 제작비 문제는 그 분의 촬영을 비롯해서

모든 일정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더이상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도 힘들었지만

그 후유증이 생각보다 여러방면으로 영향을 준다는데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촬영도 혼자 해야하고 인건비가 없으니 사람을 쓰기도 힘들고

교통비를 절약하자니 장비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그러다보니 몸이 너무 지친다. 한번 찍고나면 그 후유증이 며칠을 간다.

그 며칠에 몸을 다스릴 비용은 또 늘어나고

결국 찍어야 할 내용들을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0월의 일정도 머리속에서 지우고 있었는데

그 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왜 이 영화를 찍는지가 다시금 상기된다.

도쿄촬영은 놓쳤어도 오사카 촬영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카드로 항공권 두장을 끊어 놓고 오사카의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나 너희집에서 좀 묵어야 할 거 같은데 괜찮겠니?

통역하고 나 둘이 갈거야.

언니야 그냥 '나 간다' 문자 하나 날리면 되지 뭘라코 전화를 하노.

젠장...이쁜년.

힘들때는 별개 다 상처가 되고 별개 다 위로가 된다.

그래 일단 숙소는 해결이 됐으니 몸을 만들자 싶어

어제는 한의원에 달려가 침을 왕창 맞는데 슬슬 눈물이 흐른다.


침을 놓던 황원장이 놀랬는지 침이 아프냐고 묻는다.

침이 아픈게 아니라 할일은 많은데 몸이 자꾸 이래서 속상하다고 했더니

대뜸 혼을 낸다.

무슨소리예요.그렇게 뛰어다니는데 몸이 이정도로 버텨주었으니 고마워해야지요.

젠장...눈물이 더 난다.

황원장이 안되겠는지 몸의 뒷판을 치료하고는

다시 앞판에 침을 놓는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 한없이 고맙다.


찍고 있는 영화 자체가 불편한 내용이어서인지

올 한해는 여러가지 일들이 계속 긴 후유증을 남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 영화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종종 받는다.

산다는건 참 묘한 일인 것이다.

그나저나 내일 새벽부터 3일간을 달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침을 맞고도 몸이 회복이 안된다.

오늘 한번 더 마취주사를 맞고 가야 할 거 같다.


하루 웬종일 일본에서의 찍을 내용들을 고민하고 공부해도 모자랄판에

무사히 찍을 수 있을 몸만 걱정하고 있으니...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9. 18. 00:48

영화를 만들면서 한번도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을 돌아보거나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신다모의 주최로 감독전이라는걸 하게 됐고

원고를 써야했다.

상영할 영화 4편을 감독이 직접 정했고

영화를 선정하면서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구나 

새삼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칠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4편의 영화를 선정한 이유를 써보았다.


작품 선정 이유


1. 민들레/1999년

 첫 장편이면서 최하동하 감독과 공동연출작이었던 <민들레>는 나에게 첫작품임과 동시에 영화제작에 무지했던 나에게 일종의 영화학교와 같은 역할도 해주었던 작품이다. 사실 그 당시 <민들레>와 함께 <애국자 게임>을 동시에 찍고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많은 것을 이  두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졌다. 아마도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생존의 문제부터 영화적인 고민까지 최악의 조건과 최선의 선택을 수시로 결정해야만 했던 당시의 열악했던 조건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열악하니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야 했던 시기.다시 그 상황이 재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당시의 경험들이 이후 영화를 만드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 같다. 영화적인 스타일도 인물에 대한 고민도 그리고 편집에서의 중요한 지점들을 그당시의 고민에서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예를들어  <민들레> <애국자게임>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졌지만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양한 버전으로 편집본이 나오기도 했었다. <민들레>가 최종본으로 나오기 전에 나레이션을 넣어보기도 하고 소제목을 넣어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편집과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촬영의 컨셉과 주제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됐다. 특히 <민들레>는 유가협(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은자식들의 명예와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이야기다 보니 대상과의 관계나 거리 유지가 영화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많이 깨닫게 해준 영화였던 것 같다.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가 전경과 싸우고 노숙투쟁을 일상처럼 하고 죽은 자식들의 이름이 나올때마다 눈물과 분노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들에게 카메라는 자칫 이성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대상을 이해하면서도 내 시선을 고수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그때 온몸으로 체험을 했던 것 같다. 죽은 자식들의 무게와 사회적 위치가 다 똑같지는 않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는 분들과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님들간의 이견도 있었다. 그리고 다 다른 가정사 속에 투쟁을 하시니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건 마치 내가족의 속내를 들여다 보듯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은 바로 그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영화를 우리가 왜 만들었는가에서 답이 나왔던 것 같다. 인권에 대한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유가협의 부모님들. 함께 싸우다 죽은 동지들을 우리는 잊고 있었는데 여전히 죽은 자식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그분들을 뵜을때 느꼈던 깊은 부채감과 존경스러움. 영화는 그 시작의 느낌을 살리는데서 타협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소재로서의 영화를 찾는 건 내 영화에서 사라졌고 늘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영화를 찍는 모티브가 됐다.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번째 영화면서 혼자서 연출을 시작한 작품이기도하다. 공동연출일때는 늘 의논하던 상대가 있었는데 이 작품은 스텝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영화를 찍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또 다른 좌충우돌 경험이 많았었다. <민들레>를 찍을 당시 담지 못했던 죽은자들의 동지를 찍고 싶었었는데 부모님들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까지 담아내기 힘들었다. 결국 때를 기다렸는데 때마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민주화운동 당시 죽거나 의문사했던  이들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민간조사관으로 참여를 했다. 나는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진정 만들고 싶어했던 삶이나 세상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위원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조사과정과 함께 그들의 생각을 담고 싶었었다. 하지만 위원회에 그들만 있는건 아니다.대통령직속 기관이었고 수사관과 헌병대 검사 변호사 그리고 많은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부담없이 다니려면 그곳의 일원처럼 행동해야 했고 늘 신속해야 했다. 촬영에 대한 기술도 부족했지만 영화적인 미학을 고민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찍는 동안 생각했던 건 일단 위원회의 모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기록을 충실히 하자였고 또하나는 긴장감을 위해 들고 찍자는 거였다. 다행히 나는 많은 조사과정에 참여 할 수 있었고 수사관들의 협조도 잘 얻어냈지만 3시간 넘는 조사과정이나 인터뷰 등을 무식하게 들고 찍은 많은 장면들은 지금도 봐주기 힘들만큼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무모함 덕에 기동성 있게 현장을 포착해 낸 장면들은 결국 영화를 편집할 때 소중한 소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관찰과 주관이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 그건 누가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찍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상과 사물이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 이었다. 나는 세번째 영화를 찍고서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 사실을 체득하게 된것 같다.

 

3. 쇼킹패밀리/2006년

 <쇼킹패밀리>는 처음으로 스텝들과 작업을 한 작품이면서 처음으로 일부기는 하지만 제작지원을 받아 하게된 작품이다. 제작비를 위해 스텝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라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쇼킹패밀리>는 가족주의를 유쾌하게 비판하고 싶다는 출발이었지만 역시 가족문제는 사적이었고 예민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찍고 담아낼 것인지가 관건 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듯이 ,다른 가족사와 비슷하지만 다른, 각각의 복잡한 이야기를 영화속에 어떻게 녹여 낼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영화속에서도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일단 제작진을 포함해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해야 겠다고 생각 했고 영화가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촬영은 일관된 컨셉보다는 다양한 시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보는 조연출에게 카메라를 가르쳐서 찍게 하고 딸 수림이가 찍은 셀카나 스텝들이 찍은 셀카 등 촬영본에 원칙을 두지 않았다. 거칠지만 생생한 현장이 중요했고 다른 시선들이 많을 수록 좋았다. 주인공도 처음엔 세명이 아니었다. 사양한 사례로 생각한 인물은 5명정도 됐는데 결국 사적인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 했던 두 명이 막판에 빠지면서 결국 3명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됐다. 영화에서 빠진 두명의 주인공은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한사람은 동성애와 관련이 있었고 한사람은 매춘을 하면서 집안을 먹여 살렸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 두사람이 영화에 나왔다면 쇼킹패밀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현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항력의 결과는 매번 영화를 찍을때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이면서도 묘미라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영화를 찍으면서 밀어부쳐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이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4. 레드마리아/2011년 

 <레드마리아>는 여성의 몸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기존의 노동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여성에 대한 문제는 잘사는 나라에서도 가난한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여성들의 경로와 함께 국가나 가족이라는 틀로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한 눈에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그 차별의 시작이 바로  여성의 몸 특히 배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일본 필리핀 세나라의 여성들을 찍기로 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나열해 보고 싶었다. 그 나열된 다양한 경험과 직종의 여성들이 결국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노동에 대한 차별이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출연진을 생각했기에 그들을 공통적으로 엮어줄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들의 일상과 배,그리고 얼굴을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촬영 포인트는 각기 다른 세나라의 환경적인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공기를 담아내는 문제였던 것 같다. 일본의 이치무라는 노숙자지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풀샷을 많이 사용했고, 필리핀의 그레이스는 가난하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대화 장면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주인공이 10명이다보니 촬영에 집중된 시간이 주인공에 따라 개별적인 차이가 생겼고 역시 불가항력의 현실적 문제들이 생겨  촬영 소스가 균질하지 못했다. 특히 평택의 성노동자들을 찍을때는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져 카메라로 현장을 많이 담아낼 수가 없었다. 내내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아쉬움이 다음 영화를 고민하게 하는 출발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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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2014. 9. 18. 00:46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느꼈던 지점

 

 

나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대의에 가려진 팩트에 아쉬움과 답답함이 많았었다. 조직과 대의,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운동이 해 낼 수 있는 것들과 놓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 글로써 많이 풀었고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너무 앞서 갔고 늘 관념적이 되었다.나에게는 운동과는 다른 현장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영화는 그런 나에게 새로운 현장이 되어주었고 나는 운동이 놓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가 되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뛰어든 영화는 드라마 같은 세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경험하게 해주는 삶의 또 다른 시간이었다. 평소 게으르고 무지한데다 빈둥거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가장 치열한 고민을 하고 가장 생생한 공부를 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사는  다양한 즐거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싶은 현장을 통해 내가 무엇에 더 관심이 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많이 명쾌해 졌다.

 

처음 <민들레>를 만들면서는 사실 운동에 대한 대의적 미련들이 많이 혼재했던 시기였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많이 고민했었고 창작과 운동사이에서 감독의 포지션이나 시선에 대한 내부적 충돌이 많았던 시기였다. 소박하게 인권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만 컸지 영화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이다. 더구나 죽은 자식들 앞에 무서움이 없는 유가협의 부모님들과 그분들에게 사회가 부여해주는 도덕적 권력앞에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내가 운동의 대의가 놓치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한번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운동과 영화의 애매한 줄다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나름 다른방식으로 현장과 영화가 연결되는 방식을 도모했던 것 같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영화적 형식과 내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 같다. 물론 늘 부족했고 늘 시도만 했던 것 같기는 하다.위에 언급한 다섯편의 영화는 그런 고민들의 결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하지만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왜 이렇게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왜 세상은 이리도 답답한 것일까. 왜 진보운동은 진보하지 않는 것일까 등등의 질문들은 내영화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던게 사실이니 말이다. 때론 가족주의에 대한 질문이 때론 애국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한 질문들이 늘 나를 창작의 불길로 이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내 영화는 사람이 많고 질문이 많고 여러개의 결들이 겹쳐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하다보니 그리됐고 뒤돌아보니 내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알게된 사실이긴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단순화된 도식을 많이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면들이 자연스럽게 인간을 단순화시키는 생각이나 범주들을 파고들게 만드는 것 같고.

 

하지만 영화라는 세계는 너무 광활하고 담아야 할 이야기들은 넘쳐난다. 여전히 새 술이 필요하고 새 부대도 다시 필요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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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8. 1. 01:28

이상하게 자꾸 일정이 꼬인다.

특히 제작비 마련을 위해 힘써야 할 시간이 다가올때 자꾸

일정이 꼬인다.

지난 봄도 제작지원을 하려고 집중할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셨다.

생각 할 것도 없이 제작지원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한번 지원프로그램에 도전해 보려는데

뜻하지 않은 촬영과 처리해야 할 일들이 겹쳐서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원하는 촬영이 잡힌다는건 한편으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잡히지 않는 그림들이

이렇게 불쑥 찾아와 주는 건 고마운 일임에 분명한데도

나는 난감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오늘도 생각치 않았던 대만 촬영 일정이 잡혀 조만간 다녀와야 할 것 같고

만나뵙고 싶었던 선생님과 일정도 잡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달 잡힌 감독전과 관련된 원고도 써야 하고

기획안을 정리하려면 촬영본도 봐야하고

밀린 번역이랑 프리뷰터 해야한다.

심지어 요몇달은 혼자서 촬영을 다녔더니만

체력도 바닥이다.

젠장...왜 일은 늘 밀려서 몰아치는것인지.

제작지원까지 주어진 시간이 빠듯해 일에 집중이 안된다.

몇줄 쓰다가 중단되고 몇줄 쓰다가 중단되고.

이러다 이번에도 또 놓치게 될까 마음이 불안불안 초조해 진다.

그냥 저냥 신경 안쓰고 가면 좋으련만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려니

딸린다 딸려.

늘 이런 것들이 산이 된다.

그 산을 바라만 볼 것인지

돌아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하는지

아니면 갈때까지 가봐야 하는지.

대략 난감하고 복잡하다.

근데 왜 자꾸 암벽타러 가고 싶은 생각까지 꿈틀대는지...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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