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산악지대라는 지형적 특성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가 인접한 나라라는 특징 때문인지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온 여러나라 사람들이 스위스라는 연방국가를 만들게 되었고
단한번의 전쟁도 치르지 않은 독특한 역사를 이어왔다.
유럽의 지난한 역사의 일부인 종교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을 피해왔고
덩달아 모든 건축물과 문화유산들이 하나도 파손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는 가는곳마다 박물관이 디따 많다.
도시마다 수십개의 박물관이 즐비한데 이번여행에서 박물관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대부분 생략.
그런 역사덕에 이들은 전쟁의 상처도 없고 그런 사회문제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취리히에 사는 봉희가 그런말을 했다. 스위스에 사는 동안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가끔 한국인들에게서 보여지는 카리스마있는 얼굴을 보지 못햇다고.
듣고보니 카리스마라는 것도 새롭게 들린다. 결국 카리스마라는 특징도 험난한 곳에서나 생길 수 있는 특징?
우자지간 그런 스위스의 시작이 바로 스윗츠라는 동네에서 시작이 됐다고 한다.
미튼이라는 거대한 바위산과 함께 둘러쌓인 이 마을에는 스위스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 본사가 있기도 한데
산악마을에서 유용한 다양한 기능을 구비한 이 칼이 웬지 어울려 보이기는 한다.
내가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방문한 친구집이 바로 이곳과 인접한 산악마을이었는데
알프스의 하이디가 살던 그 마을처럼 딱 달력에나 나올법한 곳이었다.
사실 스위스는 어딜가나 달력사진같은 풍경이긴 하다.
스릴이나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곳은 거의 없지만 각종 어드벤처는 곳곳에서 즐길 수가 있다.
이곳도 거대한 호수가 곳곳에 있고 1500미터 산꼭대기에 곳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10분도 안걸려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산악기차가 아주 요긴한 이들의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우린 주로 친구 남편인 월터가 산에서만 이용하는 군용지프를 가지고 있어서 주로 그차를 이용해서 오르내렸다.
차로 20분간 올라가야 친구집이 나오는데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덕분에
스위스에서는 맛보기 힘든 약간의 스릴을 경험했다는 거. ㅎ
친구네집은 스투스라는 1500미터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인데 이들커플은 주중엔 바젤에서 일하고
주말 3일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한다.
집주변에는 수많은 소들이 워낭소리를 내며 풀밭을 누비고 사는데 목동도 없이
여름기간에는 자유롭게 산을 누비고 다니다가 그곳에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또 계속 풀을 뜯어먹고 낮잠을 자고...
젠장 난 이 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ㅋ
취리히에 사는 봉희가 동행하였는데 취리히도 꽤나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사실 아무리 스위스라 해도 누구나 오픈카를 타고 누구나 산장을 따로 갖고 있고 누구나 세일링을 취미로 하는 건 아니니까.
우자지간 우린 친구덕에 한국에서는 그림에 떡같은 남의 나라 놀이같은 짓을 신나게 즐기고 왔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고민할 일도 없고 자신이 즐겁게 사는 일만 고민하며 산다는 건 축복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라는 조건만 없다면.
하지만 지속되는 이축복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전쟁과 빈곤에 무감해 진다면 그건 배부른 돼지의 욕심에 불과하겠지만.
그래서인지 프랑스에 사는 친구들은 이런 스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스위스가 보유한 검은돈들과 함께 돈 많은 나라의 이기적인 풍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거 같다.
사실 내가 만난 스위스인들은 풍요와 평화를 생활화 한 덕분에 얼굴인상이 꽤나 순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유럽인들은 마치 미국과 미국인을 동일시 하듯이 스위스와 스위스 사람을 동일시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을 꽤 보게되어
참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곳이 아름다운 마음을 품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나는 스위스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즐거웠다.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즐거움도 고통도 배가 되듯이
이번여행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과 생각들을 사유할 수 있어 좋았다.
아마도 쏟아지는 정보로부터의 해방감일지도 모르고 나만을 충분히 생각하고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힘은
이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게 준비해주고 기다려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안심이고 행복이다.
나도 그들이 보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살아야겠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스치듯 보아도 죄다 그림같은 마을이다.스위스가 시작됐다는 스윗츠라는 마을도 역시 마찬가지.이곳에 본사가 있는 빅토리녹스사는 기업정신도 훌륭해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한데 그건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도 직원들을 해고시키지 않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회사의 방침때문이라고 한다. 네슬레같은 대기업도 있고 검은돈을 지켜주는 스위스은행도 있지만 스위스의 가장 든든한 경제뒤에는 튼튼한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되어있기 때문인거 같다.
스위스는 호수가 많아 그곳에서 세일링 하는 사람도 많다. 바람을 이용해서 배가 움직이게 하다보니 처음에는 좀 지루하단 생각이 있었지만 느긋하게 물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맛이 남다르긴 했다.세일링을 워낙 좋아하는 월터때문에 은진도 열심히 배조정법을 익히고 있는데 이들의 꿈이 돈벌어서 좀 더 큰배를 사가지고 세계일주 하는거란다.
은진네는 바젤에서 이용하는 차와 산에서 이용하는 차 두대를 이용하고 있는데 군용집차가 산에서 이용하는 차.월터는 산에서 무슨 자동차경주처럼 운전을 해서 거의 자지러질뻔했다.소리를 지르면 산을 오르는 이 맛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듯. 산악마을에는 허가받은 차만 운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차도 당연히 허가를 받았고 월터와 친구가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친구집에 갈때 미리 장을 봐서 갔는데 처음 은진이 식품을 사는거 보고 놀랐었다. 아니 이 많은 치즈와 과일과 먹을걸 대체 언제 다 먹으려고 하나 했는데 웬걸 오자마자 월터가 입가심으로 화이트와인 4병을 까고 그날 저녁 우리는 라끄레타 요리와 함께 레드와인 10병을 쪽냈다. 물론 다행이도 치즈와 와인의 반이상은 월터가 마셨기에 좀 덜 미안하긴 했다. 그리고 그동안 반주로만 마시던 와인이 이날부터 발동이 걸려 거의 매일 한병이상씩...꿀꺽 꿀꺽..ㅎ
스투스도 알프스의 한자락인데 산은 역시 설명이 필요없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고 걷기만 해도 좋고 ...은진과 함께 이날 스투스정상에 올라갔는데 한국의 산처럼 거칠지 않아 트래킹화로 가능했다. 근데 역시 보기와는 달리 경사도가 있고 높이도 2천미터가 넘어 간만에 땀 좀 뺐다. 그렇게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워밍업을 끝내고 다음은 프랑스의 알프스로...야호!!!!
잘나가는 방송피디였던 그녀가 호주에 촬영갔다가 스위스남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만해도
지금의 그녀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처럼 결혼해서도 방송일이나 하면서 늘 연애같은 결혼생활을 주구장창 하거나
애가 하나쯤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육아문제로 이리저리 골머리를 썪이다가 그 일은 놀이방이나 유모한테 맡기고
본인은 좀 더 스위스에서의 활동에 전념하지 않을까 하는.
한마디로 집안일 따위(?)로 절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을거라는 뭐 그런종류의 시나리오가 늘 그녀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었는데 웬걸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그녀의 현재모습은 애 둘에 셋째를 임신한 전업주부9단의 모습이라는 거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이야기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말하는거.
리얼리?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은 늘 성공이나 돈으로 가름되는 사회다보니
가끔 행복해 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혹시 나만 행복한건 아닌지 아니면 웬지 나만 행복하면 안될꺼 같은 묘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우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드물고 설사 그런 사람이 보여도 함께 행복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수없어 하거나 막연히 부러운 마음을 속으로만 키우지는 않았을지.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하며 신비스럽게 간직하거나
대리만족만을 느끼고 사는건 아닌지.
심지어 건강한 사고를 지향하는 사람들조차 행복을 즐길 시간보다는 투쟁현장이나
매시간 랭킹순위에 오르는 사건사고에 대한 이슈들로 슬프거나 진지하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감정들이 일상이 되어버린곳.
그래서 행복을 누리는 일은 늘 그림의 떡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친구들은 모두 행복하다는 말을 종종 하곤한다.
처음엔 그런 한국에 살다와서인지 행복이라는 말이 새삼 어색하게 들리기도 했는데
그건 아마도 나의 피해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중에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그래도 자주 쓰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자지간 어쩌다 내주변에 스위스남자와 결혼한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건지.
그들 모두 비슷하게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으며 길들여지는 각종 스트레스의 집중포화속에
자신의 일을 찾아 매진하는 짐승같은 친구들이었을 그녀들이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에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뭔 일인 걸까.
아니 뭐 스위스 남자는 자지가 두 개 달린 것도 아닐진데 대체 왜 그녀들은 가사노동조차
그 지난한 양육조차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 답이라는 것이 특별한건 아닐꺼다.
단지 자신이 하고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있기에 가능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정도로
그들을 바라본다.
물론 스위스라고 살면서 문제가 왜 없을까.
부부싸움도 있고 양육의 고민도 있고 사회속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과 인간관계의 불편함이야 비슷한 인간사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일 혹은 삶에 대해 적어도 제도적이든 문화적이든 보상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본이 있다는 건
분명 다른 출발일것이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서는 이혼을 해도 여자가 받아챙길 것이 더 많아 남자가 손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같이 벌이를 하든 안하든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기에 이혼을 하게되도 재산은 똑같이 나누고 양육문제도
훨씬 여자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그런식의 기본의 차이가 사람을 참 다르게 살도록 한다는거.
한국처럼 여자들이 이것저것 눈치보다 시간 보내는 일이 적고
내가 즐거우니 남도 즐겁게 배려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것.
그립다 언제쯤 우리도 그럴 수 있을지.
사실 입장바꿔 생각하면 스위스남자와 결혼해 사는 이들도 이주여성이고 이들도 가부장사회에 편입한건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사는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성차별이나 불쾌감이 큰 사회와는
비교도 안되는 출발이다.
더구나 한국여성도 그럴진데 한국에 사는 이주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차별지수는
감히 이곳에서 말하는 행복지수에 비교하기는 어려울 터.
결국 행복의 조건도 인간성이라든지 개별인성이라든지 하는 따위와는 절대 상관없는
국가와 사회의 인격이 중요하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중첩되는 생각의 밑에는 이런시간이 가능하기까지의 스위스의 역사가 각별하긴 하고
그들도 역시 다른나라에 물건을 팔아먹고 얻은 이익의 혜택이라는데 씁쓸함이 남긴하지만.ㅎ
영미집에 스위스에서 사는 커플들을 초대했던 날.
제네바에 있는 나를 직접 기차표를 끊어 3시간 반을 임신한 몸으로 마중왔던 영미와 벼룩시장에서.
영미네 가족.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친 엄마덕에 나는 아이들과 노는 일이 얼마나 수월하고 즐거웠는지. 대신 아빠인 필립이 가끔 왕따를 당한다는..ㅎㅎ
스위스에 제일 늦게 정착하게 된 은진(오른쪽)과 10년차 영미 다음으로 오래 살고 있는 봉희(왼쪽)가 간만에 한국어로 신나게 수다를 떨다 갔다. 한국에서 날아온 친구때문에 영미와 봉희는 새로운 친구 은진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치 10년지기들 같다.^^
영미는 뒷뜰에 깨잎과 상추 옥수수를 기르고 있는데 나는 한국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깻잎김치를 이곳에서 맛봤다는.레시피를 적어온다는게 깜빡.
전주국제영화제 전 부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한국영화를 유럽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신 임안자선생님. 한동안 아프셔서 영화제 일을 죄다 정리하셨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뵈니 얼마나 반갑든지.이날 우리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냉면과 부침기는 일품. 게다가 남편인 피터선생님이 맘에 드는 손님에게만 특별히 준비하신다는 와인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redsnowm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