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쇼킹패밀리 상영이 태백에서 있었다.
태백시에 극장이 하나도 없어서 태백탄광체험공원과 한라대학이 함께
비상설영화상영회라는걸 준비했고 11월마지막주 독립영화를 하루에 한편씩 틀었다.
어제가 마지막날이었고 특별히 감독을 초청했다고 한다.
관객이 얼마 안되니 이해해 달라고 태백은 거의 문화의 불모지라고…
지방에 다녀보면 대한민국은 서울을 뺀 모든도시가 문화의 불모지다.
탄광촌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커다란 기념관식의 건물들을 짓고는 있는데
문화에 대한 기본인식이 안되어 있는지라 그곳을 어찌 운영해야 할지
문화프로그램은 지역주민과 어떻게 연계를 시켜야 할지 대책이 없다.
태백탄광체험공원도 비슷해서 이번에 센터장으로 온 김기동화백이 나름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중이라고했다.
영화가 끝난후 주최측에서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수다떨듯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 나름 오붓하니 그것도 괜찮은 방식인듯 싶었다.
사실 쇼킹패밀리는 솔직히 그리 쇼킹한 이야기라 생각지 않는데도
불편하게 보는 관객들이 꽤 있다.
물론 그 불편함은 몰랐던걸 알아서라기 보다는
알고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더 불편함을 감수하며 인내를 미덕으로 사는건 아닌지.
이래저래 대화가 끝나고 탄광체험관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아쉽게도 보지를 못했다.
서울에서 태백까지 기차시간 버스시간 포함해서 왕복 10시간을 투자했는데
태백에서 한 일은 불과 한시간 정도밖에 안되고
태백시를 둘러보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 왕복 10시간의 기차와 버스여행이 나에게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요즘 가능하면 지방갈때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KTX는 웬지
기차여행의 기분이 안난다.
그저 빨라서 타는 것일뿐 기차에서 뭔가 여유를 부릴 공간이 없다.
어쩔때는 우등버스 탄만도 못한데 대체 비싼 돈 들여
이따위로 만든 기차를 탈수밖에 없는 처지가 화가나기도 한다.
근데 무궁화나 새마을호를 타면 다르다.
시간이 문제기는 하지만 어제나 오늘처럼 영동선을 지날때는
기차여행이 제법 근사하다.
열차간 사이도 빈공간도 넓고 풍경은 또 얼마나 죽이는지.
배고플때는 카페를 운영하는 열차로 옮겨 밖을 내다보며
도시락을 사먹으면 이보다 멋진 레스토랑이 없다.
때마침 태백에서 눈까지 내리는 통에 나는 올해 첫눈을 태백에서 밟았다.
역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첫눈온다고 좋아했더니 서울에도 오지 않았냐고 한다.
먼지처럼 뿌리는건 첫눈이고라 하긴 그렇죠.
눈은 이정도는 내려줘야…했더만 기사가 그런다.
태백에서는 이런눈은 눈으로 안쳐요.30센치는 쌓여야 눈이 좀 왔다고 하지.
쩝…
기차표를 끊고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부러 밥을 먹지 않았다.
커피 한잔을 사들고 역주변의 눈을 밟고 골목골목을 둘러보고
미리 역안에 들어가 기차길 주변을 한참이나 서성이며
아무도 없는 그 공간을 즐겼다.
6분정도 연착될거라는 방송이 나오는데 그것도 반갑게만 들린다.
드디어 열차가 들어오고 이천원 더 비싼 특실칸에 앉아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탄 기분으로 여행이 시작된다.
간만에 수림이간 준 책을 읽고
카페열차로 넘어가 도시락을 사서 밖을 내다보며 밥을 먹으니
마치 영화관에 앉아 밥을 먹는 거 같다.
밖을 본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참 오랜만에 길게 느껴본다.
상영이 끝나고 웬 싸인회를 준비해서 아주 민망했다. 밤늦게까지 함께해주신 관객들 그리고 학생들 너무 반가웠다.숙소로 가는길 웬지 허전해서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센터장님을 꼬드겨 원주에서 온 서명택감독님과 간단하게 한잔했지만 시간이 짧아 아쉬웠다.
나의 외로운 밤을 함께해준 양익준감독.ㅋ
아침에 모텔창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그래서 허겁지겁....나갔다.
아무도 밟지않은 곳을 찾아가서 살포시...새삼 운동화 바닥이 많이 닳았다는것을 확인.^^
날씨가 꽤 추웠다.대기실에서 사람들이 아무도 나올생각을 안하는데 혼자 플랫폼에서 20분넘게 별짓을 다했다.
도시락이 7500원인데 먹을만하다. 다음에도 기차탈일 있음 꼭 밥먹지 말고 타야겠다.
보는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다. 청량리발 강릉행 무궁화호 꼭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