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6. 11. 1. 12:47

[한국독립영화협회 뉴스레터 vol.4 : 1601031]



[TALK] 

우리의 어지러운 근심과 진심 

‘피칭제도’를 통해 바라본 지금의 독립다큐멘터리 환경



일시┃2016년 9월 9일 금요일 저녁 6시

장소┃한국독립영화협회 

기획┃김청승(한독협 단체회원 서울영상집단), 이진우(한독협 다큐분과 운영위원), 이지연(한독협 사무국장), 차한비(한독협 사무국)

대담 참여자┃경순, 김경만, 김청승, 박경태

사회 및 정리┃이지연

녹취 및 사진┃이진우, 차한비



이번 대담은 지난 5월, 서울영상집단 김청승감독이 한독협 회원내부 SNS에 올린 “No Competition! No Capitalism!! Boycott the pitching!!! 보이콧에 뜻 모아주실 분들은 아래 메일로 이름과 연락처 남겨주세요.”라는 게시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올해부터 한독협 뉴스레터를 재개한 사무국은 서울영상집단 회원탐방 기사를 통해 김청승감독의 문제의식을 나누고자 기획했다. 

관련하여 김청승감독, 이진우감독과의 기획회의를 통해 

‘피칭제도는 한독협이 찬반을 나누어 공식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러함에도 비판적 의견에 대해 공론화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의 필요성, 변화된 제도와 환경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의견 공유’를 목표로 단체탐방이 아닌 ‘피칭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의 대담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이야기의 출발은 ‘피칭’에서 시작되었으나 대담의 내용은 독립영화제작환경 변화 가운데 새롭게 출연한 제도를 바라보는 태도, 정부기관의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의 문제점과 독립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지향점 그리고 신진작가들을 위한 환경에 대한 고민까지, 현재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문제와 고민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대안을 찾기 위해 모색해야할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대화하길 제안하고 있다. 장시간 솔직하고 다양하게 나눈 그날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한다.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8. 31. 13:51

영화에는 두 번의 눈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 재일조선인이자 여성학자인 야마시타 영애의 눈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강연 중 그녀는 “강제 연행이 있었다면 문제지만 없었다면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데요. 정말 피해자분들과 만나면 알겠지만, 그 분들을 무시하는”이라 말하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못다 한 부분에는 조선인·소녀 위안부 뿐 아니라 일본인 위안부와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에게도 위안소의 생활은 성노예에 다름없다는 말이 생략돼 있을 것이다. 이는 위안부 문제의 가시화 이후에도 비가시적 존재로 남아있던 이들에 대한 가시화이자, 성노예라는 폭력의 보편성과 절대성에 대한 고발이다. 두 번째, 故배봉기 할머니의 삶을 기록한 [빨간 기와집]의 저자 가와다 후미코의 눈물. 취업사기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고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배봉기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던 중, 결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가와다 후미코는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았으니까, 굉장히 각오를 하고 낳았어요. 그런 면에서 힘든 일이 많이 있었는데, 배봉기 씨가 버티게 해줬어요.”라며 흐느낀다. 이 연대와 공감의 감정은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고, 위안부 생활을 했던 오키나와에 남는 것을 택한 배봉기 할머니의 삶과 미혼모로 살아온 그녀의 삶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가부장 구조 하에서의 고통”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두 번 이혼한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편견과 비난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매춘혐오로 인한 인권침해, 민족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운동의 논리 속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위안부들의 이야기로까지 확장되는 <레드마리아2>는 여러 시대와 상황에 존재하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가부장적 구조를 끝까지 추적하여 드러내는 급진적인 다큐멘터리이다.(권은혜)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5. 30. 13:13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자전적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곧바로 예상치 못한 질문들의 연쇄로 성큼성큼 건너간다한국과 일본호주 등의 성노동자의 인권과 법적 지위를 묻는가 했더니SWASH 활동가들과의 대화에서 느닷없이 위안부 논의가 튀어나오면서 카메라는 야마시타 영애나가이 가쓰안병욱 등 학자들에게로 향한다이어 열악하고 위험한 한국 성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이 삽입되고일본인 위안부들의 ‘침묵의 의미를 질문하는 이케다 에리코에 이를 즈음이 되면엄마의 방에서 출발했던 감독의 고민이 왜 그다지도 과거와 현재위안부와 성노동자를 오가며 이질적으로 보이는 질문들을 축적해 왔는가 감이 잡힌다. ‘매춘()’이라는 낙인이 그 동안 역사와 정치와 운동 모두에서 어떤 것들을 은폐하고 침묵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다이제는 신성한 피해자의 기표가 된 ‘위안부 ‘매춘부라는 단어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로서 자기존재를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계속 억압되는 성노동자들의 인권 등그래서 이 영화는 이미 발언된 ‘피해자성과 여전히 발언되지 못하는 피해자에 대해 묻는다는 점에서 도발적이다감독은 도입부에 이어 마지막에도 ‘엄마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으로 영화를 마무리하지만박유하와 정대협성매매 특별법 폐지 시위 현장을 경유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마련될 수 있을 듯하다여기에 답할 것을 요구 받는 자들이 너무나 많아서이고그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백문임]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30. 09:48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감독의 내레이션 자막으로 시작된 다큐멘터리는 곧이어 한국의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G, Giant Girls)활동가, 성노동자 연희, 혜리, 밀사의 활동과 노동의 일상을 따라간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성 노동자들의 실태조사 및 연대를 위해 출국한 연희와 밀사는 일본의 스와쉬(SWASH, Sex Work and Sexual Health) 활동가 가오린과 유키코를 만나 일본과 한국의 성산업 인식과 노동 환경의 차이를 체감한다. 사회가 낙인한 이미지로서의 성노동자가 아닌, 그녀들 스스로 정의하는 성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그녀들이 되묻는 여러 질문과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삭제되고 숨겨진 존재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또한 침묵하지 않고 발화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강제연행의 유무, 한일 내셔널리즘의 문제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각적인 측면의 위안부 문제 및 운동에 대한 그들의 의견과 삭제되었던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구술한다. ‘정대협’에서 10년간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운동을 했던 야마시타 영애는 그 운동 안에서의 남성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위안부 담론을 비판했다. 정부, 언론, 한국 운동 단체 등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매춘부, 한국인 위안부는 성노예로 규정하여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가 운동에서 배제됐던 과정, 일본 안에서 담론화 되지 않는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고 다른 시각을 갖게 되면서, 야마시타 영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결국은 다른 결로서 이런 담론 및 규정에서 출발했음을 환기하고, 개인의 정체성 역시 동일화하거나 양자택일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최초로 밝힌 배봉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술된 『빨간 기와집』의 르뽀작가 가와다 후미코는 일본과 조선의 근대사적인 측면의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관점으로는 배봉기 할머니의 인생을 기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위안부 라는 낙인 뒤에 가려져 있던 가난한 환경과 전쟁 안에서 배봉기 할머니의 삶의 궤적을 5년간 취재하고, 5년간 저술했다. 배봉기 할머니는 단순히 취재 대상으로서가 아닌 가와다 후미코가 개인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의 응축된 감정과 개인의 역사, 배봉기 할머니의 삶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편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위안부 연구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으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그간 내셔널리즘 문제로 크게 퉁친 다음, 숨기고 취하지 않았던 역사의 잔해와 쟁점들을 오롯이 직면한다. 그간 역사와 사회에 공식적으로 기록되고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감독의 어머니를 비롯 가부장 사회의 성윤리속에 지워진 많은 여성들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기록하여 이 다큐멘터리 자체로 기록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한다.  


강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2016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 프로그램 노트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30. 09:38

경순 감독의 첫 영화 <민들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국회 앞 천막 농성을 기록한 영화다. 422일간의 이 투쟁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그 결실을 모두가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이들, 이름 없이 죽어간 희생자들, 그리고 그들의 유가족들은 여전히 법 앞에서 이방인이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했다. 기나긴 투쟁 끝에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가 출범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경순 감독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 이후에 이어진 또 다른 싸움을 기록한다.


  특별법은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를 가졌다.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에는 민간 조사관과 파견 공무원들이 소속되어 있다. 대부분이 희생자들의 동료인 민간 조사관들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원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조사를 할 권한은 주어졌지만, 그 조사를 위한 피의자에 대한 수사를 강제할 권한은 없었다. 그들은 국가 기관을 포함한 피의자를 상대로 협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었다. 기무사, 경찰, 검찰 등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은 민간 조사관들과 섞이기 힘들었다. 국가 기관 소속인 이들에게 국가가 저지른 죄의 진실을 밝히라는 것은 어쩌면 모순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 조사관들을 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한계 안에서 정해진 기간 안에 진행되어야 했던 조사의 결과는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혔다. 사건들의 반 이상이 밝혀지지 않거나,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아 기각되었다.


  이것은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과거가 청산되기를 바라지 않는 자들, 그렇게 해서 이득을 얻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 의해 승인된 법은, 이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법이다.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싸움의 기록 끝에 덧붙인 감독의 말(“난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럽다.”)에서 하나의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서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안전하지 않다.


송재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6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 프로그램 노트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25. 22:33

폭력을 증언하기 위해, 우리는 ‘마리아’가 되어야 할까?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얼마 전, 이슬람 페미니즘에 관한 한 강의에서 더위를 피하고자 사용되었던 베일이 어떻게 고대 아시리아 제국을 통해 성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전에 없던 국가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영토와 신분, 재산을 승계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고, 이에 여성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장치로써 베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승계와 상속에 이바지할 여성, 즉 군주의 아내나 딸, 남편이 있는 여성들은 베일을 쓰게 되었고, 노예나 매춘부 등에게는 베일이 ‘금지’되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베일을 쓰면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말하자면 당시의 여성들에게 베일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표식이자 동시에 특정한 남성에게 ‘귀속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서만이 ‘안전을 보장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여성들은 감히 ‘보호받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베일이 금지된 여성들이야 어떻게 되든 그만이었지만 베일을 쓴 여성들, 즉 자신들의 연대기를 이어줄 ‘귀속된 여성’들을 지키는 것은 곧 이슬람 남성들과 그 공동체의 자존심이 되었고, 나아가 이슬람 민족주의의 기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역으로, ‘지켜지지 못한 여성들’, ‘강간당한 여성들’이 그 공동체, 남성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추락시킨 상징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베일이 벗겨지는 것, 베일이 금지된 여성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었다. 그렇게 베일은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 과정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다시 끈질기게 유지되고, 재강화되어 왔다.

비단 이슬람만이 아니다. 성녀와 창녀, 아내 혹은 순결한 여자와 매춘부를 가르는 이중규범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여성 통제의 도구이자 민족적 자존심의 상징이 되어왔다. 이 영화, <레드마리아 2>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삶과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교차시켜 짚어가며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이중규범의 잣대를 다시 파고든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 ‘들판에서 울며 끌려간 소녀’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이 폭력을 증언할 자격을 얻을 수 없는 것이냐고. 여성들을 군수물자처럼 동원한 그 끔찍한 역사에서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 유곽에서 동원되어 온 매춘 여성들의 경험은 정말 본질에서 다른 것이냐고 말이다. 왜 해방 후 조선에 돌아온 ‘위안부’ 여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가. ‘강제 성노예’와 ‘매춘부’를 구분 짓는 과정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면죄부를 얻어 온 것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위안부’의 역사를 ‘지켜주지 못한 역사’, ‘민족의 자존심이 수탈당한 상징’으로 만들어 갈수록 그 역사에 숨은 더욱 근본적인 폭력의 본질은 망각된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일제 폭력의 증언’과 ‘민족의 역사’로만 증명되어야 할 때, 그 잔인한 시대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여성의 다양한 경험과 연대의 역사는 구체성을 잃고 삭제되어 간다.

그리고 이 강제와 자발, 소녀와 매춘부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성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매춘부였다는 이유로 위안소의 폭력을 증언할 수 없었던 수많은 또 다른 ‘위안부’ 여성들처럼,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 현장을 떠나 ‘보호받는 여성’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으면 노동의 조건과 폭력의 경험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해외에서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나라 망신시키는 년’ 취급을 당한다. 법이 낙인을 강화하고, 다시 낙인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현실에서 안전한 노동을 위해 필요한 콘돔은 단속의 증거물이 되어 도리어 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제 성노동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하우를 만들어내고, 이를 공유하며 스스로 주체가 되는 연대의 움직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베일을 쓸 자격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일 없이 스스로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레드마리아 2>는 불편한 영화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꼭 필요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제국주의, 민족, 국가, 전쟁, 폭력, 강제/동원/자발의 스펙트럼, 섹스-젠더-섹슈얼리티 권력과 규범의 복잡한 교차점들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내면화하거나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동조해 온 모든 전제를 쿡쿡 쑤셔댄다. 이제 우리가 이 불편한 질문들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출처 20회인천인권영화제 http://blog.naver.com/inhuriff/220524597432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13. 14:57

108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레드 마리아2>

진행 / 이승민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게스트 / 경순 (감독)

일시/2015년 12월8일

 

이승민 먼저 처음 몇 가지 질문을 감독님과 같이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레드 마리아잖아요. 전작 <레드 마리아>도 그렇고요. ‘마리아레드가 같이 들어가서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데요. 영화를 구성하시게 된 이야기를 제목과 더불어 이야기해 주시면.

 

경순 일단 <레드 마리아2>이기 때문에, <레드 마리아1>을 보신 분도 있고, 안 보신 분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일단 저는 한국의 고도의 자본주의와 사회가 달라졌지만 그 발전만큼 사실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그런 것들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레드 마리아>의 기획 자체는 그것을 으로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에서 출발했고요. 그리고 레드라는 이미지가 주는 것처럼 순결하지 않은, 기존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규정하는 것들을 바꾸는 새로운 여성의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승민 개인적으로는 마리아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성경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성모 마리아가 있는 것처럼 레드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 영화 안에서는 여러 결로 느껴지더라고요. 어떤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권의 색깔일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연결돼서 와 닿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 안에서도 많은 분이 바깥에서, 마치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지 않고 접근하는 것처럼 <레드 마리아2> 역시도 보지 않고 무엇을 다루었나를 가지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만나게 되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사실 어머니에서부터 시작해서 성노동자, 위안부의 이야기를 이어내셨어요. 이렇게 구성을 잡으신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경순 저한테는 뭐라고 할까요. 이미 성노동자나 위안부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가 제게 포함이 되어 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옆집 언니, 아줌마, 할머니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 매춘이나 성노동과 특히 한일간의 이슈가 된 위안부문제까지요. 그것이 이슈가 된 당사자가 있지만, 이미 우리의 문제가 됐고 나의 문제가 됐기 때문에 분리할 수가 없던 거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여성 문제를 대할 때 굉장히 분리되게 대하는 게 있는 거죠. 사실 매춘 여성을 이야기할 때 매춘부와 나는 다르다는 입장으로 접근하잖아요. 굉장히 특수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뭔가 안된 사람들여러 가지의 것으로 보지만, 사실 제가 보기엔 여자를 걸레라거나 무엇 같다고 하는 취급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취급으로 그들을 자꾸 특수화하는 것이 저는 불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르지 않은 문제가 왜 굉장히 다르게 이야기가 되고, 불편한 이야기가 되고, 남들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하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이었기 때문에 제게는 영화에서 포함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야기를 함께해야만 좀 본격적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게 너무 막혀있다 보니까, 이걸 뚫고 그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다음 이야기가 계속 못 나오고 거기에서 피해냐 아니냐 무엇이냐 하는 데서만 멈춰버리는 거죠. 그리고 삭제된 이야기가 너무 많고요.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5. 12. 9. 17:36

 

 

리뷰

이승민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영화는 엄마의 죽음에서 시작한다그리고 성노동자의 이야기와 한일 위안부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어떤 연유인지 연결 자체를 부정하는 어머니성노동자위안부를 영화는 ‘감히’ 동일선상에 놓고 이어내고 있다여기에 더해 감독은 자신에게 스스로 던진 질문을 향해 이들이 속한 세상을 만나간다엄마에게 묻고팠던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이 사회에서 담겨지고 살아내는 ‘여성’들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경순 감독의 <레드 마리아2>의 힘은 바로 이 유연한 ‘연결’과 ‘물음’ 그 자체에 있다.

 경순 감독의 <레드마리아2>는 전작 <레드마리아>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레드마리아역시 유연한 ‘연결’의 힘을 통해 여성의 다양한 결을 드러내었다한국일본필리핀을 넘나든 영화는 여성의 몸에 새겨진 기억을 담아내면서 여성과 세상이 맺고 있는 다층적인 관계 맺음을 이어내었다노동과 여성빈곤과 여성이주와 여성성과 여성거주지와 여성을 다층적 결을 여성의 몸을 통해 이어낸 영화는 여성에 대한 통념적이고 도식적인 인식을 가뿐하게 넘어서면서 친밀하면서도 담담하게 말 걸기를 시도했었다그리고 4년 후 지금 <레드마리아2>는 전작의 문제의식을 더 날카롭고 더 구체적으로 대면하고 있다.여성으로 대표적으로 통칭되어 소구되는 그룹에 다가가 그들 개별 여성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이 사회 속에서  이들 여성이 놓인 위치에 대해 조용히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그리고 묻는다노동운동에서 성노동을 배제하는 상황성노동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모습위안부 여성을 숭고화시키다 못해 박제화하는 모습일본 위안부와 한국 위안부를 애써 분리하려는 담론그리고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엄마를 손가락질하던 주변 상황까지드러나는 양상은 다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의 논조가 내재되어 있다여성을 ‘창녀’와 ‘성녀’로 이분법화하는 그 저렴하고도 비루한 편견.

 영화는 편견의 실체를 드러낼 뿐 가르치려 들거나 주장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그저 이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이 사회에서 발현되고 있는지를 유연한 연결을 통해 접속시켜내고 있을 뿐이다어머니-성노동자-위안부의 연결은 한 뿌리에서 파생된 여러 줄기의 현상들을 직시하게 하는 당연하고도 파격적인 구성이다매춘에 대한 ‘낙인’을 거둬내고 바라보면 실체는 늘 그렇듯 간명하다어머니는 성을 기반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며 붙여진 이름이며성노동자는 성을 노동으로 임금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직업이며위안부는 전쟁터에서 성노예로 유린당한 피해자 여성들인 것이다영화는 이 간명함(!)을 기반으로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지를 드러낸다영화는 여성의 성에게 둘러싸여 덧입혀지고 왜곡된 도처의 사건들을 차분히 조망하는 듯하지만그 차분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 깊은 한숨을 자아내도록 한다말 사이사이행동 사이사이에서 행간이 읽히기 때문이다.

 특히 몇 장면이 영화 끝나고도 맴돈다운신도 힘든 위안부 할머니들을 전면에 앉히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규탄하는 나눔의 집의 집회 장면위안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여 국가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식을 드러낸 안병직 교수가 불쑥 드러난 페미니즘에 대한 단상박유하 교수가 전화에 시달리며 반복하여 말하고 또 말해도 소통되지 않는 과정들을 지켜보다 보면 여성을 둘러싸인 겹이 얼마나 얄팍하고도 두터운 지를 동시에 체감하게 한다.

 가부장 담론에민족주의 담론에 칭칭 감싸여 있는 여성문제의 정체와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으로서영화는 연대와 공감을 구축해가는 성노동자들의 인권 활동과 함께야마시타 영애의 문제의식과 더불어박유하의 연구와 행보를 지지하면서 그리고 위안부 배봉기 씨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삶에도 힘을 얻은 가와다 후미코와 나란히 서 있다여성을 여자사람으로 애써 치부하지 않아도 ‘여성으로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몇 중의 가능성의 조사 나열이 안타까운 문구이긴 하다)으로 영화는 놓여있다.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5. 11. 23. 17:53
2015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 프로그램 노트

신은실/인디다큐페스티발2015 집행위원

시아를 횡단하며 여성들을 만났던 <레드마리아>, 속편에서는 남한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로 여겨지는 ‘성노동’과 ‘위안부’ 문제를 직시한다. 영화 속에 인터뷰이로 등장하
는 야마시타 영애 . 박유하 교수 등이 여러 각도에서 지적하여 때로 논란을 부르기도 했
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작금의 논의가 지닌 한계. 그것은 바로 모두가 “강제 연행
이 있었는지”를 규준으로 삼고 다툰다는 점이다.
강제 연행이 있었다면 문제지만, 없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시 공창제가 동원
한 일본과 대만 등지의 ‘매춘부’들은? 조선 출신 위안부는 과연 예외였던가? 그들이 강제로
연행되지 않았다 한들 성노예가 아닌가? 그리하여 일본군의 집단 강간과 전쟁 범죄행위가
사라지는가? 영화는 “강제 연행” 여부와 그 증명에만 얽매여 “가해자가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새기고, 그 “침묵의 의미를 생각”하려 한다.
운동에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던 역사의 잔여도 <레드마리아2>는 곡진히 길어
올린다. 이를테면 시로타 스즈코 . 배봉기 씨의 삶, 그들을 잊지 않으려 기록하고 기리는 이
들의 존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인 쟁점들은 ‘내셔널리즘’이란 교차점 위에서 만난다.
또, 2차대전 중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예의 틀과 현재 성노동 문제의 근친
관계를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카메라가 명료하게 보여준다. 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사
회적 낙인은 타당한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비범죄화’되지 못하고 파견 형태 등으
로 변형된 매매춘은 성노동자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몰 뿐이다. 한국전쟁 때 자국민을 위
안부로 강제 동원하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미군을 상대하는 성노동자를 직접 관리하며
외화벌이에 나섰던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하여, 꼭 봐야 할 작품이다.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5. 11. 5. 13:22

제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변성찬


경순 감독은 전작 <레드마리아 Red Maria>의 끝부분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레드마리아2 Red Maria 2>는 본격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이고, 또 이제는 충분히 들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제안하는 영화다. 

영화는 한국 및 일본의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와, 이제 ‘위안부’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하는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두 이야기를 교차편집하고 있다. 이 교차편집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어떤 경계/차별

(한국여성과 일본여성 및 강제로 끌려간 여성과 매춘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이제는 넘어서야 

하지 않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영화적 장치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여성이라는 위안부 희생자의 이미지는, 

누군가를 그 희생자의 범주에서 배제시키고,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과 권리를 

박탈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현재의 성노동자 여성들이 요구하는 자격과 권리에 대한 호소를 

들을 수 없게 하는 장치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닐까? 

<레드마리아2 Red Maria 2>는, 누군가에게는 침묵을 강요하고 또 누군가의 말은 들리지 않게 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순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귀를 열고 온전히 듣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영화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