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신쥬쿠에서 경순이 알고 지내던 아야코 씨를 만나는 걸로 일과를 시작하엿다. 일본에서의 쇼킹 패밀리 상연을 계기로 알게된, 메이지학원대학에서 영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아야코 씨와 경순의 인연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러니 일본에 또 왔으니, 자연스레 만난 것이다. 레드마리아 작업에 대한 대화도 나누고, 핸드폰을 개통 시키는 데에 도움도 받으며 점심 시간이 후딱 지났는데, 헤어지기 전 갑자기 봉투를 건네주시며 레드마리아 제작에 기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렵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올 수 있었는데, 와서도 참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이토 씨를 만나러 요요기로 향했다. 요요기에는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사무실이 있고, 이토 씨는 다른 일이 없으면 그 곳에서 사무일을 하신다. 바로 출발. 오늘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후지이 씨, 그리고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오오하시 씨와 함께이다. 오오하시 씨는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 패널로 이야기 하셨던 분이기도 한데, 지금 소송 중이시다. 원래 일하는 회사에서 파트 타이머로 고용되어 있던 오오하시 씨는 실상은 정사원이나 다를 바 없는 업무 수행을 해 왔었는데, 어느 날 회사로부터 계약갱신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받아서 여성 유니온 도쿄에 가입해서 회사와 단체 교섭을 하여 계약갱신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종업원대표선거에 파트타이머로서는 처음 나가서 많은 표를 얻었지만 당선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회사 측이 오오하시 씨를 파견사원으로 이동 시켜 고용 형태를 바꾸어, 다시 도쿄도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하여 회사 측과 일단 화해하고, 또 종업원대표선거에서 대표로 선출되기도 하였으나, 회사 측으로부터의 괴롭힘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자발적인 퇴직을 강요하는 행위로,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사례가 요즘 일본에서 속출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결국 오오하시 씨는 회사에 소송을 거는 재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괴롭힌 사례들을 들으면 꽤 악랄한 것들이 많았다. 몰래 감시 카메라를 3대나 설치해 둔다든지...) 아무튼 그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와 만나서 상담하는 자리가 오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로 들어온 상담 내용을 분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총 5인이 모여서 하는 이 회의는 상담 사례들을 적절히 분류, 분석하여 자료집을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열렸다. 참가자들 연령대가 3~50대로, 일본의 타 운동 단체보다는 젋은 축에 속한다. 여성 노동 상담의 특성들을 요약하면서, 어떻게 이 부분들을 부각시킬 수 있을 지가 중요한 이야기의 주제였다. 이는 상담에 필요한 실질적인 자료이기도 하지만, 남성 중심의 노조에 대한 비판, 혹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이어지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또 일본 미디어 운동 관계자를 만나 우리 영화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들었다. 역시 많은 분들을 소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 길었던 하루.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