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만나고 있는 비중 큰 한 인물은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acw2'의 대표 이토 미도리 씨이다. 이토 씨는 18세 이후로 쭉 일을 해 온 여성이고, 2000년 이후로는 전업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원래 여성 유니온 도쿄에 있던 분인데, 새로운 형태의 여성 노동자들 간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작년 한 해 전국을 돌며 여성 활동가들과 의기 투합하여 드디어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여성노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늘의 상담 트레이닝의 방식도 그 쪽에서 배운 점이 많다는 게 이토 씨의 설명.

코오리야마는 후쿠시마 현 내에 있는 인구 30만의 도시이다. 우리는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도쿄에서는 자취도 없던 눈이 잔뜩 쌓인 도시에 도착하였다. 그 지역의 교직원노조 회의실을 빌려서 진행된 상담 트레이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빽빽한 일정이었다. 참가자는 모두 여성으로 교직원노조, 연대 유니온, equal(시민 미디어) 이렇게 세 단위의 활동가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지역의 경우, 노동 기준법 등 노동자가 가지는 권리에 대한 정보 공유가 미약하고 상담 창구도 변변치 않다고 한다. 큰 노조들의 경우 대부분 남성 노동자 중심이기 때문에, 임신, 출산을 비롯하여 고용 형태에 이르기까지, 여성 노동자가 가진 노동 이슈에 적절하게 대응해 주지 못할 뿐더러, 부차화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늘의 트레이닝, 혹은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낀 여성들이 많다.

오늘도 상담 트레이닝을 하던 중, 막판에는 그러한 일본 노조들의 문제에 대한 각 개인들의 성토 대회가 잠시 열리기도 했다. 여성을 피해자로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경향의 문제점이라든지, 작년부터 이슈가 되고 있는 빈곤 문제에 대한 이슈화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비가시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다든지... 요즘 만나는 현장의 일본 여성들로부터 받는 느낌은, 그 동안의 답답함에서 치밀어 오른 말들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있어서, 기회가 되는 즉시 모두가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그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는데, 특히 일하는 여성 당사자들이, 너무나 팍팍한 현실에서 드디어 스스로 발언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오늘 참가자 중에는 11년 간 일한 파나소닉에서 해고되어, 분한 마음에 생활의 곤란함을 불사하고 소송 중인 사토 씨가 있었다. 사토 씨는 11년 전 정사원이라고 알고 입사하였으나, 일하는 부서가 이동되면서 파견직으로 바뀌었는데 당시에 그 사실에 대한 통지도 없었고, 잘 모른 채로 그저 열심히 11년 간 밤 10시, 11시까지고 일하며 세 자식을 키우고 살아온 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었고, 이것을 이대로 넘길 수는 없다는 마음에 소송을 걸어 회사에게 '너희들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다'라고 확실히 알려 주고 싶다고 하셨다. 지역에서 이처럼 재판을 걸고 하다보니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고 재취직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더는 두려울 게 없다'고 하신다. 참 쓸쓸한 현실은, 이런 사토 씨가 역 앞에서 선전 활동을 하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10대들이라는 것이다. 윗 세대들은 일본의 경제 호황기를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 10대들이 지금 당장 스스로들의 장래에 불안을 많이 느낀다며 사토 씨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것. 한국의 88만원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던 길, 역 근처에서 같이 식사를 했던 지역 분들은 우리가 역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으로 가는 길 내내 뒤에서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도쿄에서는 느낄 수 없던 따뜻함이, 도쿄보다 훨씬 추운 동네에 있었다.

차비가 많이 드는 동네라서 경순과 나, 둘이서만 코오리야마에 다녀왔고, 경은과 아람은 도쿄에 남아 사진 이미지 작업에 필요한 현장 답사를 닛뽀리 역 주변과 밤의 신쥬쿠 거리에서 진행하였다. 처음으로 나눠져서 작업을 했는데 너무나 놀랍게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딱 만났다. 그 시간에, 그 열차 칸에서 딱 마주치다니... 마침 우리가 신세지고 있는 일본 분께서 역에 차로 마중을 나오시겠다고 한 참이기도 했던 거라, 사이 좋게 넷이서 또 오오즈 케이코 할머님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는 사실. 그러고 돌아오니 또 밤 12시가 지나 있었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