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페민' 사무실에서 아카이시 상을 만났다. 이후 곧 이치무라 상을 만났다. 역시나 필리핀에서와 다르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언어문제였다. 질문이 직접 전달할 수도 없고, 직접 들을 수 없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그럼에도 필리핀이나 국내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우선 내일 있을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모임’ 이전에 일본에서의 취재원과 정보를 얻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 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포커스를 두고 있는 ‘빈곤’, ‘노동’ 등의 주제에 따라 싱글마더와 파견노동과 같은 문제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카이시 상에 따르면 일본에서 빈곤 여성은 44%로 이들은 연수입 200만円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보통 부모와 같이 생활을 하고 있거나 결혼해서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빈곤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빈곤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즉 직업의 형태가 계약직이 되는 전업종의 비정규직화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미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에서 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회적 이슈였다. 과거 시간 당 급여가 현저히 감소했으며 도쿄 및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급여는 훨씬 적다.

-2월 9일 일하는 네트워크 모임(차마시는 날)이 있다고 함

-2월 25일 대기업간의 회의가 있는 날인데 이날 그 장소 앞에서 시위가 있다고 함. 오오테마치, 반빈곤 네트워크 참여.

-3월 4일 일본, 프랑스 빈곤에 관한 심포지움.

-3월 7일 여성과 빈곤에 관한 심포지움. 변호사들 참여하고 아카이시 상도 이날 발표가 있다고 함. 그리고 3월 7일부터 12일까지 페민의 기자들과 다른 단체의 여성들 한국에서의 일정이 있다고.. 위안부 박물관 설립에 관한 이슈에도 동참할 거라고.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아직까지 페민에서 특별히 기획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3월 29일 반빈곤 페스타, 전보초중학교(아직 참여할지 안할지 결정X)

점심을 먹고 이치무라 상과 요요기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같이 갔던 이치무라 상 또한 그곳에서 생활한지 5년이 됐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서 안거지만 이치무라 상이 5년 산것보다 더 오래 30년 동안을 그곳에서 지낸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라주쿠 근처에 있는 요요기 공원은 굉장히 넓은 곳이었는데 조금 깊숙이 들어가자 그곳 텐트촌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약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지내기도 했는데 요즘은 공원 관리소 측에서 감시가 심해져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 중 현재 남아 있는 여성은 4명이다. 이곳에서는 특별히 화요일마다 그림이 있는 카페를 열어 자유롭게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고 토, 일요일에 열리는 카페에 그 그림을 전시하고, 그곳을 찾아와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받고 차를 ‘교환’하기도 한다. 또 ‘노라 워크샵’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면생리대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도 병행한다.

이치무라 상이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일반적인 생활과는 다른 생활방식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앞으로도 이곳을 떠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는 보통 2만円정도로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놀라워하기도 했다. 레드마리아의 맥락과 관련지을 때 어쩌면 이치무라 상의 생활과 그녀의 생각이 ‘덜 자본주의적’으로 살기, 그 ‘틈’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서의 첫 촬영인물로서도 의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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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일정 첫 날. 4명이서 무려 7인분의 짐을 들고 공항에서 이 곳 숙소가 있는 이쿠타(生田)역까지 끙끙대며 끌고 왔다. 일본의 겨울(이라지만 실은 그리 춥지 않았던) 날씨에도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첫 날부터 기진맥진해 있었다. 다들 아침만 먹고 비행기에서 주는 맛없는 샌드위치만 꾸역꾸역 먹은 탓에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무사히 이쿠타역까지 도착했겠다 싶어 조금 긴장이 풀린 우리들은 이쿠타 역으로 할머니가 마중 나왔고 짐을 싣는 동안 다들 짐을 다 챙겨왔다고 믿고는 할머니의 차를 탔다.  그런데 숙소 도착해서 보니 카메라와 트파이포드가 없는 게 아닌가! 어쩜 그렇게도 촬영장비만 딱 두고 왔었는지! 거기에다가 김까지 덤으로 두고 왔다는 사실에 다들 한바탕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온통 배고프고 힘들고 거기다가 가슴까지 철렁해진 일이 생겼는데도 다들 라면을 끓여 먹으며 ‘그래도 일본이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오자마자 내일부터 바로 일정이 있다. 바로 뒤에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네트워크’에서 주최하는 1박 2일 캠프에서 촬영을 한다. 오히려 이렇게 쉴 틈 없이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그것을 경험했으면 한다. 필리핀, 국내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부디 좋은 촬영 마치고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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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촬영은 주로 가정용 캠코더로 해왔고
촬영 내용은 혼자 보고 혼자 킥킥대며 혼자 사용할 장면을 선정하는
그야말로 부담없는 취미활동이었다.

경순이 촬영연습겸 영란과 선포식에 나가보라고 권했을 때
촬영은 더이상 '단순 내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쓸모있는 영상을 촬영해야 한다는 것,
안써본 삼각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모두에게 촬영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 모두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어차피 넘어야 할 산.
이왕이면 씩씩하게 넘자고 스스로 다짐.

출발하기 전 사무실에서 삼각대 사용법 듣고 몇 장면 구도 잡아보고
영란과 함께 현장으로 출발.
30명 남짓 사람들이 모였고 집회는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교회 후배가 와있어 반가웠다는~)
사회보시는 분이 빨간 눈사람 소개마저 하더라.
여성의 얼굴이 촬영 주제니 여성분들 표정관리 하시라..는 말씀까지 곁들여서...
촬영하다말고 손한번 흔들어주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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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영란이 촬영하는 것을 지켜보니
영란 촬영하면서 끊임없이 다음 장면 물색하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원래 나의 촬영연습이 주목적이었으므로 영란 곧 내게 카메라 넘기고...
나도 영란처럼 촬영 중에도 다음에 어떤 것을 촬영해야 할 지 주변을 살피고 머리 굴리려 애씀.
촬영연습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컷을 찍으려고 함.

** 내가 촬영에 담고자 했던 것은
1) 집회 전체 풀샷 - 뒷편과 앞편 양쪽 모두
2) 기륭 건물, 혹은 건물 간판이 집회장면과 함께 나오는 컷
3) 문화제 가수, 몸짓회의 발표장면
4) 집회 참여 사람들의 표정

** 영란이 촬영해보라고 조언한 것은
1) 소음측정한 사람이 주고 간 쪽지 (-> 주는 장면은 완전히 놓침. 난 그런 게 있는 줄 알지도 못했음 흑~)
2) 추위로 인한 사람들의 행동(손을 비비거나 굽어있는 모습..등-> 찍으려고 하면 이미 동작완료 ㅜ..ㅠ)
3) 주변에 아파트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
    (-> 아파트는 높고 사람들은 앉아있어서 구도를 잡기 어려웠음. 삼각대 떼어내고 로우앵글 잡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다른 장면 찍기 힘들 것 같아 포기함)

** 아쉬웠던 혹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
1) 팬이동(특히 줌한 상태에서) -> 완전 젠병이다. 이동하다보면 목적 피사체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그래서 액정과 실제 상황을 비교해 보면서 이동하려다보니 이동시간 들쭉날쭉에 흔들흔들~(으...절로 씨발이 나오더라)
2) 삼각대 수평조절 : 가기전 삼각대 이동할 때마다 수평조절하는 것을 습관화하라했던 경순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ㅋ~) 수평조절하다보니 볼짱 다봤다. 수평조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기동성이 딸린 것. 나중에 영란이 준 팁- 삼각대를 완전히 다 펼치지 말고 다리 하나 정도를 움직일 수 있게 세우면 찍으면서 수평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 빠른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 때 아주 유용할 듯.
3) 삼각대 높이조절: 한 두번 시도했는데 엄청 일이었다. 손에 들고 찍을 때는 높낮이 조절이 자유로웠는데 삼각대를 사용할 때는 꼭 필요할 때만 높낮이 조절을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정도 높이가 적절할 지 결정하고, 다리 세개를 비슷한 높이로 하나하나 조절한 후, 수평조절하고...쩝~ 그 높이에서 원하는 앵글이 나올지 미리 확인할 수 없어 높이조절한 후 재조정을 해야하는 경우도 많겠더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대안책이 없나?) 어쨌든 삼각대 조절을 빠른 속도로 해내는 연습이 필요할 듯.

** 총평
신년 선포식의 특성을 포착하지는 못했고 그냥 촬영연습이었다고 봐야 할 듯.
촬영실력이 좀더 좋아지기 위해 어떤 것을 연습해야 할지 약간의 감이 왔다.
개인적으로 촬영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촬영하면서 이 장면 괜찮을 것 같다 느껴지는 게 두 장면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인상 깊게 본 것은 사람들 표정을 찍는데,  노래 분위기에 따라 표정이 휙휙 바뀌더라는 것.
본인은 몰라도 사람은 환경에 아~주! 민감한 동물인 게 틀림없다.
내 성격이 급한 편이라는 것도 재확인.
아직 실력없는 것은 당연하고 감각이 없다면 그건 내 잘못도 아니니, 좀더 느긋하게 해도 좋을 것을!
어찌나 발을 동동 구르던지...쯧~안쓰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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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경순, 경은, 아람
일자: 2008년 12월 30일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기륭전자 송년 집회를 갖음.
추운 날씨에도, 100여 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 모였었음.
집회가 4시부터 시작되어 한시간 가량 진행된 다음 20분 정도 근처 서울지방노동청까지 행진함.

행진 뒤 7시 근처 호프집에서 송년회 파티
송년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

송년회에서 행신동에서 세입자 투쟁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혜자씨를 만남.
(취재정보 및 소스자료 란에 관련기사 올려놓겠음. 참고바람)
연락처: 010-8297-4281

더불어 김소연 분회장 만나 이야기 나눔.
연착처: 017-317-3460   synodong@hanmail.net

10시쯤 여이연 송년회 방문하여 경매 현장 관람(경은은 이날 가방 하나 낙찰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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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경순, 경은, 영란, 아람
일자: 2008년 12월 22일

영란은 부산에서, 경은과 경순과 아람은 서울에서 평택행
오랜만의 국내 촬영이었음.
7시부터 네트워크 단체 사람들 모여 송년회 파티, 이때는 찍은 것은 없고
밤에 근처 허브모텔에서 이희영씨 영상 찍음.
새벽 1시가량에 촬영 마치고 평택 집장촌 일대 스케치 영상 찍고

다음 날, 12시쯤 기상하여 다시 낮동안의 집창촌 모습들 스케치하고
근처 안정리, 버스로 일주.
다시 평택 시내로 돌아와서 평택 시내 정경 스케치 영상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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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2~081015 올롱가포 Janlee 출산 그 이후

잔리가 나 오기 몇시간 전에 애를 나버렸다고 했다. (안타까워서 쓰러졌었음)
아무한테도 연락이 없었던 것을 우선 원망해보지만서도.;;
여튼 생각보다 올롱가포에 늦게 간 내 잘못이지. 예정일보다 5일이 빨랐다.
여튼 곧바로 그날 잔리가 지금 머물고 있다는 잔리 아빠집에(Mactan 이곳도 유명한 가난한 동네라고 했다)
알마와 멜로디가 같이 동행해줬다.
아기를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잔리의 모습은 건강해보였다. 아기 또한.
이것저것 아기 낳은 직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날은 잔리집에서 하룻밤 자지 못하고 다음날 일찍 다시 오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 부클로드 사무실 청소하길래 그 모습을 찍고
10시쯤 잔리집으로 다시 갔다. Mervi, Kulot, Ana, Melody, Nene, Bakekang이 같이 갔다.
작은 트라이시클에 이 많은 사람들이 탔음.;;
아나가 잔리에게 밥을 준비하고 이사람 저사람들이 잔리 상태 물어보고
아기 보고 좋아하고.. 그 모습 자체가 좋아보였음.
오후에 나왔고 저녁에 잔리가 그 근처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음.
아무래도 아빠랑 같이 사는 것보다는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게 더 낫다는 주변 사람들의 판단도 있었고
(이때까지 난 할머니와 잔리의 사이가 아빠와의 사이보다 낫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솔직히 잔리는 부클로드에서 살기를 원했으나 부클로드 입장에서는 돈문제나, 돌봐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이 되서 할머니집이 최선이라고 알마와 스텝들은 말했다.
이날 경순에게 전화를 했고 잔리집에서 다음날 하루정도 머물면서 찍기로 결정

다음날 엘사, 에블린과 아침 일찍 잔리집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늦게 사무실에 도착.;
어쨌든 바로 잔리집으로 가서 엘사와 에블린은 잔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할머니집이 아빠집 근처라고 하더만 바로 옆옆옆 건물이였다.
가족들 분위기가 대체로 조용하길래, 생각컨대 '잔리가 조용한 이유가 이래서였구나..' 했다.
여튼, 알아보니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고 할아버지쪽이 잔리 할아버지의 형제분이었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두번째 부인. 어쩐지 사이가 살갑지 않아보이더라니..
할아버지도 챙겨주고 하지는 않더라. 점심을 먹고 오후까지 대화도 별로 없이 가끔 할머니와 할아버지 대화찍고
할머니 집 청소하고 잔리 애 돌보는 모습 찍고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멜로디가 들러서
멜로디와 잔리 이야기하는 모습 찍었다.
이때 멜로디가 나한테 말해줬는데 '할머니가 우리들 여기서 자는 거 안좋아한다'고.
사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잔리가 그 집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았었는데
모르는 사람들까지 와서 잔다고 하니 더 싫었던 것으로 사료.
잠깐 바깥에 나왔다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문제때문에 싸우고 있었고
(물건던지고 멱살 잡고 심각해서 순간 내가 괜히 잔다고 해서 문제만 더 크게 만든 건 아닌지 싶었다.)
잔리는 울면서 나보고 '부클로드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서 나도 묻지도 않고 짐챙겨서 돌아왔음.
돌아와서 엘사와 벳이 잔리에게 이유를 추긍했고
그간 잔리와 가족들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고 추측했고
그날 잔리는 부클로드에서 머물렀다.
전에 보았던 잔리의 표정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다음날 스텝들은 잔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이곳저곳 잔리가 머물 수 있을만한 여성쉼터같은 곳에 전화를 해보았는데
잔리는 다 싫다고 했다.
알마도 잔리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했고
당분간은 잔리가 부클로드에서 머물듯 하다.
오후까지 특별한 일이 없어 마닐라로 올라옴.

p.s 아무래도 부클로드 사람들 돈에 관한 인터뷰를 정식으로 못한게 아쉽네요. 흐음.....




Posted by 빨간경순



 

사실, 이날 연락해서 리타 할머니집 추수날이라고 하길래
그를 촬영하러 내려갔는데
엘사(할머니가 영어를 잘 모르셔서 엘사-부클로드 스텝-에게 부탁해서, 통화해서...)를 통역자로 전화통화했으나
중간에 이야기가 잘못됐는지, 여튼 갔더니 이미 리타 할머니 집 추수가 끝난 후였다.
아쉬운대로 가족들이 쌀 푸대에 담고, 로로가 논에 불지르고 동네에서 추수하는 모습들
스케치 위주로 많이 찍힌듯.

이날 나 곧 한국간다고 하니 할머니가 이것저것 주전부리랑, 수비니어라며 바지를 주셨다.
(이상하게 나 갈때마다 바지를 주시는 것 같다. 바지 2개밖에 없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는지.;;)

난 이날 부끄럽게도 울었고, 할머니는 내가 운다고 웃으셨다 -_-
그리고 덜컥 따갈로그어로 꼭 편지를 쓰겠노라 약속해버렸다. (컥)



Posted by 빨간경순




080930~081008 부클로드 in 올롱가포

(나는 번역때문에 10월 1일 저녁부터 참여 )

부클로드 사무실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카드게임을 한다던지, 빨래를 넌다던지) 찍다가

다음날 2일에는 올롱가포 타운 스케치, 이날은 주로 한진 기업 관련 내용 촬영(경순알바와 더불어)
한진 전경 모습 쭉 찍다가, 한진 기업 입구 쪽에서 한진 건설 노동자들 만나 인터뷰
임금체불은 기본이고, 500여명 산재, 기록상으로는 14명이 일때문에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많다고 말함. 하루임금이 최소 330페소.
가끔 초과근무를 하지만 기본임금조차 못받고 있는 상황에...
이날 인터뷰했던 한진 노동자들 인터뷰를 들어보니, 자신들의 일도 하청받은 일인데, 이도 한국인이라고 함.
한진 근처 마을 방문.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한진에서 일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함. 총 50가구 중에 50여명 정도.
1 가구당 1명씩 일하는 꼴.
전기도 없고 물도 산에서 나오는 물 끌어다 쓴다고 함.
그곳에서 이날 같이 동했했던 Noel. Demesa(45. National Local of Building and Construction workers. Local Organizer)이야기도 듣고.
다음에 한진 근처에 있는 재이주 지역 동네도 방문(한진기업 부지때문에 이주)
그곳에서 Village Officer도 인터뷰.
한진기업을 배경으로 Tess와 한진 노조의 지금 상황에 대한 인터뷰

10월 3일 부클로드에 교육이 있는 날이라서 이날 수업하는 것 찍었다.
예전에는 자원활동가가 와서 수업을 했었는데
최근에 자원활동가가 그것을 못하게 되서 올롱가포시에 있는 Department of Education(DepEdu)에서 나온 Rosmary Calballo라는 분이 교육
부클로드에서 하루 100페소 수고료 주고.
하루에 과학, 영어, 수학, 필리피노 등등 3~4시간 동안 여러 과목들을 한꺼번에 가르친다.
주로 부클로드에서 기숙하고 있는 아이들이 나가 있는 트라이앵글에서 잠깐 찍다가
마리마가 어제 클럽에서 한국손님 만난 이야기도 찍고
오랜만에 클롯 딸인 Bakekang도 보고
이날, 정기적으로 미군 배가 Subic Free Port에 들어오는 날이었는데 이날 3대가 들어왔다고 하여,
수빅 가는 길, 수빅타운 스케치를 하고 수빅자유항구에 있는 미군까지 찍고 옴.
요즘에는 성매매여성들이 직접 미군 배 안으로 들어가 성매매를 한다고 들어서 그런 모습을 혹시나 촬영할 수 있을까 봤지만 아쉽게도 직접 보진 못하고..
저녁에 부클로드 스텝인 에블린과 함께 클럽에 찾아가기로 했다.
클럽 가기 전에 길가에 늘어서 있는 클럽들 전경을 찍었는데 생각보다 한산했던 느낌
클럽에 가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몇 내일 인터뷰하기로 약속하고
그냥 그날은 술한잔하고 나는 처음으로 당구를 배웠음

10월 4일 오전에 다시 부클로드 생활 모습 찍었음. 빨래하고 알마가 요리하고(자기 생일 음식을....;)
이날은 부클로드 식구들과 함께 알마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었음.
5시쯤 클럽에 다시 와서 스케치하고 그곳 일하던 사람 인터뷰
May Jamolin(27 Cleaner/Janitress)
그곳 클럽 주인이던 Ma. Elena V. Toralba(41 Babes)/ 애 2명 있고 막내가 영국인과 결혼한 사이에서 낳은 자식 각각 15, 3살
그곳 주인인 Babessms 5년동안 지금의 클럽에서 일했고 그전에 1997년부터 클럽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함.

10월 5일 <Interantional day of No Prostitution>
이날은 올롱가포 지역 성매매 종사 여성들에게 무료로 'Pap Smear' 진료를 해주는 날이었음
부클로드가 주관하고 올롱가포 보건소에서 진료.
평소에 이런 진료를 받으려면 200~250페소가 든다고 함.
점심무렵 스페인 감독이 부클로드 멤버들 인터뷰하러 온다고 하여 알마 따라서 부클로드 사무실로 옴.
그 무렵 경순은 마닐라로 돌아감.
오후에 난 남아서 부클로드랑 트라이앵글 왔다갔다하면서 그곳 아이들(?)을 찍음.
트라이앵글에서는 주로 스케치 위주로 찍혀진듯...

10월 6일 아침 일찍 알마집에 왔음.
이날이 진짜 알마 생일이었는데 집에서 축하파티를 함.
애들때문에 진짜 정신없었음.
4일에 부클로드에서 알마생일잔치도 그랬지만,
진짜 자기 생일이 아닌 것 같았음(오히려 당사자가 더 고생하는 날이었다고 해야하나. 알마는 계속 요리하고)
돌아와서 월요일(아참, 이제는 월, 수, 금마다 부클로드에 수업이 있음) 수업 내용 찍었음.
특히 클롯이 수학은 잘하는데, 영어를 못해서 두 수업에서 클롯의 모습이 변하는 게 재미있었음.
오후, 저녁에 트라이앵글에 갔는데
그날 Mervi가 돈을 잃어버려서 클롯이랑 싸웠다고 했다.
정황을 뒤 늦게 안 덕에 싸운 모습은 직접 못보고 Mervi가 우는 모습만 봤음.
그래도 저녁에 들어와서 잘때는 안고 만지고 둘이 좋아 죽더만..(;)

10월 7일 이날 잔리가 동네에 있는 클리닉에 갔음. 이것저것 진료받고
돌아와서 스텝들과 결과 이야기하는 Janlee,
수요일에 집회가 있기 때문에 화요일로 교육이 앞당겨졌다.
Melody가 오랜만에 수업에 참여했고
마리마와 클롯은 특히 공부를 열심히 했다.
Janlee가 좀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올롱가포에 있는 James L. Gordon Memorial Hospital에 방문.
공공장소라 촬영은 금지. 가는 길, 오는 길에 조날린과 멜로디랑 이야기하는 Janlee모습 담음.
오후에 Janlee 따라서 트라이앵글에 갔다. 이것저것 스케치했는데
저녁에 섹스거래 현장 목격했음(두근두근하더만은)
그때 사복경찰이 나타나서는 남자를 불러냈고 후에 남자는 여자와 싸웠다(니탓내탓하느라..)
너무 갑자기 일어났고, 처음 거래현장은 멀리서 찍어서 제대로 찍혀졌는지에는 확신을 못내리겠음..;

10월 8일 아침에 애들 자는 모습 찍고
이날은 마닐라에서 'Interantional Day of No Prostitution' 집회가 있던날.
People's Global Action on Migration, Development and Human Rights라는 단체에서 주최했고
House of Representatives, Batasan Hills, Quezon City에서 열림(우리 숙소 근처였음)
직접적인 이날 요구안은 반성매매법안을 가결시킬 것을 촉구하는 것이였고
시청앞에서 집회가 있은 후 대표자 몇명이 안으로 직접 들어가
관련 공무원을 만난 후 반성매매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부클로드의 집회참석을 끝마쳤음.
부클로드 사람들 돌아가고 난 숙소로 돌아옴.

<공무원과 이야기 많이 하시던 분>
Jean Enriguez(Executive Director CATW-AP-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of Women Asia Pacific-)

<올롱가포 타운 내에 있던 눈에 띄던 조형물>
Ulo ng apo(Head of old Man)
Magasaysay Rotonda

<부클로드 스텝들>
1. Alma G. Bulawan(President) 43세
: 1988년에 클럽 일을 그만두고 그 해에 부클로드를 조직함.
2. Elsa Gonzaga(Vice president) 48세
: 1981년부터 1991년까지 10년동안 클럽에서 일함.
1994년 부클로드에서 처음 가방만드는 바느질 교육에 참여하다가 2001년 스텝으로 활동
3. Beth Lamsin(Tresurer) 52세
: 1986년 바에서 일을 시작하고 1989년 임신 이후 그만둠.
1993년 멤버로 처음 활동하다가 2003년 스텝으로 부클로드에서 일함
Arvhy Dongcoy(Secretary) 36세
:1993년 클럽에서 엔터테니너로 일하다가 2003년부터 스텝으로 활동
Evelyn Merza(Organizer) 43세
:15살때 클럽에서 Cashier로 일하다가 1983년도 18살, 결혼할 때 일을 그만둠
1994년부터 부클로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됨.

<현재 부클로드에서 머물고 있는 아이들>
Meryyriza Javier(Mervi) 21세
Mary ann Del Rosario(Kulot) 18세
Jnalyn Hizon 20세
Donna Banal(Negneg) 18세
Juliebeth Mamaril(Janlee) 19세
Abanador Michelle(Anna) 23세
Flor Angel Herman(Marimar) 24세
Melody Reyes(Melody/Meday) 19세
Mary Grace Del Rosario(Bakekang) 2세
Khayle Jane Abanador(Nene) 1세
John Michael Hizon(JohnJohn) 1세



 

Posted by 빨간경순





일단 비가 와서 행사는 한산했다.
이런 저런 그림이나 포스터가 전시 되어 있었고
그 외 성구매자들에게 하는 말, 이래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낙서하게 해 놓은 천이 있었고
유리방을 재현하여 만들어 놓고 1분 체험?
거기에 서 있어 보는 경험을 해 보라는 건데
한 가운데에는 시뻘건 고기 덩어리 -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겠죠? - 를 매달아 놓고
사람은 팔고 사는 게 아니라던가...
암튼 매우 불쾌한 전시물이었다.
그럼 유리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고기라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걸 하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 피해여성의 범주에 위안부가 들어가 있고
정대협에서 제공한 그림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이걸 가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음)

그리고 저녁 6시부터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시민들이 낙서한 그 천을 찢는 퍼포먼스와
유리방에 활동가 한 명을 세워 놓고 그녀를 구출하고 유리방을 부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구해지고 사람들은 박수 치며 좋아하고....
음냐.

암튼 새삼 반성매매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폭력적인 면을 경험하고 왔음.


 

Posted by 빨간경순





아람이가 웹자보 퍼다 놓기도 했지만
오늘 토론회 패널은 여이연의 김경미 씨, 민성노련 희영 씨, 전철연 홍보부장(-원래 하기로 했던 분이 아파서 다른 분이 대신 왔음)였고 토론회 제목은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재개발의 불도저를 멈춰라!"였음.

여이연 - 집창촌 폐쇄와 재개발의 문제점
전철연 - 주거의 권리, 생존의 권리 우리 모두의 당당한 권리
이희영 - 재개발의 불도저를 멈추라

이런 주제로 토론회를 한 거고.
김경미 씨 발제는 성특법과 재개발 간의 연관성을 짚어주는 유의미한 지적이 있었고
전철연은... 발제 자체에서는 그냥 재개발과 밀려하는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가 있었고
희영 씨 발제는 성특법 때문에 그동안 어떤 점이 어려웠고 또 연대 과정에서 겪은 오해에 대한 토로, 이후 연대에 대한 필요성 등을 짚어 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토론회 발제문을 우리 사무실 이사하고 나서 그 사무실에다 비치해둘테니 각자들 읽어 보시고.

발제 후 토론 시간에는
전철연 분과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전철연은 이미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투쟁하고 있다.
평택도 변호사 법률 자문을 구하기보다는 실력행사(;)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라는 지적을 하였고
그에 희영 씨는 평택의 경우 성노동이 불법으로 규정되고 단속되는 현 상황에서
성노동자가 적극적으로 투쟁에 뛰어 들었다가 받을 사회적 낙인이 개개인에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대답.
즉, 평택의 경우 단속에 저항하다가 잡히면 윤락 전과가 생겨 버린다는 것.
전철연에서 나온 분은 재개발 시 상가나 시장의 경우 다른 곳이 임대 점포를 받을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 있으니
여기도 그것을 좀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등의 말씀을 하셨으나
약간 평택의 상황에서 생각하기에 거리가 좀... 아무튼 그게 적극적으로 소통되어 아 그렇구나 전철연의 방법을 참고하자, 라기 보다는 평택은 성노동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맥락에 위치되는 이슈가 있기에 그 맥락에 맞는 투쟁 방법을 열심히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정리 되었다.

일단 평택에 집결지 단속하는 경찰들이 발대식을 최근에 했고
추석 직전에 단속이 있었고 또 어제 단속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발대식까지 하고 벼르고 있는 것이면 슬슬 평택에 내려 가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철거 위협보다는 단속이 선행되는 분위기.
희영 씨도 단속해서 이 곳 여성들을 다 흩어버리고 그 다음에 철거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고 평택 사람들은 또 단속이 올 지도 모르니 내려 가서 지켜야 한다며
저녁 식사만 하고 급히 평택으로 내려 갔고 촬영은 토론회에서 종결.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