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때문인지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하고 암장대표 그리고 또다른 여성회원 한분이 동행을 했다.
이런...첫날부터 고수들 사이에 껴서 기죽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 고수들은 초보를 대하는 폼새가 여유가 있고 따뜻하다.
덕분에 가능할까 싶었던 암벽을 세개나 완등할 수 있었다.
수리산 매바위 암장은 각각 난이도가 다른 총 16개의 피치가 있는 곳이다.
그중에 3개의 피치를 등반했는데 꺄후....어찌나 바위가 차갑던지 손의 감각이 거의 없어질 지경.
내가 올라갔던 피치의 이름이 재밌는데 회사랑(5.10b),작은악마(5.10c),남쪽으로 튀어(5.11b) 다.
피치의 이름은 그곳을 개척한 사람이 직접 짓는다고 하는데 전국의 암장에 이런식으로 재밌는 이름들이 꽤 많다.
우자지간 나는 회사랑을 거쳐 작은악마가 되어 남쪽으로 튀었다는 야그.ㅎ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암벽은 초보인지라 이것저것 처음듣는 용어가 꽤 많은데
안그래도 어제 본 영화 스토리도 기억이 가물해지는 이마당에 하나씩 알아가려면 그것도 나름 일이겠다 싶다.
하지만 뭐 이론시험 보는 것도 아니니 뭐 그런 걱정까지.ㅋ
기억하니까 말인데 수리산도 언젠가 와본 곳인거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지난번 소요산을 갔을때도 마찬가지고 청계산을 갔을때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정말 기억력은 꽝이다 싶다. 심지어 100번은 족히 갔을 북한산도
여지껏 봉우리 이름이며 군데군데 이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한두번 산을 가고도 이것저것 잘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민망한지.
하지만 이날 오른 매바위는 정말 잊을 수 없을거 같다.
부지런히 자연암벽을 다니고 싶은데 날씨가 추워지니 얼마나 아쉬운지.
겨울이 오는게 싫어지는건 이번이 처음일세 그랴.
그래도 수라산의 마지막단풍과 함께 이렇게라도 마음을 달랠 수 있어 참 좋았던 하루다.
그리고 암장에서는 꽤 까칠한듯 보이는데 암벽할때는 누구보다 자상하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던 윤대표와
나와 동갑내기라는 미영씨 덕에 정말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는 야그.
이날 안그래도 배낭이 작아 대형배낭을 메고갔다가 엄청 고생을 했는데
두사람이 맨 배낭을 보고 검색했다가 횡재를 했다.
땡처리로 그것도 어제날짜로 마감을 하는 9만원이 넘는 배낭을
26000원에 주문했다는 사실.
가끔 이렇게 운좋은 날이 있어야 살맛도 ㅎ
우자지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날 등반사진을 올린다. ^^
선등반을 하는 윤대표.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로프를 중간중간에 박혀있는 고리에 퀵드로를 이용해서 줄을 걸어놓는다.그렇게 해놓으면 뒷사람이 올라가기 편하고 안전하다.나도 언젠가 선등반을 할 수 있는 날이 있겠지.ㅎ
에스트로맨이라는 실내암장을 운영하는 윤길수대표. 실내암장에서 보면 까칠하니 영 깍쟁이로 보이는데 암벽을 타기 시작하면 어찌나 멋져보이는지.팔다리가 쭉쭉 발에는 접착제가 붙은 것처럼 밀착감이 죽인다. 내발에도 접착제가 붙을때까지 앞으로 많이 쫒아다녀야징.ㅎ
나랑 동갑이라는 미영씨. 암장의 거의 맏언지인듯 싶다. 이것저것 챙기는 것도 일등이고 산을 오르는 것도 매력적인 분.암벽을 시작한지 10년정도 됐다고 한다.이날 날씨도 차가운데다 바위가 얼음장 같아서 이분 손바닥이 거의 까졌다.
미영씨가 찍어준 몇장의 사진을 옮겨왔다.역시 윤대표에 비하면 허술한 동작이기는 하지만 중요한건 완등을 했다는거.이날 많이 느낀거지만 올라간 사람의 밧줄을 잡아주는 빌레이가 정말 중요하다는걸 새삼 많이 느꼈다.윤대표가 직접 빌레이를 해주면서 이것저것 코치를 해주어서 그나마 완등할 수 있었다.정말 감사.^^
이날 나는 도시락을 싸갔는데 역시 산에서는 끓여먹는 재미가 제일.센스있는 미영씨가 맛있는 커피(역시 산에서는 믹스가 쵝오)와 우동을 끓여주어서 몸도 마음도 따뜻.^^
목포에서 처음으로 인권영화제를 연다고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초청을 해준 전화속의 목소리를 듣고는 안갈 수가 없었다.
직접 만나뵈니 정말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 느껴질 만큼 모두들 다소 긴장되어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된 영화제가 될지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이틀간의 짧은 영화제고 영화편수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이 하루반동안 진행되는 영화제를 위해 세달간 서로다른 단체의 실무자들이 모여
매주 회의를 열면서 머리를 맞대고 이 영화제를 준비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목포에 인권영화제가 열린다는데도 관심이 갔지만 보다 관심이 간곳은 목포 그자체였다.
몇 년전 제주도에 가는 배를 타기위해 잠시 들렸었고 그전에는 촬영차 지나쳤던 곳이었던거 같고
그 이전은 그저 노래의 제목에서나 귀가 따갑게 들었던 곳.
한때 유행했던 유행가로만 치부하기에는 노래가사가 절절한 목포의 눈물이나 목포는 항구다 라는 노래는
막연히 목포에 대한 묘한 향수와 낭만을 느끼게 한다.
나같은 사람이 그러니 보다 연배가 높은 이들은 오즉할까 싶다.
그렇게 영화제를 인연으로 나는 목포를 잠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역시 제일 처음 느낀건 역시 사람을 통해서인데 그들을 통해 목포가 무안군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도시였는데
지금은 무안군보다 큰도시가 됐다는거.그래서 무안군을 다시 목포시로 영입하고자 하나
무안군과의 관계가 계속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거.
그리고 영화제가 열리는 소위 목포의 신도시라 일컬어지는 하동 상동 지역이 모두 매립지라는 거.
헉...그니까 내가 바다위의 땅에서 지금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하고 있었군요.라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알고보니 목포시는 아주 오래전부터 매립지 공사를 진행했고 현재 목포시의 1/3이 정도가 매립된 땅이라고 한다.
거대한 매립지는 신천지가 됐고 시에서는 비싼 값으로 불하를 해서 현재 수많은 아파트와 상가가 이곳에 형성되어 있다.
일제하에 목포항을 통해 일본의 수많은 물자가 오가고 전국의 6대항에 들어갈 만큼 이름난 곳이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목포는 한때 광주보다 더 잘나가는 도시였다고 한다.
작은 땅에 사람이 몰리니 거대한 뻘이 매립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마어마한 목포시의 중심지가 된것이다.
근데 무서운건 이 매립지가 조금씩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해 현재 한뼘 정도가 수심이 상승해서 2050년에는
도시가 물에 잠길거라고 한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나 목포시에서는 그냥두지는 않겠고
다시 물을 막는 공사를 진행하기는 하겠지만 나는 듣기만 해도 끔직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다를 메우면서까지 사람이 들어와 살고 신도시가 된데는
목포에 들어서있는 현대삼호조선소를 비롯한 삼성,한진 등 수많은 조선소와 관련업체들과 연관이 있다.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목포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을 수용할 많은 집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울산만큼은 아니어도 전남에서는 그래도 돈이 꽤 잘도는 곳이 됐고
그 댓가로 지도가 바뀔만큼의 간척지 개발이 용인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는지 잼다큐 강정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할때 전국에 강정과 같은 문제가 있고
그래서 강정은 어디에나 있다는 이야기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을 하는듯 싶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와 함께 남성중심의 도시 그것도 지역의 가부장문화가 거센 지역에서 일하는
여성활동가들의 이야기도 재밌었다.
해결할 사안들이 이곳에도 많지만 여성이 주체적으로 활동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는 거.
그래서 목포에서 대학을 나와 이후 거의 25년을 이곳에서 활동하고 살았음에도
이곳 토착민 출신의 운동가의 아내라는 직함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남일 같지 않았다.
내로라 하는 지역의 진보적인 남성운동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기는 여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3개월이나 받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마치 여성문제에 해박한 사람인냥 말하기도 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다가 목포항이 있는 유달산 주변에 모여있는 달동네가 개발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침일찍 찜질방에서 나와 그곳을 찾아가보았다.
서울의 아현동과도 비슷하고 부산의 산동네와도 비슷한 그곳.
오래전 이동네는 목포항을 오가며 일했던 많은 사람들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뱃사람도 있었을것이고 어부도 있었을 것이고 목포항을 통해 장사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중심지였을 이곳.
문든 프랑스 남부에서 보았던 구도시가 생각났다.
천년가까이 되는 그 도시가 유지될 수 있었던건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을 부수지 않고
도로와 상하수도 등을 끊임없이 보수공사를 통해 살만하게 만들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달산 주변의 동네를 가보니 도로도 부서진채 그대로고 하수도도 몇십년전 그대로
겉만 땜빵해서 무너져내리고 있어 정말 사람이 살기도 힘들게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살고 있는 사람들.
이곳을 떠나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은 화창했던 그날 여기저기 빨래를 널어놓았고
그 풍경은 묘한 감상과 더블어 마음을 흔들었다.
전날 만났던 여성의 전화 황유란 대표는 시민단체에서 그곳에 기거하는 노인들에게 도시락배달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정말 동네가 심각하게 훼손이 된건 사실이라고.
그래서 그분들이 살만한 곳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동네로 개발이 되게끔 방향을 바꾸고자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란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매립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쩌면 목포에서 이곳이 가장 안전한 동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찹찹한 웃음이 났다.
그렇게 달동네를 한바퀴돌고 내려오니 목포에서 유명한 식당이라던 장터식당이 눈앞에 있다.
서울에서는 이제야 겨우 일어날 시간이었을텐데 찜질방에서 잠안자고 꼭두새벽부터 돌아다녔더니
아침부터 여는 식당이 없어서 창자가 한참이나 꼬였다.
게살비빔밥도 이곳이 항구주변이라 가능햇던 음식이었을 것이다.
어찌나 빨리 먹었는지 10분도 채안걸린듯.
밥을 먹고 한번 더 돌아다니고 싶었으니 피곤이 급습해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15시간을 내리자고서야.....ㅎ
돌아와서 정신 차리고 보니 이번에는 사진을 제대로 많이 찍지 못했다.
유달산 동네 사진만 아쉬운데로.^^
잼다큐 강정이 폐막작으로 상영이 되었고 극장의 다음 상영이 있어 엄청 짧은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폐막식이 초고속으로 이어졌다.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하지만 황유란 집행위원장의 말대로 성공적이라고 믿는다.왜냐면 이 영화제를 위해 열심히 뛰었고 고민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으니까.수고하셨습니다.^^
아침일찍 유달산으로 향했고 노적봉 앞에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지나갈때 남자둘이서 열심히 뭔가를 찍고 있어서 뭔가하고 봤더니 다산나무라 한다. 아기를 많이 낳게 해달라고 이 나무에 와서 기도를 드리고 갔다는데 웬지 좋아보이지가 않는다.여성은 없고 다리만 벌리고 있는 이나무에 무슨 다산기원을...앞선 사진을 찍던 남자들이 너무 심혈을 기울여서 찍는데 그것도 좀 볼썽 사나운 풍경이었다.
유달산은 300미터가 채안되는 얕은 산이지만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있는데다 목포의 전후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좀 더 높이 올라가면 다도해를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산동네를 보고싶어 방향을 동네로 틀었다.
예전에 어릴적 내가 살던 연희동에도 대문이 없는 집들이 꽤 있었다.늘 동네사람이 왔다갔다하며 수다를 떨고 동네소식을 한번에 파악 할 수 있었는데.
골목 군데군데 보이는 외부 화장실이다.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 집들도 많아 문앞에 잡초가 무성하다.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니다보면 어느새 눈에 보이는 바다풍경. 이곳에서 뱃일을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는 모습도 확인하고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쌓인 눈물을 훔치기도 했으리라. 지금도 어울리지 않게 시야를 가리는 저 아파트가 눈에 거슬리는데 이곳을 개발해서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다면 얼마나 가관일까. 일본에서 배타고 부산앞바다에 들어설때 보이는 아파트의 행렬이 얼마나 흉측하지 관계자들만 모르고 있는걸까.
이 골목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라고 놀고 태어났다. 돌보지 않는 곳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이곳이 이쁜 도로로 다시 태어나고 이곳을 다시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놀고 태어나는 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리한걸까.여성단체에서 하고자 하는 개발도 이런 곳을 고치고 새롭게 살만한 지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정말 그들의 계획이 잘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릴때 친구들이 저녁을 먹고 창문에 와서 불러댔다.그렇게 멀려나가 다방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칼싸움도 했었다. 전화기보다 빠르게 달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는데 이제는 창문으로 누가 쳐다보는 것도 싫고 낮은 창문에는 다들 사람보는게 무서워 문을 걸어 잠궈둔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도 사람만나기가 힘든 세상.
밖에 나와서 수다떠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라졌다.마침 날씨가 화창해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듯이 빨래를 널었다.그리고 지금쯤 낮잠을 즐기고 있는걸까. 개발이야기로 이곳도 이미 많이 인심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낯선사람이 지나가며 사진을 찍는 것도 곱게 보이지 않을것이다.그래서인지 사람은 못보고 개집는 소리만 엄청 듣다 내려왔다.
산동네를 내려오니 바로 보이는 분식집.한때는 이곳도 꽤나 북적되는 장사를 했을텐데 찾는 이가 없으니 으뜸은 개뿔.
항구뒷편의 구도시도 일요일이라 그런건지 조용하다. 그나마 목포의 냄새가 나는 동네인데 이제는 신도시에 밀려 사람사는 냄새보다는 항구와 관련된 가게들만 겨우 남아있는거 같다. 신도시는 구지 사진을 찍을 것도 없이 일산이나 분당과 거의 똑같다.목포시민의 60%가 아파트에 산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아파트가 있겠나. 영화제가 열린곳도 신도시에 있는 CGV극장이 이었는데 밤거리를 걷다가 이곳이 목포인지 서울인지 분간이 안갔다.그래서인지 이 조용한 거리가 오히려 좋았는데 마음 한구석은 왜이리 짠하던지.
산을 좋아하는 선호가 그의 지인을 중심으로 등산모임을 만들었고 나도 회원으로 시간이 맞을때마다 함께 산행을 한다.
근데 알고보니 대부분이 선호의 동문중심이라 내가 웬지 깍두기 같긴 하다.
하긴 난 어딜가나 늘 깎두기같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불분명한 소속감으로 사는게 나쁘지 않다.
우자지간 스톱...오늘 얘기는 깍두기가 아니라 소요산.ㅎ
소요산이 의정부에서 가깝다고 생각한 나는 대충 두시간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침 7시에 출발을 했건만
젠장 소요산행 전철이 40분에 한 대꼴로 오는데다 시간도 족히 두시간 반이 걸리는 곳이어서
잠못자고 새벽부터 일어난 보람도 없이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지각할 때 정말 기분 안좋다.
하지만 멤버들의 환한 웃음을 보니 스르르 기분전환.
근데 난 정말 어디간다고 하면 촬영이든 산행이든 여행이든 그전날 잠을 잘 못이룬다.
다음날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출발해야 하는 일이 그래서 꼭 피곤에 지쳐 출발하게되는데
왜 이버릇이 안고쳐지는지 모르겠다.
세살버릇 여든까지를 증명이라도 하듯이.아흐...
우자지간 그렇게 모여 출발전 워밍업을 하기도 전에 도로에서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등산로로 진입을 해서
거의 70도 경사를 계속 오르기 시작햇다.이런...어어어....
전날 잠이 안와서 막판에 마시고 잤던 위스키 냄새가 땀으로 쏟아져 나온다.
사실 눈도 좀 충혈이 되어있었는데 그건 슬쩍 썬그라스로 가렸지만 체력의 급격한 저질상태는 가려지지가 않네 그랴.
땀을 비오듯이 한번 쏟아내고 나니 비로서 조금씩 가벼워진다.
그리고 눈에 서서히 들어오는 단풍의 화려한 색깔들과 칼바위의 행진들.
높이는 제일높은 의상대가 587미터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까지 6개의 봉우리를 넘다보면
산새가 마치 설악과 지리를 섞어놓은 듯한 기묘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아직 이른 단풍이라 다음주가 절정일듯 싶었지만 우린 오히려 불긋해지기 시작한 단풍을 보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주체못해 열라 사진을 찍어대고 가슴을 열어제쳐 눈을 감고 그들과 뜨거운 포옹을 한다.
중간중간 보이는 칼바위를 보자 은근 기어오르고 싶은 욕구가 불끈솟기도 하여 몸이 근질근질거리기도.
초반에는 등산객이 적어 좋아라 했는데 역시 정상으로 가니 단풍찾아 달려온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그나마 북한산이었으면 이보다 심한 만원버스행렬이었으리.
그렇게 사이사이 간식도 먹고 준비해온 점심을 먹으면서 일주문으로 내려오니 얼추 7시간정도 걸린거 같다.
산행의 에너지로 빠진 알콜을 보충하듯이 우린 기꺼이 뒷풀이로 새로운 알콜로 몸을 채운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수다로인해 딱 한잔만 걸치고 가자던 시작은 어디로 가고 결국 몇병의 술병을 헤치우고서야
우리의 뒷풀이는 정리가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렇게 수다를 떨어야 가슴도 비로서 후련해 지는것을.
다시 두시간 반을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니 온몸에 피로가 급습.
전날 못잔 잠까지 한꺼번에 12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게운하다.
이 에너지를 살려 단풍이 지기전에 북한산이라도 부지런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은 늘 행동과 친하지는 않다는 진실이 문득. ㅎㅎ
이날 산행은 다섯명이서 했는데 내가 땀을 질질 흘리는데 다들 어찌나 잘 올라가는지.특히 선호는 경기출전 선수처럼 산을 올라가서 얼굴보기가 힘들었다.나쁜시끼.ㅋ
산에서 먹는 재미가 역시 최고.왼쪽부터 선호 병록 민호 윤경. 나는 이날 병록씨를 계속 병렬로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랬더니 선호가 뒤늦게 누나 사슴록이예요....헐. 앞으로는 절대 안까묵겠습니다.ㅎ
단풍을 보자 모두들 신들린 사람들처럼 사진을 찍어댄다. 마치 사진기가 나와 단풍을 연결해주는 기계장치같다. 사진을 찍을때마다 가슴속에 저장되는 기계였다면 우린 모두 빨갛게 물들었을텐데...ㅋ
산을 반으로 나누어 반대편은 마치 단풍과 거리가 먼 동네처럼 다른 느낌이다. 그느낌도 지리산능선을 타는 것처럼 색다른 맛을 주어 좋았다. 참 소요산은 서화담이 매월당과 자주 들락거려서 소요산이라 불리웠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저기 이름들은 또 원효대사와 연관된 것이 많았다.원효대사가 한국의 산에 기여하바가 꽤 큰듯.ㅎ
쇼요산의 바위는 거의 콘크리트를 부어만든 벽처럼 보인다. 어떤 바위들은 정말 칼바위라는게 실감날나게 칼정렬되어있고 어떤 바위들은 마치 책꽂이에 꽂힌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아 일일이 사진은 다 찍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꼭 가서 확인하시기를...
드디어 점심. 다음부터는 밥과 반찬을 나누어 도시락을 싸오자고 했는데 구지 유씨아저씨는 빼주자고 한다.이제 겨우 과일씻어서 가져올 정도가 됐으니 하나씩 해야한다고.헐...이 아재 어찌 여태 세상을 무사히 살아오셨는지.
바로 문제의 유씨아재.ㅋㅋ
두딸의 엄마 그것도 대학생과 올해 수험생을 둔 엄마라는게 믿기지 않는 미모의 윤경. 수림이랑 같은 나이의 딸이 있어 수다떠는 재미가 특히 남다르게 있다. 이친구도 딸들을 독립성있게 키우자는 주의라 대학에 다니는 딸이 스스로 벌어서 학비를 대고있다고 한다.역시 멋진 엄마들 화이링!!
사진작가 서민호.일본에 가끔 왔다갔다 해서 일본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친구의 주도로 내년에 일본 후지산을 정복해보자는 계획이 슬슬 나오고 있다.이런...밀린 돈 갚기도전에 빨랑 저금시작해야겠다.
윤경은 올려달라하고 병록은 나몰라라 하고 민호는 사진만 찍어대고 선호는 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서 신나는 두사람.^^
소
토끼자 모임의 주도자이면서 가장 열심히 산을 다니는 선호.선호는 나와 안지가 10년이 훨씬 넘는데 우린 몇년전 북한산 원효봉에서 만난뒤 결국 산을 인연으로 계속 만나게되었다.사람을 두루 잘 챙기고 분위기도 늘 재밌게 만드는 이 친구덕에 내가 외롭지 않게 산을 탈 수 있게됐다는...헤헤
산에서 보는 표정들이 모두 좋다.산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그런 표정으로 지상에서도 계속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스트레스에 쩔은 우리는 표정이 달라진다.그러니 산에 자주가야 한다.몸과 마음을 바꾸기 위해.ㅎ
10월이 벌써 중순이다. 부산영화제에 다녀온 뒤 실내암벽장을 다니는게 요즘 즐거움 중 하나다.
어제는 하루종일 김자인 선수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오늘은 종일 암벽에 대한 자료들을 들춰보고 있는중.
순간 일요일이라는 걸 까묵고 운동하러갔다가 문이 닫혀돌아오는 어이없는 지경까지 돌입했다는 야그.
그러다 문득 잊고있었던 샹후스의 암벽등반이 생각나 간만에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
무슨 여행일지 올리는데 이러다 일년걸리겠다.ㅎㅎ
7년전 쇼킹패밀리를 편집할 때 운동삼아 실내암벽장을 찾았더랬다.
산을 탈때와는 달리 몸의 여러근육을 다양하게 이용해야 하고 심지어 머리까지 써야하는 이 운동이 참 맘에 들었었다.
하지만 난 실내암벽보다는 야외에서 체험하는 암벽등반이 훨씬 재밌었다.
한참 맛을 들일즈음 영화막바지 편집일정에 쫒겨 결국은 초보딱지를 떼기도 전에 암벽을 중단해야 했고
이래저래 해외촬영이 많은 레드마리아까지 겹쳐 오랜시간 그 재미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근데 샹후스에서 그레구와 덕분에 잊었던 그 경험을 다시 하게되었고 난 한국에 돌아와
집에서 가까운 실내암벽장을 찾았다.
헉...근데 원걸. 사람이 너무 많다.
7년전만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던거 같은데 웬 클라이밍 바람이 분건지 사람이 바글바글.
게다가 강습비도 엄청 올았다는 야그. 암장대표에게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씩 웃으면서 그런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맞다.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엄청난 속도로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것이 뭐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기가 힘들지경이니 예전 강습비를 생각하며
아쉬워 하는 내가 더 웃긴건지도 모르겠다.
우자지간 다시 샹후스로 돌아가서...그레구와는 친구와 내가 초보자임을 감안해서
쉬운 코스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10미터 정도의 절벽에 10개가 넘는 코스들이 쭉 있었는데 이게 보기와는 다르게 쉽지가 않았다.
로프를 잡는법부터 시작해서 그의 초간략 강의가 시작됐고
나는 영어로 친구는 스페인어로 번갈아 내용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로프를 잡는 법과 암벽타는 사람을 위해 로프를 잡아주는 빌레이에 대한 공부까지 정말 초간단 강습.
그런데 재밌는건 지난번 스위스에서 세일링 보트를 탈때도 느낀거지만 정말 인자하고 부드러운 남편들이
직접 무엇인가를 가르칠때 태도가 예민해지는 순간.
세일링의 방향키를 조금만 잘못 잡으면 집중하라고 계속해서 월터는 인상을 찌푸렸었는데
이날도 그레구와는 빌레이 하면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버럭 화를 내면서 집중하라고 화를 냈다.
사실 남편이 아니라 나라고 해도 그랬을거다.
아무리 즐기는 레포츠라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사고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민함 덕에 나도 옆에서 진지하게 배울 수 있어 좋았고 그런 그들의 자세가 아주 맘에 들었다.
그런덕에 결국 우린 지레 포기할 수도 있었을 코스를 네 개나 정복했다.
물론 선수들에게는 가벼운 코스에 불과하지만 처음 시도해 보는 우리로서는
엄청난 성취감에 세상을 다 정복한 기분이었다는.
그러니 내가 어찌 이 기쁨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이날의 즐거운 감동을 맛본 친구는 덩달아 암벽타기의 매력에 빠져
계속 암벽타기에 도전하겠다는 포부까지 나한테 자랑질해댔었다.
하지만 뭐 나두 한다 이거지.
물론 몸이 예전같지 않아 날렵함은 사라지고 머리까지 둔해져서 강사가 지정해 준 벽에 붙어있는 몇개의 홀더를
한번에 기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기는 하지만
까짓거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도전하고 싶은 산을 정해 나도 한번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샹후스에서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또하나의 코스가 남아있었는데 바로 패러글라이딩.
친구가 선물로 비용을 지불해주어 가뿐하게 타기만 하면 됐는데 샹후스에 날씨가 안좋아져서
사실 먼저 떠난 친구도 못하고 떠났었다.
그런데 내가 떠나기 며칠전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해서 나도 역시 못타고 가는줄 알았는데
웬걸...샹후스는 내가 꼭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떠나기를 바랬는지 기가막히게도 그날 날씨가 좋았다.
그럼 나도 당근 멋지게 날아줘야지 하며 하늘을 나는데 정말 달리다가 발을 떼는 바로 그 순간이
와우...젤로 좋았던거 같다.
예전에 번지점프를 할때도 바로 발을 떼는 그 순간이 가장 공포감과 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는데
패러를 할때도 딱 그 기분.
근데 너무 안전하게 나는 느낌이어서인지 생각보다 상공에 떠있을때는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역시 스릴이 껴줘야 뭐든 재미가 있다는...ㅋ 하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선물이니
맘껏 사랑을 창공에 뿌리며 이 시간을 기억해야지.^^
암벽등반이 은근히 장비가 많다.나는 예전에 쓰던 안전벨트와 하강기 정도를 가지고 갔는데 그레구와가 모든 장비를 구비하고 있는데다 나에게 헬멧까지 선물해주어 등반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만만해 보이는 암장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매 코스마다 그레구와가 먼저 올라가서 우리는 대충 요령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올라가는 사람이 안전하게 올라 갈 수 있도록 자일을 잡는 요령이었는데 이것도 이번에 확실하게 익혔다.
드디어 등반시작. 암벽등반의 묘미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거 같은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아낼때의 즐거움.물론 이과정에서 몸의 힘을 배분하는 요령도 터득하고 정말 딸리는 체력의 한계도 경험하게 된다. 아흐...운동 열심히 해야쥐.ㅋ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언제 그런생각했나 싶을만큼 신난다. 그래 바로 이거거덩...하하하
암벽을 타고 내려올때는 자일에 의존해서 바위를 콩콩찍고 내려오는데 난 이것도 정말 좋다. 이런건 좀더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더 신날듯.ㅎ
부부가 팀을 이루어 등반하는 모습 보기좋다. 젠장 이럴때는 파트너가 좀 샘나네.흥!!
친구는 원래 등산은 좋아해도 암벽등반은 무서워서 싫다고 했었다. 단지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함께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웬걸 한번 해보더니 완존 신났다. 내가 돌아간 후에도 자기는 맨날 하러 올거라고 자랑질하더니만 나중에 연락해보니 아직도 못갔단다.ㅎㅎ
아침 8시에 예약을 해서 우린 일찍부터 산에 올라갔다. 패러글라이딩이 바람을 이용해서 타는지라 가장 좋은 장소가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장소를 정하고 패러를 펴기 시작하는데 점점 가슴이 콩닥콩닥...
패러를 할때 강사가 함께 타는데 동영상을 찍어준다고 나보고 카메라를 들라고 설명을 한다.그리고 일단 열심히 달리라고 하는데 저멀리 낭떠러지가 보여 순간 아찔했다.
달리다보니 어느새 날고 있다. 나는 내가 엎어져 있는 자세로 나는 줄 알았는데 마치 공중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편안해서 이리저리 사진도 찍고 패러를 조정해 보기도 했다.나중에 강사가 찍은 동영상을 선물로 주었는데 어찌나 재밌던지...이렇게 샹후스의 시간들이 내가슴에 박혀있다.
여행기를 다쓰려면 아직도 몇 번을 더 써야할듯 싶은데 캠핑카로 떠난 2박3일을 빼놓을 수가 없다.
사실 프랑스의 샹후스로 넘어갈 때 원래 계획은 친구부부와 함께
캠핑카로 일주일넘게 여행을 해보자는 것도 포함이 되있었다.
근데 친구남편 그레구와가 계속 일이 생겼고 우리는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결국 포기해야되나 싶었는데 그레구와가 어렵게 2박3일 시간을 만들었다.
샹후스에서 해마다 열리는 산악자동차경기가 있기 때문.헉..산악자동차경기라구?
사실 난 이것도 보고싶기는 했지만 그레구와는 산에서 모타 소리 내는 모든 것들을 싫어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캠핑카 여행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인지라 친구 성현이 파리로 떠나기전날 우린 출발했다.
유럽에는 캠핑카가 일반 자동차 만큼이나 일반적이어서 많은 집들이 하나씩 구비하고 있는듯 했다.
한국에서 캠핑카 하면 돈있는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처럼 생각되는데 친구네가 가지고 있는 캠핑카를 보면
그냥 봉고차같은 느낌.
뭐 이곳에서도 캠핑카가 워낙 종류도 많고 새차들이야 꽤 값이 나가겠지만
친구네가 가지고 있는 캠핑카는 중고로 300만원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근데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부부의 애마인 이차가 어쩌다 지난겨울이후 좀 문제가 생겨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여기저기 수리를 해도 고쳐지질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내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시동이 걸렸다고 한다.
혹시 내가 에너자이저? ㅋㅋ
우자지간 그레구와를 비롯해서 수리점 아저씨도 지금까지 이차가 왜 고쳐졌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거.
덕분에 우린 겁나게 즐거운 여행을 했다.
첫째날은 샹후스에서 멀리 보이던 호수옆에 둥지를 틀고 놀았고 다음날 친구를 보내고는 남쪽으로 달렸다.
친구가 떠난 시간부터 비가 몹시왔었는데 비가없는 곳으로 가자며 구레구와가 달리기 시작했고
우린 대관령 5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거대한 산을 굽이굽이 달리다 마침내 신천지를 찾았다.
구레구와는 이게 바로 캠핑카의 묘미라고.
외등하나 없는 산길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준비해온 쏘세지와 고기를 구워
향긋한 와인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 했었다.
어느새 비도 구름도 사라진 하늘.
나무사이로 딱 별을 구경할만큼의 하늘이 열리고 우리와 마주한 별들은
이내 우리들의 작은 파티에 쏟아져 내렸다.
우리들만의 세상이라고 좋아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차보다 훨씬 큰 캠핑카가 하나 들어온다.
역시 선수들은 다 자리를 찾아내는구나 했는데 이차는 한가족이 왔다.
얼핏 보기에 짚시같아 보였는데 본인들 말로는 아직 짚시수준은 아니란다.
짚시처럼 살고 싶어 캠핑카를 집삼아 떠돌았는데 아이가 학교 갈 때가 돼서 남부프랑스에 정착하려고 가는중이란다.
결국 모닥불은 계속 이어지고 못알아먹는 흥겨운 대화가 밤새 이어졌다.
이날 만난 여자친구는 재주도 많아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했는데
정작 자기가 하고싶은 일은 대마초 캔디를 만들어 파는 거란다.
헐...대마초캔디라니...우자지간 야밤에 계획도 없는 재미난 친구들을 만나
캠핑카의 묘미를 새삼 더 느끼게 했다는.
2박3일간의 여행이었는데 어찌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한 일주일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프랑스가 워낙 넓다보니 사실 이런 캠핑카들이 자동차만큼 요긴한거 같다.곳곳에 캠핑카들을 위한 캠핑촌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식수대와 샤워실 그리고 화장실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어떤 캠핑카들은 거의 집을 옮겨온것 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별의 별것들을 다싸왔다는.
지혜네 캠핑카는 내부를 부부가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침대도 꾸미고 위아래 선반을 만들고 가스렌지까지. 원래 이 캠핑카가 3인용인지라 우리 네사람이 타고가는게 적발되면 벌금을 물게되어있단다. 물론 무사히 잘 다녔고 잘 먹었고 잘 쉬엇고.사실 우리도 캠핑카에 거의 지혜네 부엌에 있는 식료품과 그릇등을 모조리 가져온 느낌.ㅋ
바젤에서 가져온 가방튜브가 인기짱이었다. 서로 얼마나 탐내던지 사수하느라 진땀.ㅎ 선물받은 비키니 입고 친구들이랑 정말 깨벗고 신나게 놀았다.사진보고 넘 재밌었으나 야한장면이 많아 여기서는 생략.ㅋㅋ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공놀이.무거운 쇠를 던져 목표물에 가까이 맞추는 놀이인데 은근히 재미나다.내가 얼마나 공을 못던지는지 실감났던 시간.
3박4일 예정을 왔다가 일주일을 더 연장하고도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던 성현이.그녀를 보내고 우린 다시 여행을 떠났다.
비가 몹시 내리자 구레구와는 비가안오는 곳을 찾아 남프랑스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우린 비가 내리지 않는 우리들만의 둥지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얼마만에 해보는 캠프파이어인지. 남은 음식을 하나씩 구워먹고 마시고 별보고 또 마시고....친구를 보내고 잠시 들렀던 수퍼에서 장을 보다가 원래 집에서 먹자고 샀던 포도주가 있었는데 이날 다 아작을 낸거 같다.아마 이포도주 없었으면 우린 정말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새로 손님을 맞이하듯이 꺼져가는 불씨를 모아 다시 모닥불을 피우고...이불이 언제 꺼졌는지 기억이 안난다.
저녁에 우리가 보았던 하늘.나무 사이로 뚫린 하늘이 마치 스크린처럼 수많은 별들을 보여줬었는데...
친구가 만든 빵으로 매일 아침을 해결했다. 빵만들기가 의외로 쉬워서 조만간 나도 한번 해볼참인데 오븐이 없네그랴.
아침이 되자마자 옆집차 언니가 와서 계속 수다를 떤다. 친구말로는 프랑스 사람들 수다가 장난이 아니란다.말을 못알아 먹는 것이 가끔 편하기도 하구나 느낄만큼 정말 말이 많았던 친구. ㅎㅎ 개도 그집 식구다.
600년전에 산이 잘라졌다는 곳.무너진게 아니라 잘라졌다는 표현이 중요한거 같다. 우자지간 온통 거대한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이곳이 관광지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뽀뽀를 해대는 이것들이 왜 밉지가 않은지...^^
무너진 바위들이 암벽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는제 이날 바로 이장면을 보고 그레구와를 졸라 샹후스로 돌아간 다음날 암벽을 탔다.ㅋ 그 이야기는 난중에.
혼알프스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산들이 라임스톤이라고 해서 석회석이 많은 흙으로 되어있다. 이곳도 역시 엄청난 양의 석회석때문인지 물속의 땅이 마치 시멘트로 마른것처럼 굳어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레프팅을 하려고했는데 비가 너무 안와서 계곡에 물이 말랐단다.결국 우린 레프팅을 포기하고 남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는 곳을 찾았다.
라임스톤이 많아서인지 호수가에서 보았던 강바닥같은 흙집들이 많다. 천년이 넘은 마을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잘 보존이 되어있는지.무엇보다 놀라운건 이곳에 주민들이 계속 살고있다는 거다. 유럽 곳곳에 있는 이런 집들을 볼때마다 한국의 개발문화가 생각나서 자꾸 화가 치민다.
부수고 새로 짓지 않아도 얼마나 이쁘고 좋은가.심지어 우리들도 다 이뻐보인다.ㅎ
저녁에 그레노블 시내로 들어와 저녁먹고 가자고 친구가 음식을 시켰는데 웬걸....이중 하나만 먹었어도 배가찼을텐데 친구는 프랑스에서 정식한번 먹어보는것도 경험이라며 부득블 시켜주었다. 결국 해지기전에 들어와서 3시간이 흐른뒤 우리는 식사를 다 끝낼 수 있었다. 물론 남은 음식은 당연히 많고. 프랑스 사람들 식사 시간 길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많이도 먹어대고 많이도 이야기하고.
이들 커플이 사는 방식이 보면볼수록 맘에 든다. 많이 벌지는 않아도 제대로 쓸 줄 아는 친구들. 큰집은 없어도 세상을 내집으로 만들 줄 아는 친구들. 레드마리아의 이치무라처럼 살기위해 필요한 만큼 일하는 친구들. 그들 뒤를 따라 걸어가면서 참 행복했다.
그리고 쇼킹패밀리를 만들때는 실내암벽을 시작했다가 레드마리아를 시작하면서 암벽등반을 더 이상 즐기지 못했다.
겨우 초보딱지를 면치 못했던 암벽등반은 내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었는데
이번 프랑스의 샹후스를 선택했던건 등산과 암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때문이었다.
게다가 산악리더인 그레구와는 심지어 전문가가 아니던가.
이런 기대감에 들뜬 나를 위해 그레구와는 헬멧과 비아페라타를 위한 로프를 50살 기념선물로 사주었고
초보딱지를 겨우면한 나에게 다시한번 로프 암벽의 기초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춰진 샹후스에서 친구가 살고 있다는게 얼마나 즐겁던지.
그리고 산악전문가인 그레구와와 결혼해줘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ㅎ
그런 나의 마음을 이미 간파한 친구가 그런다.
‘난 아무래도 산좋아하는 경순 때문에 이곳에서 사는거 같아’
아웅 지지배 눈치코치맘치 어느것하나 덜떨어진게 없다니깐. ㅋ
우자지간 우리는 그렇게 슬슬 암벽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비아페라타’라는
새로운 이름의 암벽코스를 알게되었다.
비아페라타는 이탈리어로 철의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이 산악지대를 원활하게 이동하기 위해 암벽에 철을 박아 시설물을 만들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하는데
우자지간 나는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한 등반이라 몹시 들떴었다.
보통 암벽등반하면 두명이 팀을 이뤄 한사람이 로프를 잡아주고 한사람은 그 로프에 의지해서 암벽을 타게 되는데
비아페라타는 안전벨트와 비아페라타용 로프만 있으면 혼자서도 등반이 가능한 것이다.
샹후스의 최고봉이 2250미터인데 그정상에 올라가면 바로 비아페라타를 위한 암벽등반 코스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옆으로 길게 가는 코스고 하나는 위로 높이 가는 코스인데 두 번째가 난이도가 좀 높다.
북한산의 여러코스중에 좋아하는 코스가 의상봉 코스인데 짧은 시간에 가볍게 암벽을 많이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아페라타 등반코스는 이보다 훨씬 위험하기는 하지만 장비만 있다면 혼자서도 맘껏 스릴있는 암벽타기를 즐길 수가 있다.
친구와 나는 간만에 물만난 고기처럼 비아페라타를 즐겼는데 중간중간 외줄타기 같은 곳이나
직각의 절벽을 수직으로 올라갈때의 아슬한 고비들이 있어 먼저 간 친구를 안데려오기 잘했다고 자위도 좀 했다는.
이곳 샹후스에서는 초보자들이나 단체인 경우 가이드비용을 내고 장비를 대여해서 전문가와 함께 할 수도 있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장비만 가져오면 무료로 등반이 가능하다.
샹후스에 있을때는 모든 것이 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됐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여기저기 암벽할만한 곳을 찾아보니 모든게 돈이다.
암벽장에 가는것도 돈이고 산에 가는 것도 이것저것 경비가 제법든다.
게다가 시간내는 일도 만만치 않아지는 여타의 조건들...그래도 한번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첫번째 비아페라타 코스. 헬멧과 안전벨트 그리고 비아페라타용 로프를 착용하고 드디어 시작.
로프를 암벽에 설치된 쇠줄에 걸면서 올라가는건데 외줄타기에서는 중심이 잘 안잡히는데다가 흔들거릴때마다 팔과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좀 고생했다.친구는 이길을 건너면서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데 그 생각은 바로 다음날 바뀌었다.
1시간반정도의 코스라고 나와있는데 우리는 쉬는 시간 포함해서 1시간 10분정도 걸렸다. 뭐...껌이네.ㅋㅋ
내려오면서 바라본 우리간 탄 암벽.
샹후스에는 쥐와 두더지를 섞어놓은듯한 모양의 마르모트라는 동물이 유명한데 이동물을 보기위한 코스도 있다. 바위에 숨어살거나 땅속으로 다니기도 하는 이친구를 만나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린 운좋게도 산을 내려오면서 두번이나 봤다.뱀처럼 겨울잠을 잔다고 하는데 우자지간 사진에서 보는것보다 훨씬 귀엽고 등치는 토끼만하다.
암벽을 타고 내려오니 오후의 산도 절경이다. 우리는 저녁 8시가넘어서 집에 도착했는데 이쁘게도 그레구와가 맛있는 피자를 저녁으로 준비해주었다. 부부가 둘다 요리를 잘해서 그건 참 부러웠다.ㅎ
이틀후 우린 다시 두번째 코스에 도전을 했다.첫번째 코스보다 길고 높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많아 역시 체력소모가 훨씬 많았지만 그만큼 스릴이 있어 아주 좋았다.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맛있는 담배를 피우기위해서가 아닌지...ㅋ 중간중간 쉴만한 곳들이 있어서 간식도 먹고 담배도 피고 절경도 구경하고...
친구는 원래 산을 잘타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거의 수준급이다. 아마도 다음번에 다시 찾으면 산악가이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 내가 어깨가 안좋은걸 알고 산에 갈때마다 무거운거 다 짊어지고 씩씩하게 다닌 그녀덕에 난 가볍게 폴짝폴짝 했다.
위험할수록 성취감도 좋다. 다리는 좀 후들거리기는 했지만 이정도면 뭐...푸하하하
정상에 오르자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하늘이 정말 장관이었다. 저멀리 설산과 구름이 겹쳐지니 한편의 그림이 따로 없다.
내려오는길에 비가 내리는데도 우리는 블루베리에 눈이 멀어 한참을 땄다.나무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담배한대 때려주고. 이날 딴 블루베리로 친구가 맛있게 잼을 만들어 싸주었고 나는 요즘 아침마다 그잼을 먹으면서 샹후스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면서 우린 한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진짜'모습을 발견하면서 행복하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하하 정말 정말 어메이징 한 일이 아닌가.
어려운 코스도 아니고 복잡한 수식도 아니고 그저 단순하게 자연과 놀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지혜에게 그랬다. ‘너 딴거 하지 말고 이곳에서 힐링캠프나 차려라.’
지혜도 나쁘지 않았는지 ‘그럼 한번 해볼까’한다.
내가 아는 지혜도 한국에서는 나름 깐깐하고 예민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남을 먼저 의식하고 신경써야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을 발견한거 같다.
그래서 행복해보이고 행복을 나눠주며 기뻐 할 줄도 알고.
덕분에 우리도 덩달아 그 즐거움에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여행에서 지혜만큼 큰 역할을 해준 사람은 지혜의 남편 그레구와였는데
난 그가 사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마치 레드마리아를 찍으면서 이치무라가 반가웠던 것처럼 이친구도 일로부터 자기 해방감을 먼저 찾으려는 사람.
이들 부부가 샹후스에서 사는 이유도 일년에 6개월을 일하고 6개월을 자신들만의 시간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곳.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 보다는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일을 선택하는 삶.
살아가는 이유가 집을 넓히는 것도 좋은 차를 사기위한 것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여행과 서로를 사랑하고 즐기기위해 사는 것.
씨발.... 짜식들 졸라 멋지다.
그래 나도 존나게 멋지게 살아줄게.^^
지혜는 나와 성현이를 위해서 그녀가 새롭게 터득한 온갖프랑스 요리를 매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일년동안 먹을 치즈를 스위스에 이어 계속 먹었다는. 나는 그들 부부를 위해 삼계탕과 된장찌게를 만들어 주었고 성현은 그녀의 숨은 솜씨를 발휘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북어무침과 미역무침을 즉석에서 뚝딱해주었다.구레구와는 나를 위해 특별히 맛있는 담배를 매일 말아주었고 주님의 은총을 듬뿍 받을 수 있게 쉴새없는 포도주를 준비해주었다.
가볍게 산보나 하자며 따라나섰는데 한동안 운동부족이 티가났는지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벽을 보자마자 불끈 솟는 이힘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ㅋ
산꼭데기 호수에서 수영하고 산을 타고 내려오다 만난 양봉학교 사람들. 혹시나 해서 기웃거렸는데 호수에서 가슴을 내놓고 선탠을 즐겼던 멋진 여자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성형수술로 멋진 가슴을 만들지 않아도 늘어지고 주름이 있는 그녀의 가슴을 사람을 제대로 환영할 줄 있는 멋진 가슴이었다. 도시에 살다가 양봉을 하면서 지금은 산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이녀를 보고 지혜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거 같아 몹시 흥분된다고 했다.언젠가 그들이 좋은 친구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그레구와하고 지혜는 늘 서로의 사랑을 키스로 나눈다. 그래..이런건 영화에서만 있는게 아니었어. 하지만 뭐..그렇다고 그렇게 나보는데서 자랑질할거는 없지않니...라고 속으로만 씨부렁거리면서 블루베리를 열심히 땄다.ㅎㅎ 가끔 단순한 노동이 주는 기쁨이 있는데 블루베리를 딸때 그랬다. 우리는 열심히 불루베리를 땄고 지혜는 그걸로 잼을 만들어 성현이 떠날때도 챙겨주고 내가 떠날때도 챙겨주었다.
한국의 산과는 다른 맛의 알프스. 한국의 산이 독특한 매력이 있듯이 알프스도 참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 산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준다는 것을 참 많이 느꼈다. 물론 그 느낌의 최고봉은 암벽등반이었지만. 성현이 떠난뒤 나는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즐겼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ㅎ
스위스는 산악지대라는 지형적 특성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가 인접한 나라라는 특징 때문인지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온 여러나라 사람들이 스위스라는 연방국가를 만들게 되었고
단한번의 전쟁도 치르지 않은 독특한 역사를 이어왔다.
유럽의 지난한 역사의 일부인 종교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을 피해왔고
덩달아 모든 건축물과 문화유산들이 하나도 파손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는 가는곳마다 박물관이 디따 많다.
도시마다 수십개의 박물관이 즐비한데 이번여행에서 박물관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대부분 생략.
그런 역사덕에 이들은 전쟁의 상처도 없고 그런 사회문제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취리히에 사는 봉희가 그런말을 했다. 스위스에 사는 동안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가끔 한국인들에게서 보여지는 카리스마있는 얼굴을 보지 못햇다고.
듣고보니 카리스마라는 것도 새롭게 들린다. 결국 카리스마라는 특징도 험난한 곳에서나 생길 수 있는 특징?
우자지간 그런 스위스의 시작이 바로 스윗츠라는 동네에서 시작이 됐다고 한다.
미튼이라는 거대한 바위산과 함께 둘러쌓인 이 마을에는 스위스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 본사가 있기도 한데
산악마을에서 유용한 다양한 기능을 구비한 이 칼이 웬지 어울려 보이기는 한다.
내가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방문한 친구집이 바로 이곳과 인접한 산악마을이었는데
알프스의 하이디가 살던 그 마을처럼 딱 달력에나 나올법한 곳이었다.
사실 스위스는 어딜가나 달력사진같은 풍경이긴 하다.
스릴이나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곳은 거의 없지만 각종 어드벤처는 곳곳에서 즐길 수가 있다.
이곳도 거대한 호수가 곳곳에 있고 1500미터 산꼭대기에 곳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10분도 안걸려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산악기차가 아주 요긴한 이들의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우린 주로 친구 남편인 월터가 산에서만 이용하는 군용지프를 가지고 있어서 주로 그차를 이용해서 오르내렸다.
차로 20분간 올라가야 친구집이 나오는데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덕분에
스위스에서는 맛보기 힘든 약간의 스릴을 경험했다는 거. ㅎ
친구네집은 스투스라는 1500미터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인데 이들커플은 주중엔 바젤에서 일하고
주말 3일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한다.
집주변에는 수많은 소들이 워낭소리를 내며 풀밭을 누비고 사는데 목동도 없이
여름기간에는 자유롭게 산을 누비고 다니다가 그곳에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또 계속 풀을 뜯어먹고 낮잠을 자고...
젠장 난 이 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ㅋ
취리히에 사는 봉희가 동행하였는데 취리히도 꽤나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사실 아무리 스위스라 해도 누구나 오픈카를 타고 누구나 산장을 따로 갖고 있고 누구나 세일링을 취미로 하는 건 아니니까.
우자지간 우린 친구덕에 한국에서는 그림에 떡같은 남의 나라 놀이같은 짓을 신나게 즐기고 왔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고민할 일도 없고 자신이 즐겁게 사는 일만 고민하며 산다는 건 축복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라는 조건만 없다면.
하지만 지속되는 이축복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전쟁과 빈곤에 무감해 진다면 그건 배부른 돼지의 욕심에 불과하겠지만.
그래서인지 프랑스에 사는 친구들은 이런 스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스위스가 보유한 검은돈들과 함께 돈 많은 나라의 이기적인 풍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거 같다.
사실 내가 만난 스위스인들은 풍요와 평화를 생활화 한 덕분에 얼굴인상이 꽤나 순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유럽인들은 마치 미국과 미국인을 동일시 하듯이 스위스와 스위스 사람을 동일시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을 꽤 보게되어
참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곳이 아름다운 마음을 품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나는 스위스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즐거웠다.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즐거움도 고통도 배가 되듯이
이번여행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과 생각들을 사유할 수 있어 좋았다.
아마도 쏟아지는 정보로부터의 해방감일지도 모르고 나만을 충분히 생각하고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힘은
이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게 준비해주고 기다려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안심이고 행복이다.
나도 그들이 보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살아야겠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스치듯 보아도 죄다 그림같은 마을이다.스위스가 시작됐다는 스윗츠라는 마을도 역시 마찬가지.이곳에 본사가 있는 빅토리녹스사는 기업정신도 훌륭해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한데 그건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도 직원들을 해고시키지 않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회사의 방침때문이라고 한다. 네슬레같은 대기업도 있고 검은돈을 지켜주는 스위스은행도 있지만 스위스의 가장 든든한 경제뒤에는 튼튼한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되어있기 때문인거 같다.
스위스는 호수가 많아 그곳에서 세일링 하는 사람도 많다. 바람을 이용해서 배가 움직이게 하다보니 처음에는 좀 지루하단 생각이 있었지만 느긋하게 물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맛이 남다르긴 했다.세일링을 워낙 좋아하는 월터때문에 은진도 열심히 배조정법을 익히고 있는데 이들의 꿈이 돈벌어서 좀 더 큰배를 사가지고 세계일주 하는거란다.
은진네는 바젤에서 이용하는 차와 산에서 이용하는 차 두대를 이용하고 있는데 군용집차가 산에서 이용하는 차.월터는 산에서 무슨 자동차경주처럼 운전을 해서 거의 자지러질뻔했다.소리를 지르면 산을 오르는 이 맛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듯. 산악마을에는 허가받은 차만 운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차도 당연히 허가를 받았고 월터와 친구가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친구집에 갈때 미리 장을 봐서 갔는데 처음 은진이 식품을 사는거 보고 놀랐었다. 아니 이 많은 치즈와 과일과 먹을걸 대체 언제 다 먹으려고 하나 했는데 웬걸 오자마자 월터가 입가심으로 화이트와인 4병을 까고 그날 저녁 우리는 라끄레타 요리와 함께 레드와인 10병을 쪽냈다. 물론 다행이도 치즈와 와인의 반이상은 월터가 마셨기에 좀 덜 미안하긴 했다. 그리고 그동안 반주로만 마시던 와인이 이날부터 발동이 걸려 거의 매일 한병이상씩...꿀꺽 꿀꺽..ㅎ
스투스도 알프스의 한자락인데 산은 역시 설명이 필요없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고 걷기만 해도 좋고 ...은진과 함께 이날 스투스정상에 올라갔는데 한국의 산처럼 거칠지 않아 트래킹화로 가능했다. 근데 역시 보기와는 달리 경사도가 있고 높이도 2천미터가 넘어 간만에 땀 좀 뺐다. 그렇게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워밍업을 끝내고 다음은 프랑스의 알프스로...야호!!!!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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