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5. 7. 17. 11:32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매춘부,창녀,성매매여성이라는 말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성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확연히 다른 의미가 있다.

마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되면서 노동자가 노예가 아닌 한사람의 인간으로

권리가 있는 노동자로 인식됐을때처럼

성노동자들도 한사람의 주권자로 인간으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 할 수 있게됐다는 사실이다.

어떤 주체로 이땅에서 사느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예우가 달라지는 문제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라는 말은 바로 그 주체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성노동자권리 모임 지지의 활동은 척박한 이사회의 무지함에

참 신선한 자극이고 힘이다.

아직도 현장의 성노동자들이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입과 몸이 되어 목소리를 전하는 다양한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노동과 관련된 주제로 다양한 토론회를 열고

현장의 성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작년부터는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연극공연을 시작했다.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만23/169/73>을 첫공연으로 올렸고

성노동자를 피해자나 사회악으로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사고를 유쾌하게 비판하는 

<똑바로 나를보라>를 두번째 공연으로 작년에 했었다.

그리고 변방연극제에서 며칠후 하게될 새로운 연극 <똑바로 나를 보라2>는 

관객참여 형식의 오픈공연이라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된다.

출연진 모두 지지의 회원들이고

그들모두 각자의 직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을 위해 뭉쳤고 조만간 관객들과 만난다.


내가 알고 있는 성노동자에 대한 지식이나 인식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똑바로 나를 보라2>를 통해 생생하게 경험해 보기를 강추한다.

우리는 정말 성노동자를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사회는 똑바로 보는 일조차 종종 대단한 사건이 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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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5. 30. 16:21

사실 1차 편집본이 일찍 나왔다.

이번에도 해외 촬영분이 많아서 번역이 골치기는 했지만

전작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겪었던 말과의 전쟁에 대한 혹독한 경험이 피와 살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좀 효율적으로 수월하게 넘어간거 같다.

물론 그 과정엔 단지 지난 경험이 반면교사가 된 것도 있지만 

사전제작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전작을 찍을때는 사전제작비 없이 시작해서 여러곳에 지원서를 넣어 하나가 되면 필리핀 찍고 

다시 여러군데 지원을 해서 또 하나가 되면 국내를 찍고 더이상 안될거 같으니 

제작위원을 조직해가면서 일본 촬영을 찍곤 했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도 충분하지 않다보니 스텝들이 온몸을 불사르며 스스로 통역하고 

스스로 재정을 관리해 가면서 모든 일을 자체 해결해야 했었다.

그만큼 기간이 늘어나고 누수되는 시간이 많았지만

모든걸 함께 논의하고 모든걸 함께 공유했던 시스템.

그게 내가 원하는 제작시스템이었고 그걸 즐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래야 결과물에 대한 자양분이 좋은 것이든 안좋은 것이든 모두에게 흡수될테니 말이다.

돈보고 일한 것도 아닌데 그거라도 챙겨야 남는거 아닐까 하는 나름 독립영화제작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노력을 포기하고 많은 부분 인건비로 대체를 했다.

첫째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래서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셋째는 누수되는 시간을 줄여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프러덕션을 생각했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스텝들과 일을 하게 됐다.

스텝들에게 각자의 역할 이외에 모든것을 나누거나 요구하려 하지 않고

나는 내일에만 신경쓰며 감정소모를 줄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지통역과 번역에 많은 돈이 들어갔고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결했음에도 여러나라를 찍다보니 촬영비도 솔찬이 들어갔다.

물론 많이 들어갔다 함은 쓸 수 있는 제작비의 기준에서다.


우자지간 그런덕에 나는 이번 작업에서 스텝들과 처음부터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부담하는

모든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좀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후반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충분한 제작비를 마련하지는 못한덕에 

결국 사무실을 빼고 마무리는 혼자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가 되긴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정산을 비롯한 번역이 어느정도 되었기에

혼자서 편집을 해도 견딜만은 하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면에서는 혼자라는게 편하기도 하다.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감정이 참 묘하다.

각기 다른 프로덕션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다르기 때문인데

무엇이 더 좋은 것일까는 쉽게 단정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전작과는 다른 프로덕션을 가동하면서 누수되는 시간은 벌었지만

전작과는 또 다른 감정소모가 분명 있었고 해결하는 방식도 달랐다.

돈을 받는 만큼이라는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관계가 분명 있었고

그 기준이 일을 하는 기간과 방식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프러덕션이 주는 스텝들과의 성취감과는 다르게

이번 작업의 스텝들이 주는 새로운 면도 있었다.

받고 준 만큼 이외에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움이랄까.

물론 이 말은 좀 씁쓸하기는 하다.

영화가 너무 감독 중심으로 사고되는 이기적인 면이 강조됨으로.


그러니 무엇이 더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그 작업에 맞는 프로덕션이 있는 것 뿐일터.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독립영화제작에 필요한 프로덕션이 어때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험임은 분명했던거 같다.

2차편집본을 이틀만에 뚝딱 해치우고는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경써야 할 것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 잘 조절하면 참 많은 시간을 벌어준다는 사실.

물론 그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눈 딱 감고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고.

대표적인게 역시 누적되는 제작비의 빚을 모른체 지나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3차 편집본은 편집감독과 함께 하기로 했다.

누구보다도 이번 작업을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친구라 기분이 좋다.

2차 편집본을 어떻게 다듬어 놓을지 기대된다.

기다림은 지루하니 내일은 간만에 암벽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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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5. 5. 11. 14:09

내가 사는 집은 14평이다.

얼마전까지 쓰던 사무실도 14평이었고

돌아가신지 1년만에 정리하고 집을 비운 엄마의 집도 14평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각기 다른 14평에 들어 앉아 있었던 각종 짐들과 한달이 넘게 씨름을 했다.


엄마는 50여평에 누리고 살던 짐들을 10년이 넘게 계속 들고 다니며

마지막 종착지였던 14평의 집에 남기고 떠났다.

돈이 없어지니 가지고 있던 좋은 물건들을 하나씩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내주며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자 했던 엄마.

그렇게 하나씩 몇해를 주었을텐데도 14평안에 남아있는 물건들은

두달에 걸쳐 친구들을 불러내어 나누어주고 치우고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야 정리가 됐다.

살때야 수천만원이 넘었을 그 많은 물건중에 돈으로 건진건 재활용센터에서 

무게로 달아 계산해준 엄마의 옷들뿐이다. 

여러번 리어커에 실어 대여섯번 왕복해서 받은 그돈은 단돈 오만원.

그나마도 옮기는 중에 길에 세워진 자동차 범퍼를 긁어 수리비용으로 나가버렸다.

참 코메디같은 일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가 그랫다.

상진이때처럼 옷 다 태우지 말고 사람들한테 나눠줬으면 좋겠어.

엄마의 그 말만 아니었어도 나는 진즉에 다 내다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말이 걸려 가능한 나눠 줄 수 있는걸 고려한답시고 4월 한달내내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친구들에게 쓸만한 물건들을 나눠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아끼던 물건들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유행도 달라졌고

자개장세트도 그만큼 낡았다.

나눠줄 물건보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구나 하는 사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야 알게되었다.

애초에 엄마의 물건들은 내 취향이 아닌지라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저 비싸다는 것만 생각하고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쓸만한 물건들은 산지 얼마안된 가전제품과 운동기구 그리고 유행을 안타는 옷들과 주방기구와 

엄청나게 많은 고가의 백들 뿐이었다.

다 나눠주고 버리고 정리를 하고는 내 집으로 가져와야 할 짐들을 한쪽에 챙겨놨다.

엄마가 평소에 내가 가졌으면 하는 물건들이 뭐였을까 생각을 하다 

이미 내집에 있는 원목미니서랍장과 세트였던 거울과 미니 원형탁자을 챙겨야겠다 생각했지만

그 최소한의 짐들도 나의 좁은 14평의 집에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원목 세트는 포기하고 엄마와 관련된 짐들만 챙겨왔는데도 5박스가 된다.

집에 가져온 다섯박스는 자리를 찾지 못한채 나의 좁은 거실에 일주일이 넘게 버티고 있다가

힘쎈친구 한 녀석이 집을 방문해 옳거니 하고 이미 포화상태인 베란다로 꾸겨넣었다.

박스안에 있는 물건들을 좀 다시 봐야겠는데 물건을 꺼내 펼칠 공간이 없어 모른척 이사갈때가지 버티기로 한다.


그리고 4월의 마지막날 나의 14평 사무실에 있던 물건들이 또 집으로 왔다.

영화창작공간 사무실에서 1년8개월 동안 썼던 각종물건들 중 대부분을 나눠주거나 버리고

촬영장비와 편집장비 그리고 자료로 보았던 많은 책들과 자료집들만 집으로 가져왔는데도 

이미 포화상태인 나의 책상과 책장은 자리를 내줄 기미가 안보인다.

결국 다시 대기실처럼 좁은거실의 중앙을 버티고 일주일을 보내다 

이제서야 여기저기 빈틈을 찾아 수납과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 책상위에 편집장비들이 완벽하게 셋팅이 됐다.

정리된건 편집장비들 뿐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내방과 수림이방까지 장난 아니게 널려있다.

친구가 방문하면 거실에 있던 짐을 방안으로 던져놓고

등산짐을 꾸릴때는 방안의 짐들을 거실로 옮겨놓고

빨래를 걷을때는 베란다와 가까운 책상주변에 옷들이 수북하고

책상에 앉을때는 다시 옷들을 바닥에 옮겨놓고...


그러다 생각했다.

14평의 집을 좁다 생각말고 거대한 텐트라 생각하자고.

혹은 넓은 캠핑카라고 생각해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어제 친구가 갖다 준 상추에 고추장 넣고 박박 비벼 먹음서 

드라마 한편 때리고 나니

갑자기 집이 너무 넓어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텐트라니.....끄윽....

당분간 이 주문을 외우면서 여름을 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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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5. 4. 24. 16:42

나는 가끔 멀리있는 친구에게 고해성사같은 이야기들을 쭉 풀어내고는 한다.

이따금씩 느껴지는 어떤 변화들이나 고민 그리고 감정의 모호한 상태에 대한 것 등

잡다한 이야기들이 쌓일때쯤 한번씩 이야기를 하고나면 웬지 고해성사를 하고난 사람처럼

속이 편해진다.

어제도 그랬다.간만에 스카잎 접속을 하고 두시간이 넘게 그동안의 생각들을 줄줄이 풀어냈는데

생각해보니 최근에 느껴지는 나의 어떤 변화가 몇년간 지속적으로 쌓여왔던 것이라는걸 알게됐다.


늘 닥치는 일을 해결하고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에게

인생은 그저 현재를 살아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가득찬 시간이었다.

그 즐김은 고통스러운 어떤 현재를 대면하는 것도 포함되는 일이었고.

근데 요즘 뭔가 인생의 시즌2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그저 느낌이 그렇다.

결국 인생이란게 자신이 대면하는 세계에 대한 태도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아마 나의 태도가 조금 바뀌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는게 재밌었는데 사람들이 지루해지고

늘 일을 벌렸는데 그 일이 신나지 않고

닥치는 일을 처리하는건 여전하지만 속도와 성의에 차이가 생기고

어려운 일은 늘 식구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데

고통의 체감이 높지 않고

영화제작비로 바닥에 바닥을 치고 있는데도 그 절실함에 노력도 하지 않는...

그니까 한마디로 뭔가 체념한 사람처럼 혹은 의욕이 상실된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 상태가 현상인데

거꾸로 나는 지금의 이상태가 나쁘지 않다는게 속내라는 것.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변화라고.


친구에게 중얼중얼 줄줄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서 그런 내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사람들이 지루해졌을까.

왜 나는 일을 벌리는게 신나지 않고

성의있게 하던 그 비슷한 일들에 속도를 내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주섬주섬 말했던 것들을 곱씹어보다

무언가 반복되는 어떤 패턴들이 나를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생각하니 지난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예전과는 다르게 반응을 보였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나의 감정과 행동들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정리가 된다.

참 재밌다. 이른 느낌 이런 생각들이...


그래서 여전히 지구인으로 산다는게 참 재밌구나 생각을 하게된다.

무엇인가를 느끼고 깨닫고 알게되는 하나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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