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5. 4. 16. 22:59

몇주전 안과를 다녀왔다.

1차 가편본이 나올즈음 왼쪽눈에 이상이 왔기 때문이다.

다른곳이 아프다면 병원가기를 미루었을텐데

한참 편집을 하는중에 모니터가 안보이니 나도모르게 바로 달려가게 되었던 것.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만 의사가 그런다.

눈에 구멍이 났어요

헉...


망막뒤에 있는 일종의 필름역할을 하는 막에 구멍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세혈관의 피가 새고있어서 눈이 뿌옇게 된거라고.

레이저로 간단히 수술을 할 수 있으니 오늘 하고 가라했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제는 별걸 다 한다 싶었다.

대체 내가 모르는 몸의 불상사는 또 무엇이 남았을지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공을 확장시키고 마취제를 뿌리고

전기고문 하는것 같은 레이저빛을 수십번 쏴대더니 일단 봉합이 됐다.


봉합은 되어 더이상의 피가 새지는 않지만 수술부위의 상처가 남았는지

렌즈에 낀 커다란 먼지처럼 앞을 볼때마다 커다란 돌멩이가 왔다갔다 한다.

레드마리아를 촬영하다 일본에서 오른쪽 눈을다쳐 각막이 찢어졌었는데

레드마리아2를 만들면서는 왼쪽눈에 빵꾸라니.

우자지간 그후 나는 땜질해 놓은 뿌연눈으로 모니터와 싸우고 있다.

몇일전 촬영을 나갔다가 안그래도 초점 맞추기가 힘든판에

땜질한 눈으로 초점을 맞추느라 똥을 뺐다.


젠장...사는게 뭐 이렇게 코메디인지.

그런 코메디같은 일에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더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오....이건 아니지.

그렇게까지 손해보며 살 순 없지 하고 생각을 바꿨다.

세상의 구멍난 곳을 보다못해 내눈에 구멍까지 생긴거라고.

그러니 내눈에 구멍은 더 많은 구멍을 대비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근데 역시 그런 딸딸이는 안 통하나보다.


일이란게 엎친데 겹친다고 사무실도 4월말에 빼야하는데

오늘 집주인이 집을 빼달라고 하고

돌아가신 능곡엄마집도 빨리 짐을 빼달라고 독촉이 동시에 온다.

도무지 계획적으로 살 수가 없다.

원래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상은 좀 질서가 있어야하지 않나?ㅎ

여기저기 생각지 않은 구멍들이 점점 쌓이는데

이러다 맨홀붕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집을 빼줘야 한다고 수림에게 메세지를 보냈더니

이 친구가 더 난리다.

엄마 그럼 우리 어떻게....훌쩍훌쩍

엄마 9월안에 영화 완성해야 한다믄서...훌쩍훌쩍

그냥 버티면 안되나....훌쩍훌쩍

....

이친구 아직 산전수전을 한참이나 더 겪어야 할판.

아니 뭐 이정도를 가지고 훌쩍이기까지.

이런건 껌이야 수림아.

니가 진짜 힘든일을 못겪었구나 고주알메주알....


엄마답게 몇마디 씨부렁 거려줬더니

웬지 뿌듯.

근데 왜케 마음이 편한거냐.

이것도 좀 문제는 문젤세.

정작 머리 아픈건 편집 할 시간을 졸라 빼앗기겠구나 하는 것.

젠장 고관절이나 빨리 낳았으면 좋겠구나.

암벽이나 실컷 다니고로.ㅠ

'제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노동자들에 대한 공연 <똑바로 나를 보라2>  (2) 2015.07.17
프로덕션에 대한 생각  (0) 2015.05.30
감이 떨어졌다  (0) 2015.01.15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0) 2014.12.09
후유증  (0) 2014.10.28
Posted by 빨간경순
여행일기2015. 2. 3. 22:43

두달전 부터 한라산 등반을 기대하며 부족한 등산 장비들을 하나씩 구입하고

한달전 부터 몸을 만들기 위해 나름 편집시간을 쪼개가며 운동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얼마나 몸이 좋아지겠냐만은 나름 준비의 시간을 가진 것이

그나마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단 쫓아가기는 했으니 말이다.

동계훈련을 한번 기록해 놓고 싶어서 이번에는 촬영장비까지 들고 가느라

이래저래 사전 준비 시간도 많이 걸렸고 돈도 많이 깨졌고...ㅎ

우자지간 레드마리아2의 마지막 촬영을 도와준 공미연 감독을 꼬득여

암벽 근처에도 안가본 그녀와 이것저것 준비를 하며 그 날을 기다렸다는 야그.


늘 그렇듯이 시작은 소박했지만 역시 소박한 수준의 촬영임에도

겨울 등반을 찍는 일은 역시 만만치 않은 품과 장비와 시간과 돈이 든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결국 미연과 나의 배낭을 짊어줄 포터를 구하다 제주도에 있는

조성봉 감독에게 까지 도움을 청해 성봉형 부자가 동행을 해주었다.

2년전에도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르다 눈으로 바뀌는 장관을 연출해 주더니

한라산이 이번에도 그런행운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물론 가는 길은 그만큼 고행이었지만 그 황홀한 순간이 주는 

감동은 고행이기에 더 배가 되기도 하니...


한라산동계훈련이라는 것이 워낙 산에 가서 시작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2-30키로의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훈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게를 견디고 추위를 견디며 걷고 또 걷는 속에서

하나씩 불쑥 불쑥 자신과 대면하게 되고

때론 부끄러움이 때론 대견함이 소리없이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슷한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친구들을 보면서

역시 또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말을 하지 않고 이렇게 걸어가기만 해도 사람이 보이고 느껴지고 생각하게 되고.


오기전에는 이것저것 걱정이 많던 미연이는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 준비했음을 느끼게 하고,

암벽반 동기들인 정숙 우경 고운이는 

자신들의 인생의 무게를 실감하듯 배낭의 무게를 

담담하게 책임지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우리를 이끌고 가는 윤길수샘은 지상에서의 까칠함은 어디에 버리고 왔는지

산에만 가면 늘 품어주고 챙기면서 소리없이 행동으로 산을 만나게 해준다.


올라가는 날부터 3일내내 눈이 내리고 우리는 한치앞이 안보이는 눈산을 삼일간

열심히 다녔고 열심히 먹었고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좀 더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지만

다시 편집에 집중하기 위해 오늘까지만 한라산을 맘껏 마음에 품자고 간만에 사진을 올려본다.



'여행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암벽등반 3박4일  (0) 2013.06.14
파이브텐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다녀와서  (2) 2013.05.21
비행기에서 바라 본 후지산  (0) 2013.02.21
공항에서  (0) 2013.02.15
점프  (0) 2013.02.01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1. 15. 02:34

아직 완벽하게 번역과 프리뷰가 끝난건 아니지만 지난 연말 

정확히 12월 27일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촬영내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구성 방향이 프리뷰를 하면서 조금씩 수정이 되고

일단 느슨하지만 편집 방향이 좀 잡혔다.

그리고 직접 내용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좋은 그림이 많구나 새삼 놀라기도...ㅎ


우자지간 그렇게 연말과 연초를 보내면서 한달전에 올린 후원금통장은 뒷전이 됐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보겠다고 했지만 이 한겨울 떨어질 감이 어디 있겠나 싶기도 했고.

세명의 후원자가 보내준 후원금이 바닥을 치게 되어서야 

혹시나 싶어 통장을 찍어보았다.

허걱.......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50만원짜리 감이.ㅎ

이미 통장에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후원금을 넣어준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후다닥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제서야 친구가 줄줄이 후원금을 보내게 된 이야기를 말해준다.

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이제사 놀이방에 좀 다니게 되서

일주일에 한번 동네에 있는 콘도 청소 알바를 했다고.

그리고 12월 한달간 일주일에 한번씩 5일 일해서 번돈.

그돈을 후원금으로 투척해서 너무 마음이 좋다고.


젠장 이 지지배는 늘 이렇게 사람을 놀래킨다.

순간 눈물이 쭉...

아 썅...너무 행복해서 미치겠다.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를 더 흐믓하게 만들어 주는건

이친구가 요즘 돌이 겨우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아이가 생겨서 다채로운 삶을 느끼는건 좋지만 벌써 아기는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좀 허전하다고.


'....

아이한테서 새삼스럽게 인생을 배우고 있어. 

멈추어 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될 때까지 수백번을 다시 시도하고,  
마치 오늘 하루가 끝인 것처럼 미칠 듯이 놀고, 늘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해하고, 아기의 삶에서 인생의 비밀을 보는데, 난 아직 그걸 내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네.
여튼, 오늘 두시간 넘게 낮잠을 잘 자고 있는 아기가 얼마나 예쁜지. ㅋㅋㅋ
그리고 영화 잘 만들어야 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명료하게!! 
나 요즘 정말이지, 너무 단순하게 살아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거든
.....'

하하하..어찌나 재밌고 실감나는 글인지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서 키득거리며 몇번을 읽었다.
아기가 벌써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는 그 말이며
그걸 벌써 알아 챈(?) 친구의 허전함이며...크크크
갑자기 며칠전 남대문시장에 등산용품 구입하러 갔다가
주인할머니로 부터 뜬끔없이 염색 좀 하고 다니라고 충고아닌 충고를 들었던 생각이 겹친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에게 들었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대충 넘어갔을텐데
칠십은 족히 넘은듯 보이는 어르신이 그런말을 나에게 하니....하하하
그 날도 비슷하게 혼자서 계속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오늘도 역시 비슷한 감정이 계속 나를 웃게 만든다.
대체 이건 무슨 화학반응인지...ㅎ
그날도 그 웃음이 묘하게도 나를 참 오래 흐믓하게 했는데
오늘 이 웃음도 오래동안 나를 설레게 할거 같다.

우자지간 중요한건 감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를 위해 쉽고 명료하게 영화를 잘 편집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하하하

요즘 자기 삶을 찾아간다는 이 친구를 보니 에너지가 듬뿍.^^


'제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덕션에 대한 생각  (0) 2015.05.30
구멍  (0) 2015.04.16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0) 2014.12.09
후유증  (0) 2014.10.28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_경순 감독 기획전 원고1  (1) 2014.09.18
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4. 12. 27. 22:10



베를린에 있는 친구가 가끔 섹시한 엽서를 보내준다.

얼마전 보내 온 이 엽서의 그림도 마음에 들지만

써 있는 문구도 아주 맘에 든다.


'나는 방귀 뀔때 흥분한다'


'빨간경순의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평의 철학  (0) 2015.05.11
고해성사  (3) 2015.04.24
포토테라피 강좌  (0) 2014.11.05
기분이 좀 풀린다  (0) 2014.09.15
기사를 카피하는 기사들  (0) 2014.09.15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12. 9. 17:23

요즘 사무실이 온통 컴퓨터 자판소리로 뒤덮혀있다.

각자 헤드폰을 끼고 한사람은 번역을 하느라

한사람은 프리뷰를 하느라

그리고 나는 촬영본을 보면서 편집구성을 한다고

손들이 바쁘게 자판위에서 논다.

사이사이 촬영도 나갔다가

서둘러 들어와 우리는 또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판이 눌러지는 만큼 영화의 내용이 풍성해 지면 얼마나 좋을까.


몇달전부터 제작비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고민만 하고

후원회며 제작위원이며 꾸려볼까도 생각만 하고

친구가 알려준 여성재단 지원금도 지원해 볼까 마음만 잠깐 써보다가

결국 버틸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현금서비스와 대출만 늘리고 있다.

영화제작만큼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야 모을 수 있는 돈이기에

예전처럼 남아도는 에너지가 부족한 나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을 하게된다.


그렇게 조금만 더 제작에 집중하자고 마음이 쏠리는데로 가자니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당장 해결해야 할 밥값조차

이제는 더이상 빼먹을 대출이 없다.

마이너스통장 만든다고 설친게 불과 한달도 안된거 같은데

그놈의 마이너스 통장도 이미 받은 대출금에 연봉도 2500만원이 안되는 부류라고

겨우 500만원 밖에 안됐는데 

그동안 쌓인 현금서비스 막고 카드를 막고나니 

순식간에 마이너스 500이 통장에 써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으자니 그 시간만큼 제작에 누수가 생기고

제작에만 몰두하자니 후반작업과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식비조차 흔들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을까를 고민하다 일단 덜컥 후원금 통장 하나를 만들었다.

당분간 더 집중하자고 지금 고갈된 에너지를 그나마 제작에 집중하자고.

그래서 아주 게으른 방법으로 후원금통장 하나 만들어 놓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보자고.

지난달 일본촬영때 자신의 강연료를 후원금으로 건네주었던 야마시다 영애 선생님의 마음을 쌈지돈으로

통장에 넣었더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아는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 선생님도 후원을 해주셨다.

그렇게 12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음악,색보정,파이널 편집,사운드,번역 등등 후반작업과 남은 촬영 진행비까지 최소한 4천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그 큰 돈이 '감'으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작은'감'을 기대해 본다.

앞으로 두세달 제작에 더 집중을 하고 그렇게 '감'이 되어준 분들을 모시고

중간제작발표회를 준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블러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서 누가 이글을 읽을지 잘모르겠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감'이 쌓이기를 욕심내며...다시 편집기를 켠다.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우리은행 1002-352-635167 예금주 김해진

연락처 redmaria@tistory.com


* 김해진은 레드마리아2 제작실장입니다.




'제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멍  (0) 2015.04.16
감이 떨어졌다  (0) 2015.01.15
후유증  (0) 2014.10.28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_경순 감독 기획전 원고1  (1) 2014.09.18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_경순 감독 기획전 원고2  (0) 2014.09.18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