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4. 9. 18. 00:46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느꼈던 지점

 

 

나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대의에 가려진 팩트에 아쉬움과 답답함이 많았었다. 조직과 대의,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운동이 해 낼 수 있는 것들과 놓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 글로써 많이 풀었고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너무 앞서 갔고 늘 관념적이 되었다.나에게는 운동과는 다른 현장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영화는 그런 나에게 새로운 현장이 되어주었고 나는 운동이 놓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가 되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뛰어든 영화는 드라마 같은 세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경험하게 해주는 삶의 또 다른 시간이었다. 평소 게으르고 무지한데다 빈둥거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가장 치열한 고민을 하고 가장 생생한 공부를 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사는  다양한 즐거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싶은 현장을 통해 내가 무엇에 더 관심이 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많이 명쾌해 졌다.

 

처음 <민들레>를 만들면서는 사실 운동에 대한 대의적 미련들이 많이 혼재했던 시기였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많이 고민했었고 창작과 운동사이에서 감독의 포지션이나 시선에 대한 내부적 충돌이 많았던 시기였다. 소박하게 인권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만 컸지 영화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이다. 더구나 죽은 자식들 앞에 무서움이 없는 유가협의 부모님들과 그분들에게 사회가 부여해주는 도덕적 권력앞에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내가 운동의 대의가 놓치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한번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운동과 영화의 애매한 줄다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나름 다른방식으로 현장과 영화가 연결되는 방식을 도모했던 것 같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영화적 형식과 내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 같다. 물론 늘 부족했고 늘 시도만 했던 것 같기는 하다.위에 언급한 다섯편의 영화는 그런 고민들의 결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하지만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왜 이렇게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왜 세상은 이리도 답답한 것일까. 왜 진보운동은 진보하지 않는 것일까 등등의 질문들은 내영화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던게 사실이니 말이다. 때론 가족주의에 대한 질문이 때론 애국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한 질문들이 늘 나를 창작의 불길로 이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내 영화는 사람이 많고 질문이 많고 여러개의 결들이 겹쳐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하다보니 그리됐고 뒤돌아보니 내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알게된 사실이긴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단순화된 도식을 많이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면들이 자연스럽게 인간을 단순화시키는 생각이나 범주들을 파고들게 만드는 것 같고.

 

하지만 영화라는 세계는 너무 광활하고 담아야 할 이야기들은 넘쳐난다. 여전히 새 술이 필요하고 새 부대도 다시 필요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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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위안부2014. 9. 15. 17:59

안병직 "日잡지, 軍위안부 관련 왜곡보도…법적대응"

입력 : 2014.09.15 14:47|수정 : 2014.09.15 14:48

원로 경제사학자 안병직(78)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한 주간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자신과의 인터뷰라며 실은 기사가 왜곡·날조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오늘(15일) 밝혔습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 지난 4월10일자에 '위안부 '조사담당' 한국인 교수가 전면자공(자백)!'이라는 제목 아래 안 교수와 저널리스트 오다카 미키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안 교수는 "오다카씨가 '위안부' 관련 연구 목적에서 만나고 싶다고 작년 말부터 어떤 한국인을 통해 집요하게 요청해 와 거절하다 지난 1월 비보도를 전제로 만났다"며 "주간문춘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오다카씨는 1990년대 군 위안부 문제 실태조사에 참여한 안 교수가 '당시의 조사방법은 잘못됐다' '실질적인 조사 실패' '고노 담화는 이상하다' 등 발언을 했다고 기사에서 주장했습니다.

안 교수는 "조사에 관한 부분은 전적으로 오다카씨의 창작"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인지를 확인하는 일은 어렵고 당시 조사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고는 했지만 '실질적인 조사 실패'를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오다카씨는 내가 '고노담화가 단지 조선인 위안부 청취조사에만 근거해 작성됐다면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를 내가 '신빙성 없는 청취조사를 근거로 발표된 고노담화는 이상하다'는 뜻으로 말한 양 해석했다"면서 이 역시 '날조'라고 지적했습니다.

안 교수는 "이는 오다카씨가 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얼마나 무지한지 자백한 꼴"이라며 "지난 6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 교섭경위'에서도 고노담화는 청취조사가 정리되기 전 기존 연구를 참고로 한 일본 정부의 조사에 근거해 발표됐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내 주장도 그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밖에도 내가 하지 않은 말을 교묘하게 덧붙인다든지 오다카씨의 질문 뒤에 상이한 문맥으로 내가 한 말을 연결하는 수법으로 내 주장을 왜곡한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안 교수는 "확인도 없이 보도한 데 대해 주간문춘 측에 항의하고 반론문 게재를 요구했으나 아무 답이 없는 상태"라며 "또 다른 일본 주간지에 반론문을 실었고 한국과 일본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민·형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안 교수는 "군 위안소는 일본군의 후방시설이었고 위안부 동원은 일본군의 동원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전시동원이었다"며 "일본군이 당시 군 위안소 설치·관리와 군 위안부 징집을 담당했으며 피해자들의 증언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내 인식"이라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4. 9. 15. 03:03

기사를 기사로 리트윗하는 문화에 화가나서

몇일전 아침형인간이 되기로 한 다짐을 3일만에 깨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며 드라마 마마를 다운로드해서 본다.

드라마를 보다 스르르 화가 풀리고 눈물이 난다.

대체 세상은 뭘까.

그저 웃음이 난다.

울다 웃으면 똥꾸멍에 털 난다는데...ㅋ

나도 오토바이를 사고싶다.

아니 사야지 언젠가는.


근데 목이 메인다.이런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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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4. 9. 15. 02:41

기사를 검색하는데 갑자기 '시오노 나나미가 위안부 망언'이라는 기사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그 시오노 나나미였다.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늘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감독 기타노 타케시나 크린트이스트우드도 한 보수 하는 사람들이니.

우자지간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근데 시오노 나나미가 어떻게 망언을 했다는 것인지

팩트가 정확하지 않아 계속 궁금증이 생겼고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연달아 읽어보게 되었다.


근데 웬일이니.

줄줄이 내용이 똑같다.

제목만 조금씩 변형했을뿐 내용에 토시하나 안틀리고

죄다 똑같다.

이런 기사를 한두번 본건 아니지만

아사히신문에서 8월초에 특집으로 보도했던 위안부관련 오보기사와

관련이 있기에 좀더 꼼꼼히 알고 싶었다.

구글 검색어에 시오노 나나미와 위안부를 일본어로 검색해 보니

일본기사가 주루룩 나온다.

근데 아직 웹에는 그 기사의 내용이 올라오지 않았고

인쇄본으로 나온 문예춘추의 기사를 보고 기사를 쓴  

일본판 온라인 조선일보의 기사만 줄줄이 있다.

그니까 일본판 조선일보의 기사를 줄줄이 카피를 해서 

일본의 불러그와 sns에 도배가 됐고

이를 국내의 대다수의 언론사가 검증도 없이 기사화 했고

심지어 발로 뛰는 뉴스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리고 조선일보를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진보성향의 go발 뉴스까지 

카피해서 보도를 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뭘까.

개인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씨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생각을 이런 기사의 모든것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언론인이라 자부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궁금해 해야 하는게 아닐까.

어떻게 한 언론사에서 쓴 기사를 똑같이 앵무새처럼

인용해서 기사랍시고 웹에다 올리고

그것을 다시 수십 아니 수많은 사람들이

트윗으로 페북으로 리트윗 잔치를 벌이는 것일까.


8월초에 있었던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오보기사는

내로라 하는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정이고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특집기사의 요지는 요시다 세이지가 증언했던

제주도에서 군 위안부로 수백명의 처녀를 강제연행했다고 증언했던

내용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취소한다는 말이었다.

예상대로 파장은 컸고 많은 일본인들이 멘붕에 빠진듯 하다.

그 결과가 현재 일본사회를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보 정정 보도를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나는 일단 아사히신문사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 기사를 낸건 좀 더 명확하게 그리고 제대로 위안부피해자들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라는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사를 접한 한국의 언론은 어떠한가.

아사히신문의 오보문제가 한국의 언론과는 관련이 없다 할 수 있을까.

위안부피해자 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요시다 세이지의 제주도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증언을 

제대로 취재는 했던 것일까.

혹시 그와 관련된 기사나 인용이 시오노 나나미의 기사처럼

그저 계속 반복복제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아사히신문의 그 당시 기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당사국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적은 있었을까.


이렇게 검증없이 리트윗 되고 카피되고 복제에 복제를 거친 이야기들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안그래도 요즘 이런식의 무한복제 기사와 리트윗으로

실시간 검색어를 만들어내는 국내포탈 문화에 숨이 막힐 지경인데

역사를 논하는 기사들 수준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치는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분명한건 이렇게 바닥을 치면서 만드는 세상이 진보일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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