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패널인 고정갑희 님은, 기조 발제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제안해 주셨습니다. 성을 생산, 노동과 연결하여 볼 때 성적거래와 성적노동은 비단 매춘 성산업의 현장만이 아니라 결혼이나 연애, 상품생산 노동 등 다양한 삶의 현장들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성-노동’을 통한 위계와 착취, 혹은 가려져 있는 관계와 가치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고정갑희 님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성관계-성노동-성장치’로 작동되는 ‘성체계’를 인식할 필요성에 대해 제안합니다. 지금까지는 상품생산 노동을 중심으로 노동과 생산을 고려해 왔다면, 성과 연결하여 볼 때 지금까지는 사회적 가치가 고려되지 않았던 많은 노동들-가사노동, 돌봄노동, 인간생산노동 등-을 노동의 영역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이 노동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을 하는 공간 역시 임금이 주어지는 생산현장만이 아니라 삶의 공간 곳곳을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노동의 공간으로 볼 수 있게 되겠지요. 또한 성별화 된 노동만이 아니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의 차이에 따른 위계와 차별의 구조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게 됩니다. 고정갑희 님은 이런 인식의 과정을 통해 노동의 주체로서 연결될 수 있는 관계가 확장되고 운동의 방향도 새롭게 전환해볼 수 있으리라는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패널로 발표를 맡은 권수정 님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함께 공장 앞에서 용역에게 맞아가며 수개월을 싸우고 2011년 여성가족부 앞에서 거의 1년여의 농성을 이어간 끝에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 내 성희롱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던 피해자를 비롯하여, 왜 수많은 산업 현장에서 여성들이 성희롱을 경험하고 이를 드러냈을 때조차도 도리어 해고와 징계 등의 피해를 받는지. 권수정 님은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이미 성별화 된 위계구조를 통해 노동을 관리하는 자본의 착취 전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다 불안정한 고용, 노동 조건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남성 관리자와의 위계와 권력관계를 통해 통제하고, 다른 동료들조차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에 순응해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권수정 님은 노동운동이 직장 내 성희롱을 단지 개별 피해자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런 통제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번째 발제는 남성 성노동을 연구한 마쯔 님의 발제로 이어졌습니다. 마쯔 님은 성노동을 하고 있거나 했던 경험이 있으며 다양한 성적지향을 지닌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남성 15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게이 커뮤니티를 경유하며 이루어지는 남성 성노동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마쯔 님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몸은 대상화되지 않기에, 상품화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남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도 상품화되어 가고 있으며, 게이 커뮤니티에서의 남성 성노동의 경우도 최근 양적/질적 증대와 더불어 가시화되어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신자유주의 구조변동 속에서 심화된 청년빈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꼽았습니다. 한편, 남성 성노동을 이야기하면 “왜 게이들이 굳이 돈을 주고 섹스를 하느냐”는 질문을 듣는데 이런 질문이 ‘성노동’을 좁은 의미에서만 사유하기 때문이며, ‘자유롭고 평등한’ 것으로 가정되었던 기존의 관계들 내부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금전이 결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한편, 남성 성노동자들의 정체성과 경험이 역사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남성 성노동자는 페어리(fairy)로 불리며 비이성애적 존재로 간주되고 구매자는 이성애자로 여겨진 반면, 전쟁 이후 급증한 군인이 성노동자로 등장하고 이들의 ‘후원자’가 구매자가 됨에 따라 성노동자는 이성애자로, 구매자는 비이성애자로 여겨지는 변화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게이 인권운동이 발전하고 가시화되면서 성노동자들 또한 ‘동성애자’로 간주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성노동자가 남성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며, 남성 성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양성애자, 이성애자, 무성애자, MTF 트랜스젠더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성노동에 대해서도 여러 갈등적 요소들을 다르게 체험하고 있으며 각자의 역량과 위치에 따라 게이 커뮤니티와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남성 성노동이 노동이라면, 과연 무엇을 생산하는 노동일까요? 마쯔 님은 재생산적 측면에서의 감정/돌봄, 혹은 쾌락, 더 나아가 친밀성까지 다양한 답변이 존재하며, 본인은 쾌락과 친밀성의 영역에 주목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게이 커뮤니티에서의 성적 실천은 단순히 쾌락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상호 확인하고 인정하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장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벽장 안’ 게이와 이성애 결혼 상태의 ‘유부남’ 게이가 이런 인정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쯔 님은 지금까지 남성 성노동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노동에 국한되어 왔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이돌을 비롯하여 남성의 섹슈얼리티 또한 상품화되어 유통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하지만 남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와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남성 성노동자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 3차 산업의 서비스 노동이 주가 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서비스 노동에 포함되어 있는 성노동적 측면을 습득해 나가고 있으며, 이런 경험들을 통해 보다 많은 남성들이 남성 성노동을 ‘가능한 선택’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니콜라 스미스(Nicola Smith)의 견해를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성 성노동 현장은 여성 성노동 현장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노동 환경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업주와 구매자들에 의한 착취와 폭력의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성노동이 불법인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남성 성노동자 중에서도 크고 근육질의 남성들인 경우 어리고 몸이 작으며 마른 체형의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폭력적인 경험을 적게 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 발제자였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 연구팀의 사미숙 님은 ‘쾌락생산노동으로서의 성노동(섹스노동)’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였습니다. 먼저, 기존의 ‘생산중심주의’적 시각이 재생산을 재화의 생산과 그 생산을 위한 재생산으로 나누고 상품생산을 그 중심에 둠으로써 인간생산과 쾌락생산은 상품생산을 위한 재생산에 포함시켜 왔다고 보고, 성적 생산의 중요한 요소인 인간생산과 쾌락생산을 불평등한 위치에 둔 것이 상품생산 영역에서의 성별관계의 불평등 구조를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부장 사회는 인간생산을 전제로 한 쾌락생산만을 허용함으로써 낙인과 위계화를 통한 통제를 강화해 왔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소비 중심적인 삶의 경향으로 공/사 이분법적 영역이 모호해지고, 인격적 관계가 필요에 따른 기능적 관계에 의해 식민화되었으며, 로맨스를 상품화하거나 상품을 로맨스화하는 경향이 드러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점점 사랑은 종교화되고 성애는 신성시되지만 사실 최근의 많은 전문가들은 로맨스가 결혼과 결부됨에 따라 결혼생활의 유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계약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합리적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며, 관계의 지속을 위해서는 일종의 ‘노동’과 같은 노동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결혼시장에서 역시 상대의 ‘섹시함’을 상품화하는 ‘에로스 자본’이 탄생하였고, 여성들은 결혼시장에서 자신의 ‘에로스 자본’을 남성의 경제력과 교환한다고 보았습니다. 성-노동의 이러한 거래 구조를 로맨스와 결혼제도로 포장 또는 은폐하는 구조의 또 다른 한편에는 매춘 노동에 대한 낙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성매매 담론에서 제기하는 ‘성적 대상화’, ‘도구화’ 주장이나 성노동 담론만으로는 낙인의 효과를 극복하기가 어려우며, 성과 사랑을 일치시키는 성윤리와는 다른 성윤리 개념을 통해 가부장적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사미숙 님은 성노동자 역시 자신의 노동 과정에서 쾌락을 생산한다고 보고, 이 때 성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은 일종의 ‘연극’으로서의 예술노동적 성격을 포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성노동자의 성적 쾌락은 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며, 성노동자는 자신의 고객을 고를 때 자신의 잠재적 쾌락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고, 성노동자에게 전문성이란 섹스 기술이라기보다 감정노동을 의미한다고 보며, 성노동자가 고객과의 거리두기를 위해 거짓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등의 행위를 할 때 이것은 자기 상실이나 섹슈얼리티 소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Anna Kontula의 글을 참고로 상황을 통제하는 것,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노동자의 수고를 최소화 하는 것이 성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로서 필요하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패널들의 발제 이후 이어진 청중토론에서는 마지막 사미숙 님의 발제에 대한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오갔습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한 분은 성매매 현장에서 당사자들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들의 경험에 대한 진술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성판매자의 피해에 대해 선별적으로 취사하여 마치 성노동자들이 자기 주도적인 섹슈얼리티를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쾌락생산노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며,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이 날 간담회에는 성노동자로 일하고 있거나 성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다양한 분들이 참석하기도 했는데요, 성노동자 사이에도 업종이나 일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계급과 위계가 존재하므로 구체적인 데이터 베이스가 필요하다는 제안, 현재는 성노동이나 반성매매 입장 모두 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한편, 현재 성노동을 하고 있지만 성노동이 무기 생산보다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했던 영화계 일이나 과외, 광고 홍보 등의 일과 비교해 볼 때 예를 들어 영화계의 경우 폭력과 초과노동은 물론이고 두 달 일해서 20만원을 받을만큼 착취가 심각한데 오히려 성노동이 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이야기한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노동을 하면서도 착취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사미숙 님은 지적된 내용들에 대해 수긍하고 인정하지만, 성노동자 중에서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자부심을 갖고 더 나아가야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고 그런 측면 역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으며, 성행위에 대해서도 재개념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한 권수정 님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경우에도 10년동안 성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사람이 피해를 말할 수 있게 되는 때의 변화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는 피해자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 그렇다고 ‘생존자’라고 할 때에도 그 상황을 충분히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문제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될 때, 당당해질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누구나 자부심을 갖고 존엄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 따라서 쾌락노동이라고 표현한 것도 긍정적으로 자기 노동에 대한 표현을 하고 싶은 것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마쯔 님은 젠더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외국에서 여성 성노동자와 남성 성노동자를 조사했는데, 성노동에 대해서 자신의 쾌락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대해 남성 성노동자가 2배 정도 높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젠더적 차이가 왜 나는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 분들 중에서는, ‘성노동’이라는 말이 성과 연루된 모든 노동을 포함하는 말이고, 출산도 가사노동도 노동의 범주로 넣은 것을 인상적으로 들었지만 업장 안에서 당하는 폭력을 예를 들면 4대보험이 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젠더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을 우회하고서 어떻게 성노동을 이론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의견을 밝힌 분도 계셨습니다. 반면, 노동에서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일과 착취에 대응하는 일, 젠더 불평등과 위계의 문제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으며, 사미숙 님의 제안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수정 님은 모두가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법의 영역에서 노동으로 인정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노동 환경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 군인,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노동이 은폐되어 있거나 합법적으로 돈을 덜 줘도 되는 사람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착취와 폭력으로부터도 은폐되어 있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노동권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권은 더더욱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고정갑희 님은 우리 모두 가부장체제 안에 살고 있으며 다양한 성노동자들에게도 가부장체제는 작동한다는 점을 보아 ‘성노동’에 대해 보다 포괄적으로 넓혀서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상품생산 현장에서의 성노동, 다양한 성산업/매춘과 관련해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 여러 영역의 성적 노동자들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교도소 재소자들 보다 어쩌면 더 은폐되어 있는 가사노동자와 대리모 노동 등 아예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성적 노동에 대해 노동운동의 스펙트럼을 놓고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쾌락생산노동’이라는 용어에 대해 중요한 것은 쾌락을 성노동자가 느끼냐 안 느끼냐가 아니라 결국 돈을 받고 일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쾌락을 ‘생산해야 하는’ 노동인데 이것이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그 동안 반성매매와 성노동의 입장 사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했거나 확장하여 보고, 새롭게 연결해야 할 지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이후의 과정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와 실천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