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0. 12. 26. 16:53

다시 편집을 시작한지 벌써 한달반이 지나간다. 지난 일년간 어떤일이 있었는지도 잊을만큼 작년 이맘때랑 거의 똑같은 분위기로 편집에 빠져 살고 있다. 마치 중간이 사라져버린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편집할때는 단계가 있다. 한참 편집구성을 하고 그림들을 붙여갈때는 종종 다른 영화로 기분전환을 하는데 편집이 점점 촘촘해지기 시작하면 다른 영화들이 나를 매혹시키지 못한다. 그때부터는 내영화가 더 재밌으니까..ㅎㅎ

우자지간 그런 기분으로 그림들과 놀면서 이번달까지 1차 가편을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로 임하면서 음악감독인 지은에게 전화를 했다. 올해초 있었던 여성영화제 상영본으로 이미 나의 까탈스런 요구에 한번 홍역을 치른터라 다시 새로운 버전으로 음악에 대한 작업을 요구하니 그녀는 미리부터 엄살이다. 근데 시간은 대충 몇분정도 나올거 같아? 응..대충 두시간이 조금 넘을거 같은데...헉...있잖아...시간을 좀 줄이면 안될까...아니 뭐 나야 레드마리아가 잘 나오기만을 바라지만 웬지 요즘 관객들이 한시간반이 넘어가면 힘들어 하더라고..

마지막 수화기를 놓을때까지 그녀는 내심 그 복잡한 이야기를 다시 볼 생각에 심적부담이 상당했는지 영 목소리의 톤이 무겁다. 전화를 걸기전 그 신나던 내 마음도 조금 가라앉는다. 그래..내맘이 다 똑같은건 아닐테지. 관객들이 보고싶은 영화랑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랑 아구가 늘 맞는건 아닐테니까. 그렇게 작년 이맘때도 턱도 없이 모자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성영화제에 맞춰보겠다고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러닝타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여기저기 잘라냈던 기억이 새롭다. 근데 볼만한 영화의 선택기준이 과연 러닝타임에 문제일까.

길게 많은 이야기를 끌고가려면 이야기에 집중할 모티브가 명확해야 한다. 시간을 느끼지 못할만큼 집중하며 불 수 있는 이야기의 연결. 이번편집의 방향을 잡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거였다. 여성의 몸과 노동을 이야기 하기 위해 그 많은 주인공들의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해서 하나의 줄기로 만들어 갈 것인지. 찍었던 테잎들을 구석구석 찾다보면 잊고 있었던 보석들이 하나씩 발견되며 이런 나의 고민들이 하나씩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욕심을 버리면서 시작된다.

아무리 좋은 장면도 주변을 까먹으면 자체발광이 의미가 없다는 것. 그렇게 편집을 하다보니 일년전 무엇을 놓쳤고 무엇에 쫗겼으며 무엇을 포기하지 못해 안달이었는지가 하나씩 생각나며 웃음이 난다. 마치 인생을 먼저산 어른들의 10년전에 들려주던 그 이야기가 바로 이런 뜻이었구나를 뒤늦게 알게되고 오래전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행동이 이런거였구나 라는걸 한참 시간이 지난후에야 느끼게 되는 그런것처럼. 제아무리 빠른 메모리를 장착해 온갖 정보를 순식간에 파악해도 알고 깨닫고 생각하게 되는 우리의 두뇌회로라는건 얼마나 느리고 갑갑하게 움직이는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인지라 안부를 묻고 살기도 힘들어진 요즘 많은 사람들이 느리게 살자고 하지만 우리 마음의 반은 빠른 메모리에 적응이 돼 기다리는 것도 진의를 아는 것도 빠르게 전달이 안되면 오해와 불신과 실망과 상처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조급함에서 조금은 비껴살고 치열하지만 느리게 확인하고 가진건 없지만 관계가 주는 행복함이 무엇인지를 생활속에 실천하며 사는 거 같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 비로서 알게 됐는지도.

편집을 하면서 이런저런 행복한 고민들을 하게 해준 지난 일년이 고맙다. 그런 시간이 있어 느리게 이제사 편집을 하지만 좀 더 다른 시선으로 영화와 다시 만나 고민들을 더 확장하고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행복한 시간들이 언젠가는 끝나고 그 행복한 고민들이 관객과 궁합이 맞을지 안맞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분명 이 영화로 나는 많은 이들과 또 다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왜냐면 우리가 해야만 하고 하게 될 이야기라고 믿고 있으니까.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10. 1. 16:52

갈수록인가 아니면 늘 그랬었나. 

생각대로 되지 않고 몸과 머리는 늘 따로 놀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이
늘 아구가 안맞는 생활이 사람을 갑갑하게 만드는게.
하긴 나만 그런건 아닌듯 싶다. 며칠전 니카라과이에 촬영하러 간 미례가
갑자기 메일로 동영상을 보냈다.낯선도시 마나과에서의 첫째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이 카메라와 카드 그리고 미국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한
전자여권이 든 지갑을 통째로 도난을 당했고 이틀간을 꼬박 범인을 잡느라
준비되지 않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직접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범인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 식당에 CCTV가 설치되어 그 시간에 찍힌 영상이 남아있었지만
경찰에선 나몰라라 하니 결국 미례가 직접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범인의 사진을
캡처해 달라고 영상을 보낸것이다. 보내준 식당의 CCTV를 통해
밥먹는 미례의 옆에서 슬쩍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범인의 모습이 보인다.
범인들의 모습을 캡쳐받아 보내주고 나니
여비가 없어서 엄마의 기일에 가지 못한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여비를 좀 보내줄까 했더니 안가기로 했단다.
갑자기 CCTV에 잡힌 범인들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머릿속에 엉뚱한 시나리오가 지나간다.
만일 범인이 친구이고 친구는 지금 돈이 필요하고 잡히지 않게 CCTV에서
자기를 빼달라고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이런게 영화라면 정말 구린 B급영화겠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때
상황은 단순하지가 않다.
갈수록 현실은 영화보다 더 쪼잔하고 비굴하고 현실감이 없다.
정말 이게 현실이라니 하는 말이 끝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불과 5개월전만해도 내가 해야 할 일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갈수록 엄하게 꼬이는 현실이 현실감이 없다.

한달만 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다시 그놈의 치료만 끝나면 될 줄 알았는데
시도때도 없이 피곤한 몸은 이제 내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을 한듯 하다.
담당의사는 다들 그렇다고 그런 몸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별로 위로가 안된다.
할 일은 여전히 해야 할 일로 남아있고 시간이 갈수록 해결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쉰다는게 오히려 짐이되고있다.
내가 너무 현실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걸까. 그래도 된다고 말이다.
결국 몇 달을 더 미루기로 했던 편집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몇 달전 프로젝트를 열면서 느꼈던 긴장감이 이번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저것 신경쓸게 너무 많아 머릿속이 미리부터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이사이 돈도 벌어야 하고 체력과 컨디션 조절도 잘해야 하고
미뤄두었던 편집구성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한다.
편집을 하자면 번역도 다시 해야하고 안쓴 그림들도 다시 프리뷰를 해야 하고
사진부터 음악부터 애니메이션까지 다시 사람들과 만나 토론을 하고
부탁을 하고 확인작업을 위해 필리핀과 일본에도 다시 연락을 해야 한다.
국내작업이라면 혼자서 이리저리 끌어보겠는데
어쩌다 이렇게 큰산을 파기 시작했는지...

그래도 다행인건 이런 과정을 이해해주고 함께 해준 영재와 아람,경은,영란이 있어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일이 많다. 영재는 이미 할 일이 너무 많고
영란과 경은은 학교를 다니고 아람도 내년 복학을 위해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그런 아람에게 기륭을 다시 찍어야겠다고 촬영까지 맡겼다.
감독이란게 정말 끝까지 이기적인 동물이다.
당분간 더 이기적이 되고 더 비굴해지고 더 강해져야 하는데
몸을 사리며 이렇게 일을 해야되나 생각하니 꼴이 좀 우스워진다.
하긴 우스운게 한두가진가. 교육과 관련된 일은 내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돈이 없어도 노가다를 할망정 그것과 관련된 일은 늘 고사를 했는데
지금은 돈벌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 일밖에 없다.
역시 꼴이 우습다.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조금 어색하고 힘들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오바를 하곤 했는데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을듯 싶다.
이럴때는 자신을 합리화 하는게 최선이다.
이렇게 생각지 않던 일이 생긴건 좀 쉬게 하려고 그런걸꺼야.
그리고 좀 더 다른 고민으로 레드마리아를 만들고 이젠 틈틈히 공부도 좀 해 보라고
이런 일로 기회를 주는 걸 꺼야.
이렇게 저렇게 한참을 씨부렁 거리니 틀린말 하나도 없군. 근데 웬일이니
틀어놓은 시디에서 나오는 가사가 죽인다

“.....미치듯이 헛소리 개소리 하고 자빠지지.....”

하하하 그러게...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5. 17. 16:50

여성영화제가 끝난 후 처음으로 와보는 사무실이다.

곳곳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일단 청소한번 해주고 걸레질도 살짝..

사무실 주인인 꿈틀 대표 재원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 이제 편집하려고...”
“편집이요?”
“응 끝을 내야지”
“???”

영화제 상영때문에 막판에 된통 고생을 한 녀석은 이제 슬슬
사무실도 비워주겠지 했겠지만 느닷없는 통고에 어리가 벙벙 한듯 했다.

“도와주라...그때 편집 안 끝난거라고 했잖아^^”

일단 녀석의 반응결과를 돌아보지 않은채 나는 작업실로 돌아와 편집기를 켠다.

그래 이놈 만져본지도 오래됐구나.
프로젝트가 어떤게 마지막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이것저것 뒤져보다 몇번 엉뚱한거 열어보고는 틈틈히 이스탄불의
선화가 부탁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그래 일단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제는 닦달 할 영화제도 없고 추궁할 사람도 관심도 조용해졌으니
느긋하게 아주 천천히 시작해보자.
어디서 중단했고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편집기 앞에 앉으면 긴장감이 돌면서 웬지 기분이 좋다.
머리와 생각과 기억과 현실 그리고 만들어질 이야기들이
오묘하게 조합이 되는 그 순간이 말이다.

아니야 그래도 마무리 시점은 정해야지. 그치 경순?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4. 18. 16:47

영화를 기획할 당시의 고민들을 다시 들추어 보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여전하기도 하다.

늘 만들때의 고민들은 만들면서 더 구체화되고 심화되고 복잡해 진다.
그리고 그 고민들이 명료회될때쯤 영화는 완성된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몇몇 고민들은 영화를 만들는 과정속에 심화되고
몇몇 고민들은 과정속에 축소되기도 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시작을 더듬어 보는 일도 재밌는듯 하다


제1장 소통에 대한 탐구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해도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
30년을 같이 산 남편과 대화를 해도 그렇고
같은 여자인 엄마나 친구와 이야기를 해도 그럴 때가 있다.
한 마디로 말만 같을 뿐이지 서로를 지탱해주는 머릿속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말 이라는 게 참 귀찮아진다.

하지만 통하는 사람끼리는 말이 크게 필요가 없다.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의 기술 보다는
존재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포용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와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어설픈 영어와 몸짓으로 그들과 내가 이해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우린 말을 너무 소비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이라는 것이 너무 지식으로 가다보니 정작 소통을 위한 곳에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소통이 안 되는 것인지 무엇이 소통을 막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왜 말을 배우고 대체 그 말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제2장 경험의 재구성

경험은 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험은 인간에게 동질성을 부여하고 공감대도 부여하고
때론 계급성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조차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에 의해 종속되어 있다는 것.
가끔 그 지위로 인해 서로의 경험이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나 청소부의 아내나 그것은 가부장질서 속의 지위일 뿐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다른 환경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역사성이 있다.
출생하면서부터 몸에서 시작된 그 경험은 딸이라고 불리는 순간
순결, 출산, 가사노동, 빈곤의 악순환,성폭력과 성매매로 이어지는
동일한 경험의 역사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와 자본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역할은 늘 통제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의 세 나라,일본과 한국 필리핀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다.
일본이 군국주의 기치아래 식민지 여성의 몸을 강간하고 유린했듯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여성의 역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자립을 원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분배방식에는 가부장제가 필요하고
값싼 가사노동과 임노동을 대신할 여성의 보수적인 성역할은
쉽게 대체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몸-차별의 시작

태어날 때 부터 그랬고
교육 받으면서도 그랬고
뒤를 돌아보아도 그렇듯
돌이킬 수 없게 다르게 만들어진 여성의 몸

그래서 어렵게 자랐건 귀하게 자랐건 딸들에게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
약한게 미덕이고
보호받는건 당연하고
강하면 결함이 되는

그 미덕과 결함이 자본과 결탁을 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 진다.
이뻐야 하고 잘 빠져야 하고 잘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성의 몸과 함께 번창하는 산업은 얼마나 많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겐 몸이 수단이고 경쟁력이다.

그 수단과 경쟁력에서 뒤처진 수많은 몸들의 상처.
이제 그 현장을 제대로 돌아볼 때가 됐다.

2. 출산과 낙태-죄의식

여성은 출산의 능력을 타고났다.
그것이 여성의 몸이다.

하지만 여성이 출산이나 낙태를 원할 때는
사회의 윤리와 국가의 정책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낙태문제는 늘 공공의 적으로 기사거리가 되거나
파렴치한 살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정작 문제는
여성의 몸과 태어난 아기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여성의 몸은 가난과 맞물리면 더욱 치명적이 된다.
똑같이 낙태가 불법이지만 자본주의 마인드가 강한
의사들 덕분에 한국이나 일본은 낙태천국이 됐고
보수적인데다 가난한 카톨릭 국가 필리핀에서는
낙태의 기회조차 박탈돼 모두가 쉬쉬하며 불법의료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건
세나라 모두 자신의 낙태 경험을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다들 죄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죄인의식을 더 조장하고 관리하려든다.
출산과 낙태의 결정권은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다.

3.일부일처-함정

여성이 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모든 경계가
성폭력에 대한 위험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여성의 성은 늘 보호와 통제아래 갇혀있다.
그리고 그 보호는 한 여성이 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시작되고
남자들의 욕망은 성노동자들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래서 순결과 성폭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너무나 성스럽게 이야기 돼서 너무나 하찮게 추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산업화.
과연 우리는 결혼과 성매매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가끔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정치적인 이슈는
내 누이와 내 어머니에 대한 순결이라는 가치만을 포장해
왜 그런 논리가 가능했던가는 종종 놓치고 간다.
위안부가 필요했던 군국주의 논리나
여전히 남자들에게 성노동자들이 필요악이라 여겨지는 논리는
가부장과 자본주의가 만나 만들어낸 하나의 일란성 쌍둥이인데 말이다.

이시대 여성들은 모두가 성노동자다.

4. 밥-혹은 노동

밥은 남녀역할 분담의 본질적인 역사를 안고 있다.
아무리 활동적인 여성이라 해도 육아와 살림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뿌리깊은 사회의 미덕이 되어 여성들을 더더욱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구조적인 성역할의 집착은
여성을 수입해서까지 그 역할을 공고히 지키려 한다.

그래서 밥은 노동이고 저임금이고 빈곤이게 하는
여성들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내놓는 당근도 있다.
주부를 겨냥한 상품으로 가정용품과 교육시장과 육아용품의
최고의 소비자로서 권한을 누리게 하는것.
우리는 그 배반된 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제3장 독립-새로운 경험 만들기
                                                                              
독립을 꿈꾸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독립이라고 말하는데도 이유가 있다.
혼자서 그냥 살아가는 걸 우리는 독립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독립은 새롭게 역사를 쓰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독립된 우리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독립과 새로운 역사쓰기에 걸 맞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그 최전선에 여성이 있기 때문이고
여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놓은 황당한 시스템들이 어떻게 바뀌고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망가진 세상이 어떻게 복원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시작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금이 올라가도 채워지지 않는 빈곤함의 악순환을 떨치고
작지만 돈이 주는 행복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몸이 주는 억압을 벗어나 자유롭고 신나게
자신의 진정한 성을 즐기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
그 세계가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1. 9. 22:35

그래 니들이 우리를 그렇게 슬프게 만들었지
그렇게 우리를 비겁하게 만들고
비굴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우린 그냥 참고만 있었던게 아니야
어떻게 니들의 심장에 비수를 꼽을 수 있을지
어떻게 니들의 돈보다 더 즐겁게 살 수있을지
어떻게 내가 나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 수 있을지를.....

우린 밤마다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면 생각하고 생각했어.
그렇게 수천년이 지났고 이제 다시 수천년을 살아가야 하겠지만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그일이 있다.

존만한게 어디서 함부로....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11. 1. 16:42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휩사여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건 아니고 그저 빈둥거리고 있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떼우는 곳이 요즘 내방에서의 일과다.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쩌다 빨래나 하러 들르는 이공간이 그렇게 빈둥거리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난 이 빈둥거림이 얼마나 즐거운지...

나의 공간이 처음 생겼을때 나의 기쁨은 잠잘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원초적인 안심이었는데 생활과 분리된 이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의 휴식처가 되어가는 거 같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뒷치닥 거리며 잔뜩 쌓여있는 집안일과 남편이나 동거인에 대한 불편함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고 헉헉대는 그런 전투장이 아닌 마치 별장처럼 이따금 찾아와서 아무생각도 없이 그냥 빈둥거리거나 가끔 책을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나가야지 하는데 머리가 말이 아니다. 요즘은 씻는 일을 거의 수영장에서 하다보니 덩달아 씻는 도구들도 죄다 사무실로 옮겨져서 막상 씻으려고 하니 샴푸도 없고 린스도 없다. 쌀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고작 샴푸정도로 허전함이 느껴지다니...쩝...하지만 씻어야겠지. 게다가 생리중이니 사무실에 나가도 내일까지는 수영장에 갈수도 없을테고 일단 오늘 왕창 씻어야 버틸 수 있을테니까.

돌아서려는데 정태춘 박은옥의 시디가 눈에 걸린다. 지난주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콘서트에서 사온 첫차를 기다리며라는 시디. 그날 참 많이 울었었다. 나만 우는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죄다 울고 있었지. 비슷한 세대의 비슷한 공감대로 고독하고 외롭게 음악을 중단한 그를 격려하면서 그리고 슬쩍 자신의 숨겨둔 외로움을 함께 보태어 다들 그렇게 한 공간을 즐겼던거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나 그 기억은 너무 빨리 잊혀진다.

나만해도 그렇지 않은가.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컴퓨터와 편집기를 여는 순간 삼개국의 수천장에 달하는 번역본을 펼치는 순간 타임라인의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상들을 듣기 시작하는 순간...이미 그 시간은 내머리속에서 비워진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 빈둥거리는 시간에 우연히 접한 그 시디를 통해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 낸다는거. 그래서 빈둥거리는 시간들은 지루하지 않고 생산적이다. 뭐 그렇게 위안을 삼고 있지만 역시 편집이 걸린다. 씨발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거야.

나름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는데 며칠전 ‘쇼킹패밀리’상영때 만난 세영이 그런다. 나는 그렇게 편집할때 꼼짝도 못하겠던데 경순은 너무 많이 노는거 아니야. 흐미...나쁜지지배. 가끔 산에 가고 가끔 영화 보는거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기를 나는 스트레스 쌓이면 00을 만나서 배설(일종의 수다)하곤 하는데 경순도 배설 할 곳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지지배 이제 별걸 다 아네. 머리까지 영화배우처럼 잘라서 더 이쁘다. 너무 걱정하지마 니가보면 또 다른 맛이 있는 영화만들어서 보여줄께. 이런... 아직도 내입은 현실과 다른 말들이 툭툭..ㅎ

아...좋다...오늘 하루 그냥 게길까. 이것저것 쓰고 싶었던 글들이나 쓰고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면서 뒹굴뒹굴... 맞어 난 요즘 푸코에게 배설을 하는거 같다. 푸코는 아마도 그의 친구이면서 학문적 동지인 역사학자 폴벤느에게 배설을 했겠지. 새로운 생각들을 퍼붓고 의심하고 공유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동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그건 애인과는 또 다른 관계다. 내가 왜 이렇게 흥분이 되는지... 그나저나 공간이 바뀌면 내머리는 왜 이렇게 긴장감이 없어지는 것일까.

참 어제 핑크영화제에서 만난 주희씨의 말이 생각난다. 언젠가 핑크토크를 위해서 한국의 에로영화를 만들었던 00감독을 불러 이야기를 했더니 쓰리엠 정책이니 한국의 정권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통에 골치가 아팠다고. 가끔 사람들이 그렇지. 머리에 찬 것이 너무 많아 가벼울 줄 모른다. 우자지간 핑크영화제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 글이 길어지겠군. 일단 컷하고. 에이씨 나가야겠다. 씻자.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9. 27. 16:39

평소 나는 고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았던거 같다. 특히 그 단어가 주체인 나에게 가해지는 상항일 때는 더더욱 해당사항이 없었던거 같다. 대부분 힘들다거나 어렵다는 말로 그 상황을 표현했지 나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말로 표현을 해본적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고통이라는 말은 나보다는 대상에 대한 상황을 표현할때 주로 썼던 말이었다. 민중의 고통이니 그들의 고통이니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작년 필리핀 촬영을 하면서 나는 내내 스스로 고통스럽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란적이 있는데 그 이후 고통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작지않은 화두로 간간히 떠오르곤 한다.

처음 그 고통이 나에게 각인된 것은 올롱가포의 반성매매단체인 부클로드의 촬영때였다. 10대나 갓 20대를 넘어선 거리성매매 여성들을 촬영할 때의 일이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를 관심있어 하면서 즐겁게 촬영을 했었는데 그들중 담배를 피는 몇몇이 나에게 담배 한까치씩 얻어 피우곤 했었다. 한개피에 2페소 하는 담배를 사서 피우던 그녀들에게 한갑씩 사서 피우는 내가 참으로 부러웠을 것이다. 그나마 담배라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고 난 늘 그녀들의 요구에 선뜻 응해주었다.

종종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람이가 버릇될꺼 같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돈이라면 그것이 기대가 되고 우리의 처지에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담배란 음식이 아닌가. 있으면 나눠먹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니 그냥 편하게 생각했다. 그녀들도 역시 내가 담배가 떨어지면 피던 담배를 한모금 주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두개피 중 하나를 주기도 했으니까. 근데 문제는 담배를 나눠 피는 것으로 끼니로 해결해야 할 배고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대부분 아기가 있는 그녀들은 부클로드에서 기거를 했는데 최근 상황이 어려워져 부클로드에서도 그녀들의 음식까지 대줄 형편이 안되었다.

결국 어느날 부터인가 부클로드의 식탁은 나눠지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자신의 음식은 스스로 해결을 해야했다. 우리를 위한 식탁이라는 것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녀들에 비하면 부러운 식탁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빵 한조각으로 때우기도 하고 라면으로 때우기도 하고 때로는 굶기도 하고 그랬다. 비록 담배는 나눠 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을 해결해 주기에는 우리의 처지도 만만치 않았던터라 상황을 직시해야 하는 나의 마음은 꽤나 복잡했다.그렇다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벌리지도 않고 어떠한 도움도 청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상황을 대면하고 있는 나는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고통스럽겠구나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쏟아지는 고통스러움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다. 수많은 촬영현장을 누비고 나름 극악한 상황들을 얼마나 많이 대면했는데 그렇게 대면할때도 나는 늘 담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들은 여전히 즐겁게 아무렇지 않은듯 자신들의 생활을 즐겁게 해나가고 있는데 그들은 나에게 고통스러우니 우리의 처지를 알려주세요 라고 말하지도 않는데 왜 나는 이렇게 갑자기 고통이라는 단어에 휩싸여 스스로가 주체못해 난린가. 이건 제작비에 대한 부담으로 생겨난 스스로의 감상과 연민이 겹친건 아닐까

부클로드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아람이와 나는 얼마 안남은 제작비를 톡톡 털어 그들이 부클로드에서 한달정도 먹을 수 있는 쌀과 생활용품을 사주고 왔다. 나름 그 고통을 덜어보자는 수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스텝들에게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당시 활율로 한달에 5만원이면 그들이 먹을 쌀을 살 수 있으니 쌀을 살 돈이라도 보내주자고 했었다. 모두들 동의를 했지만 우리는 그 일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 일도 실천하지 못할만큼 우리는 바뻤고 또 힘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내는 일도 역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먹는걸 고민해야 하고 우리도 생활비를 고민해야 하고 우리도 살집을 고민해야 한다.

고통스럽다는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은 증폭되고 답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없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인간관계에서 조차 감정노동이 이야기 될 만큼 모두가 힘들게 버티듯이 살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보다 잘 살고 있는게 맞는 것인지. 내가 느꼈던 그 고통이 그들의 삶에 무례했던 건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진정 나에게 고통을 느끼게 한 그 무게는 무엇으로 부터 온 것일지.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때 마다 난 그때 느꼈던 고통의 실체를 되묻곤 한다. 하지만 동생과 아버지를 보내면서도 정말 힘들긴 했지만 고통이란 단어는 아니었던거 같다. 아직도 그 이유를 곱씹어 보곤 하는데 한가지 확실한건 인간이 그나마 인간다울 수 있는 요소가 외로움을 느낄 줄 아는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가지 더 첨부됐다는거. 고통을 느낀다는게 참 다행이라고.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8. 22. 17:04

영화를 기획 할 때의 그림이 있다. 아주 느슨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늘 주제로부터 확산되는데 명확하지는 않다. 왜냐면 늘 그렇듯이 나의 작업이란 퍼즐처럼 주제를 완성해 가는 그림들을 찾아다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 레드마리아는 제일 복잡한 숙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가끔 다큐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묻곤 하는데 12명의 주인공을 어떻게 구성할거냐는 것. 그거에 대한 좋은 생각이 있음 나에게 주저말고 이야기 해달라고 대답 하는데 나도 그게 궁금하다. 그 12명을 어떻게 조합해서 레드마리아 속에 녹아낼 것인지. 하나씩 보면 그 하나의 인물로도 족히 한시간은 게길만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으니 이걸 그냥 열두편으로 만드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동하가 그랬다. 애국자게임을 만들고 난후 그리고 다시 택시블루스를 만들고 난 후 사람많이 나오는 작업 이젠 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 죽을맛이지. 근데 나는 자꾸 그렇게 작업을 하는거 같다. 이것도 습관이되면 취향이라고 말해야 할까? 하하하 우자지간 그 덕에 지금 졸라 머리가 복잡하다. 게다가 계획에도 없던 두번의 장례식까지 치르고 계획된 두번의 출산장면을 실패하고 보니 아무리 계획이 명확했다 한들 레드마리아의 마지막도 계획된대로 나올지 의문이니까.

하지만 일단 찍어진 그림들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완성된 번역이 없어 시도때도 없이 중단되는 통에 툭툭 걸리는 짜증이 벌써 스트레스가 되고 있고, 시작때부터 말썽이던 다리의 고관절염은 자리에 앉아 두시간을 버티기 힘들게 만든다. 정말 지랄이다. 이렇게 예상치 않던 일들이 줄줄이 나와의 데이트를 기다리고 있으니 모른척하고 넘어가기도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젠 쌓이는 빚은 눈에도 안들어 온다. 물론 안들어오는 건 아니고 지칠까봐 지레 모른척 흐흐 레드마리아를 시작하고 4번째 도전해보는 영진위 기금신청에 다시 기대를 해보는 수밖에. 그리고 뭐 죽기야 하겠어..오마이갓 이런 이야기는 없던걸로 하자.

영화를 만들때 묘미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일단 기획 할 때의 돈 안드는 상상이 첫번째 묘미. 내 머리속에 그려지는 일들을 누가 탓하랴. 그때는 스텝들에 대한 부담도 돈에 부담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구애도 없다. 그저 머리에서 돌아다니는 컷들을 하나씩 잡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두번째는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인데 이때부터 점점 스릴과 서스펜스가 추가되는 재미가 있다. 나만의 생각으로는 안되는 대상들이 하나씩 추가되고 예상치 않던 문제들이 생겨나고 그 문제를 풀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놀이가 부럽지 않을 만큼 신난다. 물론 항상 신나는 일은 감수할 것들이 많아지는법 하지만 일단 생략하고...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7. 13. 16:56

레드마리아 첫 촬영 이후 벌써 일년이 지났다. 지나간 시간과 일들을 증면해 주는건 책상위에 쌓여있는 400여개의 테잎들이다. 크게 한국과 일본,필리핀으로 색깔을 나누어 라벨을 정리해 놨지만 한국어 일본어 따갈로그,비사어,팜팡가어,영어,스페인어 등의 갖가지 말들이 담겨져 아직도 그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투성이다. 어쩌다 작업이 말과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요즘, 한참 달라붙어 그림을 붙여도 모자랄판인 나의 욕망은 거미줄에 휩싸여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그런데 다시 해외촬영을 떠난다. 필리핀의 늘어지는 섭외도 섭외지만 늘 그렇듯이 가봐야 알 수 있는 그림의 정체를 고스란히 부담으로 껴안고 있지만 정작 더 걱정은 다시 불어날 말과의 전쟁이다. 근데 재밌는건 정작 현장에서는 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게 또 신기한 일중 하나이다. 누구하나 완벽한 통역을 해주지는 못하고 그럴 형편도 못되지만 우리는 잇몸과 바디를 섞어가며 그들과 이야기하는데 그다지 큰 불편함을 못느끼고 있다.

만일 방송아르바이트로 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리. 꽉 짜여진 스케줄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가능한 스케줄,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요구되는 정확하고 짧은 인터뷰를 제시간에 따려면 현지에서의 모든 스케줄과 일정을 관리해줄 코디네이터가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다들 일류라고 자부하는 이들과 일을 해도 늘 걸리는게 소통의 문제이다. 그나라의 말을 잘 하는것과 의사를 잘 전달하는 건 근본적으로 다른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딱 거기까지만 잘하는....그래서 우리는 정작 말을 잘해도 소통을 하는데는 재주가 없다. 어쩌면 소통이 막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거 아닐까. 말을 너무 잘해서 말이다. 해야 될 말과 들어야 될 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한 사람들에게는 그 외에 존재하는 이야기는 틀린 것이 되버린다. 길게 돌아가 보면 결국 같은 말이고 같은 생각인 경유가 꽤 되지만, 비교적 교양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아쉽게도 시간이 없다. 그들에게 시간은 노동이고 돈이고 생산이고 미래기 때문에 답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안에 나와야 정답인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 사람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기준을 갖고있지 않다. 못알아 들으면 더 이야기 하면 되고 그래도 못알아 들으면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그들에게 남아도는 건 시간이고 노동은 시간만큼 돈이 많아지지도 않는 것들 뿐이니, 말이 안되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말이 안통해서 열받을 일도 없다. 그저 닥친 상황을 즐기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대화가 어딨을까.

‘한국 사람들은 에뽈이 싸다면서...’
‘에뽈?’
‘응 에뽈’
‘그거 많이 먹어서 피부가 다들 좋은거 같아.여기는 에뽈이 비싸거든’
‘야..에뽈이 뭐야?’
‘에뽈?...혹시 애플?
‘응...그래 에뽈’
‘아...애플.....’

우린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촬영을 한다. 아마 똑같은 대화를 유럽에 가서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그리고 한국에서는 또 얼마나 비웃으며 놀림감이 됐을지...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이 땅에서 소통을 부르짖지만 정작 그들은 소통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말 잘하는 입을 갖고 싶을 뿐이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본도 소통에 대한 상황은 막상막하다. 한국에서의 상황이 과다교육에 대한 부작용이라면 일본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민폐를 최고의 잘못으로 교육받은 탓인지 남에게 속을 드러내지 않아 역시 소통에 많은 장애를 안고 있다. 정확하게 해야 할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대단한 민폐를 서로에게 끼치게 되니 어설픈 일어로 혹은 어설픈 영어로 그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는 여간 어렵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많이 쌓여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역시 교육이 문제네...우자지간...게다가 말이라는 것이 오프라인을 벗어나면 그건 또 다른 세계가 된다. 그래서 온라인이 늘 뜨겁게 논쟁을 벌이는 공간이 되는 이유이기도 한데 읽고 해석을 하는 방식이 자기의 생각만큼에서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온라인에서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늘 꼼꼼하게 답글을 쓰고 또 반박하고 또 쓰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른다. 그래서 소통을 하고 싶은 사람은 정확하게 자신의 말을 제대로 쓸 줄 알고 전달 할 줄 알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그렇게 훈련이 되고 적응이 되는 사람들이 말이 안되게 소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읽을 수 있겠는가. 사회가 발전할 수록, 문화가 다양해져 갈수록, 다양한 소통의 방식이 생겨나고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걱정스러운건 그런방식에 익숙하면 할수록 오프라인에서나 가능한 그런 달콤 쌉싸름한 소통의 매력은 맛보기 힘들거라는 것.

소통은 외로움과 직결된다. 전세계의 주민들이 갈수록 외로워지고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내는 각종 프로그램과 힐링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제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정작 소통에 대한 타고난 능력은 갈수록 인간의 몸에서 퇴화되어 간다는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거.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3. 14. 16:49

사람의 관계라는게 참 묘하다. 관계에 집착하면 할수록 의무와 책임감 사이에 던져지는 자잘 한 고민들로 상처와 고민을 반복적으로 안게 되지만, 관계를 열어놓고 받아들이면 수많은 관계들이 다시 알을 까듯이 새로운 관계가 이어져 말그대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니 말이다.

일본에서의 촬영도 역시 그 관계의 힘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관계속에 묻어 두었더라면, 그렇게 우리에게 소개를 해주고 우리가 만날 수 있게 연결해준 그 사람들의 열린관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수많은 사람들.

모르는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주신 오오즈 선생님 부부를 알게된 것도 텐트에서 살고있는 이치무라씨을 소개해준 페민의 아카이시씨를 만난 것도, 그리고 파나소닉사를 대상으로 해고무효투쟁을 벌이는 사토씨를 일하는 여성의 네트워크 대표 미도리씨를 통해 알게 된것도 지금 시즈오카에서 촬영중인 재일교포 개호사 조순자씨를 알게된 것도 모두가 새롭게 만나고 새롭게 연결된 관계를 통해서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관계가 이제는 우리의 관계가 되었고 우리를 통해 또 누군가가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관계의 좋고 나쁨은 그 관계를 맺는이의 몫이니 이후야 어찌 소개해준 이의 소관이겠는가. 다만 소개해준 이의 마음에 보답하고 또 새롭게 만들어진 관계를 잘 잇기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 남을뿐.

그렇게 관계를 생각해보니 우리시대의 관계 맺기가 참 자본주의 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족관계든 친구관계든 물론 그보다 훨씬 관계를 확장시켜보면 알겠지만 참 돈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지 돈이 아니어도 그 방식 그대로 관계를 소유하려들고 내가 아는 관계를 나만이 알고 있으려하는걸 마치 대단한 관계인냥 스스로를 기만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관계를 소유하고 싶은 것일까? 왜 관계를 소유하면서 관계가 확장되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고 하는 것일까. 가끔 그렇게 답답한 관계들을 보면 할말이 없지 않지만 할 말을 다한다고 해서 풀리는 것도 아니고 보면 관계라는 건 역시 상호적인것보다는 다분이 내속에서 일방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내영화에 출연한 인연으로 두 번째 영화를 같이 하고 있는 경은을 만난 것도, 그렇게 먼나라 필리핀에서 어쩌다 내앞에 나타나 준 아람과의 인연도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어느날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도움을 기꺼이 주겠다고 말해준 영란까지 이들을 생각하면 늘 어메이징한 관계의 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를 더더욱 어메이징하게 만들어주는 또 한명의 친구가 있는데 영란이 돌아간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있는 혜진이다. 요즘 내주변에 혜진이 왜이리 많은지..ㅎㅎ 우자지간 그녀를 만나 이곳에서 또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녀에게 그랬다. 니가 나를 만나려고 십년동안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었구나.하하하 물론 그녀의 표정은 안봐도 알겠지만 황당무계하다는 표정.

이제 남은건, 그렇게 맺어준 훌륭한 관계까지는 좋았지만 카메라에 담겨진 내용도 좋아야 하는데 그것이 고민이라는거. 이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해결되기 힘든 나만의 몫이니 죽는 소리 해봤자 나만 골치아프겠지.^^ 게다가 지금은 눈까지 다쳤으니 일단 쉬는게 상책이다. 아침에 급하게 일어나다 말그대로 눈깔을 카세트에 뽀족하게 나온부분에 그대로 박아버렸다.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각막이 찢어지고 눈깔이 탱탱부었다. 병원에 가서 15만원깨지고(물론 이건 산재처리 해줘야해 흑) 눈은 하루종일 뜰수가 없어서 며칠간 촬영 종치게 생겼는데 경은이 자기가 해보겠다며 대신 촬영을 나갔다.

이런, 아람이는 도쿄에서 경은은 시즈오카에서 졸지에 카메라맨이 둘이나 생겼다. 물론 난중에 그러겠지. 경순이 시켰으니 그림이 안나와도 지들 책임 아니라고. 그렇게 발뺌하고 싶겠지만 사람이 어디 똥 눌때와 똑같은가. 엉터리로 찍어오기만 하면 걍 캭!!! 흐흐흐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