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3. 3. 11. 15:26

3.11이라는 날짜가 이제는 역사에 고유명사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의 3.11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를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세가지의 재앙중에 하나만 일어났어도 큰일인데

3.11은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천재임과 동시에 문명의 이기가 가져온

대재앙이었다.

하루아침에 재난영화속에나 있을법한 일들이 현실이 된

사람들에게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재앙은 현실이고 그 현실은

생각보다 깊고 넓으며 치명적이다.


지난달 레드마리아 상영차 일본을 방문했을때

영화 이야기를 뺀다면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가 후쿠시마 원전과 쓰나미고 붕괴된

동북부지역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주변에 암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토상의 말은

삼성반도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생각나게 했고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시즈오카의 원자력 발전소가

걱정된다던 조순자선생님의 말은 한국의 무수한 원자력 발전소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아직도 전국에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지진계의 움직임을 보여주던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센터 대표 미도리상의 암울한 표정은

열심히 일해도 제자리를 돌거나 더더욱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겹쳐졌고,

반핵운동과 함께 붕괴된 도시를 찾아가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시 밀려나 있는 여성들과 아이들을 생각하는 노숙인 이치무라의 행보를 통해

우리의 여성운동을 돌아보게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통역해 주었던 가토상은

신사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해주며 일본이 제국주의 길로 들어서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신을 어떻게 천황과 신사를 중심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묘하게도 다시, 일본의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이영채교수로 부터

들은 최근 일본을 들쑤시는 우익들의 반한기류와 독도문제로 이어졌다.


이명박이 독도를 방문해 깜짝쇼를 벌인후

준비했다는듯이 들끓는 독도문제는 일본의 우익과 한국의 보수적인 지사들의

전쟁터가 되었고 그 사이 종북을 이야기하는 한국의 반공우익들은

북한의 핵문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참 연결하면 연결할수록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

심지어는 동아시아에 대한 연구까지 이에 훈수를 두고있지만

정작 아이러니한건 그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연대에 대한 모색 그리고 문제의식의 공유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오늘이 3.11 대재앙이 일어난 2년 후의 3.11.

수많은 싸움의 현장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어떤 현실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찾아보면 여기저기 흩어져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터

그들의 이야기와 고민들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3. 4. 13:14

어쩌다 <잼다큐 강정>이후 두번째 총괄프로듀서를 맡게됐다.

작품은 김미례 감독의 신작<산다>.

작품 기획때부터 논의를 같이 하기는 했으나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도 많아 공식적인 참여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운명인지 결국 하게 됐다.

작품의 취지도 좋고 레드마리아에서 제기했던 노동의 이야기가

남성노동자들을 통해 그리고 정규직이라는 타이틀 속에 고민해 볼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한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리면서 서로가 이중의 적이 됐고

지금도 수많은 비정규직의 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불안한 상태에서

비정규직 철폐 혹은 정규직 쟁취가 대안인 것처럼 이야기 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인가?

그리고 정규직은 정말 안녕하신가 말이지.

영화<산다> 는 KT정규직 노동자들의 분투기임과 동시에

50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산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보여주는 영화다.


늘 노동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던 김미례 감독이

이번에도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됐다.

이럴때 우리는 팔자라는 말을 쓴다지 아마.

우자지간 재밌게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나름 빵빵한 제작팀이 꾸려졌다.

홍보와 기획을 함께 할 프로듀서가 두명 더있고

이미 실력있는 카메라 감독과 함께

레드마리아 조연출 아람이가 이작업의 조연출로 뛰고 있다.

현재는 미례와 아람이 둘다 일본 촬영 중이다.


이래저래 일년은 쉬겠다는 계획이 역시 망상이었음을 확인하면서

올해도 바쁘게 돌아갈거 같다.

이 작품 외에도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져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에 함게 하는건 그 바쁜 일정속에서도

기쁜 일임을 알기에 즐겁게 신나게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산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영화가 모든 이들에게 진정 산다는 것의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산다>화이팅!!!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3. 1. 19:28

일본 출국전 미리 이야기 한 것처럼 ACW2의 총회는 바로 레드마리아의 첫촬영이 있었던 곳이다.

미리 ACW2의 대표인 이토 미도리를 만나기 위해 전 날 출발한 나는 공항에서 그녀와 조우를 했다.

예전보다 헬쓱해지고 인상도 좀 부드러워진 듯한 미도리에게 '귀여줘졌다'고 말하니 웃는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반가운 포옹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미도리의 말에 의하면 쓰나미와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무엇이었든지 간에 삶에 있어서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건

참으로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말이었다.

그것이 돈을 버는 것이든 집을 사는 것이든 교육을 향한 열정이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욕망의 순위가 바뀌었다는 건 혁명이거나 재앙을 격은 후의 선택지이다.

쓰나미와 원전사고의 여파는 바로 일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심어 준 거였다.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2. 12. 12:07

ACW2는 일본의 대표적인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로 여성일반노동조합이다.

2009년 레드마리아 일본 촬영을 앞두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조직의 대표인 이토 미도리씨를 주인공중 한명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일본의 첫 촬영도 ACW2의 총회 장면이었다.

일이 풀리려고 했는지 그날 총회에는 역시 주인공 중 한명인 이치무라가 초대가 됐고

결국 그녀의 발언은 이 영화를 이끄는 중요한 줄기가 됐다.

영화를 찍으면서 느끼는 쾌감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인데 두마리의 토끼를

첫 촬영에서 건질 수 있었던 기쁨이 바로 그런 것.


그래서 의도치 않게 일본의 분량이 늘어났고

70일간의 일본 촬영중 그 첫날의 장면이 영화 전체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밌는건 이토 미도리를 며칠간을 쫓아다니다가 

후쿠시마에 사는 사토상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나는 미도리상을 버리고 사토상을 낙점했다는 야그.

하지만 누가뭐래도 이모든 성과에는 이토 미도리상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자지간 그런 연유로 이래저래 ACW2총회와의 인연은 나에게 아주 의미가 있는 만남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홈리스인 이치무라가 '일하는 여성들의 총회'에 참여해서 일하는 것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 한후

오랜시간 노동운동을 해온 일본의 선배노동자들의 쇼크를 먹은 표정과 발언은 영화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과연 한국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교차를 하면서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그시간이 떠오른다.

사실 그때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워낙 표정들이 생생해서

나는 그 표정만을 따라가며 촬영을 했고 알 수없는 팽팽한 기운속에 의미가 얼핏 전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의 팽팽한 토론 이후 4년.

그 총회에서 다시 레드마리아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영화를 초청했고

내가 거꾸로 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현재 일본은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이후 그 충격과 여파가 아직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천재지변의 대 격동을 겪으면서 일본사회에는 그동안 회자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고

노동운동 역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는 점에 공통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듯 했다.

미도리상의 전언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의미를 다시 재고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레드마리아를 통해 그이야기를 토론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반갑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역시 만만치 않게 보수적인 그들의 생각에

얼마나 진전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저 준비하는 사람들의 앞선 문제의식에 지지를 보낼뿐이고 

그들의 고민과 반응이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그 토론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궁금하지만

사실 가장 궁금한건 이 영화속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이다.

영화의 가편본을 보여주긴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그것도 일본에서 보는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들을 만날 생각에 나의 2월은 온통 마음이 이곳에 달려가고 있다.

결국 말도 안통하는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겠다고 구글 번역기로 열심히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서바이벌 영어로 열심히 설명을 하기도 했다.

모니카와는 전화를 걸면서 영어와 서투른 일본어 단어 몇개로 의사소통을 했고

이치무라는 영어를 하기에 메일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오랜만에 그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듯이 기쁘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올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그냥 그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들떠 있다.

2월16-17일까지 1박2일로 진행되는 총회의 상영회가 끝나면 일정이 더 바쁠거 같다.

시즈오카에 사시는 조순자선생님과 메부키의 사람들을 비롯해

영화에 도움을 주시거나 출연했다 짤린 많은 분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리고 가와사키로 가서 시티유니온의 무라야마상과 모니카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보고싶은 얼굴들을 만날 예정이다.


특히나 모니카는 나랑 동갑이기도 하고 영화를 찍고난후 남편 단테가 세상을 떠나서

서로 하고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아직도 영화속의 그집에서 살고있다고 하는데

그 집에서 일박을 하며 우린 어떤 이야기들을 나무게 될까.

너는 비자도 필요없잖아라고 말하던 그 고양이도 잘있는지...

우자지간 이렇게 들떠있는 나를 위해 내일은 경은이와 남대문에서 그들에게 선물할 것들을 장을 볼 예정이다.

특히 멋진 사진으로 영화에 기여를 한 경은이는 이번에도 그들을 위해

현장스틸을 선물로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쓰다남은 엔화를 가지고 있다는 영재를 찾아가

그 나머지 엔화를 강탈해 올 예정.

누구말대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더니 나에게 아직 뻔뻔함이 남아 참 다행이다 싶다.

쪽팔리는 민망함이 좀 있기는 해도 오래도록 지켜야 할 덕목임을 새삼 느낀다.ㅎ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2. 11. 4. 20:57

우리 사회에는 수없이 많은 노동이 있다.하지만 임금을 받고 하는 노동과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이 분리되고 감정을 파는 노동과 팔지 않아도 되는 노동이 있고 인격을 유지시키며 할 수 있는 노동과 그렇지 못한 노동 등 수많은 노동이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되기도 하고 혼재되기도 해서 매우 복합적으로 복잡한 구조다. 그런데 그중 자신의 노동으로 자부심을 느낄만큼 스스로 가치있게 생각하는 노동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이 그 가치를 임금에 둔다든지 자신이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있다는 다소 착각에 가까운 자부심으로 노동의 의미를 확대포장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2. 1. 21. 17:01

잼다큐 강정을 만든다고 한여름을 보내고 다시 배급을 하면서 겨울이 됐다.그리고 벌써 새해도 중순이다. 여름에 멈춰진 편집본을 사이사이 손보면서 작년 9월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106분짜리 편집본을 선 보인후 다시 최종편집을 하여 12월 서독제에서 98분짜리 완성본으로 상영을 할 수 있었다. 2007년 일년을 필리핀에서 보내며 기획하고 2008년부터 촬영을 시작한 이래 5년만의 결실이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쉽게 한줄로 거론하기 쉽지 않을만큼 다사다난했다. 그 다사다난함은 고스란히 제작비의 압박이 됐고 레드마리아는 독립영화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됐다. 하지만 그뿐이다. 작업이 길어졌던 그 수많은 일들은 쏙 빠지고 영화만 귀찮은 늦둥이가 되어버린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작년은 좀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안그런 영화가 어딨겠나. 이 척박한 독립영화의 거친 토양을 자양분 삼아 영화를 만든다는 모든 사람들의 비슷한 과정일 뿐. 그래도 다행인건 이들에겐 오기와 투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이 살아있다는 것이 다시 그길로 또 걸어가게 하는 힘인 것을. 나도 그렇게 아직 심장이 식지 않고 있기에 이렇게 최종본을 끝낼 수 있었겠지. 그래서 흐믓하다. 2년전 여성영화제를 앞두고 수술을 받을때는 소원이 그래서 레드마리아를 완성하는거였는데 막상 완성을 하고보니 10편은 더 만들어야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하하하

우자지간 그 끝을 잔소리 한마디 없이 기다려준 영재와 지금은 다들 곁에 없지만 함께 해준 스텝 경은,아람,영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늘 힘들때마다 이들이 있어 한 산 한 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며 사운드며 색보정이며 몇 번의 수정을 마다않고 작업해준 지은이,용수,재원에게도 너무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친구는 애니메이션을 해준 성애다. 물론 편집이 길어지는데 공을 세운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기다린만큼의 보람이 있어 아주 흐믓했다. 이렇게 작업을 같이 하고 진행을 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작비. 일본 촬영을 고민하다 꾸리게 된 제작위원회의 후원은 새롭게 시도해본 소중한 경험이었다.

보통 후원금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크게 부탁을 하고 받았기 때문이다. 5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기꺼이 내주신 제작위원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담스럽다면서도 직접 제작위원장을 맡아 여기저기 이름을 팔아주신 김은실선생님, 친구라는 죄로 월급쟁이 친구들이 100만원 200만원 투척해준 감동의 순간, 제작위원으로 친구로 수술 후에는 죽까지 끓여서 매달 화학치료가 끝날때마다 먹을것을 챙겨준 박혜경선생님, 그리고 병원갈때마다 덜덜거리는 프라이드를 씽씽몰며 나를 데리고 다녔던 미례, 집이 없어 미례집에서 신세질때 고모가 살던 방을 저렴하게 소개해준 세영이, 그리고 워낭소리의 덕을 왕창 은혜입게 해준 영재의 특별한 지워금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사실 레드마리아 제작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어떻게 그 기간 가장 힘든일과 가장 행복한 일들이 완벽하게 겹칠 수 있었는지. 그 행운이 함께 했기에 필리핀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한국을 다시 촬영하면서 레드마리아라는 영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거 같다. 만일 예전처럼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해야 했다면 아마 지금도 영화는 완성되기 힘들었을것이다. 그 많은 번역을 거쳐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으며 그 많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나. 족히 수백명의 사람들을 거치며 이렇게 레드마리아가 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긴 길을 관통했구나 싶다.

아마 예전 같으면 제작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작업으로 올인했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리게 된다. 그렇게 일년쉬자고 작정했지만 그 심심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거 같아 안해보던 일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배급이라도 재밌게 해보자고 맘먹고 있다. 사실 지난달만해도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몇 개의 영화거리를 내지를뻔 했는데 번번히 다음날 일어날때쯤 체력이 딸리는걸 확인하고는 단칼에 단념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여름쯤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알프스를 등반해보는게 작다면 작은 꿈인데 부디 실현이 되기를. 그곳에 가면 친구가 50에 진입한 기념파티를 해준다고해서 정말 땡빚을 내서라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올해는 연애운도 있단다. 아싸...^^ 혹시 프랑스에서 붕쥬르 하면서 부딪힐 어떤 놈 혹은 년? ㅎㅎ 우자지간 신나게 일년을 또 살아보지 뭐.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1. 6. 1. 16:59

마음에 내내 걸렸던 강정마을을 다녀왔다. 

봐야 안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절감하며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결국 오는길에 강정마을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김포에 도착할 때 쯤 내가 총대를 멜테니 니가 총연출을 맡고
옴니버스로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동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말하기전에 녀석도 나만큼 머리속에 많은 생각이 오갔으리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참여할 감독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대충 머리속에 있는 감독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그날 저녁에 우연히 영상자료원에서 만난 조영각에도 이야기를 했다.
불과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 소문이 났는지 많은 친구들이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나서 주니 갑자기 일이 급진전이다.
그렇게 일을 벌여 놨는데 머리한쪽에서는 계속 레드마리아를
한번 더 고칠 구상이 막 돌아가기 시작한다.

한번만 더 해보자고 한게 벌써 세번은 뒤집었는데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영재에게 가편본을 넘겼는데
가슴에 뭔가 언친듯 찝찝한게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를 내리 잔후 사무실에 나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림을 다 붙이고 나니 결국 쓸 그림들은 쓰게 되는구나 싶다.
구성을 바꿀 때마다 좋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다른 구성으로 넘어가면서 버려지고는 했는데 이제사 비로서
버려졌던 것들이 다 자기자리를 찾아 모인 형국이 됐다.
물론 내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

수정된 편집본에 따라 추가되는 이야기를 다시 번역을 맡겨야 하는데
응주에게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지만 결국 바쁘다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미리미리 말해주면 좋을 것을...'
'감독이란게 다 죽일것들이야 미안해..근데 부탁해 응주야.'
혼자서 바둥거리며 하자니 최근에 내가 괴롭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거 같다.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번역이며 모니터며 심지어 한글감수까지
게다가 이번에는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일본어 감수까지 부탁을 하고
또 수정본을 다시한번 봐달라는 부탁도 했다.

부탁을 하는 일이라는게 늘 성의있는 태도를 요하지만 지눈에 불이 나면
성의 있게 부탁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성의 있으려면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연락을 안하는게 맞으니까.
사실 그래서 두달전 강정마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던
양윤모선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나 바쁘고 그렇게 거기까지 신경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년이 넘게 성의를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힘껏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싸우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그렇게 성의있게 참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사회에서 성의있게 산다는게 무엇일까.
과연 가능은 한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 강정마을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마음먹은건 성의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성의있게 살기 힘든 사회에 사는 마당에
그저 성의없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즐거운 일을 나름'성의있게' 벌일 수 있는지를 한번 시도해 보자는 출발이다.
레드마리아도 역시 성의없는 사회에 던지는 작은 외침일 뿐이고.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1. 4. 20. 16:56

3차 가편을 끝내고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슬슬 몸도 피곤하고 모니터 내용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이정도면 하고싶은 이야기를 대충 알맞게 쏟아냈다 싶었다. 몇군데 거친부분을 다듬고 애니메이션이 완성되면 후반부의 시간과 리듬 조절만 해야지 했었다. 근데 끈적끈적하게 원인도 알 수 없게 그저 뭉실뭉실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드는건 뭔지. 그렇게 한달을 대충 몸을 추스르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머리에 그분이 오신 필을 받고 화면을 다시 대면하기 시작했는데 머리가 아득해진다.

그분이 오긴 왔는데 문제는 다 뒤집으라는 계시인 것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닌것이다. 큼직하게 몇구다리로 화면을 이리저리 옮겨보자니 공사도 보통 공사가 아니게 생겼다. 3월말에 끝내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이미 4월 중순이 넘어서 다시 한번 편집을 하겠다하니 영재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누나 제가 보기에는 3차가 최선이라 생각되고요 저도 완성본이 있어야 어떻게 할지 구상도 좀 하는데...어쩌구저쩌구...%^$#*&^(*!!!!??#####! 녀석의 말이 귀에 안들어온다.

이래저래 한참 힘들텐데 내 모냥새가 걱정됐는지 진행비로 쓰라고 카드까지 건네준 녀석을 생각하면 좀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늦어진거 한번만 더 시간을 주렴...하는 마음으로 편집기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붙어보자. 근데 초반부터 널려있는 클립들과 프리뷰를 보는 순간 기가 눌린다. 이런...워쩐디야. 그래 주인공도 많고 사건도 많긴 많구나. 하나를 손댈때마다 덩달아 달라지는 다음씬에 머리를 잡아뜯던 시간들이 새삼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제 정말 막판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지쳐갈 때쯤 다들 이제는 손을 놓고 싶어지는 그때처럼. 어쩌면 지금 나는 그 고비의 순간을 지치지 않고 잘 넘기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시작도 하기전에 미리 없었던 시간으로 조용히 손을 놓고 싶어 질까봐. 그래서 그러지말고 한번 더 그림과 신나게 놀아보라고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설사 그렇게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라도 이 순간을 놓치면 더 많은 아쉬움으로 가슴을 후려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때는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힘들다. 하긴 한달전 제주도에서 올라온 양윤모선배를 만나 어리광이나 한번 부려볼까 했다가 더 큰 보따리를 내미는 선배에게 어리광은 고사하고 강정마을 소식만 부지기로 머릿속에 쳐넣게 됐었다. 뭐야 나두 힘들거든. 근데 웬일이니.이제는 해군기지반대싸움으로 구속되어 단식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듣고 보니 이렇게 편집기를 붙들고 있는 마음이 더 무겁기만 하다. 다들 그렇게 살고있구나. 누구는 그렇게 자신을 던져 해군기지 반대싸움을 하고 누구는 영진위에 맞서 대책을 고심하고 누구는 오늘도 가족문제로 골머리를 썪이며 두통을 앓아가며 하루가 무사히 지나기를 바라고 누구는 다가올 피칭을 준비하며 자신의 새영화를 시작하기 위해 또 밤을 새며 골머리를 싸메고 있는...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편집기를 덮어야 할거 같다. 일단 내일 산에가서 맑은 공기 한번 마셔주고 머릿속에 차있는 잡다한 걱정들을 일단 내머리에서 접어두자. 그리고 정말 화끈하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오케이?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1. 2. 22. 16:56

대충 봄 냄새가 나의 무딘코에까지 전해지는 걸 보면 겨울이 얼추 지나간 거 같다. 한때는 겨울이 그렇게도 좋았는데 그래서 겨울이 다 간거 같은 애매한 2월이 참 싫었는데 언제부턴가 봄이오는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뭐 봄이 와도 여전히 나는 레드마리아와 함께 머리가 아프겠지만. 그래 아닌게 아니라 머리가 진짜 쑤신다.

레드마리아를 찍으면서 여유있게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져 점점 더 글과는 거리가 느껴지는터라 조금씩 다시 회복해 보고자 노력중이다. 그동안 글이라는 건 기획서와 지원서 그리고 섭외하는 내용과 현장에서의 구상등이 전부고 모든 건 머리에서 돌아갔다.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하며 글을 쓸 시간도 없어서 한동안은 머리로 글을 쓰는 습관까지 생겼다. 뭔가 쓰고 싶은 거리들이 생각나면 걸어가면서 차를 타면서 촬영장에 나가면서 머리로 글을썼다. 문장을 써나가면서 지우기도 하고 다시 쓰는 이과정이 끊임없이 반복이 됐는데 결국 그 머리로 썼던 글들을 컴퓨터에 앉아 옮겨야지 생각하고 나면 당근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그렇지. 안그래도 잘까먹는 내가 무슨 수로..우자지간 그런 과정을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글을 쓰는게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글을 쓰는 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편집을 할 때도 이거야 워낙 습관이기는 하지만 영상으로 구성을 하고 바로 편집을 하다보니 구성안이라는 것도 써보지를 못했다. 사람마다 습관이 있겠는데 나는 글로 구성을 하는게 익숙하지 않다. 그림 봐야 상상력이 잘 가동이 되는지라 편집구성안을 먼저 정리하고 편집을 하는게 잘 안된다. 그러다보니 가편을 할때 구성이 휙휙 변한다. 물론 생각이 변하면.

하지만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포기할 수 없는 생각. 애초에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그 시작이 된 생각.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던 그리고 그 출발이 여성의 몸이라는 것. 그런데 이게 쉽게 그림으로 연결이 잘 안됐다. 가편 모니터를 하니 누구는 몸과 노동을 분리하라고도 하고 누구는 주인공중 서너명은 과감히 포기하라고 하고 누구는 영화자체를 포기하라는 말도 했지 아마. 그래 그래서 쉽게 끝날 거 같던 이 편집은 길어지고 그만큼 머리도 복잡해 진다.

나의 생각이 틀렸던 걸까. 그게 무리한 시도였던 걸까. 온갖 생각들이 자신을 후벼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누구는 거기다 한술 더떠 이런 걱정까지 해준다. 영화가 완성되면 어디서 틀어줄지 걱정이라고. 왜 그게 걱정이야? 아니 신작도 아닌데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서요...야 뭔소리야 신작이지. 여성영화제 옥랑상 프리미어 상영해야 돼서 완성도 안된걸 무리해서 딱 한번 상영한게 고작인데 그리고 이제 영화를 완성해 보려고 아둥바둥 하고 있는데 격려는 못해줄 망정 그런 고민까지 떠안고 가야한단 말이야.

내심 가까운 독립영화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게 여간 속상하고 서운한게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날 하루종일 머리에서 뚜껑이 여러번 열렸다 닫혔다 했지만 그리고 영화제서 영화 안틀면 지들 손해지 내손핸가? 라고 큰소리 빵빵쳤지만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복잡한 개인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완성되고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영화가 한두편이 아니라는데 이런정도의 생각이야 가능한 이야기겠지. 하지만 속상하다. 의욕도 상실될 위기.

무슨 놈의 팔자인지 이상하게 레드마리아를 만드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엄살 좀 부릴 여유가 없이 뭔가 끊임없이 대처를 하고 또 대처를 하고 대처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거 같다. 뭐 그래서 또 더 애착이 가는 작업인지도 모르겠고.이번주는 3차 가편본 모니터 중이다. 1차 2차는 공개적인 모니터를 했는데 이번에는 개별 모니터를 받고 있다.근데 하나씩 들어오는 의견이 나쁘지 않다. 물론 아직 끝은 아니다. 좀 있으면 도착할 애니메이션 작가와 또 즐거운 설전을 벌여야 하고 군데군데 영상을 정리할 것들도 많다. 역시 영화로 돌아가니 다시 의욕이 불끈불끈.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1. 1. 8. 16:55

극영화를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의 차이에 대한 느낌들이 가끔 생각될때가 있는데 편집을 할때가 그중 하나인듯 하다. 예를 들어 극영화는 사전에 만들어진 대본이 영화전반을 많이 좌우한다면 다큐멘터리영화는 편집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많이들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미리 짜여진 구성과 대본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억지로 현장 연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원하는 그림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찍는 일은 늘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최초의 기획안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지점은 이 영화를 시작했던 시발점 한마디로 왜 나는 이 영화를 시작했는지...그리고 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근데 문제는 편집을 하면서 찍혀진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그 고민을 하는 과정이 너무 고되다는 거. 그래서 누구 말대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프레임을 붙여가고 인물을 분석하고 상황을 연결시키는 과정이 대본 한줄 한줄을 피말리 듯 써내려 가는 것처럼 쉽게 줄줄이 엮이지가 않는다는 거. 물론 줄줄이 잘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됐구나 싶어 막상 모니터를 해보면 그 속에 담긴 건 혼자만의 생각과 욕심과 자만의 결정체일 뿐이라는 걸 아주 빠른속도로 느끼게 된다. 그게 아주 아프고 잔인하고 따겁고 쓰리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 단계를 거치면 아프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빠른속도로 마음을 비우게 된다. 음..이게 아니란 말이지.

지금 내가 그렇단 이야기다. 오늘도 그렇게 1차가편 모니터를 끝내고 다시 어떻게 2차를 시작할까 고민을 하던 중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에 잠도 안오고 그렇다고 이 시간에 누구 불러 놀 사람도 없고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조차 땡기지도 않는다. 왜냐면 오늘 느낀 감정은 단지 모니터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이 영화를 시작할 때 했던 생각,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찍을때 부터 계속 시도하던 건데 숏컷이나 크래쉬 그리고 러브액츄얼리같은 극영화처럼 많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처럼 구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이번에도 좌절되는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처음엔 욕심을 내서 편집을 시도했지만 막판에 주인공들이 세명으로 축소됐고 나는 거기에 만족해야 했다.

그 쓰라림을 이번에는 정말 작정을 하고 제대로 시도하고 싶었다. 씨발..근데 그게 왜 이렇게 쉽지가 않냐고. 물론 준비된 배우가 있는것도 아니고 준비된 사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준비된 자금과 시간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도 안통하는 세나라의 준비되지 않은 그 많은 주인공들로 그런 욕심을 냈다니 결국 내가 허황된년이었던가 싶어 돌아버리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지금 굉장히 울고 싶다. 현장박치기로 그런 장면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미친년 아니야. 근데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 왜 그 미련을 못버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이해가 안간다는데도 무슨 미련이 남아 이렇게 심란하냐 이 말이거든.

그래서 화가나고 열받고 허탈하고 한심하고 기분졸라 작렬이다. 좋아..그렇다 말이지. 알았어 알았다고. 바꾸면 될거 아니야. 근데 바꿔야 되는거 알겠는데 그리고 그렇게 가기위해 모니터 한 거 맞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복잡한지 모르겠다. 다시 엎어서 편집을 할거고 결국에는 뭔가 종지부를 찍게 될 모양새가 언젠가는 나오겠지만 오늘 이 기분은 아마 오래 갈거 같다. 하고 싶은 방향대로 영화를 제대로 밀고나가지 못했던 그 한계에 대해서는. 오늘처럼 내가 미워보기는 처음인거 같다. 그래 그냥 속편하게 울자 맘껏.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아까 모니터를 끝내고 모두가 돌아간뒤 한방을 쓰는 수정이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인물을 쭉 옴니버스처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 그거말이지 처음에 생각을 안해본건 아닌데 너무 다른 인물들이 쭉 연결되면 주제를 빗나가게 될 공산이 커서 포기했다고 그리고 한 인물을 길게 10분에서 15분을 끌고 가면 지루하지 않을까. 내가 말이지 오래전 봤던 영화중에 꼭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쩝 근데 영화제목이 생각이 안난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는 인물들의 옴니버스같은 스토리가 욕심이 났지만 쇼킹패밀리를 만들때도 그렇게 의도했다가 결국 막판에 영화에 쓰지말아 달라던 몇몇의 주인공덕에 포기해야 했던 그 구성. 결국 쇼킹패밀리도 세명의 주인공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을 생각하며 그건아니야라고 했던...

글고보니 내가 삼이라는 숫자를 너무 좋아하는 결벽이 있긴하지만 이렇게 만들고 싶은 의도와 벗어나서 두 번씩이나 세명의 주인공으로 끝냈다면 삼은 좀 공포스럽기도 하다.아흐...우자지간 그래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내내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구구절절 말했지만 이제사 생각하니 그렇게 포기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가지를 섞으면 되잖아. 왜 안되겠어. 뭐 아니면 나중에 또 뒤집지 뭐...라고 지금 막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내가 울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촌스럽게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그래 안될게 뭐있어 한번 해보는거지. 그리고 또 절망은 해본 다음에 그때 가서 실컷 하자구. 웃긴다. 밤을 골딱새서 도달한 결론이 처음이라니. 우자지간 일단 밀어보자.^^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