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추가 촬영> 

경순의 말에 의하면 이번 촬영의 가장 큰 목표는 두 가지. 필리핀에서의 새로운 촬영인물 한 명과 출산 장면을 찍어 오는 것! 빠듯한 일정과 예산 탓에 결국 경순은 새로운 촬영인물을 찍기 위해 민다나오로 향했고 나는 이전 촬영지들을 순회하며 추가촬영을 하기로 했다.

새롭게 찍게 될 인물인 아델라이다는 민다나오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파인애플 농장인 돌Doll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경순이 민다나오에 가서 이 인물을 찍는 있는 동안 경은과 세영, 그리고 나는 올롱가포부터 찾아갔다. 오래간만에 찾아간 올롱가포에는 그동안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클롯도 멀비도 아나, 그리고 마리마도 그곳에 머물렀던 아이들은 이제 다들 나가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임신 중이었던 잔리는 아이를 낳았고 조날린은 임신을 했다. 임신과 출산의 연속이다. 잔리의 출산을 둘러싸고 부클로드 사람들이 많이들 고민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들 조날린의 임신이이야기다. (물론 우리가 계속 쫓아다니며 촬영한 탓도 있겠다). 전에 안타깝게도 잔리의 출산장면을 직접 찍지 못한 것 때문에 이번에 조날린의 경우가 두 번째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됐다. 이 전에는 상황을 계속 쫓아다녔다면 이번에는 하염없이 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동안 다시금 바레토의 클럽 근처와 트라이앵글을 배회하며 여러 번 스케치 촬영을 했다.

일주일 째 넘어가고 올롱가포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중간에 그레이스의 동네를 방문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미리 전화를 통해 들었지만 여전히 집이 안 지어 졌단다. 직접 보니 1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 막내 지엠까지 학교 보내고 나니 살림이 더 빠듯해졌다고 했다. 여전히 그레이스는 새 집 앞 잡초들을 열심히 뽑았다. 그런데 그 동안 임시 거처라고 말했던 집은 너무나도 근사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앞뒤로 지붕을 빼고 살림살이가 더욱 빼곡하게 차 있었다. 내가 그레이스보고 욕심이 너무 많다고, 집이 두 개나 된다고 말했더니 그레이스는 새 집을 지어 사는 게 자신이 가장 바라는 소원이라며 우수에 젖은 얼굴로 말을 한다. 1박 2일, 프롤로그, 에필로그, 일출 장명 등 스케치 촬영을 위주로 한 그레이스네서의 촬영도 마무리 지어 졌다.

마지막으로 마파니크에 계시는 말라야 로라스 할머니들을 방문했다. 할머니들을 보는 건 언제나 즐겁고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지만, 내가 떠난 뒤로 벌써 3명의 할머니들 돌아가셨다고 했다. 늘 그렇지만 리타 할머니가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말라야 로라스 할머니들과 아픈 할머니집을 방문하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스케치 촬영들을 하고 1박을 보냈다. 리타 할머니는 나한테 ‘내년에 또 언제 올거냐’고 물어보셨다. 이번에도 울컥하는 마음에 ‘조만간 또 한 번 올 수 있도록 할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왔다. 누구보다도 할머니와 헤어질 생각을 하면 다른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생각나서 더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다시 올롱가포. 여전히 애는 나오지 않고 출국 비행기 날짜는 다가오고. 이런 불안한 마음들이 조날린도 부클로드 사람들도 불안하게 만들었나 보다. 지금 조날린은 40대 남자와 동거를 하는데 딱히 직업도, 수입도 없고 술마시면 조날린을 힘들게 하고 첫 번째 부인과 헤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트라이앵글에서 조날린은 그 부인을 만나는 것을 무서워했다. 어쨌든 조날린도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랬으니 오죽했겠는가. 우리는 출국 날자가 다가오고 조날린도 (잘못 계산된) 출산일이 훨씬 지나자 걱정이 돼서 클리닉과 병원을 차례로 방문했다. 검사 결과 아이는 건강하고 남자아이란다. 딸을 바랐던 조날린도 아이가 건강하다는 말에 훨씬 좋은 표정을 짓는다. 9월 2일, 예정일도 새로 나왔다.

출국 전날 마닐라 시내 스케치 촬영을 하기 위해 전철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다시금 예전 그레이스네 동네인 톤도를 찾았다. 이날은 다행히도 날씨가 좋았다. 마지막까지 하루 일정을 채우며 필리핀 추가 촬영을 마쳤다.


<필리핀 추가 촬영, 그리고 그 이후.>

조날린 출산 예정일에 맞춰 일주일 전에 티켓을 예약했다. 두 번째 필리핀 추가촬영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레드마리아를 도와주고 있는 객원스텝 세영이 혼자 가기로 했다. 귀국하고 근 2주일 후이다. 가기 전에 알마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오늘 출국 당일 알마와 연락이 닿았다. 그런데 들리는 안 좋은 뉴스. 조날린이 우리가 떠나고 4일 뒤에 애를 낳았단다. (나는 또 한 번 쓰러졌다)

어쨌거나 오늘 세영은 필리핀으로 떠난다. 조날린도 조날린이지만 이전에 찍었던 잔리의 이야기를 다시금 계속해서 찍을 계획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옛날에 애 낳으면 어디서 키울건지 어떻게 키울건지 열심히 이야기했던 그 예전 논의의 연속이다. 가서 알게 된 새로운 소식이었는데 알마가 잔리의 아들 카를로를 새로 입양했다고 했다. 그러나 잔리는 여전히 트라이앵글로 나가 있고 그곳에서 잠을 자며 종종 부클로드에서 아이를 만나는 듯 보인다.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혹은 괜찮은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필리핀 추가촬영이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