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 김숙현·명소희·박홍준·정용택·홍형숙 독립영화 창작자 5인의 대담
독립영화, 시장 중심의 논리에서 이동할 때
김숙현 감독, 박홍준 감독, 명소희 감독, 홍형숙 감독, 정용택 감독(왼쪽부터).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80여명이 자발적으로 텔레그램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대화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화의 내용은 새 정부의 영화정책에 대한 제언이었다. 이에 앞서 감독, 평론가 등 작가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는 인디포럼도 올해 영화제 기간 중 ‘#독립영화 #창작자 #대나무숲’이라는 특별포럼을 열었다. 인디포럼은 홈페이지에 포럼 내용을 정리해 공개했고 후속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게시판을 신설했다. 영화계 각 단위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 본격화된 새 정부 영화산업 로드맵 구상에 의견을 제기하는 흐름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이런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독립영화가 뿌리째 흔들리다 못해 고사 상태에 처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이 전제됐다. 창작자 스스로 자신들의 현재 상황을 타개할 독립영화 진흥책을 생각해보려는 건설적인 행보이기도 하다. 향후 독립영화 감독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창작자의 의견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7월 12일 독립영화 감독들이 대담을 위해 다시 만났다. 참석자는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등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김숙현 감독, <24>를 연출하고 신진 여성감독으로서 동료 감독들과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이하 두영찍)라는 기획단을 만든 명소희 감독, <5월의 봄> 등을 연출한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 홍대 두리반 강제 철거 반대 투쟁을 담은 <파티51>의 정용택 감독,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독립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며 <변방에서 중심으로> <경계도시> 등을 연출한 홍형숙 감독이다.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독립영화 진흥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그들 각자가 경험한 영화 현장을 바탕으로 문제점과 대안 논의 등 전방위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독립영화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새 정부의 영화정책 방향에 목소리를 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먼저 짚어보면 좋겠다.
=박홍준_ 올해 인디포럼영화제를 준비하던 때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이라 영화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인디포럼은 작가 중심으로 운영하므로 플랫폼으로서 논의 테이블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제 기간에 특별포럼을 열었고 이후 패널로 참석한 <거미의 땅>(2012)의 김동령 감독님과 우리의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기존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독립영화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정부쪽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회원인 감독들은 논의 진행 사항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형태로 작업하는 신진 감독도 많은 상황이다. 창작자의 목소리를 좀더 분명히 낼 필요가 생겼다.
=정용택_ 지난 9년간 영화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료 감독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계속 주변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도 크지만 지금 재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기 힘들겠다는 우려가 커졌다. 나도 한독협 회원이지만 창작자들이 교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도 있다. 독립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정부, 영진위 등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정보 등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 지난 6월 21일에 열린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독립영화계의 간담회만 해도 그렇다.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는데 그 내용을 사전에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극장, 배급 관계자들은 있는데 내가 아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한분도 안 계시더라. 창작자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홍형숙_ 1998년 한독협이 생겼으니 내년이면 20주년이다. 협회 회원인 나는 그간 한독협이 세대교체가 되고, 미디액트나 인디스페이스 등 유관 단위들과 보조를 맞추며 논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조직력 있는 협회가 정부와 대화에 나서 협상력을 발휘해온 부분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한독협쪽도 간담회 전날 연락을 받았고 혹여 들러리 서는 게 아닐까 염려했지만 만나서 독립영화계의 상황을 정확히 전하고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와중에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모인 것이다. 그동안 창작자들이 한독협 내 다큐멘터리분과라는 한정된 형태로 만났다면 이젠 훨씬 많은 개별 창작자를 흡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는 한편으로 창작자들이 자신의 말로 문제의식을 전하려는 건강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명소희_ 신진 여성감독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텔레그램 단체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배 감독들과 신진 감독인 내가 느끼는 고민의 결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선배 감독 중 많은 분이 신진 감독의 멘토이다보니 더욱 그렇다. 정책 토론방이 생긴 뒤 신진 감독들은 ‘우리도 움직여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김숙현_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예술영화의 중간 지대에서 작업하는 이들의 미학적 고민은 상당하다. 독립영화가 계속 변화해오면서 미학적 가치도 분화됐다. 지금의 젊은 관객은 관심의 영역이 다양해 기존 독립영화의 미학적 준거로는 다 담아낼 수가 없다.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런 변화가 기존의 독립영화라는 기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화 가능할까. 사실상 지난 정부에서 실험영화는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원 분야가 극영화, 다큐멘터리로만 구분돼 있다. 다큐멘터리 부문에 지원해 ‘제 영화는 실험영화입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최근 몇년간 영화제 상영작을 장르별로 분석해봤다. 장르별 편수를 공지하는 곳은 서울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뿐이다. 실험영화가 5~6% 이상이다. 그에 합당한 제작지원이 따라야 한다. 올해 영진위 제작지원 개편안을 보면 4억원에서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독립영화는 사업자등록증까지 있어야 한다더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데도 반대한다. 정권에 따라 그런 카테고리는 계속 바뀔 테고 특히 실험영화는 시장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제든 어디로든 이동 가능하다. 독립영화라는 큰 틀 아래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박홍준 감독. 단편 <5월의 봄>(2010), <소년 마부>(2009), <러너스 하이>(2007) 등 연출. 인디포럼 의장.
홍형숙 감독. (2011), <경계도시2>(2009), <경계도시>(2002),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 등 연출.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6월 22일 영진위는 ‘영화발전기금 2018년도 기금 사업 설명 자료’를 발표했다. 2018년 총예산은 2017년 대비 5% 감액됐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영화에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가족영화 제작지원은 폐지했다.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 대상에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없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은 2017년 대비 동결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좀더 얘기해봤으면 한다.
박홍준_ 한번 물어보자. 저예산영화가 독립영화인가. 영진위는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비상업영화 제작지원 등으로 이름만 바꾸어왔다. 고영재 한독협 대표도 “독립영화 제작지원으로 바꾸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홍형숙_ 영진위야말로 적폐 청산의 대상인데 말이다. 시장 중심의 논리로 독립영화를 말하는 현재의 좌표에서 이동해야 한다. 시장 질서 안에 있는 영화는 정책 방향을 그 질서대로 잡으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시장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다. 특히 한국의 독립영화는 태동부터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이 분명했다. 저예산영화는 상업영화 내에서 비교적 예산이 적은 영화를 퉁쳐 말하는 게 아닌가. 끼워 넣기다.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영진위 집행 예산 총액의 20%는 반드시 독립영화 예산으로 확보해야 한다.
정용택_ <워낭소리>(2008) 이후 독립영화계에서 이른바 ‘대박 영화’를 향한 욕망이 생겨났다. 그걸 또 적절히 상품화해 CGV아트하우스 등이 독립영화를 배급하면서 독립영화라는 개념에 혼란이 생긴 측면이 있다. 그 이전 독립영화는 20~30개 상영관에서 관객 1만명 정도만 들어도 대박이라고 했다. P&A(Print & Advertisement)비용만 겨우 맞췄을 뿐 제작비조차 회수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하는 독립영화는 개봉 전부터 시사를 수십회 해 개봉일에 이미 상당한 관객수를 기록하곤 한다. 실험영화를 포함해 애초에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영화는 아예 배급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극장 개봉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가 전무하다.
김숙현_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비평이 살아나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감독에게는 적어도 인정 욕구라는 상징 자본이라도 있어야 한다. ‘네 영화는 가치 있다. 네 작품이 더 많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하는 평가 말이다. 최소한의 인정을 위한 창구, 담론화해줄 수 있는 비평계의 흐름이 필요하다. 작가를 위한 정책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독립영화 한편을 만들면 관심 갖고 말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 가치를 느끼고 다음 영화를 만들 방편을 강구할 힘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씨네21>에만 기대고 있다. (웃음) 비평가들도 ‘관객이 비평을 워낙 안 보니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영화장(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이 꼭 필요하다.
명소희_ 상당히 공감한다. 이와 함께 얘기하고 싶은 건 멘토링 시스템이다. 신진 감독에게 멘토링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멘토-멘티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선후배간 위계와 권력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멘토가 아닌 신진 감독의 영화를 새롭게 끊임없이 읽어내고 발견해주고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돼주는 게 비평이다.
박홍준_ <씨네21>에서 독립장편극영화 비평도 많이 해주면 좋겠다. 감독들은 정확한 비평을 원할 거다. 어떤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이 과연 독립영화인가 하는 문제제기도 해주면 좋겠고. 물론 정부가 독립영화 비평이나 비평 잡지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제 수상작 중심의 발굴이 아니라 영화를 많이 보는 비평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이 있어야 한다.
명소희 감독. 단편 <24>(2015) 연출,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 기획단.
정용택 감독. 단편 <통영생선구이블루스>(2016), <파티51>(2013), <뉴타운 컬쳐 파티>(2011), 단편 <2000년대 한국문학속 불안한 청춘들>(2009) 등 연출.
단계별로 최적화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명소희_ 신진 감독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정책이 상당히 부족하다. 신진 감독들은 멘토링, 피칭, 제작지원 등 상업적 시스템 안에서 제작지원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부터 경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립다큐멘터리라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규모가 큰 제작지원 정책을 갖춘 것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영진위 정도고 그외에는 규모가 작거나 멘토링 시스템에 기댄다. 신진 감독도 영화를 만드는 한명의 감독이다. 제작지원을 받을 때마다 매번 다른 멘토에게 다른 코멘트를 받는 게 과연 효과적일까. 멘토링 여부를 신진 감독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멘티가 멘토를 선택하는 매칭 방식이어야 한다. 멘토링의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다. 멘토-멘티가 서로 맞지 않거나 남성 멘토와 여성 멘티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경력 차에서 오는 부당함 등을 개별 감독이 풀어야 한다.
박홍준_ 독립영화는 창작권 보호가 기본이다. 그렇다면 멘토링은 왜 필요한 것인가. 제작지원을 위한 방편이라면 신진 감독을 기존 감독과 동등한 위치에서 봐줘야 한다. 지원하고 싶은 부분에서 신진일 뿐이다. 멘토-멘티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일이 벌어지면 그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해버린다. 공적 자금이 투자한 지원제도에서 멘토링은 없어져야 한다.
홍형숙_ 제작지원제도도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등 단계별로 최적화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컨대 제작 기획 단계에서도 사전 취재가 필요해 스탭을 꾸린다. 그런데 감독 본인과 스탭 인건비는 제작지원비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e나라도움(기획재정부가 국고보조금의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의 전 과정을 전자화해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이다.-편집자)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 피칭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이 있어야 가능한데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가 시장이 있나. 공공의 채널인 방송이 다큐멘터리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국내외 방송과 영화의 펀딩 플랫폼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특화해야 한다. 창작자들이 작품마다 어떤 형태의 피칭에 참여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전체 파이가 커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용택_ 방송국 외주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국에 납품하고 일정 제작비를 받으면 끝이다. 제작권은 방송국에 귀속된다. 유럽은 방영하고 다른 편집본으로 극장 개봉도 하는 선순환 구조다.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다.
명소희_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멘토링과 피칭이 결합돼 있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 4주간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 피칭 멘토링을 받았다. 엄연히 노동력을 들였는데도 창작자에겐 아무런 보수가 없더라. 사실 나는 아이를 지방의 친정에 맡기고 왔고,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오는 이도 있었다. 1500만원을 두고 다섯팀이 경쟁했는데 극장을 빼곡히 메운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극장 어딘가에 앉아 있을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피칭을 해야 했다. 어떤 경우는 피칭으로 발표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 나처럼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우는 작품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문제제기성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웃음) 중견 감독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피칭이 있는 제작지원에는 지원하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항상 고민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현장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과연 맞는지 이제는 얘기를 해봐야 할 때다.
박홍준_ 유통 관계자들이 오는 마켓에서야 피칭이 가능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관객 앞에서 피칭하는 건 아이템 유출이라는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 인터뷰 심사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주체측에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꽤 많다.
김숙현 감독. 단편 <너는, 어디에도 없을거야>(2016),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2014), <홀드 미>(2013) 등 연출.
창작자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도종환 장관은 취임 전인 지난해 11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 6월 3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 방안’ 간담회를 마련해 한국영화의 독과점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대기업 규제와 함께 또는 별개로 독립영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정용택_ 배급과 상영 분리는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독립영화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는 없다. CGV아트하우스의 독립영화 배급도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단관 예술관 등에서 <옥자>(2017)를 배급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산업적 욕망에 따라 각자의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하는 건 제작지원제도만이 아니다. 배급제도도 마찬가지다. 멀티플렉스마다 한 관 정도는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만든다든지 독립영화전용관, 예술영화전용관 등에서 한 작품의 최소 상영일수를 보장하는 등 보다 세심하고 현실적인 방안이 따라야 한다.
박홍준_ 콘텐츠가 없으면 이 모든 논의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창작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더욱 중요하다. 창작자의 복지를 얘기하는 이유도 제작지원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 생태계만이라도 보호된다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파이는 커져야겠지만 원칙이 없으면 또다시 나눠 먹기 식밖에는 안 된다. 도종환 장관도 “문체부 예산을 확정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할 수 있게 영화계가 힘을 모아달라”고 하는데 문화예술진흥기금 등이 기획재정부 통제하에 있는 것도 문제다. 국고 지원이 가능하려면 독립영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공론의 장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김숙현_ 정부 정책이 불필요하게 세분화되고 개념 혼용으로 복잡해져 창작자들이 좇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창작자가 많아진 만큼 각자의 욕망도, 지향하는 영화적 실천 방식도 다 달라졌다. 하나의 창구로 모이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파편화돼 작업하는 실험영화 창작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창구는 있어야 하지 않나.
홍형숙_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난 한 관객이 이렇게 묻더라. “의미 있는 작품 만들어줘 고맙다. 근데 무척 궁금하다. 이렇게 해서 먹고살 수는 있는 거냐.”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 지난해 서울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에 신청해 제작비를 받았다. 후배 감독들에게 많이 미안했고 가슴 아팠다. 경력이 쌓인 만큼 제작환경도 개선돼야 한다. 영화정책이 정권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만큼은 제발 벗어나길 바란다.
명소희_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 모든 게 당장은 내 일이 아닌 것 같아도 결국에는 내가 맞닥뜨려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다 같이 다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 건강한 제작 기반에서 우리의 얘기를 영화로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부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이 다음에 좀더 쉽게 얘기하고 나보다는 좀더 나은 제작환경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출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