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방송피디였던 그녀가 호주에 촬영갔다가 스위스남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만해도
지금의 그녀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처럼 결혼해서도 방송일이나 하면서 늘 연애같은 결혼생활을 주구장창 하거나
애가 하나쯤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육아문제로 이리저리 골머리를 썪이다가 그 일은 놀이방이나 유모한테 맡기고
본인은 좀 더 스위스에서의 활동에 전념하지 않을까 하는.
한마디로 집안일 따위(?)로 절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을거라는 뭐 그런종류의 시나리오가 늘 그녀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었는데 웬걸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그녀의 현재모습은 애 둘에 셋째를 임신한 전업주부9단의 모습이라는 거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이야기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말하는거.
리얼리?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은 늘 성공이나 돈으로 가름되는 사회다보니
가끔 행복해 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혹시 나만 행복한건 아닌지 아니면 웬지 나만 행복하면 안될꺼 같은 묘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우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드물고 설사 그런 사람이 보여도 함께 행복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수없어 하거나 막연히 부러운 마음을 속으로만 키우지는 않았을지.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하며 신비스럽게 간직하거나
대리만족만을 느끼고 사는건 아닌지.
심지어 건강한 사고를 지향하는 사람들조차 행복을 즐길 시간보다는 투쟁현장이나
매시간 랭킹순위에 오르는 사건사고에 대한 이슈들로 슬프거나 진지하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감정들이 일상이 되어버린곳.
그래서 행복을 누리는 일은 늘 그림의 떡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친구들은 모두 행복하다는 말을 종종 하곤한다.
처음엔 그런 한국에 살다와서인지 행복이라는 말이 새삼 어색하게 들리기도 했는데
그건 아마도 나의 피해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중에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그래도 자주 쓰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자지간 어쩌다 내주변에 스위스남자와 결혼한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건지.
그들 모두 비슷하게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으며 길들여지는 각종 스트레스의 집중포화속에
자신의 일을 찾아 매진하는 짐승같은 친구들이었을 그녀들이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에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뭔 일인 걸까.
아니 뭐 스위스 남자는 자지가 두 개 달린 것도 아닐진데 대체 왜 그녀들은 가사노동조차
그 지난한 양육조차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 답이라는 것이 특별한건 아닐꺼다.
단지 자신이 하고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있기에 가능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정도로
그들을 바라본다.
물론 스위스라고 살면서 문제가 왜 없을까.
부부싸움도 있고 양육의 고민도 있고 사회속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과 인간관계의 불편함이야 비슷한 인간사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일 혹은 삶에 대해 적어도 제도적이든 문화적이든 보상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본이 있다는 건
분명 다른 출발일것이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서는 이혼을 해도 여자가 받아챙길 것이 더 많아 남자가 손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같이 벌이를 하든 안하든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기에 이혼을 하게되도 재산은 똑같이 나누고 양육문제도
훨씬 여자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그런식의 기본의 차이가 사람을 참 다르게 살도록 한다는거.
한국처럼 여자들이 이것저것 눈치보다 시간 보내는 일이 적고
내가 즐거우니 남도 즐겁게 배려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것.
그립다 언제쯤 우리도 그럴 수 있을지.
사실 입장바꿔 생각하면 스위스남자와 결혼해 사는 이들도 이주여성이고 이들도 가부장사회에 편입한건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사는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성차별이나 불쾌감이 큰 사회와는
비교도 안되는 출발이다.
더구나 한국여성도 그럴진데 한국에 사는 이주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차별지수는
감히 이곳에서 말하는 행복지수에 비교하기는 어려울 터.
결국 행복의 조건도 인간성이라든지 개별인성이라든지 하는 따위와는 절대 상관없는
국가와 사회의 인격이 중요하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중첩되는 생각의 밑에는 이런시간이 가능하기까지의 스위스의 역사가 각별하긴 하고
그들도 역시 다른나라에 물건을 팔아먹고 얻은 이익의 혜택이라는데 씁쓸함이 남긴하지만.ㅎ
영미집에 스위스에서 사는 커플들을 초대했던 날.
제네바에 있는 나를 직접 기차표를 끊어 3시간 반을 임신한 몸으로 마중왔던 영미와 벼룩시장에서.
영미네 가족.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친 엄마덕에 나는 아이들과 노는 일이 얼마나 수월하고 즐거웠는지. 대신 아빠인 필립이 가끔 왕따를 당한다는..ㅎㅎ
스위스에 제일 늦게 정착하게 된 은진(오른쪽)과 10년차 영미 다음으로 오래 살고 있는 봉희(왼쪽)가 간만에 한국어로 신나게 수다를 떨다 갔다. 한국에서 날아온 친구때문에 영미와 봉희는 새로운 친구 은진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치 10년지기들 같다.^^
영미는 뒷뜰에 깨잎과 상추 옥수수를 기르고 있는데 나는 한국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깻잎김치를 이곳에서 맛봤다는.레시피를 적어온다는게 깜빡.
전주국제영화제 전 부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한국영화를 유럽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신 임안자선생님. 한동안 아프셔서 영화제 일을 죄다 정리하셨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뵈니 얼마나 반갑든지.이날 우리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냉면과 부침기는 일품. 게다가 남편인 피터선생님이 맘에 드는 손님에게만 특별히 준비하신다는 와인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redsnowm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