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1. 1. 8. 16:55

극영화를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의 차이에 대한 느낌들이 가끔 생각될때가 있는데 편집을 할때가 그중 하나인듯 하다. 예를 들어 극영화는 사전에 만들어진 대본이 영화전반을 많이 좌우한다면 다큐멘터리영화는 편집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많이들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미리 짜여진 구성과 대본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억지로 현장 연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원하는 그림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찍는 일은 늘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최초의 기획안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지점은 이 영화를 시작했던 시발점 한마디로 왜 나는 이 영화를 시작했는지...그리고 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근데 문제는 편집을 하면서 찍혀진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그 고민을 하는 과정이 너무 고되다는 거. 그래서 누구 말대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프레임을 붙여가고 인물을 분석하고 상황을 연결시키는 과정이 대본 한줄 한줄을 피말리 듯 써내려 가는 것처럼 쉽게 줄줄이 엮이지가 않는다는 거. 물론 줄줄이 잘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됐구나 싶어 막상 모니터를 해보면 그 속에 담긴 건 혼자만의 생각과 욕심과 자만의 결정체일 뿐이라는 걸 아주 빠른속도로 느끼게 된다. 그게 아주 아프고 잔인하고 따겁고 쓰리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 단계를 거치면 아프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빠른속도로 마음을 비우게 된다. 음..이게 아니란 말이지.

지금 내가 그렇단 이야기다. 오늘도 그렇게 1차가편 모니터를 끝내고 다시 어떻게 2차를 시작할까 고민을 하던 중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에 잠도 안오고 그렇다고 이 시간에 누구 불러 놀 사람도 없고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조차 땡기지도 않는다. 왜냐면 오늘 느낀 감정은 단지 모니터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이 영화를 시작할 때 했던 생각,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찍을때 부터 계속 시도하던 건데 숏컷이나 크래쉬 그리고 러브액츄얼리같은 극영화처럼 많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처럼 구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이번에도 좌절되는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처음엔 욕심을 내서 편집을 시도했지만 막판에 주인공들이 세명으로 축소됐고 나는 거기에 만족해야 했다.

그 쓰라림을 이번에는 정말 작정을 하고 제대로 시도하고 싶었다. 씨발..근데 그게 왜 이렇게 쉽지가 않냐고. 물론 준비된 배우가 있는것도 아니고 준비된 사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준비된 자금과 시간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도 안통하는 세나라의 준비되지 않은 그 많은 주인공들로 그런 욕심을 냈다니 결국 내가 허황된년이었던가 싶어 돌아버리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지금 굉장히 울고 싶다. 현장박치기로 그런 장면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미친년 아니야. 근데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 왜 그 미련을 못버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이해가 안간다는데도 무슨 미련이 남아 이렇게 심란하냐 이 말이거든.

그래서 화가나고 열받고 허탈하고 한심하고 기분졸라 작렬이다. 좋아..그렇다 말이지. 알았어 알았다고. 바꾸면 될거 아니야. 근데 바꿔야 되는거 알겠는데 그리고 그렇게 가기위해 모니터 한 거 맞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복잡한지 모르겠다. 다시 엎어서 편집을 할거고 결국에는 뭔가 종지부를 찍게 될 모양새가 언젠가는 나오겠지만 오늘 이 기분은 아마 오래 갈거 같다. 하고 싶은 방향대로 영화를 제대로 밀고나가지 못했던 그 한계에 대해서는. 오늘처럼 내가 미워보기는 처음인거 같다. 그래 그냥 속편하게 울자 맘껏.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아까 모니터를 끝내고 모두가 돌아간뒤 한방을 쓰는 수정이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인물을 쭉 옴니버스처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 그거말이지 처음에 생각을 안해본건 아닌데 너무 다른 인물들이 쭉 연결되면 주제를 빗나가게 될 공산이 커서 포기했다고 그리고 한 인물을 길게 10분에서 15분을 끌고 가면 지루하지 않을까. 내가 말이지 오래전 봤던 영화중에 꼭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쩝 근데 영화제목이 생각이 안난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는 인물들의 옴니버스같은 스토리가 욕심이 났지만 쇼킹패밀리를 만들때도 그렇게 의도했다가 결국 막판에 영화에 쓰지말아 달라던 몇몇의 주인공덕에 포기해야 했던 그 구성. 결국 쇼킹패밀리도 세명의 주인공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을 생각하며 그건아니야라고 했던...

글고보니 내가 삼이라는 숫자를 너무 좋아하는 결벽이 있긴하지만 이렇게 만들고 싶은 의도와 벗어나서 두 번씩이나 세명의 주인공으로 끝냈다면 삼은 좀 공포스럽기도 하다.아흐...우자지간 그래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내내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구구절절 말했지만 이제사 생각하니 그렇게 포기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가지를 섞으면 되잖아. 왜 안되겠어. 뭐 아니면 나중에 또 뒤집지 뭐...라고 지금 막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내가 울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촌스럽게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그래 안될게 뭐있어 한번 해보는거지. 그리고 또 절망은 해본 다음에 그때 가서 실컷 하자구. 웃긴다. 밤을 골딱새서 도달한 결론이 처음이라니. 우자지간 일단 밀어보자.^^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12. 26. 16:53

다시 편집을 시작한지 벌써 한달반이 지나간다. 지난 일년간 어떤일이 있었는지도 잊을만큼 작년 이맘때랑 거의 똑같은 분위기로 편집에 빠져 살고 있다. 마치 중간이 사라져버린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편집할때는 단계가 있다. 한참 편집구성을 하고 그림들을 붙여갈때는 종종 다른 영화로 기분전환을 하는데 편집이 점점 촘촘해지기 시작하면 다른 영화들이 나를 매혹시키지 못한다. 그때부터는 내영화가 더 재밌으니까..ㅎㅎ

우자지간 그런 기분으로 그림들과 놀면서 이번달까지 1차 가편을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로 임하면서 음악감독인 지은에게 전화를 했다. 올해초 있었던 여성영화제 상영본으로 이미 나의 까탈스런 요구에 한번 홍역을 치른터라 다시 새로운 버전으로 음악에 대한 작업을 요구하니 그녀는 미리부터 엄살이다. 근데 시간은 대충 몇분정도 나올거 같아? 응..대충 두시간이 조금 넘을거 같은데...헉...있잖아...시간을 좀 줄이면 안될까...아니 뭐 나야 레드마리아가 잘 나오기만을 바라지만 웬지 요즘 관객들이 한시간반이 넘어가면 힘들어 하더라고..

마지막 수화기를 놓을때까지 그녀는 내심 그 복잡한 이야기를 다시 볼 생각에 심적부담이 상당했는지 영 목소리의 톤이 무겁다. 전화를 걸기전 그 신나던 내 마음도 조금 가라앉는다. 그래..내맘이 다 똑같은건 아닐테지. 관객들이 보고싶은 영화랑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랑 아구가 늘 맞는건 아닐테니까. 그렇게 작년 이맘때도 턱도 없이 모자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성영화제에 맞춰보겠다고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러닝타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여기저기 잘라냈던 기억이 새롭다. 근데 볼만한 영화의 선택기준이 과연 러닝타임에 문제일까.

길게 많은 이야기를 끌고가려면 이야기에 집중할 모티브가 명확해야 한다. 시간을 느끼지 못할만큼 집중하며 불 수 있는 이야기의 연결. 이번편집의 방향을 잡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거였다. 여성의 몸과 노동을 이야기 하기 위해 그 많은 주인공들의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해서 하나의 줄기로 만들어 갈 것인지. 찍었던 테잎들을 구석구석 찾다보면 잊고 있었던 보석들이 하나씩 발견되며 이런 나의 고민들이 하나씩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욕심을 버리면서 시작된다.

아무리 좋은 장면도 주변을 까먹으면 자체발광이 의미가 없다는 것. 그렇게 편집을 하다보니 일년전 무엇을 놓쳤고 무엇에 쫗겼으며 무엇을 포기하지 못해 안달이었는지가 하나씩 생각나며 웃음이 난다. 마치 인생을 먼저산 어른들의 10년전에 들려주던 그 이야기가 바로 이런 뜻이었구나를 뒤늦게 알게되고 오래전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행동이 이런거였구나 라는걸 한참 시간이 지난후에야 느끼게 되는 그런것처럼. 제아무리 빠른 메모리를 장착해 온갖 정보를 순식간에 파악해도 알고 깨닫고 생각하게 되는 우리의 두뇌회로라는건 얼마나 느리고 갑갑하게 움직이는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인지라 안부를 묻고 살기도 힘들어진 요즘 많은 사람들이 느리게 살자고 하지만 우리 마음의 반은 빠른 메모리에 적응이 돼 기다리는 것도 진의를 아는 것도 빠르게 전달이 안되면 오해와 불신과 실망과 상처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조급함에서 조금은 비껴살고 치열하지만 느리게 확인하고 가진건 없지만 관계가 주는 행복함이 무엇인지를 생활속에 실천하며 사는 거 같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 비로서 알게 됐는지도.

편집을 하면서 이런저런 행복한 고민들을 하게 해준 지난 일년이 고맙다. 그런 시간이 있어 느리게 이제사 편집을 하지만 좀 더 다른 시선으로 영화와 다시 만나 고민들을 더 확장하고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행복한 시간들이 언젠가는 끝나고 그 행복한 고민들이 관객과 궁합이 맞을지 안맞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분명 이 영화로 나는 많은 이들과 또 다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왜냐면 우리가 해야만 하고 하게 될 이야기라고 믿고 있으니까.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0. 12. 24. 13:41

 

 



치우는 사람만큼 찍는 사람도 많았던 이날


 


 


 


 




출처 - 기륭전자분회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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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0. 12. 21. 12:38




 


























비정규직 장기 투쟁 사업장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는 6년간의 투쟁끝에 승리했다.
기륭전자 구사옥 앞에서 농성장으로 사용한 컨테이너를 오늘 철수하는 날이다.
6년의 눈물과 애환과 우정을 함께 한 그들의 방.
컨테이너는 앞으로 예술인연대에서 이동식 갤러리로 사용될 예정이다.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가산동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현장이
바로 기륭전자 동지들이 1년 6개월 후에 복직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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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10. 1. 16:52

갈수록인가 아니면 늘 그랬었나. 

생각대로 되지 않고 몸과 머리는 늘 따로 놀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이
늘 아구가 안맞는 생활이 사람을 갑갑하게 만드는게.
하긴 나만 그런건 아닌듯 싶다. 며칠전 니카라과이에 촬영하러 간 미례가
갑자기 메일로 동영상을 보냈다.낯선도시 마나과에서의 첫째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이 카메라와 카드 그리고 미국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한
전자여권이 든 지갑을 통째로 도난을 당했고 이틀간을 꼬박 범인을 잡느라
준비되지 않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직접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범인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 식당에 CCTV가 설치되어 그 시간에 찍힌 영상이 남아있었지만
경찰에선 나몰라라 하니 결국 미례가 직접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범인의 사진을
캡처해 달라고 영상을 보낸것이다. 보내준 식당의 CCTV를 통해
밥먹는 미례의 옆에서 슬쩍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범인의 모습이 보인다.
범인들의 모습을 캡쳐받아 보내주고 나니
여비가 없어서 엄마의 기일에 가지 못한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여비를 좀 보내줄까 했더니 안가기로 했단다.
갑자기 CCTV에 잡힌 범인들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머릿속에 엉뚱한 시나리오가 지나간다.
만일 범인이 친구이고 친구는 지금 돈이 필요하고 잡히지 않게 CCTV에서
자기를 빼달라고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이런게 영화라면 정말 구린 B급영화겠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때
상황은 단순하지가 않다.
갈수록 현실은 영화보다 더 쪼잔하고 비굴하고 현실감이 없다.
정말 이게 현실이라니 하는 말이 끝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불과 5개월전만해도 내가 해야 할 일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갈수록 엄하게 꼬이는 현실이 현실감이 없다.

한달만 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다시 그놈의 치료만 끝나면 될 줄 알았는데
시도때도 없이 피곤한 몸은 이제 내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을 한듯 하다.
담당의사는 다들 그렇다고 그런 몸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별로 위로가 안된다.
할 일은 여전히 해야 할 일로 남아있고 시간이 갈수록 해결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쉰다는게 오히려 짐이되고있다.
내가 너무 현실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걸까. 그래도 된다고 말이다.
결국 몇 달을 더 미루기로 했던 편집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몇 달전 프로젝트를 열면서 느꼈던 긴장감이 이번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저것 신경쓸게 너무 많아 머릿속이 미리부터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이사이 돈도 벌어야 하고 체력과 컨디션 조절도 잘해야 하고
미뤄두었던 편집구성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한다.
편집을 하자면 번역도 다시 해야하고 안쓴 그림들도 다시 프리뷰를 해야 하고
사진부터 음악부터 애니메이션까지 다시 사람들과 만나 토론을 하고
부탁을 하고 확인작업을 위해 필리핀과 일본에도 다시 연락을 해야 한다.
국내작업이라면 혼자서 이리저리 끌어보겠는데
어쩌다 이렇게 큰산을 파기 시작했는지...

그래도 다행인건 이런 과정을 이해해주고 함께 해준 영재와 아람,경은,영란이 있어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일이 많다. 영재는 이미 할 일이 너무 많고
영란과 경은은 학교를 다니고 아람도 내년 복학을 위해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그런 아람에게 기륭을 다시 찍어야겠다고 촬영까지 맡겼다.
감독이란게 정말 끝까지 이기적인 동물이다.
당분간 더 이기적이 되고 더 비굴해지고 더 강해져야 하는데
몸을 사리며 이렇게 일을 해야되나 생각하니 꼴이 좀 우스워진다.
하긴 우스운게 한두가진가. 교육과 관련된 일은 내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돈이 없어도 노가다를 할망정 그것과 관련된 일은 늘 고사를 했는데
지금은 돈벌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 일밖에 없다.
역시 꼴이 우습다.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조금 어색하고 힘들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오바를 하곤 했는데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을듯 싶다.
이럴때는 자신을 합리화 하는게 최선이다.
이렇게 생각지 않던 일이 생긴건 좀 쉬게 하려고 그런걸꺼야.
그리고 좀 더 다른 고민으로 레드마리아를 만들고 이젠 틈틈히 공부도 좀 해 보라고
이런 일로 기회를 주는 걸 꺼야.
이렇게 저렇게 한참을 씨부렁 거리니 틀린말 하나도 없군. 근데 웬일이니
틀어놓은 시디에서 나오는 가사가 죽인다

“.....미치듯이 헛소리 개소리 하고 자빠지지.....”

하하하 그러게...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5. 17. 16:50

여성영화제가 끝난 후 처음으로 와보는 사무실이다.

곳곳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일단 청소한번 해주고 걸레질도 살짝..

사무실 주인인 꿈틀 대표 재원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 이제 편집하려고...”
“편집이요?”
“응 끝을 내야지”
“???”

영화제 상영때문에 막판에 된통 고생을 한 녀석은 이제 슬슬
사무실도 비워주겠지 했겠지만 느닷없는 통고에 어리가 벙벙 한듯 했다.

“도와주라...그때 편집 안 끝난거라고 했잖아^^”

일단 녀석의 반응결과를 돌아보지 않은채 나는 작업실로 돌아와 편집기를 켠다.

그래 이놈 만져본지도 오래됐구나.
프로젝트가 어떤게 마지막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이것저것 뒤져보다 몇번 엉뚱한거 열어보고는 틈틈히 이스탄불의
선화가 부탁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그래 일단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제는 닦달 할 영화제도 없고 추궁할 사람도 관심도 조용해졌으니
느긋하게 아주 천천히 시작해보자.
어디서 중단했고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편집기 앞에 앉으면 긴장감이 돌면서 웬지 기분이 좋다.
머리와 생각과 기억과 현실 그리고 만들어질 이야기들이
오묘하게 조합이 되는 그 순간이 말이다.

아니야 그래도 마무리 시점은 정해야지. 그치 경순?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0. 4. 18. 16:47

영화를 기획할 당시의 고민들을 다시 들추어 보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여전하기도 하다.

늘 만들때의 고민들은 만들면서 더 구체화되고 심화되고 복잡해 진다.
그리고 그 고민들이 명료회될때쯤 영화는 완성된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몇몇 고민들은 영화를 만들는 과정속에 심화되고
몇몇 고민들은 과정속에 축소되기도 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시작을 더듬어 보는 일도 재밌는듯 하다


제1장 소통에 대한 탐구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해도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
30년을 같이 산 남편과 대화를 해도 그렇고
같은 여자인 엄마나 친구와 이야기를 해도 그럴 때가 있다.
한 마디로 말만 같을 뿐이지 서로를 지탱해주는 머릿속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말 이라는 게 참 귀찮아진다.

하지만 통하는 사람끼리는 말이 크게 필요가 없다.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의 기술 보다는
존재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포용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와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어설픈 영어와 몸짓으로 그들과 내가 이해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우린 말을 너무 소비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이라는 것이 너무 지식으로 가다보니 정작 소통을 위한 곳에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소통이 안 되는 것인지 무엇이 소통을 막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왜 말을 배우고 대체 그 말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제2장 경험의 재구성

경험은 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험은 인간에게 동질성을 부여하고 공감대도 부여하고
때론 계급성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조차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에 의해 종속되어 있다는 것.
가끔 그 지위로 인해 서로의 경험이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나 청소부의 아내나 그것은 가부장질서 속의 지위일 뿐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다른 환경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역사성이 있다.
출생하면서부터 몸에서 시작된 그 경험은 딸이라고 불리는 순간
순결, 출산, 가사노동, 빈곤의 악순환,성폭력과 성매매로 이어지는
동일한 경험의 역사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와 자본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역할은 늘 통제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의 세 나라,일본과 한국 필리핀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다.
일본이 군국주의 기치아래 식민지 여성의 몸을 강간하고 유린했듯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여성의 역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자립을 원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분배방식에는 가부장제가 필요하고
값싼 가사노동과 임노동을 대신할 여성의 보수적인 성역할은
쉽게 대체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몸-차별의 시작

태어날 때 부터 그랬고
교육 받으면서도 그랬고
뒤를 돌아보아도 그렇듯
돌이킬 수 없게 다르게 만들어진 여성의 몸

그래서 어렵게 자랐건 귀하게 자랐건 딸들에게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
약한게 미덕이고
보호받는건 당연하고
강하면 결함이 되는

그 미덕과 결함이 자본과 결탁을 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 진다.
이뻐야 하고 잘 빠져야 하고 잘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성의 몸과 함께 번창하는 산업은 얼마나 많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겐 몸이 수단이고 경쟁력이다.

그 수단과 경쟁력에서 뒤처진 수많은 몸들의 상처.
이제 그 현장을 제대로 돌아볼 때가 됐다.

2. 출산과 낙태-죄의식

여성은 출산의 능력을 타고났다.
그것이 여성의 몸이다.

하지만 여성이 출산이나 낙태를 원할 때는
사회의 윤리와 국가의 정책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낙태문제는 늘 공공의 적으로 기사거리가 되거나
파렴치한 살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정작 문제는
여성의 몸과 태어난 아기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여성의 몸은 가난과 맞물리면 더욱 치명적이 된다.
똑같이 낙태가 불법이지만 자본주의 마인드가 강한
의사들 덕분에 한국이나 일본은 낙태천국이 됐고
보수적인데다 가난한 카톨릭 국가 필리핀에서는
낙태의 기회조차 박탈돼 모두가 쉬쉬하며 불법의료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건
세나라 모두 자신의 낙태 경험을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다들 죄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죄인의식을 더 조장하고 관리하려든다.
출산과 낙태의 결정권은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다.

3.일부일처-함정

여성이 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모든 경계가
성폭력에 대한 위험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여성의 성은 늘 보호와 통제아래 갇혀있다.
그리고 그 보호는 한 여성이 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시작되고
남자들의 욕망은 성노동자들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래서 순결과 성폭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너무나 성스럽게 이야기 돼서 너무나 하찮게 추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산업화.
과연 우리는 결혼과 성매매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가끔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정치적인 이슈는
내 누이와 내 어머니에 대한 순결이라는 가치만을 포장해
왜 그런 논리가 가능했던가는 종종 놓치고 간다.
위안부가 필요했던 군국주의 논리나
여전히 남자들에게 성노동자들이 필요악이라 여겨지는 논리는
가부장과 자본주의가 만나 만들어낸 하나의 일란성 쌍둥이인데 말이다.

이시대 여성들은 모두가 성노동자다.

4. 밥-혹은 노동

밥은 남녀역할 분담의 본질적인 역사를 안고 있다.
아무리 활동적인 여성이라 해도 육아와 살림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뿌리깊은 사회의 미덕이 되어 여성들을 더더욱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구조적인 성역할의 집착은
여성을 수입해서까지 그 역할을 공고히 지키려 한다.

그래서 밥은 노동이고 저임금이고 빈곤이게 하는
여성들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내놓는 당근도 있다.
주부를 겨냥한 상품으로 가정용품과 교육시장과 육아용품의
최고의 소비자로서 권한을 누리게 하는것.
우리는 그 배반된 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제3장 독립-새로운 경험 만들기
                                                                              
독립을 꿈꾸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독립이라고 말하는데도 이유가 있다.
혼자서 그냥 살아가는 걸 우리는 독립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독립은 새롭게 역사를 쓰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독립된 우리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독립과 새로운 역사쓰기에 걸 맞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그 최전선에 여성이 있기 때문이고
여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놓은 황당한 시스템들이 어떻게 바뀌고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망가진 세상이 어떻게 복원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시작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금이 올라가도 채워지지 않는 빈곤함의 악순환을 떨치고
작지만 돈이 주는 행복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몸이 주는 억압을 벗어나 자유롭고 신나게
자신의 진정한 성을 즐기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
그 세계가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0. 3. 22. 12:32



 

 



여성영화제 첫상영이 끝난 후 꼭 꽃놀이를 가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우리 조연출 아람과 미리 꽃놀이

일본 요요기 공원에는 이미 봄꽃이 피여 있었고.
이치무라상의 야외식탁위 이 나간 찻잔에도 봄이 와 있었다.
찻잔에 담겨 있는 꽃줄기 입에 물고 칠날레 팔날레~
우리 카페 첫 뽀샤시 컷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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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0. 3. 4. 12:31










작년 여름 정읍, 우리 주인공 제나린네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난다

얼마전 일테라짜리 하드 포맷 잘못해서 날려버리고
백업해둔 사진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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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0. 3. 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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