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졸린눈을 비비며 잠을 깨기위해 메일을 열고 내용을 읽어내려 가다가 잠이 확 깼다.여행 날짜도 있고 해서 사실 다른이를 추천하려고 했었는데 메일을 읽고난후 내가 오히려 이들을 만나고 싶어졌지 뭔가.아니 대체 왜 이런 메일을 주는 애인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건지...쩝...메세지와 짧은 sns의 융단폭격앞에 가끔 편지쓰는 법조차 잊어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참 좋았다. 어쩌면 그런 그리움 때문에 트윗이나 페북보다 지금 블러그가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우자지간 몇년만에 받아보는 참 아름다운 편지라 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게재한다.물론 나는 목욕재개하고 달려가겠노라 답장을 했다.ㅎㅎ
감독님, 뵙고 싶습니다!
에레혼(Erehwon), 길담서원 청년 인문학 공부모임
길담서원은 통인동에 위치한 인문학 책방입니다. 길담서원 안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공부모임 둥지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길담서원에 푸른 에너지를 채워주고 있는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 교실’입니다. 제도 교육 속에서 숨 쉴 공간조차 없는 청소년들에게 주체적인 생각과 감수성을 갖고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길, 일, 돈, 몸, 밥, 집, 품, 힘, 눈처럼 한글자로 된 주제로 강의를 열어오고 있습니다.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 교실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어느새 청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목말라 하는 자신을 느꼈고 모여서 그 무엇의 정체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정보는 홍수처럼 범람하는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하는 이것이 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들의 결론은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에 주려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의 성장기를 들으면서 우리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레혼’(이것은 NOWHERE를 거꾸로 읽은 사뮤얼 버틀러의 소설 EREHWON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라는 모임을 함께 꾸리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좋은 선생님들을 모시고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고민을 나누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마당’을 펼쳐보려 합니다.
"선생님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여성(몸)’, ‘노동(일)’, ‘가난(돈)’은 감독님이 만든 영화 ‘레드 마리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입니다. 이 단어들은 우리가 한 글자로 된 청소년 인문학 교실에서 공부한 일, 돈, 몸과도 중첩됩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우리 청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할 때 ‘일’과 ‘돈’은 빠뜨릴 수 없습니다. 10명이 취직하면 8명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보다 조금은 부족해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1대 99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선생님이 살아온 삶 속에서 맞닿은 지점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살면서 어떤 경험이 지금의 감독님을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학교 다닐 때 어떤 책을 읽었는지, 친구들과 싸웠을 때는 어떻게 그 관계를 회복했는지, 공부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했는지, 꼭 이루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안 되었을 때 그 절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남자친구를 사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데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들려주지 않고 볼 수도 없는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지금 여기 있는 경순 감독이라는 한 사람을 이루게 되는 그 경험을 나누어 주십시오.
비정규 노동자, 마냥 고달픈 삶은 아닐까?
친구들이 쓴 글을 모아 대표로 정리하고 있는 저는 유수정입니다. 성공회대학교 김엘리 교수님의 추천으로 ‘레드 마리아’라는 작품을 보았습니다. ‘여성의 노동은 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감독님의 관점이 새로웠습니다.
저는 ‘레드 마리아’를 보고난 뒤에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른들은 ‘고3’ 하면 입시 공부에 치여 지친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래서 자주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라며 위로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정말 입시 준비 때문에 지친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입시 준비에 매진하는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아이들은 다들 저마다의 생명력으로 재잘재잘 떠들며 그 안에서도 재미를 찾고 즐겁게 지냅니다. 청소년들은 그렇게 생명력이 왕성합니다. 그렇지만 그 즐거움이라는 것이 깊은 깨달음을 준다거나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런 즐거움은 아닙니다. 또,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버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 영화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단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유쾌했습니다. 감독님과 출연자의 일상적인 대화가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기자 혹은 제 3자가 서술한 노동자에 대한 글을 보면 부당한 처우나 고단한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노동자가 직접 쓴 글은 그런 삶 속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선생님의 유쾌함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아픈 상처만 매일 드러낼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진짜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나, 이 만큼 힘들다. 나, 좀 도와 달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툭툭 던져진 화면 속에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들이 교실에서 나름대로 재미를 찾고 유쾌하게 지냈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던 것처럼, 여성 노동자들이 ‘힘들다 도와 달라!’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그 보다 더 큰 절규가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도저히 살기 힘든 공간에서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 순결 관념이 그렇게 철저했던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저희는 선생님의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이 모임이 진정한 어른과 청년들의 소통의 장이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삶을 모방하면 나도 성공할거 같다는 같잖은 희망에 들뜨지 않고 자기가 발붙이고 서있는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모임이 되길 바랍니다. 감독님을 첫 번째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길담서원에서 만나 뵐 수 있도록 저희 젊은이들의 초대를 받아주십시오.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redsnowm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