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0. 4. 18. 16:47

영화를 기획할 당시의 고민들을 다시 들추어 보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여전하기도 하다.

늘 만들때의 고민들은 만들면서 더 구체화되고 심화되고 복잡해 진다.
그리고 그 고민들이 명료회될때쯤 영화는 완성된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몇몇 고민들은 영화를 만들는 과정속에 심화되고
몇몇 고민들은 과정속에 축소되기도 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시작을 더듬어 보는 일도 재밌는듯 하다


제1장 소통에 대한 탐구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해도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
30년을 같이 산 남편과 대화를 해도 그렇고
같은 여자인 엄마나 친구와 이야기를 해도 그럴 때가 있다.
한 마디로 말만 같을 뿐이지 서로를 지탱해주는 머릿속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말 이라는 게 참 귀찮아진다.

하지만 통하는 사람끼리는 말이 크게 필요가 없다.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의 기술 보다는
존재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포용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와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어설픈 영어와 몸짓으로 그들과 내가 이해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우린 말을 너무 소비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이라는 것이 너무 지식으로 가다보니 정작 소통을 위한 곳에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소통이 안 되는 것인지 무엇이 소통을 막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왜 말을 배우고 대체 그 말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제2장 경험의 재구성

경험은 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험은 인간에게 동질성을 부여하고 공감대도 부여하고
때론 계급성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조차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에 의해 종속되어 있다는 것.
가끔 그 지위로 인해 서로의 경험이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나 청소부의 아내나 그것은 가부장질서 속의 지위일 뿐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다른 환경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역사성이 있다.
출생하면서부터 몸에서 시작된 그 경험은 딸이라고 불리는 순간
순결, 출산, 가사노동, 빈곤의 악순환,성폭력과 성매매로 이어지는
동일한 경험의 역사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와 자본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역할은 늘 통제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의 세 나라,일본과 한국 필리핀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다.
일본이 군국주의 기치아래 식민지 여성의 몸을 강간하고 유린했듯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여성의 역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자립을 원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분배방식에는 가부장제가 필요하고
값싼 가사노동과 임노동을 대신할 여성의 보수적인 성역할은
쉽게 대체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몸-차별의 시작

태어날 때 부터 그랬고
교육 받으면서도 그랬고
뒤를 돌아보아도 그렇듯
돌이킬 수 없게 다르게 만들어진 여성의 몸

그래서 어렵게 자랐건 귀하게 자랐건 딸들에게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
약한게 미덕이고
보호받는건 당연하고
강하면 결함이 되는

그 미덕과 결함이 자본과 결탁을 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 진다.
이뻐야 하고 잘 빠져야 하고 잘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성의 몸과 함께 번창하는 산업은 얼마나 많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겐 몸이 수단이고 경쟁력이다.

그 수단과 경쟁력에서 뒤처진 수많은 몸들의 상처.
이제 그 현장을 제대로 돌아볼 때가 됐다.

2. 출산과 낙태-죄의식

여성은 출산의 능력을 타고났다.
그것이 여성의 몸이다.

하지만 여성이 출산이나 낙태를 원할 때는
사회의 윤리와 국가의 정책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낙태문제는 늘 공공의 적으로 기사거리가 되거나
파렴치한 살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정작 문제는
여성의 몸과 태어난 아기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여성의 몸은 가난과 맞물리면 더욱 치명적이 된다.
똑같이 낙태가 불법이지만 자본주의 마인드가 강한
의사들 덕분에 한국이나 일본은 낙태천국이 됐고
보수적인데다 가난한 카톨릭 국가 필리핀에서는
낙태의 기회조차 박탈돼 모두가 쉬쉬하며 불법의료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건
세나라 모두 자신의 낙태 경험을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다들 죄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죄인의식을 더 조장하고 관리하려든다.
출산과 낙태의 결정권은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다.

3.일부일처-함정

여성이 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모든 경계가
성폭력에 대한 위험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여성의 성은 늘 보호와 통제아래 갇혀있다.
그리고 그 보호는 한 여성이 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시작되고
남자들의 욕망은 성노동자들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래서 순결과 성폭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너무나 성스럽게 이야기 돼서 너무나 하찮게 추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산업화.
과연 우리는 결혼과 성매매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가끔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정치적인 이슈는
내 누이와 내 어머니에 대한 순결이라는 가치만을 포장해
왜 그런 논리가 가능했던가는 종종 놓치고 간다.
위안부가 필요했던 군국주의 논리나
여전히 남자들에게 성노동자들이 필요악이라 여겨지는 논리는
가부장과 자본주의가 만나 만들어낸 하나의 일란성 쌍둥이인데 말이다.

이시대 여성들은 모두가 성노동자다.

4. 밥-혹은 노동

밥은 남녀역할 분담의 본질적인 역사를 안고 있다.
아무리 활동적인 여성이라 해도 육아와 살림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뿌리깊은 사회의 미덕이 되어 여성들을 더더욱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구조적인 성역할의 집착은
여성을 수입해서까지 그 역할을 공고히 지키려 한다.

그래서 밥은 노동이고 저임금이고 빈곤이게 하는
여성들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내놓는 당근도 있다.
주부를 겨냥한 상품으로 가정용품과 교육시장과 육아용품의
최고의 소비자로서 권한을 누리게 하는것.
우리는 그 배반된 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제3장 독립-새로운 경험 만들기
                                                                              
독립을 꿈꾸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독립이라고 말하는데도 이유가 있다.
혼자서 그냥 살아가는 걸 우리는 독립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독립은 새롭게 역사를 쓰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독립된 우리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독립과 새로운 역사쓰기에 걸 맞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그 최전선에 여성이 있기 때문이고
여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놓은 황당한 시스템들이 어떻게 바뀌고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망가진 세상이 어떻게 복원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시작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금이 올라가도 채워지지 않는 빈곤함의 악순환을 떨치고
작지만 돈이 주는 행복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몸이 주는 억압을 벗어나 자유롭고 신나게
자신의 진정한 성을 즐기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
그 세계가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