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5.11 14평의 철학
  2. 2013.07.08 나의 공간
  3. 2009.11.01 레드마리아 17 - 빈둥거리다
빨간경순의 노트2015. 5. 11. 14:09

내가 사는 집은 14평이다.

얼마전까지 쓰던 사무실도 14평이었고

돌아가신지 1년만에 정리하고 집을 비운 엄마의 집도 14평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각기 다른 14평에 들어 앉아 있었던 각종 짐들과 한달이 넘게 씨름을 했다.


엄마는 50여평에 누리고 살던 짐들을 10년이 넘게 계속 들고 다니며

마지막 종착지였던 14평의 집에 남기고 떠났다.

돈이 없어지니 가지고 있던 좋은 물건들을 하나씩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내주며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자 했던 엄마.

그렇게 하나씩 몇해를 주었을텐데도 14평안에 남아있는 물건들은

두달에 걸쳐 친구들을 불러내어 나누어주고 치우고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야 정리가 됐다.

살때야 수천만원이 넘었을 그 많은 물건중에 돈으로 건진건 재활용센터에서 

무게로 달아 계산해준 엄마의 옷들뿐이다. 

여러번 리어커에 실어 대여섯번 왕복해서 받은 그돈은 단돈 오만원.

그나마도 옮기는 중에 길에 세워진 자동차 범퍼를 긁어 수리비용으로 나가버렸다.

참 코메디같은 일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가 그랫다.

상진이때처럼 옷 다 태우지 말고 사람들한테 나눠줬으면 좋겠어.

엄마의 그 말만 아니었어도 나는 진즉에 다 내다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말이 걸려 가능한 나눠 줄 수 있는걸 고려한답시고 4월 한달내내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친구들에게 쓸만한 물건들을 나눠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아끼던 물건들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유행도 달라졌고

자개장세트도 그만큼 낡았다.

나눠줄 물건보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구나 하는 사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야 알게되었다.

애초에 엄마의 물건들은 내 취향이 아닌지라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저 비싸다는 것만 생각하고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쓸만한 물건들은 산지 얼마안된 가전제품과 운동기구 그리고 유행을 안타는 옷들과 주방기구와 

엄청나게 많은 고가의 백들 뿐이었다.

다 나눠주고 버리고 정리를 하고는 내 집으로 가져와야 할 짐들을 한쪽에 챙겨놨다.

엄마가 평소에 내가 가졌으면 하는 물건들이 뭐였을까 생각을 하다 

이미 내집에 있는 원목미니서랍장과 세트였던 거울과 미니 원형탁자을 챙겨야겠다 생각했지만

그 최소한의 짐들도 나의 좁은 14평의 집에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원목 세트는 포기하고 엄마와 관련된 짐들만 챙겨왔는데도 5박스가 된다.

집에 가져온 다섯박스는 자리를 찾지 못한채 나의 좁은 거실에 일주일이 넘게 버티고 있다가

힘쎈친구 한 녀석이 집을 방문해 옳거니 하고 이미 포화상태인 베란다로 꾸겨넣었다.

박스안에 있는 물건들을 좀 다시 봐야겠는데 물건을 꺼내 펼칠 공간이 없어 모른척 이사갈때가지 버티기로 한다.


그리고 4월의 마지막날 나의 14평 사무실에 있던 물건들이 또 집으로 왔다.

영화창작공간 사무실에서 1년8개월 동안 썼던 각종물건들 중 대부분을 나눠주거나 버리고

촬영장비와 편집장비 그리고 자료로 보았던 많은 책들과 자료집들만 집으로 가져왔는데도 

이미 포화상태인 나의 책상과 책장은 자리를 내줄 기미가 안보인다.

결국 다시 대기실처럼 좁은거실의 중앙을 버티고 일주일을 보내다 

이제서야 여기저기 빈틈을 찾아 수납과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 책상위에 편집장비들이 완벽하게 셋팅이 됐다.

정리된건 편집장비들 뿐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내방과 수림이방까지 장난 아니게 널려있다.

친구가 방문하면 거실에 있던 짐을 방안으로 던져놓고

등산짐을 꾸릴때는 방안의 짐들을 거실로 옮겨놓고

빨래를 걷을때는 베란다와 가까운 책상주변에 옷들이 수북하고

책상에 앉을때는 다시 옷들을 바닥에 옮겨놓고...


그러다 생각했다.

14평의 집을 좁다 생각말고 거대한 텐트라 생각하자고.

혹은 넓은 캠핑카라고 생각해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어제 친구가 갖다 준 상추에 고추장 넣고 박박 비벼 먹음서 

드라마 한편 때리고 나니

갑자기 집이 너무 넓어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텐트라니.....끄윽....

당분간 이 주문을 외우면서 여름을 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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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7. 8. 13:24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영화창작공간에 다시 들어가게되었다.

2008년 레드마리아를 시작할때 처음1기로 영화창작공간의 디랙터스존에 들어갔고

다시 프로듀서존에서 영화의 후반작업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레드마리아를 만드는 사이 그곳에서 잼다큐강정을 기획했고

제작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영화창작공간은 나에게 큰 기여를 한셈이다.

그렇게 이번에도 레드마리아2를 그곳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어찌나 감사한지.

심지어 방도 창문이 있는 환한방으로 추첨이 돼서 기쁨이 두배.ㅎ


그래서 나는 편집기와 자료들 그리고 프리터를 비롯해 여타의 짐들을

옮겨야 해서  결국 그동안 미뤄왔던 청소까지 부득이 하게되었다.

일년이 넘게 나의 공간이 되어주었던 이 작고 허름한 공간을 비운다고 생각하니

웬지 이 지저분한 물건들을 치우는게 아쉽기까지 한다.

치우다보니 별게 다 나온다.

언제 죽었는지 모르게 이미 박제가 된 바퀴벌레부터

커피원두 알갱이 그리고 그렇게 없을때는 찾아도 안나오던 담배며 라이터까지

숨은 보물 찾기 하듯이 이것저것 책상위에서, 아래에서 발견이 된다.


사무실이 없는동안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일을 했던거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친구들과 놀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기획안을 만들고,

또 아무리 피곤한 일이 있어도 이곳에만 안착하면 

모든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은 휴식처가 되기도 했던 공간.

이 공간을 수림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자기공간이 없어서 늘 침대위에서 온갖 물건을 늘어놓고 뒹굴던 그녀에게 말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까. 아니 무엇을 하겠지.

근데 갑자기 집에와서 내공간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왜케 서운한지.


결국 사무실에서 먹자고 싸놓은 커피드립세트를 다시 풀러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도구들을

다시 내려 놓는다.

옮기려 했던 오디오도 그대로 두기로 한다.

여행이나 촬영 다닐때 쓰던 커피분쇄기와 모카포트는 집에서 쓰기로 하고

사무실에서는 늘 집에서 쓰던 것을 가져가기로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챙기고 정리하다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결국 병원가는건 패스하고 하루 진종일 이일을 해야하지 싶다.

고작 책상주변을 정리하는건데 이사가는 것처럼 마음이 분주하다.

저녁쯤 친구가 와서 짐을 옮겨주기로 했으니

아직 다섯시간은 남았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이 공간을 기념하면서 한 장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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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11. 1. 16:42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휩사여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건 아니고 그저 빈둥거리고 있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떼우는 곳이 요즘 내방에서의 일과다.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쩌다 빨래나 하러 들르는 이공간이 그렇게 빈둥거리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난 이 빈둥거림이 얼마나 즐거운지...

나의 공간이 처음 생겼을때 나의 기쁨은 잠잘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원초적인 안심이었는데 생활과 분리된 이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의 휴식처가 되어가는 거 같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뒷치닥 거리며 잔뜩 쌓여있는 집안일과 남편이나 동거인에 대한 불편함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고 헉헉대는 그런 전투장이 아닌 마치 별장처럼 이따금 찾아와서 아무생각도 없이 그냥 빈둥거리거나 가끔 책을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나가야지 하는데 머리가 말이 아니다. 요즘은 씻는 일을 거의 수영장에서 하다보니 덩달아 씻는 도구들도 죄다 사무실로 옮겨져서 막상 씻으려고 하니 샴푸도 없고 린스도 없다. 쌀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고작 샴푸정도로 허전함이 느껴지다니...쩝...하지만 씻어야겠지. 게다가 생리중이니 사무실에 나가도 내일까지는 수영장에 갈수도 없을테고 일단 오늘 왕창 씻어야 버틸 수 있을테니까.

돌아서려는데 정태춘 박은옥의 시디가 눈에 걸린다. 지난주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콘서트에서 사온 첫차를 기다리며라는 시디. 그날 참 많이 울었었다. 나만 우는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죄다 울고 있었지. 비슷한 세대의 비슷한 공감대로 고독하고 외롭게 음악을 중단한 그를 격려하면서 그리고 슬쩍 자신의 숨겨둔 외로움을 함께 보태어 다들 그렇게 한 공간을 즐겼던거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나 그 기억은 너무 빨리 잊혀진다.

나만해도 그렇지 않은가.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컴퓨터와 편집기를 여는 순간 삼개국의 수천장에 달하는 번역본을 펼치는 순간 타임라인의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상들을 듣기 시작하는 순간...이미 그 시간은 내머리속에서 비워진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 빈둥거리는 시간에 우연히 접한 그 시디를 통해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 낸다는거. 그래서 빈둥거리는 시간들은 지루하지 않고 생산적이다. 뭐 그렇게 위안을 삼고 있지만 역시 편집이 걸린다. 씨발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거야.

나름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는데 며칠전 ‘쇼킹패밀리’상영때 만난 세영이 그런다. 나는 그렇게 편집할때 꼼짝도 못하겠던데 경순은 너무 많이 노는거 아니야. 흐미...나쁜지지배. 가끔 산에 가고 가끔 영화 보는거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기를 나는 스트레스 쌓이면 00을 만나서 배설(일종의 수다)하곤 하는데 경순도 배설 할 곳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지지배 이제 별걸 다 아네. 머리까지 영화배우처럼 잘라서 더 이쁘다. 너무 걱정하지마 니가보면 또 다른 맛이 있는 영화만들어서 보여줄께. 이런... 아직도 내입은 현실과 다른 말들이 툭툭..ㅎ

아...좋다...오늘 하루 그냥 게길까. 이것저것 쓰고 싶었던 글들이나 쓰고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면서 뒹굴뒹굴... 맞어 난 요즘 푸코에게 배설을 하는거 같다. 푸코는 아마도 그의 친구이면서 학문적 동지인 역사학자 폴벤느에게 배설을 했겠지. 새로운 생각들을 퍼붓고 의심하고 공유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동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그건 애인과는 또 다른 관계다. 내가 왜 이렇게 흥분이 되는지... 그나저나 공간이 바뀌면 내머리는 왜 이렇게 긴장감이 없어지는 것일까.

참 어제 핑크영화제에서 만난 주희씨의 말이 생각난다. 언젠가 핑크토크를 위해서 한국의 에로영화를 만들었던 00감독을 불러 이야기를 했더니 쓰리엠 정책이니 한국의 정권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통에 골치가 아팠다고. 가끔 사람들이 그렇지. 머리에 찬 것이 너무 많아 가벼울 줄 모른다. 우자지간 핑크영화제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 글이 길어지겠군. 일단 컷하고. 에이씨 나가야겠다. 씻자.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