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3. 8. 15. 12:29

어제 찍은 촬영본을 검토하고 오늘 찍을 내용들을 검토하다가 

그냥 사무실에서 잠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자면 늘 일찍 일어나게 되는지라 오늘도 일찍 일어나 

구내식당에서 2500원에 먹을 수 있는 밥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가다보니 복도도 사무실도 온통 컴컴하다.

이건 뭐지 하면서도 오늘이 광복절이라는걸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새벽에 먹을거라도 사다놓을걸 하면서 

커피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기사와 메일을 잠시 훑어본다.

그래 광복절이 맞긴 맞구나.


어제 위안부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찍고 왔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피켓과 나비부채를 들고 뜨거운 땡볕에도 불구하고 두시간정도를 앉아서

위안부문제가 해결되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수많은 취재진들 사이에서 참석하신 두 할머니를 보고있자니

마음이 착찹했다.

할머니들을 찍기위한 취재진의 경쟁을 보며 마치 연예인을 취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다.

저 많은 취재진들이 수많은 셔터를 눌러대면서 

고르고자 했던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론 우리는 그 이미지를 바로 그날 저녁 방송이나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봐왔던 그 이미지는 할머니들의 긴 역사중 

오로지 한시기의 상징으로만 고착되어 온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로 우리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바라보고 그것만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라는 것도 어찌보면 그런 이미지를 찾는 과정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어떻게 영화속에 각인화 하느냐에 따라 보는 이의 연상작용이 강화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할 것이기에.

그래서 영화는 무서운 각인이기도 하다.

역사도 비슷한거 같다.

마치 역사를 상징하는 몇개의 단어만으로도 우리의 의식은 가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것이 사실이었던 것처럼 믿고 있으니.


그래서 나는 역사를 들춰보는거 별로 안좋아한다.

역사의기술이라는 것이 늘 찾은 만큼의 자료를 통해 유추하고 해석하는 것일뿐

내가 알고싶은 민중의 시선이나 여성의 시선이라는 건 

늘 소소한 발견과 해석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올바른 교과서라는 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남성의 역사의 이쪽과 저쪽의 시선으로 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득 어제 참석한 수많은 여고생들의모습이 생각난다.

그들이 보는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그리고 그들이 암기하고 정답이라고 배우는 역사는 무엇일까 하는.

나도 한때는 그것을 암기했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기에.

물론 암기에 약한 나는 틀린 답을 많이 써내고는 했지만.


레드마리아 두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역사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내가 궁금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미지화되지 않은 혹은 각인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다.

여성의 역사라는 것도 발견되지 않고 묻혀있는 것이 훨씬 많기에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도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문득 나도 내 영화의 끝이 궁금해졌다.

과연 내가 보고자 하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고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일지.

창밖을 보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촬영 나갈 시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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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