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
1.
에블린 아줌마와 함께 수빅베이 가보다. 항공모함 보다가 에블린의 가족사를 듣는다.
에블린은 참 재밌는 사람같다. 자기딸더라 계속 멍청하다고 한다. 그녀는 첫째 아들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그의 아들은 똑똑하고 동생을 호되게 올바르게 가르치고, 게이 남친과 여자친구가 둘이 있다고 한다.- 내용상은 모두 연애처럼 만나고 있는 듯하다. 에블린이 우리를 신경써주는게 고맙다.

2.
예정에 없던 쟌리의 올드부끌로드 방문.
나의 생일파티를 위해 모든 부끌로드 멤버가 화이트 하우스에 입성. 호오...그림 나오겠다...
아나의 생일파티에서 못다한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 100페소 더 투자한다. ㅎㅎ

파티 즐겁게 마치다.
다들 좀더 특별하고 재밌게 먹기 위해 파티를? 보라카이 스타일(?) 칵테일 맛있다. 언니들 케잌 감사해요^^ 근데, 난 한 조각도 못 먹어봤다.
한국에선 전혀 해본 기억이 없는 야외 테라스 파뤼라.. 비록 2시간도 채 안되어 끝났지만. 엄마가 준 500페소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끼를 배부르게 해치울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PM 6:30
마지막 지프니를 타기 위해 부끌로드 언니들과 헐레벌떡 화이트하우스에서 하산.
미쉘, 쟌리, 쟈넷, 질린과 작별 키스. 수줍어하며 왼쪽 볼에 키스해준 쟌리에게 고맙고 미안함.
나는 왜 촬영을 하면서 늘 그 사람에게 미안함이 생길까. 찍히기 싫어한는 듯함을 느낄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저주저하게 된다.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친 않지만, 끊임없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어 힘들다.
올드부끌로드 도착.
예전에 아람이 있을때완 다르게, 어느샌가 적극적인 코디의 모습까지 갖춰버린 나.
알마에게도 고마움과 인사를 표하고 포옹. 크리스마스 파티에 놀러오라는 알마의 말에 매우 혹하다. 나는 노는 것 좋아하나보다.ㅎ

2009. 9. 2
촬영 테입 온종일 프리뷰.
PM  5시.
수림과 미팅.
생일 얘기 듣고 자신이 저녁 사겠다고 바쁜 시간 쪼개서 아시안 브릿지까지 오다.
'얘가 언제 어른이 된거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왠지 슬픈데..그러기에 너무 이른건 아닌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 척'이거나  '매우 작은 부분'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이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있음이 느껴진다. '힘들땐 같이 있어도 돼. 수림씨'
그녀가 데려간 한식당에서 보양식과 같은 메기찜과 매운탕 먹다. 소주 한 병 수림과 나눠먹고, 그녀는 팀과제를 하기 위해 가볍게 떠난다. 난 어지럽다..취했다.
그녀의 접대비는 한사코 거절하고, 마음만 받다.

2009. 9. 3
로즈비의 동생이란 분에게 번역을 맡기다.
아이비의 번역노트 보고 깜짝 놀라다. 난 한국말로도 그렇게 자세히 쓰지 못할거 같은데...허걱
정말 힘들었겠다. 그리고, 다시 안할 확률이 높겠군...음.
이전 촬영테입들 받고, 이번에 찍은 촬영 테입 넘기다.
아이비 내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어 깜짝 놀라다. 왜? 프리뷰 번역하면서 애들이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계속 나왔다고...그랬겠구나.
이제부터 '버생쇼' 업무를 좀 하려다 포기하고 잠들다.  약간의 감기 기운.

2009. 9. 4
까부야오에 가는 봉고차 얻어타고 돌아오는 길에 마닐라 스케치 돌입.
C5 근처의 공사중인 높은 건물로 들어가 허가 요청.
생각보다 허가 절차는 간단했고, 우리는 무대뽀처럼 카메라를 들고 이 건물 저 건물 휘젓기 시작.
거의 네비게이터 수준의 펭이 지정한 건물은 우리가 찍으려던 풍경과 흡사했다. 다만 복도에선 건물 기둥에 가려져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넘어 10층 난간에서 찍으려고 버둥거리고 올라서며 발발거리던 나와 펭.
이건 너무 무모해...무작정 입주한 사람들 문을 두들겨본다. 운좋게 혼자 사는 30대 추정 여성이 약간의 고민 끝에 촬영을 허락해주다. 그 언니 완전 럭셔리한 느낌.. 언니 너무 고마워요. 우리는 'only 5minutes'를 외치고 들어가 15분간 그 집 베란다를 점유하다.

거의 3분에 한 대 꼴로 다니는 비행기 소음과 날씨 탓인지 탁한 마을 공기와, 고층빌딩과 빈민촌의 풍경이 뒤엉켜진 이 곳에서 사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마 서울과 비슷하겠지. 풍경은 도시 삶에 큰 조건이 되지 못한다. 도시의 삶은 접근성, 용도성, 가격이 전부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이것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대로 끌려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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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필리핀 촬영일지였습니다.

오늘은, 2010년 1월 4일이고, 함박눈이 엄청나게 쌓였네요.
이 글을 쓰는 동안은 그 곳의 여름날씨에 빠져있어, 잠시 겨울을 잊었네요. 재밌군요.

2009년 7월~9월까지 제 인생계획에 필리핀은 없었었지만, 갑자기 그 곳이 내 현실이 된 이후부턴 삶이 더 다채로워졌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즐겁기도, 신나기도, 머리 아프기도, 슬프기도, 황당하기도, 지루하기도 등등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한국에 있었다면 평생을 가도 만나지 않았을 사람과 장소들을 만났으며. 그 사람과 공간과 시간 속에 많은 것들이 제 몸에 고스란히 체화되어 다음으로 나가는데 분명히 큰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촬영을 하는 사이 사이, 촬영을 마친 후 여행을 다니며 내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된 것. 그러면서 끄적인것들도 계속 여기에 있었으면 하지 못했겠지요ㅎㅎ 물론, 같은 시기 맞물린 베트남가족여행을 갔었어도 새로운 경험과 기회가 됐겠지만, 필리핀 다녀온 일이 좋았기 때문에 후회같은건 없답니다 ㅋㅋ 생각해보면, 뭔가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겁내는 적은 있지만, 막상 하는 동안, 하고 나서 후회 하지 않는 특기는 있는 것 같네요. 가끔 투정은 부리지요. 하하핫

아무튼 모두들 고생많으셨고요,
앞으로 계속 고생들 하셔야 하니 힘냅시다.
말로만 듣던 2010년이군요. '블레이드 러너'라도 다시 봐야 할지... 왜 텔레포트는 안되는 거지요?
자 자, 올해도 속지 말고, 각자 방식대로 잘들 달려봅시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