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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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하인들
여성, 이주, 가사노동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저 | 문현아 역 | 여이연 | 2009년 04월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부제로 달려있는 여성, 이주, 가사노동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심층면접 방법을 통해 미국의 로스앤젤리스와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일하는 필리핀계 여성이주가사노동자들의 현실을 다층적인 각도에서 서술하며 분석한 글이다. 한국사회에는 21세기와 더불어 ‘다문화사회’가 새로운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에 관한 심층연구는 아직 희박한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면서도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탄탄하게 분석한 이 책은 한국사회의 이주연구나 국제결혼을 포함하는 다문화사회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다문화사회라는 코드와 더불어 하나의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서 국제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조망해야 하는 현실과 조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 가족의 구성, 여성의 이주노동, 국제결혼 등의 쟁점은 이제 현실에 기반하여 연구되어야 함과 동시에 거시적인 정치경제적 맥락과 연결되어 분석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일상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사례를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제별, 쟁점별로 묶어 분석함과 동시에 국제적인 정치, 경제적 맥락도 아울러 고려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덧붙여 저자도 인류학, 사회학, 여성학, 에스닉연구분야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국제이주, 여성노동, 가족의 변화 등의 쟁점도 이런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종합적으로 조망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여성학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이론서이자 사례분석에 대한 연구서로 활용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 및 특징

이 책은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이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당면하는 경험을 탈구위치라는 렌즈를 통해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런 탈구위치가 만들어지는 제도화과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 개괄을 시도하는 1장에서는 이주의 탈구위치를 규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분석적 접근을 서술한다. 세 가지 이론적 접근법을 사용하는데 그 중 둘은 이주연구에서 흔히 활용되는 접근법으로, 이주절차 연구에 관한 거시구조적 분석과 중범위 수준의 분석이다. 세 번째 접근법은 인문학에서 후기구조적 이론을 활용하는 것으로서, 저자는 주체수준에서 이주를 분석하는 것이라 이름 짓고 있다.

2장과 3장에서는 이주흐름의 사회적 과정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불완전한 시민권의 탈구위치가 검토된다. 이는 이주라는 스펙트럼의 양쪽 끝으로서 민족국가에 대한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의 주체형성을 다룬다. 3장에서는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문제의 틀을 ‘이들은 왜 이주하는가?’ 로 바꾸어 접근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이 이론의 여지없이 이주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서 혼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장에서는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와 보내는 나라 양편의 젠더불평등 역시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의 이주를 통제하는데 개입한다는 것을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더불어 이들의 이주가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을 구성한다는 점도 논의한다.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은 이주를 받아들이고/보내는 나라 모두에서 여성들 사이의 재생산노동을 둘러싼 3단계 이전(three-tier transfer)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4장과 5장은 글로벌 재구조화에서 초국적 가족의 형성과 유지를 살펴본다. 4장은 가족을 탈구위치가 진행되는 주변상황으로 설정하여 살펴보면서, 특히 가족별거의 고통을 다룬다. 5장은 어떻게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이 이 탈구위치에 맞대응하는지를 살펴본다. 6장은 가사노동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과정과 가사노동 수행을 살펴보면서 가사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개인적인 것과 개인적이지 않은 것 간의 권력관계에 대한 지형을 검토한다. 권력관계의 해체는 모순적인 계급이동의 탈구위치를 드러낸다.
7장은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이주민공동체를 검토한다. 이 장에서는 두 도시의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 무소속이라는 지역화된 탈구위치를 공유함을 드러낸다. 로마에 사는 여성에게 무소속은 이들이 사회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이탈리아 사회의 구속 하에서 편입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리스의 여성이 느끼는 무소속감은 수용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거주공동체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특히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이주민공동체의 중간계급 중심성으로 인한 계급불균등의 결과 때문이다.
결론에서는 처음의 연구주제로 돌아가 이주의 거시구조적 결정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마지막 장에서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가사노동자들 사이에 어떻게 유사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역자 후기 중에서

이 책은 내용이 풍성하다. 이론적인 접근과 더불어 필리핀 이주여성가사노동자들의 일상을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살피고 있다. 풍부한 현지조사와 분석력을 통해 현실에서 여성이, 이주한 여성들이 노동을 하면서 ‘주체’로 살아가는 것의 힘겨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비교적 최근 들어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책이 담아내는 내용들이 다방면에서 다차원적으로 접근되는 이주여성 쟁점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틀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번역을 하게 되었다.

세계화와 더불어, 특히 신자유주의의 맹공으로 노동자 여성, 가난한 여성들은 점점 더 힘겨운 삶을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 속에서 가부장제라는 제도의 압박 역시 쉽게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오늘을 일구는 여성들의 결단과 실천, 그리고 미약한 소수이나마 이를 지지하는 가족과 주변의 남성들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속에서 저항의 지점을 어떻게 연결하여 세상의 변혁으로 이끌어갈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그것도 힘겹게 살아가는 주체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개인의 일상과 사회경제적 구조를 더불어 고민하게 하는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내가 라셀 파레냐스의 의도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해서 새로운 논의의 장을 펼치는데 기여했기를 바랄 뿐이다. 라셀 파레냐스 역시 어머니가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경험을 통해 이런 현실을 연구주제로 삼았다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이주여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여성들, 초국적 가족뿐만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험을 하는 모두가 공감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소개

저자 :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에스닉 연구분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 조교수, 일본 오차노미즈 방문연구교수,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브라운대학교의 미국문명과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여성노동, 이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에서도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젠더, 페미니즘연구, 가족, 이주, 국제개발, 노동 등이다.
주요 저술로는 Children of Global Migration (2005), Asian Diasporas: New Formations, New Conceptions (2007, 공저), The Force of Domesticity (2008) 등이 있다. 곧 Intimate Labors: Care, Domestic and Sex Work (2009)를 공저로 펴낼 예정이기도 하다.

역자 : 문현아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성공회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젠더, 가족분야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연구활동과 실천활동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며 최근 활동가들과 함께 할 글로컬 액티비즘 공간을 꾸릴 고민을 하고 있다. 가부장제를 바꿔낼 기반으로 가족을 주요한 축으로 고려하여 한편으로 변화의 관점에서 동서양 가족사를 검토, 이론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가사노동자들의 조직, 연대의 움직임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족과 연관된 주제로『여/성이론』에 글을 쓰고 있으며, 공저로『성?노?동』(여이연),『박정희시대 연구』(백산서당), 번역서로『경계없는 페미니즘』(여이연),『두 개의 미국』(책갈피),『제국의 지배자들』(책벌레), 『역사사회학이론』(학문과 사상사) 등이 있다.



목차

서론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

1.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의 탈구위치

2. 필리핀과 노동유출

3. 재생산 노동의 국제적 분업

4. 초국적 가족: 전산업적 가치와 함께 가는 후기산업적 집안구성

5. 초국적 가족의 상호세대관계와 젠더관계

6. 모순적인 계급이동 : 세계화 속 가사노동의 정치학

7. 무소속의 탈구위치 :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필리핀이주민공동체의 가사노동자

결론 세계화의 하인들: 서로 다른 배경, 비슷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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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40


[한겨레21] 기사원문보기 >>




‘스위트 홈’ 만드는 가사도우미의 쓰디쓴 노동
[우리 곁의 오지] ‘우리 곁의 오지’ 여섯 번째 이야기…
4대 보험 안 되고 감정노동과 인간적 모멸 속에서
끝없는 집안일 해나가는 가사도우미 노동자들의 고단한 부엌






세탁실-거실-부엌-서재-안방-옷방-거실-세탁실-화장실-부엌-재활용·쓰레기수거장. 최명선(49·가명)씨의 하루는 세탁실에서 시작해 쓰레기 수거장에서 끝난다. 아파트가 작업장이고, 앞치마가 작업복인 그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오전 9시. 최씨는 매주 화요일에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로 출근한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출근하고 난 빈집에 들어온 최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부엌 옆에 딸린 세탁실로 들어가 소매를 걷어올린다. 세탁실에 앉아 바구니에 담긴 옷가지를 물에 담가 불려놓고 애벌빨래를 한다.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나머지는 손빨래로 세탁한다. 그다음 거실과 부엌 등에 어질러진 물건 등을 눈에 띄는 대로 정리해놓고 부엌으로 향한다. 설거지대에 서서 수세미를 들고 그릇·컵·냄비 등을 싹 닦아 찬장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다음에는 쓰레기를 분류한다. 재활용할 것과 버릴 것, 음식물로 처리할 것을 나눈다.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쉴 곳도 없는 점심시간

»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 최명선(가명)씨가 일하고 있다. 최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7시간 일하고 5만원을 받는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빨래와 설거지, 쓰레기 분류까지 마치면 오전이 금세 지나가요. 이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부부 둘만 사는 집이라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동안 밀린 설거지나 빨래를 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려요. 집에서도 집안일을 하지만 여기는 직장이잖아요. 빨래나 설거지도 집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죠. 더 신경 써서 해야 하고 더 깨끗하게 해야 하니까요. 이 집 ‘새댁’은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으면 메모를 해놓아요. 메모에 따라 필요한 일을 추가로 해요.”

낮 12시. 12시부터 1시간은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다. 일하는 집에 반찬 등이 있으면 집에서 점심을 먹지만 그렇지 않으면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거나 나가서 사먹는다. 이 집처럼 빈집에서 일할 때는 식사나 휴식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낮에도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다. 최씨는 “일을 하러 온 건데, 그 집 식구들이 먹고 남은 국을 먹으라고 하거나 자기들이 먹지 않는 음식을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때는 보통 초반에는 말을 못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넌지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또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쉴 공간이 없다. 빈방에 혼자 들어가 있는 것도, 사람들이 거실에 앉아 있는데 거실과 트인 부엌 식탁에 잠시 앉아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오후 1시. 최씨는 다용도실에서 청소기를 꺼낸다. ‘윙~’ 청소기 소리가 요란하다. 청소기는 서재와 안방, 옷방, 거실 순서로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인다. 청소기를 다 돌리고 나면 빨래건조대에 널어놓은 걸레를 걷는다. 마른걸레를 들고 서재로 들어가 책장과 책상에 앉은 먼지를 떨어낸다. 거실에 있는 TV와 노트북, 오디오 위에도 마른걸레가 지나간다. 마른걸레 다음은 물걸레 차례다. 물걸레 여섯 개가 들어 있는 빨간색 고무대야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최씨는 양손에 물걸레 하나씩을 들고 두 손으로 걸레질을 시작한다. 그렇게 2시간 동안 30평이 넘는 아파트 바닥을 모두 닦는다. 일반적으로 가사도우미들은 대걸레 등을 이용해 바닥을 닦거나 일부만 걸레로 닦는다. ‘바닥을 모두 걸레질해달라’는 요구는 무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씨는 왜 힘들여 걸레로 바닥을 닦을까.

“아유, 힘들죠. 어깨가 아파요. 오십견이 왔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걸레질을 해야 깔끔하게 청소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건데,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요.”


가사도우미는 50대 초·중반이 가장 많다. 최씨는 젊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 걸레질도 다른 가사도우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그런 최씨에게도 몸이 버텨내기 힘든 일들이 있다. 세탁소에 맡기면 되는 카펫이나 커튼 빨래 같은 묵직한 일이 그렇다. 일거리가 많지 않은 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서 시킨다는 인상을 받을 때나 몸살 기운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감정노동,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 최씨는 “빨래·청소·다림질·식사 준비까지 시간 내에 마치려면 좀처럼 쉴 틈이 없다”고 말한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오후 4시. 최씨는 다리미와 다리미대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빨래건조대에 걸려 있는 셔츠 등을 다린다. 다림질이 끝나면 화장실 청소에 들어간다. 고무장갑을 끼고 고무대야에 세제와 청소용 솔을 넣어 화장실로 들어간다. 물이 튀지 않게 바지를 걷어올린다. 세제와 락스를 이용해 세면대와 욕조, 변기를 솔로 닦는다. 거울도 빼놓지 않는다. 화장실 청소 역시 걸레질처럼 몸을 굽히고 팔에 힘을 줘서 해야 한다.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집안일 마무리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집안을 점검하면서 쓰레기봉지에 쓰레기를 채운다. 그러다 보면 벌써 오후 5시다. 앞치마를 벗어놓고 집에 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린다. 그렇게 이 집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맞벌이 부부가 모두 늦게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편이라 이 집에서는 식사 준비를 하지 않지만, 다른 집에서는 식사 준비까지 해야 일이 끝난다. 식사는 보통 밥과 국·찌개 한 종류, 나물 반찬 두 종류, 찜 한 종류로 준비한다. 가사도우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게 식사 준비다. 집집마다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미료다. 조미료 없이 요리를 하면 아무래도 ‘맛있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 게다가 집안 사람들의 입맛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문제가 커진다. 최씨는 “한 사람은 짠 음식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할 때는 두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만들어놓은 음식이 ‘맛없다’고 할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최명선씨는 2007년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해왔다.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어 남편 벌이만으로는 가계를 꾸리기가 벅차 “반찬값이라도 벌 생각으로” 가사도우미를 선택했다. 복지관에서 2주 동안 세탁·청소·요리·다림질 등 ‘살림의 기술’과 응대법 등 가사서비스 교육을 받았다. 복지관에 회원으로 가입해 연회비를 내면 가사서비스일을 연결해준다. 처음에는 3개월 동안 산후조리 도우미를 했고, 그다음부터는 가사도우미를 쭉 해오고 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창전동 아파트에 나가고, 일주일에 세 번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 나간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근로 수당은 5만원이다. 한 달에 80만원을 번다.

최씨는 이전에 했던 공공근로나 식당일에 비해 가사도우미는 시간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감정노동 부분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 때가 더 많다.

“복지관에서 연결해준 집에 처음 갈 때는 그쪽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 먼저 파악해요. 그렇게 맞춰가야지 정기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서로 마음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꾸준히 일을 하게 되죠. 창전동 아파트의 경우 3년째 일을 하고 있어요. 믿음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멀게 느껴질 때도 있죠. 예전에 일했던 집에서는 집에 늘 있던 할머니가 한 번 집을 비울 일이 생겼는데 귀중품이 들어 있는 문을 다 잠가놓았더라고요.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일했는데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나’ 싶었어요.”

4대 보험 적용 안 되는 24만 ‘도우미들’

» 최씨는 “빨래·청소·다림질·식사 준비까지 시간 내에 마치려면 좀처럼 쉴 틈이 없다”고 말한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일해도 퇴근 시간인 오후 5시에서 30분이나 1시간을 넘기는 일이 잦다. 일하는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기 때문에 시간이 돈인데, 초과된 시간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가사도우미들은 하루 일당을 그날 일이 끝나면 사용자에게 직접 받는다. 그럴 때 초과된 만큼 5천원이나 1만원을 더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알아서 챙겨주면 ‘고맙다’. 최씨가 일하는 다른 집에서는 식사 준비로 근무시간을 넘기는 일이 반복되자 1시간 더 일하고 1만원을 더 받기로 합의했다.

‘보험’ 얘기가 나오자 최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원보증에 주민등록등본, 건강진단서까지 내고 복지관에 회원으로 가입해 연회비도 내는데 4대 보험 적용이 안 돼요. 복지관 선생님에게 ‘왜 안 되느냐’고 물어도 ‘머지않아 될 거예요’라는 대답밖에는 들을 수 없어요. 3년 넘게 일했고 앞으로 적어도 5~6년은 더 일할 계획인데 언제까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사도우미 시장은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가사도우미 시장 규모는 2007년 5조원을 넘어섰고 매년 약 10%씩 느는 추세다. 통계청은 올해 3분기 맞벌이 가구의 월평균 가사서비스 지출이 2만6684원으로, 지난해 3분기에 비해 24.4%, 2005년 3분기에 비해 188% 늘어났다고 밝혔다. 가사서비스 지출이 대부분 가사도우미 비용임을 감안하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도우미 비용이 5년 동안 3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시장은 커졌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사도우미 종사자 수는 약 10만5천 명이다. 현장에서는 실제 가사도우미 종사자가 15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본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63만원이고, 평균연령은 52.8살이다. 가사도우미는 주로 비영리 사회단체·기관이나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다.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하는 가사도우미 중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가 다수다. 15만 명이 넘는 가사도우미에게 4대 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이는 비단 가사도우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사·간병·보육도우미 종사자 24만 명이 같은 처지다.

이들이 사회적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가족의 일부인 ‘가사사용인’이기 때문이다. 1954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가사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사사용인’으로 분류해 법 적용에서 제외했다. 56년이 지난 지금,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달라졌고 이들은 ‘돌봄노동자’로 사회적 역할을 해나가고 있지만 이들의 법적 지위만은 여전히 그대로다.

54년에 고착된 법적 지위

문제는 이를 대하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다. 정부는 가사·간병·보육도우미 등 사회서비스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통해 고용된 4만 명에게는 4대 보험이 적용된다.

사회적·법적 지위 보장이 요원한 이상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역시 개선의 여지가 없다. 가사도우미들이 휴식 시간·공간 보장이나 정당한 추가 임금 등을 요구하기보다 눈치를 먼저 보고, 일하면서 불필요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게 되는 데는 여전히 가사도우미를 노동자가 아닌 ‘집안일을 도와주는 파출부’로 보는 인식이 한몫한다.

서울YWCA 관계자는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만나는데다 사용자와 일대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경우가 종종 접수된다”며 “청소기 등 청소 도구를 쓰지 못하게 하고 모든 일을 맨손으로 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는 연결해준 단체가 중재에 나선다.

가사도우미 서비스 사용자들도 할 말이 있다. 광주대 가족복지 전공 김선미 교수는 ‘가사도우미에 의한 가사노동대체, 문화기술적 사례 연구’(2009) 논문을 통해 사용자의 관점에서 가사도우미 고용의 문제를 “가사도우미의 서비스 질에 대한 고용 전 정보 부족, 신분의 불확실성에 의한 불안 (중략) 원하는 기간 동안의 안정적인 고용 보장의 결여, 적절한 보수 수준과 인상 시기의 모호성”이라고 분석했다. 이 논문에서 지적한 문제는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사도우미를 중개받았을 때 주로 나타난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지난 11월22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함께 발표한 ‘민간 노동력 중개기구의 수수료 및 노동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유료 직업소개소로 인해 가사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거나 중간에서 중개수수료를 착취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비영리 사회단체·기관은 신원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고, 가사도우미의 교육은 적어도 이틀 이상 진행한다. 교육을 통해 고객 응대법,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 직업의식 등을 익히도록 한다. 유료 직업소개소는 이러한 교육이 전무하다. 가사도우미 구직자들로부터 받는 중개수수료 역시 유료 직업소개소는 월 6만5천원으로 사회단체에 비해 2배 이상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안’의 오지

실제 유료 직업소개소에 구직을 문의해봤다. 세 곳 모두 첫 달에는 7만원 이상의 회원비를 요구했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가사도우미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한다고 나와 있지만, 교육은 30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안내 정도라고 답했다. 신원 확인 역시 허술했다. “주민등록증만 가지고 회사로 나오시면 바로 가사도우미 나가실 수 있어요.” 세 업체에서 받은 공통 질문도 있다. “한국분이세요?” 한 업체에는 중국 동포라고 소개했다. 대답은 역시 똑같았다. “신분증만 가지고 회사로 나오세요.” 유료 직업소개소의 중개 행태는 서비스 이용자들의 불만과 맞닿는다.

가사도우미의 노동 환경은 ‘우리 곁의 오지’가 아닌 ‘우리 안의 오지’다. 가사도우미가 돌봄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는 이상 제아무리 고급 아파트라고 해도 별수 없다.

최명선씨가 인터뷰 말미에 가방에서 꺼낸 수첩이 잊혀지지 않는다. 복지관에서 나눠준 가사도우미 수첩 사이사이에는 ‘생선 잘 굽는 법’ ‘세탁 깨끗이 하는 법’ 등이 빼곡히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최씨와 깔끔한 아파트 부엌의 깨끗한 식탁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곳은 ‘누구네 집 부엌’이 아니라 그의 일터라고, 그 수첩은 말하고 있었다.




가사도우미 처우 개선 움직임
이제 ‘가정관리사’라 불러주세요~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 15개 단체가 함께하는 ‘돌봄서비스 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돌봄연대)와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지난 9월 돌봄노동자 보호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법률개정안은 △가사사용인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삭제 △고용·산재보험 조항 신설 △사업주가 아닌 국가가 부담하는 보험료 징수법 개정 등을 골자로 한다. 보험 조항 신설을 4대 보험이 아닌 2대 보험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 돌봄연대는 “당초에는 4대 보험의 전면 적용을 목표로 했으나, 현실의 벽을 감안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고용 불안과 산업재해로부터 우선 보호하고자 고용보험법과 산재보험법에 특례조항을 신설해 2대 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유료 직업소개소 등 중개기구의 역할과 책임 규정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민간 노동력 중개기구의 수수료 및 노동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99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협약’ 초안이 채택됐다. 초안은 가사노동자가 다른 임금 노동자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로관계에서 노동관계법상 보호 조처를 적용하고, 이주 가사노동자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권리를 보호하도록 했다. 중개기구에 대해서는 △등록·면허 기준 마련 △위반사항에 대한 처벌 제도화 △정기적인 조사 △중개수수료로 인한 임금 축소 방지 등을 명시했다. 보고서는 “가사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적 흐름을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지난 6월 ‘아줌마가 아니라 가정관리사라 불러주세요’라는 내용의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가정관리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였다. 김경희 회장은 “여전히 드라마에서는 가정관리사(가사도우미)를 ‘파출부’나 ‘아줌마’로 부르며 이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며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법률개정안이 통과되면 돌봄노동이 괜찮은 일자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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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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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슈퍼우먼’ 농촌여성들
[기획연재] 여성농민의 지위가 곧 평등사회의 잣대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형주 
<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김형주님은 경기도 여주에서 논농사 짓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주군 여성농민회 사무국장과 경기여주여성농업인센터 방과후공부방 별님반 교사로 일해왔으며,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더 이상 내일을 꿈꾸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할 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제일 슬펐다는 김형주씨는, 그러나 “혼자만 꾸는 꿈이 아니라면 계속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가부장적 농촌사회 속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을 기고해주셨습니다. - 편집자 주>
 
환갑 여성농민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출’
 
▲ 여성농민들은 가부장적 농촌사회에서 고된 농사 일에, 가사노동, 돌봄노동까지 맡으며 '이름 없는 슈퍼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고구마 공동농사를 짓는 모습  ©김형주
순자 언니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허리가 아파 고생고생 했더랬습니다. 농사일에 집안일에 그리고 마을 구판장 일까지 손 걷어 부치고 해내고, 남편과 두 아이 뒷바라지까지 깔끔하게 거두던 언니. 이제 좀 살만하니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고, 결국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해서 무거운 짐은 못 든다면서도 올 가을도 남편 컴바인 일 조수로 나섰습니다.

 
정원 언니는 허리 디스크라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허리에 복대를 하고서도 가지 하우스, 호박 하우스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땅을 설설 깁니다. 그만 좀 쉬시라는 동네사람들 말에, 일을 안 하면 더 아프답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이기순 회장님. 당신도 며느리 사위 다 보고서도, 팔순이 넘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되어 지난 여름 가출을 했습니다. 허나 가출을 해봐야 환갑 다된 할머니, 친정도 없고 어디 혼자 들어가 볼 만한 곳도 없어서 괜히 버스만 타고 왔다 갔다 하고서는 그 누구도 몰라주는 가출마저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선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배 과수원 배 봉지를 싸고 시어머니 밥을 차립니다. 기껏해야 동네아줌마 만나 시어머니와 남편 흉 보는 게 다였는데, 남편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부턴 그것도 수월치 않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영미씨는 하루도 빼지 않고 젖을 짜고 소 사료 푸대 나릅니다. 그런데 하필 남편 집에 없을 때 우리를 뚫고 나온 소 두 마리, 그 놈들 잡으러 마을을 동동거리며 쫓아다니다 논두렁에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성질 나쁜 소들이 깔아뭉갠 남의 집 논과 밭도 걱정이지만, 에이쉬 이 놈의 소들도 여자라고 깔보는가 싶어 속에선 천불이 일었답니다.
 
오이 상추 하우스 일에 뼈가 다 녹는다는 윤경씨는 올 여름 몸 건강도 안 좋아졌지만 우울증까지 생겼었답니다. 농사일을 줄이고 싶어도 아이들은 커가는데 농산물 값은 떨어지니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하우스를 줄일 수 없답니다.
 
미숙 언니는 이혼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새색시로 들어온 농촌. 아이 셋 낳고 키우는 동안 남들은 모두 호인이라는 남편의 손찌검에, 남편이 술만 먹는 기색이 보이면 남편을 피해 도망가는 버릇이 생겼고, 결국 그 아저씨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던 밤 야반도주를 해버렸습니다.
 
농사도 가사일도 봉사활동도…슈퍼우먼 여성농민 몫
 
▲경북 봉강 꾸러미(생산자 조직)를 방문, 견학한 안동-의성 여성농민회 분들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까페 제공
이 땅에 여성농민이 삽니다. 농사를 짓는 여성, 여성농민이 삽니다. 남녀평등의 사회, 여성들도 장관을 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너희 나라’ 같습니다. 논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밭일은 여자가 합니다. 농사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남자가 맺고, 여자는 그 빈 자리를 메꿉니다.

 
예전에는 큰 기계 일은 남자가 하고 소소한(?!) 일상의 노동은 모두 여성농민들의 노동으로 메꾸어 왔습니다. 남편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고랑을 타주면, 고추 모종을 심고 고추순 따고 말뚝 박고 줄 메고 고추 따고 말리며 중간중간 잡초를 메는 매일의 계속되는 노동을 담당하는 몫이 여자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여자들도 이젠 1톤 트럭과 트렉터 운전 정도는 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남편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아내가 트렉터로 논을 갑니다. 남편이 컴바인으로 벼를 베고, 아내는 1톤 트럭으로 벼를 실어 나릅니다. 남편과 같이 비료살포기를 메고 이삭거름을 주고 농약 줄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같이 하면서 ‘노동의 장’과 ‘생활의 장’이 분리되지 못하여, 출근도 퇴근도 없는 여성농민. 밖에서 똑같이 흙투성이 일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리모콘을 쥐고 아내는 부엌칼을 쥡니다. 사회적 활동은 남편의 몫이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이제 스스로 농기계도 운전하는 수퍼우먼 여성농민이 메꿉니다.
 
남편이 면사무소로 영농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혼자서 감자를 심습니다. 남편이 지역발전협의회 회의 나가 낮술에 얼큰히 취해 돌아올 때, 혼자서 고추 말뚝을 박고 오이줄을 올립니다. 남편이 친구 부모님상에 조문 간 사이, 들깨를 심고 참깨밭을 맵니다. 남편이 마을회관에 대동회의를 가면,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음식 준비 하다가 회의 끝나면 밥 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마을 이장도 여자가 한다지만, 아직도 대동회의장에 여자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마을도 많습니다.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시부모 뒷바라지야 물론이고, 농한기 동네 어른들 마을회관에 돌아가며 반찬 해 나르는 일에, 부녀회장이라도 맡을라치면 면사무소에 모여 독거노인 김장에 빨래봉사까지, 농업노동에 가사노동 그리고 돌봄 노동까지 모두 여성농민의 몫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정신 없이 수퍼우먼으로 돌아 치는 여성농민들, 그녀들이 이 땅에 삽니다.
 
13년 전, 내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
 
▲ 여성농민회의 진행하고 있는 <천연 치약, 천연 샴푸 만들기> 강좌. 화장품과 세제, 비누 만들기에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제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13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내려올 때는 날 선 사명감 내지는 결기 그런 것들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민단체를 찾아가 8년이 넘게 실무자 일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 생활을 접고 농민이 되리라고 되뇌던 일을 실행에 옮기던 때이니, 설렌다기보다 사실은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귀농’이라는 말만 하면 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왔는지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어 참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군 전체에서 귀농한 사람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지역사람들 중에는 ‘타지 것들’이 도대체 왜 여기까지 내려왔는지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 이름 석자보다 누구 마누라, 누구 엄마로 통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여성과 아이가 행복해야 행복한 사회이며, 농촌이 평등해야 정말 평등한 사회’라는,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여성농민들을 만났습니다.
 
‘여성농민회’는 여성농민 스스로 현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좀더 행복한 여성농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땅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어 마련한 돈으로, 스스로 교육사업도 만들고, 농사일에 엄마를 빼앗기고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농번기 탁아사업도 해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활동이 2002년 농림부 시범사업으로 여성농업인센터 사업에 선정되자,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방과후 공부방도 운영하고, 스스로 벌여오던 교육사업도 더 체계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벌여낸 사업으로 더 많은 여성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농업문제와 세상읽기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미래와 깨끗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인 ‘천연세제 만들기’ 같은 교육도 마을로 들어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면에 하나밖에 없는 복지회관 목욕탕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는 일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정작 센터에서 일하는 회원들은 마음고생도 많고 몸 고생도 많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아니면 그 일들을 누가 할까 합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평등한 삶 위해 함께 꾸는 꿈
 
▲ 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알곡 어린이집 아이들이 토종수수 씨앗으로 모종을 키워, 작은 꽃밭에 심고 거두어 직접 수확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학교담장을 둘러싸고 육상골재채취 사업이 신청되어 학교 바로 옆에서 모래산이 쌓이고 물웅덩이가 파이는 상황이 예상되자, 순하고 세상 모르는 것 같던 엄마들이 변했습니다. 아니,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이들 건강과 교육문제 앞에서는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성들보다 지역의 혈연과 지연과 학연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은 옳은 것은 옳다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눈치 보지 않고 말했습니다.
 
사실 전 제가 엄마라는 사실이,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요구되는 많은 신화들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농민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살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10명이 넘는 여성농민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다음 달 딸을 시집 보내야 하는 친정엄마도 있었답니다. 삶의 무게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밥 한 공기 값이 적어도 커피 한 잔 값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노동의 강도가 세지고 여성들이 차지한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육아와 가사를 남녀가 분담하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꿈을 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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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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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부엌’


고립되고 비가시화되는 노동공간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부엌은 마루를 내려간 다음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의 관련 금기들도 많았다. 가옥 구조가 변하면서 현재 대부분 가정에서 부엌은 밥을 먹는 공간을 포함하며 실내로 들어왔다. 부엌 공간은 이제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소개된다. 그리하여 때때로 부엌이 식사와 휴식공간일 뿐 아니라 그 식사를 준비하는 작업공간이라는 사실은 망각되곤 한다.

일상문화연구회의 <한국인의 일상문화>에 따르면, 부엌의 사정과 식탁의 사정은 다르게 이해된다며 ‘칼국수’의 예를 든다. 칼국수가 김영삼 대통령 재직 당시 ‘간단하고 서민적인 음식’으로 소개될 때 사람들은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칼국수가 부엌에서 만들어지는 데는 상당한 노동력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보지 않고서, 식탁에 앉아 자신이 칼국수를 먹기 쉽다고 ‘간단한 음식’ 운운했다는 것이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인다’는데 그 부엌의 코앞에서 매일 먹고 자는 사람들이 간단한 음식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것은 부엌이 여전히 집에서 홀로 떠 있는 섬과도 같고, 부엌에서 노동을 하는 주부 역시 ‘나 홀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 구조에 있어서 부엌이라는 공간은 주부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집안 구조상 문을 열었을 때 부엌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보통 부엌은 집에서 가장 깊은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평수가 넓어질수록 부엌과 식탁 사이에는 전통가옥 뺨치는 경계선이 생긴다. 공간의 여유가 생기면 부엌은 유리문을 달고 커튼을 드리우며 ‘가족들의 공동공간’이라기보단 점점 더 ‘주부의 개인작업공간’이 되어 숨어 들어간다. 

음식냄새나 조리기구가 내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하려고 해도 그것이 누굴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것은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작업 동선을 길어지게 하고 노동시간 동안 가족들로부터 고립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주부 K씨(54세)는 “식사준비를 할 때 옆에 사람이 있으면 필요할 때 시키게 되지만 혼자 있으면 그냥 혼자 한다”고 말한다. 다른 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함께 준비를 하려고 해도, 각자의 혹은 공동의 휴식공간에 있는 식구들을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번거로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은 부엌을 마음 편하게 ‘외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가족들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앉아있을 수 있다. 부엌은 일부러 보지 않는 한 보이지 않고, 부엌에 있는 사람은 일을 하는 동안 ‘공동공간’인 거실에 있는 가족들을 보거나 텔레비전 등을 볼 수 없다. 식구들이 보는 것은 일하고 있는 주부의 ‘뒷모습’이다. 일반적인 가족들에게 부엌은 먹을 때만 공동공간이 되는 ‘식탁이 있는 곳’이지 공동작업공간은 아닌 것이다.

직장인 M씨(28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부엌에서 엄마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부엌에서 엄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주부 L씨(55세)는 “평생 음식 장만을 혼자 하는 것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어도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TV를 보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 땐 화가 나고 미웠다”라고 말했다.

한편 다용도실은 대부분 부엌과 연결되어 있거나 부엌과 가깝고, 집의 깊은 곳에 숨어있어 가사노동을 비가시화하는 데 일조한다. 양파, 감자, 통마늘 등의 다듬어야 하는 재료들, 관리를 요하는 장기저장 식품 등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로 세탁 관련 기기들까지 위치하고 있다. 걸레, 손빨래, 세탁기 빨래 등 일거리들이 쌓여 있는 이 곳에 주부를 제외한 가족들은 ‘빨래를 가져다 놓으러’ 간헐적으로 방문할 뿐이다. 게다가 세탁기는 집의 후면에 위치한 다용도실 있는데 건조대는 주로 집의 전면(테라스)에 위치하고 있다. 세탁기와 건조대까지의 동선이 길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미관상’이다.

가정은 사회적 임금노동으로부터 혹은 학교로부터의 휴식처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하며, 세탁기 소리도, 음식 냄새도 맡지 않고 ‘쉰다.’ 그 ‘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성된 공간에서 막상 어떠한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어떤 노동이 필요한지는 비가시화 되며, 그러한 노동은 고립되고 평가 절하된다. 이로써 우리의 부엌은 ‘집은 쉬는 곳’, ‘가정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 ‘집안 일은 엄마일’이라는 통념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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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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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 삶을 위한 ‘필요노동’, 집안일
가사노동의 일로서의 가치를 찾아서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경신 
아침나절부터 집안 곳곳에 널려 있는 ‘할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현관에 흩어져 있는 신발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 청소를 하고 걸레로 훔치는 일, 빨래를 분류하고 세탁기를 돌리거나 손 세탁을 하거나 삶는 일, 빨래를 널고 걷고 정돈하는 일,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고 남은 음식물을 정돈하는 일, 음식물 쓰레기, 폐지, 플라스틱, 유리병 등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는 일 등.
 
정말 쉴새 없이 일해도 별로 표 나지 않는 일들이다. 누가 “오전에 뭘 했어?”하고 물어보면 “집안일 했지”하고 대답할 뿐, 세세하게 한 일을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놀고 있다?
 
 가사노동은 누구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이다.
그런데 그 말로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집안일’이 흔히 ‘노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생각해 볼만하다. 주변에서 종종 주부들 스스로가 ‘어떤 일 하나?’는 물음에 ‘놀고 있다’고 대답해 의아해하곤 한다. 집안일 하는 자신을 ‘노는 사람’으로 일컫는 마당에야, 그 자녀들이 “우리 엄마는 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집안일의 가짓수와 일의 경중은 개인차가 있겠다. 모든 빨래를 손으로 하는 사람, 세탁기와 손을 적절히 사용해 빨래하는 사람, 빨래는 오직 세탁기로만 하는 사람, 심지어 건조기까지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어 분명 빨래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또 유리창을 닦는 사람에게는 유리창 닦기가 집안일의 한 가지겠지만, 절대 유리창을 닦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튼 집안일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집안일 자체는 ‘일’임에 분명하다. 부지런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의 하루 일과를 회고해보면,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의 일 이상으로 어머니의 집안일 노동강도가 높았던 것 같다. 별다른 취미생활도 없었고 외출하는 일도 드물었던 어머니는 그야말로 온종일 집안일에만 매달려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집안일이 ‘노는 것’으로 간주되었을까? 그것은 그 일이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집안일을 잘 해서 돈을 아낄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언젠가부터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일은 노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고, 운동을 하는 등의 취미활동이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집안일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 것은 참 억지다.
 
집안일은 안 할수록 좋은가?
 
놀고 있다고 매도될 만큼 일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집안일’이다 보니, 그야말로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팽배한 생각인 듯하다. 열심히 해봐야 몸만 힘들고, 표도 나지 않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는 그 ‘별볼일 없는 일’이 아직까지도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는 형편이라, 돈 잘 버는 여성이라면 가족 중 또 다른 여성(어머니, 자매, 며느리, 시어머니 등)에게 집안일을 떠넘기거나, 아니면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안일을 벗어나려 한다.
 
반면, 돈 못 버는 여성은 가정경제가 허락하는 한에서 편리한 가전제품을 집안에 갖춰놓거나 식당이나 세탁소 등의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몸수고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형편이 어려워 집안일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여성이 있다면, 자기 처지를 한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남성이나, 그 일을 떠안은 여성이나, 될수록 그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즉, 돈을 지불해서라도 가사일의 사회적 서비스 혜택을 누리고, 기계일꾼이나 사람일꾼을 부려 집안일로부터 해방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성별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자립, 집안일을 타인에게 전가해선 안돼
 
  이반 일리히 <그림자 노동> (미토,2005)
그런데 과연 집안일은 누군가에게 전가시켜야 하고, 가능하면 회피해야 하는 무가치한 일일까? 뭔가 고상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일일까? 사적 영역에서 퇴출시키고 사회화해서 극복해내야 하는 일일까? 기술혁신을 통해 우리의 육체를 해방시켜야 하는 노예노동일까?

 
유학시절. 혼자 밥을 챙겨먹고 살면서 난 집안일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좀더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 즉 연구에 받쳐야 할 시간과 노력을 집안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남에게 미루면 귀찮은 일이 되는 것을 누군가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누군가가 내게 그의 몫의 일을 떠넘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게다가 돈으로 손쉽게 해결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라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 까닭은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각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기 몫의 필요노동’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안일 속에서 그 필요노동을 발견했다. 우리가 비록 100% 자급자족을 할 수는 없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소박한 삶에 대한 지향을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 속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도시 자체도 자립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의존적인 공간이지만, 그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의존적 삶을 오히려 돈에 의해 보장받는 자립적 삶으로 착각하고 지낸다. 그래서 돈 버는 일은 생산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집안일은 돈 버는 일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그림자노동으로 전락하고, 소비는 그 일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삶의 진정한 자립은 돈을 버는 데서 얻어지는 것도, 사람이나 도구를 돈으로 사서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데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집안일이 소비에 집중하는 그림자노동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필요노동으로서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고민과 더불어, 자기 몫의 필요노동을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데서 자립적 삶이 출발해야 한다(집안일을 공유하고 분배하고자 할 때조차 자기 몫의 집안일에 대한 분명한 인식 위에서만이 가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삶의 간소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어쨌거나,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노동을 타인에게 전가시켜도 될 만큼 고귀하고 값진 일이 있다는 그릇된 믿음과 허위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난 하루 몇 시간씩 집안일을 하며 수양 중이다.
 
*함께 읽자. 이반 일리히 <그림자 노동>(미토,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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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2. 24. 17:34


[한겨레] 기사원문보기 >>




자본주의여,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라!

[분석]세액공제 확대 입법추진의 복합적 함의

한국 자본주의가 ‘호떡집에 불난’ 상황에 놓이긴 놓인 모양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현실은 비참하다. 2003년 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는 평균 출생아 수)은 1.19밖에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1 밑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사회복지의 허술한 기반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성장잠재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국회 차원에서 매우 기특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전업주부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정치 냉소’를 스스로 제조해온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게 하나요, 무보수 가사노동의 화폐적 가치를 기꺼이 인정한 자본주의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거의 없다는 게 두 번째다.



전업주부 가구 기본공제액 1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지난 5월18일 국회에 법 개정안 하나가 상정됐다.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이 제출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배우자의 종합소득공제에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말정산 때 소득이 없거나 연간 소득 합계액이 100만원 이하인 배우자의 기본 공제액을 현행 1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높여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소득공제에 반영한다는 게 핵심이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이거나 배우자가 없더라도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인 여성인 경우 추가공제 금액을 현행 1인당 연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도 들어있다.

지난 5월24일에는 ‘가사노동 가치 평가와 입법 방안’이란 주제로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도 열렸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주부의 가사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토론자들 모두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보상하자는 데 이견은 없었다. 다만, 그 수준이 문제였다. 소득세법 개정안대로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가 추진되면 정부의 세수가 2조~3조원이 감소할 것이란 재경부 쪽의 주장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에 대해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이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정책은 언제나 인기를 얻어야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런 주장에선 일종의 ‘남성 가부장제’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가사노동에서 여성을 해방할 것이냐, 사회적으로 보상할 것이냐

이계경 의원이 추진하는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은 여성계에서 주류는 아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주요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면, 이는 가사노동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서는 가사노동 영역을 상품-화폐 관계가 지배하고, 이로 인해 ‘가사세계의 식민화’가 이뤄진다는 비판이 ‘가사노동 사회화’의 어두운 측면으로 지적돼 왔다.

여성계의 고민은 지난 5월24일 토론회에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수석국장의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가사노동 인정이라 하는 것이 여성운동의 제도화나 자율성에 있어서 고민이 되는 문제”라며 “가장 우선적으로 가사노동 가치평가가 왜 필요하고 어떠한 과정으로 이뤄지는가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은 문제의 해결책을 다른 맥락에서 찾는다. 여성이 떠맡다시피 하고 있는 가사노동은 ‘노동력 재생산’과 ‘사회재생산’의 핵심을 이루는 데도, 그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사회적 보상’이란 각도에서 풀려고 한다. 아울러, 일자리가 부족한 지금의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정세적인 인식도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에 관심어린 눈길을 주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사노동은 한 해 100조대의 부가가치…대부분은 여성이 전담

△ [표]하루 가사노동 시간의 20살 이상 남녀별 국제비교(단위 : 분)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한마디로 엄청나다. 계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기회비용을 따지는 방식도 있고, 가사노동 형태를 분류해 각각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도 있다. 재경부 쪽은 “전업주부와 취업주부가 가사노동을 똑같이 인정받아야 소득형평성에 맞는다”며 “가정부 비용만큼을 공제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기회비용 방식에 해당한다.

지난 2002년 여성부는 통계청의 ‘1999년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이용해 무보수 가사노동의 총 부가가치를 계산한 바 있다. 무려 143조~169조원이었다. 2004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788조원의 18~21%나 되는 것이다. 이 때에는 무보수 가사노동을 하나의 생산활동을 하는 기업처럼 규정해 가계생산물의 생산과정과 산출액을 산정하는 ‘위성계정’ 설정 방식이 사용됐다. 경제학에서 쓰는 용어를 빌리면, 무보수 가사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기를 거부당하고 있는 거대한 ‘외부경제’를 구성한다. 이 외부경제의 ‘내부화’가 바로 가사노동의 사회적 인정이다. 남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30분에 불과하다. 이 엄청난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여성인 것이다.

현재 추진되는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는 출산율 확대에 1차적 목적을 두고 있다. 그 자체로 획기적인 시도이지만, 한계가 없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세액공제 확대는 무보수 가사노동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집단의 하나인 기업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세액공제는 기업이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을 모두 국가로 미루는 것에 해당할 수도 있다. 재계는 ‘가족수당’이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실제로, 가사노동을 통한 가족재생산과 사회재생산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집단은 국가와 기업이다. 국가는 나라를 유지할 책임이 있고, 기업이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가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차원에서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 방안으로 자녀를 둔 남녀 모두에게 각각 1년의 유급 육아휴직 등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가부장 문화 극복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

아울러, 가사노동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방안은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을 촉진하는 동기 부여가 빠져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일본 정부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의 다양한 노력에도, 일본의 2004년 출산율은 1.2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최근 발표됐다.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독신 및 미출산 여성들이 증가한 탓이다. 일본의 출산율은 지난 1995년 1.42명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다 2003년 1.29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3명 수준을 밑돌았다.

일본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남성 가부장제’가 꼽힌다.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이 일본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이를 상징한다. 실제 통계로만 보면, 일본의 가부장제는 한국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표1> 참조).

지난 1999년 처음으로 통계청이 전국 1만7천가구 10살 이상 4만29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시간조사’(5년 단위 조사)를 보면, 한국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21분이다. 20살 이상 여성만을 보면, 3시간58분이다. 일본(96년)의 경우 4시간3분으로 우리보다 높았고, 미국(92년 9월~94년 10월 2년 평균치) 3시간12분, 핀란드(1987년 평균치) 3시간37분 등이다. 반면, 20살 이상 남성의 가사노동은 일본 28분, 한국 32분, 미국 1시간50분, 핀란드 1시간57분 등이다.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한참 뒤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 원하지 않는 부부에게도 똑같은 혜택 줘야 하나?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 정도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한국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성공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를 위한 동기 부여가 꼭 필요한 이유다.

문제점은 또 있다. 신체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부부의 취향 등)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에도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세액공제 확대가 출산율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이라면, 가족 및 사회재생산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한겨레독자클럽 회원인 이화철(37·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씨는 참신한 제안을 내놨다. 자녀수에 따른 세액공제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3명 이상이 되면 세액공제 폭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가 놓인 ‘호떡집에 불난’ 상황을 어떻게 꺼나갈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는 그 말문을 열고 있다. 일본이 걸어간 정책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업의 부담 방안과 남성 가부장 문화의 완화 방안까지 포괄해야 한다. 이에 소극적일수록 가사노동을 홀대하고 남성 가부장 문화를 방치한 부메랑의 파괴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한국은 아이를 못낳게 하는 사회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많다. 이 가운데 널리 꼽히는 요인이 바로 돈과 남성 가부장 문화이다. 남성 가부장제 문화를 출산율 저하 원인의 소프트웨어라고 한다면, 돈은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돈은 자녀에 대해 ‘돈 먹는 하마’ ‘사치재’라는 비인간적인 표현이 나오게 할 만큼 출산율 저하의 중추를 이룬다. 특히, 경기순환 주기와 출산율 움직임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렇다 해도, 남성 가부장제 문화는 돈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출산율 저하의 역전을 장담할 수 없게끔 한다.

한국의 출산율이 2명 미만으로 줄어든 분기점은 1984년이다.
79년 2.90명이던 출산율은 80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2%를 기록하는 등 84년까지 지속된 (당시까지 한국자본주의가 겪었던) 최대의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으며 2.83명, 2.66명, 2.42명, 2.08명, 1.76명으로 곤두박질쳤다.

△ [표1] 출산률 추이

그 뒤 출산율은 커다란 변동 없이 게걸음을 했다. 85년부터 회복돼 86~88년 3저 호황기부터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맞은 97년까지 1.54(97년)~1.78명(92년)에서 들쭉날쭉 하는 모습이었다. 85년 1.67명에서 89년 1.58명까지 하락했으나, 90년 1.59명, 91년 1.78명으로 상승하는 등 일정한 추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98년 이후 출산율은 뚜렷한 하향세를 보였다. 카드 규제 완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 덕분에 쌓인 ‘쌍둥이 거품’의 영향으로 경기가 급반등한 2000년을 빼곤 하향세가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출산율이 다소 상승한 것도 증가세로 반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3년 출생아 수는 49만3500명으로 사상 최대로 적었다. 출생아 수가 50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만큼 아예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출산하지 않겠다고 여성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출산율이 상승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상당수 기업들에서 주5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맞벌이 가정에서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을 가능하게 하는 비옥한 토양을 이룬다.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비록 극히 미약한 변화이긴 하지만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늘어나고 여성은 줄어드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최근 ‘2004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99년 32분에서 36분으로 4분이 늘어난 반면, 여성은 3시간58분에서 3시간40분으로 18분이 줄었다. 이런 작은 변화를 좀 더 큰 흐름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아울러, 99년이나 2004년이나 3~4분에 그치고 있는 참여 및 봉사활동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 [표2] 20살 이상 한국 남녀의 생활시간 구성

 이를 위해선, 주체의 의식 성숙이 필수적이다. 특히 여성(또는 남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남성(또는 여성)이 벌이를 전담하는 가정에서 더욱 그렇다.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여성(또는 남성)이 벌이를 전담하는 남성(또는 여성)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부부가 함께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사회적 보상을 요구하는 모습이 제대로 방향을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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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