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료/가사노동2012. 2. 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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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여,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라!

[분석]세액공제 확대 입법추진의 복합적 함의

한국 자본주의가 ‘호떡집에 불난’ 상황에 놓이긴 놓인 모양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현실은 비참하다. 2003년 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는 평균 출생아 수)은 1.19밖에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1 밑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사회복지의 허술한 기반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성장잠재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국회 차원에서 매우 기특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전업주부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정치 냉소’를 스스로 제조해온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게 하나요, 무보수 가사노동의 화폐적 가치를 기꺼이 인정한 자본주의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거의 없다는 게 두 번째다.



전업주부 가구 기본공제액 1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지난 5월18일 국회에 법 개정안 하나가 상정됐다.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이 제출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배우자의 종합소득공제에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말정산 때 소득이 없거나 연간 소득 합계액이 100만원 이하인 배우자의 기본 공제액을 현행 1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높여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소득공제에 반영한다는 게 핵심이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이거나 배우자가 없더라도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인 여성인 경우 추가공제 금액을 현행 1인당 연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도 들어있다.

지난 5월24일에는 ‘가사노동 가치 평가와 입법 방안’이란 주제로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도 열렸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주부의 가사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토론자들 모두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보상하자는 데 이견은 없었다. 다만, 그 수준이 문제였다. 소득세법 개정안대로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가 추진되면 정부의 세수가 2조~3조원이 감소할 것이란 재경부 쪽의 주장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에 대해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이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정책은 언제나 인기를 얻어야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런 주장에선 일종의 ‘남성 가부장제’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가사노동에서 여성을 해방할 것이냐, 사회적으로 보상할 것이냐

이계경 의원이 추진하는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은 여성계에서 주류는 아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주요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면, 이는 가사노동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서는 가사노동 영역을 상품-화폐 관계가 지배하고, 이로 인해 ‘가사세계의 식민화’가 이뤄진다는 비판이 ‘가사노동 사회화’의 어두운 측면으로 지적돼 왔다.

여성계의 고민은 지난 5월24일 토론회에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수석국장의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가사노동 인정이라 하는 것이 여성운동의 제도화나 자율성에 있어서 고민이 되는 문제”라며 “가장 우선적으로 가사노동 가치평가가 왜 필요하고 어떠한 과정으로 이뤄지는가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은 문제의 해결책을 다른 맥락에서 찾는다. 여성이 떠맡다시피 하고 있는 가사노동은 ‘노동력 재생산’과 ‘사회재생산’의 핵심을 이루는 데도, 그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사회적 보상’이란 각도에서 풀려고 한다. 아울러, 일자리가 부족한 지금의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정세적인 인식도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에 관심어린 눈길을 주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사노동은 한 해 100조대의 부가가치…대부분은 여성이 전담

△ [표]하루 가사노동 시간의 20살 이상 남녀별 국제비교(단위 : 분)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한마디로 엄청나다. 계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기회비용을 따지는 방식도 있고, 가사노동 형태를 분류해 각각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도 있다. 재경부 쪽은 “전업주부와 취업주부가 가사노동을 똑같이 인정받아야 소득형평성에 맞는다”며 “가정부 비용만큼을 공제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기회비용 방식에 해당한다.

지난 2002년 여성부는 통계청의 ‘1999년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이용해 무보수 가사노동의 총 부가가치를 계산한 바 있다. 무려 143조~169조원이었다. 2004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788조원의 18~21%나 되는 것이다. 이 때에는 무보수 가사노동을 하나의 생산활동을 하는 기업처럼 규정해 가계생산물의 생산과정과 산출액을 산정하는 ‘위성계정’ 설정 방식이 사용됐다. 경제학에서 쓰는 용어를 빌리면, 무보수 가사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기를 거부당하고 있는 거대한 ‘외부경제’를 구성한다. 이 외부경제의 ‘내부화’가 바로 가사노동의 사회적 인정이다. 남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30분에 불과하다. 이 엄청난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여성인 것이다.

현재 추진되는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는 출산율 확대에 1차적 목적을 두고 있다. 그 자체로 획기적인 시도이지만, 한계가 없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세액공제 확대는 무보수 가사노동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집단의 하나인 기업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세액공제는 기업이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을 모두 국가로 미루는 것에 해당할 수도 있다. 재계는 ‘가족수당’이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실제로, 가사노동을 통한 가족재생산과 사회재생산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집단은 국가와 기업이다. 국가는 나라를 유지할 책임이 있고, 기업이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가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차원에서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 방안으로 자녀를 둔 남녀 모두에게 각각 1년의 유급 육아휴직 등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가부장 문화 극복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

아울러, 가사노동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방안은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을 촉진하는 동기 부여가 빠져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일본 정부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의 다양한 노력에도, 일본의 2004년 출산율은 1.2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최근 발표됐다.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독신 및 미출산 여성들이 증가한 탓이다. 일본의 출산율은 지난 1995년 1.42명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다 2003년 1.29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3명 수준을 밑돌았다.

일본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남성 가부장제’가 꼽힌다.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이 일본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이를 상징한다. 실제 통계로만 보면, 일본의 가부장제는 한국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표1> 참조).

지난 1999년 처음으로 통계청이 전국 1만7천가구 10살 이상 4만29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시간조사’(5년 단위 조사)를 보면, 한국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21분이다. 20살 이상 여성만을 보면, 3시간58분이다. 일본(96년)의 경우 4시간3분으로 우리보다 높았고, 미국(92년 9월~94년 10월 2년 평균치) 3시간12분, 핀란드(1987년 평균치) 3시간37분 등이다. 반면, 20살 이상 남성의 가사노동은 일본 28분, 한국 32분, 미국 1시간50분, 핀란드 1시간57분 등이다.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한참 뒤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 원하지 않는 부부에게도 똑같은 혜택 줘야 하나?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 정도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한국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성공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를 위한 동기 부여가 꼭 필요한 이유다.

문제점은 또 있다. 신체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부부의 취향 등)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에도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세액공제 확대가 출산율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이라면, 가족 및 사회재생산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한겨레독자클럽 회원인 이화철(37·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씨는 참신한 제안을 내놨다. 자녀수에 따른 세액공제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3명 이상이 되면 세액공제 폭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가 놓인 ‘호떡집에 불난’ 상황을 어떻게 꺼나갈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가사노동 세액공제 확대는 그 말문을 열고 있다. 일본이 걸어간 정책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업의 부담 방안과 남성 가부장 문화의 완화 방안까지 포괄해야 한다. 이에 소극적일수록 가사노동을 홀대하고 남성 가부장 문화를 방치한 부메랑의 파괴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한국은 아이를 못낳게 하는 사회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많다. 이 가운데 널리 꼽히는 요인이 바로 돈과 남성 가부장 문화이다. 남성 가부장제 문화를 출산율 저하 원인의 소프트웨어라고 한다면, 돈은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돈은 자녀에 대해 ‘돈 먹는 하마’ ‘사치재’라는 비인간적인 표현이 나오게 할 만큼 출산율 저하의 중추를 이룬다. 특히, 경기순환 주기와 출산율 움직임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렇다 해도, 남성 가부장제 문화는 돈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출산율 저하의 역전을 장담할 수 없게끔 한다.

한국의 출산율이 2명 미만으로 줄어든 분기점은 1984년이다.
79년 2.90명이던 출산율은 80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2%를 기록하는 등 84년까지 지속된 (당시까지 한국자본주의가 겪었던) 최대의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으며 2.83명, 2.66명, 2.42명, 2.08명, 1.76명으로 곤두박질쳤다.

△ [표1] 출산률 추이

그 뒤 출산율은 커다란 변동 없이 게걸음을 했다. 85년부터 회복돼 86~88년 3저 호황기부터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맞은 97년까지 1.54(97년)~1.78명(92년)에서 들쭉날쭉 하는 모습이었다. 85년 1.67명에서 89년 1.58명까지 하락했으나, 90년 1.59명, 91년 1.78명으로 상승하는 등 일정한 추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98년 이후 출산율은 뚜렷한 하향세를 보였다. 카드 규제 완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 덕분에 쌓인 ‘쌍둥이 거품’의 영향으로 경기가 급반등한 2000년을 빼곤 하향세가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출산율이 다소 상승한 것도 증가세로 반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3년 출생아 수는 49만3500명으로 사상 최대로 적었다. 출생아 수가 50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만큼 아예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출산하지 않겠다고 여성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출산율이 상승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상당수 기업들에서 주5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맞벌이 가정에서 가사노동의 민주적 분담을 가능하게 하는 비옥한 토양을 이룬다.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비록 극히 미약한 변화이긴 하지만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늘어나고 여성은 줄어드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최근 ‘2004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99년 32분에서 36분으로 4분이 늘어난 반면, 여성은 3시간58분에서 3시간40분으로 18분이 줄었다. 이런 작은 변화를 좀 더 큰 흐름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아울러, 99년이나 2004년이나 3~4분에 그치고 있는 참여 및 봉사활동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 [표2] 20살 이상 한국 남녀의 생활시간 구성

 이를 위해선, 주체의 의식 성숙이 필수적이다. 특히 여성(또는 남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남성(또는 여성)이 벌이를 전담하는 가정에서 더욱 그렇다.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여성(또는 남성)이 벌이를 전담하는 남성(또는 여성)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부부가 함께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사회적 보상을 요구하는 모습이 제대로 방향을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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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