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담은 지난 5월, 서울영상집단 김청승감독이 한독협 회원내부 SNS에 올린 “No Competition! No Capitalism!! Boycott the pitching!!! 보이콧에 뜻 모아주실 분들은 아래 메일로 이름과 연락처 남겨주세요.”라는 게시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올해부터 한독협 뉴스레터를 재개한 사무국은 서울영상집단 회원탐방 기사를 통해 김청승감독의 문제의식을 나누고자 기획했다.
관련하여 김청승감독, 이진우감독과의 기획회의를 통해
‘피칭제도는 한독협이 찬반을 나누어 공식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러함에도 비판적 의견에 대해 공론화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의 필요성, 변화된 제도와 환경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의견 공유’를 목표로 단체탐방이 아닌 ‘피칭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의 대담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이야기의 출발은 ‘피칭’에서 시작되었으나 대담의 내용은 독립영화제작환경 변화 가운데 새롭게 출연한 제도를 바라보는 태도, 정부기관의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의 문제점과 독립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지향점 그리고 신진작가들을 위한 환경에 대한 고민까지, 현재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문제와 고민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대안을 찾기 위해 모색해야할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대화하길 제안하고 있다. 장시간 솔직하고 다양하게 나눈 그날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한다.
경순 : 지난 인디다큐페스티발 포럼 때(※참고 : 인디다큐페스티발2015 포럼 '다큐멘터리 피칭을 논하다' http://www.sidof.org/1200) 우리, 반대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에 대한 의견제시는 됐잖아. 오늘 자리는 기존의 문제에서 어떤 식으로 개선되어야 할지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김청승 : 저는 문제점이 공유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디다큐포럼만 해도 직접 와서 본 사람이 몇 안 되고 녹취록이 충분히 읽혔는지도 모르겠고. 피칭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충분히 고민되고 공유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김경만 : 기성 감독들은 참여 경험이 있어서 제작지원과 피칭의 차이를 알아. 하지만 이제 막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피칭제도밖에 못 들어본 사람도 있어.
박경태 : 피칭은 시장을 만들겠다는 거잖아.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 문제는 여긴 시장이 없어. 그래서 외국에서 디시전메이커라고 데리고 오잖아요. 판매자와 공급자를 허허벌판에 던져두고 여기서 시장을 만들어봐라 이런 건데. 수요와 공급을 억지로 만드는 거야. 시장이라는 게 자유경제학에서는 자연발생적이라고 설명을 하잖아. 그런데 한국의 피칭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 ‘쇼’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여러 상황이 맞물려 제작지원이란 이름 자체도 피칭으로 변하고 있는 거지.
김청승 : 통칭 피칭이라고 하면 단순 제작지원의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제작 전반에 걸친 시스템으로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 지원에 선택되기 위해서 기획 단계부터 영향을 받고 배급까지 통으로 휩쓸리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공적자금으로 제작지원 받던 거랑 지금 상황은 달라진 거잖아요. 제작자들과 수요자들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는가, 봤을 때 저는 없었다고 느껴요. 어느 날 새로운 시스템(피칭)이 생겼는데 갑자기 다들 따라가고 있는 거잖아요. 하자 말자를 떠나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검증과정이 필요한건 아닐까, 그래서 운을 띄워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김경만 : 단순히 명칭만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죠. 왜냐면 제작지원 제도 자체가 많지가 않았고, 피칭이 제작지원보다 초과해서 많이 생겼는데, 시장에서 선택하고 싶은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단 말이에요. 시장이 선택하지 않는 영화들이야말로 독립다큐멘터리의 정체성과 굉장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지원제도는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건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로 생각할거냐, 라는 근본적인 질문인 거고. 피칭으로 바꿔지면서 ‘좋은 영화가 뭔가’란 질문을 할 여지가 많지가 않아요. 좋은 영화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건 피칭 제도에 들어가서 뽑는 구매자들의 몫인 거죠. 자본을 회수할 수 있을 만한 영화들. 그러면 그게 과연 좋은 영화냐, 라고 물어봐야 되는 거죠.
박경태 : 현재 한국의 독립피디 같은 경우 생존권이 걸려있어요. 이들은 피칭을 해야 할 이유가 있어. 방송국의 외주제작으로 인한 노예계약 문제 등. 피칭이란 제도 속에서 자율성을 얻을 수 있는 게 여기밖에 없다는 거죠.
김경만 : 내가 반대하는 건 피칭제도 자체가 아니에요. 영화의 스펙트럼이 넓은데 피칭이 맞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어. 그런 상황에 제작지원 제도를 피칭제도로 바꾸지 말라는 거야. 더불어 제작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거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래요.
경순 : 우리는 제작을 해야 하는 거고 독립영화를 한다는 거지. 이 전제로 어떻게 지원을 받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고 배급하는가, 환경인 거야.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야지. 모든 영화를 다 포괄할 수는 없고. 그런데 이전처럼 독립영화진영내에서 독립영화 지원정책에 대해 우리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해왔어. 정권 바뀌고 한독협이 감사를 받고 독립영화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교류나 논의가 없어진 거지. 그러면서 독립영화 활성화도 없어져버린 거지. 이 상황에서 경만의견에 공감해. 다양한 독립영화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에 포커스를 두는 지원이 아니라는 거지, 피칭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일단 피칭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 내가 보기엔 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거야. 독립영화에서 다들 글로벌만 지향하는 건 아니거든, 로컬에서 이야기도 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그게 때로는 역사가 될 수도 있고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해외 디시전메이커들은 대부분 보편적인 정서를 얘기해. 이게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드는 존재 이유를 갉아먹고 있는 건데. 이런 문제의식이 공유가 안 된다는 거야. 나는 그런 면에서 피칭이 문제라는 거야, 피칭제도 자체라기보다는. 영진위의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우리가 계속 의견을 못 내고 지적을 못 해왔다고 생각해.
김청승 : 영진위의 지원제도에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피칭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개인이 거기에 맹목적으로 휘말리고 있다는 게 제 가장 큰 문제의식 이예요. 비슷하게 영화를 시작한 감독들 신다모 내에서, 경험이 적은 감독들과 제작지원관련 워크숍을 해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다른 제작자들의 작업과정을 지켜보기도 했어요. 처음 기획안으로 시작해서 시나리오 수준의 구성안, 그 뒤에 자료들, 촬영목록, 별도로 PPT 자료가 들어가고, 점점 분량 경쟁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상하잖아요, 이게. 이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느끼는 와중에 피칭은 기본 서류에 공개발표까지 요구하고 있으니까. 다큐는 영상을 통한 말하기인데, 기획 단계에서 과도한 글쓰기 능력이 필요해지고, 과장해서 말하면 피칭장에서 배우로서의 자질까지 요구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한명의 제작자에게 돈을 미끼로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진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해 아무도 말을 안 해.
경순 : 하나 물어볼게. 청승은 자기가 벌어서 만들지 않는 이상, 제작지원과정에서 서류심사도 기획안심사도 아니라면 어떤 방법이 공정하다고 생각해?
김청승 : 솔직히 모르겠어요. 서류의 질과 양도 아니고. 그럼 발표로 가능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순 : 잠깐, 청승 생각으로는 제작지원을 다 없애야겠네, 그럼?
김청승 : 사실 저는 피칭뿐만 아니라 제작지원까지도 반대하는 입장이긴 해요. 지난 인디다큐포럼때 강석필PD의 얘기를 듣고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 서류심사로 충분하지 않느냐 라고 했을 때, 강석필PD의 입장은 피칭은 안 되고 서류심사는 된다면 그 기준은 뭔가, 둘이 기본적으로 다른 게 뭐냐, 역질문을 했었어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아요. 제작지원과 피칭이 각각 문제점이 있죠. 하지만 공통의 문제는 선별심사라는 것.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선별심사의 과정. 요즘 TV에서 유행처럼 많아진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다들 불편함을 느끼면서 우리도 비슷한 심사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죠. 저는 단체 운영을 하든 개인적으로 영화를 만들던 간에 지원이라는 게 사람을 의존적, 타성적으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제작지원까지 반대를 하는 거구요.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제작지원까지 다 보이콧 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경순 : 피칭이란 제도 자체는 프로덕션이라는 시스템을 요하는 거란 말이지. 해외처럼 프로듀서가 기획해서 감독을 섭외하는 체제로 일하지 않았던 한국독립영화 환경에서 감독 일인에게 과부하가 일어나고 있어. 또 하나는 피칭을 준비하면서 나의 작품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뛰어들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거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독립영화 환경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김경만 : 피칭을 통해서 좀 더 변별력 있게 고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근데 사실 피칭 제도가 영화를 고르는데 있어 제작지원보다 더 도움이 될까? 난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 굳이 피칭 형식을 만들어 내는 건 제작자를 위한 게 아니라 영화제나 판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느껴져. 그걸 맞춰서 따라가다 보니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거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거지. 제작지원을 가지고 충분히 이 영화가 어떤 건지 얘기할 수 있어. 제작지원을 모든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선별이나 선택이 불가피한 거지만. 피칭이 선호하는 건 그거랑 스펙트럼이 다르다는 거야. 좁다는 거야. 소재 중심의 영화만 선택되기가 쉬워진다는 거야. 물론 선택된 영화들 중에 좋은 영화도 있겠지. 그걸 부인하지 않아. 내가 말하는 건 전체적인 경향성과 중력장, 끌어당기는 힘이야. 그런 식으로 독립영화 판이 시장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거지. 피칭제도 없애라 마라 얘기하기 전에 피칭은 제작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영화예술에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다른 화법을 하는 영화가 있어. 피칭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사실 많이 있다고. 그런 영화들을 어떻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겠어. 제작지원 제도라고 해서 그 영화의 예술성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피칭이란 제도가 깎아먹는 건 피할 수 있다는 거야.
경순 : 백 프로 동의해. 네 사례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구체적인 얘기들이 사례로 나와야지.
김경만 : 내 사례를 얘기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게 선거 때 찍은 촬영분량이 많이 들어가. 그런데 선거 다큐멘터리냐 하면 그건 아니야. 하지만 이번 정권 얘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 소재지. 제작지원 사업은 촬영기간이 제작지원 기간에 포함돼야 하는데 나는 선거 기간 동안만 촬영할 수 있을 뿐이잖아. 그게 맞지가 않아서 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어. 제작지원을 몇 군데 냈는데 제작지원이 안됐지. 안된 이유는 준비를 안했기 때문일 수 있어. 하지만 피칭을 참여하면서 내가 느낀 문제는, 영화제에서 해외 디시전메이커들을 초청하는데 이들이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얼마나 이해가 있냐는 거야. 피칭때 내가 발표한 걸 듣고 해외 디시전 한 명이 질문을 했어, 내레이션을 넣어보지 않겠냐. 이건 몰이해인거지. 이건 내 발표가 그 심사위원들한테 전혀 무용했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이 과정 자체가 영화 만드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안 된다는 하나의 사례인 거지.
김청승 : 예전에 부산영화제에서 제작지원 받고 여러 해외 감독들과 프로듀서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었다. 해외에서는 다큐멘터리는 정확하게 상품으로서 규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1-2명이어야 한다. 이 주인공은 캐릭터가 특별해야 된다. 인물이 재미없으면 사건 자체라도 스펙터클하고 자극적이고 재밌어야 한다.’ 등의 형식이 있는거 같아요.
박경태 : 형식이라는 게 외국이라고 다 일반화시킬 수도 없지만, 문제는 아시아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매년 관심사는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누가 됐다더라, 그들과 얘기하다보면 피칭에 대한 하등의 의심이 없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자기를 발표한다는 거지. 나도 DMZ에서 발표를 했지만 내 아이디어를 노출하는 거잖아. 사람 모아놓고 내 개념, 아이템, 다 말해야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돼. 게다가 청승감독이 지적했듯이 짧은 시간 구매자들에게 모든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형식은 쉽고 소재는 자극적이어야 하는거죠. 하나 더 얘기 해보면 정권이 바뀌든, 정책이 바뀌든 피칭으로 인해서 성과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성과도 없는데 왜 여기에 돈을 쓰냐, 하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는 신기루 같다고 생각해. 영진위, 서영위 제작지원은 성과가 있었단 말이야. 이걸 없애는 건 상당히 부담이 될 거라고. 피칭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돼.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 중 하나야.
경순 : 나 같은 경우,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내가 학생들 피칭준비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여기에만 목매지 마라 하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도전의 기회이고 피칭 하면서 자기 것이 업그레이드 됐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어. 피칭이 이미 우리에게 많이 스며들어 있어.
김청승: 영화제에서 상영관보다 피칭행사장에 사람이 더 몰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제는 영화제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피칭을 어떻게 하는가가 먼저인 거예요.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의 페북 글을 봤는데 이 친구도 막연히 피칭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피칭을 하는 자기 친구를 보면서, 나도 저기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피칭이 유행하는 이유는, 피칭제도를 운영하는 영화제 운영진의 필요성도 있지만 좀 더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을 하고 싶은 감독들의 욕망도 투영된 거고 인정받고자 하는 신진 감독들의 욕구도 투영된 거죠.
박경태 : 정부의 문화정책이 굉장히 신자유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이 신자유주의 문화정책이 피칭하고 유사성이 있다는 거야. 문화정책에서 상업적 성과가 주요 기준이 되다 보니 판단을 민간 자본에게 맡기고... 그것이 서양이면 더 좋잖아요? 국제행사를 저렴하게 치를 수도 있고.. 그래서 피칭이 민영화 같은 거죠, 물론 기간 시설을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 아니기에 억측이 있지만 의료민영화를 보면 유사하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피칭은 사실 규모가 작아. 다른 정책사업에 비해 푼돈도 안 되는데 정부의 주요정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공적자금 때문에 독립영화가 휘청휘청하는, 독립영화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게 비극적인거지.
김경만 : 이 자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비교적 신진작가들이 이것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처음 시작하는 신진작가들에겐 애초에 이런 고민이 없을 수 있잖아.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세상이 그런 식으로 바뀌고 있으니까.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독립영화 판에 들어와서 독립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왜 독립영화가 필요한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 문제가 피칭문제랑 같이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박경태 : 피칭은 공개된 자리에서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문제는, 신진작가들이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기획개발 단계에서 모든 것을 오픈해야 돼, 상품이 되기 위해서. 여기서 저작권 침해 사례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거야. 만들어진 걸 가지고 가서 판매하는 거라면 침해받을 위험이 없이. 그런데 신진작가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얻고 싶고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자기 것을 홍보할 수밖에 없다고. 신진작가들이 굉장히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거지. 피칭이 소재사냥터가 돼서 사냥꾼하고 먹잇감만 남는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영화정책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발언을 해야 해.
경순 : 시장을 전제로 한 피칭은 인천다큐포트 외에 거의 없어. 현재 DMZ국제영화제 피칭은 여러 차례 형식이 바뀌면서 제작지원에 가깝고. 현재 피칭에 참여하는 이들은 신진 독립영화감독과 비교적 경험이 있는 독립피디들이 많고. 피칭을 할 때는 적어도 제작이 50%이상 진행이 돼서 말 그대로 상품으로 만들어질 때 어떻게 배급할지 투자를 받는 거야. 사전제작의 의미에서는 방식을 다르게 가야되는 거고. 이 부분에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봐.
박경태 : 독립피디들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해. 방송에서 외주제작 시스템 말고 저작권 보호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해. 지금 한국의 방송국은 독점 구조잖아. 해외 CBS, BBC, PBS 같은 경우 마케터들이 나와서 찾으러 다닌다고. 그런데 KBS, MBC 그럴 이유가 없거든. 독립피디들이 저작권 보호 받으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제작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힘든 상황에서 저작권을 보호받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영화가 된 거지. 이들은 여기에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야.
경순 : 물론 처음 생겨날 때 문제의식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봐. 독립다큐라는 게 대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걸 고민하면서 지금 방식이 된걸 텐데, 그게 나빴다고는 보지 않지만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가면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거지. 나는 사전 기획 단계에서 저작권 문제나 신진감독들의 피해 문제를 제외하면, 공개 발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봐. 특히 다큐는 사회적 의제가 많기 때문에 관련분야 사람들과 정보공유를 위한 공개발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게 어떻게 보면 배급과도 관련이 있고 홍보를 할 수 있는 거지. 이건 대안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들어줘.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영화제에서 제작지원 작품 공개발표가 있다고 했을 때, 투자할 사람에 한정된 게 아니라 작품과 관련 있는 학교, 단체, 기자들을 초청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지. 이러면 좀 생산적인 공개발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거야.
김경만 : 피칭이건 아니건 명칭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공개적인 발표라는 형식을 통해 경쟁을 시켜서 돈을 주는 거 자체가, 거기서 골라지는 선택지가 협소하다는 게 문제지. 그래서 계속 얘기를 하는 건데. 사람을 뽑아서 발표를 하는 건 알아서 선택할 문제야. 하지만 흐름이나 제도가 새로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해 볼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모두 알고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양성의 문제거든. 결국 독립영화가 기대고 있는 게 다양성이란 측면인데, 그걸 깎아 먹고 있는 게 시장의 확대니까 시장에서 선택되는 게 항상 팔기 쉬운 거잖아. 물론 독립다큐 중에도 거기에 선택될 수 있는 사람들 있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앞으로 많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 영화는 앞으로 더 만들어지기가 힘들어질 거라고. 그랬을 때 우리가 보지 못할 영화들은 어떤 걸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새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다른 형식의 영화를 많이 봐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수가 없겠지. 그 정도만 공유되어도 나는 좋겠다고 생각해. 그 정도도 공유되어있지 않다고 나는 보는 거야. 특히나 신진에게는 워낙 생존의 길이 좁으니까 피칭이라도 해서 영화를 만들고 지속 하는 게 중요하겠지. 피칭을 없애자는 얘기도 아니야. 전체적인 흐름과 경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거야. 특히나 이런 마이너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한테는 정체성 측면에서.
김청승 :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들, 완전 신진작가들이 아닌 이상 알고는 있을 거예요. 자기모순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자기 작업의 방향과 작업을 하는 방식이 충돌할 거예요. 근데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건데, 언제까지 이걸 참고만 있을 거냐는 질문을 하고 싶어요. 다들 너무 바로 코앞만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영화가 다양해지는 게 독립영 화의 가치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 영화가 자본을 얻어내는 방식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이걸 누가 해요. 다들 내 영화 만들어야 된다고 코앞만 보고 있는데. 저는 내가 만드는 영화가 대중영화나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영화란 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 피칭 시스템은 불특정다수를 위한 영화를 지향하고 있고 참여자들도 그런 방향으로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독립피디들이 지향하는 바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금 이게 섞여 있는 거잖아요. 적어도 독립영화를 한다면 독립다큐멘터리스트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것 아니냐, 가끔 그런 질문을 해요. 그럴 때 꼭 ‘독립’이라고 해야 해? 나는 그냥 ‘다큐멘터리스트’야, 이런 식으로 대답한단 말이죠. 특정 단어를 떼어내버리는 것이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버리는 거죠. 이게 쌓여갈 때 제작환경이나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경순 : 많이 걱정되지. 그게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인거지,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문제들, 피칭이 만들어낸 문화열풍 때문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게 다 피칭 때문일까는 생각해봐야 해.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 특히 독립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풀이 너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봐. 옛날에는 한독협의 다큐분과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독립다큐가 한독협 다큐분과로만 묶이진 않거든. 이런 의견이나 분위기를 모아낼 수 있는 풀이 없어.
김청승 : 한예종 친구들, 신다모, 한독협 다큐분과 등 풀이 없다기보다는 풀이 너무 다양해진 거 아닐까요? 요즘 영화제나 뒷풀이 자리 가면 그룹별로 앉아 있잖아요. 각 그룹별로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닌데 따로따로 교류하고 있다는 거, 그게 이전과 달라진 지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경순 : 그게 환경이 달라졌다는 걸로 볼 수도 있어. 예전에는 혼자 영화를 만들었다면, 2000년대 전후로 영화가 흥행하면서 중고등학교까지 영화과가 생겨났잖아.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거지,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내가 말하는 풀이란 건, 달라진 환경에서 우리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흐름을 공유할 틀이 없다는 거야, 각자 얘기들은 되게 많으면서도.
김청승 :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거 같아요. 반면에 제작지원 정보, 피칭 정보는 활발하게 주고받는다는 거죠.
박경태: 나는 워낙 고립되어 있어서 잘 모르지만, 김청승 감독이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 우르르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웃음). 지니고 있는 생각들을 좀 더 공개적으로 나눴으면 좋겠어. 여러 단위가 다양하게 생겨나는 상황에서 각 단위의 요구들로 전파진흥원이나 콘텐츠진흥원, BCPF 등등 기관과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외부에 있다는 거야. 전략적으로 우리가 지닌 문제들에 대해 노력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토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를 모으고 실태조사도 하고. 독립다큐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고 처한 위치나 상태도 다 모르잖아. 비판을 뒤에서만하지 않고 구체적인 팩트와 대안, 전략을 위한 공론화가 중요해.
경순 : 경만이 얘기했던 영화의 다양성이 없어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이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이 협소해지는 것이 큰 문제의식이야. 기존에 작업하던 이들은 힘들다고 해도 각자 만들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신진들은 다르다는 거지. 이 문제가 우리가 짚어야 할 문제들 중에 정말 중요한 문제다, 피칭을 없애냐 마냐가 아니라. 우리랑 똑같은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라는 게 아니고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고민을 파고들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환경을 만들 것인가, 그러려면 우리가 모여야 하는 거지. 모여서 논의를 깊이있게 해야하는 거지.
김청승 :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되는데 없잖아요, 자생력이. 상대가 기업이 됐건 정부가 됐건 다 기대고 있으니까. 우리가 가진 게 너무 없고 한정적이다 보니까, 피칭이건 뭐건 쇼를 하라 그러면 할 수밖에 없고.
경순 : 제도가 없어서 영향 받는 것도 있지만 제도와 무관하게 우리가 만들어낼 건 없는가도 고민해야 돼. 지원에만 의존하면 만날 휩쓸릴 수밖에 없고. 우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할 건지. 다들 힘든 상황이지만, 아이디어를 모으고 서로 조금씩 투자해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거지. 지금 영진위, 문제가 많아. 그렇다고 계속 영진위하고 싸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거야. 빈틈에서 정책적으로 대안을 만드는 게 필요해. 생각들을 모으면 아주 방법이 없지 않다고. 우리가 네트워크를 안 만들어서 그런 거지. 시작을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이게 문제지. 경태가 이야기하는 것도 아이디어가 좋은 게 많단 말이야. 오늘 멤버가, 사실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었던 멤버야. 우리가 당장 어떤 대안을 만들지는 못해도 어떤 환경과 어떤 분위기로 할 수 있는지 느슨한 대화모임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조직,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공식, 수다, 이런 식으로 생각 있는 사람들 먼저 모여서. 다들 그런 고민 있잖아?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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