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벌써 중순이다. 부산영화제에 다녀온 뒤 실내암벽장을 다니는게 요즘 즐거움 중 하나다.
어제는 하루종일 김자인 선수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오늘은 종일 암벽에 대한 자료들을 들춰보고 있는중.
순간 일요일이라는 걸 까묵고 운동하러갔다가 문이 닫혀돌아오는 어이없는 지경까지 돌입했다는 야그.
그러다 문득 잊고있었던 샹후스의 암벽등반이 생각나 간만에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
무슨 여행일지 올리는데 이러다 일년걸리겠다.ㅎㅎ
7년전 쇼킹패밀리를 편집할 때 운동삼아 실내암벽장을 찾았더랬다.
산을 탈때와는 달리 몸의 여러근육을 다양하게 이용해야 하고 심지어 머리까지 써야하는 이 운동이 참 맘에 들었었다.
하지만 난 실내암벽보다는 야외에서 체험하는 암벽등반이 훨씬 재밌었다.
한참 맛을 들일즈음 영화막바지 편집일정에 쫒겨 결국은 초보딱지를 떼기도 전에 암벽을 중단해야 했고
이래저래 해외촬영이 많은 레드마리아까지 겹쳐 오랜시간 그 재미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근데 샹후스에서 그레구와 덕분에 잊었던 그 경험을 다시 하게되었고 난 한국에 돌아와
집에서 가까운 실내암벽장을 찾았다.
헉...근데 원걸. 사람이 너무 많다.
7년전만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던거 같은데 웬 클라이밍 바람이 분건지 사람이 바글바글.
게다가 강습비도 엄청 올았다는 야그. 암장대표에게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씩 웃으면서 그런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맞다.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엄청난 속도로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것이 뭐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기가 힘들지경이니 예전 강습비를 생각하며
아쉬워 하는 내가 더 웃긴건지도 모르겠다.
우자지간 다시 샹후스로 돌아가서...그레구와는 친구와 내가 초보자임을 감안해서
쉬운 코스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10미터 정도의 절벽에 10개가 넘는 코스들이 쭉 있었는데 이게 보기와는 다르게 쉽지가 않았다.
로프를 잡는법부터 시작해서 그의 초간략 강의가 시작됐고
나는 영어로 친구는 스페인어로 번갈아 내용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로프를 잡는 법과 암벽타는 사람을 위해 로프를 잡아주는 빌레이에 대한 공부까지 정말 초간단 강습.
그런데 재밌는건 지난번 스위스에서 세일링 보트를 탈때도 느낀거지만 정말 인자하고 부드러운 남편들이
직접 무엇인가를 가르칠때 태도가 예민해지는 순간.
세일링의 방향키를 조금만 잘못 잡으면 집중하라고 계속해서 월터는 인상을 찌푸렸었는데
이날도 그레구와는 빌레이 하면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버럭 화를 내면서 집중하라고 화를 냈다.
사실 남편이 아니라 나라고 해도 그랬을거다.
아무리 즐기는 레포츠라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사고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민함 덕에 나도 옆에서 진지하게 배울 수 있어 좋았고 그런 그들의 자세가 아주 맘에 들었다.
그런덕에 결국 우린 지레 포기할 수도 있었을 코스를 네 개나 정복했다.
물론 선수들에게는 가벼운 코스에 불과하지만 처음 시도해 보는 우리로서는
엄청난 성취감에 세상을 다 정복한 기분이었다는.
그러니 내가 어찌 이 기쁨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이날의 즐거운 감동을 맛본 친구는 덩달아 암벽타기의 매력에 빠져
계속 암벽타기에 도전하겠다는 포부까지 나한테 자랑질해댔었다.
하지만 뭐 나두 한다 이거지.
물론 몸이 예전같지 않아 날렵함은 사라지고 머리까지 둔해져서 강사가 지정해 준 벽에 붙어있는 몇개의 홀더를
한번에 기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기는 하지만
까짓거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도전하고 싶은 산을 정해 나도 한번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샹후스에서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또하나의 코스가 남아있었는데 바로 패러글라이딩.
친구가 선물로 비용을 지불해주어 가뿐하게 타기만 하면 됐는데 샹후스에 날씨가 안좋아져서
사실 먼저 떠난 친구도 못하고 떠났었다.
그런데 내가 떠나기 며칠전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해서 나도 역시 못타고 가는줄 알았는데
웬걸...샹후스는 내가 꼭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떠나기를 바랬는지 기가막히게도 그날 날씨가 좋았다.
그럼 나도 당근 멋지게 날아줘야지 하며 하늘을 나는데 정말 달리다가 발을 떼는 바로 그 순간이
와우...젤로 좋았던거 같다.
예전에 번지점프를 할때도 바로 발을 떼는 그 순간이 가장 공포감과 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는데
패러를 할때도 딱 그 기분.
근데 너무 안전하게 나는 느낌이어서인지 생각보다 상공에 떠있을때는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역시 스릴이 껴줘야 뭐든 재미가 있다는...ㅋ 하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선물이니
맘껏 사랑을 창공에 뿌리며 이 시간을 기억해야지.^^
암벽등반이 은근히 장비가 많다.나는 예전에 쓰던 안전벨트와 하강기 정도를 가지고 갔는데 그레구와가 모든 장비를 구비하고 있는데다 나에게 헬멧까지 선물해주어 등반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만만해 보이는 암장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매 코스마다 그레구와가 먼저 올라가서 우리는 대충 요령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올라가는 사람이 안전하게 올라 갈 수 있도록 자일을 잡는 요령이었는데 이것도 이번에 확실하게 익혔다.
드디어 등반시작. 암벽등반의 묘미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거 같은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아낼때의 즐거움.물론 이과정에서 몸의 힘을 배분하는 요령도 터득하고 정말 딸리는 체력의 한계도 경험하게 된다. 아흐...운동 열심히 해야쥐.ㅋ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언제 그런생각했나 싶을만큼 신난다. 그래 바로 이거거덩...하하하
암벽을 타고 내려올때는 자일에 의존해서 바위를 콩콩찍고 내려오는데 난 이것도 정말 좋다. 이런건 좀더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더 신날듯.ㅎ
부부가 팀을 이루어 등반하는 모습 보기좋다. 젠장 이럴때는 파트너가 좀 샘나네.흥!!
친구는 원래 등산은 좋아해도 암벽등반은 무서워서 싫다고 했었다. 단지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함께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웬걸 한번 해보더니 완존 신났다. 내가 돌아간 후에도 자기는 맨날 하러 올거라고 자랑질하더니만 나중에 연락해보니 아직도 못갔단다.ㅎㅎ
아침 8시에 예약을 해서 우린 일찍부터 산에 올라갔다. 패러글라이딩이 바람을 이용해서 타는지라 가장 좋은 장소가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장소를 정하고 패러를 펴기 시작하는데 점점 가슴이 콩닥콩닥...
패러를 할때 강사가 함께 타는데 동영상을 찍어준다고 나보고 카메라를 들라고 설명을 한다.그리고 일단 열심히 달리라고 하는데 저멀리 낭떠러지가 보여 순간 아찔했다.
달리다보니 어느새 날고 있다. 나는 내가 엎어져 있는 자세로 나는 줄 알았는데 마치 공중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편안해서 이리저리 사진도 찍고 패러를 조정해 보기도 했다.나중에 강사가 찍은 동영상을 선물로 주었는데 어찌나 재밌던지...이렇게 샹후스의 시간들이 내가슴에 박혀있다.
여행기를 다쓰려면 아직도 몇 번을 더 써야할듯 싶은데 캠핑카로 떠난 2박3일을 빼놓을 수가 없다.
사실 프랑스의 샹후스로 넘어갈 때 원래 계획은 친구부부와 함께
캠핑카로 일주일넘게 여행을 해보자는 것도 포함이 되있었다.
근데 친구남편 그레구와가 계속 일이 생겼고 우리는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결국 포기해야되나 싶었는데 그레구와가 어렵게 2박3일 시간을 만들었다.
샹후스에서 해마다 열리는 산악자동차경기가 있기 때문.헉..산악자동차경기라구?
사실 난 이것도 보고싶기는 했지만 그레구와는 산에서 모타 소리 내는 모든 것들을 싫어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캠핑카 여행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인지라 친구 성현이 파리로 떠나기전날 우린 출발했다.
유럽에는 캠핑카가 일반 자동차 만큼이나 일반적이어서 많은 집들이 하나씩 구비하고 있는듯 했다.
한국에서 캠핑카 하면 돈있는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처럼 생각되는데 친구네가 가지고 있는 캠핑카를 보면
그냥 봉고차같은 느낌.
뭐 이곳에서도 캠핑카가 워낙 종류도 많고 새차들이야 꽤 값이 나가겠지만
친구네가 가지고 있는 캠핑카는 중고로 300만원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근데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부부의 애마인 이차가 어쩌다 지난겨울이후 좀 문제가 생겨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여기저기 수리를 해도 고쳐지질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내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시동이 걸렸다고 한다.
혹시 내가 에너자이저? ㅋㅋ
우자지간 그레구와를 비롯해서 수리점 아저씨도 지금까지 이차가 왜 고쳐졌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거.
덕분에 우린 겁나게 즐거운 여행을 했다.
첫째날은 샹후스에서 멀리 보이던 호수옆에 둥지를 틀고 놀았고 다음날 친구를 보내고는 남쪽으로 달렸다.
친구가 떠난 시간부터 비가 몹시왔었는데 비가없는 곳으로 가자며 구레구와가 달리기 시작했고
우린 대관령 5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거대한 산을 굽이굽이 달리다 마침내 신천지를 찾았다.
구레구와는 이게 바로 캠핑카의 묘미라고.
외등하나 없는 산길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준비해온 쏘세지와 고기를 구워
향긋한 와인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 했었다.
어느새 비도 구름도 사라진 하늘.
나무사이로 딱 별을 구경할만큼의 하늘이 열리고 우리와 마주한 별들은
이내 우리들의 작은 파티에 쏟아져 내렸다.
우리들만의 세상이라고 좋아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차보다 훨씬 큰 캠핑카가 하나 들어온다.
역시 선수들은 다 자리를 찾아내는구나 했는데 이차는 한가족이 왔다.
얼핏 보기에 짚시같아 보였는데 본인들 말로는 아직 짚시수준은 아니란다.
짚시처럼 살고 싶어 캠핑카를 집삼아 떠돌았는데 아이가 학교 갈 때가 돼서 남부프랑스에 정착하려고 가는중이란다.
결국 모닥불은 계속 이어지고 못알아먹는 흥겨운 대화가 밤새 이어졌다.
이날 만난 여자친구는 재주도 많아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했는데
정작 자기가 하고싶은 일은 대마초 캔디를 만들어 파는 거란다.
헐...대마초캔디라니...우자지간 야밤에 계획도 없는 재미난 친구들을 만나
캠핑카의 묘미를 새삼 더 느끼게 했다는.
2박3일간의 여행이었는데 어찌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한 일주일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프랑스가 워낙 넓다보니 사실 이런 캠핑카들이 자동차만큼 요긴한거 같다.곳곳에 캠핑카들을 위한 캠핑촌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식수대와 샤워실 그리고 화장실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어떤 캠핑카들은 거의 집을 옮겨온것 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별의 별것들을 다싸왔다는.
지혜네 캠핑카는 내부를 부부가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침대도 꾸미고 위아래 선반을 만들고 가스렌지까지. 원래 이 캠핑카가 3인용인지라 우리 네사람이 타고가는게 적발되면 벌금을 물게되어있단다. 물론 무사히 잘 다녔고 잘 먹었고 잘 쉬엇고.사실 우리도 캠핑카에 거의 지혜네 부엌에 있는 식료품과 그릇등을 모조리 가져온 느낌.ㅋ
바젤에서 가져온 가방튜브가 인기짱이었다. 서로 얼마나 탐내던지 사수하느라 진땀.ㅎ 선물받은 비키니 입고 친구들이랑 정말 깨벗고 신나게 놀았다.사진보고 넘 재밌었으나 야한장면이 많아 여기서는 생략.ㅋㅋ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공놀이.무거운 쇠를 던져 목표물에 가까이 맞추는 놀이인데 은근히 재미나다.내가 얼마나 공을 못던지는지 실감났던 시간.
3박4일 예정을 왔다가 일주일을 더 연장하고도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던 성현이.그녀를 보내고 우린 다시 여행을 떠났다.
비가 몹시 내리자 구레구와는 비가안오는 곳을 찾아 남프랑스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우린 비가 내리지 않는 우리들만의 둥지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얼마만에 해보는 캠프파이어인지. 남은 음식을 하나씩 구워먹고 마시고 별보고 또 마시고....친구를 보내고 잠시 들렀던 수퍼에서 장을 보다가 원래 집에서 먹자고 샀던 포도주가 있었는데 이날 다 아작을 낸거 같다.아마 이포도주 없었으면 우린 정말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새로 손님을 맞이하듯이 꺼져가는 불씨를 모아 다시 모닥불을 피우고...이불이 언제 꺼졌는지 기억이 안난다.
저녁에 우리가 보았던 하늘.나무 사이로 뚫린 하늘이 마치 스크린처럼 수많은 별들을 보여줬었는데...
친구가 만든 빵으로 매일 아침을 해결했다. 빵만들기가 의외로 쉬워서 조만간 나도 한번 해볼참인데 오븐이 없네그랴.
아침이 되자마자 옆집차 언니가 와서 계속 수다를 떤다. 친구말로는 프랑스 사람들 수다가 장난이 아니란다.말을 못알아 먹는 것이 가끔 편하기도 하구나 느낄만큼 정말 말이 많았던 친구. ㅎㅎ 개도 그집 식구다.
600년전에 산이 잘라졌다는 곳.무너진게 아니라 잘라졌다는 표현이 중요한거 같다. 우자지간 온통 거대한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이곳이 관광지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뽀뽀를 해대는 이것들이 왜 밉지가 않은지...^^
무너진 바위들이 암벽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는제 이날 바로 이장면을 보고 그레구와를 졸라 샹후스로 돌아간 다음날 암벽을 탔다.ㅋ 그 이야기는 난중에.
혼알프스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산들이 라임스톤이라고 해서 석회석이 많은 흙으로 되어있다. 이곳도 역시 엄청난 양의 석회석때문인지 물속의 땅이 마치 시멘트로 마른것처럼 굳어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레프팅을 하려고했는데 비가 너무 안와서 계곡에 물이 말랐단다.결국 우린 레프팅을 포기하고 남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는 곳을 찾았다.
라임스톤이 많아서인지 호수가에서 보았던 강바닥같은 흙집들이 많다. 천년이 넘은 마을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잘 보존이 되어있는지.무엇보다 놀라운건 이곳에 주민들이 계속 살고있다는 거다. 유럽 곳곳에 있는 이런 집들을 볼때마다 한국의 개발문화가 생각나서 자꾸 화가 치민다.
부수고 새로 짓지 않아도 얼마나 이쁘고 좋은가.심지어 우리들도 다 이뻐보인다.ㅎ
저녁에 그레노블 시내로 들어와 저녁먹고 가자고 친구가 음식을 시켰는데 웬걸....이중 하나만 먹었어도 배가찼을텐데 친구는 프랑스에서 정식한번 먹어보는것도 경험이라며 부득블 시켜주었다. 결국 해지기전에 들어와서 3시간이 흐른뒤 우리는 식사를 다 끝낼 수 있었다. 물론 남은 음식은 당연히 많고. 프랑스 사람들 식사 시간 길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많이도 먹어대고 많이도 이야기하고.
이들 커플이 사는 방식이 보면볼수록 맘에 든다. 많이 벌지는 않아도 제대로 쓸 줄 아는 친구들. 큰집은 없어도 세상을 내집으로 만들 줄 아는 친구들. 레드마리아의 이치무라처럼 살기위해 필요한 만큼 일하는 친구들. 그들 뒤를 따라 걸어가면서 참 행복했다.
그러면서 우린 한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진짜'모습을 발견하면서 행복하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하하 정말 정말 어메이징 한 일이 아닌가.
어려운 코스도 아니고 복잡한 수식도 아니고 그저 단순하게 자연과 놀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지혜에게 그랬다. ‘너 딴거 하지 말고 이곳에서 힐링캠프나 차려라.’
지혜도 나쁘지 않았는지 ‘그럼 한번 해볼까’한다.
내가 아는 지혜도 한국에서는 나름 깐깐하고 예민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남을 먼저 의식하고 신경써야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을 발견한거 같다.
그래서 행복해보이고 행복을 나눠주며 기뻐 할 줄도 알고.
덕분에 우리도 덩달아 그 즐거움에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여행에서 지혜만큼 큰 역할을 해준 사람은 지혜의 남편 그레구와였는데
난 그가 사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마치 레드마리아를 찍으면서 이치무라가 반가웠던 것처럼 이친구도 일로부터 자기 해방감을 먼저 찾으려는 사람.
이들 부부가 샹후스에서 사는 이유도 일년에 6개월을 일하고 6개월을 자신들만의 시간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곳.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 보다는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일을 선택하는 삶.
살아가는 이유가 집을 넓히는 것도 좋은 차를 사기위한 것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여행과 서로를 사랑하고 즐기기위해 사는 것.
씨발.... 짜식들 졸라 멋지다.
그래 나도 존나게 멋지게 살아줄게.^^
지혜는 나와 성현이를 위해서 그녀가 새롭게 터득한 온갖프랑스 요리를 매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일년동안 먹을 치즈를 스위스에 이어 계속 먹었다는. 나는 그들 부부를 위해 삼계탕과 된장찌게를 만들어 주었고 성현은 그녀의 숨은 솜씨를 발휘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북어무침과 미역무침을 즉석에서 뚝딱해주었다.구레구와는 나를 위해 특별히 맛있는 담배를 매일 말아주었고 주님의 은총을 듬뿍 받을 수 있게 쉴새없는 포도주를 준비해주었다.
가볍게 산보나 하자며 따라나섰는데 한동안 운동부족이 티가났는지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벽을 보자마자 불끈 솟는 이힘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ㅋ
산꼭데기 호수에서 수영하고 산을 타고 내려오다 만난 양봉학교 사람들. 혹시나 해서 기웃거렸는데 호수에서 가슴을 내놓고 선탠을 즐겼던 멋진 여자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성형수술로 멋진 가슴을 만들지 않아도 늘어지고 주름이 있는 그녀의 가슴을 사람을 제대로 환영할 줄 있는 멋진 가슴이었다. 도시에 살다가 양봉을 하면서 지금은 산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이녀를 보고 지혜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거 같아 몹시 흥분된다고 했다.언젠가 그들이 좋은 친구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그레구와하고 지혜는 늘 서로의 사랑을 키스로 나눈다. 그래..이런건 영화에서만 있는게 아니었어. 하지만 뭐..그렇다고 그렇게 나보는데서 자랑질할거는 없지않니...라고 속으로만 씨부렁거리면서 블루베리를 열심히 땄다.ㅎㅎ 가끔 단순한 노동이 주는 기쁨이 있는데 블루베리를 딸때 그랬다. 우리는 열심히 불루베리를 땄고 지혜는 그걸로 잼을 만들어 성현이 떠날때도 챙겨주고 내가 떠날때도 챙겨주었다.
한국의 산과는 다른 맛의 알프스. 한국의 산이 독특한 매력이 있듯이 알프스도 참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 산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준다는 것을 참 많이 느꼈다. 물론 그 느낌의 최고봉은 암벽등반이었지만. 성현이 떠난뒤 나는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즐겼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ㅎ
스위스는 산악지대라는 지형적 특성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가 인접한 나라라는 특징 때문인지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온 여러나라 사람들이 스위스라는 연방국가를 만들게 되었고
단한번의 전쟁도 치르지 않은 독특한 역사를 이어왔다.
유럽의 지난한 역사의 일부인 종교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을 피해왔고
덩달아 모든 건축물과 문화유산들이 하나도 파손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는 가는곳마다 박물관이 디따 많다.
도시마다 수십개의 박물관이 즐비한데 이번여행에서 박물관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대부분 생략.
그런 역사덕에 이들은 전쟁의 상처도 없고 그런 사회문제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취리히에 사는 봉희가 그런말을 했다. 스위스에 사는 동안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가끔 한국인들에게서 보여지는 카리스마있는 얼굴을 보지 못햇다고.
듣고보니 카리스마라는 것도 새롭게 들린다. 결국 카리스마라는 특징도 험난한 곳에서나 생길 수 있는 특징?
우자지간 그런 스위스의 시작이 바로 스윗츠라는 동네에서 시작이 됐다고 한다.
미튼이라는 거대한 바위산과 함께 둘러쌓인 이 마을에는 스위스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 본사가 있기도 한데
산악마을에서 유용한 다양한 기능을 구비한 이 칼이 웬지 어울려 보이기는 한다.
내가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방문한 친구집이 바로 이곳과 인접한 산악마을이었는데
알프스의 하이디가 살던 그 마을처럼 딱 달력에나 나올법한 곳이었다.
사실 스위스는 어딜가나 달력사진같은 풍경이긴 하다.
스릴이나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곳은 거의 없지만 각종 어드벤처는 곳곳에서 즐길 수가 있다.
이곳도 거대한 호수가 곳곳에 있고 1500미터 산꼭대기에 곳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10분도 안걸려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산악기차가 아주 요긴한 이들의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우린 주로 친구 남편인 월터가 산에서만 이용하는 군용지프를 가지고 있어서 주로 그차를 이용해서 오르내렸다.
차로 20분간 올라가야 친구집이 나오는데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덕분에
스위스에서는 맛보기 힘든 약간의 스릴을 경험했다는 거. ㅎ
친구네집은 스투스라는 1500미터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인데 이들커플은 주중엔 바젤에서 일하고
주말 3일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한다.
집주변에는 수많은 소들이 워낭소리를 내며 풀밭을 누비고 사는데 목동도 없이
여름기간에는 자유롭게 산을 누비고 다니다가 그곳에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또 계속 풀을 뜯어먹고 낮잠을 자고...
젠장 난 이 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ㅋ
취리히에 사는 봉희가 동행하였는데 취리히도 꽤나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사실 아무리 스위스라 해도 누구나 오픈카를 타고 누구나 산장을 따로 갖고 있고 누구나 세일링을 취미로 하는 건 아니니까.
우자지간 우린 친구덕에 한국에서는 그림에 떡같은 남의 나라 놀이같은 짓을 신나게 즐기고 왔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고민할 일도 없고 자신이 즐겁게 사는 일만 고민하며 산다는 건 축복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라는 조건만 없다면.
하지만 지속되는 이축복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전쟁과 빈곤에 무감해 진다면 그건 배부른 돼지의 욕심에 불과하겠지만.
그래서인지 프랑스에 사는 친구들은 이런 스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스위스가 보유한 검은돈들과 함께 돈 많은 나라의 이기적인 풍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거 같다.
사실 내가 만난 스위스인들은 풍요와 평화를 생활화 한 덕분에 얼굴인상이 꽤나 순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유럽인들은 마치 미국과 미국인을 동일시 하듯이 스위스와 스위스 사람을 동일시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을 꽤 보게되어
참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곳이 아름다운 마음을 품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나는 스위스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즐거웠다.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즐거움도 고통도 배가 되듯이
이번여행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과 생각들을 사유할 수 있어 좋았다.
아마도 쏟아지는 정보로부터의 해방감일지도 모르고 나만을 충분히 생각하고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힘은
이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게 준비해주고 기다려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안심이고 행복이다.
나도 그들이 보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살아야겠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스치듯 보아도 죄다 그림같은 마을이다.스위스가 시작됐다는 스윗츠라는 마을도 역시 마찬가지.이곳에 본사가 있는 빅토리녹스사는 기업정신도 훌륭해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한데 그건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도 직원들을 해고시키지 않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회사의 방침때문이라고 한다. 네슬레같은 대기업도 있고 검은돈을 지켜주는 스위스은행도 있지만 스위스의 가장 든든한 경제뒤에는 튼튼한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되어있기 때문인거 같다.
스위스는 호수가 많아 그곳에서 세일링 하는 사람도 많다. 바람을 이용해서 배가 움직이게 하다보니 처음에는 좀 지루하단 생각이 있었지만 느긋하게 물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맛이 남다르긴 했다.세일링을 워낙 좋아하는 월터때문에 은진도 열심히 배조정법을 익히고 있는데 이들의 꿈이 돈벌어서 좀 더 큰배를 사가지고 세계일주 하는거란다.
은진네는 바젤에서 이용하는 차와 산에서 이용하는 차 두대를 이용하고 있는데 군용집차가 산에서 이용하는 차.월터는 산에서 무슨 자동차경주처럼 운전을 해서 거의 자지러질뻔했다.소리를 지르면 산을 오르는 이 맛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듯. 산악마을에는 허가받은 차만 운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차도 당연히 허가를 받았고 월터와 친구가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친구집에 갈때 미리 장을 봐서 갔는데 처음 은진이 식품을 사는거 보고 놀랐었다. 아니 이 많은 치즈와 과일과 먹을걸 대체 언제 다 먹으려고 하나 했는데 웬걸 오자마자 월터가 입가심으로 화이트와인 4병을 까고 그날 저녁 우리는 라끄레타 요리와 함께 레드와인 10병을 쪽냈다. 물론 다행이도 치즈와 와인의 반이상은 월터가 마셨기에 좀 덜 미안하긴 했다. 그리고 그동안 반주로만 마시던 와인이 이날부터 발동이 걸려 거의 매일 한병이상씩...꿀꺽 꿀꺽..ㅎ
스투스도 알프스의 한자락인데 산은 역시 설명이 필요없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고 걷기만 해도 좋고 ...은진과 함께 이날 스투스정상에 올라갔는데 한국의 산처럼 거칠지 않아 트래킹화로 가능했다. 근데 역시 보기와는 달리 경사도가 있고 높이도 2천미터가 넘어 간만에 땀 좀 뺐다. 그렇게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워밍업을 끝내고 다음은 프랑스의 알프스로...야호!!!!
잼다큐 강정을 만든다고 한여름을 보내고 다시 배급을 하면서 겨울이 됐다.그리고 벌써 새해도 중순이다. 여름에 멈춰진 편집본을 사이사이 손보면서 작년 9월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106분짜리 편집본을 선 보인후 다시 최종편집을 하여 12월 서독제에서 98분짜리 완성본으로 상영을 할 수 있었다. 2007년 일년을 필리핀에서 보내며 기획하고 2008년부터 촬영을 시작한 이래 5년만의 결실이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쉽게 한줄로 거론하기 쉽지 않을만큼 다사다난했다. 그 다사다난함은 고스란히 제작비의 압박이 됐고 레드마리아는 독립영화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됐다. 하지만 그뿐이다. 작업이 길어졌던 그 수많은 일들은 쏙 빠지고 영화만 귀찮은 늦둥이가 되어버린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작년은 좀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안그런 영화가 어딨겠나. 이 척박한 독립영화의 거친 토양을 자양분 삼아 영화를 만든다는 모든 사람들의 비슷한 과정일 뿐. 그래도 다행인건 이들에겐 오기와 투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이 살아있다는 것이 다시 그길로 또 걸어가게 하는 힘인 것을. 나도 그렇게 아직 심장이 식지 않고 있기에 이렇게 최종본을 끝낼 수 있었겠지. 그래서 흐믓하다. 2년전 여성영화제를 앞두고 수술을 받을때는 소원이 그래서 레드마리아를 완성하는거였는데 막상 완성을 하고보니 10편은 더 만들어야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하하하
우자지간 그 끝을 잔소리 한마디 없이 기다려준 영재와 지금은 다들 곁에 없지만 함께 해준 스텝 경은,아람,영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늘 힘들때마다 이들이 있어 한 산 한 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며 사운드며 색보정이며 몇 번의 수정을 마다않고 작업해준 지은이,용수,재원에게도 너무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친구는 애니메이션을 해준 성애다. 물론 편집이 길어지는데 공을 세운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기다린만큼의 보람이 있어 아주 흐믓했다. 이렇게 작업을 같이 하고 진행을 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작비. 일본 촬영을 고민하다 꾸리게 된 제작위원회의 후원은 새롭게 시도해본 소중한 경험이었다.
보통 후원금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크게 부탁을 하고 받았기 때문이다. 5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기꺼이 내주신 제작위원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담스럽다면서도 직접 제작위원장을 맡아 여기저기 이름을 팔아주신 김은실선생님, 친구라는 죄로 월급쟁이 친구들이 100만원 200만원 투척해준 감동의 순간, 제작위원으로 친구로 수술 후에는 죽까지 끓여서 매달 화학치료가 끝날때마다 먹을것을 챙겨준 박혜경선생님, 그리고 병원갈때마다 덜덜거리는 프라이드를 씽씽몰며 나를 데리고 다녔던 미례, 집이 없어 미례집에서 신세질때 고모가 살던 방을 저렴하게 소개해준 세영이, 그리고 워낭소리의 덕을 왕창 은혜입게 해준 영재의 특별한 지워금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사실 레드마리아 제작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어떻게 그 기간 가장 힘든일과 가장 행복한 일들이 완벽하게 겹칠 수 있었는지. 그 행운이 함께 했기에 필리핀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한국을 다시 촬영하면서 레드마리아라는 영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거 같다. 만일 예전처럼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해야 했다면 아마 지금도 영화는 완성되기 힘들었을것이다. 그 많은 번역을 거쳐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으며 그 많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나. 족히 수백명의 사람들을 거치며 이렇게 레드마리아가 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긴 길을 관통했구나 싶다.
아마 예전 같으면 제작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작업으로 올인했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리게 된다. 그렇게 일년쉬자고 작정했지만 그 심심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거 같아 안해보던 일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배급이라도 재밌게 해보자고 맘먹고 있다. 사실 지난달만해도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몇 개의 영화거리를 내지를뻔 했는데 번번히 다음날 일어날때쯤 체력이 딸리는걸 확인하고는 단칼에 단념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여름쯤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알프스를 등반해보는게 작다면 작은 꿈인데 부디 실현이 되기를. 그곳에 가면 친구가 50에 진입한 기념파티를 해준다고해서 정말 땡빚을 내서라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올해는 연애운도 있단다. 아싸...^^ 혹시 프랑스에서 붕쥬르 하면서 부딪힐 어떤 놈 혹은 년? ㅎㅎ 우자지간 신나게 일년을 또 살아보지 뭐.
영화만들며 놀기<민들레>1999,<애국자게임>2001,<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쇼킹패밀리>2006,<잼다큐 강정>2011,<레드마리아>2011,모든영화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음.
redsnowm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