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1. 1. 8. 16:55

극영화를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의 차이에 대한 느낌들이 가끔 생각될때가 있는데 편집을 할때가 그중 하나인듯 하다. 예를 들어 극영화는 사전에 만들어진 대본이 영화전반을 많이 좌우한다면 다큐멘터리영화는 편집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많이들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미리 짜여진 구성과 대본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억지로 현장 연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원하는 그림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찍는 일은 늘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최초의 기획안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지점은 이 영화를 시작했던 시발점 한마디로 왜 나는 이 영화를 시작했는지...그리고 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근데 문제는 편집을 하면서 찍혀진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그 고민을 하는 과정이 너무 고되다는 거. 그래서 누구 말대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프레임을 붙여가고 인물을 분석하고 상황을 연결시키는 과정이 대본 한줄 한줄을 피말리 듯 써내려 가는 것처럼 쉽게 줄줄이 엮이지가 않는다는 거. 물론 줄줄이 잘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됐구나 싶어 막상 모니터를 해보면 그 속에 담긴 건 혼자만의 생각과 욕심과 자만의 결정체일 뿐이라는 걸 아주 빠른속도로 느끼게 된다. 그게 아주 아프고 잔인하고 따겁고 쓰리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 단계를 거치면 아프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빠른속도로 마음을 비우게 된다. 음..이게 아니란 말이지.

지금 내가 그렇단 이야기다. 오늘도 그렇게 1차가편 모니터를 끝내고 다시 어떻게 2차를 시작할까 고민을 하던 중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에 잠도 안오고 그렇다고 이 시간에 누구 불러 놀 사람도 없고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조차 땡기지도 않는다. 왜냐면 오늘 느낀 감정은 단지 모니터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이 영화를 시작할 때 했던 생각,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찍을때 부터 계속 시도하던 건데 숏컷이나 크래쉬 그리고 러브액츄얼리같은 극영화처럼 많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처럼 구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이번에도 좌절되는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처음엔 욕심을 내서 편집을 시도했지만 막판에 주인공들이 세명으로 축소됐고 나는 거기에 만족해야 했다.

그 쓰라림을 이번에는 정말 작정을 하고 제대로 시도하고 싶었다. 씨발..근데 그게 왜 이렇게 쉽지가 않냐고. 물론 준비된 배우가 있는것도 아니고 준비된 사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준비된 자금과 시간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도 안통하는 세나라의 준비되지 않은 그 많은 주인공들로 그런 욕심을 냈다니 결국 내가 허황된년이었던가 싶어 돌아버리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지금 굉장히 울고 싶다. 현장박치기로 그런 장면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미친년 아니야. 근데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 왜 그 미련을 못버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이해가 안간다는데도 무슨 미련이 남아 이렇게 심란하냐 이 말이거든.

그래서 화가나고 열받고 허탈하고 한심하고 기분졸라 작렬이다. 좋아..그렇다 말이지. 알았어 알았다고. 바꾸면 될거 아니야. 근데 바꿔야 되는거 알겠는데 그리고 그렇게 가기위해 모니터 한 거 맞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복잡한지 모르겠다. 다시 엎어서 편집을 할거고 결국에는 뭔가 종지부를 찍게 될 모양새가 언젠가는 나오겠지만 오늘 이 기분은 아마 오래 갈거 같다. 하고 싶은 방향대로 영화를 제대로 밀고나가지 못했던 그 한계에 대해서는. 오늘처럼 내가 미워보기는 처음인거 같다. 그래 그냥 속편하게 울자 맘껏.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아까 모니터를 끝내고 모두가 돌아간뒤 한방을 쓰는 수정이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인물을 쭉 옴니버스처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 그거말이지 처음에 생각을 안해본건 아닌데 너무 다른 인물들이 쭉 연결되면 주제를 빗나가게 될 공산이 커서 포기했다고 그리고 한 인물을 길게 10분에서 15분을 끌고 가면 지루하지 않을까. 내가 말이지 오래전 봤던 영화중에 꼭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쩝 근데 영화제목이 생각이 안난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는 인물들의 옴니버스같은 스토리가 욕심이 났지만 쇼킹패밀리를 만들때도 그렇게 의도했다가 결국 막판에 영화에 쓰지말아 달라던 몇몇의 주인공덕에 포기해야 했던 그 구성. 결국 쇼킹패밀리도 세명의 주인공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을 생각하며 그건아니야라고 했던...

글고보니 내가 삼이라는 숫자를 너무 좋아하는 결벽이 있긴하지만 이렇게 만들고 싶은 의도와 벗어나서 두 번씩이나 세명의 주인공으로 끝냈다면 삼은 좀 공포스럽기도 하다.아흐...우자지간 그래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내내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구구절절 말했지만 이제사 생각하니 그렇게 포기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가지를 섞으면 되잖아. 왜 안되겠어. 뭐 아니면 나중에 또 뒤집지 뭐...라고 지금 막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내가 울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촌스럽게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그래 안될게 뭐있어 한번 해보는거지. 그리고 또 절망은 해본 다음에 그때 가서 실컷 하자구. 웃긴다. 밤을 골딱새서 도달한 결론이 처음이라니. 우자지간 일단 밀어보자.^^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1. 26. 16:43



윗 사진 - 카메라를 통해 무엇인가를 보는 일은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늘
              긴장이 되고 속도감이 느껴진다. 잘 찍어야겠다는 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잘
              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다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이
              어느새 내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아래 사진 - 빈곤을 보이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토론하기 위해 6개의 분과로 나누어 
                 토론이 진행이 됐다. 모두들 자신의 의견을 포스트잇에 적어 주제별로 모았는데
                 현재 곤란을 느끼는 것에대해 그들이 써내는 글귀를 보며 나라만 다를뿐
                 하나하나가 어찌나 와닿든지 역시 여성이 고민하는 지점은 비슷하구나 했다.
                 "모델이 없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 "대화장소의 부재"...


 

일본의 첫 촬영은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네트워크 총회로 시작됐다. 올해로 3회째 맞이하는 이들의 총회는 좀 각별하다. 한국의 단위사업장 중심의 총회와는 달리 전국의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상담을 하거나 조직에 가입하게 된 경우라서 서로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모인사람들의 대부분이 식당이나 기업 그리고 백화점, 보모,간호사,전업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파트타임(일본에서는 이를 파견직이라 한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그들모두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서 이곳까지 오게됐다는게 나름 신선한 경헙이었다.

이날 총회의 구호는 “빈곤을 보이는 것으로, 천천히 관계를 풍요롭게”라는 것이었는데 총회의 과정을 지켜보다보니 너무도 와닿는 이야기였다. 최근 파견직문제가 일본에서 심각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사실 여성의 파견직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60년대 이후 계속 되는 문제였다는 것.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회나 국가가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불황 이후 남성들이 대거 회사에서 해고되기 시작하자 파견직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에 많은 파견직 여성들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파견직문제가 공론화 되고 있음에도 그것이 여성보다는 남성들의 일자리 문제로 가시화되고 있는 형편이니 여성스스로 이제는 다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일하는여성들의 전국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몸이 먼저 소름끼치도록 지지를 외치고 있었다는 것. 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재밌는 대목이 기업내 노동조합이 있었어도 여성들이 겪는 파견직문제에 별다름 도움이 되지 않아 스스로 법정투쟁을 하면서 싸워온 이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편견과 멸시속에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에 바라는 점들을 이야기할 때 속을 드러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오직하면 그 먼지방에서 홀로 이 총회에 참여했을까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늘 여성들의 노동은 무임금이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이들의 노동은 늘 하잘 것없는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다보니 여성의 빈곤은 늘 여성들의 개별적인 문제인냥 도외시 되어온게 사실이다. 그러니 “빈곤을 보이는 것으로 그리고 관계를 천천히 풍요롭게” 라는 구호는 바로 지금 아시아여성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스스로의 말걸기에 대한 시작으로서 모두에게 유의미한 구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지위가 달라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나혼자만의 성공으로 가능한 일이 아님을 적어도 이곳에 모인 여성들은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하나 이날 총회의 재미를 더해준 것중 하나는 요요기공원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이치무라씨의 발언이었는데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돈때문에 싸우고 권력과 폭력이 야기되고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가는데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일을 적게해도 우리사회는 너무나 먹을 것이 남아돌고 입을 것은 천지다. 그것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구지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하는가라는 이야기였는데 이주제를 가지고 많은 여성들이 흥미로운 토론을 하게되었다.

가난을 몰라서 그런거다 난 가난이 싫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했다라면서 그녀의 발언에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부터 이제껏 열심히 일만했지만 결국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걸 보면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간다라는 말까지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만일 우리였다면 우리사회의 많은 여성들은 또 어떻게 이러한 물음에 답변을 할지 궁금해지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열심히 일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도 만만치 않게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도 빈곤의 여기저기를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고민해본다면 결코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고민은 레드마리아의 고민이기도 하고.

일하는여성들의 전국네트워크는 한국의 여성운동을 모델로 삼으면서 3년전 만들어졌다고 한다. 단위사업장 중심의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한 부러움을 말했지만 오히려 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단위사업장이 아니어도 개개인들이 자신있게 참여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들의 새로운 조직이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좋은 조직이라해도 아래로부터의 욕구가 세세하게 수용되지 않는 조직은 이미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매너리즘은 새로운 공기를 수용하기엔 이미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틀간의 이들의 합숙에 참여하면서 많은 공부가 됐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예상한대로 물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 그리고 촬영에 장애가 될 제도와 질서들이 꽤 많다는 것, 결정적으로 말을 직접 못알아 듣는 것 등등이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또 한명의 주인공을 발굴해냈고 그와 더블어 영화에 대한 주제가 점점 더 촘촘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흥분이 되기도 한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