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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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슈퍼우먼’ 농촌여성들
[기획연재] 여성농민의 지위가 곧 평등사회의 잣대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형주 
<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김형주님은 경기도 여주에서 논농사 짓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주군 여성농민회 사무국장과 경기여주여성농업인센터 방과후공부방 별님반 교사로 일해왔으며,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더 이상 내일을 꿈꾸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할 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제일 슬펐다는 김형주씨는, 그러나 “혼자만 꾸는 꿈이 아니라면 계속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가부장적 농촌사회 속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을 기고해주셨습니다. - 편집자 주>
 
환갑 여성농민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출’
 
▲ 여성농민들은 가부장적 농촌사회에서 고된 농사 일에, 가사노동, 돌봄노동까지 맡으며 '이름 없는 슈퍼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고구마 공동농사를 짓는 모습  ©김형주
순자 언니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허리가 아파 고생고생 했더랬습니다. 농사일에 집안일에 그리고 마을 구판장 일까지 손 걷어 부치고 해내고, 남편과 두 아이 뒷바라지까지 깔끔하게 거두던 언니. 이제 좀 살만하니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고, 결국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해서 무거운 짐은 못 든다면서도 올 가을도 남편 컴바인 일 조수로 나섰습니다.

 
정원 언니는 허리 디스크라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허리에 복대를 하고서도 가지 하우스, 호박 하우스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땅을 설설 깁니다. 그만 좀 쉬시라는 동네사람들 말에, 일을 안 하면 더 아프답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이기순 회장님. 당신도 며느리 사위 다 보고서도, 팔순이 넘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되어 지난 여름 가출을 했습니다. 허나 가출을 해봐야 환갑 다된 할머니, 친정도 없고 어디 혼자 들어가 볼 만한 곳도 없어서 괜히 버스만 타고 왔다 갔다 하고서는 그 누구도 몰라주는 가출마저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선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배 과수원 배 봉지를 싸고 시어머니 밥을 차립니다. 기껏해야 동네아줌마 만나 시어머니와 남편 흉 보는 게 다였는데, 남편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부턴 그것도 수월치 않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영미씨는 하루도 빼지 않고 젖을 짜고 소 사료 푸대 나릅니다. 그런데 하필 남편 집에 없을 때 우리를 뚫고 나온 소 두 마리, 그 놈들 잡으러 마을을 동동거리며 쫓아다니다 논두렁에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성질 나쁜 소들이 깔아뭉갠 남의 집 논과 밭도 걱정이지만, 에이쉬 이 놈의 소들도 여자라고 깔보는가 싶어 속에선 천불이 일었답니다.
 
오이 상추 하우스 일에 뼈가 다 녹는다는 윤경씨는 올 여름 몸 건강도 안 좋아졌지만 우울증까지 생겼었답니다. 농사일을 줄이고 싶어도 아이들은 커가는데 농산물 값은 떨어지니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하우스를 줄일 수 없답니다.
 
미숙 언니는 이혼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새색시로 들어온 농촌. 아이 셋 낳고 키우는 동안 남들은 모두 호인이라는 남편의 손찌검에, 남편이 술만 먹는 기색이 보이면 남편을 피해 도망가는 버릇이 생겼고, 결국 그 아저씨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던 밤 야반도주를 해버렸습니다.
 
농사도 가사일도 봉사활동도…슈퍼우먼 여성농민 몫
 
▲경북 봉강 꾸러미(생산자 조직)를 방문, 견학한 안동-의성 여성농민회 분들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까페 제공
이 땅에 여성농민이 삽니다. 농사를 짓는 여성, 여성농민이 삽니다. 남녀평등의 사회, 여성들도 장관을 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너희 나라’ 같습니다. 논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밭일은 여자가 합니다. 농사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남자가 맺고, 여자는 그 빈 자리를 메꿉니다.

 
예전에는 큰 기계 일은 남자가 하고 소소한(?!) 일상의 노동은 모두 여성농민들의 노동으로 메꾸어 왔습니다. 남편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고랑을 타주면, 고추 모종을 심고 고추순 따고 말뚝 박고 줄 메고 고추 따고 말리며 중간중간 잡초를 메는 매일의 계속되는 노동을 담당하는 몫이 여자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여자들도 이젠 1톤 트럭과 트렉터 운전 정도는 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남편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아내가 트렉터로 논을 갑니다. 남편이 컴바인으로 벼를 베고, 아내는 1톤 트럭으로 벼를 실어 나릅니다. 남편과 같이 비료살포기를 메고 이삭거름을 주고 농약 줄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같이 하면서 ‘노동의 장’과 ‘생활의 장’이 분리되지 못하여, 출근도 퇴근도 없는 여성농민. 밖에서 똑같이 흙투성이 일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리모콘을 쥐고 아내는 부엌칼을 쥡니다. 사회적 활동은 남편의 몫이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이제 스스로 농기계도 운전하는 수퍼우먼 여성농민이 메꿉니다.
 
남편이 면사무소로 영농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혼자서 감자를 심습니다. 남편이 지역발전협의회 회의 나가 낮술에 얼큰히 취해 돌아올 때, 혼자서 고추 말뚝을 박고 오이줄을 올립니다. 남편이 친구 부모님상에 조문 간 사이, 들깨를 심고 참깨밭을 맵니다. 남편이 마을회관에 대동회의를 가면,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음식 준비 하다가 회의 끝나면 밥 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마을 이장도 여자가 한다지만, 아직도 대동회의장에 여자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마을도 많습니다.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시부모 뒷바라지야 물론이고, 농한기 동네 어른들 마을회관에 돌아가며 반찬 해 나르는 일에, 부녀회장이라도 맡을라치면 면사무소에 모여 독거노인 김장에 빨래봉사까지, 농업노동에 가사노동 그리고 돌봄 노동까지 모두 여성농민의 몫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정신 없이 수퍼우먼으로 돌아 치는 여성농민들, 그녀들이 이 땅에 삽니다.
 
13년 전, 내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
 
▲ 여성농민회의 진행하고 있는 <천연 치약, 천연 샴푸 만들기> 강좌. 화장품과 세제, 비누 만들기에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제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13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내려올 때는 날 선 사명감 내지는 결기 그런 것들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민단체를 찾아가 8년이 넘게 실무자 일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 생활을 접고 농민이 되리라고 되뇌던 일을 실행에 옮기던 때이니, 설렌다기보다 사실은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귀농’이라는 말만 하면 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왔는지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어 참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군 전체에서 귀농한 사람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지역사람들 중에는 ‘타지 것들’이 도대체 왜 여기까지 내려왔는지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 이름 석자보다 누구 마누라, 누구 엄마로 통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여성과 아이가 행복해야 행복한 사회이며, 농촌이 평등해야 정말 평등한 사회’라는,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여성농민들을 만났습니다.
 
‘여성농민회’는 여성농민 스스로 현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좀더 행복한 여성농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땅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어 마련한 돈으로, 스스로 교육사업도 만들고, 농사일에 엄마를 빼앗기고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농번기 탁아사업도 해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활동이 2002년 농림부 시범사업으로 여성농업인센터 사업에 선정되자,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방과후 공부방도 운영하고, 스스로 벌여오던 교육사업도 더 체계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벌여낸 사업으로 더 많은 여성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농업문제와 세상읽기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미래와 깨끗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인 ‘천연세제 만들기’ 같은 교육도 마을로 들어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면에 하나밖에 없는 복지회관 목욕탕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는 일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정작 센터에서 일하는 회원들은 마음고생도 많고 몸 고생도 많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아니면 그 일들을 누가 할까 합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평등한 삶 위해 함께 꾸는 꿈
 
▲ 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알곡 어린이집 아이들이 토종수수 씨앗으로 모종을 키워, 작은 꽃밭에 심고 거두어 직접 수확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학교담장을 둘러싸고 육상골재채취 사업이 신청되어 학교 바로 옆에서 모래산이 쌓이고 물웅덩이가 파이는 상황이 예상되자, 순하고 세상 모르는 것 같던 엄마들이 변했습니다. 아니,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이들 건강과 교육문제 앞에서는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성들보다 지역의 혈연과 지연과 학연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은 옳은 것은 옳다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눈치 보지 않고 말했습니다.
 
사실 전 제가 엄마라는 사실이,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요구되는 많은 신화들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농민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살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10명이 넘는 여성농민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다음 달 딸을 시집 보내야 하는 친정엄마도 있었답니다. 삶의 무게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밥 한 공기 값이 적어도 커피 한 잔 값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노동의 강도가 세지고 여성들이 차지한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육아와 가사를 남녀가 분담하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꿈을 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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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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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부엌’


고립되고 비가시화되는 노동공간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부엌은 마루를 내려간 다음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의 관련 금기들도 많았다. 가옥 구조가 변하면서 현재 대부분 가정에서 부엌은 밥을 먹는 공간을 포함하며 실내로 들어왔다. 부엌 공간은 이제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소개된다. 그리하여 때때로 부엌이 식사와 휴식공간일 뿐 아니라 그 식사를 준비하는 작업공간이라는 사실은 망각되곤 한다.

일상문화연구회의 <한국인의 일상문화>에 따르면, 부엌의 사정과 식탁의 사정은 다르게 이해된다며 ‘칼국수’의 예를 든다. 칼국수가 김영삼 대통령 재직 당시 ‘간단하고 서민적인 음식’으로 소개될 때 사람들은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칼국수가 부엌에서 만들어지는 데는 상당한 노동력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보지 않고서, 식탁에 앉아 자신이 칼국수를 먹기 쉽다고 ‘간단한 음식’ 운운했다는 것이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인다’는데 그 부엌의 코앞에서 매일 먹고 자는 사람들이 간단한 음식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것은 부엌이 여전히 집에서 홀로 떠 있는 섬과도 같고, 부엌에서 노동을 하는 주부 역시 ‘나 홀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 구조에 있어서 부엌이라는 공간은 주부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집안 구조상 문을 열었을 때 부엌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보통 부엌은 집에서 가장 깊은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평수가 넓어질수록 부엌과 식탁 사이에는 전통가옥 뺨치는 경계선이 생긴다. 공간의 여유가 생기면 부엌은 유리문을 달고 커튼을 드리우며 ‘가족들의 공동공간’이라기보단 점점 더 ‘주부의 개인작업공간’이 되어 숨어 들어간다. 

음식냄새나 조리기구가 내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하려고 해도 그것이 누굴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것은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작업 동선을 길어지게 하고 노동시간 동안 가족들로부터 고립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주부 K씨(54세)는 “식사준비를 할 때 옆에 사람이 있으면 필요할 때 시키게 되지만 혼자 있으면 그냥 혼자 한다”고 말한다. 다른 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함께 준비를 하려고 해도, 각자의 혹은 공동의 휴식공간에 있는 식구들을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번거로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은 부엌을 마음 편하게 ‘외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가족들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앉아있을 수 있다. 부엌은 일부러 보지 않는 한 보이지 않고, 부엌에 있는 사람은 일을 하는 동안 ‘공동공간’인 거실에 있는 가족들을 보거나 텔레비전 등을 볼 수 없다. 식구들이 보는 것은 일하고 있는 주부의 ‘뒷모습’이다. 일반적인 가족들에게 부엌은 먹을 때만 공동공간이 되는 ‘식탁이 있는 곳’이지 공동작업공간은 아닌 것이다.

직장인 M씨(28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부엌에서 엄마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부엌에서 엄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주부 L씨(55세)는 “평생 음식 장만을 혼자 하는 것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어도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TV를 보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 땐 화가 나고 미웠다”라고 말했다.

한편 다용도실은 대부분 부엌과 연결되어 있거나 부엌과 가깝고, 집의 깊은 곳에 숨어있어 가사노동을 비가시화하는 데 일조한다. 양파, 감자, 통마늘 등의 다듬어야 하는 재료들, 관리를 요하는 장기저장 식품 등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로 세탁 관련 기기들까지 위치하고 있다. 걸레, 손빨래, 세탁기 빨래 등 일거리들이 쌓여 있는 이 곳에 주부를 제외한 가족들은 ‘빨래를 가져다 놓으러’ 간헐적으로 방문할 뿐이다. 게다가 세탁기는 집의 후면에 위치한 다용도실 있는데 건조대는 주로 집의 전면(테라스)에 위치하고 있다. 세탁기와 건조대까지의 동선이 길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미관상’이다.

가정은 사회적 임금노동으로부터 혹은 학교로부터의 휴식처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하며, 세탁기 소리도, 음식 냄새도 맡지 않고 ‘쉰다.’ 그 ‘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성된 공간에서 막상 어떠한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어떤 노동이 필요한지는 비가시화 되며, 그러한 노동은 고립되고 평가 절하된다. 이로써 우리의 부엌은 ‘집은 쉬는 곳’, ‘가정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 ‘집안 일은 엄마일’이라는 통념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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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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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 삶을 위한 ‘필요노동’, 집안일
가사노동의 일로서의 가치를 찾아서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경신 
아침나절부터 집안 곳곳에 널려 있는 ‘할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현관에 흩어져 있는 신발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 청소를 하고 걸레로 훔치는 일, 빨래를 분류하고 세탁기를 돌리거나 손 세탁을 하거나 삶는 일, 빨래를 널고 걷고 정돈하는 일,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고 남은 음식물을 정돈하는 일, 음식물 쓰레기, 폐지, 플라스틱, 유리병 등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는 일 등.
 
정말 쉴새 없이 일해도 별로 표 나지 않는 일들이다. 누가 “오전에 뭘 했어?”하고 물어보면 “집안일 했지”하고 대답할 뿐, 세세하게 한 일을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놀고 있다?
 
 가사노동은 누구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이다.
그런데 그 말로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집안일’이 흔히 ‘노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생각해 볼만하다. 주변에서 종종 주부들 스스로가 ‘어떤 일 하나?’는 물음에 ‘놀고 있다’고 대답해 의아해하곤 한다. 집안일 하는 자신을 ‘노는 사람’으로 일컫는 마당에야, 그 자녀들이 “우리 엄마는 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집안일의 가짓수와 일의 경중은 개인차가 있겠다. 모든 빨래를 손으로 하는 사람, 세탁기와 손을 적절히 사용해 빨래하는 사람, 빨래는 오직 세탁기로만 하는 사람, 심지어 건조기까지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어 분명 빨래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또 유리창을 닦는 사람에게는 유리창 닦기가 집안일의 한 가지겠지만, 절대 유리창을 닦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튼 집안일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집안일 자체는 ‘일’임에 분명하다. 부지런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의 하루 일과를 회고해보면,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의 일 이상으로 어머니의 집안일 노동강도가 높았던 것 같다. 별다른 취미생활도 없었고 외출하는 일도 드물었던 어머니는 그야말로 온종일 집안일에만 매달려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집안일이 ‘노는 것’으로 간주되었을까? 그것은 그 일이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집안일을 잘 해서 돈을 아낄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언젠가부터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일은 노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고, 운동을 하는 등의 취미활동이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집안일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 것은 참 억지다.
 
집안일은 안 할수록 좋은가?
 
놀고 있다고 매도될 만큼 일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집안일’이다 보니, 그야말로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팽배한 생각인 듯하다. 열심히 해봐야 몸만 힘들고, 표도 나지 않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는 그 ‘별볼일 없는 일’이 아직까지도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는 형편이라, 돈 잘 버는 여성이라면 가족 중 또 다른 여성(어머니, 자매, 며느리, 시어머니 등)에게 집안일을 떠넘기거나, 아니면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안일을 벗어나려 한다.
 
반면, 돈 못 버는 여성은 가정경제가 허락하는 한에서 편리한 가전제품을 집안에 갖춰놓거나 식당이나 세탁소 등의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몸수고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형편이 어려워 집안일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여성이 있다면, 자기 처지를 한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남성이나, 그 일을 떠안은 여성이나, 될수록 그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즉, 돈을 지불해서라도 가사일의 사회적 서비스 혜택을 누리고, 기계일꾼이나 사람일꾼을 부려 집안일로부터 해방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성별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자립, 집안일을 타인에게 전가해선 안돼
 
  이반 일리히 <그림자 노동> (미토,2005)
그런데 과연 집안일은 누군가에게 전가시켜야 하고, 가능하면 회피해야 하는 무가치한 일일까? 뭔가 고상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일일까? 사적 영역에서 퇴출시키고 사회화해서 극복해내야 하는 일일까? 기술혁신을 통해 우리의 육체를 해방시켜야 하는 노예노동일까?

 
유학시절. 혼자 밥을 챙겨먹고 살면서 난 집안일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좀더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 즉 연구에 받쳐야 할 시간과 노력을 집안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남에게 미루면 귀찮은 일이 되는 것을 누군가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누군가가 내게 그의 몫의 일을 떠넘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게다가 돈으로 손쉽게 해결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라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 까닭은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각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기 몫의 필요노동’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안일 속에서 그 필요노동을 발견했다. 우리가 비록 100% 자급자족을 할 수는 없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소박한 삶에 대한 지향을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 속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도시 자체도 자립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의존적인 공간이지만, 그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의존적 삶을 오히려 돈에 의해 보장받는 자립적 삶으로 착각하고 지낸다. 그래서 돈 버는 일은 생산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집안일은 돈 버는 일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그림자노동으로 전락하고, 소비는 그 일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삶의 진정한 자립은 돈을 버는 데서 얻어지는 것도, 사람이나 도구를 돈으로 사서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데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집안일이 소비에 집중하는 그림자노동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필요노동으로서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고민과 더불어, 자기 몫의 필요노동을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데서 자립적 삶이 출발해야 한다(집안일을 공유하고 분배하고자 할 때조차 자기 몫의 집안일에 대한 분명한 인식 위에서만이 가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삶의 간소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어쨌거나,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노동을 타인에게 전가시켜도 될 만큼 고귀하고 값진 일이 있다는 그릇된 믿음과 허위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난 하루 몇 시간씩 집안일을 하며 수양 중이다.
 
*함께 읽자. 이반 일리히 <그림자 노동>(미토,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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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