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5.30 프로덕션에 대한 생각
  2. 2013.06.15 50대를 넘어선 동료들 2
제작일기2015. 5. 30. 16:21

사실 1차 편집본이 일찍 나왔다.

이번에도 해외 촬영분이 많아서 번역이 골치기는 했지만

전작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겪었던 말과의 전쟁에 대한 혹독한 경험이 피와 살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좀 효율적으로 수월하게 넘어간거 같다.

물론 그 과정엔 단지 지난 경험이 반면교사가 된 것도 있지만 

사전제작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전작을 찍을때는 사전제작비 없이 시작해서 여러곳에 지원서를 넣어 하나가 되면 필리핀 찍고 

다시 여러군데 지원을 해서 또 하나가 되면 국내를 찍고 더이상 안될거 같으니 

제작위원을 조직해가면서 일본 촬영을 찍곤 했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도 충분하지 않다보니 스텝들이 온몸을 불사르며 스스로 통역하고 

스스로 재정을 관리해 가면서 모든 일을 자체 해결해야 했었다.

그만큼 기간이 늘어나고 누수되는 시간이 많았지만

모든걸 함께 논의하고 모든걸 함께 공유했던 시스템.

그게 내가 원하는 제작시스템이었고 그걸 즐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래야 결과물에 대한 자양분이 좋은 것이든 안좋은 것이든 모두에게 흡수될테니 말이다.

돈보고 일한 것도 아닌데 그거라도 챙겨야 남는거 아닐까 하는 나름 독립영화제작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노력을 포기하고 많은 부분 인건비로 대체를 했다.

첫째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래서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셋째는 누수되는 시간을 줄여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프러덕션을 생각했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스텝들과 일을 하게 됐다.

스텝들에게 각자의 역할 이외에 모든것을 나누거나 요구하려 하지 않고

나는 내일에만 신경쓰며 감정소모를 줄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지통역과 번역에 많은 돈이 들어갔고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결했음에도 여러나라를 찍다보니 촬영비도 솔찬이 들어갔다.

물론 많이 들어갔다 함은 쓸 수 있는 제작비의 기준에서다.


우자지간 그런덕에 나는 이번 작업에서 스텝들과 처음부터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부담하는

모든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좀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후반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충분한 제작비를 마련하지는 못한덕에 

결국 사무실을 빼고 마무리는 혼자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가 되긴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정산을 비롯한 번역이 어느정도 되었기에

혼자서 편집을 해도 견딜만은 하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면에서는 혼자라는게 편하기도 하다.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감정이 참 묘하다.

각기 다른 프로덕션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다르기 때문인데

무엇이 더 좋은 것일까는 쉽게 단정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전작과는 다른 프로덕션을 가동하면서 누수되는 시간은 벌었지만

전작과는 또 다른 감정소모가 분명 있었고 해결하는 방식도 달랐다.

돈을 받는 만큼이라는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관계가 분명 있었고

그 기준이 일을 하는 기간과 방식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프러덕션이 주는 스텝들과의 성취감과는 다르게

이번 작업의 스텝들이 주는 새로운 면도 있었다.

받고 준 만큼 이외에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움이랄까.

물론 이 말은 좀 씁쓸하기는 하다.

영화가 너무 감독 중심으로 사고되는 이기적인 면이 강조됨으로.


그러니 무엇이 더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그 작업에 맞는 프로덕션이 있는 것 뿐일터.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독립영화제작에 필요한 프로덕션이 어때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험임은 분명했던거 같다.

2차편집본을 이틀만에 뚝딱 해치우고는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경써야 할 것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 잘 조절하면 참 많은 시간을 벌어준다는 사실.

물론 그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눈 딱 감고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고.

대표적인게 역시 누적되는 제작비의 빚을 모른체 지나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3차 편집본은 편집감독과 함께 하기로 했다.

누구보다도 이번 작업을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친구라 기분이 좋다.

2차 편집본을 어떻게 다듬어 놓을지 기대된다.

기다림은 지루하니 내일은 간만에 암벽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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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3. 6. 15. 11:50

나는 원래 위아래 따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만나는 친구들도 내가 함께 했던 스텝들도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나이나 경력이나 학력과는 상관없이 두루두루 섞여있어서 구지 동년배를 따진적이 없었다.

어떤때는 같이 이름부르는 친구의 엄마가 나와 동갑인 경우도 있고

이제는 그들의 엄마보다도 내나이가 뻘쭘하니 튀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냥 이름불러 달라는 말이 예전보다도 상대에게는 더 버겹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것이 은근히 스트레스다. 내가 원하지 않는 위계와

남들이 원하는 위계의 묘한 긴장이라고나 할까.


그런불편함이 슬슬 다가오는건 순전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함에도

우자지간 나이라는게 슬슬 내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요즘은 50을 넘어선 친구들이나 동료를 보는 눈이 나도 모르게 애잔해 진다.

이제 고작 50인데 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50은 40과는 또다른 환경에 처하기 때문이다.

알바를 해도 일단 나이가 젊은 친구들에게 밀리고

설사 있다해도 후배들의 영역이라는 걸 배려해야 하는 입장도 생긴다.

게다가 마음은 청춘이라고 아무리 강변을 해도 나이가 제한된 혜택에서 이미 밀려나 있고

경력을 존중해 주는 혜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제작지원도 신인들과 똑같이 해야하고 지원을 해도 감독 본인의 인건비는 쓸 수도 없고

그런 지원조차 이제는 젊은 감독들만큼 발빠르게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그런 동료들에게 자꾸 눈이 간다.

사실<산다 2013>의 총괄프로듀서를 맡은 것도 김미례 감독이 절친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50을 넘어 새로운 작품을 하기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지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조건 할 수 있다면 그녀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고 싶었다.

게다가 그녀의 영화는 50대를 넘어선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일하는 것의 의미와 행복을 묻고싶다니

50대를 넘어선 감독의 시선에선 얼마나 절실한 이야길까.

얼마전 김태일 감독이 전화를 했다. 그의 전작인 <웰랑뜨레이>에 출연했던 캄보디아 친구들이

꿀을 보냈는데 누굴줄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장 필요할거 같았다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니까 평소 우리가 자주 만나거나 수시로 전화를 하는 사이였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일년에 몇번 겨우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그가 연락을 준건 정말 감동이었다.

그가 연락을 준 이유도 어쩌면 나와 비슷했을것이다.


그 역시 다음 작업을 위해 고전을 하고 있다.

이제는 그나이로 알바를 구하기도 힘들고 네식구가 생활하기도 벅차서

차라리 빨리 영화를 찍는게 그나마 생계라도 해결이 되지 않을까 고민할 정도니

50을 넘겨 영화를 찍는다는건 참으로 많은 인내심과 함께 도를 닦는 일인듯 싶다.

세계민중사 10부작을 찍겠다는 그의 큰 꿈은 이렇게 비루한 일상을 견뎌내며 한발 한발 나가고 있는 것.

오일전에 척추수술을 받은 이성규감독도 비슷한 케이스.

그나마 그는 젊은 친구들 버금가는 소셜네트워크에 강한 친구인지라

병원에서도 소식을 알릴만큼 적극적인 사람이지만 그의 고민을 쾌활함으로 이겨내는 속내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 역시 어렵게 자신의 첫 장편 극영화 완성을 목전에 두고 그간 얼마나 몸을 혹사했을지

능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오십을 넘어선 동료들이 곳곳에서 힘겹게 뛰고 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영위를 위해서라거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때마다 보다 싼 월세집으로 그나마 남은 보증금을 줄여가며 영화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이 일은 추억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래도록 부디 지치지 말고 계속 가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도 웬지 이젠 미안하다.

그냥 잘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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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