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8일
<미도리 상, 변호사 만남/이치무라 상과 246 키친>

변호사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요츠다 역에서 오늘 미도리 상을 만나기로 했다. 이때 미도리 상을 기다리면서 한참 다들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노란색 옷을 입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 쪽으로 왔다. 금연마크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아저씨는 우리가 못알아들은 체 하자 영어와 한국어로 된 안내문을 보여주며 2000엔을 달라고 했다. 그 와중에 미도리 상이 도착했다. 그냥 벌금을 물어내는 것이 더 낫겠다 해서 벌금을 냈다. 내지 않고 버티면 경찰을 부른다고 했다. 아깝지만 하는 수 없었다. 어쨌든 그 길로 법률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날 미도리 상은 법률상담을 하는 여성에게 협력하기 위해 자리에 함께했다. 미도리 상은 이런 사례처럼 여성 노동자들과 상담하고 법률상담과 같은 자리에 같이 참여하는 등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도리 상과 함께 변호사를 찾은 오오카 상은 회사에서 10년간 영업팀 정사원으로 일해 오다가 2007년 첫째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한 달 전에 산휴를 냈다가 이후에 복귀를 희망했지만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통보받았다고 한다. 이는 분명 이전에 산휴가 끝난 뒤 복귀하는 걸로 약속을 한 뒤 신청한 것이었으나 자신의 빈자리에 파트 사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동부의 균등실에서 상담, 법률위반 판정을 받아 다시 복귀했다. 그렇게 돌아간 게 2008년 5월 달이었으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다시 영업직으로 복귀할 줄 알았지만 복귀 후에 실은 잡무와 다름없는 사무직으로 일하게 됐다. 그리고 나서 같은 달 11월 또 임신한 사실을 알고 회사 측에 밝혔는데 해고통보를 받았다. 회사 측은 임신과 관계없이 경영악화나 일을 못한다는 이유와 같은 다른 이유라며 변명했다. 10년이나 일했는데 이제 와서 관두라고 하는 건 역시 임신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오오카 상은 말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회사측은 처음부터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여성유니온에 전화를 걸어 화를 내는 등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이에 덧붙여 보너스도 받지 못했으며 퇴직금도 못 받은 상태다. 노동국 사람들도 이러한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이날 변호사와의 상담에서 위자료를 포함하여 임금분을 배상금으로 청구하여 바로 노동심판(3회열림, 조정 안되면 재판으로 가게 됨. 재판보다는 기간이 짧음)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전교섭 전까지 서류를 준비하여 보내기로 했으며 현재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6월쯤에 끝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한국이든 일본에서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잣대는 늘 이중적이다. 여성의 출산률을 장려하는 한편 여전히 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은 불안정하다. 이 다음번에도 미도리 상이 참석하는 법률상담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도 다시금 참석하기로 했다.

미도리 상과의 일이 끝나고 시부야에서 열리는 246키친에 참여했다. 246키친은 이치무라 상과 함께 홈리스(노숙인 포함)들과 키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가져온 재료로 길거리에서 음식을 해먹는 이벤트이다. 키친이 열린 장소는 시부야의 그 유명한 높은 건물과 신호등거리 모퉁이로 돌아선 육교 밑이었다. 그 쪽 길로 쭉 늘어선 직장인들 혹은 학생들의 자전거 옆으로 늘어선 박스 집들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246 키친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테마인 음식은 우동이었다. 계속해서 오는 사람들이 놀러왔고 음식도 계속해서 나왔다. 이날 참여는 밤 12시까지 계속되었고 오래도록 사람들도 함께 했다. 늘 상 이렇게 뭔가를 나누고 같이 먹고 하는 일은 좋은 일이니, 역시나 있어서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누니까 생긴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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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기 공원, 이치무라상과 함께하는 ‘그림이 있는 카페’>

생각보다 조금 일찍 요요기 공원 쪽에 도착하게 되어 근처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을 사들고 요요기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따뜻한 날,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니 피크닉 온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오늘, 요요기 공원 안쪽 텐트촌에 가기 전에 생소한 풍경의 종교집회를 보았는데, 요요기 공원에서 기거하는 노숙인들이 고개를 숙인 채로 줄맞춰 앉아 있었다. 우리도 도시락을 먹고 있을 즈음 다시 보니 그 분들 각자 손에 흰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도시락이었던 것이다. 종교집회에 참여해야 받을 수 있는 도시락이라니. 여하튼 도시락을 먹고 1시에 시작한다는 ‘그림이 있는 카페’가 있는 텐트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하나 둘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림을 그릴 종이 한 장을 받고, 경은과 영란도 서로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들 어찌나 그림을 특색 있게, 열심히, 잘 그리던지. 연필, 크레파스, 색연필, 물감. 재료에 상관없이 공원에 있는 나무를 그리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이날 대략 6명 정도의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며 자리를 매웠다. 다과와 차와 공원주변에서 주운(?) 은행을 먹으며 그림을 그리고 촬영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씨는 꽤 추워졌지만 5시가 넘는 시간까지 계속해서 사람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간간히 이치무라 상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 마지막에 각자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느낌을 공유하는 모습들을 찍기는 했지만 공원관리실에서 정기적으로 텐트촌을 살펴보는 탓에 카메라를 꺼내들고 자유롭게 촬영할 수 없었다. 물론 공원안의 사람들도 카메라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찍을 장면을 몇 가지 놓쳤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내일은 미도리 상의 일정을 따라다니고 이치무라 상과 길거리에서 밥을 해먹는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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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4일~25일

<일하는 여성의 전국 네트워크 모임>

바다가 가까운 에노시마에 위치한 카나가와 여성센터에서 제 3회 일하는 여성의 전국 네트워크 모임이 열렸다. 이날 모임은 어떤 단체 단위가 아닌 각 개인단위의 회원들이 약 100여명 모여서 논의에 참여하는 모습이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오후 1시 반무렵 시작된 모임은 먼저 이날 다뤄질 각 주제별로 패널들이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파트타임 업무, 정규직 여성으로서의 경험, 파견사원, 싱글마더, 노숙생활인이 그 주제로, 어제 만난 이치무라 상은 노숙생활인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할 패널로 참여하였다.

이후 패널들의 이야기가 3시간에 걸쳐 끝난 뒤 15여명 정도 나뉘어져 각 분과별 토의가 진행되었다. 이날 분과별 토의에는 성폭력/차별, 여성 비정규직 문제, 파견/파트타임, 간접차별문제, 조합&다양성, 그리고 조합&프리타(아르바이트)&싱글마더, 이렇게 6개의 분과로 나뉘었다. 이날 경순은 조합&프리타&싱글마더 주제가 다루어지는 분과를 촬영했고 나는 파견/파트타임을 이야기하는 분과를 촬영했다. 신선했던 것은 각 개인 단위로 참여한 사람이 많은 만큼 다양한 주제를 한꺼번에 다루었는데, 그 안에서 이질감이나 생소함보다는 느껴지기보다는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상대방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려는 데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주제들이 여성의 빈곤 문제가 얼마나 고질적이고 다양하게 많은 여성의 생활 전반에 걸쳐 있어왔다는 것이 이미 각자 경험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날 센터에서 1박을 하고 가는 사람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또 다시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레드마리아 영화를 소개하고 미도리 상으로부터 일본에서의 촬영정보를 받기도 했다.  이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어제 있었던 각 분과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한자리에서 같이 나누었다. 여성 파견/ 비정규직은 처음에 오래전부터 많은 퍼센테이지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신자유주의와 세계경제의 잇단 악재는 이러한 현상이 남성 노동시장까지 확대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본격적인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실상은 오래전부터 여성의 노동시장에는 있어왔던 깊은 문제라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 2003년도에 만들어졌던 간접차별금지법 또한 96년부터 그 노력들이 있어왔지만 결국은 3개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 파견 노동자/비정규직들은 그들 간의 상호 신뢰관계를 갖기 힘들고 직장 내에서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이런 문제에 관해 공유하거나 교육을 받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더라도 예컨대, 일을 하면서 노조운영을 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다양한 주제들과 의견들이 결국은 이곳에 참여한 여성들의 의지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데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런 맥락에서 당사자들이 스스로 의견을 얘기하고 그것을 서로 공유하며 그것이 좀더 큰 교류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후, 운영회의 팀의 회의가 있어서 촬영. 카나가와 여성센터의 짧은 스케치를 마치고 에노시마 섬 짧은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두 4일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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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페민' 사무실에서 아카이시 상을 만났다. 이후 곧 이치무라 상을 만났다. 역시나 필리핀에서와 다르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언어문제였다. 질문이 직접 전달할 수도 없고, 직접 들을 수 없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그럼에도 필리핀이나 국내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우선 내일 있을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모임’ 이전에 일본에서의 취재원과 정보를 얻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 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포커스를 두고 있는 ‘빈곤’, ‘노동’ 등의 주제에 따라 싱글마더와 파견노동과 같은 문제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카이시 상에 따르면 일본에서 빈곤 여성은 44%로 이들은 연수입 200만円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보통 부모와 같이 생활을 하고 있거나 결혼해서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빈곤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빈곤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즉 직업의 형태가 계약직이 되는 전업종의 비정규직화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미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에서 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회적 이슈였다. 과거 시간 당 급여가 현저히 감소했으며 도쿄 및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급여는 훨씬 적다.

-2월 9일 일하는 네트워크 모임(차마시는 날)이 있다고 함

-2월 25일 대기업간의 회의가 있는 날인데 이날 그 장소 앞에서 시위가 있다고 함. 오오테마치, 반빈곤 네트워크 참여.

-3월 4일 일본, 프랑스 빈곤에 관한 심포지움.

-3월 7일 여성과 빈곤에 관한 심포지움. 변호사들 참여하고 아카이시 상도 이날 발표가 있다고 함. 그리고 3월 7일부터 12일까지 페민의 기자들과 다른 단체의 여성들 한국에서의 일정이 있다고.. 위안부 박물관 설립에 관한 이슈에도 동참할 거라고.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아직까지 페민에서 특별히 기획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3월 29일 반빈곤 페스타, 전보초중학교(아직 참여할지 안할지 결정X)

점심을 먹고 이치무라 상과 요요기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같이 갔던 이치무라 상 또한 그곳에서 생활한지 5년이 됐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서 안거지만 이치무라 상이 5년 산것보다 더 오래 30년 동안을 그곳에서 지낸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라주쿠 근처에 있는 요요기 공원은 굉장히 넓은 곳이었는데 조금 깊숙이 들어가자 그곳 텐트촌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약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지내기도 했는데 요즘은 공원 관리소 측에서 감시가 심해져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 중 현재 남아 있는 여성은 4명이다. 이곳에서는 특별히 화요일마다 그림이 있는 카페를 열어 자유롭게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고 토, 일요일에 열리는 카페에 그 그림을 전시하고, 그곳을 찾아와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받고 차를 ‘교환’하기도 한다. 또 ‘노라 워크샵’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면생리대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도 병행한다.

이치무라 상이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일반적인 생활과는 다른 생활방식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앞으로도 이곳을 떠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는 보통 2만円정도로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놀라워하기도 했다. 레드마리아의 맥락과 관련지을 때 어쩌면 이치무라 상의 생활과 그녀의 생각이 ‘덜 자본주의적’으로 살기, 그 ‘틈’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서의 첫 촬영인물로서도 의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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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일정 첫 날. 4명이서 무려 7인분의 짐을 들고 공항에서 이 곳 숙소가 있는 이쿠타(生田)역까지 끙끙대며 끌고 왔다. 일본의 겨울(이라지만 실은 그리 춥지 않았던) 날씨에도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첫 날부터 기진맥진해 있었다. 다들 아침만 먹고 비행기에서 주는 맛없는 샌드위치만 꾸역꾸역 먹은 탓에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무사히 이쿠타역까지 도착했겠다 싶어 조금 긴장이 풀린 우리들은 이쿠타 역으로 할머니가 마중 나왔고 짐을 싣는 동안 다들 짐을 다 챙겨왔다고 믿고는 할머니의 차를 탔다.  그런데 숙소 도착해서 보니 카메라와 트파이포드가 없는 게 아닌가! 어쩜 그렇게도 촬영장비만 딱 두고 왔었는지! 거기에다가 김까지 덤으로 두고 왔다는 사실에 다들 한바탕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온통 배고프고 힘들고 거기다가 가슴까지 철렁해진 일이 생겼는데도 다들 라면을 끓여 먹으며 ‘그래도 일본이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오자마자 내일부터 바로 일정이 있다. 바로 뒤에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네트워크’에서 주최하는 1박 2일 캠프에서 촬영을 한다. 오히려 이렇게 쉴 틈 없이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그것을 경험했으면 한다. 필리핀, 국내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부디 좋은 촬영 마치고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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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촬영은 주로 가정용 캠코더로 해왔고
촬영 내용은 혼자 보고 혼자 킥킥대며 혼자 사용할 장면을 선정하는
그야말로 부담없는 취미활동이었다.

경순이 촬영연습겸 영란과 선포식에 나가보라고 권했을 때
촬영은 더이상 '단순 내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쓸모있는 영상을 촬영해야 한다는 것,
안써본 삼각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모두에게 촬영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 모두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어차피 넘어야 할 산.
이왕이면 씩씩하게 넘자고 스스로 다짐.

출발하기 전 사무실에서 삼각대 사용법 듣고 몇 장면 구도 잡아보고
영란과 함께 현장으로 출발.
30명 남짓 사람들이 모였고 집회는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교회 후배가 와있어 반가웠다는~)
사회보시는 분이 빨간 눈사람 소개마저 하더라.
여성의 얼굴이 촬영 주제니 여성분들 표정관리 하시라..는 말씀까지 곁들여서...
촬영하다말고 손한번 흔들어주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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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영란이 촬영하는 것을 지켜보니
영란 촬영하면서 끊임없이 다음 장면 물색하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원래 나의 촬영연습이 주목적이었으므로 영란 곧 내게 카메라 넘기고...
나도 영란처럼 촬영 중에도 다음에 어떤 것을 촬영해야 할 지 주변을 살피고 머리 굴리려 애씀.
촬영연습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컷을 찍으려고 함.

** 내가 촬영에 담고자 했던 것은
1) 집회 전체 풀샷 - 뒷편과 앞편 양쪽 모두
2) 기륭 건물, 혹은 건물 간판이 집회장면과 함께 나오는 컷
3) 문화제 가수, 몸짓회의 발표장면
4) 집회 참여 사람들의 표정

** 영란이 촬영해보라고 조언한 것은
1) 소음측정한 사람이 주고 간 쪽지 (-> 주는 장면은 완전히 놓침. 난 그런 게 있는 줄 알지도 못했음 흑~)
2) 추위로 인한 사람들의 행동(손을 비비거나 굽어있는 모습..등-> 찍으려고 하면 이미 동작완료 ㅜ..ㅠ)
3) 주변에 아파트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
    (-> 아파트는 높고 사람들은 앉아있어서 구도를 잡기 어려웠음. 삼각대 떼어내고 로우앵글 잡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다른 장면 찍기 힘들 것 같아 포기함)

** 아쉬웠던 혹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
1) 팬이동(특히 줌한 상태에서) -> 완전 젠병이다. 이동하다보면 목적 피사체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그래서 액정과 실제 상황을 비교해 보면서 이동하려다보니 이동시간 들쭉날쭉에 흔들흔들~(으...절로 씨발이 나오더라)
2) 삼각대 수평조절 : 가기전 삼각대 이동할 때마다 수평조절하는 것을 습관화하라했던 경순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ㅋ~) 수평조절하다보니 볼짱 다봤다. 수평조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기동성이 딸린 것. 나중에 영란이 준 팁- 삼각대를 완전히 다 펼치지 말고 다리 하나 정도를 움직일 수 있게 세우면 찍으면서 수평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 빠른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 때 아주 유용할 듯.
3) 삼각대 높이조절: 한 두번 시도했는데 엄청 일이었다. 손에 들고 찍을 때는 높낮이 조절이 자유로웠는데 삼각대를 사용할 때는 꼭 필요할 때만 높낮이 조절을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정도 높이가 적절할 지 결정하고, 다리 세개를 비슷한 높이로 하나하나 조절한 후, 수평조절하고...쩝~ 그 높이에서 원하는 앵글이 나올지 미리 확인할 수 없어 높이조절한 후 재조정을 해야하는 경우도 많겠더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대안책이 없나?) 어쨌든 삼각대 조절을 빠른 속도로 해내는 연습이 필요할 듯.

** 총평
신년 선포식의 특성을 포착하지는 못했고 그냥 촬영연습이었다고 봐야 할 듯.
촬영실력이 좀더 좋아지기 위해 어떤 것을 연습해야 할지 약간의 감이 왔다.
개인적으로 촬영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촬영하면서 이 장면 괜찮을 것 같다 느껴지는 게 두 장면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인상 깊게 본 것은 사람들 표정을 찍는데,  노래 분위기에 따라 표정이 휙휙 바뀌더라는 것.
본인은 몰라도 사람은 환경에 아~주! 민감한 동물인 게 틀림없다.
내 성격이 급한 편이라는 것도 재확인.
아직 실력없는 것은 당연하고 감각이 없다면 그건 내 잘못도 아니니, 좀더 느긋하게 해도 좋을 것을!
어찌나 발을 동동 구르던지...쯧~안쓰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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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경순, 경은, 아람
일자: 2008년 12월 30일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기륭전자 송년 집회를 갖음.
추운 날씨에도, 100여 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 모였었음.
집회가 4시부터 시작되어 한시간 가량 진행된 다음 20분 정도 근처 서울지방노동청까지 행진함.

행진 뒤 7시 근처 호프집에서 송년회 파티
송년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

송년회에서 행신동에서 세입자 투쟁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혜자씨를 만남.
(취재정보 및 소스자료 란에 관련기사 올려놓겠음. 참고바람)
연락처: 010-8297-4281

더불어 김소연 분회장 만나 이야기 나눔.
연착처: 017-317-3460   synodong@hanmail.net

10시쯤 여이연 송년회 방문하여 경매 현장 관람(경은은 이날 가방 하나 낙찰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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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경순, 경은, 영란, 아람
일자: 2008년 12월 22일

영란은 부산에서, 경은과 경순과 아람은 서울에서 평택행
오랜만의 국내 촬영이었음.
7시부터 네트워크 단체 사람들 모여 송년회 파티, 이때는 찍은 것은 없고
밤에 근처 허브모텔에서 이희영씨 영상 찍음.
새벽 1시가량에 촬영 마치고 평택 집장촌 일대 스케치 영상 찍고

다음 날, 12시쯤 기상하여 다시 낮동안의 집창촌 모습들 스케치하고
근처 안정리, 버스로 일주.
다시 평택 시내로 돌아와서 평택 시내 정경 스케치 영상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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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2~081015 올롱가포 Janlee 출산 그 이후

잔리가 나 오기 몇시간 전에 애를 나버렸다고 했다. (안타까워서 쓰러졌었음)
아무한테도 연락이 없었던 것을 우선 원망해보지만서도.;;
여튼 생각보다 올롱가포에 늦게 간 내 잘못이지. 예정일보다 5일이 빨랐다.
여튼 곧바로 그날 잔리가 지금 머물고 있다는 잔리 아빠집에(Mactan 이곳도 유명한 가난한 동네라고 했다)
알마와 멜로디가 같이 동행해줬다.
아기를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잔리의 모습은 건강해보였다. 아기 또한.
이것저것 아기 낳은 직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날은 잔리집에서 하룻밤 자지 못하고 다음날 일찍 다시 오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 부클로드 사무실 청소하길래 그 모습을 찍고
10시쯤 잔리집으로 다시 갔다. Mervi, Kulot, Ana, Melody, Nene, Bakekang이 같이 갔다.
작은 트라이시클에 이 많은 사람들이 탔음.;;
아나가 잔리에게 밥을 준비하고 이사람 저사람들이 잔리 상태 물어보고
아기 보고 좋아하고.. 그 모습 자체가 좋아보였음.
오후에 나왔고 저녁에 잔리가 그 근처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음.
아무래도 아빠랑 같이 사는 것보다는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게 더 낫다는 주변 사람들의 판단도 있었고
(이때까지 난 할머니와 잔리의 사이가 아빠와의 사이보다 낫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솔직히 잔리는 부클로드에서 살기를 원했으나 부클로드 입장에서는 돈문제나, 돌봐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이 되서 할머니집이 최선이라고 알마와 스텝들은 말했다.
이날 경순에게 전화를 했고 잔리집에서 다음날 하루정도 머물면서 찍기로 결정

다음날 엘사, 에블린과 아침 일찍 잔리집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늦게 사무실에 도착.;
어쨌든 바로 잔리집으로 가서 엘사와 에블린은 잔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할머니집이 아빠집 근처라고 하더만 바로 옆옆옆 건물이였다.
가족들 분위기가 대체로 조용하길래, 생각컨대 '잔리가 조용한 이유가 이래서였구나..' 했다.
여튼, 알아보니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고 할아버지쪽이 잔리 할아버지의 형제분이었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두번째 부인. 어쩐지 사이가 살갑지 않아보이더라니..
할아버지도 챙겨주고 하지는 않더라. 점심을 먹고 오후까지 대화도 별로 없이 가끔 할머니와 할아버지 대화찍고
할머니 집 청소하고 잔리 애 돌보는 모습 찍고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멜로디가 들러서
멜로디와 잔리 이야기하는 모습 찍었다.
이때 멜로디가 나한테 말해줬는데 '할머니가 우리들 여기서 자는 거 안좋아한다'고.
사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잔리가 그 집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았었는데
모르는 사람들까지 와서 잔다고 하니 더 싫었던 것으로 사료.
잠깐 바깥에 나왔다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문제때문에 싸우고 있었고
(물건던지고 멱살 잡고 심각해서 순간 내가 괜히 잔다고 해서 문제만 더 크게 만든 건 아닌지 싶었다.)
잔리는 울면서 나보고 '부클로드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서 나도 묻지도 않고 짐챙겨서 돌아왔음.
돌아와서 엘사와 벳이 잔리에게 이유를 추긍했고
그간 잔리와 가족들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고 추측했고
그날 잔리는 부클로드에서 머물렀다.
전에 보았던 잔리의 표정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다음날 스텝들은 잔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이곳저곳 잔리가 머물 수 있을만한 여성쉼터같은 곳에 전화를 해보았는데
잔리는 다 싫다고 했다.
알마도 잔리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했고
당분간은 잔리가 부클로드에서 머물듯 하다.
오후까지 특별한 일이 없어 마닐라로 올라옴.

p.s 아무래도 부클로드 사람들 돈에 관한 인터뷰를 정식으로 못한게 아쉽네요. 흐음.....




Posted by 빨간경순



 

사실, 이날 연락해서 리타 할머니집 추수날이라고 하길래
그를 촬영하러 내려갔는데
엘사(할머니가 영어를 잘 모르셔서 엘사-부클로드 스텝-에게 부탁해서, 통화해서...)를 통역자로 전화통화했으나
중간에 이야기가 잘못됐는지, 여튼 갔더니 이미 리타 할머니 집 추수가 끝난 후였다.
아쉬운대로 가족들이 쌀 푸대에 담고, 로로가 논에 불지르고 동네에서 추수하는 모습들
스케치 위주로 많이 찍힌듯.

이날 나 곧 한국간다고 하니 할머니가 이것저것 주전부리랑, 수비니어라며 바지를 주셨다.
(이상하게 나 갈때마다 바지를 주시는 것 같다. 바지 2개밖에 없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는지.;;)

난 이날 부끄럽게도 울었고, 할머니는 내가 운다고 웃으셨다 -_-
그리고 덜컥 따갈로그어로 꼭 편지를 쓰겠노라 약속해버렸다. (컥)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