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12일

<코엔지/요요기 공원에서 하룻밤>

드디어 일본에서의 3번째 촬영인물이 섭외됐다. 요요 씨를 만난 것은 코엔지에 위치한 작은 가게에서였는데, 그 가게는 요요 씨의 소유가 아니라 공휴일에 맞춰 쉬는 가게들에서 식사와 차를 파는 가게를 잠시 빌린 것이라고 할 때 무척 흥미로웠다. 아마추어의 난(素人の乱)이라는 이름의 가게는 지금 요요 씨가 일하는 형태의 가게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과 형태로 12개가 있다고 했다. 요요 씨가 하고 있는 가게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차를 파는 곳이었다. 빵을 만드는 것이나 요리를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요요 씨의 가게에 이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마찬가지로 공휴일이라서 평소보다 손님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요요 씨는 말했다. 특히 이 가게를 찾아온 사람들은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요요 씨는 이런 가게와 같은 활동에 많은 관심이 있어 알바는 최소한으로 하고 나머지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늘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는 어떤 도움이 될지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요요 씨를 촬영하는 것에 더욱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는 요요 씨가 늘 예술이나 독립적인 문화 활동을 해오던 사람이라기보다 어떤 시점에서 이런 문화를 접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활동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요요 씨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그날 저녁 요요기 공원에서 하룻밤 자기로 이치무라 상과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곧 만날 것을 기약하고 가게 12호점(素人の乱 12戶店 -이 곳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물건들이나 헌 옷을 이용해 만든 옷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오는 토요일에 이 곳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다)에 들러 그 곳에 있는 사람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뒤 요요기 공원으로 향했다.

요요기 공원으로 갔을 때는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공원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평소 조용한 낮보다도 훨씬(!) 더 조용한 밤인데다 날씨도 찼다. 경은과 경순은 요요기 밤풍경 스케치를 하고 늦게 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공원 관리 사무소에서 텐트촌과 주변에 거주하는 노숙인들을 점검하러 나온다고 했다. 특히 텐트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텐트를 일시적으로 철거해야 했는데 계속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 체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촬영이 허가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관리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촬영하는 것 때문에 이리 저리 망을 보고 피해 있다가 다시 촬영을 해야 했다.  관리소의 점검이 끝난 뒤 사람들은 다시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짐을 몇 개 빼놓고 텐트의 지지대를 빼놓았기 때문에 텐트를 철거했던 것만큼 세우는 것도 금방 끝났다.

목요일은 '노라'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것까지 촬영하고 가기로 했었는데 이곳에 있던 몇몇 분들이 불편해 하셨기 때문에 생각보다 촬영을 금방 접어야 했다. 늘 나 스스로도 간과하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한데 블루텐트촌은 공공장소인 요요기 공원 안에 있지만 엄연히 말해서는 또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곳에서 촬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게 많다. 다른 일본인들이 자신의 집안을 촬영하는 것을 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것만큼 이치무라 상과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불편하게 여겨졌을 일이다. 이날 이치무라 상은 메디아르(MediR) 사람들과 함께하는 촬영자와 피촬영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모임을 제안했다. 그리고 우리도 21일 날 있을 모임에 참석하기로 하고 일찍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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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9일 월요일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 다과회의(이치무라 상)>

한 달에 한번 페민 사무실에서 열리는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가 9일에 다시 열렸다. 7시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20여 명 정도가 작은 사무실에 꽉 차게 들어왔다. 네트워크 모임이라기에 딱딱한 회의 분위기를 상상했던 우리는 한쪽에서는 음식을 준비하고 한참 서로들 이야기를 하느라 부산한 모습들에 놀라웠다. 사람들이 다 모였을 즈음 우리는 우리들의 영화를 소개하고 촬영허가를 받았다.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승낙해주었다.

변호사, NGO 활동가, 싱글맘, 가나에서 이주한 여성, 레즈비언, 파견노동자, 교수, 홈리스. 다양한 위치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모인 자리였다. 이날은 도쿄에서 먼 지방에서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 전날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나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위치에서 참석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으며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이날 자리에서 ‘여성의 빈곤화’에 대한 이슈는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던 문제의식이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어서 각자 자리를 만들어 또 다시 시끌벅적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사실 일본에서의 어떤 모임이라고 하면 정리된 조용한 모습만 그동안 봐와서 이런 시끌벅적한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이치무라 상의 홈리스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에서 노라의 면생리대를 팔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입했고 네트워크 모임을 위한 기부금을 모을 때 조그만 비닐봉지를 돌리자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빈곤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여성에게는 특히나 현재 신자유주의의 흐름 이전부터의 구조적인 문제가 작용해왔다. 그것은 여성의 빈곤화를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이는 우리가 첫날 찍었던 ‘일하는 여성의 전국 네트워크 모임’ 때부터도 이어져왔던 이야기이다.

이날 쿠리타 상으로부터 취재정보를 듣고, 영란이 오랜만에 만났다던 영화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 번역 테입을 부탁하고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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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8일 금요일

<KAFIN 사무실 방문/시부야 246키친>

전날 코리야마에서 오후 무렵 기자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내일 있을 촬영을 위해 미리 도쿄로 왔다. 실은 다음날, 그러니 오늘 KAFIN에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갔을 때도 조금 늦었다 싶어 서둘러서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사무실에서 지내고 있는 필리피나인 메이 씨와 미쉘 씨는 오오타 상으로부터 우리 일행만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많은 필리피나를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것을 기대하고 갔던지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과 전에 와서 짧은 간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메이 씨는 힘들어 하는 와중에도 영어와 일어와 따갈로그어와 비사야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던지라 기분이 묘함을 느꼈다.

메이 씨는 2000년도에 일본에 와서 스낵바에서 일하는 중에 일본인 남자를 만나 같이 살게 지내게 되었는데, 이후에 비자 만료일에 맞춰 몇 번, 일본과 필리핀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 필리핀에 있는 부모와 가족에게 일본인 남자를 소개시켰고, 그간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필리핀에 있는 도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일본에 가 있었던 남자에게 연락했고, 한동안 연락을 자주 했고, 적은 액수였지만 남자는 아이를 위한 돈을 부치기도 했다고 했다. 이후 애가 태어났고 남자에게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남자의 형제가 다니는 회사에 전화도 해봤지만 남자가 집을 떠났다는 말밖에 전해 듣지 못했다. 남자에게 섭섭함을 느꼈지만, 지금 일본에 와 있는 이유가 남자 때문이 아닌 자신의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란다. 지금 현재 메이 씨는 같은 베이비 시터로 일하고 있는데 아는 필리피나가 저녁부터 새벽까지 클럽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은 그녀의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월급이 6만円으로 생활하는데 너무 적은 돈이지만 비자 연장이 되고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단다. 어쨌든 그녀는 이렇게 예전부터 지금 일본에 와 있는 이유까지를 설명하기를 자신의 러브 스토리라고 이야기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촬영인물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수다를 떨고 KAFIN 사무실을 나왔다. 저녁에 246 키친을 가보기로 했는데, 이날 문화연대 활동가분들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이번에 이치무라 상이 최근에 낸 책을 번역했다는 분이 참석하신 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갔을 때는 이미 문화연대 분들이 와서 청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리 저리 처음 보는 홈리스 분들(역시나 남자분들만 있어 아쉬웠지만) 일일이 (안되는 일본어로) 촬영 허가를 받고 촬영했다. 역시나 오랜만에 혼자 촬영한다는 것, 상황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혼자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덧붙여 더 어려운 것은 여전히 카메라 스킬이 늘지 않는다는 것(;).

이날 요리의 테마는 한국식 지지미였는데 한 홈리스 아저씨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열심히 요리를 해, 책을 번역하신 지영 씨는 연신 ‘어딜 가나 남자들은 요리를 잘 안하는데, 아저씨는...’ 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지미 위에 김이며 겨자를 올리는 등 다양한 요리를 아저씨는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눈치셨다. 문화연대 분들도 처음 참여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함께 했고, 모두들 능숙하진 않지만 일본어로 열심히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도 사람들이 1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이날은 전보다는 일찍 끝나 9시쯤 모임이 파했다.

(예전에는 4명이서 움직이다가 혼자 집에 돌아가려니, 문득 ‘여기가 일본이군’하고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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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현 코오리야마 시 사토 씨 캠페인 및 집회

지난 2월 1일, 이토 미도리 씨를 따라 갔던 코오리야마에서 만났던 사토 씨를 다시 한 번 찾아 갔다. 사토 씨는 파나소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분이다. 18년 동안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그것도 매일매일 장시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파견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하루 아침에 계약 해지를 당하자 어렵게 싸움의 결심을 하신 것이다. 그것이 지난 해 9월의 일이었는데, 이런 사토 씨를 지지하는 모임의 부대표인 쿠로다 씨 말씀처럼 파견 노동자 계의 잔 다르크처럼, 현재 일본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가장 중대한 이슈인 파견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는 경순과 나 둘이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모든 스텝들이 버스를 타고서 4시간 거리를 달려 코오리야마에 도착하였다. 가장 빨리 출발한 버스가 아침 8시로, 캠페인이 이미 시작한 뒤에 도착하여 그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역 근처에서 열 명쯤의 사람들이 모여 리플렛을 뿌리고 마이크를 대고 발언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것이 끝나고는 ‘코오리야마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명패가 걸린 사무실 - 그 지역의 이런저런 시민 단체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로 이동, 내일의 집회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조금 찍고, 사토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사토 씨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것도, 레드마리아에서 만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아람이는 그 다음날 필리핀 여성들의 모임 KAFIN 방문 및 이치무라 씨의 246 키친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캠페인만 참가하고 도쿄로 돌아갔다)

이날 밤은 쿠로다 씨 - 이 분은 지난번에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아주 좋은 분이다 - 가 안내한 친구가 운영하는 찻집 겸 산장으로 가서 잠을 잤다. 쿠로다 씨는 나이 이야기를 하다가 순식간의 경은의 ‘오까상’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나이가 엄마뻘이라는 이유였지만 경은의 서투른 일본어 발음의 ‘오까상’이 재미있으셨는지 매우 그 호칭을 즐겨 들으셨다.

그리고 2월 8일. 처음에 집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당연히 길거리에서 하겠지라고 예상을 하기도 했었으나, 사실은 노동회관에서 진행되는 집회였다. 일본은 거리 집회를 하는 것이 엄격하기도 하고 또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강연회 및 지지 모임 출범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예상은 백 명 정도 오겠지 했던 것이 250명이나 모여들어서 주최 측 분들이 매우 감동스러워하며 성공적이라 자평하였다. 특히 그 중 일부 2, 30대인 사람들이 꽤 눈에 띄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였는데. 사실 일본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나이가 많아서 세대가 이어지지 않은 건가, 하는 아쉬움을 우리들도 그리고 일본의 활동가들도 아쉬워하였는데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강화되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젊은 세대들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어 가는 추세가 아닌가 하는 전망도 조금씩 만나게 된다. 아무튼 일본의 파견 노동의 현실은, 파견노동법이 악법으로 작용하여 법제도적으로 압박이 많고, 그에 더해 파견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암울함이 있는 것이다. 다만, 사토 씨처럼 여성 혼자서 분연히 일어서서 싸움이 시작되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진다. 또 그 분과 함께 활동을 벌여 가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도. 일본의 노조가 싸우지 않는 노조가 되어버렸다는 많은 노동자들의 아쉬움으로부터 시작된 활동들이 가진 가능성에서 새로운 운동 방식을 고민하는 장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부터 침해 당하는 인간 존엄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함께 하면서 모여서 이어 가는 이야기들을 계속 해서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날 일정을 마치고 6시 쯤 역에 도착했지만 도쿄로 돌아가는 버스가 밤 12시에 있었기 때문에 역 근처를 배회하며 일하는 여성들의 사진들을 조금 찍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야간 버스를 타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토 씨는 2월 중에 다시 한 번 만나서 일상 생활을 찍고, 그 다음에는 2월 28일 - 3월 1일 쿄토, 오사카 등지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만날 예정이 있다고 하니 또 거기에 참가해볼까 하는 구상을 가지고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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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로스트 제너레이션' 주최 ‘여성과 빈곤’ 토론회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진 후, 더 이상 안정된 직장과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할 수 없게 된 젊은 세대들 (25세 ~ 35세)을 일컬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 것을 잡지 이름으로 차용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작년에 창간, 최근에 2호 째 책을 낸 후 ‘여성과 빈곤’ 토론회를 열었다. 시작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잡지는 젊은 세대들의 삶의 고민을 녹여내고자 하고, ‘신좌익’이라고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토론회가 열린 곳은 도쿄의 아사가야라는 동네의 ‘loft’라는 라이브 카페였다. 공연도 하고 오늘과 같은 토론회도 곧잘 열리는 일종의 대안 공간이다.

패널에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가 요즘 아주 자주 만나고 있는, 요요기 공원의 텐트촌에서 살고 있는 이치무라 미사코 씨, 그리고 예전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도 만난 적 있는 쿠리타 류코 씨를 비롯하여 로스트 제너레이션 편집진 및 ‘프리타's free’라는 잡지의 편집인이었다.

꽉 짜여진 토론회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분위기였던지라 딱 여성과 빈곤이라는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각각 나름의 포지션에서 발언을 하는 자리였다. 이치무라 씨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쿠리타 씨는 일하는 게 ‘무서운’ ‘독신 프리타 여성’으로서, 주최자는 ‘일하는 엄마’로서 각각의 이야기를 개진하였다. 주제는 여성과 빈곤이지만 패널에 남성도 2명이 참가하였고 이 이벤트를 보러 온 사람들의 상당수 역시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처럼 여자들끼리 빈곤 이슈를 놓고 이야기 할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이기도 했다. 여성의 빈곤 이슈가 어떻게 소통 가능한 이슈가 될 것인가는 또한 두고 볼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한편 들었다. 늘 느끼는 것은 이럴 때는 항상 일종의 ‘번역 작업’이 필요해서, 이야기가 깊숙이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것.

그렇지만 작년에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비롯, ‘프리타's free', 'pev' 등, 젊은층의 목소리를 담은 잡지들이 창간되는 등, 변화한 일본의 경제 상황에서 그 동안 기성세대에게 ‘패기가 없고 나약하다’고 지적당해 온 일본의 젊은이들이 당사자로서 발언하기 시작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만나가야 할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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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5일 목요일

<요요기 공원 교회 집회/ 이치무라 상 일상생활>

11시쯤 공원에서 빵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다고 하여 요요기 공원을 찾았다. 가서 보니 일전에 일렬로 늘어선 홈리스 분들과 앞에서 열심히 설교를 하던 교회집회와 흡사한 모습이길래 설마 했더니, 역시나 그것도 다름 아닌 한국교회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나눠주는 리플렛에 각각 일본어와 한국어로 된 성경 구절이 쓰여 있었다. 이 모습을 가까이 있던 육교 위에서 찍고 있는데 이를 본 한 분이 고함을 빽 질렀다. 다른 것은 괜찮았지만 서도 이치무라 상이 불편해할지도 모를 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그 일이 있고 해서 그 근처에서의 촬영은 바로 접고, 이치무라 상의 블루 텐트촌으로 갔다. 곧 면 생리대를 만들고 나누는 ‘노라’가 있을 예정이기도 하다.

노라에는 두 여자 분이 함께 했는데 이치무라 상이 만들어 놓은 생리대를 받아 갔다. 이 생리대는 각각 천円씩 했는데 이것을 팔고 일부 금액을 판매자들이 받아가기도 한다. 또 어떤 분은 천을 받아가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서 갖고 오기도 한다.  이 중 한분은 홈리스 생활에도 계속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결국 가족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홈리스 생활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촬영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부득이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가려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요요기 공원에서 이치무라 상이 공원 안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도 찍었다. 벌써 공원 한  켠에는 매화와 홍매화가 예쁘게도 피었다. 이날도 간간히 이치무라 상의 일상생활을 찍고, 노라에 찾아온 두 분과의 대화를 촬영했다. 저녁 무렵 노라 모임이 끝나고 다들 돌아간 다음, 저녁에 이치무라 상이 시부야에 있는 넷카페(인터넷카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하기에 그 곳까지 가는 길을 촬영했다. 우리들이 촬영을 한다고 해서 이치무라 상은 늘상 타고 가던 자전거를 타지 않고 갔다. 요요기공원에서 시부야까지 걸어서 도착하여 좁은 넷카페 내부를 잠시 찍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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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일 월요일

<단체 KAFIN 방문/ MediR 방문>

원래는 점심때쯤 목욕하러 가려다가 갑자기 잡힌 일정에 갑자기 챙겨서 나가게 됐다. 일본으로 이주해 온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단체인 KAFIN의 대표인 아겔린 씨가 내일 두바이와 필리핀을 방문하기 위해 떠난다고 한 것이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니시가와구치 역 근처에서 마중나와 있던 오오타 씨이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냐며 아는 체를 해왔다. 오오타 상은 KAFIN에서 (일본인으로서 필리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자원 봉사자이며, 영상물을 만드는 활동도 하고 있다.

도착해서 본 사무실 안은 작고 소박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KAFIN을 만든 아겔린 씨와 친구 네리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아겔린 씨는 오사카대에서 연구원들이 조사차 두바이에 가고, 일본 사진기자가 필리핀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방문하는데 통역하는 일로 동행한다고 했다. 오오타씨와 아겔린 씨는 우리에게 현재 개호사로 일하고 있고 저녁에는 스낵바에서 엔터테이너로 일한다는 베이비 메이 씨와 역시 개호사로 일하고 있는 메리안 콘노 씨를 알려주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 중 등록된 필리핀 여성들만 240000명이 있으며 요코하마, 나고야, 사이타마 등지에서 필리핀인 중 70% 여성이 일본 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일본인과 결혼했다가 싱글맘으로 지내거나 가정폭력을 경험했으며 개호사, 엔터테이너,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무실에서 현재 일본인 아이 아버지를 찾으러 온 메이라는 필리피나를 만났는데, 이미 일본에서 지낼 수 있는 첫 비자 세 달을 보낼 동안 아직 애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를 찾고 아이 아버지가 이를 알아야지 일본의 국적 취득이 가능하고 아이가 보육원이나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메이 씨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뿐이었다. 일본 국적법은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혼외 자녀’라도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알고 있었으면 국적 취득이 가능하지만 생후 인지했을 경우 일본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에 대한 국적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국적법에 의해 그 동안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인구는 필리핀에만 해도 수만 명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요즘 이러한 일본인 남성과 일본 국외의 여성이 결혼했을 경우 비교적 엄마보다 아이가 비자를 얻기가 더 쉬우므로 이를 이용해서 그 아이가 엔터테이너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필리핀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JFC 라는 단체는 일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는 모임이다.

필리핀 현지에서는 일자리를 얻기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던 사람이 외국으로 나가 가정교사나 가정부로 일하는 사례가 흔히 있다. 홍콩으로 수많은 가정부로, 한국으로는 공장 노동자, 이탈리아로 베이비시터로, 일본으로 엔터테이너로 많은 필리피나들이 이주해가고 있다. 필리핀에는 미국과 같은 영어권 나라로 나가기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아시아의 미국인 일본 또한 많이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현재 KAFIN의 사무실에서 거주하는 필리피나는 3명이 있는데 그 중에는 동생이 가정폭력을 겪었는데 이유인즉슨 일본인 남편이 그 사람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서 현재 병원에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은 필리핀에서 가정이 있는 일본인 남자를 만났는데 이 일본인 남자가 일본에 돌아가서도 자신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힘들게 생활하는 중에 결국 일본으로 남자를 찾으러 왔었고 결국엔 남자를 찾았으나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현재 사무실에는 살지 않지만 이 사무실을 왔다갔다 방문하는 사람은 25명 정도가 되며 명부에는 50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서둘러 자리를 떠야했던 아겔린 상을 보내고 우리도 사무실을 나왔다. 역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잠깐 역 근처에 스낵바와 같이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상점을 둘러보기로 했다(일본에는 유리집이 없다고 한다). 생각보다 곳곳에, 많은 스낵바들이 있었고, 또 많은 외국인들도 볼 수 있었다. 이중에는 눈에 띄게 중국인이나 필리핀인들도 보였다.

이날 오랜만에 만난 필리핀 사람들 때문에 느낀 (의외의)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너무나도 한꺼번에 많은 이슈들이 필리핀 이주 여성들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복잡한 생각도 한꺼번에 들었다. 

저녁에는 MediR이라고 하는 일본에 있는 미디어센터를 들렀다. 그곳에 있는 분들에게 우리의 영화를 소개했고 프리뷰를 도와줄 분들을 만나 테입을 드렸다.



Posted by 빨간경순





요즘 우리가 만나고 있는 비중 큰 한 인물은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acw2'의 대표 이토 미도리 씨이다. 이토 씨는 18세 이후로 쭉 일을 해 온 여성이고, 2000년 이후로는 전업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원래 여성 유니온 도쿄에 있던 분인데, 새로운 형태의 여성 노동자들 간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작년 한 해 전국을 돌며 여성 활동가들과 의기 투합하여 드디어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여성노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늘의 상담 트레이닝의 방식도 그 쪽에서 배운 점이 많다는 게 이토 씨의 설명.

코오리야마는 후쿠시마 현 내에 있는 인구 30만의 도시이다. 우리는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도쿄에서는 자취도 없던 눈이 잔뜩 쌓인 도시에 도착하였다. 그 지역의 교직원노조 회의실을 빌려서 진행된 상담 트레이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빽빽한 일정이었다. 참가자는 모두 여성으로 교직원노조, 연대 유니온, equal(시민 미디어) 이렇게 세 단위의 활동가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지역의 경우, 노동 기준법 등 노동자가 가지는 권리에 대한 정보 공유가 미약하고 상담 창구도 변변치 않다고 한다. 큰 노조들의 경우 대부분 남성 노동자 중심이기 때문에, 임신, 출산을 비롯하여 고용 형태에 이르기까지, 여성 노동자가 가진 노동 이슈에 적절하게 대응해 주지 못할 뿐더러, 부차화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늘의 트레이닝, 혹은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낀 여성들이 많다.

오늘도 상담 트레이닝을 하던 중, 막판에는 그러한 일본 노조들의 문제에 대한 각 개인들의 성토 대회가 잠시 열리기도 했다. 여성을 피해자로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경향의 문제점이라든지, 작년부터 이슈가 되고 있는 빈곤 문제에 대한 이슈화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비가시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다든지... 요즘 만나는 현장의 일본 여성들로부터 받는 느낌은, 그 동안의 답답함에서 치밀어 오른 말들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있어서, 기회가 되는 즉시 모두가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그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는데, 특히 일하는 여성 당사자들이, 너무나 팍팍한 현실에서 드디어 스스로 발언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오늘 참가자 중에는 11년 간 일한 파나소닉에서 해고되어, 분한 마음에 생활의 곤란함을 불사하고 소송 중인 사토 씨가 있었다. 사토 씨는 11년 전 정사원이라고 알고 입사하였으나, 일하는 부서가 이동되면서 파견직으로 바뀌었는데 당시에 그 사실에 대한 통지도 없었고, 잘 모른 채로 그저 열심히 11년 간 밤 10시, 11시까지고 일하며 세 자식을 키우고 살아온 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었고, 이것을 이대로 넘길 수는 없다는 마음에 소송을 걸어 회사에게 '너희들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다'라고 확실히 알려 주고 싶다고 하셨다. 지역에서 이처럼 재판을 걸고 하다보니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고 재취직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더는 두려울 게 없다'고 하신다. 참 쓸쓸한 현실은, 이런 사토 씨가 역 앞에서 선전 활동을 하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10대들이라는 것이다. 윗 세대들은 일본의 경제 호황기를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 10대들이 지금 당장 스스로들의 장래에 불안을 많이 느낀다며 사토 씨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것. 한국의 88만원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던 길, 역 근처에서 같이 식사를 했던 지역 분들은 우리가 역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으로 가는 길 내내 뒤에서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도쿄에서는 느낄 수 없던 따뜻함이, 도쿄보다 훨씬 추운 동네에 있었다.

차비가 많이 드는 동네라서 경순과 나, 둘이서만 코오리야마에 다녀왔고, 경은과 아람은 도쿄에 남아 사진 이미지 작업에 필요한 현장 답사를 닛뽀리 역 주변과 밤의 신쥬쿠 거리에서 진행하였다. 처음으로 나눠져서 작업을 했는데 너무나 놀랍게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딱 만났다. 그 시간에, 그 열차 칸에서 딱 마주치다니... 마침 우리가 신세지고 있는 일본 분께서 역에 차로 마중을 나오시겠다고 한 참이기도 했던 거라, 사이 좋게 넷이서 또 오오즈 케이코 할머님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는 사실. 그러고 돌아오니 또 밤 12시가 지나 있었다.


 

Posted by 빨간경순





2009년 1월 31일

이치무라 상, 요요기공원 스케치/친구 켄보 상의 생일>

어제 내린 비가 오전까지 그치지 않고 부슬부슬 내렸다. 사실 오늘은 주말마다 열리는 카페가 요요기 공원에서 있을 예정이었는데 비 때문에 열리지 못하게 됐다. 비오는 요요기 공원의 모습을 스케치하려고 공원을 찾았다. 가서 이치무라 상의 얼굴을 보니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어제 새벽 늦게까지 아카이시 상과 함께 홈리스들을 만났다고 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꼭 좀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에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날 저녁에 친구의 생일파티에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요요기 공원은 날씨는 춥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몸도 풀고 저녁식사도 할 겸 잠시 요요기 공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찻집에서 쉬는 동안 영란과 신주쿠역에서 후쿠시마행(코리야마) 신칸센 표를 샀다. 다시 돌아간 이치무라 상의 텐트 옆에서 생일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켄보 상의 생일파티를 위해 5명 정도가 모였다. 전기가 없어 촛불 세개로 밝혀놓은 텐트 안은 환하고 따뜻했다. 계속해서 나베를 끓여먹고, 우동을 먹고, 재일교포라고 하는 최 상이 만들어 온 케이크도 먹었다. 한국의 드라마, 일본 연예인, 경제 불황,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전히 카메라를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이 계셨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너무나도 상냥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자주 얼굴을 비추고 만나는 게 중요한 것이겠지 생각했다.



Posted by 빨간경순





점심 때, 신쥬쿠에서 경순이 알고 지내던 아야코 씨를 만나는 걸로 일과를 시작하엿다. 일본에서의 쇼킹 패밀리 상연을 계기로 알게된, 메이지학원대학에서 영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아야코 씨와 경순의 인연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러니 일본에 또 왔으니, 자연스레 만난 것이다. 레드마리아 작업에 대한 대화도 나누고, 핸드폰을 개통 시키는 데에 도움도 받으며 점심 시간이 후딱 지났는데, 헤어지기 전 갑자기 봉투를 건네주시며 레드마리아 제작에 기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렵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올 수 있었는데, 와서도 참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이토 씨를 만나러 요요기로 향했다. 요요기에는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사무실이 있고, 이토 씨는 다른 일이 없으면 그 곳에서 사무일을 하신다. 바로 출발. 오늘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후지이 씨, 그리고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오오하시 씨와 함께이다. 오오하시 씨는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 패널로 이야기 하셨던 분이기도 한데, 지금 소송 중이시다. 원래 일하는 회사에서 파트 타이머로 고용되어 있던 오오하시 씨는 실상은 정사원이나 다를 바 없는 업무 수행을 해 왔었는데, 어느 날 회사로부터 계약갱신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받아서 여성 유니온 도쿄에 가입해서 회사와 단체 교섭을 하여 계약갱신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종업원대표선거에 파트타이머로서는 처음 나가서 많은 표를 얻었지만 당선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회사 측이 오오하시 씨를 파견사원으로 이동 시켜 고용 형태를 바꾸어, 다시 도쿄도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하여 회사 측과 일단 화해하고, 또 종업원대표선거에서 대표로 선출되기도 하였으나, 회사 측으로부터의 괴롭힘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자발적인 퇴직을 강요하는 행위로,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사례가 요즘 일본에서 속출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결국 오오하시 씨는 회사에 소송을 거는 재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괴롭힌 사례들을 들으면 꽤 악랄한 것들이 많았다. 몰래 감시 카메라를 3대나 설치해 둔다든지...) 아무튼 그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와 만나서 상담하는 자리가 오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일하는 여성의 전국 센터'로 들어온 상담 내용을 분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총 5인이 모여서 하는 이 회의는 상담 사례들을 적절히 분류, 분석하여 자료집을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열렸다. 참가자들 연령대가 3~50대로, 일본의 타 운동 단체보다는 젋은 축에 속한다. 여성 노동 상담의 특성들을 요약하면서, 어떻게 이 부분들을 부각시킬 수 있을 지가 중요한 이야기의 주제였다. 이는 상담에 필요한 실질적인 자료이기도 하지만, 남성 중심의 노조에 대한 비판, 혹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이어지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또 일본 미디어 운동 관계자를 만나 우리 영화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들었다. 역시 많은 분들을 소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 길었던 하루.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