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5. 11. 23. 17:53
2015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 프로그램 노트

신은실/인디다큐페스티발2015 집행위원

시아를 횡단하며 여성들을 만났던 <레드마리아>, 속편에서는 남한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로 여겨지는 ‘성노동’과 ‘위안부’ 문제를 직시한다. 영화 속에 인터뷰이로 등장하
는 야마시타 영애 . 박유하 교수 등이 여러 각도에서 지적하여 때로 논란을 부르기도 했
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작금의 논의가 지닌 한계. 그것은 바로 모두가 “강제 연행
이 있었는지”를 규준으로 삼고 다툰다는 점이다.
강제 연행이 있었다면 문제지만, 없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시 공창제가 동원
한 일본과 대만 등지의 ‘매춘부’들은? 조선 출신 위안부는 과연 예외였던가? 그들이 강제로
연행되지 않았다 한들 성노예가 아닌가? 그리하여 일본군의 집단 강간과 전쟁 범죄행위가
사라지는가? 영화는 “강제 연행” 여부와 그 증명에만 얽매여 “가해자가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새기고, 그 “침묵의 의미를 생각”하려 한다.
운동에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던 역사의 잔여도 <레드마리아2>는 곡진히 길어
올린다. 이를테면 시로타 스즈코 . 배봉기 씨의 삶, 그들을 잊지 않으려 기록하고 기리는 이
들의 존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인 쟁점들은 ‘내셔널리즘’이란 교차점 위에서 만난다.
또, 2차대전 중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예의 틀과 현재 성노동 문제의 근친
관계를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카메라가 명료하게 보여준다. 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사
회적 낙인은 타당한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비범죄화’되지 못하고 파견 형태 등으
로 변형된 매매춘은 성노동자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몰 뿐이다. 한국전쟁 때 자국민을 위
안부로 강제 동원하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미군을 상대하는 성노동자를 직접 관리하며
외화벌이에 나섰던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하여, 꼭 봐야 할 작품이다.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5. 11. 5. 13:22

제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변성찬


경순 감독은 전작 <레드마리아 Red Maria>의 끝부분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레드마리아2 Red Maria 2>는 본격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이고, 또 이제는 충분히 들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제안하는 영화다. 

영화는 한국 및 일본의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와, 이제 ‘위안부’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하는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두 이야기를 교차편집하고 있다. 이 교차편집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어떤 경계/차별

(한국여성과 일본여성 및 강제로 끌려간 여성과 매춘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이제는 넘어서야 

하지 않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영화적 장치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여성이라는 위안부 희생자의 이미지는, 

누군가를 그 희생자의 범주에서 배제시키고,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과 권리를 

박탈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현재의 성노동자 여성들이 요구하는 자격과 권리에 대한 호소를 

들을 수 없게 하는 장치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닐까? 

<레드마리아2 Red Maria 2>는, 누군가에게는 침묵을 강요하고 또 누군가의 말은 들리지 않게 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순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귀를 열고 온전히 듣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영화다.

Posted by 빨간경순
상영정보2015. 9. 9. 16:33



2015 DMZ국제댜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상영


상영정보

http://www.dmzdocs.com/program/program_view_2015.asp?p_idx=7&menu=2&category=2


시높시스

한국의 성노동자 연희는 일본성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의 야마시타 영애는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가 운동에서 배제됐던 과정을 강의하기 위해 교토로 향한다. 한국의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출판하고 위안부할머니들에게 고소를 당한다. 르뽀작가 가와다 후미코씨는 오키나와에서 위안부생활을 했던 배봉기씨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은 성노동자들과 피해자도 될 수 없었던 매춘부출신의 위안부 문제가 교차되며 영화는 기억에서 사라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기획의도

나는 전작인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많은 성노동자들을 만났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사회에서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그들을  곁에 있는  사람으로 마주하게  시간이었다. 어떤이는 싱글맘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일을 한다 했고,  어떤 이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일이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도 했다.

 

 성노동자에 대해 흔히들 상상하는 인신매매나 피해자 프레임으로는 담아낼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시 나는 카메라에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을 수가 없었다.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지면서 카메라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연락이 끊겼다. 뒤늦게 누구는 단속을 피해 호주로 갔으며, 누구는 안마시술소로 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누구는 성매매 쉼터로 들어갔다가 결국 다시 다른 업소들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성노동자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결심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매춘이  사회에서 무엇이관데 이들이 범죄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료를 찾던 , 매춘에 대한 낙인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많은 분들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직업 매춘부였던 위안부들은 이후 위안부 운동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에는 가난한 부모에 의해 유곽으로 팔려갔다가 위안부로 가게  사람도 있었고, 결혼까지 하고도 취업사기로 끌려간 분들도 있었다. 또한, 가해국 일본에도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있었지만,  모든 분들은 매춘부라는 이름에 가려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불리지 못하였다.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성노동자와 피해자조차   없었던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  아이러니한 두 가지 문제를 직면하면서 나는 매춘혐오가 만들어내는 이중잣대에 놀랐고,  이야기를 계속 쫓아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중잣대의 윤리가 실상 많은 여성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독 본인의 엄마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있었다. 여성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잣대를 벗겨내고 사실을 직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상영시간표

9/18(금) 18:00 메가박스 파주출판단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9/20(일) 15:30 메가박스 백석 (상영 후 아티스트 토크)

9/23(수) 12:30 메가박스 백석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5. 30. 16:21

사실 1차 편집본이 일찍 나왔다.

이번에도 해외 촬영분이 많아서 번역이 골치기는 했지만

전작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겪었던 말과의 전쟁에 대한 혹독한 경험이 피와 살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좀 효율적으로 수월하게 넘어간거 같다.

물론 그 과정엔 단지 지난 경험이 반면교사가 된 것도 있지만 

사전제작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전작을 찍을때는 사전제작비 없이 시작해서 여러곳에 지원서를 넣어 하나가 되면 필리핀 찍고 

다시 여러군데 지원을 해서 또 하나가 되면 국내를 찍고 더이상 안될거 같으니 

제작위원을 조직해가면서 일본 촬영을 찍곤 했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도 충분하지 않다보니 스텝들이 온몸을 불사르며 스스로 통역하고 

스스로 재정을 관리해 가면서 모든 일을 자체 해결해야 했었다.

그만큼 기간이 늘어나고 누수되는 시간이 많았지만

모든걸 함께 논의하고 모든걸 함께 공유했던 시스템.

그게 내가 원하는 제작시스템이었고 그걸 즐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래야 결과물에 대한 자양분이 좋은 것이든 안좋은 것이든 모두에게 흡수될테니 말이다.

돈보고 일한 것도 아닌데 그거라도 챙겨야 남는거 아닐까 하는 나름 독립영화제작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노력을 포기하고 많은 부분 인건비로 대체를 했다.

첫째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래서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셋째는 누수되는 시간을 줄여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프러덕션을 생각했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스텝들과 일을 하게 됐다.

스텝들에게 각자의 역할 이외에 모든것을 나누거나 요구하려 하지 않고

나는 내일에만 신경쓰며 감정소모를 줄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지통역과 번역에 많은 돈이 들어갔고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결했음에도 여러나라를 찍다보니 촬영비도 솔찬이 들어갔다.

물론 많이 들어갔다 함은 쓸 수 있는 제작비의 기준에서다.


우자지간 그런덕에 나는 이번 작업에서 스텝들과 처음부터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부담하는

모든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좀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후반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충분한 제작비를 마련하지는 못한덕에 

결국 사무실을 빼고 마무리는 혼자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가 되긴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정산을 비롯한 번역이 어느정도 되었기에

혼자서 편집을 해도 견딜만은 하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면에서는 혼자라는게 편하기도 하다.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감정이 참 묘하다.

각기 다른 프로덕션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다르기 때문인데

무엇이 더 좋은 것일까는 쉽게 단정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전작과는 다른 프로덕션을 가동하면서 누수되는 시간은 벌었지만

전작과는 또 다른 감정소모가 분명 있었고 해결하는 방식도 달랐다.

돈을 받는 만큼이라는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관계가 분명 있었고

그 기준이 일을 하는 기간과 방식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프러덕션이 주는 스텝들과의 성취감과는 다르게

이번 작업의 스텝들이 주는 새로운 면도 있었다.

받고 준 만큼 이외에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움이랄까.

물론 이 말은 좀 씁쓸하기는 하다.

영화가 너무 감독 중심으로 사고되는 이기적인 면이 강조됨으로.


그러니 무엇이 더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그 작업에 맞는 프로덕션이 있는 것 뿐일터.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독립영화제작에 필요한 프로덕션이 어때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험임은 분명했던거 같다.

2차편집본을 이틀만에 뚝딱 해치우고는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경써야 할 것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 잘 조절하면 참 많은 시간을 벌어준다는 사실.

물론 그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눈 딱 감고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고.

대표적인게 역시 누적되는 제작비의 빚을 모른체 지나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3차 편집본은 편집감독과 함께 하기로 했다.

누구보다도 이번 작업을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친구라 기분이 좋다.

2차 편집본을 어떻게 다듬어 놓을지 기대된다.

기다림은 지루하니 내일은 간만에 암벽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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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4. 16. 22:59

몇주전 안과를 다녀왔다.

1차 가편본이 나올즈음 왼쪽눈에 이상이 왔기 때문이다.

다른곳이 아프다면 병원가기를 미루었을텐데

한참 편집을 하는중에 모니터가 안보이니 나도모르게 바로 달려가게 되었던 것.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만 의사가 그런다.

눈에 구멍이 났어요

헉...


망막뒤에 있는 일종의 필름역할을 하는 막에 구멍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세혈관의 피가 새고있어서 눈이 뿌옇게 된거라고.

레이저로 간단히 수술을 할 수 있으니 오늘 하고 가라했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제는 별걸 다 한다 싶었다.

대체 내가 모르는 몸의 불상사는 또 무엇이 남았을지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공을 확장시키고 마취제를 뿌리고

전기고문 하는것 같은 레이저빛을 수십번 쏴대더니 일단 봉합이 됐다.


봉합은 되어 더이상의 피가 새지는 않지만 수술부위의 상처가 남았는지

렌즈에 낀 커다란 먼지처럼 앞을 볼때마다 커다란 돌멩이가 왔다갔다 한다.

레드마리아를 촬영하다 일본에서 오른쪽 눈을다쳐 각막이 찢어졌었는데

레드마리아2를 만들면서는 왼쪽눈에 빵꾸라니.

우자지간 그후 나는 땜질해 놓은 뿌연눈으로 모니터와 싸우고 있다.

몇일전 촬영을 나갔다가 안그래도 초점 맞추기가 힘든판에

땜질한 눈으로 초점을 맞추느라 똥을 뺐다.


젠장...사는게 뭐 이렇게 코메디인지.

그런 코메디같은 일에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더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오....이건 아니지.

그렇게까지 손해보며 살 순 없지 하고 생각을 바꿨다.

세상의 구멍난 곳을 보다못해 내눈에 구멍까지 생긴거라고.

그러니 내눈에 구멍은 더 많은 구멍을 대비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근데 역시 그런 딸딸이는 안 통하나보다.


일이란게 엎친데 겹친다고 사무실도 4월말에 빼야하는데

오늘 집주인이 집을 빼달라고 하고

돌아가신 능곡엄마집도 빨리 짐을 빼달라고 독촉이 동시에 온다.

도무지 계획적으로 살 수가 없다.

원래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상은 좀 질서가 있어야하지 않나?ㅎ

여기저기 생각지 않은 구멍들이 점점 쌓이는데

이러다 맨홀붕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집을 빼줘야 한다고 수림에게 메세지를 보냈더니

이 친구가 더 난리다.

엄마 그럼 우리 어떻게....훌쩍훌쩍

엄마 9월안에 영화 완성해야 한다믄서...훌쩍훌쩍

그냥 버티면 안되나....훌쩍훌쩍

....

이친구 아직 산전수전을 한참이나 더 겪어야 할판.

아니 뭐 이정도를 가지고 훌쩍이기까지.

이런건 껌이야 수림아.

니가 진짜 힘든일을 못겪었구나 고주알메주알....


엄마답게 몇마디 씨부렁 거려줬더니

웬지 뿌듯.

근데 왜케 마음이 편한거냐.

이것도 좀 문제는 문젤세.

정작 머리 아픈건 편집 할 시간을 졸라 빼앗기겠구나 하는 것.

젠장 고관절이나 빨리 낳았으면 좋겠구나.

암벽이나 실컷 다니고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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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5. 1. 15. 02:34

아직 완벽하게 번역과 프리뷰가 끝난건 아니지만 지난 연말 

정확히 12월 27일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촬영내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구성 방향이 프리뷰를 하면서 조금씩 수정이 되고

일단 느슨하지만 편집 방향이 좀 잡혔다.

그리고 직접 내용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좋은 그림이 많구나 새삼 놀라기도...ㅎ


우자지간 그렇게 연말과 연초를 보내면서 한달전에 올린 후원금통장은 뒷전이 됐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보겠다고 했지만 이 한겨울 떨어질 감이 어디 있겠나 싶기도 했고.

세명의 후원자가 보내준 후원금이 바닥을 치게 되어서야 

혹시나 싶어 통장을 찍어보았다.

허걱.......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50만원짜리 감이.ㅎ

이미 통장에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후원금을 넣어준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후다닥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제서야 친구가 줄줄이 후원금을 보내게 된 이야기를 말해준다.

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이제사 놀이방에 좀 다니게 되서

일주일에 한번 동네에 있는 콘도 청소 알바를 했다고.

그리고 12월 한달간 일주일에 한번씩 5일 일해서 번돈.

그돈을 후원금으로 투척해서 너무 마음이 좋다고.


젠장 이 지지배는 늘 이렇게 사람을 놀래킨다.

순간 눈물이 쭉...

아 썅...너무 행복해서 미치겠다.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를 더 흐믓하게 만들어 주는건

이친구가 요즘 돌이 겨우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아이가 생겨서 다채로운 삶을 느끼는건 좋지만 벌써 아기는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좀 허전하다고.


'....

아이한테서 새삼스럽게 인생을 배우고 있어. 

멈추어 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될 때까지 수백번을 다시 시도하고,  
마치 오늘 하루가 끝인 것처럼 미칠 듯이 놀고, 늘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해하고, 아기의 삶에서 인생의 비밀을 보는데, 난 아직 그걸 내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네.
여튼, 오늘 두시간 넘게 낮잠을 잘 자고 있는 아기가 얼마나 예쁜지. ㅋㅋㅋ
그리고 영화 잘 만들어야 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명료하게!! 
나 요즘 정말이지, 너무 단순하게 살아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거든
.....'

하하하..어찌나 재밌고 실감나는 글인지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서 키득거리며 몇번을 읽었다.
아기가 벌써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는 그 말이며
그걸 벌써 알아 챈(?) 친구의 허전함이며...크크크
갑자기 며칠전 남대문시장에 등산용품 구입하러 갔다가
주인할머니로 부터 뜬끔없이 염색 좀 하고 다니라고 충고아닌 충고를 들었던 생각이 겹친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에게 들었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대충 넘어갔을텐데
칠십은 족히 넘은듯 보이는 어르신이 그런말을 나에게 하니....하하하
그 날도 비슷하게 혼자서 계속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오늘도 역시 비슷한 감정이 계속 나를 웃게 만든다.
대체 이건 무슨 화학반응인지...ㅎ
그날도 그 웃음이 묘하게도 나를 참 오래 흐믓하게 했는데
오늘 이 웃음도 오래동안 나를 설레게 할거 같다.

우자지간 중요한건 감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를 위해 쉽고 명료하게 영화를 잘 편집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하하하

요즘 자기 삶을 찾아간다는 이 친구를 보니 에너지가 듬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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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12. 9. 17:23

요즘 사무실이 온통 컴퓨터 자판소리로 뒤덮혀있다.

각자 헤드폰을 끼고 한사람은 번역을 하느라

한사람은 프리뷰를 하느라

그리고 나는 촬영본을 보면서 편집구성을 한다고

손들이 바쁘게 자판위에서 논다.

사이사이 촬영도 나갔다가

서둘러 들어와 우리는 또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판이 눌러지는 만큼 영화의 내용이 풍성해 지면 얼마나 좋을까.


몇달전부터 제작비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고민만 하고

후원회며 제작위원이며 꾸려볼까도 생각만 하고

친구가 알려준 여성재단 지원금도 지원해 볼까 마음만 잠깐 써보다가

결국 버틸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현금서비스와 대출만 늘리고 있다.

영화제작만큼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야 모을 수 있는 돈이기에

예전처럼 남아도는 에너지가 부족한 나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을 하게된다.


그렇게 조금만 더 제작에 집중하자고 마음이 쏠리는데로 가자니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당장 해결해야 할 밥값조차

이제는 더이상 빼먹을 대출이 없다.

마이너스통장 만든다고 설친게 불과 한달도 안된거 같은데

그놈의 마이너스 통장도 이미 받은 대출금에 연봉도 2500만원이 안되는 부류라고

겨우 500만원 밖에 안됐는데 

그동안 쌓인 현금서비스 막고 카드를 막고나니 

순식간에 마이너스 500이 통장에 써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으자니 그 시간만큼 제작에 누수가 생기고

제작에만 몰두하자니 후반작업과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식비조차 흔들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을까를 고민하다 일단 덜컥 후원금 통장 하나를 만들었다.

당분간 더 집중하자고 지금 고갈된 에너지를 그나마 제작에 집중하자고.

그래서 아주 게으른 방법으로 후원금통장 하나 만들어 놓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보자고.

지난달 일본촬영때 자신의 강연료를 후원금으로 건네주었던 야마시다 영애 선생님의 마음을 쌈지돈으로

통장에 넣었더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아는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 선생님도 후원을 해주셨다.

그렇게 12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음악,색보정,파이널 편집,사운드,번역 등등 후반작업과 남은 촬영 진행비까지 최소한 4천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그 큰 돈이 '감'으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작은'감'을 기대해 본다.

앞으로 두세달 제작에 더 집중을 하고 그렇게 '감'이 되어준 분들을 모시고

중간제작발표회를 준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블러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서 누가 이글을 읽을지 잘모르겠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감'이 쌓이기를 욕심내며...다시 편집기를 켠다.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우리은행 1002-352-635167 예금주 김해진

연락처 redmaria@tistory.com


* 김해진은 레드마리아2 제작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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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4. 12. 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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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10. 28. 12:43

며칠전 일본에 사는 레드마리아2 주인공 중 한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 촬영을 위해 하루종일 빡세게 몸을 좀 굴렸더니 지금까지 후유증이 심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날 하루가 아니라 나는 이미 도쿄에서 그 분을 찍고 있어야 했고

한국에 같이 들어와 그의 일과를 찍고 나서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오사카와 도쿄의 일정

카메라에 담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니까 그건 지난 여름에 세워진 계획이었고 나의 10월의 스케줄은 그렇게 10일간을 

비워 두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여름부터 시작된 제작비 문제는 그 분의 촬영을 비롯해서

모든 일정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더이상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도 힘들었지만

그 후유증이 생각보다 여러방면으로 영향을 준다는데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촬영도 혼자 해야하고 인건비가 없으니 사람을 쓰기도 힘들고

교통비를 절약하자니 장비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그러다보니 몸이 너무 지친다. 한번 찍고나면 그 후유증이 며칠을 간다.

그 며칠에 몸을 다스릴 비용은 또 늘어나고

결국 찍어야 할 내용들을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0월의 일정도 머리속에서 지우고 있었는데

그 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왜 이 영화를 찍는지가 다시금 상기된다.

도쿄촬영은 놓쳤어도 오사카 촬영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카드로 항공권 두장을 끊어 놓고 오사카의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나 너희집에서 좀 묵어야 할 거 같은데 괜찮겠니?

통역하고 나 둘이 갈거야.

언니야 그냥 '나 간다' 문자 하나 날리면 되지 뭘라코 전화를 하노.

젠장...이쁜년.

힘들때는 별개 다 상처가 되고 별개 다 위로가 된다.

그래 일단 숙소는 해결이 됐으니 몸을 만들자 싶어

어제는 한의원에 달려가 침을 왕창 맞는데 슬슬 눈물이 흐른다.


침을 놓던 황원장이 놀랬는지 침이 아프냐고 묻는다.

침이 아픈게 아니라 할일은 많은데 몸이 자꾸 이래서 속상하다고 했더니

대뜸 혼을 낸다.

무슨소리예요.그렇게 뛰어다니는데 몸이 이정도로 버텨주었으니 고마워해야지요.

젠장...눈물이 더 난다.

황원장이 안되겠는지 몸의 뒷판을 치료하고는

다시 앞판에 침을 놓는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 한없이 고맙다.


찍고 있는 영화 자체가 불편한 내용이어서인지

올 한해는 여러가지 일들이 계속 긴 후유증을 남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 영화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종종 받는다.

산다는건 참 묘한 일인 것이다.

그나저나 내일 새벽부터 3일간을 달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침을 맞고도 몸이 회복이 안된다.

오늘 한번 더 마취주사를 맞고 가야 할 거 같다.


하루 웬종일 일본에서의 찍을 내용들을 고민하고 공부해도 모자랄판에

무사히 찍을 수 있을 몸만 걱정하고 있으니...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4. 10. 4. 13:02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경순 감독 대담회 "다큐멘터리,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살기 위한 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진영 님의 글입니다 :D







신나는 다큐 모임과 인디스페이스가 함께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하 한다감)이 김태일, 태준식 감독에 이어 세 번째 대담회를 열었다. 9월의 감독은 경순. 모더레이터로 영화평론가 변성찬, <독립의 조건>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 김보람이 패널로 함께했다.

한다감은 오랜 시간 묵묵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온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들을 다시 봄으로써,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비평의 영역을 발굴하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기획이다.

9월 경순 감독전에 상영된 영화는 <민들레>(199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쇼킹패밀리>(2006), <레드 마리아>(2011), 이렇게 4편이다. <레드 마리아>의 상영이 끝난 후 대담회가 시작되었다.



- <민들레>(1999):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진행한 농성을 다뤘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민들레>에 이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내부적 문제점들을 다뤘다.

- <쇼킹패밀리>(2006): 세 여성의 삶과 시선을 통해 한국의 가족주의를 신랄히 비판했다.

- <레드 마리아>(2011): 필리핀과 일본, 한국 세 나라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 대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변성찬 영화평론가, 경순 감독, 김보람 감독




변성찬: 먼저 경순 감독이 이번에 상영된 영화 네 편을 고른 이유와 각 작품을 하며 고민했던 점에 대해 듣고 싶다. 그리고 김보람 감독의 소감도 함께 듣고 싶다. 오늘 상영되었던 <쇼킹패밀리>, <레드 마리아>에 대한 관객의 질문도 받을 예정이다.


경순: 작품을 선정할 때,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꼈던 문제의식과 영화의 내용, 형식에 있어서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초반 두 편의 작품은 공동연출이었고 후반 두 편은 단독작업으로, 골고루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그 전에 소위 말하는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되었다. 책임감으로서의 운동보다 내 삶의 모습들을 보고 싶었다. 첫 번째 영화 <민들레>가 나에게는 정말 의미가 있다. 운동을 한다는 것과 영화를 한다는 것이 내 안에 혼재했던 시기였다. 영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제작에 굉장히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했고, <빨간 눈사람>을 같이 했던 최하동하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시기에 배웠던 것들이 이후 영화를 만들 때 초석이 되었고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공적이면서 사적인 관계에서 감독의 포지션이나 시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내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해 막연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며 많이 정리되었다. 이후 <애국자 게임>부터 이어지는 나의 영화는 내가 궁금한 주제, 질문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나머지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과 차차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질문하고 있는 김보람 감독




김보람: 경순 감독을 남몰래 정말 좋아해왔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 4편의 작품을 연달아 꼼꼼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의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경순 감독의 작품을 보며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순 감독 작품을 보며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은 정말 유쾌한 사람이고, 인터뷰 대상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 대상들이 감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특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카메라가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거리낌 없이 따라붙고, 끝까지 쫓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기 꺼릴 만한 것들도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레 말하는데, 이런 관계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감독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도 <독립의 조건>을 연출한 후 마음고생을 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채 타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경순 감독의 작품들은 이후 작품에 이전 작품에서 했던 고민이 나오고, 이전 작품에서 이후 작품에 대한 힌트가 나오기도 한다. 한 편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필요는 없겠다, 나중의 작품을 위한 기반으로 가져가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경순 감독의 작품에 담겨 있는 고민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드 마리아> 속 여자들은 개개인의 투쟁을 하고 있다. 사실 그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 큰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10명의 주인공이 등장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0명을 만나고 촬영할 때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경순: 내가 가진 질문의 가장 밑바닥은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굴러가는 것일까’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것이 궁금했고, 그것이 출발이었다. 영화를 한 편 만들 때, 집중은 하지만 질문이 다 풀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 영화에 사람도 많이 나오고 이야기도 많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스타일로 찍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 하다 보니 내 영화가 이렇더라. 

나한테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공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 영화를 찍을 때 내가 또 다른 삶을 경험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제작 기간 동안 많이 놀고 그 사람들과 더불어 지낸다. 오늘 오기 전에 <레드 마리아>에서 만났던 이치무라에게 한국에 온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니까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나처럼 다큐멘터리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영화가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고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보여주는 즐거움이 아닌 나 자신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내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찍으면서 알아가려고 했다. 늘 무지(無知)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내 영화를 보면 영화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형식적 측면은 없어도 나의 고민을 풀어가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실험 아닌 실험이 되었고 항상 시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 질문에 대답하는 경순 감독




변성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나타나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김보람 감독이 질문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천부적인 뻔뻔함인 것 같다.(웃음) 한 감독의 스타일에는 자신의 성격과 기질, 체질과 문제의식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한국의 의미 있는 다큐를 보면 개인적 성격이나 작품 속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극단적인 낯가림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전한다. 그래서 부러워는 하되, 꼭 따라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웃음)

<쇼킹패밀리>와 <레드 마리아>는 감독의 기획과 실제 촬영 사이의 타협,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표현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다. <쇼킹패밀리>는 원래 출연하기로 한 인물이 5명이었는데 3명으로, <레드 마리아>는 원래 3개국 12명이었는데 10명이 되었다. 각 영화에 만약 원래 기획한 분들이 다 들어갔다면 지금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포기한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왜 포기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경순: 다른 감독들은 자신이 찍으려는 인물을 미리 확정한다. 그 인물에 대해 조사하고 파악하고 그 인물에 맞는 세팅을 한다. 나는 그게 조금 싫었다. 어떤 한 사람을 통해 이슈화할 수는 있지만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나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해도, 그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것들을 채집한다. 그런 과정에서 깔끔함을 포기했고, 내 영화는 거칠다. 또 나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에는 많은 스텝과 함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카메라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레드 마리아>는 방대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대담을 하고 있는데, 종로에서는 누군가 술을 마시고 있고, 필리핀의 누군가는 자고 있고 이런 식의 동시성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정말 담고 싶었던 사람은 막판에 쓰지 못했는데, 그런 부분은 정말 불가항력인 것 같다. <쇼킹패밀리>는 처음부터 5명으로 밀고 나가다 결국 3명이 되었다. 빠진 두 명 중 한 명은 단골 술집의 아는 언니였다. 이 분이 조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차마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했다.(동성애 관련 이야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얻은 노하우는 설득해서 될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찍은 영상을 내보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획과 다른 현장 속에서 계속 구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변성찬: <쇼킹패밀리>에서 빠진 두 인물은 한 명은 동성애, 다른 한 명은 성노동과 관계된 사람이었다. 결국은 영화에 담지 못했던 이유는 영화를 통한 커밍아웃의 현실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번째 분에 관해 갖고 있는 경순 감독의 문제의식은 <레드 마리아>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레드 마리아> 속에서 빠진 한 분은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던 분이라 영화가 나가면 살해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빠졌다고 들었다. 나머지 한 분은 누구인가.


경순: 우리 제작진 중 한 명을 넣으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찍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엮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완벽한 기획을 하고 간 것이 아니어서 그 모든 이야기들을 묶을 수 있는 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한 과정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편집할 때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잘라냈다. 


변성찬: <레드 마리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리타 할머니의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4번에 나눠서 나왔는데 실제로는 한 번에 찍은 것인가. 그리고 처음에 할머니는 영어가 아닌 팜팡가어를 하는데 어떻게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경순: <레드 마리아>는 원래 인터뷰를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말라야 롤라스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듣고 싶었다. 비춰지는 것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리타 할머니께 작정하고 여쭤보았다. 영어-팜팡가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할머니가 언짢거나 기분 나빴을 수도 있는데, 할머니도 우리를 믿어주시고 실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대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서 리타 할머니가 길잡이 역할을 하게끔 네 번에 나눠 배치했다. 그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 마지막 발제를 하고 있는 변성찬 영화평론가




변성찬: 경순 감독은 운동하면서 가졌던 집단적 대의와 개인의 구체적 삶 사이에 괴리가 있고, 긴장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생기는 갈증을 달리 해결할 방법은 없고 그런 화두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그것이 경순 감독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질문인 것 같다. 경순 감독이 자료에 썼던 질문인 ‘왜 진보 운동은 진보하지 않는가.’ 이 질문은 그녀의 여성주의적 질문과 뗄레야 뗄 수 없다. <민들레>를 다시 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작품이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이야기를 담는 듯했는데, 카메라가 정작 담고 있는 것은 어머니들의 백스테이지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표면적 주제는 의문사 연작인데 그 작품 안에서 가장 특이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그 주제와 카메라가 약간 빗겨나갈 때였다. 대의 아래 놓쳐지는 것들의 대표적인 하나로 여성수사관이 목표와 성과 아래서 사퇴 압력을 받았다가 버티고 이런 현실을 잡아내는 순간이 있다. 이는 아까 말했던 집단과 개인의 문제와도 연관되며 다음 작품인 <쇼킹패밀리>와 <레드 마리아>로 일관되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레드 마리아>와 <쇼킹패밀리>에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레드 마리아>는 리타 할머니의 표면의 말 이면의 속마음을 붙잡아내는데 성공했고, 그것이 이 영화에 굉장히 큰 의미와 동력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쇼킹패밀리>는 처음에 나왔던 아줌마들의 막춤이 후반부에 합을 맞춘 자기 퍼포먼스와 시각적 대조를 이루는데 그것이 대상화된다는 느낌이 있다. 이야기를 충분히 기다리고 듣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면 <쇼킹패밀리>에 유쾌함은 있는데, 통렬함은 없는 것 같다. 경순 감독의 영화적 화두는 적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 못지않게 늘 우리 자신의 성찰이 항상 섞여 있고 공존해 왔는데, <쇼킹패밀리>의 경우 그것이 느슨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순 감독의 문제의식에 근본적으로 동의를 하면서, 이후 감독의 영화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우려도 된다. 출발할 때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는데 적당히 봉합하는 것이 영화적 수사법으로 상투화될 위험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감독의 의견을 듣고 싶다.


경순: 내가 어떤 사람을 찍었는가에 따라 타협이냐 봉합이냐가 결정된다. 나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졌다. <쇼킹패밀리>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였다. 주변의 스텝들이 같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이 정도해서 마무리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봉합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쇼킹패밀리>가 착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분노하는 사람들은 많더라.(웃음) 우리가 보는 것 이상으로 출연했던 당사자들은 굉장히 재고 따지고, 자신 있게 흔쾌히 이야기했지만 뒤돌아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마 그런 점이 나를 그런 방향으로 가게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영화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는데 나 개인적인 불만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게끔, 자신의 이야기를 활용해 굉장히 쉬운 텍스트로 다가갔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원래 생각했던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있었고, 영화가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래서 <레드 마리아>를 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개운치 않아서 <레드 마리아2>를 하고 있다.(웃음)


변성찬: 나도 그런 느낌이다. 모성 신화라는 것이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성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문제다. 이 영화는 모성 신화를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불안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착한 영화가 되었고, 그 빈틈을 자기 퍼포먼스로 메꾸고 있는, 그곳에 멈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퍼포먼스 장면들은 굉장한 재능인데 그냥 걱정이 되어서 한 소리다.(하하)



변성찬: 현재 <레드 마리아2>를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소개와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김보람 감독도 함께한 소감을 말해주면 좋겠다.


김보람: 두 분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감사한다.


경순: 요즘 <레드 마리아2>를 작업하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아직 우리가 이 정도인가’ 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우울하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며 나는 늘 즐기는 편인데, <레드 마리아2>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다른 영화와 분위기가 다르다. 미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불편해서 조용히 작업 중이다.(웃음) <레드 마리아2>가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나 역시도 궁금하다.


변성찬: <레드 마리아2>는 이전까지 경순 감독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를 해 본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10월에는 홍형숙 감독이다. <두밀리-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경계도시>, <경계도시2>가 상영된다. 한다감은 격주 월요일에 2편씩 총 4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두 번째 상영 후 대담회가 열린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6000원이다. 대담회 참석자와 주제는 매월 첫 번째 상영 전, 인디스페이스 홈페이지와 신나는 다큐 모임(http://cafe.naver.com/shindamo)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출처_ http://indiespace.kr/2036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