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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와 기륭전자 노조 김소연씨
“기업들 ‘소모품’ 취급 여전… 제2, 제3의 ‘기륭전자’ 속출”




최근 회사와 ‘정규직화’에 합의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의 김소연 분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가산동 컨테이너 농성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길이 안 보인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법이 보장하지 않는 권리”라는 반응도 으레 뒤따랐다. 그렇게 거리에서 한 해, 두 해…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기륭전자 파견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지난달 1일 회사는 마지막까지 농성장을 지킨 파견노동자 10명을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했다. 거리농성 1895일 만이었다.

서울에 함박눈이 내린 지난 17일 가산동 기륭전자 구사옥 앞. 녹색 컨테이너 상자에 꾸려진 농성장에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40)이 눈송이를 털며 들어섰다.

“이맘때면 ‘또 여기서 한 해를 넘기는구나’ 했는데 올해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네요.” 그의 말에 시원섭섭함이 묻어났다.

지난 15일 회사는 조합원 10명의 5년치 임금과 고용유예기간의 임금 등을 ‘노사화해기금’으로 노조에 전달했다. 농성장에 남아 합의 이행을 기다려 온 조합원들은 이에 따라 20일 컨테이너를 철거하고 구사옥 앞을 떠난다.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컨테이너는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미술인 모임’에 기증해 전시관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컨테이너에서, 또 그 전엔 임시 천막에서 태풍, 폭설, 폭염 다 겪어냈죠. 94일 단식한 곳도 이곳이고…. 삭발, 포클레인 투쟁, 고공농성, 삼보일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네요. 막상 떠나려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

5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사태는 2005년 회사가 파견직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불거졌다. 최저임금 수준에 상여금도 없이 일하던 이들이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로 해고통보를 받고 ‘소모품’처럼 잘려나갔다. 그 해 7월 노조 설립 후 해고는 더욱 심해졌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도 일터를 돌려주지는 못했다. 사측의 정규직 전환 의무가 없기 때문에 당국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과태료 제재뿐이었다.

김 분회장은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비인격적 대우와 모멸감, 자존심 때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불법은 회사가 저질렀는데 희생은 파견노동자들이 떠맡아야 하는 잘못된 현실이 사태를 장기화시킨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작은 승리’ 이후에도 팍팍한 비정규직의 현실은 이들을 마냥 기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실 하루도 마음이 편하다는 느낌을 가진 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이 겪은 5년간의 고된 일상이 또 다른 곳에서 되풀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노사합의 불과 보름 뒤,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을 이끌어낸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에 돌입했다. 한 달 뒤에는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평공장 정문 아치에 올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울산도 가고 부평도 가고 조합원들과 주말에도 안 쉬고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했어요. 기륭 노동자들도 우리끼리였으면 중도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많은 곳에서 보여준 연대를 원동력으로 삼아 버텼거든요. ‘낙관과 믿음으로 연대하면 결국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긴 했지만, 해법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최근 발표된 ‘국가고용전략 2020’에는 파견허용 업종을 조정해 파견노동자를 늘리는 정책이 포함됐다. 지난 9월 입법예고된 직업안정법 전면개정안(고용서비스활성화법안)은 민간 인력중개산업을 키워 간접고용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 분회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변화하는데도 정부는 이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방향으로 비정규직 정책이 진행되면 비정규직들은 평생 노동 기본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법이 문제라면 법을 고쳐서 상시적 업무에는 정규직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그쳤던 눈발이 다시 거세졌다. “눈, 비는 제발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고공농성하는 GM대우 동지들이 지붕도 없이 눈 맞으면 정말 힘들거든요.” 한참 걱정하던 그는 비정규직 투쟁 회의 참석을 위해 또 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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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가 묻다. 일하는 거 재미있니?



김소연은 검사다. 된장녀로 대표되는 ‘사이비’ 검사에서 진짜 검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민호는 건축사다. 업무상의 이유로 게이라는 오해까지 감수하고 손예진의 집으로 들어갔다. 손예진은 가구디자이너다. 잘 안 팔리는 가구지만 자신의 일에 열심이다. 문근영은 탁주기업의 일원이다. 탁주생산공정 개선을 위한 효모 연구에 번번이 실패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지상파 TV 수목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다양한 직업들이 그려진다. 날이 갈수록 드라마 속 직업들은 새로운 영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간다. 그 결과,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 속 인물들은 재벌가 총수부터 가사도우미까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직업들을 갖게 됐다.

드라마 속 직업의 대다수는 전문직이다. 전문직(專門職)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을 말한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전문직종의 세계는 막연한 선망의 대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 특정한 직업 자체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구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다양한 직업으로 대변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일과 사랑에 있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일과 사랑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드라마에서 벗어나 잠시 우리의 현실을 보자. 청년실업 100만 시대를 앞둔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일하고 있는 당신은 행복한가?

글로벌 컨설팅기업 타워스 왓슨이 4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중 6%만이 자신의 업무에 완전히 몰입한다. 세계 평균 21%에 한참 부족한 수치다. 마지못해 회사에 다니는 비율은 48%로 세계평균 38%에 상회한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에 일자리가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조차 ‘마지못해’ 일하고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일하기 싫다고 투덜대거나 근무시간에 일하지 않고 빈둥대지 않는다. 간혹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다.

무조건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회사(=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둔 현실의 젊은이들과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하는 ‘전문직’이기에 가능한 일인 걸까? 가사도우미로 등장하는 채림도 대기업 낙하산으로 들어가 복사만 하는 지현우도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혹자는 드라마 속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이 ‘드라마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워스 왓슨의 보고서가 증명하듯 우리네 ‘일에 대한 열정’은 세계평균으로 증명되는 ‘현실’에도 턱없이 모자라다.

소설 ‘어머니’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면 인생은 기쁨이지만, 일하는 것이 의무이면 인생은 노예생활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면 인생은 드라마가 되지만, 일하는 것이 의무이면 인생은 노예생활이다.”

드라마 속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수하고 깨지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자. 당신이 어떤 일에 종사하든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면 당신의 내일 역시 ‘드라마’가 될지 모른다. 뭐 아니라고 해도,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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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대학생의 친구'인가 '욕망의 친구'인가?"
[삼성을 생각한다] "이 땅 젊은이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삼성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20대인 그녀는, 내가 대학생이랍시고 게으르게 뒹굴대며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반도체를 검사하기 위해 끝없이 제품을 납에 넣었다 빼며 제 자신을 죽여야 했다. 처음 직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가 가졌을 꿈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져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된다. 고된 노동에도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을 테지만,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될 때, 지나가버린 그 시간을 얼마나 안타깝게 그리워했을지.

대학을 아직 떠나지 못한 나는 다시 등교를 한다. 도서관 전산실에 들렀는데 내 앞에는 삼성 컴퓨터가 놓여 있다.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삼성 에어콘이 눈에 띈다. 어떤 학생은 삼성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꽃은 채 강의실로 들어오고, 어떤 학생은 삼성 애니콜에 전화가 와서 강의실을 나가며, 어떤 학생은 삼성 노트북 센스에 강의노트를 작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삼성이 없는 곳이 없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나는 삼성에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20대의 어느 노동자의 손에서 나온 반도체가 들어있을 테지만, 학교에서는 공공물품을 거의 삼성 제품으로 구매하고, 학생들은 서비스 좋다는 삼성을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들고 있었다.

▲ 교정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대학생들. 이들은 극심한 취업 경쟁으로 지쳐 있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면, 행복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삼성 문제를 푸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를 보다 낫게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삼성의 제품만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기업들이 학생들의 동아리나 모임 활동을 지원하곤 하는데, 너무나 프랜들리한 삼성은 그 지원에서 가장 앞서가며, 나아가 지원을 넘어 동아리를 대체하는 경지로 나아간다. 누추하게 잔디밭에 둘러 모여 기타치고 노래 부르기보다는 폼나게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길 원하는 대학생들은 기업이 지원하는 모임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삼성은 영삼성(youngsamsung)을 운영하여 대학 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언제나 욕망과 친구한다. 삼성은 대학생들의 친구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자세한 뒷사정은 알지 못하나, 작년엔 학생회와 삼성이 손을 잡으려한 일이 있었는데, 서울 지역 '한대련'과 삼성의 합작사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광고지면을 내주고 지원을 받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삼성 올앳카드 회원을 학생회가 대신 모집해주고 카드 가맹점에서 할인을 받는 형태의 사업으로, 의결이 끝나고 집행을 기다리다가 몇몇 대학의 반대로 뒤집어졌다고 하는데, 그 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직 듣지는 못했다. 욕망을 가진 누구라도 친하게 지내는 삼성은 이정도로 대학생들의 친구이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우리는 그래서 삼성을 멀리하지 못한다.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세상과 이어주고 더위도 식혀주며 음악도 들려주고 여행도 시켜준다. 얼마나 고마운가. 삼성이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다니.


▲ 영삼성 홈페이지.


그래서 그런지 대학생들에게 삼성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나는 줄곧 '삼성맨'이라는 이름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러나 조금 서글퍼지지만 거기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조심해야 될 것이 있는데, 바로 삼성은 학벌을 중시한다는 것. 얼마 전에 언론에서 삼성 사장단의 학벌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삼성 임원의 꿈을 심어주기도 했는데, 대개의 기업들이 서울대 인맥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이는 특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른 곳에 있다.

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로비/섭외 실력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로비/섭외는 서울대 인맥이 더 수월하지 않겠는가하면 그게 아니다. 뻔히 알고 있는 자기 동창에게 큰 돈을 쥐어주며 로비하는 것은 민망하기도 하고 불편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일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리어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이 큰 돈을 챙겨주는 것이 로비에서는 훨씬 더 편할 수 있는데, 그런 까닭에 계열사 임원 중에는 비서울대출신이 많을 수 있지만, 권력의 정점인 구조본은 모두 소위 명문대 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아무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직원이 된다면 다행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역시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누군가는 자랑스럽게 올렸을지도 모르나 그저 황당함과 경악만을 안겨주었던 동영상에서 본 매스게임을 실제로 하러 동료들과 집결해야 한다. 물론 멋진 콘도에서 삼성은 돈의 힘을 보여줄 것이고, 임원이 방문해서 삼성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임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심어줄 것이다. 멋진 일 아닌가. 내가 삼성맨이라니. 그러나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재미가 계속되리라는 희망은 지속되기 힘들다. 이직률이 가장 높은 기업이라는 삼성에서의 재직 기간은 보통 7~8년이라고 하는데, 3~4년차 사원들이 이직률은 30%대나 된다고 한다.

삼성을 발판으로 더 나은 곳으로 가려는 것일 텐데, 삼성에 계속 충성하다간 너무 일찍 묘비를 세워야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을지 모른다. 물론 잘 견뎌낼 수도 있다. 경쟁과 성과주의는 한국에서 익숙한 것이니까. 삼성 안에서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못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근 삼성에 취직한 친구의 말로는 인터넷 포털 DAUM도 눈치가 보여 접속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예가 아닌 한, 무작정 견디는 것은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막연히 긍정하며,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멈춰서있어서는 안 된다. 함석헌은 사람의 사람된 점은 생각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즉 "사람은 할 뿐만 아니라 하는 줄을 아는 것이요, 알 뿐만 아니라 아는 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 수 있어야만 하며,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도약한다.

사람들은 삼성의 세련된 사무실에서 잘나가는 현대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이미 인천 송도만 하수처리 시설 사업권을 차지한 '삼성 베올리아 인천환경주식회사'에 취직해서 물 사유화 사업에 앞장설 수도 있다. 또는 삼성생명에 취직해서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정부 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민간 의료)보험", 즉 지금의 건강보험을 통째로 사적 의료보험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에 뛰어들 수도 있다.

또는 삼성캐피탈에 취직해서 부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고객 도장을 몰래 만들어 불법 대환 대출을 할 수도 있다.(걱정 마시라. 금융감독원은 알고서도 처벌 하는 둥 마는 둥 했으니.)

혹은 운이 좋은 사람은, 분식 회계 장부가 법원에 넘어가면 서류를 빼돌린 다음 어두운 밤 해운대 백사장에서 불태워버리는 낭만을 즐길 수도 있고,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토탈(주)에 대한 가격 담합 조사를 했을 때처럼 공정위 조사관이 확보한 자료를 가로채 도망가면서 찢어버리는 액션을 즐겨볼 수도 있으며, 더 운이 좋아 압수수색과 같은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검찰이 주는 충분한 시간동안 내부자료와 파일을 파기하는 스릴을 맛보는 기회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너무 걱정 마시라. 저런 일들은 가벼운 과태료만 내면 끝날 테니.)

더 화끈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만일 사무직 노동자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의 조립라인 노동자나 반도체 노동자가 처해 있는 그런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을 개선하려 노조라도 만들라치면, "너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끌어 묻을 수 있다"는 영화 같은 대사를 내뱉고 집단 폭행을 가하는 활극을 연출할 수도 있다. 이런 일로 삼성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걱정이 되면, 지뢰 제거 활동 홍보처럼 '글로벌 사회 공헌' 광고를 제작할 수도 있다.

물론 뒤에서는 삼성이 F15-K 전투기를 수출하고 공격형 아파치 헬기를 만들고 있겠지만, 어차피 이미지는 이미지니까. 아쉽게 이런 일을 몸소 하지는 못하더라도, 옆에서 구경할 기회는 얻을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에 나오는 일들이다. 더 많은 일들을 알기 원하시는 분은 이 책을 보시기를.)

이런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두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삼성이 보여주는 기술의 눈부심이다. 영화 아바타에 세계가 열광한 것은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때문이겠거니와, 삼성이 생산해내는 최첨단의 반도체와 LED TV, 휴대폰 등은 우리를 매혹시키고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잠시 시선을 거두어보자. 빛에 빼앗겨버린 시선을 조금만 돌려본다면, 그것이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더 크게 만드는 일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애니콜, 컴퓨터나 노트북 센스에는 백혈병으로 숨져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눈물이 스며있고, 손 닦는 수건도 없는 화장실에 그나마 맘대로 가지도 못하고 두 시간에 10분씩 쉬는 시간 외에는 꼼짝 없이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 있어야 하는(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122쪽) 생산직 노동자의 한숨이 녹아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으로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권력이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청년들이여, 만일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교양을 원한다면, 제품의 월등함 때문도 노동자들 임금 때문도 아닌, 임원들 보너스 때문에 비싼 애니콜이나 센스는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자.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그 곳은, 정의를 위한 발걸음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를 옥죄어 노예로 만드는 권력에 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이 시대에 새롭게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삼성 센스 노트북을 샀다. 자본과 노동에 대한 거대담론을 자주 말하는 그는 이러한 불매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사소한 문제인가? 아니다. 여기 사회의 모순이 있다. 여기 눈물이 있다. 여기 피맺힌 울음이 있고, 여기 한숨과 아우성이 있다. 자, 그러니 이제 여기를 떠나라. 그것이 교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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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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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여성들 충고 “여성파트타임 늘려선 안돼”
여성노동자전국센터 활동가들 입모아 ‘퍼플잡’ 도입 우려


*필자 박남희 님은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지난 달 일본 여성노동자전국센터 총회에 초청을 받아 한국의 여성노동현실을 일본사회에 알리는 한편, 일본 여성노동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 ‘퍼플잡’ 도입 소식에 일본여성활동가들 우려
 
▲일본여성노동자전국센터 총회에서 한국여성노동현실을 보고하는 박남희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 Action Center for Women
일본여성노동자전국센터(ACW2 : Action Center for Women)의 초청을 받아 지난 달 일본을 방문했다. 창립 이후 네 번째 맞는 총회가 1월 23,24일 양일에 걸쳐 진행됐는데, 일본 각지에서 70여명이 참석했다.

 
여성노동자전국센터는 2007년 설립돼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활발한 상담과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일본에는 7개 지역에 여성노동조합이 있는데, 여성노조 간부들과 여성학연구자, 타 노동조합 여성간부, NGO활동가 등 여성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정기총회 이외에 한국의 여성노동자 현실을 전달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여기서 필자는 전국여성노동조합 활동사례를 발표했다. 또,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외박> 상영도 있었다.
 
이어 파견노동 문제와 파트타임 고용문제, 빈곤여성문제 등 한국과 일본여성들이 공통되게 당면한 심각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은 노동법과 고용형태, 노동정책 등에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퍼플잡’ 도입에 대해, 일본여성활동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여성부는 경력단절여성의 취업률을 높이겠다면서 ‘퍼플잡’이라는 용어로, 단시간 근로자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일본여성활동가들은 여성고용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단시간근로가 결단코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주었다.
 
‘정규직 남편, 파트타이머 아내’ 성별분리 커져
 
▲비정규직법과 외주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 <외박>도 상영됐다. © Action Center for Women 제공
일본의 비정규노동문제의 핵심에는 ‘파트타임’이라는 여성노동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파트타임 노동에는 ‘부부’의 성별 역할분업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정규직 사원은 ‘세대주 남편’이며, 파트타이머는 ‘남편이 부양하는 부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다. 이때 파트타이머인 여성의 지위는, ‘육아와 집안일을 동시에 하면서 밖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라는 전제가 분명히 깔려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수입이 103만엔 이하이면, 남편의 과세기준이 되는 소득에서 배우자공제와 배우자 특별공제가 적용된다. 즉, 일본의 가정에서는 아내가 103만 엔을 기준(이하)으로 파트타임 취업을 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여성노동활동가들은 아무리 한국정부에서 ‘양질의 단시간 근로’를 외치지만, 결국에 가서는 여성의 일자리가 ‘단시간근로’로 고착되고 저임금직종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성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의견에, 여성노동운동가로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日 민주당 정권 탄생, 여성노동운동에도 자극
 
▲일본여성노동자전국센터 총회에 걸린 현수막.  '여성노동자가 파견노동을 원한다고 NO!' 
‘조용한 혁명’으로 불리며, 지난해 50년 만에 처음으로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을 바꾼 일본은 조용하면서도 급격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그동안 안정된 사회라 여겼던 일본사회가 극심한 격차 사회(차별과 양극화)가 되었다는 사실과, 빈곤문제를 더 이상 나태한 개인의 책임으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러한 국민정서가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일본의 여성노동활동가들은 이야기했다. 민주당 정권의 탄생은 일본의 여성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정부 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총회에서 만난 일본의 여성노동활동가들은 여성노동운동이 당사자들이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를 ‘대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졌다. 현장의 여성노동사안이 개별 상담대응으로 끝나고, 필요한 정보를 주는 대행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여성노동 이슈가 현행 법에 의지해 개별 대응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노동조합운동과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회사의 전반적인 고용조건을 개선하거나,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 즉 조직화 실천을 당면과제로 꼽았다. 여성노동자전국센터는 총회를 통해 올해 주요 사업으로 여성노동조합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사업, 파견법 개정운동, 그리고 빈곤문제 해결 3가지를 결의했다.
 
개인적으로 일본방문이 두 번째였다. 2008년에도 일본의 여성노동조합과 여성노동단체, 청년노동조합, 생협 파트타임 지부 등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올해는 새로운 바람이 일본시민사회에 불고 있음을 느끼면서, 끈질기고 한결같이 섬세하게 활동한다는 ‘강점’을 가진 일본의 여성노동운동이 더욱 과감하게 한 걸음 내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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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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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88만원세대”가 따로 없다
근로조건 더 낮추는 최저임금법 개악 반발




지난해 3·4분기 통계청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소득하위 30%계층은 2가구 중 1가구가 적자인데 반해, 고소득층은 적자가구가 13.6%에서 13.1%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는 계층은 고소득층이 아닌 서민층이며, 사회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경제위기 해법은 ‘부의양극화 막고 사회안전망 제공’
 
여성운동단체들은 3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위기 속 현 정부의 정책이 ‘부의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며, “모든 국민이 살만한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한 여성노동과제를 선언했다.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5개 단체가 참여했다. 100년 전 미국 섬유노동자들이 뉴욕 루트거스 광장에서 참정권과 작업환경개선,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에서 유래된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한 자리다.
 
이들 단체들은 최저임금법과 비정규직법 개악, 부자감세, 개발중심 경기부양책으로는 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 취약집단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워킹푸어’ 줄이도록 최저임금 인상 요구
 
기자회견과 이어진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특히 ‘최저임금’을 내려선 안 된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낮은 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최저임금은, 결과적으로 성별 임금격차를 축소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저임금 계층은 432만 명(26.8%)이며,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는 175만 명(10.8%)에 달하고 이중 64%가 여성노동자이다. “88만원세대”가 20대 고용문제를 상징하고 있지만, 사실상 여성들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저임금 계층에 속해있는 실정이다.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것에 대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60세 이상 고령자의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고, 숙식비를 임금에서 공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개정과 별도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정할 2010년 법정 최저임금은 매우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최저임금을 낮추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거나 “최저임금이 높으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정부의 논리는 “단순무식한 시장근본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최저임금을 인상함으로써 ‘워킹푸어’(일하면서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를 축소하는 방안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노동권을 신장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공공부문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배경에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지원해야 소비가 촉진되고 내수가 증진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김유선 소장은 최저임금법 개정 의도가 ‘최저임금을 깎으려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고용안정을 위한 조처’라는 노동부의 해명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면 “고용촉진 장려제도를 손질해서 고령자 채용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 되는 문제이지, 최저임금법을 개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
 
정부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더라도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최저임금법이 본래 이런 ‘바닥으로의 질주’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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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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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이주노동의 현실과 이주노동자운동의 과제



지난 2005년 11월 9~10일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워크샵이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측면을 다룬 ILO와 민변 황필규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국제건설목공노련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소개와 한국, 일본, 홍콩, 네팔 등 4개국 이주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2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단초를 던져주었다. 다만 각각의 발표들이 주로 자신들의 구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거나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었다.

이 글은 작년 워크샵의 발표를 조금이나마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과 이주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보면서 각 국 사례들의 교훈을 분명히 하고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 한다. 각 국의 구체적인 운동 사례는 주로 워크샵의 발표를 참고했다. 당시 워크샵 기획단 일원으로서 이 지면을 빌어 발표를 맡아주신 활동가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말을 전한다.

아시아 이주노동의 전반적 현황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로 노동력을 송출해 왔다. 이는 당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이전과는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많은 국가들이 자본의 부족과 노동력의 과잉이라는 상황에서 택한(혹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일 것이다. 즉 이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수출하여 국내의 노동력 과잉을 해소하고 이를 통한 외화획득으로 부족한 자본을 보충했다. 당시 노동력 이동은 주로 북아메리카, 서유럽, 중동지역 등을 향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변화한다. 우선 노동력 이동 방향이 변화하는데, 특히 아시아 내부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방향 변화를 넘어선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력 이동의 전반적인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이에 따른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된다.
한편으로 중심부 및 중동 등 전통적인 노동력 수입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이민이나 이주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호황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주요 산업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대했다. 다른 한편으로 개방의 가속화로 인한 농촌의 몰락, 산업의 침체 등으로 주변부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이주가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경쟁이 강화된다. 이로 인하여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방향이 변화했을 뿐 아니라 노동력 수입국에서의 규제강화에 따른 불법체류 혹은 불법취업이 증가하고 이주를 둘러싼 각종 중개업체의 개입과 송출비리가 심화된다. 이것이 주로 저임금·미숙련 노동력의 경우라면, 고부가가치 산업과 연관된 고임금·숙련 노동력의 이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후자의 중심부, 특히 미국 유입은 오히려 증가하고 반주변부나 다른 국가에서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요컨대 노동력 이동에서 이중적 흐름이 형성되고 각 국가는 선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정책을 채택한다.1)
다음으로 전통적인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의 노동력 이동 이외에 시설관리, 서비스 등의 업종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의 일자리, 이른바 ‘하인노동’이 팽창하는데 이러한 일자리의 상당수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한편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주노동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한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 전통적 성별 분업이데올로기의 존속, 성산업의 유례없는 팽창, 국제결혼의 증가 등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성산업, 가족제도의 변화가 맞물려 여성의 이주가 확대되고 있다.2) 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송출국에서의 여성 비중 증가3), 홍콩 등지의 가사노동자에서 이주여성의 비중 증대, 한국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1990년대 600여명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명으로 확대되었다) 등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주요 국가별 이주노동의 상황 및 관련 제도 : 노동력 유입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노동력에 대한 관리의 문제와 국가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의 결합물이다. 근대국가는 국경의 출입을 관리·통제하고 자국 시민의 자격을 결정·부여한다. 19세기를 거치며 일반화된 민족국가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을 이러한 결정의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이러한 동일성이 권리의 차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금지하고 시민의 자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 면에서 보편성을 원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이 끊임없이 1차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는 자본축적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노동력의 공급에 대한 관리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국경·시민권에 대한 관리 간의 모순과 긴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혈연공동체에 기반하여 시민권 자격을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는 노동력을 제한적으로 수입하되 사회적·정치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철저하게 가로막는 특성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지는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4) 독일의 이주노동력 관리 제도인 ‘노동허가제도’는 정부가 이주노동의 모집과 직업소개를 독점하여 관리하고 이주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는 지역·직종을 제한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의 장기거주를 차단하는 ‘교체순환정책’을 표방한다. 이는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의 이주노동자 수입 정책 모델이 된다. 다만 이들 나라는 독일의 노동허가제도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막지 못했음에 주목하면서, 독일식 제도를 변형하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하는 ‘고용허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민자로 대우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외국인노동자취업법에 따라 사업장 이동의 권리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만 역시 비슷하나 허가를 받은 고용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다르다. 홍콩은 외국인력의 도입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갖고 있지 않아 정부의 특별조치나 행정 집행에 의해서 인력의 도입과 관리가 결정된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취업사증을 받은 노동자는 단기간 체류만이 허용되고,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며,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가족과 동거할 수 없다.
한편 일본은 단순·미숙련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기능실습제도’라는 연수생제도가 노동력을 수입하는 유일한 공식 제도다. 여기서는 한국의 ‘산업연수제도’와는 달리 연수 후 기능실습 기간에 노동자 신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노동관계법, 각종 사회 보장 관련 법령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연수생, 실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전체 이주노동자 중 실습생은 겨우 1.4%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주자 사증을 받은 일본계외국인, 유학생들의 파트타임 취업, 미등록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미등록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40%에 달할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음성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도입이 이루어지다가 1991년 일본과 유사한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이주노동력의 수입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세계 1위의 미등록노동자의 비율(2003년 기준, 2위인 일본보다 무려 20%가 높은 60%)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는 다량의 미등록노동자를 양성했을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탄압, 초과착취를 조장했다.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이 거세지자 정부는 2004년 대만과 유사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면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각 국별 투쟁 사례의 시사점

1)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IMWU-HKCTU)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홍콩 내 인도네시아인 단체(IGHK)를 기반으로 1993년에 만들어져 1996년 정식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2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홍콩에는 22,8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12,420명이 필리핀, 9,170명이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워크샵의 발표자인 릭 키즈마와티 수트리스노씨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순종적이고 유순하며 가장 비천한 업무조차 기꺼이 견디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어 홍콩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가사노동자로 선호된다고 한다. 유순한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그녀들이 견뎌야 할 노동조건은 극히 열악하다. 홍콩 인도네시아 이주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47%), 고용계약 외의 의무이행(25%), 폭력(6%), 심지어 성폭력(3%)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전체 이주노동자 차원에서 보면 2002년에만 1,308,765건의 살인, 강간, 육체적 폭력, 사기, 강제추방이 있었으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35만 명의 귀국한 이주노동자 중 12%가 질병에 걸린 채 귀국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정확히 최저임금만큼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5) 또한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관리지침인 NCS(New Conditions of Stay)는 실직시 2주 이내 추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본국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는 현실로 인해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면서 꾸준히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NCS 등의 홍콩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인도네시아 정부 및 취업알선업체를 상대로 한 알선료 인하 등의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대중교육사업을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이들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고,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운동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인권교육, 기술교육, 젠더관련 교육 등을 통해 소속 조합원들의 자활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이주노동조합들이 공동으로 처해 있는 문제들, 예컨대 잦은 성원교체로 인한 조직의 안정적 토대의 취약성,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용주의 장시간 노동요구 등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조합활동 시간 부족,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 등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시 이러한 시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일본 전통일노조 /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 노조
’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이주노동자는 1,973,747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5% 규모다. 제국주의 침략시절의 식민지에서 이주한 이들(약 46만 명)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라틴계 이민 2세들이다(56%). 공식적인 노동력 수입 제도가 없는 일본제도의 특성상 미등록노동자가 많은데 ’03년에는 그 수가 29만 명까지 이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05년에는 20만 명 정도로 약간 줄어든 상태다. 한편 유일한 합법적 이주노동자 수입 제도인 기능실습제도는 사실상 기계, 금속, 섬유 등 제조업 분야의 저임금 노동력(일본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의 1/5, 심지어 1/10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을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수가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적으나 최근에는 중국인,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출신들이 이 제도를 통해 많이 유입되면서 그 수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거대 산별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지 않은 반면, 지역에 기반한 일반노조는 조직화에 적극적이다. 이주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은 크게 2개가 있는데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라틴계 이민 2세와 한국인들이 많고, 전통일노조에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3년 3월 8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심각한 인권침해를 폭로한 이 날의 투쟁은 일본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이른바 ‘외국인 춘투’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년 당시 20명으로 출발한 조합원의 수도 현재 2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봄 지방자치단체, 노동부, 기업 등을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하고 있다. 일본 이주노동자운동의 특징은 일반노조라는 조직 특성상 조합의 기반이 비교적 탄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일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카나가와 씨티 유니온은 지역기반 노조의 이점을 활용, 집중행동의 날을 선정하여 지역 조합원들이 함께 여러 사업장과 지역자치단체 등을 다니며 공동의 투쟁을 만드는 등, 소속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연대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워크샵에 참석한 전통일노조의 토리 잇페이씨는 일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운동들의 연대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연대단위는 산업재해,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일본 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의 특성상 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연대단위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 네트워크의 연대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편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외국인혐오증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캠페인을 한다거나 미등록노동자들을 일반 시민들이 신고하도록 하여 대중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리 잇페이씨는 이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지역의 일원으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3)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의 아태지역 사무국의 이진숙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건설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구조조정, 하청, 비정규직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등을 이용, 유연한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과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일국적·국제적 대응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체들이 이러한 갈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입국가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들의 동등한 노동권과 노조가입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전국중국인건설연맹(NFCCWU)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0년 이주노동자의 고용시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채택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차단하는데 머물렀던 대만 전국중국인건설연맹은 2005년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노조가 인력의 공급을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체결하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 교육, 조직의 재편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만의 시도가 이주노동자들과 대만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열린 문제다. 그 열쇠는 기존 노조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 전망

한편 이번 워크샵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고민도 발표되었다. 이주노동 자체가 개별 국가를 넘나드는 현상이니만큼 이에 걸맞은 대응이 필수적이거니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 제도의 모색이 기존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고민은 매우 중요하다.
워크샵에서는 주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 이주노동자들이 귀국 후에 겪게 되는 건강상의 문제, 취업알선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알선업자들의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송출국과 수입국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의 연대가 제기되었다.
매년 10만명의 사람들이 해외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네팔의 노동조합총연맹(GEFONT)은 노동력이 유입되는 국가에서 노총 산하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운동을 지원하고자 하는데 현재 홍콩, 남한, 일본, 인도, 몇몇 중동국가들에 지원단체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단체 대표들은 네팔노총 전체총회에 참가할 권한을 가지는 등 네팔노총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움직이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는 각 국 산하단체들(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대만 등의 건설노조들)이 참가하는 이주노동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수준에서 이주노동자운동, 개별 운동들의 연대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이번 워크샵과 비슷한 행사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공동의 행동계획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일단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운동 자체의 역량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틀 내에서의 운동이 잘 되어야 국제적 연대의 운동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역으로 후자의 운동이 전자의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 운동들의 역량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볼 수 있다. 특히 취업알선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위한 상호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운동, 우리 모두의 과제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금융세계화의 진전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 증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하인노동’ 확대, 주변부 경제의 파탄에 따른 반주변부/중심부로의 노동력 이동 증가 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요인들 각각은 노동력의 이주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이들을 관리하려는 개별 국가들의 정책은 대부분 미등록노동자 양산, 노동력 송출과 수입과정에서의 비리 증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증대로 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화되거나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불만들이 민족적·인종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각 국의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인 체제 위협 요소로 간주하며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막아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정책을 변화시키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공통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사회운동 및 세계사회운동은 이주노동자의 운동, 이주노동의 문제에 주목하고 외국인/내국인이라는 분할을 넘어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의 투쟁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적 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각 국의 운동들이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현실 속에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 노동현장에서의 기업주에 의한 심각한 차별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명동성당에서의 선도적인 농성투쟁을 거치며 2005년 4월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주노조는 미등록노동자에 대해 가해지는 일상적 단속추방의 폭력과 이로 인한 조합원의 사기저하, 노동조합운동의 안정적 기반의 부족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등록노동자, 정부의 폭력적 단속과 추방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 공포가 운동의 기본적인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현실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은 홍콩이나 일본의 예처럼 이주노동자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며 특히 이주노조의 등록이나 민주노총 가입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지역의 각종 상담, 지원 단체나 다른 사회운동단체들은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이주노조의 강화를 자신의 활동의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노조와 함께 사회운동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담, 지원단체 이외에도 보건의료, 교육, 지역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동의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한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그 한계 너머로 민주주의와 권리의 경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투쟁은 비단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1) 이러한 노동력 이동에서의 이중적 흐름의 형성과 선별적 관리는 싱가포르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싱가포르는 이민으로 구성된 신생 도시국가인데 월 기본임금 2,000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취업사증을 발행하여 사실상 이민자로서 대우를 하는 반면, 기준금액 미만의 임금 노동자에게는 취업허가를 발급하여 사업장 이동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자세한 내용은 이진숙,「여성 이주의 현황과 쟁점 :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중심으로」,『사회운동』2005. 9월호를 참고하시오. 본문으로
3) 인도네시아 이주/인력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출국한 480,393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중 76%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94%가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가사노동자들이었다고 보고했다. 본문으로
4) 이하 내용은 설동훈,「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노동권」, 2003 참조. 본문으로
5) 1999년 5%가 삭감되었고, 2003년에는 11%(400홍콩 달러)가 삭감되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월 3,270홍콩달러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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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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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하인들
여성, 이주, 가사노동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저 | 문현아 역 | 여이연 | 2009년 04월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부제로 달려있는 여성, 이주, 가사노동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심층면접 방법을 통해 미국의 로스앤젤리스와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일하는 필리핀계 여성이주가사노동자들의 현실을 다층적인 각도에서 서술하며 분석한 글이다. 한국사회에는 21세기와 더불어 ‘다문화사회’가 새로운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에 관한 심층연구는 아직 희박한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면서도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탄탄하게 분석한 이 책은 한국사회의 이주연구나 국제결혼을 포함하는 다문화사회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다문화사회라는 코드와 더불어 하나의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서 국제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조망해야 하는 현실과 조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 가족의 구성, 여성의 이주노동, 국제결혼 등의 쟁점은 이제 현실에 기반하여 연구되어야 함과 동시에 거시적인 정치경제적 맥락과 연결되어 분석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일상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사례를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제별, 쟁점별로 묶어 분석함과 동시에 국제적인 정치, 경제적 맥락도 아울러 고려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덧붙여 저자도 인류학, 사회학, 여성학, 에스닉연구분야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국제이주, 여성노동, 가족의 변화 등의 쟁점도 이런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종합적으로 조망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여성학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이론서이자 사례분석에 대한 연구서로 활용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 및 특징

이 책은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이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당면하는 경험을 탈구위치라는 렌즈를 통해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런 탈구위치가 만들어지는 제도화과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 개괄을 시도하는 1장에서는 이주의 탈구위치를 규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분석적 접근을 서술한다. 세 가지 이론적 접근법을 사용하는데 그 중 둘은 이주연구에서 흔히 활용되는 접근법으로, 이주절차 연구에 관한 거시구조적 분석과 중범위 수준의 분석이다. 세 번째 접근법은 인문학에서 후기구조적 이론을 활용하는 것으로서, 저자는 주체수준에서 이주를 분석하는 것이라 이름 짓고 있다.

2장과 3장에서는 이주흐름의 사회적 과정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불완전한 시민권의 탈구위치가 검토된다. 이는 이주라는 스펙트럼의 양쪽 끝으로서 민족국가에 대한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의 주체형성을 다룬다. 3장에서는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문제의 틀을 ‘이들은 왜 이주하는가?’ 로 바꾸어 접근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이 이론의 여지없이 이주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서 혼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장에서는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와 보내는 나라 양편의 젠더불평등 역시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의 이주를 통제하는데 개입한다는 것을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더불어 이들의 이주가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을 구성한다는 점도 논의한다.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은 이주를 받아들이고/보내는 나라 모두에서 여성들 사이의 재생산노동을 둘러싼 3단계 이전(three-tier transfer)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4장과 5장은 글로벌 재구조화에서 초국적 가족의 형성과 유지를 살펴본다. 4장은 가족을 탈구위치가 진행되는 주변상황으로 설정하여 살펴보면서, 특히 가족별거의 고통을 다룬다. 5장은 어떻게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이 이 탈구위치에 맞대응하는지를 살펴본다. 6장은 가사노동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과정과 가사노동 수행을 살펴보면서 가사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개인적인 것과 개인적이지 않은 것 간의 권력관계에 대한 지형을 검토한다. 권력관계의 해체는 모순적인 계급이동의 탈구위치를 드러낸다.
7장은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이주민공동체를 검토한다. 이 장에서는 두 도시의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 무소속이라는 지역화된 탈구위치를 공유함을 드러낸다. 로마에 사는 여성에게 무소속은 이들이 사회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이탈리아 사회의 구속 하에서 편입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리스의 여성이 느끼는 무소속감은 수용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거주공동체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특히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이주민공동체의 중간계급 중심성으로 인한 계급불균등의 결과 때문이다.
결론에서는 처음의 연구주제로 돌아가 이주의 거시구조적 결정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마지막 장에서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가사노동자들 사이에 어떻게 유사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역자 후기 중에서

이 책은 내용이 풍성하다. 이론적인 접근과 더불어 필리핀 이주여성가사노동자들의 일상을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살피고 있다. 풍부한 현지조사와 분석력을 통해 현실에서 여성이, 이주한 여성들이 노동을 하면서 ‘주체’로 살아가는 것의 힘겨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비교적 최근 들어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책이 담아내는 내용들이 다방면에서 다차원적으로 접근되는 이주여성 쟁점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틀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번역을 하게 되었다.

세계화와 더불어, 특히 신자유주의의 맹공으로 노동자 여성, 가난한 여성들은 점점 더 힘겨운 삶을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 속에서 가부장제라는 제도의 압박 역시 쉽게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오늘을 일구는 여성들의 결단과 실천, 그리고 미약한 소수이나마 이를 지지하는 가족과 주변의 남성들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속에서 저항의 지점을 어떻게 연결하여 세상의 변혁으로 이끌어갈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그것도 힘겹게 살아가는 주체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개인의 일상과 사회경제적 구조를 더불어 고민하게 하는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내가 라셀 파레냐스의 의도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해서 새로운 논의의 장을 펼치는데 기여했기를 바랄 뿐이다. 라셀 파레냐스 역시 어머니가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경험을 통해 이런 현실을 연구주제로 삼았다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이주여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여성들, 초국적 가족뿐만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험을 하는 모두가 공감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소개

저자 :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에스닉 연구분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 조교수, 일본 오차노미즈 방문연구교수,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브라운대학교의 미국문명과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여성노동, 이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에서도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젠더, 페미니즘연구, 가족, 이주, 국제개발, 노동 등이다.
주요 저술로는 Children of Global Migration (2005), Asian Diasporas: New Formations, New Conceptions (2007, 공저), The Force of Domesticity (2008) 등이 있다. 곧 Intimate Labors: Care, Domestic and Sex Work (2009)를 공저로 펴낼 예정이기도 하다.

역자 : 문현아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성공회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젠더, 가족분야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연구활동과 실천활동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며 최근 활동가들과 함께 할 글로컬 액티비즘 공간을 꾸릴 고민을 하고 있다. 가부장제를 바꿔낼 기반으로 가족을 주요한 축으로 고려하여 한편으로 변화의 관점에서 동서양 가족사를 검토, 이론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가사노동자들의 조직, 연대의 움직임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족과 연관된 주제로『여/성이론』에 글을 쓰고 있으며, 공저로『성?노?동』(여이연),『박정희시대 연구』(백산서당), 번역서로『경계없는 페미니즘』(여이연),『두 개의 미국』(책갈피),『제국의 지배자들』(책벌레), 『역사사회학이론』(학문과 사상사) 등이 있다.



목차

서론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의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

1.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의 탈구위치

2. 필리핀과 노동유출

3. 재생산 노동의 국제적 분업

4. 초국적 가족: 전산업적 가치와 함께 가는 후기산업적 집안구성

5. 초국적 가족의 상호세대관계와 젠더관계

6. 모순적인 계급이동 : 세계화 속 가사노동의 정치학

7. 무소속의 탈구위치 :
로마와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필리핀이주민공동체의 가사노동자

결론 세계화의 하인들: 서로 다른 배경, 비슷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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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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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홈’ 만드는 가사도우미의 쓰디쓴 노동
[우리 곁의 오지] ‘우리 곁의 오지’ 여섯 번째 이야기…
4대 보험 안 되고 감정노동과 인간적 모멸 속에서
끝없는 집안일 해나가는 가사도우미 노동자들의 고단한 부엌






세탁실-거실-부엌-서재-안방-옷방-거실-세탁실-화장실-부엌-재활용·쓰레기수거장. 최명선(49·가명)씨의 하루는 세탁실에서 시작해 쓰레기 수거장에서 끝난다. 아파트가 작업장이고, 앞치마가 작업복인 그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오전 9시. 최씨는 매주 화요일에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로 출근한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출근하고 난 빈집에 들어온 최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부엌 옆에 딸린 세탁실로 들어가 소매를 걷어올린다. 세탁실에 앉아 바구니에 담긴 옷가지를 물에 담가 불려놓고 애벌빨래를 한다.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나머지는 손빨래로 세탁한다. 그다음 거실과 부엌 등에 어질러진 물건 등을 눈에 띄는 대로 정리해놓고 부엌으로 향한다. 설거지대에 서서 수세미를 들고 그릇·컵·냄비 등을 싹 닦아 찬장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다음에는 쓰레기를 분류한다. 재활용할 것과 버릴 것, 음식물로 처리할 것을 나눈다.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쉴 곳도 없는 점심시간

»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 최명선(가명)씨가 일하고 있다. 최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7시간 일하고 5만원을 받는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빨래와 설거지, 쓰레기 분류까지 마치면 오전이 금세 지나가요. 이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부부 둘만 사는 집이라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동안 밀린 설거지나 빨래를 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려요. 집에서도 집안일을 하지만 여기는 직장이잖아요. 빨래나 설거지도 집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죠. 더 신경 써서 해야 하고 더 깨끗하게 해야 하니까요. 이 집 ‘새댁’은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으면 메모를 해놓아요. 메모에 따라 필요한 일을 추가로 해요.”

낮 12시. 12시부터 1시간은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다. 일하는 집에 반찬 등이 있으면 집에서 점심을 먹지만 그렇지 않으면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거나 나가서 사먹는다. 이 집처럼 빈집에서 일할 때는 식사나 휴식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낮에도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다. 최씨는 “일을 하러 온 건데, 그 집 식구들이 먹고 남은 국을 먹으라고 하거나 자기들이 먹지 않는 음식을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때는 보통 초반에는 말을 못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넌지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또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쉴 공간이 없다. 빈방에 혼자 들어가 있는 것도, 사람들이 거실에 앉아 있는데 거실과 트인 부엌 식탁에 잠시 앉아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오후 1시. 최씨는 다용도실에서 청소기를 꺼낸다. ‘윙~’ 청소기 소리가 요란하다. 청소기는 서재와 안방, 옷방, 거실 순서로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인다. 청소기를 다 돌리고 나면 빨래건조대에 널어놓은 걸레를 걷는다. 마른걸레를 들고 서재로 들어가 책장과 책상에 앉은 먼지를 떨어낸다. 거실에 있는 TV와 노트북, 오디오 위에도 마른걸레가 지나간다. 마른걸레 다음은 물걸레 차례다. 물걸레 여섯 개가 들어 있는 빨간색 고무대야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최씨는 양손에 물걸레 하나씩을 들고 두 손으로 걸레질을 시작한다. 그렇게 2시간 동안 30평이 넘는 아파트 바닥을 모두 닦는다. 일반적으로 가사도우미들은 대걸레 등을 이용해 바닥을 닦거나 일부만 걸레로 닦는다. ‘바닥을 모두 걸레질해달라’는 요구는 무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씨는 왜 힘들여 걸레로 바닥을 닦을까.

“아유, 힘들죠. 어깨가 아파요. 오십견이 왔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걸레질을 해야 깔끔하게 청소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건데,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요.”


가사도우미는 50대 초·중반이 가장 많다. 최씨는 젊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 걸레질도 다른 가사도우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그런 최씨에게도 몸이 버텨내기 힘든 일들이 있다. 세탁소에 맡기면 되는 카펫이나 커튼 빨래 같은 묵직한 일이 그렇다. 일거리가 많지 않은 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서 시킨다는 인상을 받을 때나 몸살 기운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감정노동,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 최씨는 “빨래·청소·다림질·식사 준비까지 시간 내에 마치려면 좀처럼 쉴 틈이 없다”고 말한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오후 4시. 최씨는 다리미와 다리미대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빨래건조대에 걸려 있는 셔츠 등을 다린다. 다림질이 끝나면 화장실 청소에 들어간다. 고무장갑을 끼고 고무대야에 세제와 청소용 솔을 넣어 화장실로 들어간다. 물이 튀지 않게 바지를 걷어올린다. 세제와 락스를 이용해 세면대와 욕조, 변기를 솔로 닦는다. 거울도 빼놓지 않는다. 화장실 청소 역시 걸레질처럼 몸을 굽히고 팔에 힘을 줘서 해야 한다.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집안일 마무리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집안을 점검하면서 쓰레기봉지에 쓰레기를 채운다. 그러다 보면 벌써 오후 5시다. 앞치마를 벗어놓고 집에 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린다. 그렇게 이 집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맞벌이 부부가 모두 늦게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편이라 이 집에서는 식사 준비를 하지 않지만, 다른 집에서는 식사 준비까지 해야 일이 끝난다. 식사는 보통 밥과 국·찌개 한 종류, 나물 반찬 두 종류, 찜 한 종류로 준비한다. 가사도우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게 식사 준비다. 집집마다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미료다. 조미료 없이 요리를 하면 아무래도 ‘맛있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 게다가 집안 사람들의 입맛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문제가 커진다. 최씨는 “한 사람은 짠 음식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할 때는 두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만들어놓은 음식이 ‘맛없다’고 할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최명선씨는 2007년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해왔다.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어 남편 벌이만으로는 가계를 꾸리기가 벅차 “반찬값이라도 벌 생각으로” 가사도우미를 선택했다. 복지관에서 2주 동안 세탁·청소·요리·다림질 등 ‘살림의 기술’과 응대법 등 가사서비스 교육을 받았다. 복지관에 회원으로 가입해 연회비를 내면 가사서비스일을 연결해준다. 처음에는 3개월 동안 산후조리 도우미를 했고, 그다음부터는 가사도우미를 쭉 해오고 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창전동 아파트에 나가고, 일주일에 세 번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 나간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근로 수당은 5만원이다. 한 달에 80만원을 번다.

최씨는 이전에 했던 공공근로나 식당일에 비해 가사도우미는 시간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감정노동 부분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 때가 더 많다.

“복지관에서 연결해준 집에 처음 갈 때는 그쪽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 먼저 파악해요. 그렇게 맞춰가야지 정기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서로 마음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꾸준히 일을 하게 되죠. 창전동 아파트의 경우 3년째 일을 하고 있어요. 믿음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멀게 느껴질 때도 있죠. 예전에 일했던 집에서는 집에 늘 있던 할머니가 한 번 집을 비울 일이 생겼는데 귀중품이 들어 있는 문을 다 잠가놓았더라고요.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일했는데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나’ 싶었어요.”

4대 보험 적용 안 되는 24만 ‘도우미들’

» 최씨는 “빨래·청소·다림질·식사 준비까지 시간 내에 마치려면 좀처럼 쉴 틈이 없다”고 말한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일해도 퇴근 시간인 오후 5시에서 30분이나 1시간을 넘기는 일이 잦다. 일하는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기 때문에 시간이 돈인데, 초과된 시간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가사도우미들은 하루 일당을 그날 일이 끝나면 사용자에게 직접 받는다. 그럴 때 초과된 만큼 5천원이나 1만원을 더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알아서 챙겨주면 ‘고맙다’. 최씨가 일하는 다른 집에서는 식사 준비로 근무시간을 넘기는 일이 반복되자 1시간 더 일하고 1만원을 더 받기로 합의했다.

‘보험’ 얘기가 나오자 최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원보증에 주민등록등본, 건강진단서까지 내고 복지관에 회원으로 가입해 연회비도 내는데 4대 보험 적용이 안 돼요. 복지관 선생님에게 ‘왜 안 되느냐’고 물어도 ‘머지않아 될 거예요’라는 대답밖에는 들을 수 없어요. 3년 넘게 일했고 앞으로 적어도 5~6년은 더 일할 계획인데 언제까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사도우미 시장은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가사도우미 시장 규모는 2007년 5조원을 넘어섰고 매년 약 10%씩 느는 추세다. 통계청은 올해 3분기 맞벌이 가구의 월평균 가사서비스 지출이 2만6684원으로, 지난해 3분기에 비해 24.4%, 2005년 3분기에 비해 188% 늘어났다고 밝혔다. 가사서비스 지출이 대부분 가사도우미 비용임을 감안하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도우미 비용이 5년 동안 3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시장은 커졌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사도우미 종사자 수는 약 10만5천 명이다. 현장에서는 실제 가사도우미 종사자가 15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본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63만원이고, 평균연령은 52.8살이다. 가사도우미는 주로 비영리 사회단체·기관이나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다.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하는 가사도우미 중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가 다수다. 15만 명이 넘는 가사도우미에게 4대 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이는 비단 가사도우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사·간병·보육도우미 종사자 24만 명이 같은 처지다.

이들이 사회적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가족의 일부인 ‘가사사용인’이기 때문이다. 1954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가사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사사용인’으로 분류해 법 적용에서 제외했다. 56년이 지난 지금,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달라졌고 이들은 ‘돌봄노동자’로 사회적 역할을 해나가고 있지만 이들의 법적 지위만은 여전히 그대로다.

54년에 고착된 법적 지위

문제는 이를 대하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다. 정부는 가사·간병·보육도우미 등 사회서비스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통해 고용된 4만 명에게는 4대 보험이 적용된다.

사회적·법적 지위 보장이 요원한 이상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역시 개선의 여지가 없다. 가사도우미들이 휴식 시간·공간 보장이나 정당한 추가 임금 등을 요구하기보다 눈치를 먼저 보고, 일하면서 불필요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게 되는 데는 여전히 가사도우미를 노동자가 아닌 ‘집안일을 도와주는 파출부’로 보는 인식이 한몫한다.

서울YWCA 관계자는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만나는데다 사용자와 일대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경우가 종종 접수된다”며 “청소기 등 청소 도구를 쓰지 못하게 하고 모든 일을 맨손으로 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는 연결해준 단체가 중재에 나선다.

가사도우미 서비스 사용자들도 할 말이 있다. 광주대 가족복지 전공 김선미 교수는 ‘가사도우미에 의한 가사노동대체, 문화기술적 사례 연구’(2009) 논문을 통해 사용자의 관점에서 가사도우미 고용의 문제를 “가사도우미의 서비스 질에 대한 고용 전 정보 부족, 신분의 불확실성에 의한 불안 (중략) 원하는 기간 동안의 안정적인 고용 보장의 결여, 적절한 보수 수준과 인상 시기의 모호성”이라고 분석했다. 이 논문에서 지적한 문제는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사도우미를 중개받았을 때 주로 나타난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지난 11월22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함께 발표한 ‘민간 노동력 중개기구의 수수료 및 노동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유료 직업소개소로 인해 가사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거나 중간에서 중개수수료를 착취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비영리 사회단체·기관은 신원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고, 가사도우미의 교육은 적어도 이틀 이상 진행한다. 교육을 통해 고객 응대법,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 직업의식 등을 익히도록 한다. 유료 직업소개소는 이러한 교육이 전무하다. 가사도우미 구직자들로부터 받는 중개수수료 역시 유료 직업소개소는 월 6만5천원으로 사회단체에 비해 2배 이상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안’의 오지

실제 유료 직업소개소에 구직을 문의해봤다. 세 곳 모두 첫 달에는 7만원 이상의 회원비를 요구했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가사도우미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한다고 나와 있지만, 교육은 30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안내 정도라고 답했다. 신원 확인 역시 허술했다. “주민등록증만 가지고 회사로 나오시면 바로 가사도우미 나가실 수 있어요.” 세 업체에서 받은 공통 질문도 있다. “한국분이세요?” 한 업체에는 중국 동포라고 소개했다. 대답은 역시 똑같았다. “신분증만 가지고 회사로 나오세요.” 유료 직업소개소의 중개 행태는 서비스 이용자들의 불만과 맞닿는다.

가사도우미의 노동 환경은 ‘우리 곁의 오지’가 아닌 ‘우리 안의 오지’다. 가사도우미가 돌봄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는 이상 제아무리 고급 아파트라고 해도 별수 없다.

최명선씨가 인터뷰 말미에 가방에서 꺼낸 수첩이 잊혀지지 않는다. 복지관에서 나눠준 가사도우미 수첩 사이사이에는 ‘생선 잘 굽는 법’ ‘세탁 깨끗이 하는 법’ 등이 빼곡히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최씨와 깔끔한 아파트 부엌의 깨끗한 식탁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곳은 ‘누구네 집 부엌’이 아니라 그의 일터라고, 그 수첩은 말하고 있었다.




가사도우미 처우 개선 움직임
이제 ‘가정관리사’라 불러주세요~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 15개 단체가 함께하는 ‘돌봄서비스 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돌봄연대)와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지난 9월 돌봄노동자 보호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법률개정안은 △가사사용인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삭제 △고용·산재보험 조항 신설 △사업주가 아닌 국가가 부담하는 보험료 징수법 개정 등을 골자로 한다. 보험 조항 신설을 4대 보험이 아닌 2대 보험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 돌봄연대는 “당초에는 4대 보험의 전면 적용을 목표로 했으나, 현실의 벽을 감안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고용 불안과 산업재해로부터 우선 보호하고자 고용보험법과 산재보험법에 특례조항을 신설해 2대 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유료 직업소개소 등 중개기구의 역할과 책임 규정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민간 노동력 중개기구의 수수료 및 노동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99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협약’ 초안이 채택됐다. 초안은 가사노동자가 다른 임금 노동자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로관계에서 노동관계법상 보호 조처를 적용하고, 이주 가사노동자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권리를 보호하도록 했다. 중개기구에 대해서는 △등록·면허 기준 마련 △위반사항에 대한 처벌 제도화 △정기적인 조사 △중개수수료로 인한 임금 축소 방지 등을 명시했다. 보고서는 “가사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적 흐름을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지난 6월 ‘아줌마가 아니라 가정관리사라 불러주세요’라는 내용의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가정관리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였다. 김경희 회장은 “여전히 드라마에서는 가정관리사(가사도우미)를 ‘파출부’나 ‘아줌마’로 부르며 이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며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법률개정안이 통과되면 돌봄노동이 괜찮은 일자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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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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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슈퍼우먼’ 농촌여성들
[기획연재] 여성농민의 지위가 곧 평등사회의 잣대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형주 
<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김형주님은 경기도 여주에서 논농사 짓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주군 여성농민회 사무국장과 경기여주여성농업인센터 방과후공부방 별님반 교사로 일해왔으며,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더 이상 내일을 꿈꾸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할 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제일 슬펐다는 김형주씨는, 그러나 “혼자만 꾸는 꿈이 아니라면 계속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가부장적 농촌사회 속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을 기고해주셨습니다. - 편집자 주>
 
환갑 여성농민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출’
 
▲ 여성농민들은 가부장적 농촌사회에서 고된 농사 일에, 가사노동, 돌봄노동까지 맡으며 '이름 없는 슈퍼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고구마 공동농사를 짓는 모습  ©김형주
순자 언니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허리가 아파 고생고생 했더랬습니다. 농사일에 집안일에 그리고 마을 구판장 일까지 손 걷어 부치고 해내고, 남편과 두 아이 뒷바라지까지 깔끔하게 거두던 언니. 이제 좀 살만하니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고, 결국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해서 무거운 짐은 못 든다면서도 올 가을도 남편 컴바인 일 조수로 나섰습니다.

 
정원 언니는 허리 디스크라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허리에 복대를 하고서도 가지 하우스, 호박 하우스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땅을 설설 깁니다. 그만 좀 쉬시라는 동네사람들 말에, 일을 안 하면 더 아프답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이기순 회장님. 당신도 며느리 사위 다 보고서도, 팔순이 넘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되어 지난 여름 가출을 했습니다. 허나 가출을 해봐야 환갑 다된 할머니, 친정도 없고 어디 혼자 들어가 볼 만한 곳도 없어서 괜히 버스만 타고 왔다 갔다 하고서는 그 누구도 몰라주는 가출마저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선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배 과수원 배 봉지를 싸고 시어머니 밥을 차립니다. 기껏해야 동네아줌마 만나 시어머니와 남편 흉 보는 게 다였는데, 남편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부턴 그것도 수월치 않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영미씨는 하루도 빼지 않고 젖을 짜고 소 사료 푸대 나릅니다. 그런데 하필 남편 집에 없을 때 우리를 뚫고 나온 소 두 마리, 그 놈들 잡으러 마을을 동동거리며 쫓아다니다 논두렁에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성질 나쁜 소들이 깔아뭉갠 남의 집 논과 밭도 걱정이지만, 에이쉬 이 놈의 소들도 여자라고 깔보는가 싶어 속에선 천불이 일었답니다.
 
오이 상추 하우스 일에 뼈가 다 녹는다는 윤경씨는 올 여름 몸 건강도 안 좋아졌지만 우울증까지 생겼었답니다. 농사일을 줄이고 싶어도 아이들은 커가는데 농산물 값은 떨어지니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하우스를 줄일 수 없답니다.
 
미숙 언니는 이혼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새색시로 들어온 농촌. 아이 셋 낳고 키우는 동안 남들은 모두 호인이라는 남편의 손찌검에, 남편이 술만 먹는 기색이 보이면 남편을 피해 도망가는 버릇이 생겼고, 결국 그 아저씨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던 밤 야반도주를 해버렸습니다.
 
농사도 가사일도 봉사활동도…슈퍼우먼 여성농민 몫
 
▲경북 봉강 꾸러미(생산자 조직)를 방문, 견학한 안동-의성 여성농민회 분들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까페 제공
이 땅에 여성농민이 삽니다. 농사를 짓는 여성, 여성농민이 삽니다. 남녀평등의 사회, 여성들도 장관을 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너희 나라’ 같습니다. 논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밭일은 여자가 합니다. 농사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남자가 맺고, 여자는 그 빈 자리를 메꿉니다.

 
예전에는 큰 기계 일은 남자가 하고 소소한(?!) 일상의 노동은 모두 여성농민들의 노동으로 메꾸어 왔습니다. 남편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고랑을 타주면, 고추 모종을 심고 고추순 따고 말뚝 박고 줄 메고 고추 따고 말리며 중간중간 잡초를 메는 매일의 계속되는 노동을 담당하는 몫이 여자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여자들도 이젠 1톤 트럭과 트렉터 운전 정도는 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남편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아내가 트렉터로 논을 갑니다. 남편이 컴바인으로 벼를 베고, 아내는 1톤 트럭으로 벼를 실어 나릅니다. 남편과 같이 비료살포기를 메고 이삭거름을 주고 농약 줄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같이 하면서 ‘노동의 장’과 ‘생활의 장’이 분리되지 못하여, 출근도 퇴근도 없는 여성농민. 밖에서 똑같이 흙투성이 일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리모콘을 쥐고 아내는 부엌칼을 쥡니다. 사회적 활동은 남편의 몫이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이제 스스로 농기계도 운전하는 수퍼우먼 여성농민이 메꿉니다.
 
남편이 면사무소로 영농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혼자서 감자를 심습니다. 남편이 지역발전협의회 회의 나가 낮술에 얼큰히 취해 돌아올 때, 혼자서 고추 말뚝을 박고 오이줄을 올립니다. 남편이 친구 부모님상에 조문 간 사이, 들깨를 심고 참깨밭을 맵니다. 남편이 마을회관에 대동회의를 가면,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음식 준비 하다가 회의 끝나면 밥 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마을 이장도 여자가 한다지만, 아직도 대동회의장에 여자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마을도 많습니다.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시부모 뒷바라지야 물론이고, 농한기 동네 어른들 마을회관에 돌아가며 반찬 해 나르는 일에, 부녀회장이라도 맡을라치면 면사무소에 모여 독거노인 김장에 빨래봉사까지, 농업노동에 가사노동 그리고 돌봄 노동까지 모두 여성농민의 몫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정신 없이 수퍼우먼으로 돌아 치는 여성농민들, 그녀들이 이 땅에 삽니다.
 
13년 전, 내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
 
▲ 여성농민회의 진행하고 있는 <천연 치약, 천연 샴푸 만들기> 강좌. 화장품과 세제, 비누 만들기에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제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13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내려올 때는 날 선 사명감 내지는 결기 그런 것들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민단체를 찾아가 8년이 넘게 실무자 일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 생활을 접고 농민이 되리라고 되뇌던 일을 실행에 옮기던 때이니, 설렌다기보다 사실은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귀농’이라는 말만 하면 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왔는지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어 참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군 전체에서 귀농한 사람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지역사람들 중에는 ‘타지 것들’이 도대체 왜 여기까지 내려왔는지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 이름 석자보다 누구 마누라, 누구 엄마로 통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여성과 아이가 행복해야 행복한 사회이며, 농촌이 평등해야 정말 평등한 사회’라는,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여성농민들을 만났습니다.
 
‘여성농민회’는 여성농민 스스로 현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좀더 행복한 여성농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땅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어 마련한 돈으로, 스스로 교육사업도 만들고, 농사일에 엄마를 빼앗기고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농번기 탁아사업도 해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활동이 2002년 농림부 시범사업으로 여성농업인센터 사업에 선정되자,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방과후 공부방도 운영하고, 스스로 벌여오던 교육사업도 더 체계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벌여낸 사업으로 더 많은 여성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농업문제와 세상읽기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미래와 깨끗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인 ‘천연세제 만들기’ 같은 교육도 마을로 들어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면에 하나밖에 없는 복지회관 목욕탕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는 일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정작 센터에서 일하는 회원들은 마음고생도 많고 몸 고생도 많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아니면 그 일들을 누가 할까 합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평등한 삶 위해 함께 꾸는 꿈
 
▲ 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알곡 어린이집 아이들이 토종수수 씨앗으로 모종을 키워, 작은 꽃밭에 심고 거두어 직접 수확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학교담장을 둘러싸고 육상골재채취 사업이 신청되어 학교 바로 옆에서 모래산이 쌓이고 물웅덩이가 파이는 상황이 예상되자, 순하고 세상 모르는 것 같던 엄마들이 변했습니다. 아니,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이들 건강과 교육문제 앞에서는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성들보다 지역의 혈연과 지연과 학연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은 옳은 것은 옳다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눈치 보지 않고 말했습니다.
 
사실 전 제가 엄마라는 사실이,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요구되는 많은 신화들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농민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살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10명이 넘는 여성농민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다음 달 딸을 시집 보내야 하는 친정엄마도 있었답니다. 삶의 무게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밥 한 공기 값이 적어도 커피 한 잔 값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노동의 강도가 세지고 여성들이 차지한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육아와 가사를 남녀가 분담하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꿈을 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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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가사노동2012. 3. 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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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부엌’


고립되고 비가시화되는 노동공간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부엌은 마루를 내려간 다음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의 관련 금기들도 많았다. 가옥 구조가 변하면서 현재 대부분 가정에서 부엌은 밥을 먹는 공간을 포함하며 실내로 들어왔다. 부엌 공간은 이제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소개된다. 그리하여 때때로 부엌이 식사와 휴식공간일 뿐 아니라 그 식사를 준비하는 작업공간이라는 사실은 망각되곤 한다.

일상문화연구회의 <한국인의 일상문화>에 따르면, 부엌의 사정과 식탁의 사정은 다르게 이해된다며 ‘칼국수’의 예를 든다. 칼국수가 김영삼 대통령 재직 당시 ‘간단하고 서민적인 음식’으로 소개될 때 사람들은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칼국수가 부엌에서 만들어지는 데는 상당한 노동력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보지 않고서, 식탁에 앉아 자신이 칼국수를 먹기 쉽다고 ‘간단한 음식’ 운운했다는 것이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인다’는데 그 부엌의 코앞에서 매일 먹고 자는 사람들이 간단한 음식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것은 부엌이 여전히 집에서 홀로 떠 있는 섬과도 같고, 부엌에서 노동을 하는 주부 역시 ‘나 홀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 구조에 있어서 부엌이라는 공간은 주부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집안 구조상 문을 열었을 때 부엌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보통 부엌은 집에서 가장 깊은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평수가 넓어질수록 부엌과 식탁 사이에는 전통가옥 뺨치는 경계선이 생긴다. 공간의 여유가 생기면 부엌은 유리문을 달고 커튼을 드리우며 ‘가족들의 공동공간’이라기보단 점점 더 ‘주부의 개인작업공간’이 되어 숨어 들어간다. 

음식냄새나 조리기구가 내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하려고 해도 그것이 누굴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것은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작업 동선을 길어지게 하고 노동시간 동안 가족들로부터 고립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주부 K씨(54세)는 “식사준비를 할 때 옆에 사람이 있으면 필요할 때 시키게 되지만 혼자 있으면 그냥 혼자 한다”고 말한다. 다른 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함께 준비를 하려고 해도, 각자의 혹은 공동의 휴식공간에 있는 식구들을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번거로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은 부엌을 마음 편하게 ‘외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가족들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앉아있을 수 있다. 부엌은 일부러 보지 않는 한 보이지 않고, 부엌에 있는 사람은 일을 하는 동안 ‘공동공간’인 거실에 있는 가족들을 보거나 텔레비전 등을 볼 수 없다. 식구들이 보는 것은 일하고 있는 주부의 ‘뒷모습’이다. 일반적인 가족들에게 부엌은 먹을 때만 공동공간이 되는 ‘식탁이 있는 곳’이지 공동작업공간은 아닌 것이다.

직장인 M씨(28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부엌에서 엄마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부엌에서 엄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주부 L씨(55세)는 “평생 음식 장만을 혼자 하는 것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어도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TV를 보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 땐 화가 나고 미웠다”라고 말했다.

한편 다용도실은 대부분 부엌과 연결되어 있거나 부엌과 가깝고, 집의 깊은 곳에 숨어있어 가사노동을 비가시화하는 데 일조한다. 양파, 감자, 통마늘 등의 다듬어야 하는 재료들, 관리를 요하는 장기저장 식품 등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로 세탁 관련 기기들까지 위치하고 있다. 걸레, 손빨래, 세탁기 빨래 등 일거리들이 쌓여 있는 이 곳에 주부를 제외한 가족들은 ‘빨래를 가져다 놓으러’ 간헐적으로 방문할 뿐이다. 게다가 세탁기는 집의 후면에 위치한 다용도실 있는데 건조대는 주로 집의 전면(테라스)에 위치하고 있다. 세탁기와 건조대까지의 동선이 길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미관상’이다.

가정은 사회적 임금노동으로부터 혹은 학교로부터의 휴식처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하며, 세탁기 소리도, 음식 냄새도 맡지 않고 ‘쉰다.’ 그 ‘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성된 공간에서 막상 어떠한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어떤 노동이 필요한지는 비가시화 되며, 그러한 노동은 고립되고 평가 절하된다. 이로써 우리의 부엌은 ‘집은 쉬는 곳’, ‘가정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 ‘집안 일은 엄마일’이라는 통념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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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