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08. 8. 27. 17:02



위의 사진 - 제나린의 형제들과 저녁에 노래부르면서 노는 장면.
                 필리핀에서는 집안이든 어디든 노래방 기기로 노래하는 것을 즐겨한다.리모컨 들고있는 친구가 제나린.
아래 사진 - 마지막날 떠나는 언니를 보내는 동생들
                 왼쪽부터 막내 얀얀, 세째동생 에데리다, 둘째동생 임임,첫째동생 디딧.




제나린은 이주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주여성이라는 선입관은 그새 사라지고 만다. 그저 애둘에 남편과 이것저것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아이들 교육에 누구처럼 열심히 고민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표 주부다. 그런데 이주여성하면 웬지 뉴스나 가십거리 기사 그리고 이주여성에 대한 문제점들을 기술해 놓은 논문속의 이야기로만 대상화된 선입관이 내머릿속에 있었는데 그녀를 만나면서 하나씩 깨지고 현실이 됐다.


그녀를 처음 만난건 여성재단에서 주최하는 이주여성친정방문프로젝트<날자>의 익산 오리엔테이션에서 였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후 한번도 친정방문을 못한 사람들이 이번에 선정이 됐고 제나린도 그 중 한명이었다. 10년전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하나 딸 하나 (에고 얼마나 이쁜것들인지 ㅎㅎ) 낳아 알콩달콩 잘 살아왔지만 친정은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다. 그녀의 친정집이 워낙 어려운데다 2년전 어머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친정방문위을 위해 모아둔 돈을 매번 병원비나 생활비로 보내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돈이 아니어도 매달 친정에 돈을 보냈고 남편도 그녀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지원하는 편이었다.


제나린의 친정집은 꽤 멀었다. 여성재단에서 마련해준 이번 행사에서 고향집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은 4박5일이었는데 제나린은 그중 1박2일을 다시 까먹어야 했다. 마닐라에서 친정집인 민다나오섬의 부투안시티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반을 가야하고 또 거기서 동네마을까지 2시간을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하루에 한번밖에 비행기가 운행을 하지 않아 마닐라에서 1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마닐라에 사는 그녀의 사촌언니집에서 하루를 신세지고 다음날 부투안시티로 떠났다.


그녀의 친정집은 전형적인 필리핀 시골동네였다. 오빠가 만들었다는 나무로 만들어진 전통가옥에 그녀의 세명의 여동생이 어머님을 간호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이날은 제나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근처에 사는 오빠 식구들과 결혼한 셋째동생 식구가 모두 모여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 중앙에는 ‘Welcome, Eun Family!'라고 써 있었다. 따갈로그도 못알아 먹지만 이곳은 비사어를 사용하니 머릿속에 벌써 번역이 걱정이다. 하지만 얼굴은 생글거리면서 제나린과 함께 그들과의 생활에 조용히 스며들어 3박4일을 보냈다. 지내다 보면 참 희한하다. 나도 그렇지만 제나린의 아이들도 말 한마디 못 알아 듣는데도 어느덧 그들과 어울려 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그나마 영어를 해서 가끔 대화라는 걸 짧게나마 하는데 제나린의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한지라 흐흐 꽤나 고생이 심했을 텐데도 이 남자 또 호인인지라 그저 허허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어찌나 끊임없이 짓고 있는지.


제나린은 이집의 큰언니다. 오빠가 하나 있긴 하지만 워낙 벌이가 안 좋은데다 자기 집 아이들도 넷씩이나 되니 먹고살기가 힘들다. 결국 어머니 병원비며 간호는 딸들이 맡아서 하고 있는데 그중 제나린의 지원이 가장 큰 힘이랄 수 있겠다. 그래서 큰언니 제나린의 존재는 너무나 특별했고 그들의 10년만의 만남은 더없이 특별할 수밖에. 언니는 멀리 있지만 늘 동생들의 정신적 지주였고 물질적으로도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하지만 제나린은 그 모든 덕을 남편 덕으로 돌린다. 남편 때문에 남편이 잘 지원해줘서 남편이 아니었으면...


우자지간 난 그녀들의 자매애에 놀랐다는 거. 쓰러진 엄마를 간호할 사람이 없어 셋째가 일을 그만두고 엄마 간병인을 자처해 하고 있고 막내는 대학교수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그녀의 월급은 9000페소로 원화로 치면 20만원 정도라니 겨우 집안의 생계비 정도일 뿐이다. 둘째는 미혼모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데 아무도 뭐라지 않는다. 그렇게 세자매가 한집에 모여 병든 엄마와 혼자서 애를 키우는 언니를 서로 보듬으며 살고 있으니 이보다 이쁠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어찌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던가. 아니 우리도 그렇게 산적이 있긴 있었지. 까마득히 오랜옛날 우리도 정말 가난했던 그 시절 그런 이야기는 우리도 주변에서 늘 보던 이야기였지.


제나린의 오빠는 할 말이 참 많았다. 그와 나 둘다 영어가 짧아 하고싶은 말을 비사어로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했더니 이 오빠 정말 비사어로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는데 그 눈빗만 봐도 그림이 그려지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었겠지. 그랬더니 이분 내가 비사어를 알아듣는 줄 알고 뿌듯해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ㅎㅎ 우자지간 제나린의 오빠는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안그래도 큰 눈이 퉁퉁부어 보기도 안스러운 눈빚을 계속 하고 있어 정말 마음이 짠했다는 거. 게다가 오랜만의 딸의 방문을 아는지 의식이 없던 엄마가 제나린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태까지...


물이 이틀에 한번씩 밖에 안나와 이틀에 한번씩 물을 받아놓고 쓰는데 오랜만에 손님이 많아져 그집 물은 늘 모자랐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물을 빌려오고 받아와 동생네 식구와 우리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던 그 사람들, 필리핀 말 하나도 모르는데 조카를 위해 늘 눈을 보고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하나씩 가르쳐주던 그 사람들, 집안에서 장작불로 음식을 하는통에 안그래도 더운집이 더더욱 더운데도 그 불앞에서 끊임없이 음식을 준비하던 그 사람들, 제나린이 돌아가기 전날 언니를 위해 동생들과 조카가 모여 다함께 준비한 춤을 섹시하게 추었던 그 사람들....짧은 일정이자만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길고 끝이없다.


이미 제나린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고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날들을 벌써 그리워하고 있겠지. 늘 그렇지만 시간은 너무 짧다. 그리고 시간은 아무것도 담아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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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8. 8. 10. 16:49

필리핀에서 돌아온지 네달이 조금 안됐다. 그동안 지옥과 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레드마리아와 한축을 이룬 일이었다.
종종 사적인 흥미진진한 일들이 더러 있어 꼭지가 돌 뻔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촉촉해지는
감동의 순간도 있었지만 역시 레드마리아가 주는 기쁨보다는 순위가 뒤처지는 게 사실이니
당분간 그렇게 계속 가는 수밖에.

마치 모든 무기의 장전을 끝내고 출정하는 기분으로 다시 가게 될 필리핀에서의
시간들을 상상해 본다. 과연 생각대로 잘 진행이 될지 아님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두렵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어제는 필리핀에 보낼 의약품을 구입하고 영어와 따갈로그로 복용법을 일일이 써서
붙이느라 스텝들이 밤늦게 까지 고생했다.
그저 만나는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준비하고자
시작한 일인데 의외로 돈이 많이 모아져 의약품 가방만 10키로는 족히 되지 싶다.
무슨 전쟁터에 간다고 이렇게 많은 의약품을 준비하는지..쩝

돈을 보내준 분들 중에 민주성노동자연합과 민주성산업인연대에서 보내준 돈도 있다.
그분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필리핀의 성매매단체나 성노동자단체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분들께 직접 이들이 보내준 의약품을 전달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대충 감기약이나 두통약 정도를 생각했는데 역시 약사와 상의하니
필요한 약들이 의외로 많다. 똑같은 감기약이라 해도 아기들에게는 시럽을 준비해야 하고
파상풍과 같은 상처에 바를 연고며 여성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좌약이나 연고 등
구체적인 약들이 다시금 추가되어 약 종류만 20가지는 되는 듯 하다.

필리핀 촬영의 첫 시작은 이주여성 친정방문 프로젝트인<날자>행사를 찍으면서
그 행사에 선정된 한 가족을 취재하는 것이다.
이주여성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가족이고 부부관계도 끔직하게 좋은
이 커플을 통해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만나자마자 오랫동안 사귄 친구 처럼 벌써 정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그들의 친정방문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결혼하고 10년만에 처음 가보는 친정이라고 하니 어떤 기분일지 그들의 고향은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가슴이 콩알 콩알 뛴다.

그리고나서 취재할 곳은 사우스레일 빈민가이다. 작년에 사우스레일을 방문하면서
사전취재삼아 이미 가난에 대한 연대를 만들긴 했지만 내 마음은 정작 레드마리아에
있었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늘 삶은 파헤쳐지고 뒤집어진다.
그리고 그 가난한 삶의 밑바닥에 던져지는 돈 몇푼.
그 돈을 무작정 버릴 수도 없고 취하기엔 너무 비굴해지는 우리의 치사한 삶의 기복.
작년 이맘때쯤 그 사우스레일을 방문하면서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만감이 다시금 머릿속에 교차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찌나 밝고 씩씩하던지.
에블린...좀만 기둘려.나 이제 그곳에 갈 수 있게 됐어.

그리고 민다나오섬의 다바오시에서 만난 성매매여성들을 위한 단체.
가브리엘라라는 여성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그 단체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었다.
만일 ‘여연’이라면 이런게 가능했을까라는 생각부터 그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있었지만 그들에게 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님 기억이나 할까?
우자지간 난 그곳에 가서 그들의 존재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생각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게 될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여성운동선상에서
연대하게 하는지를.

마지막으로 취재할 곳은 필리핀의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아시아엔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건 아직 너무 없다.
일단 직접 찾아가서 만나보고 들어보고 해야 무엇을 찍을 것인지 감이 잡힐 듯 하다.
김동원선배의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고 참 할 말이 많았는데 접었다.  
왜 접었을까?

비가 참 많이도 온다.
필리핀에도 우기인데 가면 졸라 많은 비를 보겠군.
필리핀은 우기에 하루에 한차례 정확히 폭우가 쏟아진다.
우산을 쓰는게 의미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가 올때는 나가지 않는다.
조용한 방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그 비를 바라보면 참 낭만적인데
그 비가 오는동안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난 어느쪽에 있게될지 곧 보게 되겠지.

참 수림이도 있구나.
서울로 전화걸때마다 짜증부리면서 나 바뻐 했었는데
군소리 안하고 늘 바로 끊었던 녀석.
녀석을 위해 묵은지 세포기를 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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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08. 7. 17. 15:10





 










 

노명과 함께 한 첫 회의.
사진찍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독사진
여러분의 사랑스런 찍사 경은 드림

 

인디스토리 사무실에 2개월 동안 얹혀 지내던 때...
잘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8. 6. 30. 16:32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촬영을 지지난주에 했다.

그간 자료를 모으면서 찍었던 분량이 벌써 디브이 테잎 70개가 넘지만
이제 워밍업에 종지부를 찍고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 첫 촬영의 현장은 ‘성노동자의 날 3주년 기념식'

2004년 성매매반대특별법이 만들어진 후 사회에 첫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나에게 생소했고 다소 어색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내내 그 목소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했고 결국 ‘레드마리아’를
구체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몇 번의 기획안을 손보며 스스로 정리되지 않는 고리를 찾아 헤메면서
나는 스스로 피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지점이 성노동자에 대한 고민이 마무리 되지 않은 지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차에 결국 첫 촬영도 그들의 모습을 담는 것에서 시작이 됐으니...

난 그 첫 촬영을 위해 HDV카메라를 빌려 내려갔다.
애인이나 다름없다고 애지중지 하는 박정숙 감독의 촬영감독에게 그 애인과
절대 섹스는 안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빌려와 촬영을 했는데 이게
예사롭지 않은 놈인 것이다.
어느새 나도 그놈에게 빠져 거의 섹스직전까지 갈 뻔 했지만 그놈에게 마음 준
다른 놈이 있으니 건전한 연애생활을 위해 일단 마음을 정리했다는 야그.

우자지간 그렇게 첫 촬영을 시작한 이후 촬영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촬영할 일정이
점점 빼곡히 달력을 채워나가는데 문제는 카메라다.
일단 미디어센터에 그 카메라가 있어서 빌려 쓰고 있는데 카메라 대여비에
지방출장비까지 주머니에 들어오기 무섭게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디 털만한 은행이 없나 눈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안토니아 반데라스처럼 권총을 휘드르는 재주가 있거나 빼어난 미모에 언변이라도
갖췄으면 모를까 은행터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지풀에 이건 포기.

그런데 은행을 털지 않고서 카메라를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촬영부터 다음 달 가게 될 필리핀 촬영분까지 일단
초반 제작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흐흐 얼마나 좋은지 잠이 안 온다.
서울영상위원회에서 독립영화제작지원작에 선정이 됐다.
선정해준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린다. 물론 떨어졌으면 바가지로 욕을 했겠지만.ㅎㅎ
그리고 슬며시 50만원을 영화 만드는데 쓰라고 보내준 지선에게도 감사한다.
그녀의 처지를 보면 받을 수 없는 돈이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민들레'이후 영화를 새로 만들때 마다 늘 첫 촬영이 따로 없었다.
찍고 있던 내용들이 겹쳐져서 이 영화와 저 영화가 맞물려
이미 찍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첫 촬영은 느낌이 새롭다. 아니 좋았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오랜 고민 속에 어렵게 한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황홀한 것인지를 새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느낌 그대로 일단 쭉...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8. 6. 23. 16:25

요즘 내생활의 즐거움은 천원짜리 옷을 파는 가게에 오며가며 들르는 일이다.

이런 옷은 특히 시간과의 진득한 싸움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하나를 제대로 건지면 그 기쁨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게
단점을 능히 감수할만한 장점이다.
그래서 난 종종 이곳에 들러 요즘 잘 입고 다니는 남방부터 수림에게 공수하는 나시까지
구입의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리고 편안히 두 발 피고 잘 수 있는 나의 공간.
미례 집 거실에서 한 달 반을 게기다가 드디어 작은방을 쟁취해 세입자로 당분간 살기로 했는데
점점 장기화되고 보니 미안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은방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1평 남짓한 공간을 책상하나 놓고 얼마나 좋아했든지.
그곳에 비하면 이공간은 잠도 잘 수 있으니 어디 감히 비할 수 있으리.

가끔 친구중 하나가 나에게 늘 이런 말을 한다.
‘언니는 가난을 잘 모르는 거 같아, 그치? 그런 경험 해본 적 없지?’
하하하 도대체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종종 해대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나도 너만큼 어쩌구저쩌구 이바구를 떠는 일도 민망한 일이다.
게다가 나에겐 단 한번도 가난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없으니 말이다.
아니면 이 단순함에 그새 잊어버렸는지도. 하지만 가난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은 또렷하다.

그 기억들 대부분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 보다는 대부분 따뜻한 기억들이다.
늘 군침만 흘리던 동네 리어커의 홍합을 훔쳐보다가 어느날 옆집 아줌마가 사준 한사발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던 일, 동화책도 변변히 없었지만 늘 찾아가면 신간을 비롯해서
온갖 만화책이 줄줄이 있었던 그 허름한 만화책방, 염색약이 없던 시절 과산화수소수를 사다가
머리에 쳐발라 노랑머리를 하고 다녔던 청량리 588의 그 언니,
모두가 그 시절을 가난했던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돈이 철철 넘치는 21세기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났으니 가난에 대한 정의는 새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난이 주던 그 행복한 기억은 사라져 가고 그 자리는 빈곤으로 꽉꽉 메꿔졌다.
있어도 있어도 늘 부족하고 누구도 넉넉하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다.
전셋집에 살아도 50평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사람들은 늘 부족하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절대 같아질 수가 없다. 공동체와 차별없음을 머리로는 깊이 알지만
그들은 세상을 이길 만큼 강하지 않기에 머리와 행동이 같아지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우린 가능하면 언행일치라는 말은 안쓰는게 좋다.
사전에서도 그 말은 지워버리는 게 좋겠다.

우자지간 난 가난이 좋다. 물론 피곤하고 힘든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필요이상의 부유함이 그리 부럽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고 살 수 없으니 동조하는 세력이 많아져야
내가 좀 편해지지 않을까.
세력을 확산시키려면 빈곤에 무너지는 마음을, 가난하지 않은데 가난하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무리들을 없애면 되는 것일까.
그럼 그들을 없애는 무기는 뭐로 써야 하나...갑자기 미팅에서 맘에 들지 않은 남자를
떼어놓으려고 코딱지를 팠다는 친구가 생각난다. 그래 그것도 무기라면 무기겠다.
난 방구를 잘 끼니까 방구를 압축해서 보온병에 넣어가지고 다닐까.

빈곤을 느끼지 않는 가난은 어떻게 가능할지. 늘 그게 의문이고 숙제다.
머리 아프다. 그냥 영화나 빨랑 시작해야지.
그저께 다음 영화 레드마리아의 첫 스텝회의가 있었다.
제작비 때문에 망설이다 주춤주춤 했는데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달려들어 준 친구들이 있어
조금 속도가 나려고 한다.
젠장..가난이 좋기는...역시 언행불일치다.
우자지간 두 달간 인디스토리의 사무실을 쓰기로 했다. 두 달이 지나면 또 방법이 생기겠지.

시작은 정말 반일까. 하하하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08. 6. 22. 15:07




















촬영 세영

땡큐^^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