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경순의 노트2018. 6. 5. 13:25



http://www.indieforum.co.kr/xe/index.php?mid=specialforum


Posted by 빨간경순
상영정보2015. 11. 23. 18:00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5. 11. 23. 17:53
2015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 프로그램 노트

신은실/인디다큐페스티발2015 집행위원

시아를 횡단하며 여성들을 만났던 <레드마리아>, 속편에서는 남한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로 여겨지는 ‘성노동’과 ‘위안부’ 문제를 직시한다. 영화 속에 인터뷰이로 등장하
는 야마시타 영애 . 박유하 교수 등이 여러 각도에서 지적하여 때로 논란을 부르기도 했
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작금의 논의가 지닌 한계. 그것은 바로 모두가 “강제 연행
이 있었는지”를 규준으로 삼고 다툰다는 점이다.
강제 연행이 있었다면 문제지만, 없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시 공창제가 동원
한 일본과 대만 등지의 ‘매춘부’들은? 조선 출신 위안부는 과연 예외였던가? 그들이 강제로
연행되지 않았다 한들 성노예가 아닌가? 그리하여 일본군의 집단 강간과 전쟁 범죄행위가
사라지는가? 영화는 “강제 연행” 여부와 그 증명에만 얽매여 “가해자가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새기고, 그 “침묵의 의미를 생각”하려 한다.
운동에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던 역사의 잔여도 <레드마리아2>는 곡진히 길어
올린다. 이를테면 시로타 스즈코 . 배봉기 씨의 삶, 그들을 잊지 않으려 기록하고 기리는 이
들의 존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인 쟁점들은 ‘내셔널리즘’이란 교차점 위에서 만난다.
또, 2차대전 중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예의 틀과 현재 성노동 문제의 근친
관계를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카메라가 명료하게 보여준다. 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사
회적 낙인은 타당한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비범죄화’되지 못하고 파견 형태 등으
로 변형된 매매춘은 성노동자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몰 뿐이다. 한국전쟁 때 자국민을 위
안부로 강제 동원하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미군을 상대하는 성노동자를 직접 관리하며
외화벌이에 나섰던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하여, 꼭 봐야 할 작품이다.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5. 11. 5. 13:22

제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변성찬


경순 감독은 전작 <레드마리아 Red Maria>의 끝부분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레드마리아2 Red Maria 2>는 본격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이고, 또 이제는 충분히 들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제안하는 영화다. 

영화는 한국 및 일본의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와, 이제 ‘위안부’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하는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두 이야기를 교차편집하고 있다. 이 교차편집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어떤 경계/차별

(한국여성과 일본여성 및 강제로 끌려간 여성과 매춘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이제는 넘어서야 

하지 않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영화적 장치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여성이라는 위안부 희생자의 이미지는, 

누군가를 그 희생자의 범주에서 배제시키고,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과 권리를 

박탈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현재의 성노동자 여성들이 요구하는 자격과 권리에 대한 호소를 

들을 수 없게 하는 장치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닐까? 

<레드마리아2 Red Maria 2>는, 누군가에게는 침묵을 강요하고 또 누군가의 말은 들리지 않게 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순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귀를 열고 온전히 듣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영화다.

Posted by 빨간경순
상영정보2015. 9. 9. 16:33



2015 DMZ국제댜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상영


상영정보

http://www.dmzdocs.com/program/program_view_2015.asp?p_idx=7&menu=2&category=2


시높시스

한국의 성노동자 연희는 일본성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의 야마시타 영애는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가 운동에서 배제됐던 과정을 강의하기 위해 교토로 향한다. 한국의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출판하고 위안부할머니들에게 고소를 당한다. 르뽀작가 가와다 후미코씨는 오키나와에서 위안부생활을 했던 배봉기씨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은 성노동자들과 피해자도 될 수 없었던 매춘부출신의 위안부 문제가 교차되며 영화는 기억에서 사라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기획의도

나는 전작인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많은 성노동자들을 만났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사회에서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그들을  곁에 있는  사람으로 마주하게  시간이었다. 어떤이는 싱글맘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일을 한다 했고,  어떤 이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일이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도 했다.

 

 성노동자에 대해 흔히들 상상하는 인신매매나 피해자 프레임으로는 담아낼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시 나는 카메라에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을 수가 없었다.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지면서 카메라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연락이 끊겼다. 뒤늦게 누구는 단속을 피해 호주로 갔으며, 누구는 안마시술소로 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누구는 성매매 쉼터로 들어갔다가 결국 다시 다른 업소들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성노동자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결심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매춘이  사회에서 무엇이관데 이들이 범죄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료를 찾던 , 매춘에 대한 낙인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많은 분들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직업 매춘부였던 위안부들은 이후 위안부 운동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에는 가난한 부모에 의해 유곽으로 팔려갔다가 위안부로 가게  사람도 있었고, 결혼까지 하고도 취업사기로 끌려간 분들도 있었다. 또한, 가해국 일본에도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있었지만,  모든 분들은 매춘부라는 이름에 가려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불리지 못하였다.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성노동자와 피해자조차   없었던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  아이러니한 두 가지 문제를 직면하면서 나는 매춘혐오가 만들어내는 이중잣대에 놀랐고,  이야기를 계속 쫓아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중잣대의 윤리가 실상 많은 여성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독 본인의 엄마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있었다. 여성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잣대를 벗겨내고 사실을 직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상영시간표

9/18(금) 18:00 메가박스 파주출판단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9/20(일) 15:30 메가박스 백석 (상영 후 아티스트 토크)

9/23(수) 12:30 메가박스 백석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12. 9. 17:23

요즘 사무실이 온통 컴퓨터 자판소리로 뒤덮혀있다.

각자 헤드폰을 끼고 한사람은 번역을 하느라

한사람은 프리뷰를 하느라

그리고 나는 촬영본을 보면서 편집구성을 한다고

손들이 바쁘게 자판위에서 논다.

사이사이 촬영도 나갔다가

서둘러 들어와 우리는 또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판이 눌러지는 만큼 영화의 내용이 풍성해 지면 얼마나 좋을까.


몇달전부터 제작비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고민만 하고

후원회며 제작위원이며 꾸려볼까도 생각만 하고

친구가 알려준 여성재단 지원금도 지원해 볼까 마음만 잠깐 써보다가

결국 버틸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현금서비스와 대출만 늘리고 있다.

영화제작만큼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야 모을 수 있는 돈이기에

예전처럼 남아도는 에너지가 부족한 나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을 하게된다.


그렇게 조금만 더 제작에 집중하자고 마음이 쏠리는데로 가자니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당장 해결해야 할 밥값조차

이제는 더이상 빼먹을 대출이 없다.

마이너스통장 만든다고 설친게 불과 한달도 안된거 같은데

그놈의 마이너스 통장도 이미 받은 대출금에 연봉도 2500만원이 안되는 부류라고

겨우 500만원 밖에 안됐는데 

그동안 쌓인 현금서비스 막고 카드를 막고나니 

순식간에 마이너스 500이 통장에 써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으자니 그 시간만큼 제작에 누수가 생기고

제작에만 몰두하자니 후반작업과 당장 사무실 임대료며 스텝들 인건비며 식비조차 흔들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을까를 고민하다 일단 덜컥 후원금 통장 하나를 만들었다.

당분간 더 집중하자고 지금 고갈된 에너지를 그나마 제작에 집중하자고.

그래서 아주 게으른 방법으로 후원금통장 하나 만들어 놓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보자고.

지난달 일본촬영때 자신의 강연료를 후원금으로 건네주었던 야마시다 영애 선생님의 마음을 쌈지돈으로

통장에 넣었더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아는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 선생님도 후원을 해주셨다.

그렇게 12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음악,색보정,파이널 편집,사운드,번역 등등 후반작업과 남은 촬영 진행비까지 최소한 4천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그 큰 돈이 '감'으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작은'감'을 기대해 본다.

앞으로 두세달 제작에 더 집중을 하고 그렇게 '감'이 되어준 분들을 모시고

중간제작발표회를 준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블러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서 누가 이글을 읽을지 잘모르겠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감'이 쌓이기를 욕심내며...다시 편집기를 켠다.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우리은행 1002-352-635167 예금주 김해진

연락처 redmaria@tistory.com


* 김해진은 레드마리아2 제작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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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스케치2014. 12. 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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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4. 10. 11. 01:10

정원옥,국가폭력에 의한 의문사 사건과 애도의 정치』박사논문 중에서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4, 141148.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민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문사 사건을 다룬 소설영화연극 등은 많지 않다.1)경순2)감독이 만든 <민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문사 사건의 남은 자들에 대한 유일한 영상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들레> 의문사 유가족들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문사위 1기에 참여한 민간조사관들에 대한 기록이다 절에서는 작품에서 진상규명운동이 전개한 애도의 정치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해석한다.  

  데리다는 영화를 애도작업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유령기록이라고 불렀다그에 따르면스크린을 통해 나타나는 환영들은망령처럼 되돌아오도록 호출되는 효과를 갖는다(데리다·스테이글러, 2002: 204).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환영으로 -출연하는 유령과 만나는 일이라고 있다환영들이우리를 보고 관찰하고 감시한다고 우리 스스로가 느끼게 되는 그런비대칭적인 관계로부터 법과 앞에 있는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데리다·스테이글러, 2002: 210). 절대적 권리를 행사하는 유령의 응시에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타율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역설적인 것은 그러한 맹목성이 나의자유의 조건 된다는 점이다나는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을 다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유로울 있기 때문이다.  

  의문사는 환영망령유령3)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믿지 않고서는 진실에 접근할 없는 죽음이다그런데 의문사로 죽은 자만이 아니라진상규명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민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환영으로 출현한다이러한 의미에서 <민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진상규명운동에 대한 애도작업이며환영으로 -출연하는 유가족들과 민간조사관들의 응시에 사로잡히게 한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운동 실패에 대한 유령기록이라고 있다.  

  <민들레> 19981999년까지 의문사특별법과 민주화보상법의 제정을 요구하며 싸웠던 유가협의 투쟁과 농성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경순 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것은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둥켜안고 있는 이게 한국 사회구나이게 지금 전체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가족의 문제구나그러니까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떠맡기는도대체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것일까? 정말 재밌는 거야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게 아니었으면이렇게 부둥켜안지 않았으면 의문사가 이렇게 오지도 않았어명예회복법 되지도 않았어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면에서의 긍정적인 힘이기에 가슴이 너무 아픈 거야자식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사회를 바꾸겠다고 싸웠지 가족을 위해서 싸운 아닌데 도대체 이걸 부모가 떠맡고 있냐는 거지.(경순, 10. 강조는 필자)  

 

위의 인용문을 통해 있듯이경순 감독이 문제 삼는 것은 의문사와 같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 방식이다그녀에 따르면의문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유가족이 아니라의문사당한 자와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죽은 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죽은 자는 가족을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는 과정에서 의문사를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사실상 유가족은 자식이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지지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다정작 의문사를 밝혀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떠맡기는이러한 문제해결 방식이 감독의 시각에서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자전체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가족의 문제 보였던 것이다요컨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해결을 시민사회가 책임지지 않고부모가 떠맡고 있냐 것이 감독이 <민들레> 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물음인 것이다.    

  <민들레> 유가족이 중심이 진상규명운동을 통해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가족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한다문제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가족조차도 이상적이지 않다는 있다.

 

<민들레> 나왔지만 의문사와 명예회복 간의 문제명예회복은 빛이 나는 일인 거지이미 사회적인 명예가 회복된 사람들인 거지만 의문사는 그렇지 않은 거잖아그러면 고민의 정도나 질이 다른 건데 같이 했을 때는 같이 했지만당장 법안이 만들어지는 코앞에 오니까 거기서 이해가 갈라지면서 이기적인 모습들이 나온다든지 그런 것들사실 아버님들도 대의를 떠나서 보면 사고하는 방식들은 굉장히 보수적이고어머니들도 진짜 시어머니 보듯이 그러고 가는 거였고. <민들레> 찍고 마지막 즈음에는  분들을 미화하는 될까봐 굉장히 걱정을 했었어.(경순, 9. 강조는 필자)

 

감독은 민주화운동 유가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 사회에서 접할 있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확인한다지역에 따라배움의 정도에 따라죽은 자식의 직업에 따라부모의 재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농성에 참여할 있는 여건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어떤 유가족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고 다른 유가족들은 무시와 차별을 당하면서도 구석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농성장의 진짜 모습이다싸울 때는 같이 싸웠지만이해관계가 갈라질 때는 자식의 이름이 빛이 나야 하는 부모들일상생활에서는 보수적이기까지 유가족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존경해왔던 유가족의 이상화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작업이 유가족들을미화하는 될까봐 굉장히 걱정을하면서 카메라의 초점을 농성장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바꾸게 된다유가족들이 웃고 울고 볶고 싸우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민주화운동 유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주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다.    


   <민들레> 이렇듯 평범한 사람들인 유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을 들추어낸다국가폭력에 의해 자식을 잃은 부모라는 점을 빼면 유가족들은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역설적인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2030 동안 진상규명운동을 해왔으며과거청산운동의 역사에서사건이라고 있는 의문사특별법과 민주화보상법을 통과시켜냈다는 것이다 많던 운동권 출신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되면서 이상 죽은 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유가족들은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4)꿋꿋하게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며 의문사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호소해왔다유가족들은 죽은 자식들에 대해 자신들이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진 사람들인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민들레> 사회가 책임져주지 않는 의문사를 유가족들이 책임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고 있다.


  <민들레> 유가족의 삶과 투쟁을 통해 의문사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국가기구 안에서 활동하는 민간조사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무치(無恥) 들추어낸다우카이 사토시에 따르면무치는 자신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아니라동시대 타인으로 인한 부끄러움이나 세대를 초월하여 전달받은 부끄러움을 은폐하는 방식이다아브라함과 토록이먹는다라는 환상을 형성함으로써 죽은 대상을 지하납골당에 봉인하였듯이그런 부끄러움은 나의 자아 속에생매장되어 있다(사토시, 2001: 5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문사와 같은 국가폭력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이상 부끄러움의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부끄러움을 은폐하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무치와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민간조사관들의 조사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파견조사관들의 목소리를 들을 있고국가기구 안에서 민간조사관과 파견조사관의 갈등관계가 변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먼저 파견조사관들을 살펴보면그들은 자신이 해야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국가기구로 파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조사에 임하는 태도에서도 파견조사관의 관심은 단지 그것이 자살이냐타살이냐를 규명하는 것에 있다타살이라고 한다면 시대적 배경과 함께 누가 어떤 목적으로 죽였느냐까지 밝혀야 하는데파견조사관들은 조사의 범위가 그렇게 확대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5)게다가 파견조사관들이 보기에 민간조사관들은 나쁘게 말하면 빨갱이좋게 봐주려고 해도 운동권 출신들일 뿐이다그들은 열정만 넘칠 일하는 데는 서투르고 비판하는 데는 공격적이며,6)공정성마저 의심되는 사람들이다.7)


  파견조사관들이 주로 공정성과 중립성전문성 등을 강조하면서 민간조사관들에 대한 대립각을 세운다면민간조사관들은 사명감성실함대의명분 등에서 파견조사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위원회 초기에 팽팽한 긴장관계로 출발했던 파견조사관과 민간조사관의 대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느슨해지면서 평범한 직장동료들의 모습에 가까워지고민간조사관들은 파견조사관과의 갈등보다는 민간조사단 내부의 갈등과 균열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민간조사단의 내부 갈등과 균열의 원인으로는 관료화의 문제,8)민간조사단의 성격을 규정하는 조직 내부에서의 시각의 편차,9)재정문제 등을 꼽을 있다민간조사관들은 이러한 내부의 문제들을 의문사위가 종료될 때가지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대의명분과 도덕성 모두에 흠집을 입게 된다.  


  영화의 엔딩은 의문사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국가기구 활동의 종료를 자축하며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과 또다시 거리로 뛰쳐나온 유가족들이 항의시위를 하는 장면을 대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기념촬영을 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환하고 홀가분한 표정이다누가 파견조사관이고 민간조사관인지 구별할 필요도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반면유가족들은나는 죽어도 진상규명하겠다 울부짖다가 무표정한 전경들에게 사지가 들려 경찰버스로 연행된다의문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국가기구의 활동이 종료되었는데 어느 누구에게서도 부끄러움의 감정은 찾아볼 없는 기념촬영 장면과 국가기구의 활동이 종료되자마자 또다시 경찰에게 연행되면서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대비시킨 것은 부끄러워해야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우리 자신의 무치를 드러내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 배치로 해석될 있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그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그런데 이게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나는 영화를 찍는 내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되묻는 습관이 들렸다. 그러나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다만 가지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투쟁을 해야 사람들은 유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초상권과 명예훼손은 알아도 죽은 자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말뿐인 나라나는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럽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4: 경순강조는 필자)

 

감독은 마지막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레프N. 톨스토이는 물음에 대해 사람이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이라고 답한 있다(톨스토이, 2002: 49). 이웃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사람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조건이라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과 그로 인한 유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인간다움을 잃은 사회부끄러움을 은폐하는 사회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감독의 물음은 단지 이웃사랑에 대한 호소를 우리 사회에 던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통해서 그녀가 진짜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가?라는 것이다(경순, 13). 죽은 자들은민주주의를 위해서 사회를 바꾸겠다고 싸웠는데그녀의 카메라에 포착된 민간조사관들에게서는 의문사와 같은 국가폭력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그들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이 그녀가 민간조사관들의 이야기를 영상화한 작품에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자성을 촉구하는 제목을 붙인 이유인 것이다.

 


1) 이철규 사건을 다룬 정도상의나는 이렇게 죽었다(1989), 이내창 사건을 모티브로 의문사 사건을 다룬 김지용의보이지 않는 나라(1993), 국가보안법과 의문사 문제를 다룬 이인휘의 생의 적들(2004), 장준하 사건의 의혹을 다룬 김용권의몸의 노래(2005),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그린 조정래의인간연습(2006), 의문사가 등장하는 공선옥의내가 가장 예뻤을 (2009) 신경숙의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 인혁당 사건으로 사법살인을 당한 8인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그린 김원일의푸른혼(2011) 등이 의문사 사건을 소재로 했거나 의문사 사건이 등장하는 소설들이다한편유가협의 422 여의도 국회 농성을 그린 경순의 <민들레>(2000) 의문사위 1기에 참여했던 민간조사관들을 포착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김삼석 남매 간첩단 사건을 다룬 황철민의 <프락치>(2004),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다룬 김희철의 <진실의 >(2004),의문사진상규명운동을 이끌었던 전태일의 어머니이소선의 삶을 그린 태준식의 <어머니>(2012) 등은 의문사 사건 혹은 유가족을 소재로 독립영화들이다 외에도 19801990년대 의문사와 실종 사건을 다룬 장성희 희곡의 연극 <달빛 속으로 가다>(2000, 2012), 군의문사 사건을 다룬 주호민의 웹툰 <신과 함께>(2010) 등이 의문사 사건을 소재로 재현물들이라고 있다.  

2) 경순은 1998 영화사빨간눈사람 설립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작품으로는<민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애국자게임>(2001), <쇼킹패밀리>(2006), <레드마리아>(2011), < 다큐 강정>(2011) 등이 있다.  

3) 데리다는 존재론에서 축출된 유령의 가지 형태로 환영(phantom), 망령(revenant-ghost), 유령(spectre) 꼽는다 가지는 만질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시각적 경험에서는 차이가 있다. 환영이 파이네스타이((phainesthai),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현상성을 가리킨다면망령은 시각적 대상을 갖지 못한 좌절박탈된 바로 그것으로부터 결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되돌아오는 어떤 것이다.유령은 현상하면서 동시에 현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영과 다르고 있다는 점에서 망령과 다르다유령은 환영의 방식으로 현상하며망령처럼 되돌아오도록 호출된다유령이란 단순히 비가시적인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일체의 상호성 없이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다요컨대 그것은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권리 자체라고 있다(데리다, 2002: 204211).   

4) 꽃다지의 <노동가요 공식음반 1> 수록된민들레처럼에서 인용하였다.

5) 군법무관 파견조사관으로 조사2과에서 팀장으로 일했던 ○○ 파견조사관과 민간조사관의 조사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파견조사관은 사건이 타살이냐자살이냐 요것만 보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지근데 재야단체 사람들은 타살이라면 요게 이루어진 어떤 뒤의 배경들시대적 정황들,이러면서 범위들을 상당히 넓게 해석을 하는 거죠예를 들어 군에 가서 죽은 사건이다그러면 그것만 팔려고 하는 수사관들 입장이고 근데 재야단체 사람들은 군에 가게 됐고녹화사업이다전두환 대통령도 불러야 되는 아니냐?(<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4: ○○)

6) ○○ 민간조사관들이 의문사위 1기를 통해 공무원의 장점을 배워둔다면 살아가는 도움이 것이라고 충고한다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민간조사관들이 생리에 맞다고요물론 열정은 있는데 일하는 스타일이 틀리고서투르고공격적이고그러니까 사람이 모든 인간관계인데인간관계로 일하는 거거든요안타까운 것은 민간조사관들이 우리를 비판하는 것만이 아니라그게 능사가 아니고공무원들한테서 본받을 뭐더라 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본받아서 그거를 배워갖고정말 앞으로 이분들한테는 상당히 좋은 기회예요앞으로 어딜 가든 이런 데서 체득한 경험을 살릴 수가 있잖아요?(<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4: ○○)

7) 행정자치부 파견공무원으로 행정과에서 근무한 ○○ 민간조사관들의 공정성을 믿을 없다는 입장이다위원회는 사실 국가기관인데 유족단체들이나 분에 관련된 분들이 나와 계신 거예요그게 어떤 정말로공정한아주 공정한공정한 그런 눈을 가질 있느냐민주화운동이 나쁘다는 아니에요저는나쁘다는 아니고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회에 평균적인 시각이 있는데 여기 분들은 내가 봐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기본적인 하나의 시스템 하에서 계속 같이 나왔던 사람들인 거죠(<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4: ○○)

8) 호는 의문사위 내에서 민간조사관들이 무기력한 대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관료화와 관성화의 문제로 꼽는다제가 놀랬던 부분은 내가 혐오해마지 않았던 일들관료화되는 문제들그리고 관성화 되는 부분들 이런 것들이었는데 위원회 체계 속에 있다 보니까 때로는 어떤 발상의 전환도 갖고 때로는 내가 운동했던 사람으로서 그러한 역량들을 정말로 충분히 발휘해낼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구조니까국가기관이니까 내지는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까 이러저러한 사유로 인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판단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런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4: ).

9) 범은 민간조사단의 정치적 노선과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민간조사단이정치 결사체로 가야되는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고요 다음에 이건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실무적인조사 담당하게 준비과정트레이닝 과정으로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결과적으로 드러난 거지만 자기가 살아가는 있어서의 어떤 연동된 공백이 있잖아요직업으로서 문제를 받아 안은 사람도 있었던 거예요그렇게 거예요그런 편차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른바 민간조사단이라고 하는 수칙과 다음에 우리가 마련한 규율이런 부분들이 끊임없이 얘기가 됐지만 단적인 예로 재정문제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가 합의해낼 그게 그대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거든요(<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4: ).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4. 10. 4. 13:02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경순 감독 대담회 "다큐멘터리,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살기 위한 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진영 님의 글입니다 :D







신나는 다큐 모임과 인디스페이스가 함께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하 한다감)이 김태일, 태준식 감독에 이어 세 번째 대담회를 열었다. 9월의 감독은 경순. 모더레이터로 영화평론가 변성찬, <독립의 조건>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 김보람이 패널로 함께했다.

한다감은 오랜 시간 묵묵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온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들을 다시 봄으로써,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비평의 영역을 발굴하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기획이다.

9월 경순 감독전에 상영된 영화는 <민들레>(199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쇼킹패밀리>(2006), <레드 마리아>(2011), 이렇게 4편이다. <레드 마리아>의 상영이 끝난 후 대담회가 시작되었다.



- <민들레>(1999):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진행한 농성을 다뤘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민들레>에 이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내부적 문제점들을 다뤘다.

- <쇼킹패밀리>(2006): 세 여성의 삶과 시선을 통해 한국의 가족주의를 신랄히 비판했다.

- <레드 마리아>(2011): 필리핀과 일본, 한국 세 나라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 대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변성찬 영화평론가, 경순 감독, 김보람 감독




변성찬: 먼저 경순 감독이 이번에 상영된 영화 네 편을 고른 이유와 각 작품을 하며 고민했던 점에 대해 듣고 싶다. 그리고 김보람 감독의 소감도 함께 듣고 싶다. 오늘 상영되었던 <쇼킹패밀리>, <레드 마리아>에 대한 관객의 질문도 받을 예정이다.


경순: 작품을 선정할 때,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꼈던 문제의식과 영화의 내용, 형식에 있어서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초반 두 편의 작품은 공동연출이었고 후반 두 편은 단독작업으로, 골고루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그 전에 소위 말하는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되었다. 책임감으로서의 운동보다 내 삶의 모습들을 보고 싶었다. 첫 번째 영화 <민들레>가 나에게는 정말 의미가 있다. 운동을 한다는 것과 영화를 한다는 것이 내 안에 혼재했던 시기였다. 영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제작에 굉장히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했고, <빨간 눈사람>을 같이 했던 최하동하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시기에 배웠던 것들이 이후 영화를 만들 때 초석이 되었고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공적이면서 사적인 관계에서 감독의 포지션이나 시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내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해 막연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며 많이 정리되었다. 이후 <애국자 게임>부터 이어지는 나의 영화는 내가 궁금한 주제, 질문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나머지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과 차차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질문하고 있는 김보람 감독




김보람: 경순 감독을 남몰래 정말 좋아해왔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 4편의 작품을 연달아 꼼꼼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의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경순 감독의 작품을 보며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순 감독 작품을 보며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은 정말 유쾌한 사람이고, 인터뷰 대상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 대상들이 감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특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카메라가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거리낌 없이 따라붙고, 끝까지 쫓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기 꺼릴 만한 것들도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레 말하는데, 이런 관계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감독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도 <독립의 조건>을 연출한 후 마음고생을 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채 타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경순 감독의 작품들은 이후 작품에 이전 작품에서 했던 고민이 나오고, 이전 작품에서 이후 작품에 대한 힌트가 나오기도 한다. 한 편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필요는 없겠다, 나중의 작품을 위한 기반으로 가져가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경순 감독의 작품에 담겨 있는 고민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드 마리아> 속 여자들은 개개인의 투쟁을 하고 있다. 사실 그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 큰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10명의 주인공이 등장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0명을 만나고 촬영할 때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경순: 내가 가진 질문의 가장 밑바닥은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굴러가는 것일까’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것이 궁금했고, 그것이 출발이었다. 영화를 한 편 만들 때, 집중은 하지만 질문이 다 풀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 영화에 사람도 많이 나오고 이야기도 많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스타일로 찍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 하다 보니 내 영화가 이렇더라. 

나한테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공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 영화를 찍을 때 내가 또 다른 삶을 경험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제작 기간 동안 많이 놀고 그 사람들과 더불어 지낸다. 오늘 오기 전에 <레드 마리아>에서 만났던 이치무라에게 한국에 온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니까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나처럼 다큐멘터리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영화가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고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보여주는 즐거움이 아닌 나 자신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내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찍으면서 알아가려고 했다. 늘 무지(無知)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내 영화를 보면 영화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형식적 측면은 없어도 나의 고민을 풀어가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실험 아닌 실험이 되었고 항상 시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 질문에 대답하는 경순 감독




변성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나타나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김보람 감독이 질문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천부적인 뻔뻔함인 것 같다.(웃음) 한 감독의 스타일에는 자신의 성격과 기질, 체질과 문제의식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한국의 의미 있는 다큐를 보면 개인적 성격이나 작품 속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극단적인 낯가림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전한다. 그래서 부러워는 하되, 꼭 따라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웃음)

<쇼킹패밀리>와 <레드 마리아>는 감독의 기획과 실제 촬영 사이의 타협,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표현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다. <쇼킹패밀리>는 원래 출연하기로 한 인물이 5명이었는데 3명으로, <레드 마리아>는 원래 3개국 12명이었는데 10명이 되었다. 각 영화에 만약 원래 기획한 분들이 다 들어갔다면 지금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포기한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왜 포기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경순: 다른 감독들은 자신이 찍으려는 인물을 미리 확정한다. 그 인물에 대해 조사하고 파악하고 그 인물에 맞는 세팅을 한다. 나는 그게 조금 싫었다. 어떤 한 사람을 통해 이슈화할 수는 있지만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나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해도, 그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것들을 채집한다. 그런 과정에서 깔끔함을 포기했고, 내 영화는 거칠다. 또 나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에는 많은 스텝과 함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카메라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레드 마리아>는 방대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대담을 하고 있는데, 종로에서는 누군가 술을 마시고 있고, 필리핀의 누군가는 자고 있고 이런 식의 동시성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정말 담고 싶었던 사람은 막판에 쓰지 못했는데, 그런 부분은 정말 불가항력인 것 같다. <쇼킹패밀리>는 처음부터 5명으로 밀고 나가다 결국 3명이 되었다. 빠진 두 명 중 한 명은 단골 술집의 아는 언니였다. 이 분이 조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차마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했다.(동성애 관련 이야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얻은 노하우는 설득해서 될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찍은 영상을 내보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획과 다른 현장 속에서 계속 구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변성찬: <쇼킹패밀리>에서 빠진 두 인물은 한 명은 동성애, 다른 한 명은 성노동과 관계된 사람이었다. 결국은 영화에 담지 못했던 이유는 영화를 통한 커밍아웃의 현실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번째 분에 관해 갖고 있는 경순 감독의 문제의식은 <레드 마리아>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레드 마리아> 속에서 빠진 한 분은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던 분이라 영화가 나가면 살해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빠졌다고 들었다. 나머지 한 분은 누구인가.


경순: 우리 제작진 중 한 명을 넣으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찍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엮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완벽한 기획을 하고 간 것이 아니어서 그 모든 이야기들을 묶을 수 있는 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한 과정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편집할 때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잘라냈다. 


변성찬: <레드 마리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리타 할머니의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4번에 나눠서 나왔는데 실제로는 한 번에 찍은 것인가. 그리고 처음에 할머니는 영어가 아닌 팜팡가어를 하는데 어떻게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경순: <레드 마리아>는 원래 인터뷰를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말라야 롤라스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듣고 싶었다. 비춰지는 것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리타 할머니께 작정하고 여쭤보았다. 영어-팜팡가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할머니가 언짢거나 기분 나빴을 수도 있는데, 할머니도 우리를 믿어주시고 실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대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서 리타 할머니가 길잡이 역할을 하게끔 네 번에 나눠 배치했다. 그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 마지막 발제를 하고 있는 변성찬 영화평론가




변성찬: 경순 감독은 운동하면서 가졌던 집단적 대의와 개인의 구체적 삶 사이에 괴리가 있고, 긴장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생기는 갈증을 달리 해결할 방법은 없고 그런 화두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그것이 경순 감독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질문인 것 같다. 경순 감독이 자료에 썼던 질문인 ‘왜 진보 운동은 진보하지 않는가.’ 이 질문은 그녀의 여성주의적 질문과 뗄레야 뗄 수 없다. <민들레>를 다시 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작품이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이야기를 담는 듯했는데, 카메라가 정작 담고 있는 것은 어머니들의 백스테이지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표면적 주제는 의문사 연작인데 그 작품 안에서 가장 특이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그 주제와 카메라가 약간 빗겨나갈 때였다. 대의 아래 놓쳐지는 것들의 대표적인 하나로 여성수사관이 목표와 성과 아래서 사퇴 압력을 받았다가 버티고 이런 현실을 잡아내는 순간이 있다. 이는 아까 말했던 집단과 개인의 문제와도 연관되며 다음 작품인 <쇼킹패밀리>와 <레드 마리아>로 일관되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레드 마리아>와 <쇼킹패밀리>에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레드 마리아>는 리타 할머니의 표면의 말 이면의 속마음을 붙잡아내는데 성공했고, 그것이 이 영화에 굉장히 큰 의미와 동력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쇼킹패밀리>는 처음에 나왔던 아줌마들의 막춤이 후반부에 합을 맞춘 자기 퍼포먼스와 시각적 대조를 이루는데 그것이 대상화된다는 느낌이 있다. 이야기를 충분히 기다리고 듣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면 <쇼킹패밀리>에 유쾌함은 있는데, 통렬함은 없는 것 같다. 경순 감독의 영화적 화두는 적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 못지않게 늘 우리 자신의 성찰이 항상 섞여 있고 공존해 왔는데, <쇼킹패밀리>의 경우 그것이 느슨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순 감독의 문제의식에 근본적으로 동의를 하면서, 이후 감독의 영화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우려도 된다. 출발할 때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는데 적당히 봉합하는 것이 영화적 수사법으로 상투화될 위험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감독의 의견을 듣고 싶다.


경순: 내가 어떤 사람을 찍었는가에 따라 타협이냐 봉합이냐가 결정된다. 나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졌다. <쇼킹패밀리>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였다. 주변의 스텝들이 같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이 정도해서 마무리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봉합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쇼킹패밀리>가 착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분노하는 사람들은 많더라.(웃음) 우리가 보는 것 이상으로 출연했던 당사자들은 굉장히 재고 따지고, 자신 있게 흔쾌히 이야기했지만 뒤돌아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마 그런 점이 나를 그런 방향으로 가게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영화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는데 나 개인적인 불만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게끔, 자신의 이야기를 활용해 굉장히 쉬운 텍스트로 다가갔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원래 생각했던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있었고, 영화가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래서 <레드 마리아>를 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개운치 않아서 <레드 마리아2>를 하고 있다.(웃음)


변성찬: 나도 그런 느낌이다. 모성 신화라는 것이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성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문제다. 이 영화는 모성 신화를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불안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착한 영화가 되었고, 그 빈틈을 자기 퍼포먼스로 메꾸고 있는, 그곳에 멈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퍼포먼스 장면들은 굉장한 재능인데 그냥 걱정이 되어서 한 소리다.(하하)



변성찬: 현재 <레드 마리아2>를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소개와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김보람 감독도 함께한 소감을 말해주면 좋겠다.


김보람: 두 분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감사한다.


경순: 요즘 <레드 마리아2>를 작업하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아직 우리가 이 정도인가’ 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우울하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며 나는 늘 즐기는 편인데, <레드 마리아2>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다른 영화와 분위기가 다르다. 미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불편해서 조용히 작업 중이다.(웃음) <레드 마리아2>가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나 역시도 궁금하다.


변성찬: <레드 마리아2>는 이전까지 경순 감독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를 해 본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10월에는 홍형숙 감독이다. <두밀리-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경계도시>, <경계도시2>가 상영된다. 한다감은 격주 월요일에 2편씩 총 4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두 번째 상영 후 대담회가 열린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6000원이다. 대담회 참석자와 주제는 매월 첫 번째 상영 전, 인디스페이스 홈페이지와 신나는 다큐 모임(http://cafe.naver.com/shindamo)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출처_ http://indiespace.kr/2036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9. 18. 00:48

영화를 만들면서 한번도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을 돌아보거나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신다모의 주최로 감독전이라는걸 하게 됐고

원고를 써야했다.

상영할 영화 4편을 감독이 직접 정했고

영화를 선정하면서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구나 

새삼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칠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4편의 영화를 선정한 이유를 써보았다.


작품 선정 이유


1. 민들레/1999년

 첫 장편이면서 최하동하 감독과 공동연출작이었던 <민들레>는 나에게 첫작품임과 동시에 영화제작에 무지했던 나에게 일종의 영화학교와 같은 역할도 해주었던 작품이다. 사실 그 당시 <민들레>와 함께 <애국자 게임>을 동시에 찍고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많은 것을 이  두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졌다. 아마도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생존의 문제부터 영화적인 고민까지 최악의 조건과 최선의 선택을 수시로 결정해야만 했던 당시의 열악했던 조건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열악하니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야 했던 시기.다시 그 상황이 재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당시의 경험들이 이후 영화를 만드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 같다. 영화적인 스타일도 인물에 대한 고민도 그리고 편집에서의 중요한 지점들을 그당시의 고민에서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예를들어  <민들레> <애국자게임>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졌지만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양한 버전으로 편집본이 나오기도 했었다. <민들레>가 최종본으로 나오기 전에 나레이션을 넣어보기도 하고 소제목을 넣어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편집과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촬영의 컨셉과 주제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됐다. 특히 <민들레>는 유가협(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은자식들의 명예와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이야기다 보니 대상과의 관계나 거리 유지가 영화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많이 깨닫게 해준 영화였던 것 같다.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가 전경과 싸우고 노숙투쟁을 일상처럼 하고 죽은 자식들의 이름이 나올때마다 눈물과 분노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들에게 카메라는 자칫 이성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대상을 이해하면서도 내 시선을 고수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그때 온몸으로 체험을 했던 것 같다. 죽은 자식들의 무게와 사회적 위치가 다 똑같지는 않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는 분들과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님들간의 이견도 있었다. 그리고 다 다른 가정사 속에 투쟁을 하시니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건 마치 내가족의 속내를 들여다 보듯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은 바로 그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영화를 우리가 왜 만들었는가에서 답이 나왔던 것 같다. 인권에 대한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유가협의 부모님들. 함께 싸우다 죽은 동지들을 우리는 잊고 있었는데 여전히 죽은 자식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그분들을 뵜을때 느꼈던 깊은 부채감과 존경스러움. 영화는 그 시작의 느낌을 살리는데서 타협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소재로서의 영화를 찾는 건 내 영화에서 사라졌고 늘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영화를 찍는 모티브가 됐다.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번째 영화면서 혼자서 연출을 시작한 작품이기도하다. 공동연출일때는 늘 의논하던 상대가 있었는데 이 작품은 스텝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영화를 찍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또 다른 좌충우돌 경험이 많았었다. <민들레>를 찍을 당시 담지 못했던 죽은자들의 동지를 찍고 싶었었는데 부모님들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까지 담아내기 힘들었다. 결국 때를 기다렸는데 때마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민주화운동 당시 죽거나 의문사했던  이들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민간조사관으로 참여를 했다. 나는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진정 만들고 싶어했던 삶이나 세상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위원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조사과정과 함께 그들의 생각을 담고 싶었었다. 하지만 위원회에 그들만 있는건 아니다.대통령직속 기관이었고 수사관과 헌병대 검사 변호사 그리고 많은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부담없이 다니려면 그곳의 일원처럼 행동해야 했고 늘 신속해야 했다. 촬영에 대한 기술도 부족했지만 영화적인 미학을 고민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찍는 동안 생각했던 건 일단 위원회의 모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기록을 충실히 하자였고 또하나는 긴장감을 위해 들고 찍자는 거였다. 다행히 나는 많은 조사과정에 참여 할 수 있었고 수사관들의 협조도 잘 얻어냈지만 3시간 넘는 조사과정이나 인터뷰 등을 무식하게 들고 찍은 많은 장면들은 지금도 봐주기 힘들만큼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무모함 덕에 기동성 있게 현장을 포착해 낸 장면들은 결국 영화를 편집할 때 소중한 소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관찰과 주관이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 그건 누가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찍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상과 사물이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 이었다. 나는 세번째 영화를 찍고서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 사실을 체득하게 된것 같다.

 

3. 쇼킹패밀리/2006년

 <쇼킹패밀리>는 처음으로 스텝들과 작업을 한 작품이면서 처음으로 일부기는 하지만 제작지원을 받아 하게된 작품이다. 제작비를 위해 스텝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라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쇼킹패밀리>는 가족주의를 유쾌하게 비판하고 싶다는 출발이었지만 역시 가족문제는 사적이었고 예민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찍고 담아낼 것인지가 관건 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듯이 ,다른 가족사와 비슷하지만 다른, 각각의 복잡한 이야기를 영화속에 어떻게 녹여 낼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영화속에서도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일단 제작진을 포함해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해야 겠다고 생각 했고 영화가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촬영은 일관된 컨셉보다는 다양한 시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보는 조연출에게 카메라를 가르쳐서 찍게 하고 딸 수림이가 찍은 셀카나 스텝들이 찍은 셀카 등 촬영본에 원칙을 두지 않았다. 거칠지만 생생한 현장이 중요했고 다른 시선들이 많을 수록 좋았다. 주인공도 처음엔 세명이 아니었다. 사양한 사례로 생각한 인물은 5명정도 됐는데 결국 사적인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 했던 두 명이 막판에 빠지면서 결국 3명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됐다. 영화에서 빠진 두명의 주인공은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한사람은 동성애와 관련이 있었고 한사람은 매춘을 하면서 집안을 먹여 살렸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 두사람이 영화에 나왔다면 쇼킹패밀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현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항력의 결과는 매번 영화를 찍을때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이면서도 묘미라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영화를 찍으면서 밀어부쳐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이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4. 레드마리아/2011년 

 <레드마리아>는 여성의 몸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기존의 노동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여성에 대한 문제는 잘사는 나라에서도 가난한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여성들의 경로와 함께 국가나 가족이라는 틀로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한 눈에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그 차별의 시작이 바로  여성의 몸 특히 배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일본 필리핀 세나라의 여성들을 찍기로 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나열해 보고 싶었다. 그 나열된 다양한 경험과 직종의 여성들이 결국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노동에 대한 차별이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출연진을 생각했기에 그들을 공통적으로 엮어줄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들의 일상과 배,그리고 얼굴을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촬영 포인트는 각기 다른 세나라의 환경적인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공기를 담아내는 문제였던 것 같다. 일본의 이치무라는 노숙자지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풀샷을 많이 사용했고, 필리핀의 그레이스는 가난하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대화 장면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주인공이 10명이다보니 촬영에 집중된 시간이 주인공에 따라 개별적인 차이가 생겼고 역시 불가항력의 현실적 문제들이 생겨  촬영 소스가 균질하지 못했다. 특히 평택의 성노동자들을 찍을때는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져 카메라로 현장을 많이 담아낼 수가 없었다. 내내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아쉬움이 다음 영화를 고민하게 하는 출발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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