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08. 6. 30. 16:32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촬영을 지지난주에 했다.

그간 자료를 모으면서 찍었던 분량이 벌써 디브이 테잎 70개가 넘지만
이제 워밍업에 종지부를 찍고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 첫 촬영의 현장은 ‘성노동자의 날 3주년 기념식'

2004년 성매매반대특별법이 만들어진 후 사회에 첫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나에게 생소했고 다소 어색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내내 그 목소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했고 결국 ‘레드마리아’를
구체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몇 번의 기획안을 손보며 스스로 정리되지 않는 고리를 찾아 헤메면서
나는 스스로 피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지점이 성노동자에 대한 고민이 마무리 되지 않은 지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차에 결국 첫 촬영도 그들의 모습을 담는 것에서 시작이 됐으니...

난 그 첫 촬영을 위해 HDV카메라를 빌려 내려갔다.
애인이나 다름없다고 애지중지 하는 박정숙 감독의 촬영감독에게 그 애인과
절대 섹스는 안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빌려와 촬영을 했는데 이게
예사롭지 않은 놈인 것이다.
어느새 나도 그놈에게 빠져 거의 섹스직전까지 갈 뻔 했지만 그놈에게 마음 준
다른 놈이 있으니 건전한 연애생활을 위해 일단 마음을 정리했다는 야그.

우자지간 그렇게 첫 촬영을 시작한 이후 촬영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촬영할 일정이
점점 빼곡히 달력을 채워나가는데 문제는 카메라다.
일단 미디어센터에 그 카메라가 있어서 빌려 쓰고 있는데 카메라 대여비에
지방출장비까지 주머니에 들어오기 무섭게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디 털만한 은행이 없나 눈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안토니아 반데라스처럼 권총을 휘드르는 재주가 있거나 빼어난 미모에 언변이라도
갖췄으면 모를까 은행터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지풀에 이건 포기.

그런데 은행을 털지 않고서 카메라를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촬영부터 다음 달 가게 될 필리핀 촬영분까지 일단
초반 제작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흐흐 얼마나 좋은지 잠이 안 온다.
서울영상위원회에서 독립영화제작지원작에 선정이 됐다.
선정해준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린다. 물론 떨어졌으면 바가지로 욕을 했겠지만.ㅎㅎ
그리고 슬며시 50만원을 영화 만드는데 쓰라고 보내준 지선에게도 감사한다.
그녀의 처지를 보면 받을 수 없는 돈이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민들레'이후 영화를 새로 만들때 마다 늘 첫 촬영이 따로 없었다.
찍고 있던 내용들이 겹쳐져서 이 영화와 저 영화가 맞물려
이미 찍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첫 촬영은 느낌이 새롭다. 아니 좋았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오랜 고민 속에 어렵게 한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황홀한 것인지를 새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느낌 그대로 일단 쭉...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