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08. 6. 23. 16:25

요즘 내생활의 즐거움은 천원짜리 옷을 파는 가게에 오며가며 들르는 일이다.

이런 옷은 특히 시간과의 진득한 싸움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하나를 제대로 건지면 그 기쁨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게
단점을 능히 감수할만한 장점이다.
그래서 난 종종 이곳에 들러 요즘 잘 입고 다니는 남방부터 수림에게 공수하는 나시까지
구입의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리고 편안히 두 발 피고 잘 수 있는 나의 공간.
미례 집 거실에서 한 달 반을 게기다가 드디어 작은방을 쟁취해 세입자로 당분간 살기로 했는데
점점 장기화되고 보니 미안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은방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1평 남짓한 공간을 책상하나 놓고 얼마나 좋아했든지.
그곳에 비하면 이공간은 잠도 잘 수 있으니 어디 감히 비할 수 있으리.

가끔 친구중 하나가 나에게 늘 이런 말을 한다.
‘언니는 가난을 잘 모르는 거 같아, 그치? 그런 경험 해본 적 없지?’
하하하 도대체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종종 해대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나도 너만큼 어쩌구저쩌구 이바구를 떠는 일도 민망한 일이다.
게다가 나에겐 단 한번도 가난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없으니 말이다.
아니면 이 단순함에 그새 잊어버렸는지도. 하지만 가난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은 또렷하다.

그 기억들 대부분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 보다는 대부분 따뜻한 기억들이다.
늘 군침만 흘리던 동네 리어커의 홍합을 훔쳐보다가 어느날 옆집 아줌마가 사준 한사발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던 일, 동화책도 변변히 없었지만 늘 찾아가면 신간을 비롯해서
온갖 만화책이 줄줄이 있었던 그 허름한 만화책방, 염색약이 없던 시절 과산화수소수를 사다가
머리에 쳐발라 노랑머리를 하고 다녔던 청량리 588의 그 언니,
모두가 그 시절을 가난했던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돈이 철철 넘치는 21세기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났으니 가난에 대한 정의는 새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난이 주던 그 행복한 기억은 사라져 가고 그 자리는 빈곤으로 꽉꽉 메꿔졌다.
있어도 있어도 늘 부족하고 누구도 넉넉하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다.
전셋집에 살아도 50평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사람들은 늘 부족하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절대 같아질 수가 없다. 공동체와 차별없음을 머리로는 깊이 알지만
그들은 세상을 이길 만큼 강하지 않기에 머리와 행동이 같아지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우린 가능하면 언행일치라는 말은 안쓰는게 좋다.
사전에서도 그 말은 지워버리는 게 좋겠다.

우자지간 난 가난이 좋다. 물론 피곤하고 힘든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필요이상의 부유함이 그리 부럽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고 살 수 없으니 동조하는 세력이 많아져야
내가 좀 편해지지 않을까.
세력을 확산시키려면 빈곤에 무너지는 마음을, 가난하지 않은데 가난하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무리들을 없애면 되는 것일까.
그럼 그들을 없애는 무기는 뭐로 써야 하나...갑자기 미팅에서 맘에 들지 않은 남자를
떼어놓으려고 코딱지를 팠다는 친구가 생각난다. 그래 그것도 무기라면 무기겠다.
난 방구를 잘 끼니까 방구를 압축해서 보온병에 넣어가지고 다닐까.

빈곤을 느끼지 않는 가난은 어떻게 가능할지. 늘 그게 의문이고 숙제다.
머리 아프다. 그냥 영화나 빨랑 시작해야지.
그저께 다음 영화 레드마리아의 첫 스텝회의가 있었다.
제작비 때문에 망설이다 주춤주춤 했는데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달려들어 준 친구들이 있어
조금 속도가 나려고 한다.
젠장..가난이 좋기는...역시 언행불일치다.
우자지간 두 달간 인디스토리의 사무실을 쓰기로 했다. 두 달이 지나면 또 방법이 생기겠지.

시작은 정말 반일까. 하하하


Posted by 나, 경순이야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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