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08. 9. 10. 16:31

수빅은 미군기지가 있던 도시로 이미 미군이 국민들의 기지 반대를 위한 국민투표로 1992년 철수를 했지만 이후 필리핀정부와 맺은 방문협정이라는 걸 구실로 한달에 한번 배가 이곳에 정착을 한다. 물론 그 명목이 아니어도 이미 여기저기 비밀기지가 도처에 있다는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우자지간 그래서 수빅에도 수많은 기지촌이 있고 수빅과 가까운 올롱가포라는 도시는 성매매로 돈을 벌기위해 가난한 여성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그 여성들을 위해 성매매여성들이 스스로 만든 조직이 있는데 바로 북클로드다.

북클로드의 대표도 성매매출신 여성이다. 처음만난 외국인에게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자신도 성매매여성이었다고 당당히 말하는데 놀랐다. 보수적인 카톨릭국가인 필리핀에서 더구나 이들은 성노동자라는 말을 싫어할 정도로 반성매매를 기치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늘 반성매매 운동의 필요성을 동의하면서도 성매매의 경력을 숨겨야만 하는 한국의 여성들을 보면서 늘 뭔가 놓치는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우자지간 이들은 반성매매를 목표로 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조직에 가입한 여성들중 반이상은 현재 성매매일을 하고 있고 그들의 인권을 감시하고 지원하는 일도 역시 북클로드가 하고 있어서 국내에 있는 성매매반대 단체와는 좀 결이 다르다는 생각도 한편으론 들었다.

북클로드에는 특히 거리의 아이들..특히 미성년자출신의 성매매여성들이 많았는데 이들중 십여명이 북클로드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한다. 그중 4명은 아이가 있는데 대부분이 십대에 아이를 낳아 아이나 엄마나 다 어리지만 그들의 모성애는 정말 각별하다. 게다가 함께 사는 거리의 친구들이 모두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서로 돌봐주고 놀아주고 한다. 한국이라면 벌써 아이를 입양기관에 보냈거나 했을텐데 그들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 아이를 아빠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키우면서 다시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간다.

북클로드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를 여는데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 검정고시와 같은 학력인정시험을 볼 수 있도록 북클로드가 올롱가포시와 협의를 했다고한다. 그러나 선생님과 운영은 모두 북클로드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만 한다. 결국 북클로드에서 자원활동할 선생님을 못구해 마닐라에서 매주 선생님이 온다. 마닐라에서 북클로드는 4시간 거리이다. 처음 학교를 운영할 생각을 했던건 바로 거리의 아이들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무조건 성매매를 그만두라고 하기엔 생계가 막막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수입도 변변치 못한 가내수공업(사탕 만들기,걸레만들기 등등)정도이고 그렇게 수입이 안되다보면 결국 다시 거리로 나가야하는 생리를 알기 때문에 모두들 중단한 학업을 다시 시작해서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갖고 싶어서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거나 고등학교를 다니다 만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물론 그 이유는 다들 돈이 없어서다. 돈은 없고 먹고 살기는 해야겠고 집안 식구들의 입은 모두 굶주리고 있을때 늘 여성들의 몸은 상품이 된다. 하긴 그렇지 않아도 여성의 몸은 상품이지. 우자지간 그래서인지 이 여성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참 대단하다. 이제 글자를 쓰기 시작하는 여성들부터 덧셈나눗셈을 배우고 구구단을 외우고 있는 이 여성들이 언제쯤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또 대학을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보다 더 멋진 건 삶에 대한 열정이다.

무엇인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선택해서 노력하는 기분은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따뜻하고 소중하게 만든다. 옆에 있다보면 말은 통하지 않지만 느껴진다. 느낄 수 있다는거 참 어메이징한 감동이다. 그들의 존재감으로 인해 나의 존재감마저 새롭게 느끼게 되니 말이다.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이 경순이라는 발음을 어려워 하는데 나는 다른 이름을 만들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하는데 못부르고 있다는걸 느끼고는 순간적으로 레드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레드를 따갈로그로 뽈락이라 말하더니 그들은 재밌어하면서 뽈락 뽈락 레드 레드 불러댄다. 그래 서울에서 빨간이라 부르는 것들도 있는데 뽈락이면 어떻고 레드면 어떠냐.ㅎㅎ

그들과 아쉽게 며칠을 보내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마닐라로 돌아와야 했는데 이곳 촬영이 끝나면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그들의 수업시간과 그들의 아이와 그들의 친밀한 생활을 좀더 가까이서 보고 느끼기 위해. 필리핀으로 떠나기전 민성노련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매매여성들이 필요한 약이 무엇일까 자문을 구한적이 있었는데 질정과 질 부위에 바를 수 있는 연고를 강추해 주었었다. 우린 그약을 성매매여성들을 위해 준비했고 그들에게 전달했다. 물론 그 외 필요한 상비약도 함께. 북클로드의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 하던지 역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를 안다.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어서 우리도 기뻤다.

8월16일에 필리핀 촬영에 합류한 경은이 12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며칠전 돌아갔다. 국내에서 필요한 촬영을 위해 남아있는 영란도 함께 했다면 더욱 좋았겠다 싶다. 일은 고단하고 빡세게 돌아가긴 했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았기에 아쉽다. 경은이 어렵게 찍은 많은 사진들도 이후 영화에 멋지게 살아나리라 믿는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