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6. 3. 10. 02:39

몇주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있는 순옥언니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소공인을 알릴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조언을 좀 해달라는 거였다.

소공인이라니....내머리속에 없는 단어여서 뭔가 싶었다.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는 검색을 하기 시작했겠지.

소공인에 대한 것보다는 사실 언니가 4년간 국회에서 뭔일을 했는지 궁금해서 였다.

10년전 창신동에서 수다공방을 할때 퍠션쇼에 상영할 영상을 만들어줄때 보고

몇년전 이소선어머님이 돌아가신후 장례식장에서 잠시 보고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거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그런가보다 했고 사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사실 속으로는 국회에 왜 들어갔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나의 무심함만큼이나 그녀의 활동을 알만한 기사도 별로 없었다.

그녀의 트윗은 조용했고 그녀의 블러그는 소박하다못해 촌스러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언니를 만났다.

막상 간만에 언니를 만나니 왜케 반가운지 우리는 한동안 정신없이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니의 4년간의 의원생활이야기로 넘어갔고 소공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헉...웬일이니...모든게 너무 놀라웠다.

소공인은 10인 이하의 소규모제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창신동의 봉제공장부터 문래동의 철공소 그리고 가방,신발 등 손기술로 수제작업을 하는 사람들.

한때는 수출역군으로 한국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3D업종으로 몰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곳.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의 80%를 차지함에도 단군이래 그들을 위한 법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곳.

사람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공돌이 공순이 미싱사 기술자의 연장선으로만 생각되는 곳.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그곳을 위해 순옥언니는 4년간을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돌이 공순이가 아닌 소공인이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선사했고

그 이름으로 소공인을 위한 특별법까지 만들어냈다.

그뿐이 아니었다.2015년에 소공인 특별법 시행령이 떨어지면서 전국의 688개의 소공인 집적지를 분류하고

집적지마다 소공인특화센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소공인들의 전문화된 손기술을 장인정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들을

국회의원이 된 첫해부터 매해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데 난 왜 이걸 여태 몰랐던거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왜 알려지지 않았던거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즈음 언니가 그랬다.

4년동안 숨가쁘게 달려오며 일단 법은 만들었지만 정작 할일은 이제부터야.

그런데 사람들이 아직 소공인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고 인식도 여전한거 같아.

나는 제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일자리도 해결되고 경제도 산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소공인을 좀 알렸으면 하는거고 뭔가 영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나는 간만에 가장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 국회가 입법기관이었지 하는 새삼스런 생각도 했다.

그저 정치판이 짜증나고 민주당이고 국민의당이고 국회와 관련된 기사는 대충 패스했던 이유도

그들에게서 단한번도 정책다운 정책에 대한 희망을 본적이 없어서였던거 같았다.

그런데 소공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신선했고

심지어 그녀의 국회 생활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약간의 미안함과 함께 그녀의 뚝심과 비전에 감동까지 먹었다.

젠장...조언이 아니라 내가 직접 영상을 만들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언니에게 거꾸로 제안을 했다.

내가 보기에 언니가 뭔일을 했는지를 알리는게 더 필요한거 같아.

언니는 웃으며 수긍했고 나는 바로 영상제작에 돌입했다.

그리고 2주만에 뚝딱 8분짜리 작은 영상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소공인을 만났고

순옥언니에게 말로만 듣던 소공인들의 현실도 보다 구체적으로 보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전순옥이 어떤의미인지를 새삼 알게되었다.

물론 그말은 거꾸로 전순옥에게 소공인이 어떤 의미인가를 알게되는 과정이기도 했고.

58년간 양복재단사로 살아온 한 장인이 나에게 그런말을 했다.

자기는 처음에 전순옥을 믿지 않았다고.

전태일의 동생이라고 해서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시다를 했다고 해서

영국에서 노동학박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소공인을 위한 입바른소리를 한다고해서 믿음이 가는건 아니라고.

근데 전순옥을 만나면 만날 수록 이 사람이 장난이 아닌거야.

이바닥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더 이바닥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바닥에서 고민하는 사람들보다 더 문제들을 잘알고

심지어 새누리당을 지지할 만큼 보수적인 사람들도 움직이게 만드는데

어떻게 전순옥을 안믿을 수가 있나.

전태일은 모든 노동자들의 정신이고

이소선은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잖아.

그래서 내가 전순옥의원한테 이름을 붙여줬어.

모든 소공인들의 친구라고.


우자지간 흐믓했다.

그리고 언니가 기특했다.

그래 내가 보고 싶었던 국회의원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해내야 하는 곳인지도 새삼.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정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정말 정말 여성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소수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이

무엇보다도 예술가로 살아도 그리고 수입이 적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가 현실이 되는 정책들이 

그리고 제발 대기업중심의 천만영화보다 작은영화 천만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들이 마구마구 나오기를....

젠장 이 나라는 만들어야 할 정책들이 너무 많구나.

우자지간 이번 총선에 그런 국회의원들이 많이 발굴되기를 간만에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혹시 소공인과 전순옥이 궁금하다면 영상도 한번 봐주시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OaKWMDZxAbQ


영상물을 전해주러 갔다가 보좌관에게 전순옥의원 블러그 사진 좀 멋지게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보좌관이 그런다. 의원님이 그런 사진 따로 찍는걸 너무 싫어한다고.

그래도 나 있을때 한번 넌즈시 말해보라고 했다.내가 훈수를 보태주겠다고...

보좌관이 슬쩍 말을 디민다.의원님 이번에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소공인들과 사진한번 찍으시는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원님 버럭 하신다.

있는 사진으로 쓰면되지 뭘 그런곳에 시간을 써.

그래 사람들에게 안알려지는게 이유가 있지.암...하면서 의원회관을 나왔다.ㅎ

'제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순옥과 소공인  (0) 2016.03.10
성노동자들에 대한 공연 <똑바로 나를 보라2>  (2) 2015.07.17
프로덕션에 대한 생각  (0) 2015.05.30
구멍  (0) 2015.04.16
감이 떨어졌다  (0) 2015.01.15
레드마리아2 후원금 통장  (0) 2014.12.09
Posted by 나, 경순이야 빨간경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