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4. 9. 18. 00:48

영화를 만들면서 한번도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을 돌아보거나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신다모의 주최로 감독전이라는걸 하게 됐고

원고를 써야했다.

상영할 영화 4편을 감독이 직접 정했고

영화를 선정하면서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구나 

새삼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칠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4편의 영화를 선정한 이유를 써보았다.


작품 선정 이유


1. 민들레/1999년

 첫 장편이면서 최하동하 감독과 공동연출작이었던 <민들레>는 나에게 첫작품임과 동시에 영화제작에 무지했던 나에게 일종의 영화학교와 같은 역할도 해주었던 작품이다. 사실 그 당시 <민들레>와 함께 <애국자 게임>을 동시에 찍고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많은 것을 이  두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졌다. 아마도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생존의 문제부터 영화적인 고민까지 최악의 조건과 최선의 선택을 수시로 결정해야만 했던 당시의 열악했던 조건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열악하니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야 했던 시기.다시 그 상황이 재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당시의 경험들이 이후 영화를 만드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 같다. 영화적인 스타일도 인물에 대한 고민도 그리고 편집에서의 중요한 지점들을 그당시의 고민에서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예를들어  <민들레> <애국자게임>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졌지만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양한 버전으로 편집본이 나오기도 했었다. <민들레>가 최종본으로 나오기 전에 나레이션을 넣어보기도 하고 소제목을 넣어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편집과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촬영의 컨셉과 주제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됐다. 특히 <민들레>는 유가협(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은자식들의 명예와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이야기다 보니 대상과의 관계나 거리 유지가 영화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많이 깨닫게 해준 영화였던 것 같다.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가 전경과 싸우고 노숙투쟁을 일상처럼 하고 죽은 자식들의 이름이 나올때마다 눈물과 분노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들에게 카메라는 자칫 이성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대상을 이해하면서도 내 시선을 고수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그때 온몸으로 체험을 했던 것 같다. 죽은 자식들의 무게와 사회적 위치가 다 똑같지는 않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는 분들과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님들간의 이견도 있었다. 그리고 다 다른 가정사 속에 투쟁을 하시니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건 마치 내가족의 속내를 들여다 보듯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은 바로 그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영화를 우리가 왜 만들었는가에서 답이 나왔던 것 같다. 인권에 대한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유가협의 부모님들. 함께 싸우다 죽은 동지들을 우리는 잊고 있었는데 여전히 죽은 자식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그분들을 뵜을때 느꼈던 깊은 부채감과 존경스러움. 영화는 그 시작의 느낌을 살리는데서 타협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소재로서의 영화를 찾는 건 내 영화에서 사라졌고 늘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영화를 찍는 모티브가 됐다.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번째 영화면서 혼자서 연출을 시작한 작품이기도하다. 공동연출일때는 늘 의논하던 상대가 있었는데 이 작품은 스텝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영화를 찍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또 다른 좌충우돌 경험이 많았었다. <민들레>를 찍을 당시 담지 못했던 죽은자들의 동지를 찍고 싶었었는데 부모님들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까지 담아내기 힘들었다. 결국 때를 기다렸는데 때마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민주화운동 당시 죽거나 의문사했던  이들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민간조사관으로 참여를 했다. 나는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진정 만들고 싶어했던 삶이나 세상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위원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조사과정과 함께 그들의 생각을 담고 싶었었다. 하지만 위원회에 그들만 있는건 아니다.대통령직속 기관이었고 수사관과 헌병대 검사 변호사 그리고 많은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부담없이 다니려면 그곳의 일원처럼 행동해야 했고 늘 신속해야 했다. 촬영에 대한 기술도 부족했지만 영화적인 미학을 고민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찍는 동안 생각했던 건 일단 위원회의 모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기록을 충실히 하자였고 또하나는 긴장감을 위해 들고 찍자는 거였다. 다행히 나는 많은 조사과정에 참여 할 수 있었고 수사관들의 협조도 잘 얻어냈지만 3시간 넘는 조사과정이나 인터뷰 등을 무식하게 들고 찍은 많은 장면들은 지금도 봐주기 힘들만큼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무모함 덕에 기동성 있게 현장을 포착해 낸 장면들은 결국 영화를 편집할 때 소중한 소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관찰과 주관이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 그건 누가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찍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상과 사물이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 이었다. 나는 세번째 영화를 찍고서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 사실을 체득하게 된것 같다.

 

3. 쇼킹패밀리/2006년

 <쇼킹패밀리>는 처음으로 스텝들과 작업을 한 작품이면서 처음으로 일부기는 하지만 제작지원을 받아 하게된 작품이다. 제작비를 위해 스텝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라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쇼킹패밀리>는 가족주의를 유쾌하게 비판하고 싶다는 출발이었지만 역시 가족문제는 사적이었고 예민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찍고 담아낼 것인지가 관건 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듯이 ,다른 가족사와 비슷하지만 다른, 각각의 복잡한 이야기를 영화속에 어떻게 녹여 낼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영화속에서도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일단 제작진을 포함해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해야 겠다고 생각 했고 영화가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촬영은 일관된 컨셉보다는 다양한 시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보는 조연출에게 카메라를 가르쳐서 찍게 하고 딸 수림이가 찍은 셀카나 스텝들이 찍은 셀카 등 촬영본에 원칙을 두지 않았다. 거칠지만 생생한 현장이 중요했고 다른 시선들이 많을 수록 좋았다. 주인공도 처음엔 세명이 아니었다. 사양한 사례로 생각한 인물은 5명정도 됐는데 결국 사적인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 했던 두 명이 막판에 빠지면서 결국 3명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됐다. 영화에서 빠진 두명의 주인공은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한사람은 동성애와 관련이 있었고 한사람은 매춘을 하면서 집안을 먹여 살렸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 두사람이 영화에 나왔다면 쇼킹패밀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현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항력의 결과는 매번 영화를 찍을때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이면서도 묘미라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영화를 찍으면서 밀어부쳐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이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4. 레드마리아/2011년 

 <레드마리아>는 여성의 몸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기존의 노동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여성에 대한 문제는 잘사는 나라에서도 가난한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여성들의 경로와 함께 국가나 가족이라는 틀로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한 눈에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그 차별의 시작이 바로  여성의 몸 특히 배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일본 필리핀 세나라의 여성들을 찍기로 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나열해 보고 싶었다. 그 나열된 다양한 경험과 직종의 여성들이 결국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노동에 대한 차별이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출연진을 생각했기에 그들을 공통적으로 엮어줄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들의 일상과 배,그리고 얼굴을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촬영 포인트는 각기 다른 세나라의 환경적인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공기를 담아내는 문제였던 것 같다. 일본의 이치무라는 노숙자지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풀샷을 많이 사용했고, 필리핀의 그레이스는 가난하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대화 장면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주인공이 10명이다보니 촬영에 집중된 시간이 주인공에 따라 개별적인 차이가 생겼고 역시 불가항력의 현실적 문제들이 생겨  촬영 소스가 균질하지 못했다. 특히 평택의 성노동자들을 찍을때는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져 카메라로 현장을 많이 담아낼 수가 없었다. 내내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아쉬움이 다음 영화를 고민하게 하는 출발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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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