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3. 8. 28. 14:21

< 이화리더십개발원 젠더포럼 토론문 ➁ > 2013. 8. 27.

레드마리아, 성노동자, 여성주의자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

레드마리아를 영화관에서 보고, 이번 젠더포럼을 위해 다시 봤다. 처음 영화관을 찾았을 때는 레드마리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응원의 맘으로 그래서 좀은 흥분한 상태에서 감상했고, 이번에는 여유롭게, 좀은 멍한 상태에서 봤다. 다양한 배꼽모양을 드러낸 배들이 역시나 인상적이다. 여성의 몸은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여성들의 경험도 다양하다. 나에게 레드마리아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 “과연 여성들에게 일이란?”

일본의 여성들도, 필리핀의 여성들도, 그리고 한국의 여성들도 ‘일한다.’ 일은 임금을 받든 아니든 사람들이 먹고, 낳고, 키우고, 사랑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혹은 느끼며 즐기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한다. 뭣보다 여성주의자들이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공적 영역에서 교환가치를 갖는 상품 생산을 노동으로 정의하는 주류 개념을 뒤집어, 보이지 않으나(엄밀하게 말하면, 사랑과 희생 헌신이라는 명분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서) ‘우리’의 기본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한 여성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돌봄 노동이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케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드러내어 노동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드마리아는 공과 사,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 생산노동과 재생산 노동, 경쟁사회에서의 과잉노동/남성중심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노동과 이를 거부하는 저항노동,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 이른바 도덕적인 노동과 부도덕한 노동.. 이 모든 노동은 연결돼 있으며, 여성들의 일이며, 여성들은 어디서든 언제든지 노동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그 맥락에 있다. 젠더포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 성매매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레드마리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맥락에서 성매매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합법화냐 혹은 도덕적이냐 와 같은 규범적인 색은 없다. 그냥 여성들이 하는 일이다. 이 지점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많은 사람들은 성매매를 이야기할 때 매우 교훈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성판매 여성들을 지시하는 여러 언표들이 있다. 더러움, 오염, 불결함,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일이라기보다는 해서는 안 되는 부도덕한 혹은 불법적인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내가 <막달레나 집>에서 자원활동을 할 때, 현장출신 활동가님이 시도 때도 없이 “성매매는 합법화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세금도 내고 덜 착취당해한다”고. 혼란스러웠다. 현장출신 활동가님이 말하니 참으로 깊은 뜻이 있으리라 싶은데, 이 말을 내가 일하는 여성단체의 선배들에게 고스란히 말하니, 다들 성매매는 “근절”돼야한다고 “주장”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네트워크 활동가님들도 성매매는 근절돼야한다는 분명한 입장으로 일한다. 마치 합법화와 금지주의 입장만 팽팽하게 긴장감을 돋우는 것처럼 보이는 판에 그나마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막달레나의 집> 연구활동가들은 성매매를 합법화/근절이라는 정책의 차원에서 논하기보다는 성판매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성매매를 논했다. 성판매 여성들이 말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 거기에서 출발해야한다는 문제제기는 좀 더 현장성을 어떤 당위와 이념이 아닌, 여성들의 경험(입장)에서 봐야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2000년과 2002년도에 성판매여성들의 비인간적 실태가 드러난 군산화재사건은 전국을 들썩였고, 2003년도에 기지촌 여성들의 반인권적 실태가 미국 팍스방송을 타면서 세계적으로 한국이 인신매매, 반인권국가로 겨냥됐다. 그러고 나서 2004년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됐다.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싸고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입장들이 불거져 나왔다. 성판매여성들의 노조인 민성노련이 결성돼서 출범했고, 성판매여성을 성노동자로 호명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성명서를 냈다. 그동안 성매매근절을 주장했던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연구자도 등장했다. 성매매근절운동을 한 여성주의자들은 서구여성주의자들이 식민지 여성들을 타자화하듯이 성판매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성판매여성과 여성주의자들이 마치 대립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언론방송을 통해 연출되면서 성매매특별법은 애물단지가 됐고,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도’ 외면하는 자기 이념으로 뭉친 꼴페미 취급을 받았다.

성매매 이슈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한 사회의 여러 모순(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이 다 복합적으로 얽힌 현장이므로 한 가닥의 이야기로만 풀 수 없는 이슈이다. 그리고 노동으로만, 혹은 폭력이나 범죄행위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성매매는 폭력적 성격이 다분히 있다. 성매매근절운동가들이 제시해왔듯이, 많은 성판매 여성들은 좁은 선택지에서 착취와 폭력을 당하며 비인간적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을 매개로한 폭력이라고만 할 수 없다. 성매매는 이를 에워싼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에서 이윤이 창출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 때 성매매 거래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4.1%로서 농림어업의 것과 맞먹을 정도라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특히 감정과 성적 서비스의 상품화가 확장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성매매는 그 노동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전통적 노동의 개념에서 볼 때, 성매매는 전형적인 노동형태가 아니므로, 노동의 의미를 재정의할 필요성을 자극한다. 뭣보다 인간의 몸 자체가 상품화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강하기에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논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 거부 반응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캐슬린 베리가 말하듯이 성매매를 폭력으로만 규정하여 설명할 수만은 없다. 그 현장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관계성이 있다.

성매매가 여러 성격이 얽힌 복합적인 현장이라면, 그 설명 또한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성매매는 폭력적이면서도 성적이며, 또 노동이다. 그런데 성매매에 관해 우리가 좀 더 섬세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뭣보다 섹슈얼리티에 묻어있는 도덕성을, 성에 관한 신화를 벗겨내는 일이 필요하다. 섹슈얼리티는 이미 규범적이다. 도덕적인 성과 부도덕한 성, 좋은 성과 나쁜 성으로 구획돼있다. 이 틀에서 보면, 성매매는 윤리적으로 나쁜 성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틀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선행된 잣대로 판단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성매매가 없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군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그동안 살면서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받는 듯, 다소 당황해하는 학생들 중에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성매매는 인간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시공간적으로 초월한 본능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성매매 역시 이를 에워싼 권력관계를 해체하면서 다양한 성적 욕망을 상상해보는 일은 의미 있다. 말하자면, 돈으로 거래되는 욕망이 아닌, 규범적으로 구획된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관계 안에서 욕망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 말이다. 성매매도 권력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른바 성적 본능이라는 것도 그 권력관계 안에서 발휘한다. 누군가 통제하고픈 욕망은 함께 간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를 만드는 그 권력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적이다.

또 하나 짚을 점은 성판매여성을 성노동자로 호명한다고 해서 성매매를 합법화하는데 한 표를 던진다든가 성매매의 지속성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하고도 환원적인 이러한 논리 전개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주의자들은 성매매를 노동의 문제로 내놓고 공개적으로 더 깊은 논의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여성주의자들의 논의를 왜곡되게 전유하거나 ‘합법이냐 금지냐’ 하는 이원화된 틀로 그 논의를 환원하는 사람들에게 먹잇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어떤 이슈를 규제한다고 해서 그 이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이, 법은 최소한의 조치이다. 성매매를 법이나 제도의 차원에서 정의하는 일과 다르게, 우리의 성적 욕망과 권력에 관하여 많은 수다를 떨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의 이야기가 레드마리아에서부터 꽤 많이 간 듯한 느낌이다. 털털하면서 수다스러운 경순 감독님의 영화 영상 못지않은 발제이야기를 젠더포럼에서 들으면서 레드마리아를 감상하려 한다. 그 때 좀 더 섬세한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하며. 자신의 배꼽(경험, 이야기)을 좀은 수줍게 또는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보여준,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와 나눈 레드마리아 여성들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레드마리아, 멋지다!

Posted by 나, 경순이야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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