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경순의 노트2013. 5. 21. 18:24

나는 어제가 성인의 날이라는 걸 몰랐다.

그리고 하필  수림이가 올해 해당이 안됐다면 계속 모르고 지나갔을 일이다.

어제도 내내 여느때처럼 바뻤다.

아침부터 제작지원 서류등록 하고 곧바로 예약되어있던 병원에 가서 아픈어깨 물리치료 받고 스포츠재활치료 받고

저녁에 일어학원 갔다가 돌아와서 동네친구랑 느즈막히 술한잔을 했다.

그니까 바로 그자리 그 술자리에서부터 사단이 난것이다.


수림이 전화를 걸어서 엄마 뭐해? 하길래 술먹어 했다.

그녀는 다시 언제들어가? 하길래 30분은 더 있을거 같아 했다.

그럼 집에 들어가면 미안한데 나 친구랑 뭐 좀 해야하는데 오만원만

통장으로 입금 좀 해주면 안될까? 라고 해서 30분 후에 들어갈꺼기 때문에 확답을 줄 수 없어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년이 버럭 전화를 끊는게 아닌가.

그래서 대충 먹던 술계속 계속 먹다가 남은 안주랑 남은 소주를 집에 가져와

구가의 서를 다운받아 보고 있는데 수림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입에서 씩씩거리며 나오는 입김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화났다는걸 알아달라는듯이 휘리릭 들어가서는 문을 쾅 닫아버린다.

영문도 모르는 나는 돈 필요하다더니 전화는 끊어버리고 왜케 일찍 들어왔는데? 물었다.

근데 말이없다. 요즘 적반하장인 사람들을 많이 대해서인지 나도 조금 화가날려고 한다.

하지만 꾹꾹 참고 부드럽게 물었다.뭔일인데 그래...친구랑 싸웠니?

허걱..말이 떨어지자마자 닭똥같은 눈물을 춘향이처럼 삼킨다.

그래서 계속 뭔일이냐고 묻기시작하니

엄마는 대체 나한테 관심이 있는거야? 평생에 한번 있는 성년식인데 아무도 관심도 없고...엉엉

그런게 있었니? 언젠데라고 말하려니 어제일이 불현듯 생각난다.

교회사람들이 성년어쩌구하면서 장미꽃을 여러개주었다고 자랑질했던 말이.


순간 뭐 이런 지랄맞은 날이있어라고 입에서 튀어나오려는걸 가까스로 다시 입에구겨넣고는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다부리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런 나를 뒤로하고 이 지지배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 대성 통곡을 하는 것이다.

정말 환장하겠네.아니 나이가 21살이 됐으면 이미 어른인 것이지

이 무슨 어린이날 수준의 땡깡이냐고.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들키면 안된다. 

결국 잠자리에 든 수림에게 다가가 얼굴 곳곳에 뽀뽀를 해대며

내가 잘못했고 내일 니가 원하는거 있음 엄마가 선물로 사줄게.

그니까 우리 이쁜 수림이 잘 자렴.

아이구 닭살....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제 무슨일이 있었냐는듯이 그녀는 일어나서 빵묵고 우유묵고 컴퓨터를 하고 있겠지.

그래서 모른척 슬금슬금 나도 커피한잔 하려는데 수림이 그런다.

엄마..나 헬스 끊어주라. 미경이모 다니는데 나두 다닐까 하고.

어...엉 그래...근데 얼만데? 15만원이래...어..엉 알았어.....근데 카드 3개월로 해라.

썅...어제 그냥 오만원 보내줄걸 하는 마음이 굴뚝.

대체 이놈의 성년의 날은 어린이날과 뭐가 다르단 말인지. 

개뿔 성년은....속으로 투덜거리다가 에구 이번달까지 마이너스 800만원이 넘네 했더니만

그 말을 귀신같이 듣고는 그런다.

엄마 있잖아 내친구네는 최근 빚이 10억이 넘는데.

이건 뭐니. 그니까 고작 800만원가지고 죽는 소리 하지 말란 말? 


우자지간 상황은 역전되서 그녀는 룰루랄라 나가고

나는 웬지 속은 기분에 가슴이 부글부글.

에구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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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