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2. 12. 27. 15:22

이번달 초에 여성국제연대행동네트워크에서 레드마리아 상영이 있었다.

그 모임에 주도적인 참여자 중 하나인 쥬드가 영화가 참 좋았다고 하길래

리뷰로 보답하라고 했더니만 글을 보내왔다.

리뷰에 대한 피드백을 해달라고 하기에 그랬다.

나는 내영화를 보고 쓴 어떤종류의 글이든 비평이든 다시 비평하지 않는다가 원칙이라고.^^

 

어디 블러그에 올려진 글도 아니기에 하두 고마워서

내 블러그에 올리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영화 시작 , 붉은 흘림체로 씌어진 제목, 레드 마리아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일반적으로 마리아는 항상 결혼식장에 순수하오라고 광고하며 들어가야 하는 신부들의 하얀 드레스와 같이 백색의 뽀얀 이미지다. 정상적인 성교도 없이 아이를 잉태했으니, 오죽이나 하얗고 순수 하실까. 앞에 피처럼 흘러내리는 글씨체로 레드를 붙여 놓았으니, 감독의 익살스러움에 웃음이 난다. 크리스테바의(Julia Kristeva) 책에 자주 등장하는 비체(abstract), 주체를 비체로 구성하기 위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고름, , 토사물, 배변 등이다. 감독은 피의 색을 통해, 백색인 마리아를 비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진 않았더라도, 신화적 순수함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렸음은 분명하다.

레드 마리아는 한국, 일본, 필리핀에서 살고 있는 적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98 안에 숨차게 보여준다. 그러나 들쭉날쭉 끼워 맞춰진 그녀들의 삶은 놀랍게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한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화면에 담는다. 이들은 가정에서 어머니, 부인, 며느리의 역할 외에 사회에서 정규직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다. 가부장적인 냄새가 물씬 배어있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이들은 누군가가제대로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 노동자의 부당한 현실은 일본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예고 없이 해고당한 사토의 투쟁과 일본사회 내에서 이루 말할 없는 부당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재일 조선인 순자, 사회복지사 직업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화면 그녀의 노동이 매우 고달프게 조명되고 있진 않지만, 그녀의 월급이 자막으로 제공될 , 우리는 급작스럽게 그녀가 하는 노동의 고단함을 체험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사회에서 그래도 여성의 노동으로 인정해 주는 부류를 보여준 , 영화는 굳건한 가부장이 종교 또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여성에게 이중 잣대를 드리우고 있는 노동자 삶을 보여준다. 카톨릭의 막대한 영향력이 곳곳에 미치고 있는 필리핀에서 마리아는 여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회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주점에 나가 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죄책감은 고단한 그녀들의 육체적 고통 위에 남성중심적인 종교가선사하는 다른 정신적 노동이다. 이들은 그들 사회에서 모든 이들에게 존경 받는 마리아가 되기는 틀린 것이다. 1970년대 한국의 외화벌이를 위해 군사 독재자 박정희가 적극적으로 나서 설립한 홍등가가 당시 100군데가 넘었다. 이들은 외화벌이의역군으로 칭해지며, 때론 미군으로부터현모양처들을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 되고, 일본인들의 유흥을 돋구기 위한 노리갯감이 되었다. 사회 필요악이라는 명분으로 전체 GDP 1~2% 차지하는 성산업에 여성들을 대거 유입시키더니, 이제는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들을 사회 구석에서조차 몰아내고 있다. 한국의 젊은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런 맥락에서 필리핀 여성들이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영화는 이러한 사회에서 조차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노동, 가정 내에서의 노동을 비춘다. 소위 배운 한국 여성들이 기피하는 농촌, 곳엔 동남아시아 부인들이 있다. 하이힐을 신고 비료를 나르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도 농촌 일이 익숙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있다. 이상 한국여성들이 하지 않아 비워진 자리를 그녀들의 노동이 채워주고 있다. 무임금으로그녀의 노동은 그녀의 남편이 농사를 짓게 하고, 한국인들이 농산품을 소비하게 하는데, 무임금 보조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사회가 정해놓은 노동이라는 개념을 주체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노숙자 이치무라를 보여준다. 그녀는 일본사회가 그녀에게여성의로서 요구하고 있는 노동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요구하고 있는 노동도 모두 거부하며, 여성의 몸이 생산하는 노동 생리를 위한 노동만 참여한다. 그것은 바로 생리대 만들기이다. 그녀의 이러한 행위는 사회에서여성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에게 위협적이다. 이러한 위협은 일하는 여성들의 모임에서 발언한 여성들의 속에서 읽을 있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 느끼는 그녀의 절망감이 무노동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느낀 참가자들은, 그녀의 행동을 용감한 행위로 칭하며 남편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희생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영화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여성에게 내어 주긴 했지만, 온전히 주지 않은노동자의 자리 비정규직 투쟁으로, 사회가 남성을 위해 허가한 성산업을 사회 뒷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의 비가시적노동으로, 가정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의 노동을 무임금 노동으로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사회가 부당하게 여성에게 지우고 있는 가시적, 비가지석 노동을 모두 거부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이렇듯, 여성에게 사회가 부가하고 있는 다층의 노동 개념을 현장에서, 그녀들의 목소리와 행위, 투쟁을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사회 여성의 역할에안주하며살고 계시는 그리고 나라의 여성지위가 세계 108 것에 분노 없이, 그저 비둘기처럼 구구 거리며 사회에 순응해 살고 계시는 많은 여성들에게 힘들고 불편한 영화 것이다. ? 고민해야 하니까? 그래, 감독의 말처럼, 영환 친절하지는 않다. 그러나 말은 해야겠다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Posted by 나, 경순이야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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