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경순의 노트2012. 11. 16. 02:54

연말시즌이 벌써 시작됐나보다.

명절때나 얼굴 비추는 나처럼

연말에도 명절처럼 연락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오늘 그렇게 안부를 묻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가자마자 나와 같이 탈반에 들어가고

나보다 부자라는 이유로 늘 내 궁한 곳을 채워주고

내가 더 적극적이라는 이유로 늘 나보다 한발 뒤에서 따라오고

내가 없는 자리에 늘 나를 대신해서 빈자리를 채워 주고

빈자리를 채워주고도 가난을 모른다는 이유로 꾸지람이나 들으면서도

늘 병치레로 병원을 내집처럼 다니는 나를 위해

이것저것 엄마처럼 챙겨주었던 친구.


그친구와 나는 학교를 나와서도 한동안 같은 단체에서 일까지 했지만

결국 결혼을 하면서 각자의 길로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었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부자집 사모님이 되었지만

내가 늘 가난한 삶을 사는것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있었던 친구.

나도 결혼을 하고 몇년이 안되 결국 빈손으로 수림이만 달랑 데리고 집을 나왔을때

친구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방값을 마련하라고 수백만원을 투척해주었고

내가 영화를 만들때마다 후원금을 챙겨주고

병원을 가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기꺼이 자기약국에서 약을 챙겨주었던 친구.


하지만 부자집도 사연이 많다.

안락한 만큼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돈많은 시댁앞에 늘 쥐죽은 듯이 지내며 맘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우린 그걸 서로 묻지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선택한 것이니 각자 자신의 그릇만큼 감수하며 사는거니까.

근데 몇년전부터 그친구의 집이 난리가 났다.

드라마에서나 볼만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됐고

시엄마가 당신 손안에 주물럭 거리지 못하는 아들을 상대로 사채를 동원해 씨를 말리기 시작했다.


돈앞에서는 가족도 없고

부모자식도 없고

며느리며 손주는 더더욱 아랑곳 없다는 냉혈의 세계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친구는 꿋꿋이 견디고 있었다.

동창들과 만나도 이웃집 이야기처럼 하하하 거리며 자기의 이야기를 했고

그녀가 힘들다는 말도 하하하 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부자로 산덕에 손에 물한번 묻혀보지 않던 그녀는 여기저기 일을 구하러 다녔지만

나에게는 돈이 궁하다는 내색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친구.


몇번을 주머니에서 꼼지락 거리며 몇만원이라도 아니 몇십만원이라도 쥐어주고 싶었는데

걱정의 내색을 조금이라도 비출라치면

그녀가 감당해야 할 돈은 내가 몇년을 일해도 고작 이자도 되지 않은 돈이라며

무시하는척 웃어넘기기도 했던 친구.

그 친구가 오늘 전화를 했다.

숨쉴 겨를도 없이 마침표 찍는 거는 어디다 두고 왔는지 쉴새없이 다다다다...

너 살아있는거지? 연락이 안되서 선배들도 걱정하고 난리였잖아 이년아.

내가 너찾는다고 수림이 일하는 데도 연락하고...아이구 내가 못산다 못살아...

여전한 목소리로 씩씩하게 그리고 아주 큰소리로....


전화를 끊고 한참을 웃었다.

아니 이건 원래 내 대산데 어쩌다 저 지지배의 대사가 된거지.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동창회는 못갈거 같다고 말했지만

갑자기 친구가 보고싶었다.

우리가 어쩌면 피했거나 하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들이

구지 말이 필요하지도 않았구나 생각을 하면서.


연말연시에 누군가를 돕기위해 고민을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 있을때 그나마 조금이라도 손과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런 친구들이 내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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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 경순이야 빨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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