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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와 기륭전자 노조 김소연씨
“기업들 ‘소모품’ 취급 여전… 제2, 제3의 ‘기륭전자’ 속출”




최근 회사와 ‘정규직화’에 합의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의 김소연 분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가산동 컨테이너 농성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길이 안 보인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법이 보장하지 않는 권리”라는 반응도 으레 뒤따랐다. 그렇게 거리에서 한 해, 두 해…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기륭전자 파견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지난달 1일 회사는 마지막까지 농성장을 지킨 파견노동자 10명을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했다. 거리농성 1895일 만이었다.

서울에 함박눈이 내린 지난 17일 가산동 기륭전자 구사옥 앞. 녹색 컨테이너 상자에 꾸려진 농성장에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40)이 눈송이를 털며 들어섰다.

“이맘때면 ‘또 여기서 한 해를 넘기는구나’ 했는데 올해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네요.” 그의 말에 시원섭섭함이 묻어났다.

지난 15일 회사는 조합원 10명의 5년치 임금과 고용유예기간의 임금 등을 ‘노사화해기금’으로 노조에 전달했다. 농성장에 남아 합의 이행을 기다려 온 조합원들은 이에 따라 20일 컨테이너를 철거하고 구사옥 앞을 떠난다.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컨테이너는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미술인 모임’에 기증해 전시관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컨테이너에서, 또 그 전엔 임시 천막에서 태풍, 폭설, 폭염 다 겪어냈죠. 94일 단식한 곳도 이곳이고…. 삭발, 포클레인 투쟁, 고공농성, 삼보일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네요. 막상 떠나려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

5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사태는 2005년 회사가 파견직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불거졌다. 최저임금 수준에 상여금도 없이 일하던 이들이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로 해고통보를 받고 ‘소모품’처럼 잘려나갔다. 그 해 7월 노조 설립 후 해고는 더욱 심해졌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도 일터를 돌려주지는 못했다. 사측의 정규직 전환 의무가 없기 때문에 당국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과태료 제재뿐이었다.

김 분회장은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비인격적 대우와 모멸감, 자존심 때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불법은 회사가 저질렀는데 희생은 파견노동자들이 떠맡아야 하는 잘못된 현실이 사태를 장기화시킨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작은 승리’ 이후에도 팍팍한 비정규직의 현실은 이들을 마냥 기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실 하루도 마음이 편하다는 느낌을 가진 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이 겪은 5년간의 고된 일상이 또 다른 곳에서 되풀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노사합의 불과 보름 뒤,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을 이끌어낸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에 돌입했다. 한 달 뒤에는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평공장 정문 아치에 올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울산도 가고 부평도 가고 조합원들과 주말에도 안 쉬고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했어요. 기륭 노동자들도 우리끼리였으면 중도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많은 곳에서 보여준 연대를 원동력으로 삼아 버텼거든요. ‘낙관과 믿음으로 연대하면 결국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긴 했지만, 해법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최근 발표된 ‘국가고용전략 2020’에는 파견허용 업종을 조정해 파견노동자를 늘리는 정책이 포함됐다. 지난 9월 입법예고된 직업안정법 전면개정안(고용서비스활성화법안)은 민간 인력중개산업을 키워 간접고용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 분회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변화하는데도 정부는 이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방향으로 비정규직 정책이 진행되면 비정규직들은 평생 노동 기본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법이 문제라면 법을 고쳐서 상시적 업무에는 정규직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그쳤던 눈발이 다시 거세졌다. “눈, 비는 제발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고공농성하는 GM대우 동지들이 지붕도 없이 눈 맞으면 정말 힘들거든요.” 한참 걱정하던 그는 비정규직 투쟁 회의 참석을 위해 또 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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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