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의 제작일지를 날려서 의지를 상실한 채로, 의욕도 없이 다시 제작일지를 쓴다. 아우 XX

일본 추가 촬영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다들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이지 작업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촬영할 때가 몇 배는 좋다. 그리고 이번 추가 촬영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별 변동이 없는 한 마지막 영상촬영이 될 것이고 추가촬영이 그러하듯 거의 추억을 되짚는(?) 여행(!)이기 때문이렷다!

조그만 선물도 준비하고 안부 인사차 전화도 하고 일정 조율을 했다. 일본어 번역 서포터즈 상히가 도와줘서 별 무리없이 스케줄을 짜고 마침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본 현지 스텝 혜진이 이번에도 우릴 도와주겠다고 했다. 제작위원 중 한 분인 사이토 아야코 교수님이 며칠 간 지낼 숙소를 마련해 주셨다. 마침 다른 곳에 가 있던 영란이도 일본에 올 일이 있다고 하니 거의 완벽한 일정이 아닌가!

1년 전에 4명이서 8인분 짐을 들고 김 세박스를 질질 끌며 신주쿠 역사 바닥을 휘저었던 때와 달리 공항까지 아야코상이 마중을 나와주셨다. 편히 게스트 하우스까지 왔는데, 이런. 게스트 하우스가 너무나 좋다. '이런 호사스러울 때가...'

첫째 날, 조순자 선생님이 계시는 시즈오카로 향했다. 아, 이날은 다시금 '신주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신주쿠는 참으로 사람도 많고 출구도 많고 넓다. (경은의 '제작스케치' 참조) 어쨌든 불안 불안 3분 남겨두고 시즈오카 가는 버스를 탔다. 아, 근데 비까지 내린다. 멈출 것 같지도 않다. 시즈오카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가 계속 내렸다. 약속장소에 선생님이 차로 마중 나와 주셨다. 나는 이번이 시즈오카에 처음 가는 것이라서 그런지 일본분들이 겨울연가 촬영지 춘천 가는 것 마냥 영화(!)에 나오는 시즈오카에 가는 기분으로 선생님을 만났다. 한국에서 뵙고 두번 째 뵙는 것이다. 정말 다행히도 촬영할 때에 맞춰 비가 멈췄다. 촬영은 금방 끝나고 버스예매 시간도 금방 다가왔다. 반나절이 짧다. 영화에 나오는 후지산을 짧게 감상하고 선생님 집을 나섰다. 좋다라는 말이 이처럼 식상할 수도 없겠지만 두 번 뵙는 것에도 불구하고 조순자 선생님은 참 좋다.

둘째 날, 요요기 공원에 이치무라상을 만나러 갔다. 이날 영란이도 만났다. 텐트무라 가는 길 벤치에 앉아 있던 여인(아저씨일지도 모르는) 사람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다. 텐트무라에 살고 있는 켄보상도 에비사와상도 그 텐트 그대로이다. 그 앞에 새로 입주한 하얀 텐트를 제외하면 요요기공원은 1년 전 그대로 꼭 같은 모습이다. 이치무라상이 우리를 보고 '또 왔냐'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켄보상은 1년 전에 들려줬던 이미자의 부산항에와 일본 엔카를 다시 나에게 들려준다. 이치무라상에게 작은 선물을 줬는데 이치무라상도 우리에게 더 많은 선물을 건냈다. 떡을 구워먹고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눴다. 이치무라상이 다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나서야 했다. 아쉽다. 그래도 뭐. 이치무라상의 책처럼 (책 '저 여기에 있어요' 참조)역시 1년 후에도 요요기공원은 그대로일 테니까. 

셋째 날,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에 갔다. 그간 아팠던 단테가 많이 건강해졌다는 소식이 무엇보다 반갑다. 무라야마상이 우리를 근처 맛있는 중국집으로 안내했다. 오랜만에 사쿠라이상의 매직쇼도 봤다. 난 친히 볼펜 매직쇼 하나를 전수받는 영광을 누렸다. 촬영은 금방 끝나고 마리아 어머니와 남편, 단테와 모니카, 그리고 혜진, 영란, 경은, 경순 다 같이 온천에 갔다. 영화 주인공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넷째 날, 그간 파나소닉을 상대로 복직 투쟁을 해왔던 사토상이 정규직으로 복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일본에 가기 전에 먼저 들었다. 이런 반가운 소식이 또 있다니! 사토상의 얼굴도 목소리도 1년 전과는 다르다. 마침 이날 사토상의 복직을 축하하는 축하 모임이 도쿄에 있어서 후쿠시마에서 왔다. 아는 사람이 생기는 건 나에겐 새삼스럽게도 참 신기한 일 중에 하나인데 축하 모임 자리에 아는 일본인들이 있어서 또 새삼 깜짝 놀랐다. '아, 국제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생기는 구나'싶었다. 어쨌든 이날은 축하 모임 자체보다 2차 자리가 인상 깊었는데 다시금 사토상의 얼굴도 목소리도, 그리고 그의 웃음도 참 멋져 보였다. 영화에서 '힘있는 여자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사토상이 떠올라서 지금에 와서 그렇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레드마리아' 참조).

아, 그리고 다섯, 여섯 째날. 난 사실 촬영한 4일보다 휴가날이었던 이틀간이 더 힘들었다. 노는 게 더 힘들 줄이야! 어쨌든 난생 처음 유카타 입어 보고 난생 처음 함박눈 맞으며 노천온천탕에서 달밤 체조를 해보고, 난생 처음 (돈도 별로 없으면서) 하루 종일 쇼핑한답시고 일본 시내를 걸어다녀 본 것은 재밌었다. 일주일 참 짧더라.

끝! 


p.s 늘 그렇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자기 복인가 보다. 난 복이 많은가? 그런데 옥에 티마냥 이번에 나쁜 사람을 지하철에서 만났다. 마치 원더우먼마냥 우린 그 나쁜 사람들을(착한 말투) 혼내줬다. 경은이 앞장섰다. ㅋㅋ 그것만 빼면 참으로 완벽한 일본추가촬영이었음.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