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13. 8. 28. 15:21

어제 이대 리더십개발원 주최로 여는 젠더포럼에서 레드마리아를 보고 

여성의 노동에 대한 많은 부분 중 성노동에 대한 이슈를 특화시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내가 메인 발제를 하고 두명의 토론자들(조중헌,김엘리)과 함께 이야기를 해보는 자리였다.

포럼이나 토론에 익속하지는 않지만 어제의 자리가 기억에 남는건

주제가 성노동이기는 했으나 참여한 분들의 토론문(토론문은 블러그 리뷰 코너에 올려놓았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노동만 떼어서 이야기할 수 없는 맥락이 있는 것을 다들 공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늘 레드마리아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거나 혹자의 리뷰를 보아도

정작 레드마리아가 이야기하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빠진듯 하여 영화를 총체적으로 보는 느낌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어제의 자리가 조금은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야 비로서 레드마리아가 보여주고자 하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편견을 조금 덜어내고 이야기되는구나 싶었다.

영화를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묻어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수많은 과정... 그것이 역사고 사건이고 관계고 윤리고 가족이고 노동인 모든 것들이 해명되지 않고서 

어떻게 가부장사회에서 만들어진 현재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틀로만 말 할 수 있겠는가.

문득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하는 과정도 결국은 레드마리아2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연장이 아닌가 싶어

매번 곰곰히 되씹게 된다.


오늘 성노동자 연희와 그의 동무를 만난다.

간만에 밥도 먹고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자리기는 하지만

그녀와 다시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얼만큼의 너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지.

그 자리는 누가 만들어 주었으며 그 자리가 편하고 좋은지.

그리고 사실 그런 이야기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수많은 할머니들과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니 유령과의 만남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살아오는 동안 당신들의 공간은 어느만큼 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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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관련자료/위안부2012. 11. 30. 03:26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8. 9. 20. 16:33


윗사진 - 우리가 묵었던집 리타 할머니.말라야롤라스의 대표이기도 한 이 할머니는 마을에서
             그나마 영어가 되는 할머니다. 통역을 대동하지 않은 관계로 할머니와 대화를 할때는
             서로 인상을 써가며 바디랭귀지가 주를 이룬다.하지만 서로 못해서 좋은건 문법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사진 - 마을의 할머니들은 걸어갈때 늘 어깨동무를 하곤 한다. 내가 옆에 있을때는 내게도
                어깨동무를 하시던 할머니들. 그분들이 걸어가실 길이 걸어온 길보다 짧겠지.
                나도 생각해보면 걸어갈 길이 걸어온 길보다 길지 않겠구나 생각을 했다.



 

지구상 어디를가나 할머니들이 있다. 어머니라는 이름도 그렇지만 할머니인 이들은 여자와는 다른 종자가 되어 살아간다. 최근에 읽고 있는 태백산맥에 봐도 어머니는 여자가 아닌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많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종종 영화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역사책이 놓치고 가거나 숨기고 싶어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할머니들의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온통 한이 서려있고 그 한은 눈물이 되어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영화를 만들면서 관객과의 대화가 싫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던거 같다. 이야기가 확장되지 못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이야기속에 갇혀버리는 매너리즘이 싫었던 순간들처럼.

말라야 룰라스의 할머니들도 남들못지 않은 한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이야기가 되곤 한다. 꽃같은 나이에 순결을 잃고 여자로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그 이야기들. 가끔 증언이 주는 그 패턴화된 이야기들은 사실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사회가 종용하는 패턴이기도 하다. 말라야라는 말은 자유롭게 하라는 말이고 롤라스는 할머니들이란 말인데 그런 증언들과 함께 할머니들이 자유로와지는건 어떤걸 의미하는것일까 자못 궁금하다.

말라야 롤라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단체이름이다. 우리가 익히 알던 위안소로 끌려가 오랜기간 강간을 당해야만 했던 할머니들과는 다른 사례인데 말라야 롤라스의 할머니들은 한마을에 일본군이 쳐들어와 주둔하면서 마을전체의 부녀자를 강간하고 집을 불태우고 남자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엄마와 딸이 동시에 강간을 당하기도 하고 아내가 보는 앞에서 남편과 자식을 죽이고 마을의 집들을 불태워 버렸던 만행.

현재 마을에는 그렇게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지만 이미 반이상은 돌아가셨고 남아있는 58명의 할머니들 중 15명만이 걸어다닐 수가 있다. 할머니들의 집들을 방문하자니 홀로사는 시누이와 동서가 다같은 위안부할머니일 정도로 그들의 삶은 지겹게도 꼬여있었다. 마을의 사건이 터진후 모두가 쉬쉬하며 숨어살기도 하고 이웃동네로 이사가 살기도 했지만 결국은 가족들이 있는 그마을로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되었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로 서로의 속을 터놓고 사는 마을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마을에서 그나마 좀 사는 집들은 대부분 자식들이 일본에 가서 돈을벌어온 집들이다. 남자들은 건설업이나 공장에 가서 일을 했다고 하고 여자들은 엔터테이너나 성산업에 종사하다 돌아온 케이스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마음이 착찹했다. 과연 할머니들이 늘 말하는 일본에 대한 감정과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정의란 것이 현재의 그들의 삶에서 의미하는 건 무엇일지 말이다. 

우자지간 그렇게 살고있는 그 마을의 할머니들은 해마다 아니 한해에도 몇 번씩 친구들의 장례식을 치루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가 처음 방문했던날도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마을의 할머니들이 모여 그분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미 죽음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을 참석한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 슬픔이기엔 살아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오히려 평온한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엄청 내리던 날 하나밖에 없는 바지가 다 젖었을때 우리가 묵고있던 집의 리타할머니가 속바지 같은 빨간색 바지를 내주셨다. 천이 부드러워서 좋아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 저 빨간색 좋아하는거 어찌알고 감사합니다 했다. 할머니들은 왜 다들 이런 바지를 좋아하는 것일까 속으로 궁시렁 거렸지만 사실 맘에 꼭 드는 바지였다. 결국 할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 그 바지를 배낭속에 넣고 다니며 요즘 잠잘 때 입고있다. 조연출 아람이도 바지하나를 받았는데 내바지가 더 이쁘다고 난리다. 이상하게 우리스텝들은 촌스러울수록 탐을 내는 경향이 있다. 거 참...ㅎㅎ


 

Posted by 빨간경순